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3화 (3/171)

# 3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3화

3. 의도치 않은 버스

'어? 원래 저기에 나무가 있었나?'

방금 전까지는 풀만이 있었을 터인 공간에 수십 년은 자란 듯한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마치 호야와 남자를 둘러싸듯이 못 보던 나무가 생겨나 있었다.

호야는 본능적으로 섬뜩함을 느꼈고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쩌저적.

불현듯 나무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나났다.

호야와 남자를 둘러싸듯이 서 있던 나무들의 몸통이 갈라지면서 마치 할로윈 호박 등에서나 볼 법한 얼굴이 생겨났다.

바로 이어서 나무들이 눈을 뜸과 동시에 나뭇가지가 채찍처럼 휘둘러 내려졌다.

쾅- 콰앙!

마치 폭탄이라도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

모래 먼지가 걷히자 그 자리는 방금 전의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움푹 파여 있었다.

호야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였다.

"허억......!"

나뭇가지가 호야에게 내리쳐지기 직전에 나뭇잎을 뒤집어쓰고 있던 남자가 호야를 자신 쪽으로 잡아끌어 주었다.

그 덕분에 호야는 움푹 파인 바닥과 같은 꼴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남자가 자신을 구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구해 주려 하고 있었다.

"구,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하고 머리 감싸고 여기서 가만히 있어."

호야가 마치 기어들어 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남자는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듣고서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움직이는 나무, 오염된 숲의 엔트에게 남자가 다가갔다.

남자는 작게 구시렁거리며 검을 놀리더니 오염된 숲의 엔트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호야를 향해 오염된 숲의 엔트가 공격을 가한 것이 전투 판정으로 인정된 것인지 호야는 나무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염된 숲의 엔트]

레벨: 736

[오염된 숲의 엔트]

레벨: 734

[오염된 숲의 엔트]

레벨: 737

"......."

호야는 몬스터들의 정보를 확인하고서 소리도 없이 헛숨을 삼켰다.

몬스터들의 레벨이 높아도 너무 높았다.

이니티움이 오픈하고서 두 달이 살짝 넘은 시점이었다.

플레이어들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랭커들의 레벨도 200을 간신히 넘긴다고 알고 있었다.

한데 그 3배를 거뜬히 넘기는 혹은 4배에 가까운 레벨의 몬스터가 호야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러한 몬스터들 수십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저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호야는 머리가 아파 왔다.

"으으......."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인지할 수 있었다.

한 번이라도 저 얇디얇은 나뭇가지의 채찍에 맞았다가는 바로 사망이다.

그것만큼은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뭐야, 어디 다쳤어? 왜 신음 소리를 내고 있어? 분명 공격은 안 가게 다 막았는데......."

너무 따라가기 힘든 상황에 호야가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사이에 남자는 오염된 숲의 엔트들을 모두 처리했다.

그 후 호야의 곁에 돌아와 있었다.

그의 오른쪽 허리에는 나뭇가지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

그의 말에 호야는 겨우 정신 줄을 붙잡을 수 있었다.

문득, 시야 한구석에서 깜빡거리며 확인을 기다리고 있는 시스템 메시지들이 보였다.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호야는 다시 정신줄을 놓았다.

[오염된 숲의 엔트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염된 숲의 엔트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칭호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획득하였습니다.]

[오염된 숲의 엔트를 처치하였습니다.]

호야는 머리가 방금 전보다 더 크게 아파 오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 * *

"팀장님! 팀장님! 방금......!"

"나도 알아! 빨리 이브한테 확인하고 대응 생각해 놔!"

"팀장님! 방금 전에......!"

"아, 진짜! 같은 보고 그만 올리고 빨리 확인하라고! 그리고 운영 팀은 너네들 팀장한테나 가!"

VR MMORPG 이니티움의 개발사이자 운영사인 네오워즈.

그중에서 운영 팀과 유저 관리 팀에 비상이 걸렸다.

단시간에 레벨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린 플레이어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운영 팀은 버그의 유무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유저 관리 팀은 이 사태를 일으킨 유저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이브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유저들의 정보는 절대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정보였다.

그렇기에 유저들의 정보 관리는 전적으로 AI인 이브가 모두 맡고 있었다.

때문에 유저들의 정보를 확인하거나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는 이브를 설득하여 유저의 정보를 얻어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팀장님! 이브한테서 유저 정보를 알아 왔습니다!"

"진짜?! 이브가 웬일이래!"

이브는 기본적으로 운영진들에게 매우 협조적이다.

하지만 유저들의 정보나 이상 사항이 아닌 게임 내의 정보 수정에 한해서는 고집이 매우 세서 쉽게 입을 열지 않는 것이 이브였다.

그렇기에 몇 시간에 걸쳐서 이브를 설득하기 위한 자료 정리를 한 사원에게 맡기고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아무 준비도 없이 감정으로라도 호소하라고 다른 사원을 바로 이브에게 보내었다.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이게 웬걸?

이브가 바로 즉각적으로 한정적이기는 하나 유저의 정보를 내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태를 일으킨 유저는 뭐 하는 놈이래?"

"유저명은 호야이고 실명은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생성 날짜는 금일 오후 2시 39분 27초입니다."

"누가 캐릭터 생성 날짜가 궁금하대?! 어떻게 한 번에 레벨을 100이상 올렸는지를, ......! 뭐? 2시?"

"네에...... 정확히는 2시 39분 27초입니다......."

"미친......! 그럼 캐릭터를 만들고 1시간 만에 레벨을 100 이상 올렸다고?! 그게 말이 돼!"

방금 전, 네오워즈의 운영 팀과 유저 관리 팀을 비상사태로 만든 원인은 바로 한 유저가 랭킹 안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 통합 상위 5,000명의 유저들만이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랭킹에, 그것도 최하단인 4,900대의 이름이 바뀌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 위치는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놓치면 랭킹에서 물러나기 쉬운 자리였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린다면 이름을 올리기도 쉬운 자리이기도 했다.

랭킹 상위라고 해도 방심하면 랭킹에서 물러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상위 랭커들은 랭킹에 이름이라도 남아 있기는 한다.

최하위는 방심하면 이름이 랭킹 목록에서 아예 내려가 버리는 살벌한 자리다.

그리고 지금 랭킹 안에 한 유저의 이름이 올라온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일반 유저들은 상위 5,000명까지의 리스트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영 팀과 유저 관리 팀에 한해서 그들은 10,000위의 랭킹까지 확인할 수 있다.

한데 호야라는 이름의 유저는 그 10,000위 안에서 전혀 기록된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그렇기에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비상이 걸린 시간은 정확히 3시 43분 42초였다.

"버, 버그야! 이거 분명히 버그야!"

"그게...... 이브가 말하기로는 버그가 아닌 정상적인 시스템으로 인한 결과랍니다."

"뻥치지 말라고 그래!"

"뻥 아니야, 이 팀장."

이석훈 팀장이 머리를 쥐어 싸매며 끙끙거리고 있자 운영 팀 팀장인 유대후가 나타났다.

"우리 팀원들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내듯이 하면서 직접 시스템을 확인했어. ......버그 따위 없었어."

"으...... 머리야......."

지금 당장 사표라도 내고 이 일을 회피하고 싶을 만큼 머리가 아파 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호야라는 유저의 이름이 올라온 것이 4,996위라는 것이었다.

일반 유저들은 그저 평소와 같이 랭킹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호야라는 닉네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랭킹에서 다시 이름을 내렸다.

짧은 시간 동안의 랭킹 진입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호야라는 닉네임 옆에 직업 마크의 표시가 없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그렇게 호야라는 닉네임은 유저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갔다.

단 한 명의 머릿속만을 제외하고서.

* * *

호야는 남자에게 손목을 잡힌 채 끌려가다시피 하면서 숲을 걷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호야는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얼마나 정신의 충격이 컸으면 게임 속이라고는 하나 처음 보는 인물이 자신을 잡아끌고 가고 있다는 것에 전혀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름: 호야

직업: 없음

레벨: 116

HP: 1,260/1,260 MP: 1,260/1,260

힘: 10 민첩: 10

체력: 10 마력: 10

잔여 포인트: 660

칭호

[계란으로 바위 치기]

스킬

게임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레벨이 100을 넘어서 버렸다.

호야를 향하여 공격을 가한 오염된 숲의 엔트들에 한해서 호야와의 전투로 판정되었다.

그래서인지 남자가 오염된 숲의 엔트들을 처치하는 과정에서 호야에게도 경험치가 흘러들어 온 것 같다.

호야에게 공격 행위를 행한 것은 총 19그루의 오염된 숲의 엔트들이었다.

레벨 700이 넘는 몬스터 십수 마리의 경험치가 몬스터와의 레벨 차이로 인해서 경험치 감소 패널티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파티 미편성 상태에서의 기여도에 의한 경험치 감소 패널티를 받았다.

더 나아가서 서로의 레벨 차이로 인한 패널티로 또 한 번 경험치가 깎이고 깎였음에도 불구하고 호야의 레벨을 100이 넘게 올려 준 것이었다.

호야는 전혀 현실성 없는 상황에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했다.

호야의 시선은 자신의 레벨에서 잔여 포인트로 내려갔다.

'이상해.......'

레벨이 116이 되면서 생긴 잔여 포인트는 총 660.

이 수치가 이상했다.

레벨이 1 상승하면서 얻는 잔여 포인트는 5에 불과하다.

그러니 호야의 잔여 포인트는 580이어야 했다.

한데 그보다 80이나 높은 포인트가 들어와 있었다.

'갑작스러운 레벨 상승으로 인한 버그......는 아닐 거야, 아마.'

이니티움에 버그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버그는 아니라고 생각한 호야는 칭호로 시선을 옮겼다.

버그가 아니라면 원인이 될 만한 것은 이것 하나뿐이었으니까.

[계란으로 바위 치기]

전체 스탯이 각각 10인 상태에서 어느 한 곳에도 포인트를 배분하지 않고 레벨 100을 달성한 플레이어를 위한 칭호입니다.

계란으로 바위와 부딪쳐 온 당신은 이제 바위보다 단단한 계란이 될 것입니다.

칭호 효과: 레벨 상승 시 잔여 포인트를 2배로 획득합니다.

사실 이 칭호는 이니티움이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개발 팀 팀장이 장난삼아 넣어 놓은 것이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을 터인 히든 피스.

전체 스탯이 각각 5인 상태로 레벨 100을 달성할 변태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넣어 놓은 히든 피스였다.

한데 어처구니없이 이 사기적인 칭호가 모습을 드러내 버렸다.

이 사실을 개발 팀 팀장이나 혹은 그 상부에서 안다면 전부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이었다.

이브가 유저의 데이터를 엄중히 관리하고 있는 것이 개발 팀 팀장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호야는 '이런 칭호가 다 있구나.' 하고 가볍게 생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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