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화 (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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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는 마을사람

- 1권 1화

1. 가상 현실 게임 이니티움(1)

"아들, 일어났니?"

이예숙은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 안에서 꾸물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건만 아직 잠이 덜 깬 것인지 묵묵부답이다.

"아들? 엄마가 들어가도 될까?"

"......."

"진짜 들어간다?"

"으음...... 이, 일어났어요."

호영이 아직 잠이 덜 깨어 반쯤 감긴 눈으로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살짝 그림자가 끼어 있었지만 이예숙은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진심을 담아서 밝게 웃어 줄 뿐이었다.

호영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밝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호호호, 밤중에 머리에 까치라도 앉았다가 갔니? 꼴이 말이 아니네."

이예숙은 호영에게 씻으라고 말하며 그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오늘은 2주에 한 번 있는 상담을 하는 날이었다.

씻고 나온 호영과 함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서 둘은 병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들, 그러지 말고 차라리 손을 잡으면 안 될까?"

"하지만...... 이제는 안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도 이러면 엄마 옷만 다 늘어나는데?"

이예숙이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호영의 손을 가리켰다.

"그리고 엄마는 아들이랑 손을 잡을 수 있을 때 많이 잡고 싶은데~. 설마, 벌써 엄마랑은 손도 잡기 싫어진 거니?"

"아, 아니야! 절대 아니야!"

이예숙의 갑작스러운 농담에 호영은 깜짝 놀라 당황해 큰 목소리로 답했다.

움찔.

본인의 커다란 목소리에 자신이 놀란 것인지 호영이 몸을 살짝 움츠리더니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아직 자신의 집 앞 복도,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주변에 자신들 이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호영이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거절하지 마시고 얼른 잡으시죠, 아드님. 엄마 팔 떨어지겠다."

"응......."

이예숙이 내민 손을 맞잡은 호영은 이예숙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호영의 집은 아파트 8층, 이예숙의 차는 지하 2층 주차장에 있었기에 걸어서 내려가기에는 조금 긴 높이였다.

지하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한참이 지나서야 엘리베이터가 8층에 멈추었다.

멈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호영이 작게 움찔거리며 반 발 뒤로 물러섰다.

"......안 타실 거예요?"

"아, 죄송해요. 먼저 내려가세요."

"그래요, 그럼."

엘리베이터 안에는 양손 가득하게 짐을 들고 있는 4인 가족이 타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짐으로 인해서 엘리베이터가 꽉 들어차 보였다.

호영은 그런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었기에 머뭇거렸다.

그런 호영을 대신해서 이예숙이 그들을 먼저 내려보냈다.

이예숙은 자신과 맞잡은 호영의 손등을 상냥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자신의 손을 타고 올라오는 호영의 떨림이 느껴졌다.

"아들, 어떻게 하고 싶어? 계단으로 내려갈까? 요즘 엄마가 조금 운동 부족인 것 같아."

"응......."

오늘은 공휴일이 이어지는 장기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아마 계속해서 방금 전의 가족들과 같이 놀러 가기 위하여 짐을 잔뜩 든 사람들이 내려올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 봤자 호영이 탈 수 있을 정도로 한산한 엘리베이터는 내려오지 않을 것이었다.

이예숙은 호영과 같이 계단을 걸어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호영은 대인 기피증이었다.

* * *

호영의 아버지는 아직 그가 이예숙의 배 속에 있을 때 불의의 사고로 인해서 아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해야만 했다.

그때 이예숙은 자신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심적 고통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쇼크사로 남편의 뒤를 따라갈 것만 같이 너무나 아팠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배 속에 있는 호영을 생각하며 의지하고 호영을 위해 고통을 참아 냈다.

호영이 드디어 세상에 얼굴을 내밀어 줬을 때, 이예숙의 고통은 많이 치유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 없이 엄마의 손에서만 자란 호영이지만 너무나 고맙게도 그는 착한 아이로 자라 주었다.

한 번도 떼를 쓴 적이 없었고 말도 잘 듣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되어 주었다.

부모의 마음에 한 번도 상처를 낸 적이 없는 착한 아이였다.

하지만 너무 순하게 자라 주었던 것일까.

아니면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는 뒷배경 때문이었을까.

호영은 고등한교에 입학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한 명의 아이의 눈에 들어 버렸다.

좋은 의미로 눈에 든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같은 반 친구로서 호영에게 접근했다.

장난이 조금 과격했지만 친구라는 이유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가 피해자와 가해자로 바뀌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호영을 괴롭히는 이유는 딱히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눈에 띄고 인기가 많아 거슬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호영이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뒷걱정 없이 그를 괴롭히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처음에는 그저 친구 사이에 있을 법한 간단한 심부름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안 지나서 심부름에 사용되는 돈이 그의 돈에서 호영의 돈이 되어 버렸다.

친구 사이의 과격한 장난은 곧 일방적인 폭력이 되었고 도를 넘어섰다.

호영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부터 이어져 오던 인연들은 괴롭힘 당하고 있는 그를 외면했다.

괜히 휘말려서 자신들에게까지 피해를 볼까 봐 바로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선생님들은 가해자인 학생의 눈치를 보느라 호영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

선생들은 호영을 지켜 주는 울타리가 되어 주지 않았다.

호영과 어릴 적부터 진실된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는 호영과 다른 학교로 진학했었기에 그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호영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기에, 그에게 고통을 호소할 수 있었기에 호영은 버틸 수 있었다.

친구는 호영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같이 고민해 해결책을 찾았었다.

하지만 악재는 겹친다고 했던가.

유일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짐을 나눌 수 있었던 친구가 그의 곁을 떠났다.

그의 친구는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던 지하철 화재 사건에 휘말려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호영은 합동 장례식에 찾아가 하루 종일 넋이 나가도록 울었었다.

친구라는 버팀목이 사라진 호영은 그 뒤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이예숙의 마음에는 큰 대못을 박고 자신에게는 없어지지 않을 상처를 새긴 뒤 학교를 자퇴하고 방에 틀어박혔다.

시간이 흘러 이예숙의 진심과 노력으로 호영의 상태는 처음과 비교하여 많이 호전되었다.

이예숙과도 방문을 사이에 두고서 대화하던 그가 이예숙과 마주 앉아서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방 밖으로 나오지도 않던 그가 이예숙과 동행하면 사람이 적은 곳은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많이 호전되기는 했지만 이예숙이 아닌 다른 사람과 마주하면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그나마 오랜 시간을 들인 덕에 호영의 심리 상담을 맡고 있는 정신과 의사와는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했다.

"호영 학생, 제가 호영 학생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정신과 의사는 호영을 향해 친절하게 웃었다.

"혹시 게임을 해 볼 생각은 없나요?"

"게임......이요?"

"네."

의사의 말로는 지금 호영은 정체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처음 의사와 만났을 대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많이 좋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호영의 치료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과 만나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호영의 상태를 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치료를 위해서는 만나는 사람을 늘려 가야 한다는 생각의 고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그래서 의사는 그 대체법으로 호영에게 게임을 권하고 있었다.

"두 달 전인가, 이니티움이라는 가상 현실 게임이 나왔어요."

"아...... 저도 들어 본 적 있어요."

의사는 질문이 아닌 자신의 말에 자발적으로 대답을 해 주는 호영을 보고서 흐뭇하게 웃었다.

"가상 현실 게임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어떨까요?"

호영은 의사의 말에 답하지 못했다.

게임이라고는 하나 거부감이 느껴지고 망설임이 있었다.

"사람과 만나는 것이 아직은 두렵겠지만 게임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예요. 호영 학생에게 실제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

"한번 고민해 보세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호영의 머릿속에서는 의사의 말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VR MMORPG 이니티움.

최초의 가상 현실 게임이자 또 다른 하나의 세계라는 말을 모두가 할 정도로 엄청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게임이었다.

호영도 남자이이였기에 자그마한 관심은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플레이 일기나 스트리밍 등도 가끔씩 지나치듯이 보았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니티움은 최초의 가상 현실 게임이었다.

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몇백만 원은 하는 전용 접속기인 캡슐이 필요했다.

계정비는 덤이었다.

하고 싶다고 해서 마우스 몇 번 움직여 플레이 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이 아니었다.

피식-.

잠깐 신호에 걸려서 차가 멈춘 사이에 이예숙은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호영을 보았다.

딱 한 번 읽지 못했던 적이 있기는 했지만 호영은 이예숙이 배 아파 가며 낳은 아들이었다.

이예숙은 아들의 표정을 읽지 못할 엄마가 아니었다.

"아들, 그 가상 현실 게임이라는 거 하고 싶어?"

이예숙의 갑작스러운 말에 호영이 움찔했다.

"으응? 아니...... 그......."

"엄마는 아들이 그거 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 캡슐이 비싸잖아....... 계정비도 따로 나가고."

"우리 집이 그 정도도 못 낼 것 같니? 엄마 돈 많아~."

이예숙이 혼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직업은 조금씩 세계에 발을 내딛고 있는 유명한 패션 브랜드인 에이원의 디자인 팀의 팀장이었다.

경제 수준으로만 따지자면 중산층에 속했기에 캡슐과 계정비에 부담은 없었다.

만약 부담이 된다고 해도 이예숙은 호영을 위해서 그 부담을 기꺼이 짊어졌을 것이다.

"일단 아들 거 먼저 장만하고 나중에 엄마 것도 사서 같이 관광이나 할까? 현실에는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많다더라."

"......응."

호영은 이예숙이 자신을 위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기에 거절하지 못했다.

그때로부터 2일이 지나자 캡슐 하나가 호영의 집에 설치되었다.

놀리고 있는 빈방이 있었기에 캡슐을 설치하기 위하여 따로 공간을 확보할 필요는 없었다.

캡슐의 설치 기사들이 떠나고 난 뒤 방에서 나와 캡슐을 본 호영은 많이 놀랐다.

"엄마, 이게 어떻게 벌써 도착한 거야?"

"후후후, 엄마의 능력이 이 정도란다!"

이니티움의 접속기인 캡슐은 게임의 선풍적인 인기로 인해서 연이은 품절 사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캡슐의 생산을 위하여 제작 공장들이 빠르게 생산 라인을 돌리고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캡슐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까웠다.

예약을 해 놔야지 겨우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예약을 해도 도착까지는 최소 한 달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도 2일 만에 집에 설치된 캡슐을 보고서 호영은 많이 놀랐다.

"사실은 재건 씨가 구해 줬어."

"아저씨가......."

호영은 머릿속으로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학교를 자퇴하고 나서 방에 틀어박힌 뒤로는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호영이 그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위해서 캡슐을 구해 준 것에 호영은 큰 고마움을 느꼈다.

"나중에 직접 감사하다는 말이라도 해 주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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