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반복-2화 (46/46)

“사랑해.”

탕! 아저씨의 머리를 총알이 관통했다. 아아악!! 피는 나오지 않았지만, 뇌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 상태로도 아저씨는 계속 내게 사랑을 속삭였다.

“우리는 사랑하고 있어.”

시체가 일어났다. 그리고 점점 내게서 멀어졌다. 어, 어딜 가는 거야. 따라가려 했지만, 목줄이 나를 놔주지 않았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씨.”

사랑한다고 말해.

“…지… 마….”

“상호 씨! 상호 씨!”

“허억!!”

몸을 잡아 흔드는 바람에 잠에서 깰 수 있었다. 눈을 번쩍 뜨자 익숙한 얼굴의 의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네…. 네. 괜찮…아요.”

괜찮을 리가 없었다. 벌써 2년째 같은 꿈. 매일 꾸는 건 아니었지만 꿀 때마다 괴로운 꿈이었다. 내가 머리에 총을 맞은 것처럼 멍했다. 의사가 머리에 붙은 검사 도구들을 떼어 냈다.

“흠… 예전보다 심해졌는데요.”

최근에 다시 꿈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작년에 받았던 수면 치료를 다시 받기 시작했다. 전과 다르게 전혀 차도가 없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계속 출근을 하고 있었다.

내가 탈출을 했든, 경찰이 구하러 왔든. 어쨌든 그날은 나와 아저씨의 마지막 날이었다. 쉬는 날이 한참 지나고도 내가 나타나질 않아, 고깃집 사장 형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넣었다고 했다. 가족도 아니면서, 그 성실한 애가 갑자기 사라진 건 분명 일이 생긴 거라고 그렇게 난리를 쳤다고. 내 인생이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가출을 하고 처음으로 아빠를 만났다. 안 죽고 살아 있었네. 서로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한껏 수척해진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내 등을 한번 두드려줬다.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고, 한동안 아빠와 함께 지냈다. 물론 검정고시 합격 후 대학을 핑계로 또 독립해 버렸지만. 아빠나 술병만 봐도 아저씨가 떠올라서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피해자 케어 프로그램으로 한동안 정신과 상담도 받았었다. 괜찮아졌었다. 겉으로는. 2년 동안 병원을 3개나 다녔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확실한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나는… 나는 왜 그 아저씨를 계속 쫓고 있는 거지?

어딜 가도 따라다니는 아저씨의 흔적에 미칠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미쳤을지도. 그래서 만나려고 했다. 만나서, 만나서 끝장을 보려고 했다…! 마지막 말을 취소하라고 하든, 아니면 사과를 하든, 뭐든 해 보라고. 날 좀 내버려 두라고!

“아, 그리고 상호 씨. 전에 부탁했던 그거 말인데요.”

“찾았나요?”

“응. 근데 그분이 지금은 은퇴하고 쉬고 계셔서, 만나 주시려나 모르겠어요.”

의사가 슬쩍 명함 한 장을 쥐여 줬다. ㅇㅇ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태민 교수. 아저씨의 주치의였다는 남자였다.

이선유라는 이름을 2년 내내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 가족들이 아저씨를 어찌나 꼭꼭 숨겼는지, 나중엔 화가 날 지경이었다. 해외로 거처를 옮겼다는 소식도 있었기에 더 막막했다. 아저씨의 흔적을 모조리 추적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유태민 교수. 은퇴했더라도 아저씨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일 터였다.

연락이 되질 않아 무작정 찾아갔다. 처음엔 만나지 않겠다는 걸, 매일 집 앞에 서 있었더니 결국 문을 열어줬다. 은퇴라는 단어에 당연히 할아버지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나이가 많은 분은 아니었다.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주 앉아 있음에도 시선을 돌리고, 교수는 조금 불편한 기색으로 삐뚤게 앉아서 차를 마셨다.

“물어볼 게 뭐죠.”

“교수님 환자 중에 이선유라고….”

움찔. 교수의 손이 떨렸다. 이번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을 어떻게… 무슨 사입니까.”

“아마,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사이가 맞을 것 같네요.”

“…피해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교수가 마른세수를 하며 소파에 기대 누워 신음했다. 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무례한 걸 알면서도 본론부터 물었다.

“아저씨… 그러니까 이선유 씨가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못 찾을 거예요.”

“왜 확신하시죠?”

나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기분이 나빴다. 그러자 교수가 지친 얼굴로 작게 웃었다.

“당신을 무시하는 게 아니에요. 그 가족들을 이해하는 거지.”

“…….”

“이선유 씨도 피해자였던 건 알고 있죠?”

“…네.”

아저씨의 흔적에서 가장 놀랐던 일이었다. 아저씨에게도 아저씨 같은 사람이 있었다니. 자세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은 죽었다고 들었다.

“가족들은 필사적이에요. 그들의 오점과 상처를 숨기기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를 혹은 가해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게… 무슨 소리죠?”

교수가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아주 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당신이 몇 번째일 거라고 생각합니까?”

“……!”

“당신이 아는 사람은… 당신을 포함해서 3명뿐이겠지. 하지만 난 아니에요. 그래서 일도 그만뒀어요. 더는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러며 괴로운 듯 얼굴을 감쌌다.

“내가 고쳤다고 생각을 했어요. 오만했던 거지….”

그의 손가락이 현관을 가리켰다.

“돌아가 주세요…. 나는 당신을 도울 수 없어요.”

“하지만…!”

“돌아가세요!”

교수가 일어나 나의 팔을 붙잡았다. 이대로 갈 순 없어! 우당탕! 테이블에 있던 물건을 쏟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교수의 다리에 매달렸다.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필사적이었으니까!

“도와주세요. 어디 있는지 아시잖아요!”

“돌아가세요! 제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계속 꿈에 나와서…! 생활도 불가능해요, 제발 알려 주세요! 제가 직접 만나서…, …싶어요….”

“아니야….”

“보고 싶어요…!”

“아니야!!”

교수가 내 어깨를 붙들고 흔들었다.

“잘 들어요. 그건 사랑이 아니야. 흔들다리 효과 같은 거라고!”

“만날 수만 있게 해 주세요, 제발! 보고 싶어요. 아저씨가 보고 싶단 말이에요!”

“사랑이 아니라 공포라고!!”

공포…? 이게 사랑이 아니라 공포라고? 계속 생각나고, 두근거리고, 가슴이 벅차는데…! 이게 공포라고? 아저씨는 사랑이 집착이라고 했어. 어째서 교수는 사랑을 공포라고 하는 거지?

“……!”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교수는 다시 소파에 주저앉으며 웃었다.

“어째서 당신들은 멀쩡한 사람들을 그리도 잘 세뇌하는지…. 한 명쯤 더 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이마를 짚었다. 하하, 하….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다른 사랑을 찾아요.”

“네…?”

“이선유 씨는 못 찾을 거니까, 벗어나고 싶다면 다른 사랑을 찾아가세요.”

그리고 그 집에서 쫓겨났다. 다음날 다시 와보니 교수는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이웃에게 물어도 새벽에 급히 떠났다는 말 밖에는 듣질 못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아저씨를 찾을 수 없다니. 세상이… 내 전부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저씨만 찾으면 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는데….

정처 없이 유흥가를 떠돌았다. 잠들면 자꾸 아저씨가 나타나기에, 잠들고 싶지 않아서 계속 마셨다. 우욱…! 술이 몸에서 받질 않아 매일 구역질을 하고 숙취에 시달렸지만, 술을 마시면 꿈을 꾸지 않았기에 계속 마셨다.

사랑한다고 말해-.

하지만 어느 순간 꿈을 꾸지 않아도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끔은 보이기도 했다. 내가, 내가 정말 미쳐 가고 있는 걸까. 다시 찾아가도 교수의 집은 비어 있었다.

제발… 제발 누가 나 좀 구해 줘…!

“엇! 위험해요!”

“윽!”

누군가 나를 잡아당겼다. 멍하니 걷다 신호도 보지 않고 도로를 건너려 했던 것이다. 빠앙-!! 내 앞으로 빠르게 버스가 지나갔다. 아….

“괜찮으세요? 위험할 뻔했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돌렸다. 나를 붙잡고 있는 남자의 얼굴엔 수염이 가득했다. 아저씨가 생각났다. 예전의 아저씨보다야 훨씬 단정되고 세련된 수염이었지만.

“쌤, 안 들어가세요?”

일행의 재촉에 남자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한 미용실로 뛰어들어 갔다. 그리고 홀린 듯 그의 뒤를 따라 나도 그곳으로 향했다.

-렘니스케이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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