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 다른-10화 (44/46)

상처를 건드는 손길에 아파서 눈을 떴다. 아저씨가 잠결에 허우적거리며 피멍이 든 내 팔을 내리친 것이다. 또 가위에 눌리고 있었다. 몇 번째 보는 모습에 이젠 익숙하게 아저씨를 품에 안으며 중얼거렸다.

“사랑해요, 아저씨.”

“허억! 허억…! 오지 마…!”

“여기 우리밖에 없어요.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 없으니까….”

“허억… 흐윽… 흑….”

“사랑해요. 사랑해요….”

잠결에 흐느끼면서도 내 품을 파고들었다. 어쩌면 아저씨는 섹스를 너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체온을 그리워하는 걸지도 몰랐다. 이렇게 생각하면 좀 안타깝긴 하네. 도대체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술을 마시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가위에 눌렸다. 단순히 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가위에 눌리지 않기 위해 마시고 있던 거지.

아저씨가 술을 마실 때는 거의 강소주로 비우는 편이었다. 음식으로 된 안주는 거의 먹질 않았고, 어쩌다 한 번은 섹스를 하거나, 자위하는 내 모습을 안주 삼아 마셨다.

“마실래?”

때문에 이런 식으로 권유받은 건 처음이었다. 당연히 거절하려 했으나 잠시 주저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어른이 돼도 절대 술을 안마실 거라고 다짐했었다.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다행히 술이 그렇게 맛있다고 느끼는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마셔 봐?

“주, 주세요….”

어색하게 잔을 받아 들었다.

첫 잔은 소독약 같았고, 두 번째 잔도 소독약 같았다. 내가 오만상으로 고작 2잔을 마시는 동안 아저씨는 벌써 1병을 비워 냈다. 어우, 빨라…. 괜히 그 속도에 맞춰 마셔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들었다. 세 번째 잔은 조금 맛이 무뎌졌다. 알딸딸…. 아니다. 내 혀가 무뎌진 것 같았다. 하. 알콜 쓰레기.

오기로 네 번째 잔을 마시고 결국 침대에 위에 널브러졌다. 가만히 있는데 배를 탄 것처럼 몸이 흔들렸다. 고개를 살짝 돌려 3병째 입에 물고 있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

“날 왜 사랑하는, 딸꾹. 데요?”

어우, 속이 안 좋다 했더니 딸꾹질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딸꾹! 어우. 딸꾹질을 할 때마다 작게 튀어오르는 몸에 아저씨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날 보고 웃어서.”

“내가 언제…?”

그것까진 알려 주지 않을 건가 보다. 하여튼, 내가 고작 웃었다는 이유로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말이지?

“내가 안 웃었으면? 난 여기 없었을까요?”

“모르지.”

아저씨도 참 불쌍한 사람 같다. 고작 미소 한 번 때문에 사랑에 빠져서 나를 이렇게! 묶고! 가두고! 딸꾹!

“뭐야아. 그럼 처음부터 날 감금할 생각이었어요?”

“아니.”

“헉, 근데 왜?”

“씨발, 내가 정리하라 할 때 했어야지.”

“내 탓이네….”

그걸 계기로 사람을 감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억울함에 천장을 노려보자 병을 내려둔 아저씨가 내 위로 올라왔다.

“나 돈 많은 거 알지? 얌전히 있으면 하고 싶은 거 다 시켜 줄 수 있어.”

“어차피 몸 판 돈이면서.”

“그건 취미 생활이고. 나 돈 진짜 많아.”

“어디서 났는데요?”

“보험금이랑 이것저것…. 어쨌든 나 네 인생 하나 부양할 정도로 돈 많으니까, 그냥 기회라 생각하고 날 이용해.”

아저씨의 입술이 목덜미에 닿았다. 쪽. 새가 쪼는 듯한 입맞춤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그냥… 아저씨랑 섹스하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나는 이기적이라 욕심이 많아서, 다른 사람들하고 무언가를 공유해야 한다는 게 싫었을 뿐이에요.”

왜, 그런 거 있잖아. 내가 파는 연예인이 유명해지면 약간 서운한 그런 거. 아저씨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그냥 그거랑 비슷한 기분이었다고.

“야.”

아저씨의 입술이 턱을 타고 올라왔다.

“질투와 집착. 남들은 그걸 사랑이라고 해.”

그렇게 속삭이며 키스했다. 아저씨에겐 질투와 집착. 내게는 승부욕과 욕심…. 이렇게 우울한데도, 키스는 더럽게 기분이 좋았다. 정말 이게 사랑인 걸까?

“으으….”

어마어마한 갈증에 눈을 떴다. 미이라로 변해 가는 것 같았다. 마침 마시란 듯 베개 옆에 물병이 하나 있었다. 꿀꺽꿀꺽!! 숨도 안 쉬고 물을 마시며 옆을 살폈다. 밥을 사러 나갔는지 자리가 비어 있었다.

물을 마시자 이번엔 방광이 터질 것 같았다. 뭐 이래! 술 마시니까 몸이 엉망이네. 사슬을 끌고 변기 앞으로 갔다. 쪼르륵-. 기다렸다는 듯 터지는 소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 걷다 무언가를 걷어찼다.

“악! 읍…!”

단단한 물체에 엄지를 찧어 비명을 질렀다가, 오랜만에 느끼는 전류에 입을 꾹 틀어막았다. 이런 걸 개한테 어떻게 쓰지? 너무 아픈데. 쓰라린 목을 문지르며 발에 챈 물건을 찾았다.

“어?”

소주병…. 원래 위험한 물건은 아저씨가 다 치워 놓는데, 얘는 까먹고 나간 모양이었다. 다시 목덜미를 만져봤다. 두꺼운 원단…. 목에 상처는 좀 날 수 있겠지만, 이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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