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 다른-7화 (41/46)

“옷 샀냐?”

“티나요?”

사장 형이 내 옷을 뒤집어 택을 보고는 혀를 찼다. 아니 언제는 옷 좀 사 입으라 유난이더니, 왜 이래?

“알바 늘렸어?”

“아뇨? 왜요?”

앞치마를 벗으며 대답했다.

“신발도 새것…. 옷도 새것…. 너 요즘 애들 간식도 사다 준다며. 너 같은 짠돌이가 웬일이냐?”

여태 받은 게 있고, 금전적 여유도 있으니 이제 베풀 뿐이었다.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못해도 20 정도는 받다 보니 어느새 통장 잔고가 엄청 늘었다. 다달이 나눠 내던 외제차 수리비 벌써 절반이나 갚은 뒤였다. 나름대로 생활이 안정돼 간다고 느끼고 있는데, 사장 형이 보기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상호. 너 요즘… 위험한 일 하는 거 아니지?”

섹스가… 위험한 짓은 아니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 그런 일 안 해요.”

그리고 애초에 부추긴 사람이 형이면서…. 인제 와서 말리긴 너무 늦었잖아요.

고깃집을 퇴근하고 편의점으로 출근했다. 한 손은 무거웠지만, 발걸음만큼은 가벼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던 현정 누나가 있었다.

“왔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누나가 손을 흔들었다.

“손 내밀어 봐.”

“왜?”

의아해하면서도 누나는 의심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 위에 들고 왔던 쇼핑백을 내밀었다. 어머, 이게 뭐야? 놀라는 누나. 이내 내용물이 저번에 함께 봤던 운동화라는 걸 알고는 환하게 웃었다.

“다음 주에 생일이잖아.”

“와… 어떻게 알았어?”

꽤나 감동한 눈치였다. 후후. 점장님이 몰래 알려 주셨지. 나이스.

혹시 했는데 다행히 사이즈가 맞았다. 꼬까를 신고 매장을 돌아다니는 누나는 정말 기쁜 듯 보였다.

“고마워, 상호야.”

멋쩍은 기분에 코를 문질렀다. 그러자 살짝 붉어진 얼굴의 누나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주말에 데이트…할까?”

데, 데이트!! 영화 보러 가자, 밥 먹으러 가자 라는 소리는 했어도 데이트란 말은 처음이었다. 심장이 간질거렸다. 끄덕, 끄덕끄덕!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꺄르륵거리며 누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와씨…. 주말에 제대로 고백해야지. 그리고 드디어 모쏠 탈출하는 거야!

“난 그럼 가 볼게.”

“조심히 가. 시간도 늦었는데 못 데려다줘서 미안해….”

“아냐, 일하는데 어떻게 데려다줘. 참 걱정도 많다. 여기서 역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내 손등을 슬쩍 쓰다듬으며 안녕! 하고 인사한 누나가 손을 흔들며 퇴근했다.

누나가 떠나자마자 카운터에 얼굴을 처박고 웃었다. 아!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게 썸인가! 주말에 어떻게 고백하면 좋지!

하지만 그 기분은 채 3분도 가질 않았다.

“꺄아아!!”

비명. 현정 누나의 비명 소리였다. 시발, 무슨 일이야! 매장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비명을 따라 달리자 편의점 바로 옆 골목에서 주저앉아 있는 누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누… 읍!!!”

“으아아앙!!”

냄새! 엄청나게 지독한 악취! 누나가 엉엉 울며 소리쳤다. 가까이 다가가자…. 똥이며 오줌이 섞인… 오물을 뒤집어쓴 누나가 울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 버렸다.

“누, 누나… 괜찮아?”

“안 괜, 안 괜찮아, 흐엉!!”

유니폼을 벗어 누나의 얼굴을 닦아 줬다. 차마 맨손으로 만질 수는 없었지만….

“누가 그랬어?!”

“몰라, 저기로 뛰어갔는데… 흐으앙!!”

얼마나 놀라고 서러우면 그 마른 어깨를 벌벌 떨며 울고 있었다. 누나, 경찰부터 불러. 알겠지? 그리고 나는 누나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뛰었다. 시발, 어떤 새끼가… 컥!

골목을 3개쯤 지나고 있는데 누군가 내 목덜미를 잡아챘다. 목이 졸리는 괴로움에 개구리 같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가로등 구석에 있던 쓰레기봉투들이 나한테 떠밀리며 쓰러졌다.

“누구야!”

거칠게 팔을 휘두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거기엔…

“아저씨….”

주먹이 날아왔다. 퍽! 내 멱살을 틀어쥔 아저씨가 사정없이 나를 구타했다. 으억! 악! 너무 아파 몸을 힘껏 웅크렸다. 머리, 등, 옆구리, 다리. 가릴 것 없이 무자비하게 주먹이 내리꽂혔다.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폭행이 멈추더니, 흑 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가 울고 있었다. 아니, 맞는 건 난데 왜 아저씨가 울지? 억울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정리하라고 했잖아.”

아저씨가 나를 노려봤다. 정리라는 게… 인간관계 자체를 정리하라는 거였어? 그건 마치, 사귀는 사이 같잖아. 애인도 아니고 어째서….

“여자가 좋아?”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그 여자가 좋냐고!!”

울음 섞인 비명에 그제야 현진 누나가 생각이 났다. 설마….

“아저씨가… 그랬어요?”

대답 없이 굵은 눈물만이 뚝뚝 떨어져 내 옷을 적셨다.

“나랑 하자. 돈 줄게.”

“왜… 왜 그랬어요?”

“40만 원 줄게.”

“왜 그랬냐구요.”

“부족해? 그럼 60만 원.”

“말 돌리지 마요!!”

“내가 널 사랑하니까!!”

그 말을 하는 아저씨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너도 나 사랑한다며.”

침대에서 그랬잖아. 날 사랑한다고! 그건 그냥 의미 없이 한 소리였다. 관계할 때 쓰는 기구 같은 거지!

“다른 사람이랑 하는 걸 질투했잖아. 그래서 독점하고 싶다고 했잖아. 나도 똑같아. 네가 다른 사람이랑 있는 게 싫어, 질투나. 다 죽여 버리고 싶어! 너는 나만 사랑하면 된다고!!”

말문이 턱 막혀 아저씨를 올려봤다. 아저씨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필사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저는….”

그때, 사이렌이 크게 울렸다. 현정 누나가 부른 경찰이 도착한 것이다. 덜컹. 심장이 내려 앉았다.

“도망쳐요. 아저씨. 얼른 도망쳐요.”

내 위에 올라탄 아저씨를 연신 밀어냈다. 뭐해요! 빨리 도망가요! 잡힐 거예요?! 이 아저씨가 잡히면 나도 걸리는 거였다. 왜 현진 누나한테 그런 짓을 했지? 나 때문에. 왜 나 때문이지? 내가 저 아저씨랑 원조교제를 하고 있으니까. 최악의 상황엔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고작 19살에 전과까지 달고 싶지 않아…!

“빨리 가라구요!”

필사적인 조급함에 아저씨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흉흉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주변에 설치된 CCTV가 많지 않았다. 일부러 편의점 근처의 사각을 고른 걸 보면 아저씨가 노린 것 같기도 하지만. 범인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경찰의 말에 속으로 그 누구보다 안도했다.

현정 누나는 그날부로 일을 그만뒀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질투 때문에 여자애한테 오물을 뿌리고, 나를 이 지경까지 패고. 정상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정도로 삐뚤어진 사람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불쾌하고 무서웠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다른 곳으로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현실이 녹록지 못했다. 당장에 일주일만 쉬어도 생활이 힘든데 무슨 도피야. 대신 평소와 다른 길, 다른 시간대로 움직이며 아저씨를 피해 다녔다. 그래 봤자 일하는 곳이나 집이 뻔히 알고 있기에 소용없었지만.

다행인 건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니 불안하면서도 안심이 됐다. 모순적인 감정에 하루하루가 스트레스로 범벅이었다.

일하면서 잘 하지도 않던 실수를 연발했다. 주문받은 고기를 다른 테이블에 가져가는 건 아주 사소한 문제였고, 숯불을 들고 가다 엎어 버리는 위험한 짓까지 했다. 사람이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안 하자, 사장 형도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닿은 것 같았다.

결국, 가게에서 쫓겨났다. 머리 식힐 때까지는 돌아올 생각 하지 마! 영영 잘린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거기에 이제 운마저 나빠졌는지… 그 제비를 또 만났다. 그것도 술에 취한 동료들을 잔뜩 데리고 있는 상태에서.

“오, 애기! 오랜만!”

시발, 누가 니 애기냐고. 가뜩이나 짜증 나는 상황에 문제를 더하고 싶지 않아, 그냥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남자의 일행 중 하나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돌려세웠다.

“야, 넌 얼마 주고 하길래 걸레가 너한테 붙었냐?”

“학생 할인 해 주냐?”

저들끼리 떠들어 놓고 재밌는 농담을 했다는 듯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소리야.”

이 사람들은 아저씨랑 돈 주고 했나 보지?

“빼지 말고! 진짜 궁금해서 그래. 넌 얼마 주고 하냐?”

“무슨 소리냐고. 난 돈 준 적 없어.”

내가 받지. 정색하는 대답에 남자들의 미간이 살짝 좁아지며 술렁거렸다. 제비가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배를 부여잡았다.

“미친! 둘이 사랑이라도 해?!”

불쾌했다. 내가 왜 그런 아저씨랑!

“개소리하지 마!”

그러자 제비의 손에 들려 있던 담배꽁초가 날아왔다. 앗! 손등을 치고 떨어지는 빨간 불에 작게 화상을 입었다. 인상을 구기고 노려보자 남자가 건들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뭐 어떻게 해서 꼬셨어?”

“…….”

“야. 그러지 말고, 알려줘라~”

주변의 남자들이 슬슬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시발… 왜 이래….

“같이 좀 쓰자고 시발! 네 덕에 요즘 우리가 많이 굶주렸거든? 그래! 같은 구멍동서니까, 이번엔 네가 좀 도와줘라.”

“네 남친이랑 똑같은 냄새 나게 해 줄게!”

헉! 제비가 내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팔을 붙잡으며 내 옷을 벗기려 들었다. 시, 싫어!! 놔!! 누군가 바지마저 손을 올렸는데… 그때,

“으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다들 화들짝 놀라며 나를 놓았다. 시선의 끝엔 아저씨가 서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돌멩이를 들고.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하지만 술에 취한 놈들 눈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보는 변기가 반가웠는지, 제비가 크게 웃으며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네! 우리 변기도 내가 그리웠, 아아악!”

퍽!! 아저씨의 손에 있던 돌멩이가 제비의 머리를 스쳤다. 붕, 붕, 돌아가는 돌멩이에 다들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씨발, 어디다 허락도 없이 손을 대. 쟤 내 거야. 꼬시지 마. 진짜 죽여 버린다.”

살벌한 경고였다. 그중 하나가 개소리하지 말라며 달려들었지만, 곧 돌에 입을 얻어맞고 치아를 우수수 뱉어 냈다. 미, 미친 새끼!! 제비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그 나머지엔 나도 포함돼 있었다.

시발, 시발! 이건 뭔가 잘못됐어! 이건 아니야!

내가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악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까지 아저씨의 경계 대상이었다. 그냥 내 주변의 모든 인간을 싫어하는 건 아닐까. 이러다 별거 아닌 이유로 주변 사람들이 다 다칠까 봐 겁이 났다. 이건 아니지. 시발. 이건 너무 무섭잖아!

한동안 더 필사적으로 아저씨를 피해 다녔다. 일이야 옮기면 되는 거고. 다른 사람 집에서 신세 좀 지며 숨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마저 무자비하게 당해 버릴까, 선뜻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가 없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겐 더…. 피할 방법이 없으니 언젠가는 마주칠 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 날이 오늘이었다. 퇴근 후 돌아오니 고시원 문이 열려 있었다. 움찔. 방안에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어, 어떻게 열었지?

“가족이라 그랬더니 할머니가 들여보내 주더라?”

정신없는 사람이지? 피식, 아저씨가 웃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 정중하게 사과했다.

“미안해….”

짚이는 게 많아서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때린 것도, 그 여자애한테 그런 것도 전부… 미안해”

아.

“진정하고 생각해 보니까… 내가 잘못했더라고. 그래서 사과하고 싶었는데, 네가 자꾸 나를 피하는 바람에 몰래 들어왔어. 이것도 미안해.”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아저씨의 눈꼬리가 한껏 처져 있었다. 그, 그래…. 제정신인 사람이면 그럴 수 없지. 뒤늦게나마 깨달아서 다행이다.

“앞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마요.”

움찔. 아저씨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떨궈지는 고개…. 아저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대신….”

입술을 살짝 깨물며, 주머니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배, 백만 원권….

“대신,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하자.”

겨우 섹스 한 번에 백만 원이라니. 저 돈이면 할부금을 거의 털어 낼 수 있었다. 꿀꺽. 아저씨도 제대로 반성하고 있는 것 같고… 마지막 추억 정도로 생각하면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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