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 다른-2화 (36/46)

“어서 오세요. 어….”

편의점 문이 열리는 소리에 습관적으로 일어나 인사를 했다. 며칠 전과 똑같은 모자, 똑같은 옷을 입은 그 노숙자 아저씨였다. 투명하게 닦아 놓은 유리문에 기름진 지문이 선명하게 찍혔다. 아… 방금 닦은 건데.

곧바로 주류 코너로 직진한 아저씨가 또 소주 3병을 카운터에 내려놨다. 지례 겁을 먹고 숨을 참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전만큼 지독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은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었지만….

“안녕하세요.”

구면이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끄덕. 아저씨도 나를 기억하는지 고갯짓으로 인사를 받았다.

“그… 김밥… 기억하세요?”

혹시 그냥 예의상 끄덕인 걸까, 김밥이라고 단어까지 말해 주자 아저씨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봤다. 흠칫. 무…서워라.

“계산.”

단호한 목소리에 시선을 피하며 바코드를 찍었다. 4천 8백 원입니다. 두툼한 지갑에서 또 5만 원짜리가 내밀어졌다. 잔돈을 거슬러주자 이번에도 봉투만 챙겨 들며 말했다.

“가져.”

또?! 처음은 그렇다 쳐도… 두 번이나 이렇게 큰돈을? 혹시 나를 엿 먹이려는 건 아닐까? 다른 가게도 아니고 편의점에서 4만 원이 넘는 큰돈을 팁으로 주는 사람은 처음 봤기에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천장에 달린 CCTV를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저기, CCTV 보이시죠. 아저씨 저번에 왔던 거랑 오늘 온 거랑 다 찍혀 있어요. 나중에 오셔서 돈 안 주셨다고 다른 소리 하시면 안 돼요.”

왠지 웃었다고 생각했다. 수염이 움찔거렸으니 어쩌면 정말 웃었을지도 모르지. 혹시나 맘을 바꾸고 도로 내놓으라 할까 봐 서둘러 주머니 깊숙하게 돈을 구겨 넣었다.

앗싸! 또 공돈! 굳이 돈을 주시겠다는데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야지. 예상 없던 소득에 싱글벙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평소의 영업 웃음이 30%였다면 오늘은 70%에 가까웠다.

“학교는.”

“네?”

“학생이라며. 학교는 어쩌고 새벽에 알바야.”

기억하고 있었구나. 난 또. 필름이라도 끊긴 줄 알았네.

“아… 학교는 안 다녀요.”

“왜?”

“돈이 없어서요.”

대답을 듣자마자 인사도 없이 뒤를 돌아 나가 버렸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서둘러 문을 열어 매장을 환기했다. 심하진 않지만, 안 나는 것도 아니니까 하는 편이 좋겠지.

근데 저 아저씨 진짜 뭐 하는 사람일까? 노숙자와 돈다발이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새벽 알바가 끝나고, 고시원의 얇은 이불 위로 몸을 던짐과 동시에 곯아떨어졌다. 눈을 떴을 때 오후 알바 시간이 임박한 걸 알고 어찌나 놀랐는지. 순간 심장이 쿵! 떨어졌다.

1분에 지각비 5백 원. 지금 가도 5천 원은 내야 하잖아! 벌떡 일어나 거울을 보니 머리가 엉망이다. 아이씨! 시간 없는데…! 결국 세수도 못 하고 모자를 눌러썼다. 어제 방에 들어옴과 동시에 바닥에 던져 뒀던 저지를 주워 냄새를 맡았다. 킁킁. 아직 괜찮은 것 같군. 허둥지둥 운동화를 구겨 신고 고깃집으로 달렸다.

“죄, 죄송합니… 다. 헉…헉.”

“일찍일찍 안 다닐래? 지각비 5천 원은 주급에서 깐다. 얼른 앞치마 해!”

“…네.”

8분 늦었는데…. 그럼 4천 원인데…. 입이 있으나 말을 바로 할 수가 없었다. 터덜터덜 직원 방에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알바들이 키득거리며 약을 올렸다.

매장 크기는 작았지만 유명한 체인점이라 저녁 시간만 되면 가게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서빙은 나와 인영 누나, 지수 이렇게 세 사람이 맡았고, 사장 형은 주방과 홀을 넘나들며 필요한 쪽을 도왔다.

몇 분이세요? 판 갈아 드리겠습니다. 삼겹살 3인분 추가요. 소주 2병 추가. 신분증 보여 주시겠어요? 사이다 한 병 더. 계란찜은 서비스 안 돼요. 7번 테이블 좀 치워 주세요.

정신없이 테이블을 돌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흘러갔다. 아무래도 남자 알바는 나 하나기에 하는 일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숯불을 옮기고, 병이 가득 든 무거운 박스를 들고, 손님 수에 맞게 테이블을 옮기고, 100ℓ 봉투에 가득 담긴 쓰레기를 버리고…. 시급이 높고 사장 형이 결제가 빨라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만둬도 벌써 그만뒀을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시계를 슬쩍 보니 벌써 1시간 후면 편의점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아싸, 1시간만 더 고생하면 앉아서 일할 수 있다. 야간 편의점은 손님도 적은 편이라 여기 일에 비하면 완전 껌이지. 곧 쉴 수 있다는 기쁨에 테이블을 닦던 행주를 더 열심히 문질렀다.

“상호야.”

“네?”

“너 테라스 좀 나가 봐라.”

“거기 지수 담당이잖아요.”

사장 형의 턱짓에 테라스로 고개를 돌렸다. 왠지 알바 들은 물론, 주변 손님들까지 누군가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선 속엔 익숙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어…?”

“고기 1인분에 소주가 4병이다. 여자애들은 노숙자 같아서 무섭다고 못 가겠대. 네가 나가서 보고 적당히 내쫓아 버려. 근데 저 아저씨 돈은 가졌을까?”

“저 사람 돈 많아요.”

“네가 어떻게 알아?”

노숙자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구면이라고 아는 척을 해 버렸다. 행주를 바구니에 올려두며 앞치마에 손을 문질렀다. 마침 테라스 구석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가 볼게요. 노숙자가 확실한 것 같다며 인상을 쓰고 있는 지수를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테라스로 뛰어나왔다.

“뭐 더 드릴까요?”

“…….”

여전히 푹 눌러쓴 모자에 덥수룩한 수염. 아저씨는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놀랐는지 말없이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반사적으로 활짝 웃자 아저씨가 고개를 불판으로 돌렸다. 킁킁, 가까이 있는데도 오늘은 구린 냄새가 나질 않았…. 아. 아니다. 나고 있었다. 다만 고기 냄새에 눌린 것뿐이었다.

“소주 하나 더.”

“네. 다른 건 필요 없으세요?”

“알바 많이 하네?”

“이거랑 편의점 2개 해요. 돈 모아서 공부하려구요.”

“…소주.”

“앗, 넵.”

사담이 너무 길었다. 가게 안으로 뛰어들어 가 냉장고에서 가장 차가운 소주를 한 병 꺼내 왔다. 소주 한 병 나왔습니다. 아저씨가 말없이 소주 뚜껑을 열고 맥주잔에 그걸 콸콸 부었다. 이미 테이블에 올라온 소주가 5병인데. 게다가 마신 거에 비해 고기엔 손도 대지 않았다. 얼마나 더 마시려 그러지? 또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도 이 아저씨처럼 하루에 소주를 몇 병씩 마셨는데.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니에요?”

“…지금 나 걱정하는 거야?”

“아… 예. 뭐….”

딱히 걱정까진 아니고…. 그냥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떠올리니까 참견하게 되네. 게다가 아저씨를 보다는 가게 안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사장 형이 더 걱정이었다. 내쫓으라고 했는데 소주를 가져다주니 얼마나 화를 내던지. 차마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어서 말끝을 늘어트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

“헉!”

아저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깜짝 놀라 소리를 냈다가, 그 사실에 더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얼마지?”

“예, 예? 계산은 카운터에서….”

와, 진짜 놀랐네.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저씨는 성큼성큼 걸어 사장 형에게 계산을 치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안녕히 가세요! 사장 형이 소리를 지르듯 배웅하며 쌍 엄지를 치켜들고 감탄했다. 지갑을 본 모양이었다. 쩔죠? 내가 저 아저씨 돈 많다고 했잖아.

고기 냄새가 완전히 배어 버린 저지에 공짜 페브리즈로 빨래를 하다시피 적셔서 편의점 창고에 걸어 뒀다. 편의점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박힌 유니폼 조끼로 탈의하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재고 확인. 부족한 게 없나 살피고, 진열대에 빈 곳이 있으면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 진열했다.

이 알바 저 알바를 전전하며 지내다 보니, 취미를 만들기보단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게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라 깨달았다. 편의점에서 내가 찾아낸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는 진열이었다. 줄과 색을 맞춰서 정갈하게 서 있는 제품들을 보면 뿌듯함이 느껴진달까? 오죽하면 알바에겐 늘 야박한 점장님도 내가 일하는 시간대에 진열 하나는 예술이라며 칭찬할 정도였다.

금고 정리까지 끝내면 편의점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집에서는 볼 수 없던 유튜브 영상을 몰아봤다. 게임 실황, 연예인 영상, 아이돌 커버댄스…. 고깃집에 비하면 거의 노는 것에 가까운 일이지.

하지만 영상을 보다 간간이 오는 야간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면 4~5시쯤엔 늘 졸음이 쏟아져 오곤 했다. 전에 한 번 이러다 잠든 적이 있는데, 사장님한테 걸려서 얼마나 혼났는지 모른다. 하필 그때 야간 털이범들이 기승을 부려서는….

“하-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있으니 딸랑- 하고 유리문이 반가운 소릴 냈다. 그래. 차라리 손님이 있는 게 덜 졸려.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찍어 누르며 늘어져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어, 또 오셨네요.”

또 그 노숙자 아저씨였다. 고깃집에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 아저씨가 주류 코너에서 소주를 3병 꺼내 왔다.

“계산.”

입을 열자 지독한 술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크흡, 알콜 브레스! 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몸에서 냄새가 덜 나니까 입에서 난리네!

“오, 오늘 많이 드시네요….”

“…….”

“4천 8백 원입니다.”

명품지갑에서 있던 돈다발 중 오늘도 5만 원권이 한 장 빠져나왔다.

“5만 원 받았습니…다?”

“…….”

지폐를 가져가려 하자, 끝을 맞잡은 손이 힘을 주며 놓지를 않았다. 당황하며 슬쩍 한 번 더 힘을 줬다. 꾸깃. 아저씨 쪽의 지폐가 엉망으로 구겨졌다. 아아 빳빳한 게 생명인 5만 원권이!

“야.”

“네?”

“너 돈 필요해?”

“네??”

“돈. 공부하고 싶다며. 내가 줄게.”

아저씨가 지폐를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들고 있던 지갑을 활짝 펼쳐 내게 보였다. 대충 봐도 100만 원 단위는 넘어 보이는 두툼한 지폐 다발이 내 눈을 돌아가게 했다.

“이거 다 너 줄게.”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말했다. 눈앞에 보이는 거액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혹시 키다리 아저씨세요?

“…아저씨가 저한테 이걸 왜 줘요….”

공짜로 준다면 사양 않겠지마는… 내 앞에 있는 이 아저씨는 너무 수상했다. 멀끔한 양복쟁이가 와서 돈 줄까? 해도 의심할 마당에, 노숙자 행색을 한 아저씨가 이런 말을 하니 배는 더 의아했다. 여전히 눈은 지갑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지만, 입만큼은 정신을 차렸다.

“그냥 주는 거 아니야. 아르바이트 해.”

“알바요? 무슨 알바를….”

“할래?”

“…….”

바로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저런 고액을 내미는 알바는 내가 알기로 몇 가지 없다. 인체실험이나 장기 매매나 원조교제 등등. 근데 나도 남자, 저 아저씨도 남자. 설마 원조교제일 리는 없겠고… 역시 장기나 실험 쪽인가?

“…생각해 봐. 내일 끝날 때 여기로 올게.”

그리곤 뭘 더 묻기도 전에 술을 챙겨 나가 버렸다. 내 손엔 여전히 5만 원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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