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 다른-1화 (35/46)

또 다른

만 19살. 어른이라고 하기도 그렇다고 어린아이라고 하기도 모호한 나이였다. 알콜중독 가장에게 질려 자살한 엄마와 그걸 방관하며 여전히 술독에 빠져 사는 아빠. 제대로 된 부모가 아니었기에 내 인생도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어서 오세요.”

최종 학력은 중졸. 고등학교는 1년도 못 다니고 진작 그만뒀다. 생활비도 버거운데 교육비와 급식비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의무 교육도 아니었기에 주변에 누구 하나 말리거나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저소득층이나 한 부모 가정에 나오는 지원금이 있긴 했지만, 이 후진 학교엔 알콜중독자 아버지조차 없는 불우한 놈들이 넘쳐났다.

늘 학업보단 아르바이트가 우선이었다. 제대로 된 보호자가 없었기에 내겐 하루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했다. 차라리 일찍 그만둔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지. 미련스럽게 3학년까지 붙어 있었어도 어차피 그만뒀을 거다.

“만 2천 3백 원입니다. 카드 받았습니다.”

유일하게 한마디 해 준 사람이 담임이었다. 너는 머리가 좋으니 검정고시라도 꼭 봐라. 실질적인 도움을 준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격려는 받았다. 사실은 더 다니고 싶었는데…. 공부하는 거 싫지 않았어.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자퇴와 동시에 가출했다. 말이 가출이지, 이제 독립이라 봐도 무관했다. 아빠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같잖은 정 때문에 옆에 붙어 있다간 내 남은 인생도 말아먹을 게 뻔했다.

“어서 오세요.”

악착같이 돈 모아서 다시 공부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지. 나를 손가락질했던 사람들보다 성공해서 보란 듯이 떵떵거리고 살 거다. 만약 그때까지 아빠가 살아 있다면, 아빠 앞에서도 떵떵거릴 거다. 봐라. 당신이 방치한 자식이 혼자서 이렇게 살아남았어.

“말보로 레드.”

하지만 현실은 편돌이. 능숙하게 몸을 돌려 담배를 꺼냈다.

그래도 2년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안 해 본 일 없이 구르며 돈은 꽤 모았었다. 물론 과거형이지만…. 작년 겨울에 오토바이로 배달을 가다 외제 차랑 박는 바람에 그 돈을 홀랑 날렸다. 아주 조금 찌그러졌을 뿐인데 무슨 수리비가 그렇게 비싸던지. 사장 새끼는 도와주기는커녕 자기 오토바이 수리비도 물어내라 지랄했다. 그 뒤로 차 타는 일은 절대 안 한다. 더럽고 치사하고 서운해서.

그날 돈을 뽑아 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러려고 모은 돈이 아니었는데. 더 슬픈 건, 모아 뒀던 적금을 다 줘도 수리비가 부족해서 아직도 분납 중이라는 거다.

그 때문에 벌이가 달라도 여전히 모이는 돈은 0원에 가까웠다. 많이 할 땐 3탕까지 뛰었지만, 최근엔 몸이 남아나질 않아서 가장 힘들었던 상하차 일을 관두고, 편의점과 고깃집 서빙만 하고 있다.

그런데 역시 3탕과 2탕은 다르더라. 몸은 좀 편해졌지만, 몇 개월간 고정돼 있던 수익이 확 줄어 버리자 생활이 조금 빠듯해졌다. 그래도 3탕 뛸 땐 통장 잔고에 여유가 좀 있었는데…. 역시 일을 하나 더 잡아야 하나. 어디 몸 편한 고수익 알바 없을까.

“4천 5백 원입니다. 현금영수증 필요하세요?”

5천 원을 받고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여 잔돈 500원을 거슬러줬다. 하지만 번쩍거리는 반지를 3개나 낀 남자는 자기 손바닥 위에 올라간 500원을 내려다볼 뿐, 손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어이.”

“네?”

“내가 5만 원짜리를 줬잖아.”

거짓말이다. 분명 5천 원을 줬으면서.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입으로 자기는 5천 원짜리를 취급하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새벽에 일하다 보면 이런 손님 한 둘쯤은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하지만 편의점 알바 1년 차. 나름 프로 계산러라 자부하는 내게 이제 이런 일은 당황스럽지도 않다.

“분명 5천 원짜리 주셨어요.”

“아이 씨발, 너 내가 5천 원이랑 5만 원도 헷갈릴 거 같아?”

“여기 이 5천 원, 손님이 주신 거예요.”

“어린놈이? 눈 안 깔아? 시발! 여기 사장 누구야! 나오라 해! 내가 5만 원이 아깝진 않은데! 알바 새끼 싸가지가 없어서 꼭 받아 내야겠다. 여기 사장 어딨어!”

편의점에 사장이 어딨냐. 점장이겠지. 남자가 금방이라도 내 멱살을 잡을 것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조금 쫄아 몸을 물리는 순간,

딸랑-.

침을 튀기며 사장을 부르짖는 진상 취객의 뒤로 또 한 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덥수룩한 수염에 아무거나 껴입은 옷, 지저분한 모자…. 노숙자인 듯 보였다. 아. 오늘 손님들이 다 왜 이럴까….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여기 문 닫게 만들어 줘?!”

누군지 알게 뭐야. 큰소리에 주류 코너에 서 있던 노숙자가 이쪽을 힐끔거렸다. 설마 훔쳐 가는 건 아니겠지? 더해지는 도난 걱정에 노숙자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쾅! 남자가 카운터를 내리쳤다. 자기를 무시한다 생각하는지 기분이 꽤 나빠 보였다.

“씨발! 애새끼가 버르장머리 없이…!”

남자가 카운터에 올라와 있던 사탕 통을 집어 들었다. 내게 던지려는 듯 머리 위로 치켜든 통에서 막대사탕 몇 개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아악! 저거 내가 다 물어야 하는데!

“자꾸 이러시면 경찰 부를 거예요.”

“시발! 불러! 누가 무섭대?! 불러 봐!”

“저기 보이시죠? CCTV. 저기에 손님 들어올 때부터 다 찍혀 있어요. 경찰 불러서 손님이 얼마를 내셨는지 보면 되겠네요.”

CCTV 얘기에 남자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당황한 게 뻔히 보였지만 자존심이 뭐라고, 남자는 끝내 이게 자신이 낸 5천 원이라고 인정하질 않았다.

“부, 불러! 부르라고!”

그때, 뻗대는 남자의 옆으로 노숙자가 빨간 뚜껑의 소주 3병을 들고 다가왔다. 욱!! 가까이 올수록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무리 취했어도 코는 뚫렸는지, 진상 역시 코를 붙잡고 카운터에서 화들짝 멀어졌다.

“…….”

나, 나는 프로 계산러. 훔쳐 가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내는 손님을 가릴 순 없다. 최대한 숨을 쉬지 않으며, 이 괴로움을 숨기기 위해 기계적으로 방긋 입꼬리를 당겼다.

“4… 4천 8백 원입니다.”

우웩! 숨을 안 쉬는데도 냄새가 느껴진다! 헛구역질이 나오려 하는 걸 겨우 참았다. 거의 입구까지 도망갔던 진상이 노숙자를 힐끔거리며 잰걸음으로 다가와, 카운터에 있던 담배를 집어 들었다.

“너 운 좋은 줄 알아! 우, 우웩! 아저씨는 좀 씻고 다녀요!”

그걸 말하면 어떡해! 정확하게 팩트폭력을 가한 취객이 허둥지둥 도망치자, 밝고 아담한 편의점 안엔 나와 노숙자 단둘만 남게 됐다. 어색한 분위기와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에 어거지로 더 활짝 웃었다. 노숙자가 살짝 고개를 들자 모자 밑으로 흉흉하게 빛나는 눈이 보였다.

“…….”

언뜻 눈이 마주쳤던 것 같다. 다시 고개를 숙인 노숙자가 말없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낡긴 했지만 유명한 명품이라는 것에 놀라고, 그 안에 든 돈뭉치를 보고 또 놀랐다. 무, 무슨 돈이 저렇게…. 지갑만 보고는 짝퉁인가 했는데, 안에 든 돈을 보니 진짜 같았다.

“5천 원짜리는 없으신가요?”

“…….”

“계,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빳빳한 5만 원권을 내밀더니 말없이 소주를 챙겨 들었다.

“어! 손님 거스름돈을… 훕!”

정말 소주만 챙겨 나가는 노숙자 때문에 놀라 입을 열었다가, 훅 들어오는 냄새에 나도 모르게 코를 틀어막았다. 아차 싶어 뒤늦게 쫓아나갔지만 이미 그 꼬질꼬질한 남자는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거스름돈 45200원….

“앗싸 개이득….”

돌아온다면 돌려줘야겠지만, 일단 주인 없는 잔돈은 내 주머니로 들어왔다. 4만 5천 원이면 편의점 야간 일당과 거의 맞먹었다. 와, 저 아저씨는 정체가 뭐지? 겉만 보면 영락없는 노숙자인데, 뭔 돈을 저렇게 많이 들고 다닌담. 부자인지 거지인지 모르겠네. 뭐… 어느 쪽이든 나랑은 상관없겠지만. 이왕 두고 간 거 다시 안 만났음 좋겠다!

하지만 세상일이 늘 내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새벽 파트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던 중, 김밥집 앞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원래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 불구경이라고 하잖아. 평소라면 길을 건너갔겠지만, 호기심에 일부러 김밥집 앞을 지나기로 했다.

“아니, 글쎄! 다른 손님들이 불쾌해하니까 못 들어오신다고!”

멀리서도 들리게 김밥집 아줌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누구랑 싸우고 있는 거지? 힐끔. 모여 있는 사람들의 어깨 너머를 바라봤다. 헉! 그 한가운데서 삿대질을 당하고 있는 낯익은 몰골에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그 노숙자 아저씨잖아! 살짝 갈등이 생겼다. 가? 말아? 그러면서도 발은 부지런히 그쪽을 향했다.

아저씨가 뭐라뭐라 말하며 손에 든 지폐를 흔들었다. 설상가상. 새벽에 사 간 술을 혼자 다 마신 건지, 가만히 서 있는데도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아줌마가 질색하며 소리쳤다.

“돈 있다고 다 손님인가! 아휴 몰라! 우리 가게는 못 들어가!”

어어, 심지어 밀치기까지. 퍽! 하고 밀린 몸이 허우적대다 바닥으로 쓰러졌다. 주변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넘어진 아저씨를 돕지 않았다. 냄새나고 더럽고 술까지 취해 있고…. 호감 가는 구석이라곤 단 한 가지도 없었기에 오히려 다들 한 발자국씩 멀어지며 인상을 찌푸렸을 뿐이다.

“아줌마! 왜 사람을 밀고 그래요!”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심지어 바닥에 엎어진 노숙자조차도. 소리를 질러 놓고 나 역시 놀랐다. 아씨 왜 끼어들었지? 그냥… 순간 아빠가 생각났다. 그리고 잔돈도. 45,200원.

물론 우리 아빠는 수염도 없었고, 냄새도 저렇게 심하진 않았다. 다만 늘 취해서 비틀거렸고, 화가 나 있었고,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먼저 버리고 나온 주제에 아빠를 떠올리자 아주 조금의 죄책감이 들었다. 왠지 어디선가 저렇게 푸대접을 당하고 있을 것만 같아 속이 쓰렸다.

“아는 사람이니?”

김밥집 아줌마의 화살이 내 쪽을 향해 겨눠졌다. 아, 아니요.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힐끔. 바닥에 엎어진 노숙자는 아직도 그대로 누워 있었다. 하, 모르겠다. 참견해 버렸으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아저씨, 뭐 드시고 싶은데요!”

아줌마가 자꾸 소리를 지르니, 덩달아 괜히 소리를 빽 질렀다. 노숙자의 시선이 창가에 있는 김밥에 닿았다.

“한 줄이면 돼요?”

대답이 없었다. 아씨 몰라 한 줄이면 되겠지. 주머니에 곱게 넣어 뒀던… 잔돈 4만 5천 원을 꺼내 들었다.

“하, 한 줄 주세요! 제일 비싼 거로!”

어차피 내 돈도 아니면서 돈을 쓰려니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슬쩍 바라본 메뉴판에 제일 비싼 김밥이 5천 원인 걸 봤기 때문일까…. 뭔데 저렇게 비싸. 금이라도 넣었나.

“…저 사람한테는 못 팔아! 다른 손님들이 저 아저씨 때문에 곤란해 하….”

“포장해 주시면 되잖아요! 안 들어갈게요!”

“저런 사람이 가게 앞에 있으면 다른 손님이 들어오겠어?!”

“그럼 길 건너에 서 있다가 부르면 제가 받으러 올게요! 그럼 괜찮죠?”

어떻게든 아저씨를 내쫓으려 했는데 내가 고집을 부리자 아줌마도 곤란한 모양이었다. 아휴! 들으란 듯 크게 한숨을 쉬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제 남은 건 나랑 저 노숙자 아저씨뿐.

“이, 일어나세요.”

아우 냄새!! 다시 맡아도 역한 냄새였다. 밖에서도 이렇게 냄새가 심한데 가게 안에선 오죽할까. 그것도 식당인데! 아줌마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평소라면 나도 반대하는 쪽에 섰겠지. 이런 냄새를 맡으면서 밥이 넘어가겠어?

아저씨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손을 허공에 헛짚으며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깜짝 놀라 팔을 붙잡았다. 아아악! 만졌어!! 내적 비명과 동시에 주변에서 힐끔거리던 사람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옷이… 이렇게 끈적거릴 수도 있구나…. 어쨌든 닿은 김에 제대로 부축해서 아저씨를 일으켜 세웠다. 가까이 다가가니 술 냄새과 이상한 냄새가 섞여서 숨 쉬는 게 괴로울 정도였다. 흡…. 도대체 얼마나 안 씻은 거야. 우욱!

사람들을 피해 길을 건너왔다. 앞장을 서자 아저씨가 비틀거리면서도 내 뒤를 빠르게 따라왔다. 벽에 기대 조금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 있으니, 묘한 침묵이 그 사이로 어색하게 내려앉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지폐가 만져졌다. 아. 잘 가라. 공돈아. 굿바이. 우린 운명이 아니었나 봐.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새벽에 오셨던 편의점 직원이에요.”

“…….”

“이거 두고 가신 잔돈인데….”

“두고 간 거 아닌데.”

깜짝 놀랐다. 수염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생각보다 높았다. 지저분한 모습 때문인가, 더 걸걸하고 묵직한 목소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두고 간 게 아니시면….”

“너 가져.”

진심? 가지라는 말에 고개를 획 돌려 노숙자를 바라봤다. 욱! 냄새! 쳐다만 봐도 이상하게 냄새가 코를 찔렀다.

“크흡, 가,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양해도 없이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으며 쭈그려 앉았다. 후우-. 와 저기에 담배 냄새까지 더하네. 지독하다 지독해.

“학생?”

“예, 뭐….”

학생이라고 불리는 나이는 맞지.

“후우…. 왜 도와줬어?”

“네?”

설마 물어볼 줄은 몰랐다. 보통은 그냥 고맙다고 하잖아.

“그냥요….”

구구절절 가족사까지 얘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자 다시 연기를 내뱉으며 아저씨가 물었다.

“넌 내가 아무렇지도 않냐?”

뜨끔. 안 그래도 냄새가 자꾸 올라오고 있어서 인상을 쓰고 있던 터라,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잖아. 지금도 이렇게 후회 중인데. 아 이제 코가 아픈 것 같아! 냄새가 이렇게 아플 수도 있구나!

“하, 하하…. 다 같은 사람인데요… 뭘.”

아무렇게나 내뱉은 대답에 민망함이 하늘을 찔렀다. 마침 건너편에서 김밥집 아줌마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역시 천국의 주인이야!

“김밥 받아 올게요!!”

하지만 김밥을 받아들고 뒤를 돌았을 때, 노숙자 아저씨는 사라져 버린 뒤였다. 아니…. 이럴 거면 왜 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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