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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놈의 몸은 나보다 며칠 더 빠르게 멀쩡해졌다. 퇴근 후에도 알몸이 아니게 된 놈이, 돌아오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내 옆으로 쓰러졌다. 힘없이 내 등에 얼굴을 비비는 놈.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저녁을 먹자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놈은 식탁 의자와 구속구를 묶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영문도 모르고 자꾸 울적해 하는 놈을 보고 있으니 짜증이 솟구쳤다. 이 새끼 나 열 받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나?
“선유 씨…. 하아….”
“시발, 거슬리게 왜 자꾸 한숨인데.”
“조만간 나… 워크숍 갈지도 몰라요”
뭐…? 워크숍이라니. 그런 소리 없었잖아.
“갑자기? 언제, 얼마나 가는데?”
“정확한 일정은 아직이지만, 아마 3박 4일 정도? 큰 프로젝트는 이제 끝나서 바쁘진 않은데…. 한 달 넘게 고생한 거 축하할 겸, 신입들 연수도 할 겸 이유가 많아요. 게다가 이번에 나 승진 얘기도 나오고 있어서… 빠지기도 어려울 것 같아요.”
“…….”
3박 4일 이후로는 놈이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3박 4일? 그럼 그동안 혼자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싫… 싫어. 혼자는 싫어. 혼자 있는 건 이제 싫단 말이야. 시발, 날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나를 두고 가겠다고?
“승진하면 휴일이 더 많아져서 좋긴 한데, 그래도 선유 씨를 두고….”
“아, 안 가면 안 돼?”
“네?”
“응? 그거… 안 가면 안 돼? 가지 마. 그냥… 나랑 있어.”
평소 같지 않은 말투로 놈을 졸랐다. 사실 내가 조르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다.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조급함이 무릎 위에 얹어져 있던 놈의 손가락을 붙잡으며 몇 번이나 가지 말라 했다. 멍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던 놈은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선유 씨….”
“가지 마.”
“아 진짜 왜 이렇게 귀엽지!”
놈이 벌떡 일어나 내 얼굴을 부여잡았다. 너무 급하게 일어난 탓에 놈과 식탁이 부딪치며 크게 들썩였다. 식탁 위에 있던 그릇이며 물건들이 덜컥 굴렀고, 그중 가장자리에 있던 놈의 약통 하나가 통! 통! 빈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얼마 전까지 약이 남아 있던 것 같은데. 벌써 다 먹었나?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놈의 혀가 순식간에 입술을 비집었다.
읏! 얼떨결에 벌어진 입안이 거친 분탕질에 정신을 못 차리고 휘둘렸다. 놈을 떼어 내려 옷깃을 세게 붙잡았지만, 오히려 더 부추긴 꼴이 됐다. 놈이 내 목덜미를 세게 붙잡고 아플 정도로 입술을 문질렀다. 중간에 몇 번 치아가 부딪칠 정도로 밀착했지만 그래도 부족하단 듯 놈의 당기는 힘은 점점 더 강해졌다.
“푸하!! 헉! 헉!”
놈이 입을 떼고 나서야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시발 미친 새끼가!! 갑자기 지랄이야! 내 원망 섞인 눈빛에도 상관없다는 듯 놈은 다정하게 나를 내려다봤다.
“하! 귀여워서 어쩌지! 진짜로 회사 때려치울까요?!”
하지만 결국 안 가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더라.
언제 떠날지, 어디로 떠날지도 모르지만 벌써 놈이 없는 날들이 두려웠다. 밥을 먹고 침대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우울함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그건 놈도 마찬가지였는지 평소라면 피곤하다고 금방 곯아떨어졌을 놈이 한참이나 잠이 들지 못했다.
문뜩 잠이 깼을 땐 어두운 방 안에 나 혼자 있었다. 순간 놈의 부재에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다행히도 활짝 열린 방문 밖으로 거실에 있는 스탠드의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작지만 놈의 목소리도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저씨가…. 이젠 나도….”
통화 중인 건가? 그러기엔 너무 작은 소린데. 귀를 기울이자 좀 더 분명한 단어들이 들려왔다.
“아저씨도 봐야 하는데…. 우리 선유 씨가 얼마나 귀여운지….”
저 미친 새끼가? 누구한테 내 얘길 하는 거야?
“야….”
혹시 통화 중인가 싶어 작게 놈을 부르자, 계속해서 뭔가를 중얼거리던 놈의 목소리가 무서울 정도로 갑자기 멈췄다. 곧 발소리가 움직이고 거실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살짝 눈이 부셔 인상을 쓰자 방으로 들어온 놈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 때문에 깼어요?”
“누구랑 얘기해?”
“네? 아무랑도 안 하는데…?”
“…? 너 지금 통화 하는 거 아니었어?”
“아닌데…? 나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잠결에 잘못 들은 거 아니에요?”
놈이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그 태도에 정말 잠이 덜 깨서 헛소리를 들은 건가 싶기도 했다. 근데 확실히 이 새끼가 떠들고 있는 게 맞았는데…? 이상하네.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놈의 워크숍 날이 다가왔다. 강원도 평창으로 2박 3일. 예상보다 하루 줄긴 했어도 걱정이 많았다.
놈은 내가 며칠간 먹을 빵과 물을 미리 준비하고, 화장실에 혼자 갈 수 있게 구속구의 사슬을 더 길게 늘여 줬다. 사슬이 늘어난 대신 창가와 방문에도 자물쇠가 추가로 늘었다. 그리고 외롭지 않게 거실에 라디오랑 TV도 틀어 뒀고, 혹시 모른다며 대놓고 카메라를 3대나 더 설치했다.
그럼에도 불안한지 출발 시각을 코앞에 두고도 안절부절못하며 내 곁을 지켰다. 지켰다기보단… 떠나지 못하는 게 맞겠지.
이번만큼은 나도 놈이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기에, 큰소리를 내거나 욕을 하지도 않고 얌전히 놈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다른 건 다 상관없는데 이틀 이상이나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게 꽤나 큰 두려움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불공평한 관계였지만… 이건 진짜 불공평하잖아.
띠리리리리-
놈의 핸드폰이 울었다. 정말 싫은 듯 화면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내 얼굴만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놈의 옷을 놓고 싶지 않았다. 거슬릴 정도로 울어 대던 핸드폰이 2번, 3번, 그리고 4번…. 몇 분 간격으로 울어 대니 놈도 끝까지 그걸 무시하진 못하더라.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을 확인한 놈이 하아아… 하고 땅이 꺼질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가서… 열심히 해서 2박 3일을 1박 2일로 줄여 올게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푹 자고, 잘 먹고, 잘 놀고 있어요. 내가 계속 보고 있을 거니까…. 심심하거나 외로우면 내 생각하면서 자위해도 되고.”
놈은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으로 여러 가지 딜도를 침대 위로 올려 뒀다. 이건 평범한 젤이에요. 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고. 물론 이것들은 다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진짜 가기 싫다….”
늘어지는 놈의 말꼬리가 내 속까지 잡아끌었다. 하지만 3번이나 더 핸드폰이 울리고 출발 시간마저 지나자 놈도 어쩔 수 없는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다녀올게요. 사랑해요. 선유 씨.”
놈이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밖으로 나갔다. 방문이 철컥거리며 4개가 넘는 자물쇠가 잠겼고, 곧 놈의 인기척은 완전히 집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라디오와 TV가 쉼 없이 떠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혼자가 됐다는 걸 떨쳐낼 수 없었다.
요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몸을 씻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계속해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뭐든 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게 문제였다. 잠이라도 잘까? 하지만 눈을 뜬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기에 그조차 쉽지 않았다.
하염없이 물을 틀고, 끄고, 아무것도 없는 변기 물을 내리고, 욕조에 넘칠 정도로 물을 받았다 들어가지도 않고 마개를 빼 버리고. 한 번, 두 번. 화장실에 들어가는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빈 화장실을 울리는 물소리가 커져만 갔다.
콰르르르-. 욕조에 물이 완전히 빠지고 살짝 젖은 손을 털며 밖으로 나왔다. 침대 앞엔 빵과 음료들이 가지런히 나열돼 있었다. 3일 치 식량치고는 넉넉하게 많은 양이었다. 혹시 놈이 말만 3일이라고 하고 일주일 정도 있으려는 거 아닐까? 아님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건….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피어난 불안감은 놈의 대신 빈 집을 가득 메웠다.
“씨발, 씨발… 씨발!!”
불안함에 손을 주무르다 결국 참지 못하고 바닥에 있던 빵 봉투를 세게 걷어찼다. 퍽! 사방으로 날아간 빵들이 바닥을 굴렀다. 문밖에선 나와는 상관없이 하하호호거리는 행복한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대로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젠장. 어쩌면… 놈의 마음이 변한 건 아닐까?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질려 버려서 진짜 죽이려고? 사실 워크숍은 개 뻥이고 이대로 방치해서 죽게 하려는 거 아니야? 번거롭게 손도 더럽히지 않고 혼자 죽도록…. 나 정말 죽는 걸까. 혼자 외롭게…. 아무도 모르게….
놈과 지내다 보니 나까지 미친 것 같았다. 아니 미친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 놈이 없다고 이렇게까지 이상해지다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정말 이상했지만, 이미 눈물이 왈칵 터진 뒤였다.
아빠, 엄마, 형. 보고 싶어. 친구들도 회사 동료들도…. 나 너무 외롭고 무서워. 그 새끼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시발. 보고 싶어. 다들 너무 보고 싶은데, 다시 볼 수 있을까? 한 달이 지났는지, 반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는데…. 아직 나를 찾고 있긴 한 걸까? 그도 아니면 벌써 잊은 건…. 여기 이렇게 살아 있는데도 아무도 못 찾는데… 죽은 다음엔 찾아 줄 수 있을까?
점점 더 극단적으로 치닫는 사고에 서러움이 북받쳤다. 어쩌면 다들 날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포기해 버리면… 내가 여기 있다는 건 놈밖에 모르잖아. 내가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죽는지. 나를 알아주는 건 나를 이렇게 만든 그놈밖에 없는 거잖아. 그런데 그 새끼가 나를 이렇게 혼자 두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도합 6대의 카메라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놈은 수시로 저걸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보고 있을까? 최근까지 바쁘다고 원래 있던 카메라도 방치해 놨으면서… 정말 보고 있는 건 맞을까.
어디서 비롯됐는지 모를 불신이 격한 감정을 더 부추겼다. 소리 없이 몸을 떨며, 내던져진 딜도까지 무릎으로 기어갔다. 만약에 보고 있다면. 정말 보고 있다면….
아무 딜도를 하나 붙잡고 젤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젖은 손으로 뒤를 좀 만지다 천천히 손에 든 것으로 구멍을 비집었다. 흐읏. 엉덩이를 카메라 쪽으로 치켜들고 천천히, 천천히. 놈을 부추기듯 뒷구멍을 넓혔다.
아직 붓기가 덜 빠진 여린 살이 조금 쓰라렸다. 그래도 상관없이 한 손으로 둔부를 쥐어 잡고 깊은 곳까지 꾹… 딜도를 눌러 넣었다. 쪽팔림이나 쾌락을 좇는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놈에게 이걸 보여 주는 게 중요했지.
놈은 늘 뒤에 물고 있는 것을 스스로 뱉어 보라 시켰다. 놈이 원하는 대로 한계까지 밀어 넣었던 딜도를 손을 쓰지 않고 밀어냈다. 으응…. 천천히 밀려 올라간 딜도가 질척거리는 소릴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걸 다시 주워 뒤에 담고, 다시 밀어내고. 아주 느리게 그 행위를 반복하자 구멍이 좀 열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손가락으로 비어 버린 구멍 위를 매만졌다.
음란한 구멍이 잘 보이게 벌려 봐요. 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손가락 2개를 구멍에 끼고 카메라를 향해 안쪽을 벌렸다. 얼마 벌어지진 않았지만, 체감상으로는 딜도가 들어가고 남을 정도로 넓게 널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대로 다른 딜도로 구멍을 찔렀다.
허리가 아플 정도로 엉덩이를 치켜들고 계속 구멍 안에 있는 것을 움직였다. 어느새 완전히 풀린 뒷근육이 말랑해져 장난감을 거뜬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밖에선 가식적인 TV 소음만 들렸고, 난 혼자였다.
“흐읍….”
뒤에 꽂혀 있던 딜도를 집어 던지며 엎드려 누웠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 자꾸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
시발 뭐야. 날 이렇게 가둬 뒀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야. 왜 날 혼자 두는 건데. 워크숍이 뭐라고 시발. 나는 완전 고립시켜 놓고 본인은 사회생활을 즐기겠다는 거야? 아니면 정말 이대로 안 오려고 그러는 건가. 정신병자 새끼가… 씨발….
모르긴 몰라도 놈이 워크숍 장소에 도착해서 즐겁게 놀고 있을 시간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정말 워크숍에 갔는지 아님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지만…. 배가 고플 시간에도 식욕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엉망이 된 속 때문에 배가 아플 지경이었지.
지친 나를 보고 삿대질하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하지만 그것만큼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죽은 것과 다름없는, 아니 없던 존재와 다름없는 취급. 내가 여기 이렇게 살아 있는데, 아직 난 살아 있는데…. 그리고 그걸 알고 있는 건 놈이 유일했다.
복잡한 생각이 무너지며 그냥… 놈이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이젠 유일해져 버린 놈이, 어서 이 감옥으로 돌아와 내 불안감을 해소해 주길 간절하게 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줄 테니까 제발 날 이렇게 내버려 두지 마. 죽어 가게 두지 말라고….
젖어 가는 베개를 껴안고 몇 번이나 돌아오라고 주문을 외듯 말했다. 빌고, 빌고 또 빌고. 그렇게 간절하게 소원하고 있을 때, 대답이라도 하듯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띠띠띠띠띠- 쾅!
그리고 갑자기 문이 심하게 흔들리며, 자물쇠가 엉망으로 바닥에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놈이다…. 정말 놈이 돌아왔어.
“선유 씨!”
벌컥 문을 연 놈은 회사의 로고가 적힌 촌스러운 형광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머리와 얼굴이 땀으로 젖어 엉망인 몰골이었다.
“이 개새… 흡!”
그 꼴을 비웃을 틈도 없이 내게 달려든 놈이 미친 사람처럼 키스했다. 꽉 짜면 나올 정도로 흐르는 놈의 땀이 불쾌했지만, 놈을 밀어내기는커녕 나도 모르게 놈의 옷을 꽉 부여잡고 입을 열었다. 놈이 가지 않는다면 키스든 뭐든,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여태 더한 꼴도 했는걸.
제 몸을 가눌 수 없는 사람처럼 헐떡이며 놈은 아플 정도로 입안을 휘저었다. 숨이 막혀 고개를 살짝 돌렸지만,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며 놈을 내 얼굴을 붙잡았다. 뜨거운 손과 뜨거운 입김이 피부를 쓸어내린다.
“흐읏, 워크숍은… 안 갔….”
“갔어요. 갔어요. 갔었는데. 선유 씨가 자꾸 울고 혼자 귀여운 짓을 하니까… 내가 어떻게 거기 계속 있어요! 부장님도 과장님도 다 있었는데 뛰쳐나왔어요. 짐도 다 두고 왔는데… 선유 씨가 자꾸 서럽게 우니까, 그렇게 예쁘게 구니까…. 아, 몰라요. 몰라. 승진 안 해도 돼. 회사 그만두지 뭐. 우리 신혼이잖아. 우리 신혼인데 우리가 왜 3일이나 떨어져 있어야 해요.”
아, 이번엔 보고 있었구나. 땀에 젖은 옷을 벗어 던지는 놈을 보며 그 어떤 때보다 안도감을 느꼈다. 놈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내고 젖은 눈 위에 입을 맞췄다.
“나 부른 거 맞죠? 응? 나 보라고 이 구멍으로 귀여운 짓 한 거 맞죠?”
놈의 한 손이 엉덩이를 주무르다 이 구멍- 이라고 하며 안쪽을 파고들었다. 갈고리처럼 휜 손가락이 내벽을 당겨 입구를 벌렸다. 담겨 있던 젤이 찔꺽거리며 놈의 손가락과 작은 거품을 만들었다.
“흣, 마, 맞다고 하면… 안 갈 거야?”
“맞아요?”
“으응, 맞아….”
“나 보고 싶어서 뒷구멍을 쑤셨어요?”
놈이 다시 돌아간다고 할까 봐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려 했지만 그래도 쪽팔린 건 어쩔 수 없었다. 한참을 주저하다 터질 것 같은 얼굴을 끄덕이자 놈의 눈이 곱게 접히며 하핫, 하고 기쁜 듯 웃었다.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선유 씨.”
이것엔 역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놈은 해맑게 웃으며 침대 위로 나를 밀쳤다. 바지까지 완전히 벗어 던진 놈이 자연스럽게 내 다리를 붙잡아 올렸다. 활짝 벌린 다리 사이로 놈의 단단한 몸이 들어왔고 언제 발기했는지 모를 성기가 잔뜩 풀린 구멍 입구를 문질렀다.
“와… 완전히 열렸네. 맨날 이러면 좋겠다.”
“흐윽!”
퍽! 한번에 뿌리까지 박아 넣은 놈이 음모를 문지르며 감탄했다. 그리고 또다시 퍽! 아슬아슬할 정도로 빠져나간 살덩이가 아플 정도로 세게 안쪽을 때리며 밀려들어 왔다. 허억! 혼자 할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찔러 대는 체위에 반쯤 처져 있던 성기가 완전하게 몸을 세웠다.
부들부들 떨며 이불을 쥐어뜯자 놈이 내 손을 끌어 발기된 성기 위에 올려 뒀다. 반사적으로 손안에 가득 들어온 살덩이를 잡고 문지르자 놈이 기뻐하며 다시 허리를 튕겼다.
“좋아요? 선유 씨. 좋아요? 좋다고 해 줘요.”
“흣, 좋아, 좋아… 앗! 좋아.”
뭐가 좋다는지도 모르고 놈이 시키는 대로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국어책을 읽는 듯한 어조에 놈이 눈을 마주하며 속삭였다.
“어디가 좋은데요?”
“좋아, 좋아….”
“그러니까 어디가? 선유 씨가 혼자 주무르고 있는 자지가 좋은지, 아님 내가 쑤셔 주는 구멍이 좋은지, 어디가 좋은지 말해 줘야 알죠.”
“다, 다 좋아….”
“흐응, 다 좋구나.”
“허억!”
그럼 더 기분 좋게 해 줘야겠네. 놈은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체위를 바꿨다. 올라간 허리에 놈의 물건이 더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하앗! 숨을 급하게 삼키며 몸을 물리려 했지만, 오히려 놈은 내 손목을 움켜쥐고 자신 쪽으로 강하게 당겨 안았다. 놈이 체중에 힘까지 실어 더 세게 허리를 움직였다.
아앗! 아악! 마른 엉덩이가 놈의 골반과 부딪치며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 고통보다 더 곤란한 건 놈이 내 손을 겹쳐 쥐고 성기를 세게 흔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쾌락에 약한 곳들이 문질러지며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몸이 달아올랐다.
“자, 잠깐, 크, 그마… 앗!”
“오늘은 하루 종일 기분 좋게 해 줄게요.”
“하으! 가, 갈 것 같, 아윽!”
“알아요, 당신 자지가 내 손에 물을 질질 흘리고 있으니까.”
“그만!! 아으으!! 가고 있어! 아직 가고 있단 말이야! 잇, 으아!!”
사정을 시작함과 동시에 몸이 경직됐다. 하지만 놈은 내가 끝까지 사정할 틈을 주지 않고 내 몸을 희롱했다. 생전 처음 느끼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아니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익숙한 듯 낯선 기분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퍼지며 전신을 간지럽혔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계속해서 정액을 흘렸다. 스스로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당황스러워 허우적거리며 놈을 붙잡았다. 놈은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더 빠르게 손을 문질렀다. 퍽! 퍽! 퍽! 구멍 안으로 성기뿐 아니라 놈의 몸이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바로 두 번째 사정을 한 뒤에야 놈은 헐떡거리는 내게 조금 쉴 수 있는 시간을 줬다. 놈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가 없어 휘둘리기만 한 뒤라 팔다리가 무겁게 늘어졌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도중에도 놈은 내 가슴을 깨물며 입술을 지분거렸다.
“하아… 힘들어….”
“네? 벌써요?”
“읏….”
“그럼… 그만할까요?”
아차 싶었다. 내가 거부해서 놈이 다시 돌아가 버리면 어쩌지. 걱정과 똑같이 놈은 조금 시무룩해진 얼굴로 내 안에 담고 있던 성기를 반쯤 빼냈다.
“아, 아니. 그만하지 마. 계속해 줘.”
늘어져 있던 다리를 들어 놈의 허리를 감싸 당겼다. 읏! 놈의 물건이 다시 안쪽으로 깊게 들어왔다. 처음이었다. 내가 먼저 놈을 붙잡은 건. 당황한 나와 다르게 놈은 그저 기쁜 듯 참을 생각도 없이 웃었다.
그리고 놈은 다시 좋을 대로 허리를 찍어 대기 시작했다. 아읏! 하악! 과한 쾌락에 괴로운 신음을 내지르면서도 놈의 허리를 감싼 다리를 풀지 않았다. 이걸 푸는 순간 놈이 돌아가 버릴 것 같았으니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상적인 삶은 불가능하겠구나. 지금 내 모습은 누가 봐도 납치범에게 강간당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를 조르는 음란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놈이 유일했고, 놈을 계속 내 곁에 두기 위해선 놈이 원하는 대로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이젠 이게 나의 ‘정상’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