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46)

배가 아팠다. 정확하게는 뱃속이. 욱신거리기도 하고 가끔 따끔거리기도 하고.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냥 무시하기엔 깊은 곳을 희롱했던 에그 로터가 생생했다.

관계가 끝나자 놈은 줄줄 흐르는 눈물을 핥으며 “미안해요, 내가 좀 흥분해서….”라고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다. 좀? 그게 정말 조금이란 말이야? 속으로는 욕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놈을 노려봤다. 비정상적인 행위에 진이 다 빠져 버렸거든. 

별다른 반응이 없자 놈도 더는 변명할 생각은 없는지 젖은 수건으로 내 몸을 닦아 냈다. 다른 날보다 배는 사정해 버린 성기가 반쯤 죽은 듯 늘어져 있었다. 수건으로 조심스레 내 물건을 잡아든 놈이 배시시 웃는다.

“선유 씨가 이렇게 많이 싼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교수님이 왔다 가서 흥분했어요? 야해 빠져서는.”

끝을 가볍게 문지르던 수건이 아래로 내려가고, 젤과 정액이 줄줄 흐르는 구멍을 닦아 내던 놈이 엉덩이를 툭툭 치며 다리를 벌리라 채근했다. 으윽. 아파. 앓는 듯한 신음에 놈이 다독이듯 허벅지를 문질렀다.

소파 위까지 대충 정리한 놈이 입고 있던 셔츠를 벗겨 냈다. 다시 알몸으로 돌아가자 놈이 어느새 챙겨온 구속구를 꺼내 들었다. 아!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내가 풀려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도망쳤으면 나갈 수 있었으려나. 어차피 이젠 늦었지만.

“손 주세요.”

구속구를 든 놈이 손, 하고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개 훈련 시키냐? 의미 없다는 걸 알지만, 아주 약간의 반항이었다.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자 놈이 내밀고 있던 손을 내렸다. 화를 낼까? 하지만 놈은 한숨을 크게 내쉴 뿐이었다.

“한동안 안 그러더니 왜 이럴까?”

커튼 사이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소파 아래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보는 두 눈에 노을빛이 감돌았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뭉실 구름이 한가롭게 떠가고, 꺄하하-,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언뜻 평화롭게 보이는 공간에 나만이 다시 알몸으로 앉아 있었다. 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화났어요?”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놈은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답을 기대한 것 같지 않았으니까. 놈이 억지로 내 손을 마주 잡고 구속구의 버클을 당겼다. 다시 느껴지는 무게는 전보다 배로 묵직했다.

“고집쟁이…. 교수님이 우리 서로 의지하고 다독이라고 했는데 벌써 이러면 어떡해요.”

“의지는 개뿔, 이 정신병자 새끼가…!!”

아차. 욱하는 마음에 생각보다 먼저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뒤늦게 입을 다물고 굳은 얼굴로 바닥을 응시하는 놈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 생각 없이 정신병자라고 욕한 적은 많았지만,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의 의미는 달랐다. 놈은 교수가 정신병에 관한 언급을 할 때도 어떻게든 말을 돌렸었다. 그 태도는 분명, 내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아니, 난 다른 뜻으로 한 말은 아니고….”

지레 겁을 먹고 안절부절 변명을 늘어놨다. 충동적인 행동, 분노 장애. 교수와의 짧은 대화 중 어설프게나마 유추할 수 있는 놈의 증상이었다. 애써 감추던 걸 꼬집었으니 이번엔 정말 화를 낼 거야. 무서워…. 정상이 아닌 건 알았지만, 진짜 정신적으로 하자가 있는 새끼인 줄 어떻게 알았겠냐고!

“실…수야, 나 원래 욕 많이 하잖아…. 나, 나는… 그냥-.”

“풋.”

고개를 숙이고 있던 놈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어깨를 잘게 떨던 놈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미묘한 얼굴로 나를 올려봤다.

“귀여워라. 왜 쫄고 그래요.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괜찮아요. 신경 안 써요. 교수님이 원래 걱정도 많고 과장도 심한 편이라-, 많이 놀랐죠? 요즘 이 정도는 병이라고 하지도 않아요. 회사원들 다 가지고 있잖아요. 그리고….”

바닥에 있던 발목 구속구를 마저 채운 뒤 놈은 내 몸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윽. 놈에게 안겨 강제로 일어나자 다시 뱃속이 찌르르 울리며 약간의 통증이 밀려왔다. 배를 움켜쥐고 있으니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손이 내 허리를 쓸어내렸다.

“그게 우리 관계에 문제가 되나요?”

놈의 말이 맞았다.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었다. 놈이 진짜 정신병자인 걸 알기 전에도, 그리고 알고 난 지금도. 내가 놈의 울타리 안에 묶인 건 변하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놈과 나에게 변화를 준 건 놈의 병력이 아닌 놈의 회사였다. 얼마나 큰 프로젝트를 맡은 건지 하루가 다르게 놈의 퇴근이 늦어졌다. 

그렇게 며칠이나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결국 놈은 필사적으로 퇴근 시간을 지키는 대신 업무를 집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내가 밥을 먹는 동안에도 마주 앉아 노트북을 두드릴까.

놈의 일이 많은 게 변화의 요가 아니었다. 놈과 내가 3일에 한 번 하던 짓. 그게 없어져 버린 것이다. 출근할 때는 파이팅 넘치게 저녁을 다짐하며 정조대를 착용시켜 놓고, 정작 퇴근 후엔 골골대며 잠들기 바빴다.

언젠가 식탁에서 힐끔 본 서류는 놈이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했다. 내가 만지던 서류들과는, 아니 우리 회사랑은 스케일이 달라. 피곤해 보였지만 바쁘게 일상을 보내는 놈이 조금 부러웠다. 하마터면 도와주겠다는 말까지 나올 뻔했어.

“…어, 벌써 밥 다 먹었어요?”

“어.”

“미안해요, 웬만하면 밥 먹을 때는 일 안하고 싶은데….”

“됐고, 나 화장실.”

“아, 네.”

놈이 벌떡 일어나 화장실 앞까지 나를 데리고 갔다. 교수가 다녀간 이후에 볼일을 목적으로 한 경우엔 혼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드디어! 이번엔 정말 별 기대가 없었는데 놈이 혼자 가도 된다고 하자 얼마나 기뻤는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문을 열어 준 놈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들을 펄럭였다. 빠르게 속독하는 것 같았다. 잠깐도 시간이 부족한가.

“야.”

“네?”

“이거.”

내 손끝엔 퇴근 후에도 굳게 묶여 있는 정조대가 있었다. 놈은 그제야 아차 하는 얼굴로 서둘러 정조대의 잠금을 풀어냈다. 작은 딜도가 오랜 시간 머물던 곳을 빠져나가자 습관적으로 몸이 떨렸다. 

그걸 본 놈이 시선을 떼지 못하며 아랫입술을 핥았다. 당장이라도 덮칠 듯 보이는 시선…. 길어지는 금욕 기간에 놈의 눈은 전보다 훨씬 깊고 탁했다. 놈을 피해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이라 더 거칠게 덮치면 어떻게 해….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 몸을 겹칠 일은 없었다. 정작 이날 저녁도 눕자마자 놈이 코를 도로롱 골며 잠들었기 때문이다. 또 하루 몸이 더럽혀지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렇게 열흘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시 돌아온 3일 차의 날. 놈은 희망 가득한 얼굴로 정조대를 착용시켰다. 오늘은 꼭! 벌써 몇 번이나 듣는 말뿐인 다짐에 콧방귀가 나올 뿐이었다. 안쪽을 밀고 들어오는 딜도에 놈의 어깨를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내 사타구니를 바라보고 있는 놈의 콧바람이 연한 피부 위로 강하게 와 닿았다.

정조대와 구속구의 확인, 문과 창문의 잠금, 내가 마실 물을 준비하고 주변 정리까지. 그 뒤에야 제 옷을 챙겨 입고 출근 준비를 마친 놈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내 앞에 섰다.

놈이 떠나면 또 혼자가 될 집…. 여전히 떨쳐지지 않는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놈을 붙잡았다. 안 가면 안 되냐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은 놈이 눈꼬리를 축 늘어트리고 침대로 올라와 나를 꽉 끌어안았다.

정조대 위로 엉덩이를 토닥인 놈이 슬며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왔다. 놈의 혀가 포개진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치아를 핥았다. 놈은 전처럼 도망가는 혀를 미친개처럼 쫓진 않았다. 그저 부드럽게 입안을 맴돌며 부족한 사욕을 채웠을 뿐이다. 나 역시 애써 놈을 떨쳐 내려 노력하지 않게 됐다. 이럴 땐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더 빨리 끝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찍 돌아올게요. 약속해요.”

역겨운 키스를 마치자 놈의 입가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침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위를 몇 번이고 핥으며 놈이 출근했다.

조용해진 집안. 그대로 침대에 앉아 덜덜덜 다리를 떨었다. 젠장…. 몇 번이고 욕을 중얼거리며 결국 이불 안으로 몸을 던졌다. 오늘따라 바깥이 너무 조용했다. 목까지 완전히 덮고 나서야 카메라를 힐끔거리며 티 나지 않게 사타구니를 꾹 눌렀다. 묵직한 눌림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혼자가 무섭고, 적막이 무섭고. 평소라면 불안한 마음이 전부라 놈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별짓을 다 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왜 이런…. 겁을 먹어서인지, 당황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점점 빠르게 뛰는 심장과 다르게 머리는 인정할 수 없다며 상황을 부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끝에 힘이 강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꾹- 꾹-. 어느새 이불 밖으로 티가 날 정도로 움직임이 커졌다. 젠장, 겨우 키스 따위에 왜…! 아주 작은 흥분으로 시작된 자극은 시간이 갈수록 그 존재감을 키워갔다. 부족해, 부족해, 부족하다고! 슬쩍 정조대 안으로 손을 넣어 보려 했지만, 꽉 다물린 가죽은 쉽게 틈을 주지 않았다. 이 좆같은 정조대!!

몸이 달아오를수록 마음만 급해졌다. 점차 단단해지기 시작한 성기가 정조대에 꽉 눌리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손바닥 안으로 느껴지는데, 분명 내 다리 사이에 붙어 있는 게 맞는데 어째서 만질 수 없는 거야!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었지만, 애를 쓸수록 부족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손이 뒤를 향했다. 앞을 만지지 않고 느끼는 법을 나는 알고 있었다. 주먹을 쥔 손이 슬며시 엉덩이 사이를 꾹 눌렀다. 정확히 딜도가 고정된 곳을 꾹 누르자, 미묘하게 전립선이 눌리며 흐윽, 하고 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빙글, 몸을 돌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렸다. 시트 위로 허리를 비비며 주먹으론 여전히 뒤를 꾹꾹 눌렀다. 놈이 지켜보고 있을 카메라에 대해선 잊은 지 오래였다. 요즘은 너무 바쁜 나머지 안 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길 바랐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한 방울 준다고 갈증이 해소되진 않는다. 그게 뒤를 누름으로써 한 모금으로 변했다 하더라도 난 여전히 목이 말랐다. 젠장, 말도 안 되지만 처음으로 정조대에 연결된 딜도가 ‘작다’고 생각했다. 허리를 더 세게 흔들며 구멍을 활짝 열었다. 제발 더 깊게….

놈이 내게 손을 대지 않는다는 건 기뻐서 춤을 춰도 모자랄 희소식이었다. 난 납치감금을 당한 피해자였고, 애초에 단 한 번도 놈과 몸을 섞길 원한 적이 없었으니까. 이대로 일이 계속 바빠서 나에 대한 억지 사랑도 사라져 버리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

하지만 놈이 손을 대지 않은 근 2주. 놈이 내게 소홀해져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과 상반되는 상황이 벌어져 버렸다. 어이없게도… 발정해 버린 것이다.

“미쳤지, 이선유….”

침대에 누워 힘없이 머리를 내리쳤다. 잊으려고 해도 자꾸만 떠오르는 수치스러운 기억에 계속 머리를 쥐어뜯었다. 열린 방문으로 바쁘게 아침을 준비하는 놈이 보였다.

평소라면 들썩거리는 이불을 보고 꼬투리를 잡았을 텐데,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은 걸 보니 분명했다. 놈은 카메라를 보지 않고 있었다. 그날만 안 본 건지, 아니면 바쁜 나머지 볼 틈도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그 흉한 모습을 놈이 보지 못했다는 건 안도할 만한 일이었다.

남은 건 자괴감. 겨우 키스 한 번에 그렇게 흥분해서는…. 이래서야 내가 놈과 다를 게 뭐지? 절대로 다음은 없어. 이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어난 사고야! 그냥 남자의 생리적인… 아오 시발! 내가 왜 변명을 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한 번의 충동으로 인한 여파는 컸다. 이러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말릴수록 욕구는 커져만 갔고, 굳이 놈이 아니어도 어설프게나마 자극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가끔 정신을 차리면 나도 모르게 다리 사이를 만지고 있을 때가 잦아졌다. 반쯤 서 버린 성기를 방치하며 진정하려고 애쓸수록… 인내심은 줄어만 갔다.

너무 갇혀 있던 나머지 나도 놈처럼 미쳐 가고 있는 게 분명 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놈에게 흥분에서, 그것도 뒤로 자위를 하다니. 자극이 크지 않아 사정하지 못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걸 들켰다고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해! 진심으로 놈이 바빠서 다행이야.

그리고 이 감옥 같은 생활에서 몇 가지 변화가 더 생겼다. 하루 두 끼, 꼬박꼬박 제 손으로 만들어 정액을 뿌려야 만족했던 놈이 그중 한 끼는 배달음식으로 교체했다는 점과, 쉼 없이 울리는 놈의 전화 때문에 가뜩이나 짧았던 대화가 더 짧아졌다는 거다.

같은 방 안에 있어도 얼굴을 마주 볼 틈도 없이 노트북만 두드리니 말 다 했지. 가끔 놈은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내가 같이 있다는 걸 잊은 듯 보일 때도 있었다.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선 내 발치에 앉아 

“원래 이렇게 안 바쁜데 1년에 한 번 이래요. 그래도 이거 해야 돈 벌어서 우리 선유 씨 먹여 살리니까…. 딱 2주만 봐주세요.”

라며 한껏 우울한 얼굴을 했다.

게다가 이제 숨길 생각이 없는 건지, 어느 샌가 식탁 구석의 놈의 약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전문 용어로 이것저것 적힌 약통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 가끔 위치가 바뀌는 거로 봐서는 놈이 약을 꾸준히 먹고 있는 것 같긴 했다.

“자, 선유 씨가 좋아하는 페퍼로니 피자에요! 치즈도 잔뜩 추가했어요. 맛있겠죠?”

의자 등받이에 구속구를 묶은 놈이 피자 상자를 완전히 펼쳐 식탁 위에 올려 뒀다. 영양식을 먹인다며 매번 한정식이나 쓸데없이 비싼 음식을 시키기에 “이왕 배달시키는 거 평범한 패스트푸드를 먹고 싶어.”라고 항의했더니 3일을 내내 고민하던 놈이 결국 “며칠에 한 번이라면….” 하고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4일 전엔 치킨, 그리고 오늘은 페퍼로니 피자. 오랜만에 코를 찌르는 익숙한 향에 놈이 앞 접시를 놓기도 전 손이 먼저 나갔다. 한 조각을 들어 올리자 치즈가 쭈욱 늘어지며 얼른 자신을 맛보라 재촉했다.

일단 놈의 정액을 먹지 않아도 돼서 좋았지만, 못 먹던 음식을 먹게 되는 소소한 즐거움이란. 이 단조로운 일상에 적절한 자극이었다. 원래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매일 집 밥만 먹으니 왠지 더 그리운 느낌이라고 할까. 피자는 더럽게 맛있었다. 짭짤한 토마토 소스와 도톰하게 올라간 노릇노릇한 치즈. 거기에 파마산과 핫소스를 듬뿍 뿌려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한 조각을 순식간에 해치우자 플라스틱 잔을 가져온 놈이 콜라를 따르며 천천히 먹으라며 작게 웃었다.

마주 앉은 놈은 피자 대신 마우스를 쥐고, 금세 노트북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타닥 타닥, 놈의 타자 소리가 빨라지는 걸 들으며 아예 2조각을 돌돌 말아 한 손에 쥐었다. 가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놈이 싱긋 웃으며 맛있어요? 하고 물었다. 그때마다 대답 없이 시선을 돌리면 놈은 조금 속상한 얼굴로 다시 노트북을 들여다봤다. 아무리 맛있어도 순순히 그렇다고 대답할 리가 없잖아.

어느새 피자는 반이나 사라져 버렸다. 평소에 이렇게 많이 먹는 편이 아닌데, 오랜만이라 해도 좀 과식을 했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슬쩍 배 위를 손등으로 문지르자 윗배가 볼록하다. 손에 쥔 것까지만 먹고 그만 먹어야지. 입안에 있는 치즈를 부지런히 씹어 꿀꺽 삼켰다. 

페퍼로니가 대롱대롱 매달린 나머지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문뜩 놈과 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뭘 봐.”

괜히 민망한 마음에 인상을 쓰고 놈을 노려봤다.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통 남자가 이 정도 먹는 게 이상한 건 아닌데… 아 시발, 왜 갑자기 눈치를 주고 지랄이야.

“잘 먹으니 예뻐서요.”

“씨발 안 먹… 앗.”

눈웃음을 치는 놈이 기분 나빠 신경질적으로 들고 있던 피자를 집어 던졌다. 순간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던 페퍼로니 한 조각이 가슴 위를, 그리고 허벅지를 스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름진 양념 덩어리가 꾸덕하게 몸 위를 흘렀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양념을 훔쳐 입으로 가져갔다. 쪽- 하고 손가락을 빤 뒤에 앞을 보니, 놈이 멍청한 얼굴로 내 입술을 바라보고 있다. 언뜻 놈의 눈이 음흉하게 깊어졌다.

“선…유 씨도 참. 흘리면 어떡해요.”

겨우 시선을 돌린 놈이 어색하게 웃으며 주방에서 키친타월을 뜯어 왔다. 나에게 몇 장을 쥐여 주고, 자신은 식탁 밑으로 기어가 바닥에 널브러진 페퍼로니와 양념을 닦아 냈다. 놈이 치우기 쉽게 의자를 슬쩍 뒤로 밀자, 식탁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놈이 한눈에 보였다.

페퍼로니가 구른 흔적을 따라 꼼꼼하게 바닥을 훔쳐 내던 놈의 손이 어느새 내 발 옆까지 와 있었다. 갑자기 굳어 버린 놈의 움직임에 덩달아 나까지 긴장을 해 버렸다. 천천히 고개를 든 놈의 호흡이 가빴다.

“선유 씨….”

들고 있던 휴지를 꽉 구기며 놈의 입꼬리가 배시시 올라갔다. 덥석, 내 무릎을 붙잡은 놈이 피자 양념이 묻은 허벅지를 바라보며 입술을 할짝였다.

“여기도 닦아야겠네요? 내가 닦아 줄게요.”

그리고 고개를 숙여 할짝, 제 혀로 양념을 핥아 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왠지 모를 기대감…이 들었다. 놈이 다리 사이로 더 깊게 파고들자 못 이기는 척 다리를 벌렸다.

“여기도 묻었어요. 선유 씨 자지에도….”

“거, 거기는….”

“진짜에요. 선유 씨 안 보이는데 묻어 있어요.”

놈의 고개가 돌아가며 혀가 살기둥을 감싸 올렸다. 억지라는 건 알지만 놈을 말리는 시늉밖에 할 수 없었다. 이미 주어진 자극에 제대로 반항할 수가 없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윽.

“다, 흡, 다 닦았으면 그만….”

“아니여, 아직… 우음, 여기 아직… 하아, 선유 씨 자지 냄새, 하… 너무 오랜만이야…. 맛있어요.….”

어느새 완전히 흥분해 버려서는 단단해진 내 성기로 제 얼굴을 문지르며 헐떡였다. 과할 정도로 킁킁거리는 소리를 내며 냄새를 맡기도 하고, 구석구석을 거칠게 핥으며 연신 맛있다고 중얼거렸다. 

슬쩍 손가락에 침을 바른 놈이 음낭 아래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싫어, 그만…. 입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놈이 당기는 대로 몸을 기대앉아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꽉 다물린 주름을 비집고 놈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하으읏. 빡빡한 구멍에 뒤를 안 넓혀 놓은 날인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 욱신거리는데…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잔뜩 부어오른 귀두가 놈의 입천장에 비벼지는 것과 동시에 구멍을 파고들던 놈의 손가락이 안쪽으로 굽었다. 하앗, 의자와 연결된 구속구가 절그럭거리며 요동쳤다. 

놈이 고개를 흔들며 볼을 조였다. 목구멍을 문지르는 통에 괴로울 법도 한데, 놈은 일말의 신음도 없이 내 물건에 열중했다. 식탁을 붙잡고 있던 손이 절로 놈의 머리 위를 향했다. 머리카락을 세게 움켜쥐자 놈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아으, 핫! 으, 흐읍!”

좀 더, 조금만 더 하면, 으읏, 쌀 것 같…!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갑자기 놈의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처음엔 놈도 못 들은 척 계속 내 것을 빠는 데 열중했지만, 몇 번이고 다시 울리는 벨소리에 결국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힐끗 올려봤다. 입안 가득 살덩이를 문 채 고민하는 얼굴로 눈이 굴러갔다.

“전화… 왔는데….”

거슬릴 정도로 울어 대는 전화에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절정을 코앞에 두고 있다 멈추는 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서 끝까지 가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핸드폰을 꺼 버리든 용건을 처리하든 뭐든 해 버려!

“받아도… 돼요?”

“왜 나한테 물어봐….”

“그… 미안해요. 금방 끊을게요.”

안 받을 수는 없었는지 잔뜩 부풀어 오른 앞섬을 붙잡고 엉거주춤 식탁 반대편으로 기어 나갔다. 놈의 입에서 작게 “씨발….”이라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다.

핸드폰을 확인한 놈의 미간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은 놈의 입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네, 무슨 일이에요…. 그 정도도 혼자 처리 못 해요? 하…, 아니, 당장 내일 쓸 걸 아직도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소리를 지르던 놈이 내 쪽을 힐끔거리며 급하게 목소리를 줄였다. 몸을 살짝 반대로 돌린 놈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통화를 마저 이어 갔다.

“…됐습니다. 작년 거 가지고 있는 게 있으니 급한 대로 그거랑 합쳐서 통계 내세요. 그럼 내가 보내 주지 누가 보내 줍니까? 10분 안에 메일로 보낼 테니 확인하세요.”

평소와는 다른 말투와 표정이었다. 저게 바깥에서의 놈…. 낯선 모습에 신기함 반, 이 좆같은 상황에 좆같음 반, 좆같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에게 또 좆같음 반. 도합이 이미 한계치를 넘어 버렸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의자를 당겨 앉았다.

“어, 선유 씨… 그러니까.”

“10분 안에 보낸다며. 급한 거 같은데 일단 그거부터 처리하지?”

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던 내 아랫도리도 급한 건 매한가지었다. 하지만 싸기 직전이었으니까 다시 와서 빨아! 라고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리 오랜만이라고는 해도, 발정 나서 못 견디는 사람처럼 굴고 싶진 않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내 뚱한 태도에 이미 글렀다는 걸 눈치챈 놈이 연신 미안해요, 미안해요, 사과를 하며 노트북에 손을 올렸다. 급하긴 한지 입술을 잘근잘근 물며 연신 뭔가를 클릭해 대는 놈을 보고 있으니 짜증이 솟구쳤다. 완전히 식어 버린 피자가 볼품없이 늘어져 있다.

“보냈으니까 확인하세요. 통계만 내서 내일… 뭐라구요? 그걸 왜 이제 말해요. 지금 나랑 장난합니까? 당연히 그런 건 미리…! 도대체 일주일 동안 제대로 한 게 뭡니까? 됐어요. 그건 내가 할 테니까 방금 보낸 거나 정리해서 제출하세요!”

놈도 만만치 않게 짜증이 났는지 아까보다 훨씬 거친 말투로 상대방을 나무랐다. 작게 훌쩍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뜩 우리 사무실에 신입 3명이 떠올랐다. 지금은 잘 하고 있으려나.

“선유 씨….”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내려 둔 놈이 한껏 불쌍한 얼굴로 양손을 모았다.

“진짜 미안해요…, 딱 10분… 아니 20분만 더 기다려 주면 안 될까요? 네? 이거만 금방 하고… 하던 거 계속해요. 제발…. 진짜 금방 끝낼 테니까! 딱 20분만! 응…? 알겠죠?!”

“내가 널 왜 기다려. 네가 일찍 오든 늦게 오든, 아무 상관없거든?”

성기를 빳빳하게 세우고 할 말은 아니지만, 손바닥으로 사타구니를 가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붉어진 귀까지 어쩔 수는 없었었다.

바쁘신 분이 친히 방까지 데려다주셨다. 침대와 구속구를 연결한 뒤, 서둘러 노트북 앞으로 돌아간 놈이 평소보다 고개를 더 숙이고 화면에 집중했다. 저러다 안으로 들어가겠네. 전보다 길어진 사슬을 끌고 화장실로 들어왔다. 대충 손과 양념이 묻은 곳을 닦아 내고 슬쩍 밖을 보자 여전히 놈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침대에 앉아 슬쩍 손가락으로 성기를 찔렀다. 반쯤 힘이 빠진 그게 그렇게 볼품없어 보일 수 없더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까 되게 좋았는데…. 아, 물론 놈이 아니라 오랜만에 느꼈던 쾌감이 좋았다는 거지. 최근에 한 번도 싼 적 없으니까…. 남자는 정기적으로 정액을 빼줘야 건강한 생활이 가능하단 말이야. 다른 때는 너무 빼긴 했지만, 요즘은 과할 정도로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 그냥 내가 혼자 뺄까? 정조대도 없고, 지금이라면 화장실에서 혼자 씻고 나와도 모를 텐데. 한 발 정도는 뺄 수 있을 것 같… 아냐. 그래도 기다리는 게….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어쨌든 놈이… 아아악!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침대에 고개를 처박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머리에 피가 싹 마르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발버둥 치다 베개에 머리를 콱 박으며 누웠다. 젠장.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그냥 아무 생각도, 아무 행동도 하지 마!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들치고 그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웅크리고 누우니 방 밖에서 놈의 타자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20분 후에 놈이 오면 뭐, 어쩔 수 없지. 놈이 그렇게 원하는데 좀 어울려 주는 수밖에. 내가 원한 게 아니라 놈이 하도 사정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근데 20분이 원래 이렇게 길었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타협하며 놈의 타자 소리가 멈추길 기다렸다. 하지만 20분을 훌쩍 넘기고 30분, 그리고 1시간이 지나도록 놈은 방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기분도 좀 진정됐고, 배도 부르고, 이불 속은 따뜻하고…. 기다리다 지친 내 눈꺼풀이 놈의 타자를 자장가 삼아 점점 무거워 지고 있었다.

좋아… 거기, 더 세게… 앗! 더, 더!

놈의 성기가 내가 원하는 곳을 찾아 빠르게 찔러 댔다. 평소와 다르게 적극적인 나, 그리고 그와 반대로 마냥 순종적인 놈. 분위기도 기분도 나쁘지 않아 기꺼이 놈의 목에 팔을 두르자 놈이 가볍게 입을 겹쳤다.

하, 하으윽! 쌀 것 같… 읏! 내 자지, 봐 줘, 자지… 아앙! 싼다!

온몸을 비틀며 여자 같은 신음을 내고 놈에게 내 것을 봐 달라 애원했다. 스스로 아래를 붙잡고 미친 듯이 흔들자 놈의 입꼬리가 높게 올라갔다. 절정에 닿아 숨을 멈추고 허리를 움찔거리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허억!!”

가위에 눌린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현실같이 생생하고 좆같은 꿈에 몸서리쳤다. 그리고 왠지 축축한 이불을 아무 생각 없이 들췄다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시발.”

사춘기 남학생도 아니고. 이게 무슨…. 참담한 이불 속 사정에 아까보다 심장이 더 거칠게 뛰고 있었다. 제발 이것도 꿈이라고 해 줘.

놈에게만은 들키기 싫어 어떻게든 혼자서 처리를 해 보려 했다. 목마르다고 물을 받아서 침대에 엎어 버릴까, 아니면 혼자 씻겠다고 하고 젖은 몸으로 침구를 뭉개 볼까. 하지만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 늦잠을 잤다며 급하게 나를 일으킨 놈 때문에 수습할 틈도 없이 이 치욕스러운 꼴을 보이고 말았다.

“어… 이거 설마….”

“닥쳐! 닥치라고! 아니야!”

“와아, 진짜? 자위…를 한 것 같지는 않고. 설마 몽정?”

꿈에서 나랑 섹스했어요? 좋았어요? 급하다고 했던 놈치고는 밝은 얼굴로 질문을 쏟아 냈다. 그러다 내가 이 꼴이 된 원인을 기억해 냈는지 곧 어두운 얼굴로 변했지만. 고개를 푹 숙인 놈이 또다시 양손을 싹싹 비볐다.

“어, 어제는 미안해요…. 일이 계속 늘어나서 그만….”

달아오르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귀를 부여잡고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쭈뼛거리며 움직인 놈이 가볍게 나를 안아 들어 욕실로 옮겼다. 놈은 몇 번이고 미안하다 사과를 했지만 쪽팔림에 놈을 쳐다보지도, 어떤 반응을 할 수도 없었다.

침구를 갈기 위해 놈이 나간 틈에 일부러 물을 제일 세게, 그리고 시끄럽게 틀었다. 놈을 볼 때마다 꿈에서 봤던 모습들이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시발 내가 어쩌다가…. 놈에게 뒤를 처음 내줬을 때와는 다른 상실감이었다.

으아아, 늦었다! 요란한 소리로 제 방에서 성인도구가 잔뜩 든 상자를 들고 돌아온 놈이 정조대를 꺼내 들었다. 익숙하게 안쪽에 딜도를 고정시키고, 젤을 깊게 바르고. 평소보다 조급해 보이는 손길을 제외하고는 매번 돌아오는 3일 아침과 다를 게 없었다. 물론 오늘은 놈의 눈길이 노골적으로 내 성기에 가 있었지만.

“우리 오늘은 꼭 섹스해요.”

뒤로 딜도를 밀어 넣으며 놈이 내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밀려들어 오는 작은 딜도가 오늘따라 선명했다. 흠칫거리며 앞으로 몸을 숙이자 놈이 허리를 붙잡으며 자세를 바로 세웠다.

“되게 민감하네요. 아무리 바빠도 내가 너무하긴 했죠…. 미안해요. 그러니까 오늘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선유 씨가 좋아하는 자지를 먹여 줄게요. 약속할 수 있어요!”

놈이 파이팅 자세를 하며 몇 번이나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다시 다짐했다. 하지만 먼저 몸이 달아 몽정까지 해 버린 뒤라 이번엔 빈정거릴 수조차 없었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애꿎은 화장실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여전히 귓불이 홧홧 불타고 있었다.

놈이 정조대에 작은 자물쇠를 걸고 잠그려는 순간, 밖에서 핸드폰이 또 울어 대기 시작했다. 놈이 급하게 뛰어나가 짧은 전화를 마치고 돌아왔다. 아무래도 지각 때문에 걸려온 전화인 것 같았다. 

아까보다 더 조급해 보이는 놈이 허둥지둥 바닥에 늘어져 있던 젤과 성인용품들을 상자에 쓸어 담았다. 구속구가 침대에 묶인 걸 확인하고 아무렇게나 던져놨던 정장 재킷을 껴입는 사이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예, 금방 도착합니다. 먼저 시작하고 계세요. 네.”

아직 집이면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네. 하지만 뻔뻔했던 말투에 비해 마음은 조급했는지 벌떡 일어난 놈이 허둥지둥 주변을 정리했다. 거의 뛰다시피 왔다 갔다 하던 놈이 침대 밑에 있던 성인용품 상자를 덥석 집어 들고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가뜩이나 바쁜데 이것까지 굳이 치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놈이 원래 있던 곳보다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 상자를 내려 두고는 급하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다녀올게요!”

마지막까지 요란하게 콜택시를 부르며 뛰어나간 놈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집이 조용해졌다. 습관적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확실히 놈이 정신이 없긴 한 모양이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정조대를 잠그지도 않고 나갔을까…. 자물쇠가 걸려 있던 고리를 슬쩍 당기자 별다른 어려움도 없이 버클 부분이 벌어졌다.

어차피 오늘도 이걸 하고 있는 의미가 없을 텐데, 그냥 벗어 버리는 게 낫겠지. 작은 자물쇠를 상자 안으로 던져 버린 뒤, 무릎을 세우고 앉아 엉덩이를 조이는 물건을 벗어 냈다. 아직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구멍이 빡빡하게 물고 있던 장난감을 뱉어 냈다. 

그 순간, 가죽 안에 눌려 있던 성기가 찌르르- 하는 느낌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흐응… 윽.”

아무리 잠결이라고 하지만 정액을 싸지른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민감해진 몸이 오랜만에 받은 자극을 견디는 게 더 신기한 일이지. 빠져나온 딜도는 멀어지지 못하고 여전히 구멍을 찌르듯 닿아 있었다.

이걸 뺐다고 놈이 돌아와서 화를 내면 어쩌지? 오늘도 정신없이 지나갈 게 뻔하지만… 그래도 멋대로 빼냈다고 놈이 더 심한 벌을 주면 어떡해. 또 옷장에 가두거나…, 욕조에 머리를 누르거나, 목을 조르거나…. 그래. 분명 화를 낼 거야. 그러니까 벗지 말자.

순식간에 자신을 설득하며 앞으로 할 행동을 정당화했다. 한 손으로 딜도가 달린 가죽 부분을 천천히 눌렀다. 여전히 뻑뻑한 구멍이 안쪽에 남아 있던 젤을 뱉어 내며 딜도를 삼켰다. 얕은 곳에 있는 곳이 미묘하게 눌리자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조금만 더 세게 누르면… 아니 잠깐. 나 지금 뭐 하는 거야?

“미쳤어! 이선유!”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 아니, 뒤로 자위하는 본능 따위가 나한테 있을 리가 없잖아! 이건 그냥 잠깐 이성이 나간 것뿐이야! 시발, 나 진짜 미쳤나? 왜 이래! 이 짓을 하겠다고 순식간에 상황을 합리화시켰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성적으로 자극을 받은 지 오래됐다 해도 이건 아니지! 너 지금 정신병자한테 납치당해 있어! 그런데 뭐가 괜찮다고 생각한 거야!

더러운 걸 만지듯 얼굴을 구기고 정조대를 거칠게 벗어 냈다. 딜도가 빠르게 빠져나오며 구멍 입구에 쓰라린 통증을 동반했다. 있는 힘껏 벽을 향에 손에 쥔 것을 집어 던지자 퍽! 상자 옆으로 정조대가 볼품없이 떨어졌다. 그걸 따라가던 시선이 자연스럽게 상자 안쪽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장난감으로 향했다.

“씨발.”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차라리 자자. 한숨 자고 일어나면 이 한심한 번뇌가 사라져 있겠지. 하지만 조용한 이 방에서, 게다가 아래를 잔뜩 세운 채로 쉽게 잠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적막을 깰 겸, 그리고 아래를 진정시킬 겸.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음 음-, Nothing at all….”

대학 동방에서 구시정이 늘 틀어 놓는 바람에 강제로 외워 버리게 된 노래였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부분부터 흥얼거리며 천천히 가사를 중얼거렸다. 밝고 경쾌한 음이 내 귀에만 들려왔다.

“Tomorrow… I wake up do some p90x…. Meet a really nice girl… have some really nice sex…, 섹…스. 아 시발. 진짜!”

가사 내용을 모르고 듣던 노래는 아니었다. 심지어 이 다음 가사는 여자가 좋다고 소리를 지르는 내용. 왜 하필 떠오른 노래가 이 노래였을까. 정말 10대 청소년으로 퇴행을 한 게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이 나이 먹고 겨우 저런 단어 하나에 이렇게 흥분할 리가 없잖아!

자신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30년간 단련한 인내심과 절제는 다 어디로 간 걸까. 한번 떠오른 음과 가사는 떠나질 않고 머리를 맴돌았고, 애써 그냥 가사일 뿐이라고 생각할수록 그 단어와 관련된 모든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 속엔 당연하단 듯 놈도 끼어 있었다.

놈과의 섹스. 괴로웠던 첫 경험. 어느새 아득한 마지막 관계. 놈의 자위. 나의 자위. 그리고 놈이 뒤로 밀어 넣던 수많은 장난감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까 언뜻 봤던 상자가 떠올랐다. 

“젠장. 이선유. 이상한 생각하지 마. 이건 진짜 아니야. 아니라고.”

꽉 닫힌 두 눈을 더 세게 감았다. 한 점의 빛도 들어오지 않아 깜깜했지만, 머릿속에선 선명하게 그 물건들이 보였다. 버튼이 달린 것. 긴 선이 늘어진 에그. 올록볼록 사이즈가 다른 구슬들…. 내 뒤로 들어왔던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그 느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진정하려고 애를 쓸수록 괴로울 정도로 뒤가 저려 왔다. 앞도 아니고 뒤가!

“하, 하하… 시발, 나 진짜 미쳤나 봐….”

카메라가 24시간 나를 찍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비록 요즘 놈이 바빠서 보고 있지 않더라도.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걸 정말 행동으로 옮기면 후회할 거야. 하지만 더 참는 건….

어느새 누워 있던 몸은 침대 끝에 앉아 있었고, 감았던 눈은 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이성이 반쯤 날아갔다고 해서 카메라에 대해 완전히 의식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놈이 본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는 거니까. 덮고 있던 이불을 양손에 들고 먼지를 털듯 바닥에서 몇 번 펄럭였다. 그리고 실수인 척 상자를 건드려 쏟아 버리기. 온갖 색의 고무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굴렀다. 이게 역겨운 짓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입에서 계속 욕이 나오겠지.

그중에서 어떤 걸 고를 만한 용기는 없었다. 마치 놈이 옆에 있는 것처럼 온 신경이 예민했으니까. 대충 보이는 것들을 주워 담아 상자를 정리했고, 그중 가까이 있던 젤과 딜도를 하나씩 이불 아래로 숨겼다. 그리고 그 이불을 한껏 품에 안고 침대 위로 돌아왔다.

“아이, 씨발, 왜 하필….”

카메라를 등지고 앉아 전리품을 확인하자 절로 욕이 나왔다. 하필이면 주워 온 것이 놈이 가진 것 중에서도 유독 징그럽게 생긴 것이라니. 살구색에 심하게 튀어나와 있는 핏줄들. 그 아래 달린 과장되게 야구공만 한 음낭 2개. 그나마 전체적인 사이즈가 부담될 정도로 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다른 걸로 바꿀까 싶었지만, 굳이 2번이나 실수를 가장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마음도 급했고…. 10cm가 조금 넘는 고무 덩어리를 손에 쥐고 살짝 흔들자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손에 쥔 게 뭔지 아는지, 뒷구멍이 재촉하듯 자꾸만 움찔거렸다. 미쳤다. 진짜.

이불 속에 몸을 숨겼다. 뒤가 덜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넣던 사이즈니까 괜찮지 않을까? 슬쩍 손가락을 엉덩이 사이로 가져가 주름을 비집었다. 안쪽에 남아 있던 소량의 젤 덕에 무리 없이 손가락 2개가 미끄러져 들어갔다. 

카메라 쪽을 힐끔 바라봤다. 알아. 나도 미친 거 아니까. 제발 놈이 보고 있지 않길…. 몇 번을 움직이다 손가락을 3개까지 늘렸다. 흥분한 탓에 절로 뒤가 풀렸는지 조금 빡빡하다 느낄 뿐, 아프거나 무리가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결론을 내자 가뜩이나 급한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이불 속에 있던 젤의 뚜껑을 열었다. 킁킁. 무색무취의 아무런 라벨도 없는 주둥이가 긴 튜브. 늘 과일 향이 지독할 정도로 강한 젤을 쓰는 놈이었다. 이건 처음 보는 건데…. 무향이라 일부러 안 쓰는 건가? 

손바닥에 주륵- 부어 흉한 모양의 딜도 위로 꼼꼼하게 젤을 펴 발랐다. 불거진 핏줄에 피부가 스칠 때마다 기대가 섞여 온몸이 근질거렸다. 강한 점성에 손을 움직일 때마다 찔꺽거리는 야한 소리가 났다.

혹시나 상처가 날까 무서워 침대 위로 엎드린 뒤, 놈이 늘 그러듯 젤의 입구를 아예 구멍에 꽂아 눌렀다. 꿀럭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는 액체가 느껴졌다. 앗, 너무 많이 나왔다. 뒤늦게 병을 세우자 이미 1/3이나 안으로 흘러 들어간 뒤였다. 이거 분명 티 나겠지…. 나중에 물이라도 섞어 둘까….

남은 젤을 베개 밑으로 숨기고 그대로 침대에 밀착해 엎드렸다. 젖은 딜도를 손에 쥐고 뒤로 손을 뻗었다. 징그러울 정도로 큰 음낭 2개가 딱 손에 쥐기 좋은 모양새였다. 다른 손으로 둔부를 잡아 벌려 삽입을 도왔다.

“흐…윽.”

두툼한 끝부분이 힘을 주기 무섭게 안을 파고들었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조급함에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세게 내리눌렀다. 아악…. 약간의 아픔을 동반하며 딜도의 반이 엉덩이 사이로 박혔다. 잠시 움직임을 멈춰야 했다. 하지만 그 동시에 찌릿한 쾌감이 있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몸 아래 눌린 성기를 슬쩍 침구에 비볐다.

굳이 앞만 만져서 갈 수 있는 걸, 위험을 감수하고 딜도까지 손에 넣었다. 눈앞에 있으니 쓰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앞만 흔드는 것보다 이게 더….

허리를 잘게 흔들며 손에 쥔 것을 더 세게 내리눌렀다. 안쪽이 깊어짐과 동시에 꾹 눌린 전립선에 몸이 절로 경직되며 숨을 삼켰다. 어느새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카메라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정확히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면 안 될 짓을 한다는 배덕감과 죄책감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며 오히려 더 진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질척거리는 다른 손으로 앞을 틀어쥐었다. 이불을 들썩이는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있었지만 자각하지 못하며 점점 빠르게 허리를 흔들었다. 움직이기 편하게 자세를 바꾸고 뒤와 앞을 움직이는 속도를 맞췄다. 찔꺽, 찔꺽. 구멍에서 나는 소리가 잦아지며 어느새 통통한 고무 음낭이 엉덩이를 때리고 있었고, 한껏 단단해진 성기는 시트 위를 적시고 있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제대로 된 쾌감인지. 정확히 셀 순 없었지만, 최소 2주 이상은 됐을걸. 처음으로 자위하는 어린아이처럼 스스로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아주 약간의 자극에도 허리가 떨렸고, 단순하게 앞뒤로 움직이기만 할 뿐임에도 엄청난 쾌감이 전신을 휘감아 쳤다. 제대로 풀리지 않은 안쪽이 아픔과 쾌락을 동반하며 익숙하지 않은 감각을 흔들고 있었다. 그저 앞을 만지는 것과는 전혀 달라…!

“학, 하으아, 후욱!”

거친 숨이 끝을 모르고 오르는 열을 거들었다. 격렬한 움직임에 상체가 이불 밖으로 드러났지만 인제 와서 움직이는 걸 멈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조금만, 더, 으으읏. 발끝으로 시트를 밀어냄과 동시에 고여 있던 정액이 시트 위로 터져 나왔다.

“하아아…!”

뒷생각 없이 달려 얻어 낸 해방이었다. 놈 없이 해결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할지, 스스로 뒤를 뚫었다는 것을 슬퍼해야 할지. 어느 쪽에 마음을 둬야 하는지 갈등할 틈도 없이 여운을 느끼며 다시 앞을 흔들었다. 복잡한 건 나중에 생각해도 괜찮잖아. 좋아, 좋아. 너무 좋아! 그러니까 한 번만 더….

겨우 한 번으로 해소될 갈증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눅눅해진 시트에 직접 허리를 문지르며 딜도를 안쪽 깊숙이 밀어 넣었다. 어느새 완전히 풀려 버린 내벽이 약간의 조임도 없이 쉽게 장난감을 삼켰다. 

튀어나온 부분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다 집어 넣을 기세로 빠르고 강하게 움직였다. 쉼 없이 마찰되는 여린 속살이 자아가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며, 딜도의 움직임에 맞춰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아앗!… 훅, 하아….”

2번째 사정에 약간의 탈력을 느꼈다. 여전히 딜도를 꽂은 상태로 젖은 시트 위로 엎드려 숨을 골랐다. 역시 나이 30에 연속 사정은 무리였나…. 

근데 침구가 다 젖어서 어쩌지. 이 정도면 놈이 눈치 못 채는 게 더 이상한데. 아슬아슬하게 엉덩이를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더듬자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급한 불부터 끄긴 했는데… 뒤처리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제야 걱정이 됐다. 놈이 마시라고 두고 간 물을 부어 버릴까. 어쩌지.

심각하게 걱정을 하는 와중에도 구멍 안쪽이 화끈거렸다. 구멍만 그러는 게 아니라 성기도 그러는 것 같은데. 중간부터 이 열을 느끼고 있긴 했다. 아무래도 무리해서 급하게 움직인 탓이 큰 것 같았다. 혹시 상처라도 난 걸까. 조금 더 커진 걱정에 그대로 손을 뒤로 뻗어 안쪽에 박힌 장난감을 빼냈다.

“흐앗!”

딜도가 빠지며 안쪽을 긁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졌다. 이게 무슨…! 아픈 게 아니었다. 아프기보단 오히려… 시원함? 화끈거리는 내벽에 마찰을 주자 알 수 없는 시원함과 만족에 절로 신음이 흘렀다. 

놀라서 입을 틀어막고 움직임을 멈추자, 또다시 화끈거리는 열이 구멍 전체로 퍼져 나갔다. 뭐야 이거, 이상해. 너무 뜨겁잖아. 아니 뜨거운 것보다는 간지러워…. 오,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그게 아님 놈한테 너무 길들어서 몸이 이상해져 버린 걸까? 어느 쪽이든 반길 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일단 점점 높아지는 열을 해소하는 게 급했다.

성기를 긁듯이 잡아 흔들며 엉덩이 사이에 박힌 물건을 쑤셔댔다. 딜도를 강하게 내리눌렀다가 더 빠르게 빼내는 순간만큼은 달아오른 열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심해지는 감각이… 더 깊은 곳을 향해 퍼지고 있었다.

“크흑… 이… 아으!! 뭐야 이거! 가, 간지러워,”

지나치게 높아진 열이 어느새 참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간지러움으로 변해 버렸다. 괴로운 신음을 터트리며 연신 흔들고 있는 물건들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구멍도, 성기도, 이제 하다못해 허벅지와 음낭, 그리고 둔부까지도. 전부 뜨겁고 간지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싫어, 몸이 왜 이러는…!! 아악! 젠장 어떻게…! 흐윽!”

이상해, 이상해! 이상하잖아! 아무리 오랜만이지만 이런 적 없었… 흣, 없었는데! 못 참겠어, 안 돼, 너무 간지러워! 간지러워! 제발 멈춰!!

설상가상. 더 깊은 곳엔 딜도도 닿지 않아 스스로 어떻게 할 수조차 없었다. 아무리 세게 누르고 힘을 줘도 10cm짜리 딜도는 그 앞을 애달프게 긁어 댈 뿐이었다. 전혀 사정의 느낌이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기의 끝에선 묽은 액이 주르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왠지 요도 속도 간지러운 것만 같았다.

이제 카메라 따윈 완전히 의식에서 날아가 버렸다. 이불을 들치고 벌떡 일어나 침대 위에 쭈그려 앉았다. 딜도를 침대 끝에 고정하고 몸을 들썩이며 엉덩이를 시트 위에 비볐다. 딜도가 끝까지 박힐 때마다 모형 음낭이 내 음낭을 쳐올렸고, 양손으로 성기를 틀어쥐고 날 괴롭히는 이 감각을 날려 보려 몸부림을 쳤다.

너무 격렬하게 움직인 탓에 얼마 가지 않아 전신의 근육이 고통을 호소하며 멈추라 소리쳤다. 지치고 힘들고….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움직이는 걸 멈추면 더 큰 간지러움이 몰려왔으니까.

띠띠띠띠띠띠-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현관의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전신에 피가 싹 마르는 것만 같았다. 이 순간엔 이 빌어먹을 간지러움조차 잠시 잊었을 정도다. 벌써 놈의 퇴근 시간이 된 걸까? 아직 해가 떠 있는데? 이 상황을 어쩌면 좋지? 하얗게 빈 머릿속엔 당황과 해소되고 싶다는 욕구만이 분탕질 치고 있을 뿐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아침에 너무 신경을 못 써 준 것 같아서, 반차 썼어요!”

밝고 활기찬 놈의 목소리가 점점 방과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그대로 굳어 어쩌지도 못하고 문이 열리는 걸 바라만 봤다. 내 꼴을 본 놈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그리고 입꼬리가 찢어지게 올라가며 가방을 툭, 떨어트렸다.

“…혼자 뒷구멍 쑤시고 있었어요?”

놈이 쪼르르 달려와 내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뚫어져라, 구멍과 딜도의 접합부를 바라보던 놈이 샐쭉하게 웃으며 무릎을 잡아 벌렸다. 흣!

“정조대에 달린 조그만 딜도로는 만족을 못했군요? 어떻게 풀었는지는 둘째 치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해 줬을 텐데! 그걸 못 참고 함부로 구멍을 쑤시면 어떻게 해요. 찢어졌으면 어쩌려고.”

걱정하는 말투였지만 얼굴은 그렇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놈이 내 음낭을 주무르며 더 자세히 안쪽을 들여다봤다. 그 사소한 자극에 잠시 잊고 있던 열이 화르륵 타올랐다.

“흐윽!”

“겨우 잡아 들기만 했는데 그 야해 빠진 신음은 뭐예요? 진짜 제대로 발정 났네. 우리 음란한 선유 씨.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어요?”

“아흐, 아, 안 돼….”

“뭐가 안 돼요?”

바깥에 있다 돌아온 놈의 찬 손가락이 조금이나마 열을 해소해 주고 있었다. 그 손이 슬쩍 멀어지려는 낌새에 나도 모르게 놈의 손을 덥석 붙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애… 제발.”

“뭐가요, 말을 해 줘야 알죠.”

“뜨겁… 흑, 간지러워 제발, 계속 만져 줘.”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제 나 혼자는 어쩔 수 없는 수준이었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억울하고 쪽팔려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엉엉 울며 만져 달라 애원하는 것과 동시에 그 열을 참지 못하고 멈춰 있던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잠시 몸을 쉬는 동안 열이 오른 구멍 안쪽이 미칠 것만 같았다.

“흐앗! 으으윽! 간지러, 간지러!! 간지러워! 모, 몸이 이상해서, 흐엉…. 구멍이….”

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발작하듯 움직이는 나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후다닥 뛰어가 상자를 뒤지고 어어! 어!! 하고 소리를 치며 내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베개 아래 숨겨 뒀던 투명한 튜브를 꺼내 든 놈이 내 앞에서 그걸 기울이며 물었다.

“설마 이거 썼어요?”

“흑….”

“중요한 날을 위해 사 둔 건데…. 물론 아깝다는 게 아니에요! 어차피 선유 씨가 쓸 거였으니까…! 이게 약이 좀 섞여 있는 거라 이렇게 많이 쓰면 안 되는데…. 괜찮아요?”

“흑, 시발 그런 걸 왜… 흐읏, 너무… 힘들어, 제발 도와줘….”

지친 얼굴로 우는 나를 바라보던 놈이 고개를 숙여 눈물을 핥았다. 아예 눈 위를 혀로 지분거리며 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헐거운 구멍에서 딜도가 쑥 빠져나오며 안쪽에 고여 있던 젤이 투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마나 많이 넣어 놨으면 구멍으로 질질 싸네. 욕심쟁이.”

“흐으. 아, 흑, 다시…, 흐앗, 간지러워! 제발 안에… 다시…!”

“꼭 골라도 진짜 자지처럼 생긴 걸 골랐네요. 근데 겨우 저만한 거로 되겠어요?”

놈의 말에 나도 모르게 기대하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더 큰 거… 큰 걸로 긁어 줄 거야? 온몸을 배배 꼬는 나를 세워 두고 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상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널브러진 것보다 조금 더 큰 것을 손에 쥔 놈이 그 뒤로 딸기향의 젤을 뿌렸다.

“하, 완전히 흐물흐물하게 풀어졌네….”

차가운 손가락이 구멍 안쪽을 쑤시자 반사적으로 근육을 꽉 조였다. 하지만 너무 풀린 탓에 조임이 미미했는지 놈이 헐렁거린다며 내 엉덩이 위를 가볍게 내리쳤다. 하악! 간지러웠던 둔부가 그 자극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였다. 한 손으론 침대를 짚고, 한 손으론 성기를 잡고 미친 듯이 흔드는 와중에 놈의 손에 들린 딜도가 구멍을 긁으며 들어왔다.

“하으으윽!”

“좋아요?”

“더, 더 세게!!”

“선유 씨, 오늘 너무 적극적이야.”

놈이 해맑게 웃으며 네기 원하는 대로 딜도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뿌직- 하는 소리과 함께 안쪽에 있던 공기과 젤 덩어리가 구멍의 틈을 타고 빠져나왔다. 쪽팔림에 얼굴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안쪽이 시원하게 긁히는 느낌이 더 반가웠다.

그렇게 몇 번이나 놈은 내가 시키는 대로 빠르게 딜도를 흔들어 댔다. 분명 아까 그것보다 크고 길었다. 하지만 그래도 안쪽 깊은 곳의 가려움을 해소하기엔 미묘하게 부족했다.

“흐앙, 안 돼 너무…, 흑, 가려워, 가려워!!”

“어디가 가려운데요?”

“안쪽이, 안쪽이…!”

“구멍이요? 그래서 쑤셔 주고 있잖아.”

“더…깊이… 흑! 더 큰 거, 더 긴 거! 제발 깊이 긁어 줘!! 뭐든 좋으니까! 제발!!”

할 수만 있다면 뱃속에 손을 넣고 벅벅 긁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미 성기는 쥐어짜듯 움켜쥐고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더 길고 큰 것. 닥치는 대로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몸을 일으켜 대체할 만한 물건을 미친 듯이 물색했다. 그러다 문뜩 눈에 띈 것이 부풀어 오른 놈의 사타구니였다. 놈의 성기라면 분명 이 딜도보다 길고 크니까….

“흐윽…!”

정신없이 놈의 허리에 매달려 벨트를 풀었다. 조금 당황한 듯 보이던 놈은 내가 하는 대로 몸을 내주며 흥미롭다는 듯 웃고 있었다. 바지를 내리고 속옷을 벗겨 내자 그 속에 숨어 있던, 오늘따라 우람해 보이는 성기가 툭 튀어나왔다.

“어, 얼른.”

“네?”

“하자.”

“뭐라구요?”

“섹스하자. 제발. 응? 박아 줘.”

“푸핫, 선유 씨. 지금 무슨 소리 하는지 알고 있어요?”

평소라면 달려들어도 모자랄 놈이 후회하지 않겠냐며 다시 생각해 보라 권했다. 뭔 개소리야 지금 급해 죽겠구만!!

“알아, 알아! 안다고! 그러니까 구멍 쑤셔 줘!! 흐응, 너무… 간지러워서, 흐윽!”

“그래서 쑤셔 주고 있었잖아요.”

“씨바알! 저건 너무 작아! 네 자지로 쑤셔 줘! 긁어 줘! 너무 가렵단 말이야!”

일부러 평소에 안 쓰는 단어만 골라 쓰며 놈이 부추기고 있는데, 놈은 일부러 그러는 듯 느리게 움직였다. 조급함에 손끝으로 성기를 가볍게 긁었다.

“그럼… 보여 줘요. 내가 박을 구멍.”

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침대에 고개를 처박고 엎드려 엉덩이를 놈의 쪽으로 내밀었다. 양손으로 살을 잡아 벌리자 빠끔하게 구멍이 열리며 공기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화끈거리는 피부에 참지 못하고 손가락이 조금씩 안쪽으로 움직였다. 양손 검지와 중지로 구멍을 쑤시며, 달아오른 입구를 긁듯이 문질렀다.

“흐윽. 아으으으 가려워! 가려워!! 제발 쑤셔 줘, 못 참아!!”

“발정 난 구멍에 자지 주세요- 해 봐요.”

“바, 발정 난 구멍에 자지 주세요! 제발, 자지 주세요! 빨리!!”

평소라면 어떻게든 얼버무리려 난리였을 텐데, 몸도 마음도 급하니 생각할 틈도 없이 몇 번이나 놈이 시키는 말을 반복했다. 푸핫! 하고 만족스럽게 웃던 놈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그 모습을 몇 번이나 녹화했다.

“자지, 빨리이- 자지!!”

나는 급해 죽겠는데 자꾸만 여유를 부리는 놈이 미워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저 새끼가 죽으면 누가 이걸 해소해 주지? 내 정액으로 젖은 시트 위를 얼굴로 문지르며 놈이 제 성기를 박을 때까지 애원했다.

드디어 놈의 성기가 구멍에 닿았다. 한 손으로 골반을 붙잡은 놈이 퍽! 하고 세게 안쪽을 내리쳤다. 하악! 시원하게 마찰되는 내벽에 내가 딜도를 움직이는 것과는 다른 쾌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전혀 닿지 않던 안쪽까지 찔러 대는 놈의 성기에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이 들었다.

“어때요? 맛있어요?”

“응, 응! 맛있… 하윽! 맛있어! 그러니까…!”

더, 더! 더 세게! 그렇게 소리치며 음낭을 세게 당기고 성기를 꼬집듯 흔들었다. 이쪽도 너무 간지러웠다. 퍽!퍽!퍽! 놈의 숨소리가 거칠어질수록 안쪽이 세게 긁히고 있었다.

“아앗! 좋아! 좋아! 더! 흐으응!!”

문뜩 몽정 속 모습이 지금과 비슷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예지몽이었을지도.

“선유 씨!!”

“흐앗!”

아주 잠시 딴생각을 하는 틈에 흥분한 놈이 나를 뒤집어 눕혔다. 침대에 등을 대고 눕자 놈이 내 다리를 붙잡아 넓게 벌렸다. 그 틈으로 몸을 밀어 넣은 놈이 연신 허리를 흔들어 대며 진하게 키스했다. 입안을 거칠게 분탕질하는 놈의 혀에 숨이 막혀 괴로움을 호소하기 직전, 놈의 입술이 귀로 옮겨갔다. 축축한 혀가 귓속을 파고들자 찔꺽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간질였다.

언뜻 놈에 손에 쥐어진 핸드폰이 보였다. 아직도 찍고 있는 거야? 무의식중에도 핸드폰을 향해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놈이 잡혀 줄 리가 없었다. 아 시발, 이제 몰라.

“예뻐 죽을 거 같아. 어쩌지. 어쩌지. 맨날 이러면 좋겠어. 선유 씨, 사랑해요!”

“앗! 아악! 흐으읏! 더 세게! 더! 흐아!”

“나 쌀 거 같아요, 허억, 허억! 선유 씨 구멍 안에 좆물 먹여 줄까요?”

“아흐윽! 더 안쪽에, 긁어 줘, 그… 하으!”

“선유 씨, 나 사랑해요? 응? 나 사랑해요?”

“씨바, 시끄럽… 하악!! 좋아! 거기 좋아!!”

분위기에, 상황에 취해 완전히 흥분해 버린 놈이 핸드폰을 내 얼굴로 들이밀며 퍽! 퍽! 허리를 박아 댔다. 하지만 놈도 슬슬 힘이 드는 건지 속도가 떨어져 가고 있었다.

“당신 구멍에 싸도 돼요? 내 자지 넣고 계속 흔들어도 돼요? 응?”

“아악! 흑! 다, 닥치고 더 세게…!”

“흐읏! 싸, 쌌어요, 큽, 싸고 있는데, 또 쌀 것 같, 하아!! 선유 씨 구멍 너무 좋아!! 나 또 싸도 돼요? 우리 결혼했으니까… 계속 싸도 되죠? 선유 씬 내 신부니까!”

“하으! 간지럽… 흑, 미치겠어!”

“임신해 주지 않을래요? 선유 씨 닮은 귀여운 딸로! 하아! 임신할 때까지 싸도 돼요?!”

“씨발!! 임신할게! 임신할 테니까! 얼마든지 싸도 되니까!! 제발 세게 박아 줘!!”

“헉! 고마워요! 사랑해요! 선유 씨!”

뭐라 했는지도 모르고 지른 말에 놈이 미친 듯 콧김을 내뿜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배 위는 이미 물 같은 정액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5시간. 간지러움이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약해진 건 놈의 시계로 5시간이 지난 뒤였다. 침대는 둘의 땀과 정액으로 범벅이 돼서 어디든 찝찝하고 눅눅했다. 하지만 둘 다 온몸이 녹초가 돼서 어쩌지도 못하고 그 위에 늘어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을 그렇게 엎어져 있다 비틀비틀 일어나자 놈이 나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어디 가요?”

“…화장실.”

하도 소리를 지른 탓에 목소리가 듣기 싫을 정도로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아, 네. 다녀오세요.”

놈도 어지간히 힘든지, 말리지도 따라오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누워 내가 움직이는 걸 바라볼 뿐이었다. 퉁퉁 부어 완전히 열린 구멍에선 아까부터 뭔지 모를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힘없이 화장실까지 늘어난 사슬을 끌고 움직였다.

화장실에 들어와 변기 뚜껑을 열고 털썩 주저앉았다. 쪼르륵…. 구멍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변기 안으로 고였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 냄새나는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고개를 숙였다. 아직도 욱신거리는 엉덩이에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씨바알….”

박아 달라고? 자지가 맛있다고? 임신하겠다고?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야….

-다음 권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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