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46)

눈을 뜨니 코앞에 어린애처럼 순진한 얼굴로 잠든 놈이 있었다. 가만히 누워 그 면상을 바라보다, 순간 열이 받아 베개를 들어 힘껏 내리쳤다. 아악!! 자다가 봉변을 당한 놈이 얼굴을 붙잡고 벌떡 일어났다.

“으우욱, 선유 씨이…. 다정하게 깨워 주면 안 돼요?”

일어났으면 꺼지란 뜻으로 중지를 빳빳하게 들어 보였다. 반쯤 눈을 감은 놈이 “아침부터 부끄럽게 왜 그래요….” 하고 살포시 웃었다. 물어보나 마나 또 대가리 안에선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어휴 저 변태 새끼. 덥수룩한 까치집을 매단 놈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방에 혼자 있으면 자꾸만 애먼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둡고 조용한 밤엔 더. 놈이 자다 죽으면 어쩌지, 나갔다 사고를 당한다면. 결국, 내가 혼자가 된다면? 

놈의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내가 이대로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웠지.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 발작하듯 비명을 지르는 일이 잦아지자 놈은 아예 내 침대에서 함께 자기 시작했다. 자기 전에 몸을 더듬거나 같은 침대를 쓰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차라리 놈이 눈앞에 있는 게 조금이나마 안심이 됐다.

주방에 다녀온 놈이 찬물이 담긴 플라스틱 잔을 내밀었다. 아침이라 목이 건조했는데. 컵을 받아들자 차가운 냉기가 기분 좋게 퍼져 왔다. 꿀꺽, 꿀꺽. 목이 풀릴 만큼 두어 모금만 마신 뒤 다시 놈에게 컵을 내밀자, 놈이 잔 안에 남아 있던 물을 단숨에 제 입으로 털어 버렸다. 

빈 잔을 흔들던 놈이 살짝 웃음기를 띄고 물었다.

“화장실은 안 가도 되겠어요?”

“…씨발! 꺼져!”

퍽! 얇은 솜 베개가 내기엔 묵직한 파열음이 울렸다. 놈이 다시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았다. 아파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좆같은 화장실 내기는 사기였다. 분명 ‘싸게’ 하면 화장실은 혼자 가게 해 준다 했으면서!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쪽팔리고 열 받고…. 아악, 저 씨발 새끼!

“화장실 혼자 가게 해 준다며!”

“그거야, 선유 씨가 날 싸게 만들었을 때죠.”

“그랬잖아!”

“에이-, 엄밀히 따지면 내가 다 했지.”

“엄밀히? 지랄하네. 처음부터 내가 오, 올라타서…, 씨발 하여튼 난 네가 건 조건대로 했어!”

“시간도 초과했고, 선유 씨가 끝까지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무효.”

“개소리하지 마. 내가 뭐 때문에 그런 짓까지 했는데…! 내가 뭐 큰 거 바라냐?! 나가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화장실 좀 혼자 가게 해 달라는데! 그냥, 그냥 최소한의 인간 대접 좀 해 달라고!”

놈의 가슴을 밀치며 울분을 토하자 놈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내 손을 붙잡았다.

“나만큼 선유 씨한테 잘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너만큼 좆같이 대하는 사람도 없어!”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에 그 모든 게 헛짓이었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머리가 핑 돌았다. 억울하고 화가 나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주먹을 꽉 쥐고 휘둘렀다. 놈은 여전히 최소한의 방어만 할 뿐, 나를 말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방전된 체력에 눈물로 남은 기력을 쥐어짜니 금방 뻗어 버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반항심에 2일 동안 화장실을 참다가 놈이 또 관장을 준비하는 걸 알고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게 몇 번째야. 난 내 의사 표현도 못 해? 허락 없이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할 수 없는 암울한 상황에 원망만 더 커질 뿐이었다. 그나마 최소한의 반항으로 대화를 거부했지만, 원래 내 말은 듣지 않고 혼자 주절거리는 놈이라 별로 신경 쓰지 않더라. 결국은 또 내가 먼저 포기했다.

아… 그날 생각하니까 또 화나네…. 짜증스레 한숨을 내쉬자, 베개에 얻어맞아 새빨개진 코를 문지르며 놈이 화장실로 도망갔다. 솨아-. 곧 문 너머로 반갑지 않은 물소리가 들려왔다. 욕조에 물을 받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 그제 목욕했는데?

다른 때보다 빠른 시기에 부정적인 의문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어차피 전부 놈이 원하는 대로 될 텐데 말해 봤자 나만 피곤하지. 그것보다는 목욕하며 닥칠 당장의 성희롱이 더 싫었다.

체온보다 조금 더 데워진 물에 가슴까지 푹 담근 채 욕조 밖으로 고개를 젖혔다. 놈이 거품을 낸 샴푸로 젖은 머리를 마사지하며 문질렀다. 야무진 손가락이 두피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거품이 풍성해질수록 진한 샴푸의 향이 올라왔다. 혹시나 눈에 들어갈까, 놈은 중간중간 수건으로 내 이마를 닦는 걸 잊지 않았다.

빗질하듯 섬세하게 머리카락을 가르고 꾹꾹 두피를 누르는 손길이 전문가의 수준이었다.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전문가. 저번에 놈이 말하길, 사실 부끄러워서 말 안 하려 그랬는데, 날 위해 미용실에 가서 샴푸 하는 것만 한 달을 배워 왔다고 했다.

회사 다니면서 납치도 준비하고, 스토킹도 하고, 샴푸도 배우러 다니고. 짧은 기간 동안 참 바쁘게도 살았다. 미친 새끼…. 그 힘을 다른 데 좀 쓰지.

“조금 이따가 집에 손님이 올 거예요.”

이 집에 손님이 온다고? 그래서 목욕하는 거야?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자, 놈이 다시 힘을 주며 머리를 뒤로 눌렀다. 눈에 거품 들어가면 매우니까 제대로 누워요.

놈과 내가 떳떳한 관계가 아니었기에 이 집에 찾아온 사람이라곤 이웃 사람과 방음 공사 때문에 집에 왔던 작업자들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난 늘 숨어 있어야 했고.

“어, 얼마나 있다가 가는데? 왜 오는 건데? 나 야, 얌전히 있을 테니까, 그… 같이….”

움직이지도 못하게 꽁꽁 묶여서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그게 방이든 욕조든…. 만약에 또 그때처럼….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으며 주절주절 놈에게 매달렸다. 촤아- 욕조의 물이 조금 넘치며 놈의 옷을 적셨지만, 놈은 날 뿌리치지 않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놈의 눈이 곱게 휘었다.

“걱정 마요. 같이 있을 거예요. 왜냐면.”

놈이 결국 내 이마 위로 흐르는 거품을 수건으로 닦아 내며 말을 이었다.

“선유 씨를 보러 오는 사람이거든요.”

그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나를 보러 오는 사람이라니. 누굴까. 왜 오는 걸까. 이상하게 심장 언저리가 불쾌했다. 

다시 욕조에 앉아 샴푸를 헹궈 내고 트리트먼트에 몸까지 씻어 냈지만, 여전히 놈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누군데? 응? 누가 오는데? 몇 번이나 물어도 놈은 대답 없이 웃을 뿐이었다.

“안 그럴 거 알지만, 혹시 모르니까,”

욕조 밖으로 나와 로션을 발라 주던 놈이 갑자기 분홍색의 작은 공을 꺼내 들었다. 탁구공만 한 살짝 큰 사이즈에 긴 선이 달려 있고, 그 끝엔 작은 리모컨이 달려 있었다. 의문스럽게 물건을 바라보자 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에그 로터예요. 써 본 적 없어요?”

누구한테 써. 나한테? 아님, 애인한테? 에그 로터인 걸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잖아!

“손님 계시는 동안은 구속구는 풀어 둘 거예요. 물론 당신을 믿고 있긴 하지만… 일종의 보험이라고 할까요? 다른 모양의 구속구라고 보면 되겠네요.”

짜잔- 놈은 자신이 준비한 깜짝 선물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구형의 물건을 입에 물고 혀를 진득하게 굴리며 사탕을 먹듯 할짝거렸다. 믿기는 개뿔. 너나 나나 서로 못 믿는 건 매한가지잖아. 

도대체 누가 오는 거야. 구속구를 풀어 준다는 것에 놀랐지만, 용도가 어떻게 되는지 뻔한 물건을 또 다른 구속구라 하니 마냥 편하게 있을 수가 없어졌다. 게다가 실물을 보는 게 처음이라 확신은 못 하겠지만, 일반적인 것보다 로터 부분이 좀 큰 것 같았다. 설마 이것도 특수제작한 건 아니겠지.

“엎드려요.”

“…….”

“뭐 해요? 못 하겠으면 내가 도와줄까요?”

마지못해 욕조를 짚고 엎드리자 놈이 젤을 쭉- 짜서 구멍과 로터에서 질척거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문질렀다. 흠칫. 과하게 많은 젤이 허벅지 위로 뚝뚝 떨어졌다. 

놈이 엄지로 구멍 옆을 꾹 누르며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그리고 한껏 미끈거리는 공으로 구멍을 가볍게 문지르다- 힘을 주며 그대로 눌러 왔다.

“자, 잠깐, 이거 너무 커.”

풀리지 않은 근육이 강제로 벌어지는 느낌에 다급하게 놈을 불렀다. 이거 큰 거 맞지?! 바로 들어갈 리가 없잖아! 잔뜩 겁을 먹고 놈을 바라봤지만, 놈은 태연하게 내 자세를 바로 세울 뿐이었다.

“이것보다 더한 것도 잘만 삼켰잖아요.”

“그건…!”

“힘 빼요.”

“아-!”

로터가 주름을 비집고 밀려들어 왔다. 뿌득. 욕조를 붙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아, 안 돼. 아플 것 같…. 두꺼운 부분이 괄약근을 지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뒤가 찢어질 것 같아 우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힘껏 조이던 부분을 지나자 로터가 순식간에 안쪽으로 쏙- 하고 빨려 들어갔다. 뭐, 뭐야. 들어갔어? 엉덩이 사이로 늘어진 선과 리모컨이 흔들흔들 움직였다. 

“역시, 꼬리 달린 것도 사야겠어요. 고양이가 좋아요? 개가 좋아요? 난 고양이가 더 좋은데.”

까만색으로 사 올게요. 일방적인 대화를 하며 놈은 손가락으로 공을 안쪽까지 밀어 넣었다. 이물감에 구멍을 꽉 조이자 놈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뽑아낸다. 

“뭐든 넣으면 좋다고 물어 대니.”

“시발, 뭐… 앗!”

반박하려 했지만, 놈이 늘어져 있던 선을 잡아당기는 통에 다시 욕조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딱딱한 게 안쪽을 구르는 느낌에 몸을 살짝 떨자 놈이 다시 손가락으로 구멍을 찔렀다. 처음보다 더 깊게 밀어 넣는 손가락. 자연히 로터도 더 깊게 밀려들어 갔다. 흐읍. 생각보다 안쪽까지 들어오는 느낌에 얼굴을 잔뜩 구겼다.

“어, 선유 씨 좀 선 거 아니에요?”

놈은 반쯤 일어난 내 성기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웃었다. 그게 꼭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베이지색 면바지와 짙은 색의 긴 팔 티셔츠. 놈과 약간의 체격 차가 난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팔다리 길이가 다를 줄은 몰랐다. 옷이 벙벙하게 크진 않았지만, 바지도 소매도 모조리 길어서 몇 번이나 접고 나서야 겨우 손과 발이 보일 정도였다. 어찌 됐건 오랜만에 걸치는 옷가지의 무게가 반갑기만 했다. 묘하게 몸을 감싸는 게… 따뜻한 느낌이야.

놈은 진짜로 구속구를 풀어냈다. 내가 눈을 뜨고 꿈을 꾸나? 가벼워진 손목과 발목,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살을 스치는 옷감을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문질렀다. 비록 노팬티에 뒤에 이상한 걸 넣고 있긴 했지만…. 

놈이 내 허벅지에 타이트한 밴드로 에그 로터의 리모컨을 고정했다. 옷이 큰 탓에 옷 안에 뭐가 있는지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고, 덩달아 긴 소매는 손목과 발목에 있는 구속구의 자국을 적절하게 가리기까지 했다.

“아, 예쁘다. 개인적으로는 벗고 있는 게 더 좋긴 하지만, 잘 어울리네요.”

놈은 어색하게 서 있는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박수를 쳤다. 느낌이 이상했다. 놈의 앞에서 옷을 입고, 구속구까지 풀고 있다니. 좋으면서도 동시에 불안한 마음이 울렁거렸다. 뭘까.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지. 끔찍한 느낌이야….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다니 긴장하고 있는 걸까.

놈이 내 손을 붙잡고 거실로 나왔다.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선명한 로터의 이물감이 걸음을 자꾸만 늦췄다. 거실에 소파가 있는 걸 보긴 했지만 앉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푹신하면서도 차가운 가죽의 느낌이 낯설기만 했다. 어색하게 소매를 만지작거리자 놈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님이 온다. 그것도 나를 보러. 멀쩡한 척 옷을 입히고 구속구를 풀어 줬지만, 보험 삼아 로터를 넣어 둔 걸 보니 아마도 이 비정상적인 관계를 모르는 사람. 왜 오는 걸까. 무슨 일로 오는 걸까.

가만히 앉아 있으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만 갔다. 가뜩이나 긴 소매를 자꾸만 잡아당기자 놈이 내 불안을 눈치챘는지 옆에 붙어 앉으며 내 손을 제지했다. 경고인지 격려인지 알 수 없지만, 놈이 웃으며 허벅지를… 정확하게는 허벅지 위에 있는 리모컨을 매만졌다.

“괜찮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

“그리고 손님 가실 때까지 얌전히 잘 있으면 상으로 화장실, 그거 들어 줄게요.”

안 된다고 우기던 화장실을 혼자 보내 주겠다는 걸 보니 정말 중요한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 속인 거 두 번은 못 속이겠냐. 믿음이 없으니 놈의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런데 도대체 누가 오는 걸까. 놈에게 중요한 사람이 누구지. 부모? 친인척? 그게 아니라면 친구나 동료? 설마 변태 동료는 아니겠지. 왠지 있을 법한 가능성에 초조하게 손끝을 쥐어뜯었다.

하지만 10분 후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온 남자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남자. 변태로는 안 보이는데…. 남자가 나를 향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선유 씨. 김 군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내 앞에 내밀어진 손을 멀뚱히 바라봤다. 사람을 만나는 게 오랜만이기도 하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알고 있으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오늘 만남의 의도조차 알지 못해 뻣뻣하게 서 있자, 옆에서 놈이 등을 쿡 찔렀다.

“아, 네. 이선유라고 합니다.”

내 어색한 표정을 읽은 남자가 갑자기 껄껄 웃으며 박장대소를 했다.

“허허! 긴장하지 마세요. 제가 나이는 좀 있어도 꽉 막힌 사람은 아닙니다. 요즘 남자끼리 만난다고 차별하는 거 아주 촌스럽잖아요!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끼리? 내가 이놈이랑 연애라도 한다는 거야? 여전히 굳은 얼굴로 있자, 남자가 지갑 안에서 빳빳한 명함을 한 장 꺼내 내밀었다. 습관적으로 양손으로 받아들며 고개를 숙였다. 명함엔 금박을 입힌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ㅇㅇ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태민 교수

순간 고개를 번쩍 들어 놈을 바라봤다. 놈은 평소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나와 눈을 마주했다. 잠시 잊고 있었다. 놈이 나를 정신병자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내 앞에서 흔들리던 진단서가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이 사람이 놈을 도와 날 정신병자로 확정시킨 사람…? 역시나 놈과 한패였어.

“괜찮아요, 선유 씨. 그냥 몇 가지 물어보러 오신 거니까.”

놈이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내 머리 위에 입을 맞췄다. 갑작스런 스킨십에 놀라 놈을 밀어내자 놈은 “우리 선유 씨가 원래 부끄러움이 많아요.”라고 하며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했다. 

놈과 교수라는 저 사람이 마주 보고 웃는 걸 보니 나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혼자 심각하게 서 있는데 놈이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대답 잘해야 해요. 선유 씨 대답에 따라 우리가 계속 같이 살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되니까. 요즘 병원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선유 씨 없는 삶은 생각만 해도 외로워요.”

귓속말이라고 해 봤자 모두가 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이 친구, 장난기는 여전하구만! 괜히 겁주지 말게! 허허! 아닙니다, 선유 씨. 오늘은 진료 보러 온 게 아니라 그냥 놀러 온 겁니다. 동네 아저씨 놀러 왔거니~ 하고 편하게 대해 주세요. 허허!”

동네 아저씨가 집엘 왜 놀러 와.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동네 아저씨네. 

무슨 꿍꿍이로 정신과 의사를 부른 걸까. 이 새끼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병원 시설… 나 없는 삶…. 설마, 나를 정신병원에 처넣으려고? 지금도 평범하지 않은 일상에 갇혀 살고 있는데, 여기서 더 나를 절망하게 하려는 거야?!

생각이 깊어질수록 구겨지는 인상에 놈이 웃으며 허벅지 위를 은근하게 쓰다듬었다. 그 손끝에 걸리는 리모컨…. 움찔. 당장 움직이는 줄 알고 긴장했는데, 놈은 전원은 켜는 대신 웃으며 손님을 거실로 안내했다.

소파에 앉아 있으니 놈이 주방에서 차분하게 3잔의 커피잔을 들고 왔다. 암막 없이 활짝 열린 창으로 오랜만에 보는 햇빛도 따스했고, 잔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엔 커피 향이 가득했다. 평화롭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다만 그게 놈의 옆이라는 것이 문제였지.

놈과 교수가 잔을 홀짝이는 동안 긴장한 채로 바지 위를 계속 문질렀다. 손바닥에서 미친 듯이 오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자리인데. 지금… 나만 불안한 거야?

“집 구경을 좀 해도 될까?”

“볼 건 없지만 얼마든지요.”

커피를 반쯤 마신 교수가 잔을 내려 두자, 놈이 기꺼이 일어나 집을 안내했다. 

교수가 가장 먼저 보길 원한 곳은 현관에 있는 긴 유리 장식장들이었다. 저번에 내가 탈출을 시도하다 장식장을 깬 뒤로, 놈은 더 크고 두꺼운 장식장을 2개나 사들여 현관 복도에 세워 뒀다. 그 안엔 여전히 놈이 만들어 낸 가식적인 합성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묘하게 사진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전엔 내가 병원에 있는 사진이 위주였다면, 지금 안에 있는 것들은 놈을 중심으로 한 사진뿐이었다. 분명 놈이 맞는데 좀 앳돼 보이는 것부터 최근의 사진까지…. 이것도 합성인 걸까?

교수가 그중 몇 가지 액자를 꺼내 들고 흐뭇하게 웃었다. 추억을 회상하듯 아련한 얼굴을 하고 놈을 바라보자, 놈이 내 어깨로 기대며 말했다.

“여기 있는 사진 중에 일부는 합성이에요. 그냥 저때도 선유 씨가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같이 만들었어요. 그냥 서로를 늦게 만났다는 게 너무 아쉽고…. 아시잖아요, 저 이런 데 예민한 거.”

놈이 웃자 교수가 그럼, 잘 알지.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저게 가짜라고 솔직하게 말할 줄이야. 교수는 앳된 놈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쓰다듬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놨다. 

어디까지가 가짜고 어디까지가 진짜 사진인 걸까. 모든 사진의 공통점이라고는 놈이 나왔다는 것과 병원뿐이었다. 심지어 정신병원…. 순간, 위험한 가설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놈이 어깨를 슬쩍 잡아끌었다. 그만 봐요. 선유 씨.

거실과 주방을 구경한 교수가 방이 2개니 3개니? 라고 물으며 내가 지내는 방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놈이 느긋하지만 빠른 걸음으로 문 앞을 막아서며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렸다.

“여긴 창고 방이라서 안 열어 보시는 게… 지저분하단 말이에요. 그죠? 선유 씨?”

“아, 응….”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라고? 그 안에 있는 건 구속구가 달린 침대와 꽉 막힌 창문이 전부인데.

놈은 대신 안방을 보여 주겠다며 교수를 밀어냈다. 이쪽이에요. 놈이 내 손을 잡아끌며 반대편에 난 문으로 향했다. 놈의 방문 앞에 서자 반사적으로 발이 굳어 버렸다. 멈춰 있는 나를 보고 배려한다 생각했는지, 교수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먼저 안쪽으로 들어갔다. 

열린 문으로 놈의 방이 보였다. 그날만큼 어둡진 않았지만, 여전히 두려운 곳. 나를 내던지고 누르고 묶고, 그리고 가뒀던 그곳….

문밖에서도 보이는 모니터 2대는 감시 카메라 영상이 아니라 내 사진으로 된 바탕화면이 켜져 있었다. 이불에 푹 싸여 세상모르고 잠든 내 모습…. 심지어 따스한 햇볕 자국과 부드러운 색감에 평화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저 방엔 해가 들어오지 않는데, 저걸 언제 어떻게 찍은 걸까?

내가 잠든 사이에 한 일이 단순히 자위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소름이 돋았다. 무슨 짓을 더 했을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한층 더 놈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방문에서 한 발 멀어지자, 교수는 내가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이고, 침실은 자세히 보지 않겠습니다. 두 분만의 공간이니까요.”

대충 집을 둘러보고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교수가 집이 좋다는 뻔한 칭찬을 하며 어느새 식어 버린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놈이 빈 잔을 새로 채워줄 때쯤. 교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둘이 지내는 건 어떠십니까? 불편한 건 없으시고?”

아주 좆같아요. 불편한 것투성이고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어요.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잘 맞춰 가는 중이죠, 뭐.”

벙어리가 돼 버린 나 대신 놈이 내 허벅지를 슬쩍 매만지며 대답했다. 하지만 교수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옷 안쪽에 숨겨진 리모컨이 계속 놈의 손끝에 걸렸다.

“너한테 안 물어봤다. 녀석도 참. 그렇게 좋으냐?”

“당연하죠.”

놈이 개구지게 웃으며 내 손과 깍지를 꼈다. 그걸 본 교수가 껄껄!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김 군이 아직 덜 컸구만! 다른 사람 앞에서 그렇게 애정 행각 하는 거 실례야!”

“에이, 교수님 앞이니까 이러죠.”

“거 참. 허허! 같이 지내서 아시겠지만, 이놈 고집이 그렇게 세요. 처음 봤을 땐 지금보다 더 심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동의를 구하듯 나를 바라보는 교수를 향해 어설프게 웃어 줬다. 오래 알던 사이가 분명했다. 정신과 교수와 놈의 오래된 관계라….

정말 잠깐 봤을 뿐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또한, 우리의 진짜 관계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하지만 속이 어떤 줄을 모르니 선뜻 손을 내밀 수도 없었다. 놈도 겉으로 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사실은 범죄자인 것처럼. 

만약 교수가 놈과 한패라면, 그땐 어떻게 될까. 게다가 놈은 일이 잘못될 경우 내가 병원에 입원할지도 모른다는 소리까지 했다. 장난처럼 말했지만, 마냥 농담도 아닌 무서운 말이었다. 

이건 또 다른 기회일까, 아니면 나를 시험하기 위한 함정일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김 군이랑은 일하다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뭐….”

“지금은 그만두셨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을 하셨나요?”

“어, 같은… 계열 일이었습니다. 근처 사무실에 다녔어요.”

놈의 눈치를 보며 몇 마디 하자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해 주나요? 영~ 무뚝뚝해서 연애는 못 할 것 같았는데. 언제 이렇게 커서는- 애인이 생겼다고 저를 놀라게 하네요.”

“하하, 네….”

“요즘은 어떤가요?”

“네?”

밑도 끝도 없이 어떻냐니. 내 반문에 교수가 실수했다는 듯 웃으며 턱을 매만졌다. 교수는 앞에 놓인 새 커피에 설탕을 넣어 휘저으며 질문을 이었다.

“김 군 말입니다. 요즘 어떻습니까?”

맞잡은 놈의 손힘이 미묘하게 강해졌다. 마디마디가 점차 조여 오는 느낌에 놈을 힐끔 바라봤지만, 놈은 여전히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손 아파….

“자, 잘 지내요.”

“혹시 싸운 적은 있으신가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예를 들어 갑자기 김 군이 화를 낸다거나.”

“그건….”

“충동적인 행동은?”

“아….”

“충동적인 행동을 보였나요? 어떤 식이죠?”

“…….”

잠깐, 잠깐만! 현관에서부터 느끼던 이질감이 강해졌다. 분명 몇 가지 질문을 하러 온다고 했고, 나를 보러 온다고 했다. 그래서 당연히 나를 상담하러 온 줄 알았는데, 정작 질문은 전부 놈에 관한 것이었다. 정신병원. 상담. 오랜 지인….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게….

내가 당황한 걸 느껴졌는지 교수가 은근하게 놈을 바라봤다.

“선유 씨. 편하게 대답해 주세요. 혹시 김 군이….”

그때, 마침 교수의 휴대폰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어이쿠. 발신자를 확인한 교수가 “급한 전화라. 죄송합니다. 잠시….”라고 양해를 구한 뒤 벌떡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갔다. 두꺼운 창문 너머로 지긋한 목소리가 웅웅-거릴 정도로 작게 들려왔다. 

거실엔 놈과 나, 단 둘뿐이었다. 그 틈에 놈이 깍지를 낀 손을 들어 올렸다. 살포시 손등 위로 떨어지는 입술. 입을 맞춘 그대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교수님 때문에 귀찮죠? 나도 그래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선유 씨를 꼭 봐야 되겠다는데.”

쪽 소리가 나게 입술을 떼고 놈이 엄지로 그 위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런데요. 선유 씨. 얌전하다의 반대말이 뭔지 알아요?”

“…….”

“얌전하지 않다, 예요. 얌전하지 않다는 건 문제를 일으킨다는 소리죠.”

놈의 다른 손이 내 허벅지, 정확하게는 고정된 리모컨을 잡고 바지 위로 버튼을 덧그렸다.

“얌전히 있으면 상을 주겠지만, 만약 그 반대로 실수를 한다면? 그럼 난 벌을 줄 수밖에 없어요. 그게 공평하잖아요.”

놈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말이 길어질수록 알 수 없는 공포심이 커져갔다. 눈을 깜빡이는 걸 잊을 정도로 얼굴이 굳었다. 간질이듯 바지 위를 지나는 손가락이 실수인 척 버튼을 누르는 시늉을 하고, 놈이 나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게 뭐가 됐든, 여태 선유 씨가 경험한 것들과는 차원이 다를 거예요. 어떤 게 좋으려나….”

놈이 달콤한 상상을 하듯 눈웃음을 쳤다. 하지만 표정과는 다르게, 그 입에선 살벌하기 그지없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아! 이건 어때요? 이 집에 선유 씨 같은 변태들만 잔뜩 모으는 거예요. 온갖 약과 기구를 쥐여 주고, 한껏 발정 난 사람들 사이에 선유 씨를 던져 두는 거죠. 그 사람들은 선유 씨의 음란한 구멍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해야 안 아픈지 전혀 관심도 없을걸요. 그냥 자지를 넣고, 싸고, 넣고, 싸고…. 그러다 순서가 밀리면 2개든 3개든 처넣고 그냥 선유 씨를 좆물받이로 쓸지도 모르죠.”

살짝 흥분한 듯한 놈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그쯤 돼서야 선유 씨는 후회할 거예요. 아, 잘할걸. 상을 받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때는 늦어요. 선유 씨.”

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늘 할지도 몰라요, 가 아니라 할 거예요-라고 들렸다. 굳은 채로 시선을 떨어트리자 놈이 내 턱을 잡아 강제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번엔 손등이 아닌 입술에 쪽- 하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게 싫음 노력해 봐요. 지금 같은 태도는 상 받기 어려우니까. 교수님은 우리한테 당장 무슨 짓을 하실 순 없지만, 난 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요.”

놈이 활짝 웃었다. 베란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교수가 또 애정 행각인가…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워낙 급한 전화라서.”

통화를 끝낸 교수가 자리로 돌아왔다. 괜찮습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다과로 나왔던 과자를 잘게 부쉈다. 놈이 그중 가장 큰 조각을 집어 먹었다.

“아, 무슨 얘기를 하던 중이었죠?”

“교수님도 참, 놀러 오셨다더니 질문이 너무 많아요.”

놈의 투정 가득한 말투에 교수가 멋쩍은 듯 웃음을 터트렸다.

“허! 그렇구먼, 이거 참, 초면에 죄송합니다. 워낙 김 군을 오래 알아서 그런지,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니까 궁금한 게 많아졌네요. 허허.”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하하. 입꼬리를 활짝 당겨 웃었다. 거래처에서나 쓰던 가식적인 웃음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이렇게 웃는 게 맞는지, 제대로 웃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고 멀쩡한 척 웃으며 교수를 마주했다.

“저희는, 정말 잘 지내고 있어요. 이… 사람이 말한 대로 서로 맞춰 가는 중입니다. 워낙 자상하고 착한 사람이라… 곤란할 지경이에요.”

진짜 곤란하지. 딱히 이름도 모르니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습관적으로 이 새끼-라는 소리가 목까지 차올랐지만, 다행스럽게 순화시켜 말할 수 있었다. 그 대답에 교수가 흐뭇한 얼굴로 놈과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설탕이 3스푼이나 들어간 커피를 홀짝였다.

“선유 씨보다 김 군이 연하라고 들었습니다. 형이라고 너무 이끌려고 하지만 마시고 많이 기대 주세요. 보기보다 듬직하게 잘 해낼 녀석이니까.”

“이 사람 없이는… 저는 아무것도 못 해요. 항상 제가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진짜. 이놈 없이 난 아무것도 못 해요. 화장실도, 밥도, 옷도. 그 무엇도. 심지어는 살고 죽는 것조차.

커피 때문에 살짝 김이 서린 안경을 닦으며, 교수는 한층 더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정신병이라는 게 마음의 문제가 가장 큽니다. 혼자보단 둘이 하는 노력이라 더 의미가 있겠죠. 선유 씨가 김 군의 곁에서 의지가 되어 주세요. 이런 말 하기 좀 이르지만, 치료도 거의 끝나 가는 중이니까요. 하하. 앞으로 약만 잘 챙겨 먹으면….”

교수가 말을 하는 도중, 놈의 손이 내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몰래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리모컨을 붙잡는 바람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앗!”

“선유 씨!”

갑자기 뱃속을 울리는 진동에 신음하며 허리를 숙였다. 방심하고 있던 차라 어쩌지도 못하고 능청스레 나를 부축하는 놈의 옷을 잡아 뜯었다. 교수는 놀란 눈으로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밀어 넣었던 로터는 생각보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었다. 크게 느껴지는 진동과 이물감을 어쩔 도리도 없이, 바지의 앞부분이 점점 부풀고 있었다. 교수에게 보일까, 숨기듯 허리를 숙이자 놈이 심각한 목소리로 내 등을 쓸어내렸다.

“오늘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괜찮아요?”

“흐흑-!”

“괜찮으십니까?!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갑자기 이렇게…!”

“가끔 긴장하면 이래요. 오늘 중요한 분이 온다고 했더니 긴장하고 있던 모양이에요.”

오히려 교수가 더 안절부절못하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양손으로 다리 사이를 내리누르며 자꾸만 흘러나오려는 신음을 꽉 붙잡았다. 놈은 가식적인 얼굴을 하고선 계속 나를 토닥였다.

“119를 불러야…!”

“아뇨! 늘 금방 괜찮아지니까 부르실 필요 없어요.”

“그럼 먹던 약이라도 있다면….”

“혹시 모르니까 좀 진정하고 먹이려구요. 저, 그리고 교수님….”

놈이 주저하며 말끝을 흐렸다. 차마 꺼내기 어려운 듯 몇 번이나 우물쭈물하자, 기다리던 교수가 참지 못하고 어서 말해 보라며 채근했다.

“이런 말씀 드리기 너무 죄송한데… 교수님만 괜찮으시다면, 오늘 만남을 다음으로 미뤄도 괜찮을까요? 선유 씨 상태가 이래서….”

“아휴, 이 사람아! 뭘 어렵게 말하고 그래! 내가 눈치가 없었네. 당장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나 때문에 그런 것 같아서 미안하구만….”

“아니에요. 저희가 더…. 정말 죄송합니다. 교수님.”

교수는 쫓기는 사람처럼 급하게 짐을 챙겼다. 놈이 배웅하려 몸을 일으키자 교수가 놈의 어깨를 꽉 누르며 손사래를 쳤다.

“배웅은 됐어! 선유 씨나 잘 보살펴. 괜찮아지면 연락 주고.”

“…죄송해요. 살펴 가세요.”

고개도 못 들고 덜덜 떨며 소파에 쓰러져 있었다. 젠장! 놈이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로터를 끄려 리모컨을 더듬었는데, 뭘 눌러야 꺼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써 봤어야 알지! 지잉-. 점점 커지는 진동 소리에 신음이 터질 것 같았다. 적어도 교수님이 나갈 때까지만…!

쾅. 현관이 닫히고 교수가 떠난 집에 온전히 둘만 남게 되자, 놈이 순식간에 심각한 표정을 거두고 웃기 시작했다.

“뒷구멍에 뭐만 넣었다 하면 발정이 나서는…. 신음을 그렇게 크게 내면 어떡해요. 교수님 놀라셨잖아요. 얌전히 있으라니까.”

“시키는, 흐읍, 시키는 대로 했잖아! 꺼 줘, 이거 꺼 줘! 제발!”

“그렇게 좆을 세우고 앙앙거리라고 시키진 않았어요. 교수님까지 유혹할 생각이었나요?”

놈이 내 양손을 잡아 들었다. 손바닥 안에 숨어 있던 바지의 사타구니가 조금 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놈이 그 위를 가볍게 매만지며 속삭이듯 말했다.

“유혹이 아니면… 벌이 받고 싶었나? 돌림빵 얘기에 뒷구멍이 벌렁거렸어요?”

“그런-! 아냐, 시, 싫어, 그딴 거!!”

놈이 웃으며 내가 입고 있던 바지의 단추를 풀어냈다. 지퍼를 내리자 기다렸던 듯 안쪽에 눌려 있던 성기가 툭 튀어나왔다. 외설적인 모양새에 어쩔 줄 모르며 소파를 쥐어뜯었다. 

놈이 좀 더 바지를 벗기자 허벅지 밴드와 리모컨이 모습을 보였다. 징- 징- 분명 구멍은 꽉 다물려 있는데 내벽 안은 계속해서 자극을 받고 있었다. 제발 꺼 줘-! 헐떡이는 소리에 놈이 밴드에서 리모컨을 꺼내 쥐었다.

“왜요. 돌림빵 싫어요? 당신, 좆물이라면 환장하잖아. 매번 구멍 안에 좆물 싸 달라고 울면서 애원하는 건 누구지?”

“나는, 그런 적 없, 으읏! 싫어!”

“그럼 뭐가 좋은데?”

“아무것, 도….”

“어, 대답이 틀렸잖아요.”

놈이 리모컨을 건드리자 내벽을 때리는 진동이 더 강해졌다. 흐아악! 붙잡을 것이 놈밖에 없었다. 그마안- 그만! 애원하듯 매달려 고개를 흔들자 놈이 대답을 재촉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만족할까. 정신없는 와중 놈이 좋아할 만한 아무 단어를 내뱉었다.

“네, 네가 좋아! 네가!”

놈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방끗! 하고 올라가려는 입꼬리가 도중에 멈춰서는 부들부들 떨렸다. 흡! 입을 가리고 한참을 심호흡하던 놈이 손을 내렸을 땐 웃음은커녕 우울함만이 가득했다.

“거짓말. 맨날 내가 싫다 그랬으면서….”

“거짓말 아니야!”

눈치 빠른 새끼! 눈치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당연한 거긴 하지만!

“아냐, 거짓말 아니… 흡, 제발, 이것 좀, 아- 흑.”

“그럼 거짓말이 아니라는 성의를 보여 봐요.”

“서, 성의? 무슨- 앗!”

샐쭉하게 입을 내밀고 있던 놈이 잔뜩 성이 난 내 성기를 가볍게 틀어쥐고 흔들었다. 리모컨을 빼앗으려 하자 놈이 손을 등 뒤로 숨기며 고개를 숙였다. 귓불을 혀로 핥은 놈이 속삭이듯 말했다.

“바지 벗어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안쪽을 흔드는 물건이 예상치 못한 곳까지 자극했다. 소파에 기대앉은 채로 꿈틀거리며 바지를 발목까지 내리자 어느새 구멍에서 흘러나온 젤이 쩌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소파를 적셨다.

“다리 벌려요. 구멍이 다 보일 정도로 활짝 벌려야 해요.”

“흐읏.”

밝고 넓은 거실에 소파 위. 어두운 방에서 묶인 채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수치스러웠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 손님이 앉아 있던 곳이다. 벌벌 떨며 소심하게 다리를 벌리자 놈이 무릎을 리모컨으로 툭툭 치며 더 벌리라 요구했다.

눈을 질끈 감고 다리를 소파 위로 올렸다. M 자로 세운 다리에 꽉 다물린 구멍과 그 틈으로 나와 있는 얇은 선이 숨김없이 보였다. 지잉-. 여전히 안쪽을 울리는 진동에 당장이라도 선을 뜯어내 버리고 싶었지만, 내 대신 놈이 손을 뻗어 그 선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안에 있는 물건이 아주 조금 움직이며, 단단해진 성기가 미묘하게 떨렸다.

“내보내 볼래요?”

“어떻, 흡, 못 해.”

“성의를 보인다면서요. 아니면 역시 벌이 더 좋은 건가요?”

내게 다른 선택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숨을 참으며 천천히 배에 힘을 주자, 동시에 빠끔하게 열린 구멍을 보고 놈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오는 게 다를 뿐이지 배설과 다름없는 행위…. 놈의 웃음소리에 기가 죽어 힘을 빼자 놈이 빨리요- 하고 재촉하며 내 발목을 붙잡았다.

지잉-, 진동이 점점 입구를 향해 내려왔다. 중간에 다시 참지 못하고 구멍을 꽉 조이자, 이번엔 놈이 직접 둔부를 잡아 벌리며 끝까지 힘을 주라 명령했다.

“아, 보인다. 보여.”

“흐윽.”

육벽을 헤집고 분홍색 로터가 모습을 보였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완전히 빠져 버릴 정도로 입구와 가까웠다. 주름진 구멍이 벌어지며 공을 반쯤 물었다. 그리고….

“흐앗!!”

반사적으로 다리가 모였다. 내보내려는 순간 놈이 손가락으로 다시 로터를 밀어 넣은 탓이었다. 로터가 힘을 주고 있는 동시에 안쪽으로 빠르게 들어오며 내벽을 흔들었다. 

고개를 젖히며 나도 모르게 앞쪽을 꽉 틀어쥐었다. 끝까지 들어온 놈의 손가락이 구멍 안에서 원을 그리듯 크게 움직였다. 손끝에 걸려 처음 있던 위치로 돌아간 공이 아쉽다는 듯 더 강하게 몸을 흔들었다.

“다시.”

놈은 또 물고 있는 것을 내보내라며 웃음기 득한 얼굴로 손가락을 뽑아냈다. 끈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멍에서 살짝 흘러나온 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힘을 주고, 겨우 분홍색이 보이면 놈이 기다렸단 듯 젖은 손가락으로 로터를 밀어 넣었다. 한 번 더, 한 번 더. 

끝없이 반복되는 행위에 아랫배가 아려 왔다. 격한 진동이 안쪽을 골고루 자극하자, 어느새 구멍은 다른 무언가를 기다리듯 잔뜩 벌어져 있었다. 우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이제 됐잖아, 그만해-!

4번째로 밀어 넣었던 손가락을 빼낸 놈이 “왠지 손가락에서 단내가 나는 것 같아요.”라며 그걸 제 입으로 가져가 쪽쪽거리며 빨았다. 침인지 젤인지 모를 것이 놈의 손등을 타고 내리고, 더 흘러가 소매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사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성기는 아주 약간만 흔들어도 사정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싸 버렸다간 겨우 이런 거로 싸 버리는 천박한 사람이라며 놈이 낄낄댈 것이 뻔했다. 무의식중에 흔들거리는 손목을 겨우 붙잡으며, 손안의 살 기둥을 더 세게 틀어쥐었다. 싸면 안 돼, 제발.

“성의는 잘 봤어요.”

놈이 바지 벨트를 풀어내며 말했다. 속옷까지 한번에 잡아 내린 놈이 완전히 발기된 자신의 성기를 매만지며 무릎을 꿇었다.

“그, 흐아…. 윽. 그거, 싫- 싫어.”

“아, 돌림빵이요? 순진하네.”

풋, 놈이 작게 웃으며 내 위로 몸을 숙였다. 성기의 끝이 구멍 위를 문지르며, 살짝 열린 구멍을 억세게 잡아 벌렸다.

“내가 다른 사람한테 당신을 내줄 리가 없잖아요.”

“잠, 깐… 아직 안 뺐-!!”

그리고 퍽! 순식간에 뿌리까지 박아 넣은 놈이 몸을 부르르 떨며 허리를 문질렀다. 아으윽-! 뭔가 닿으면 안 될 곳까지 진동이 오고 있었다. 뱃속이 압박당하는 감각에 숨이 막혀와 입을 크게 벌리고 헐떡였다. 꽉 잡고 있던 요도 끝에선 어느새 꿀럭꿀럭 정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와… 당신 구멍, 오나홀 같아요. 쫀쫀하고, 부드럽고, 진동까지….”

놈이 뿌리까지 박아 넣은 상태로 허리를 들썩거리며 제 끝에 닿는 진동을 즐겼다. 덕분에 더 깊게 밀려들어 온 공이 어딘지 모를 곳에 닿으며 약간의 고통을 동반했다.

“아프… 아, 안 돼, 더는 아윽,.” 

“하아- 좋아요 선유 씨.”

“더 안 들어가! 흐아! 그마안! 끝까지 넣었잖아!”

뭔진 모르지만, 내벽의 한계라 느꼈다. 로터가 내장 끝의 단단한 부분에 닿았고 더는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약간의 통증을 동반했다. 내 비명에 놈이 성기를 빼내며 분홍 선을 잡아당겼다. 

빠르게 입구까지 끌려 나온 로터에 안도함도 잠시, 구멍 얕은 곳에 있는 전립선을 미친 듯이 흔드는 진동에 전신을 벌벌 떨며 다리를 오므렸다. 내 다리 사이에 갇힌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허리를 튕겼다. 퍽! 로터가 다시 안쪽 끝에 닿자 놈이 살짝 자세를 바꾸며 웃었다.

“인터넷에서 보니까… 여기도 개발하면 끝내준다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싫어, 싫어, 싫어!!”

“지금도 질질 싸는데 그때는…. 후욱!”

“싫어! 싫… 허억!!”

“앗, 들어갔다.”

놈이 힘을 주자 묵직한 고통과 함께 뱃속이 크게 움직였다. 비명도 나오질 않았다. 좁은 곳을 억지로 비집고 생전 처음 닿는 곳을 로터가 덜컥이며 통과했다. 이건… 아냐…! 붙잡고 있던 놈의 팔에 손톱을 세우고 미친 듯이 도리질을 했다. 잘은 몰라도 들어가면 안 되는 곳에 로터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이질적이다 못해 생소한 곳이 진동으로 인해 미친 듯이 흔들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놈이 다시 허리를 물리며 선을 잡아 뺐다. 꿀렁거리며 안쪽을 긁는 로터의 섬뜩함에 그제야 참고 있던 비명이 터졌다.

“흐아악…! 아파, 제발!! 하지…! 하으윽!”

아슬아슬하게 입구까지 뽑혀 나온 로터가 놈에 성기에 밀려 다시 깊은 곳으로 몸을 숨겼다. 징- 징- 뱃속이 울리며 아주 조금, 고통과 쾌감의 경계가 무뎌졌다. 

분명 끝에 닿은 것 같았는데 쉬지 않고 내벽이 벌어지며 이상한 곳으로 꺾여 들어왔다. 쑥, 다시 좁은 곳을 넘어가는 느낌에 몸을 튕기며 울었다.

“아아아…!”

“아픈 것치고는 자지를 너무 흔드는 거 아니에요?”

손과 배 위엔 어느새 싸지른 정액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냐, 아냐! 이건 정상이 아니라고! 다시 로터를 뽑아낸 놈이 다시 허리를 꾹 누르며 신음했다. 또다시 고통이 뱃속 깊은 곳부터 퍼져 나왔다.

“후아- 이거 습관 될 것 같아요. 끝은 찌르르하고- 안은 쫄깃하고…, 역시 선유 씨 구멍이 최고야.”

“흑, 흐억, 아-! 아아!”

퍽! 퍽! 그 상태로 몇 번 안쪽을 쑤시던 놈이 몸을 부르르 떨며 내 다리를 꽉 끌어안았다. 사정을 한 듯했다. 하지만 놈이 어쨌든 로터는 여전히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고, 나 역시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경련하듯 덜덜 떨고 있었다. 

놈이 천천히 성기를 뽑아냈다. 성기가 빠져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것을 물고 있던 그대로 입을 다물 줄 모르는 구멍에 놈이 낄낄대며 웃었다. 그리고 활짝 열린 구멍을 손가락으로 주물럭거리며 리모컨을 잡고 줄을 흔들던 놈이, 갑자기 힘껏 선을 잡아당겼다.

“흐아아악!!!”

덜컥. 로터가 안쪽에 있던 놈의 정액을 긁으며 뽑혀 나와 바닥을 구름과 동시에, 이미 잔뜩 젖은 성기의 끝에서 정액이 높게 뿜어져 나왔다. 아프기도 하고, 다리가 저릴 정도로 몸이 떨리기도 했다. 발작하듯 덜덜거리며 소파에 축 늘어지자 놈이 드디어 리모컨을 눌러 진동을 멈췄다. 

드드드득…. 진동 소리가 멈춘 거실은 헐떡거리는 내 숨소리와 낄낄대는 놈의 웃음소리만이 가득했다.

“정액 분수라니, 선유 씨 진짜 변태 같아요!”

놈은 여직 흐르는 정액을 손가락으로 긁어 제 입으로 가져갔다. 고인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렸다. 울렁이는 놈의 얼굴은 행복한 듯 웃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소름 끼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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