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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준비를 마친 놈이 마지막으로 방을 점검하며 침대 곁을 서성였다. 이불에 반쯤 파묻혀 놈을 바라보자, 시선을 마주친 놈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이마에 입을 맞췄다. 가벼운 쪽- 소리와 함께 입술이 닿았던 곳에 오소소 소름이 올랐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미련 없이 몸을 일으키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놈이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선유 씨?”
“안 가면….”
안 가면 안 돼? 차마 끝까지 말할 자신은 없었다. 흐려지는 말끝과 함께 퍼뜩 정신을 차리고 쥐고 있던 놈의 옷자락을 던지듯 놓았다. 하지만 내가 뭘 하려 했는지 눈치챈 놈이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진짜… 귀여워 죽겠네!”
입술을 파르르 떨던 놈이 소리를 지르며 내 머리를 껴안았다. 놀라기도 하고, 쪽팔리기도 하고. 몸부림을 치며 놈을 밀어냈지만, 놈은 그래도 좋다며 침대 위로 나를 쓰러트리고 얼굴을 비볐다.
일주일이 넘게 붕대를 감고 있던 놈의 손과 발엔 이제 거즈만 남은 상태였다. 생각보다 유리조각이 깊게 박혀 8바늘이나 꿰맸다고 한다. 슬쩍 그 위를 매만지자 놈이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미안해요. 나도 안 가고 싶은데, 요즘 큰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해서…. 아! 자택 근무하고 싶다! 선유 씨가 이러니까 더 가기 싫어요.”
너무 치근거리는 통에 짜증이 올랐지만,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아 체념했다. 쪽쪽. 지치지도 않는지 놈이 연신 내 얼굴 위로 입술을 찍었다. 그렇게 10분을 더 누워 있었는데, 안 가겠다며 뒹굴뒹굴하던 놈이 시계를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으아악 지각 직전! 정말 미안한 듯 몇 번이나 나를 보듬다가 결국 아쉬움을 뚝뚝 흘리며 일어났다.
“혼자 두고 가려니 발이 안 떨어져요. 그래도 가야 하니까…. 금방 다녀올게요. 사랑해요. 선유 씨!”
내 어깨에 입을 맞추며 요란하게 인사를 건넨 놈이 허둥지둥 현관 밖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집안은 지독할 만큼 조용했다. 째깍. 째깍. 째깍. 거실에 있는 시계가 울고 있었다. 더 큰 소음을 찾아 귀를 기울였다. 창밖으로 아주 작게 자동차 소음과 등교중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역시 너무 작아서 이 넓은 집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걸로는… 안 돼.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무 노래를 시작했다. 살면서 그다지 노래를 잘 한다는 평은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불렀다. 동요를 2절까지 부른 뒤엔 가사가 잘 떠오르지도 않는 가요를 흥얼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흥이라고는 전혀 나지 않았지만.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더 우울해지는 기분에 일부러 더 크게 노래를 이어 불렀다.
놈이 출근한 뒤의 집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마치 또 놈이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날 이후 눈에 띄게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놈은 출근할 때마다 몇 번이고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금방 다녀올게요. 꼭 돌아올 테니까 내 생각하면서 얌전히 기다려요.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하면서 근래의 놈은 평소보다 늦은 퇴근을 반복했다. 밥을 먹고 샤워를 할 때마다 놈의 입에선 바쁘다는 말이 습관처럼 나왔다. 정말 일이 많은 건지, 나를 엿 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안절부절못하며 놈을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이상하다는 걸 알지만… 놈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으니까….
곧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혼자 있을 땐 늘 뭔가를 중얼거리거나 발로 바닥을 박차는 등의 행동으로 끊임없이 소리를 냈고, 시선은 항상 카메라를 향해 있었다.
보고 있지? 날 잊지 마. 내보내 주지 않을 거라면 끝까지 책임을 져.
그렇다고 내가 놈을 사랑하거나 먼저 나서서 몸을 내주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제어가 안 되는 상황 속에 혼자 있는 게 싫었을 뿐. 놈을 향한 직설적인 원망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놈의 생각과 놈이 정한 규칙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들 리가 없잖아. 정액이 뿌려진 음식. 혼자서는 손조차 씻을 수 없는 부자유. ‘싸게 해 주세요.’라고 말해야만 보내 주는 화장실. 그리고 그 모든 걸 곁에서 지켜보고 같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놈.
계속 같이 지내야만 한다면… 조금의 변화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쪼르륵-. 소변 배출이 끝나자 놈이 내 성기를 살짝 잡아 톡톡 털었다. 그리고 아기에게 하듯 물티슈로 그 끝을 가볍게 닦아 냈다. 흘리지도 않고 잘 쌌네. 잘했어요. 3번이나 오줌을 지린 뒤…, 볼일을 볼 때마다 놈은 날 아기 취급하며 즐거워했다. 전처럼 닦아 주겠다며 입에 물거나 그런 짓은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게 훨씬 더 기분 나빴다.
“왜 그래요?”
인상을 구긴 나를 발견하고 놈이 물었다. 말할까, 말까. 말했다가 또 벌을 준다고 하면 어쩌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내뱉지 못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편하게 해요. 너무 소심해졌어.”
“누구 때문에…!”
언제부터 당신이 내 눈치를 봤다고? 놈이 여전히 내 물건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하도 빤히 내 것을 바라보는 통에 밑에 난 털이 몇 개인지, 주름이 몇 개인지 나보다 더 자세히 알 것 같았다. …물어봤는데 진짜 알고 있으면 어쩌지. 기분 나빠.
“어서 말해 봐요.”
거듭된 놈의 재촉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 화장실 가는 거… 안 보면 안 돼?”
벌써 몇 번이나 했던 말이었다. 익숙한 항의에 놈이 덥수룩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고개를 들었다.
“왜요?”
“창피하니까.”
“응? 왜 창피하지?”
매번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발.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나만… 나만 홀딱 벗고 이러는데 안 쪽팔리겠어?!”
오랜만에 큰소리를 들은 놈이 놀란 얼굴로 물티슈를 떨어트렸다. 한동안은 화를 내지도, 불평하지도 않았었다. 그러자 천천히 손을 내린 놈이 자신의 바지춤을 붙잡았다.
“…내가 싸는 것도 보고 싶었어요?”
젠장. 이 새끼가 그럼 그렇지. 소리를 질러서 놀란 게 아니었다. 보, 보여 줄게요! 내 거! 싸는 거 선유 씨가 봐줬으면 좋겠어! 또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흥분해서 바지를 벗으려는 놈을 극구 사양하며 소리쳤다.
“아니! 절대 싫어! 시발! 벗지 마! 그냥 볼일 보는 걸 보여 주기 싫다고! 더럽잖아!”
“선유 씨 몸에서 나오는 것 중에 더러운 건 없어요!!”
확신에 찬 얼굴이 오히려 나한테 화를 냈다. 또 그런 나쁜 소리 해 봐요! 미간을 좁히고 있는 놈을 보자 울화통이 터지는 것 같았다. 머리를 붙잡고 변기에 주저앉아 있으니 주변을 정리하던 놈이 오히려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한숨 쉴 사람이 누군데…. 하…. 내가 이거랑 계속 같이 있어야 한다니.
“하아-. 그렇게 싫어요?”
“어.”
단호한 대답에 조금 상처받은 듯 손에 든 물티슈를 꼭 끌어안았다.
“그렇게 싫으면… 어쩌지.”
“솔직히 인간적으로… 화, 화장실 정도는 혼자 가도 되잖아.”
“하지만, 난 선유 씨의 사소한 것도 함께하고 싶은걸.”
“시발.”
놈한테 인간적이란 소릴 꺼낸 내가 멍청이지.
화장실 청소를 끝내고 침실에 나를 데려다 놓을 때까지도 굳은 얼굴이 풀릴 기미가 없자 놈이 과하게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힐끔. 또 힐끔. 첫 건의도 아니었으니 이러다 또 사고를 치거나 뒤엎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특히나 근래엔 다치는 일도 많았기에 더 신경이 쓰이겠지.
하아…. 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자신과 어느 정도 합의를 봤는지, 인심 쓴다는 듯 제안을 해 왔다.
“그냥은 좀 그렇고…. 우리 내기 하나 할래요? 선유 씨가 이기면 앞으로 화장실은 혼자 가게 해 줄게요.”
“시발, 내기는 무슨. 애초에 네가…. 아, 아니야. 정말이지?”
아차,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기로 했잖아.
“이기면 진짜 혼자 가게 해 줄 거지?”
“네.”
“…무슨 내긴데?”
“음~. 누가 먼저 싸게 만드나? 아, 너무 쉬운가.”
결국은 또 이런 내용. 한순간 혹했던 게 후회스러웠다. 수줍게 웃는 놈이 꼴 보기 싫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창가로 몸을 돌렸다. 어라, 싫어요? 아쉬운 목소리가 침구를 파고들었다. 에이… 진짜 쉬운 건데.
정말 쉬운 내기긴 했다. 저놈은 아무것도 안 해도 맨날 혼자 찍찍 잘 싸잖아…. 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나쁜 제안은 아닌 것 같기도.
소변은 그렇다 쳐도, 큰일은 볼 때가 정말 곤혹스러웠다. 다리를 활짝 벌리고 보여 주는 거 아니었지만, 소리라든지 냄새라든지…. 부모한테도 유아기 이후로 보여 주지 않던 걸 매일 놈에게 보여야 했다. 오늘은 소화가 잘됐네요. 오늘은 좀 묽은데? 컨디션이 안 좋아요? 동물의 건강을 체크하는 듯한 태도에 화장실을 갈 때마다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게 너무 싫어서 3일 넘게 화장실을 참았던 적도 있었다. 그땐 꽁꽁 묶인 채로 두 번째 관장을 당하고, 놈이 강제로 잡아 벌린 구멍에서 오물이 쏟아지는 걸 엉엉 울며 보여 줘야 했다. 죽으로 관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치였다. 일단 보이는 것도 문제였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지독한 냄새는 몇 배나 더 견디기 힘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미련이 남았다. 화장실은 매일 가야 하잖아. 저 변태 새끼는 조금만 흥분해도 금방 싸 버리고…. 놈에게 손대는 건 싫지만 어려운 일은 아닌데…. 고작 그걸로 화장실은 혼자 간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 같았다. 대신 손은 좀 봐야겠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제안이지만, 싫으면 안 해도 돼요. 난 상관 없….”
“잠깐.”
방을 떠나려는 놈을 향해 몸을 돌렸다. 싫지만… 이것도 기회니까.
“네?”
“너랑 나랑 동등한 조건으로 할 게 아니라면, 내기 내용을 바꿔.”
네가 뒤를 내주면 너도 뒤를 내줘야 한다는 소리지. 그래야 공평하잖아. 물론 놈의 뒤를 탐할 마음은 전혀 없었으나, 혹시 모를 말장난에 대비해 선을 긋는 중이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놈의 말 바꾸기에 한두 번 당한 게 아닌지라 경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도 마지막인 것처럼 말해 놓고 이 도구로는 마지막이랬죠~ 누가 끝이래요~? 하고 한참을 괴롭혔잖아.
“저, 저는 뒤로 하는 건 별로…. 선유 씨… 사실 내 엉덩이를 탐내고 있던 거예요…?”
“아니거든!”
시발, 나는 좋아서 하냐?! 누굴 변태 보듯 쳐다보고 있어! 양손으로 엉덩이를 가리며 뒷걸음질 치는 놈에게 소리를 질렀다.
“동등하게 할 게 아니라면 바꿔! 그러니까… 팔씨름이나….”
“네에?”
슬쩍 건전한 종목을 제안했더니 놈이 진짜 질색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구겼다. 그럼 발씨름…? 됐어요…. 그냥 없던 일로 합시다.
“아악! 알겠어!”
“제대로 좀 골라 봐요.”
시발새끼…. 놈이 나한테 손대는 건 싫고, 그렇다면 방법은 내가 놈에게 손을 대는 것뿐이었다.
“그럼… 내가 너를 싸게 만드는 거… 어때?”
싫은 소리를 억지로 쥐어짰다. 그러자 놈이 바로 반문했다.
“음…. 내가 너무 불리하지 않아요?”
동등한 조건이니 뭐니 먼저 말은 해 놓고, 사실상 그냥 이기겠다는 소리였다. 툭- 치면 찍- 이니까. 놈도 그걸 알고 있는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지기 싫으면 안 싸면 되지.”
뻔뻔한 대답에 놈이 웃었다.
“뭐… 좋아요! 선유 씨가 직접 해 주는 날이 별로 없으니까! 열심히 참아 볼게요! 대신, 나도 조건. 시간은 30분으로 해요.”
30분? 5분 안에 끝날 텐데 시간을 길게 주네. 무슨 자신감이람.
“너,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어.”
“안 해요. 딴소리 안 해요. 약속할게요.”
문 앞에 서 있던 놈이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하고 있지만, 사실 놈이 마음을 바꾸고 없던 일로 할까 봐 얼마나 속을 졸였는지 모른다. 이 억지가 먹히다니….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샤워를 마친 놈이 알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내 침대 누워 양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이미 방에 들어올 때부터 놈의 성기는 하늘을 찌르듯 서 있었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거 같이…. 우욱.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어.
“선유 씨, 변태…! 너무 빤히 보는 거 아니에요?”
기가 차네…. 얼굴을 붉히는 놈을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 꼴을 더 볼 자신이 없었다.
탈출하고자 놈을 유혹한 것과 화장실을 위해 놈을 흥분시키는 것 중 뭐가 더 끔찍할까? 비슷한 것 같지만 내게는 마음이 다른 일이었다. 각오도, 상황도 전부. 게다가 지금은 맨정신이고…. 스스로 남자 몸을 만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하지만 이게 다 조금이나마 인간 취급을 받기 위한 투쟁이라고!
한숨을 쉬며 마음을 다잡고 침대 위로 올라탔다. 덜그럭. 사슬이 침대 프레임을 긁으며 작은 소음을 냈다. 하기 싫어 느려지는 몸을 강제로 움직였다.
부끄럽다면서도 놈의 다리는 날 기다리는 듯 한껏 벌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 몸을 쭈그려 앉자 놈의 물건이 배는 더 흉측해 보였다. 하아…. 몇 번이나 주저하다 손을 뻗었다. 베개에 비스듬히 누워 그걸 빤히 바라보던 놈이 갑자기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내 이름을 불렀다.
“선유 씨….”
눈꼬리를 축 내리고, 주먹을 꽉 쥔 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드럽게 해 주세요….”
마치 첫 경험을 앞둔 것 같은 모습…. 시발….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 말과 상반되게 꺼떡이며 움직이는 성기가 어찌나 징그러운지! 나한테도 달린 건데 저건 왜 더 혐오스러운지 모르겠네. 놈도 놈이지만 스스로 그걸 만지려 나도 참 싫다.
“흡!”
“이상한 소리 내지 마!”
“참을까요? 참는 게 더 좋아요?”
징그러워서 입을 닥치라 했을 뿐인데, 놈은 내 한마디에도 크게 반응하며 그조차 플레이의 일부로 만들려 했다. 질린다, 진짜. 너 좋을 대로 해! 미간을 구기며 놈의 성기를 마지못해 덥석 쥐었다. 머뭇거리다간 시간만 더 길어질 뿐이야. 기분 나쁠 정도로 높은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으윽.
이내 양손으로 가볍게 움켜쥐자, 놈이 흐…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베개를 쥐어뜯었다. 성기 위로 꿈틀거리는 혈관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것과 같으면서도 다른 것. 심적으로 느껴지는 괴로움에 인상을 팍 쓰고 손목을 움직였다.
가볍게 기둥을 매만지다 손가락 2개로 귀두의 끝을 문질렀다. 놈의 허리가 미묘하게 들썩였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손안에 물건이 부피를 더해 갔다. 이게 다 발기한 게 아니었어? 맙소사. 새삼 이게 내 뒤에 들어왔었다는 게… 여러 의미로 믿고 싶지 않아졌다.
“…….”
“흐읏. 선유 씨.”
“…….”
“아-.”
하지만 왠지 놈이 크게 반응했던 건 초반뿐. 시간이 길어질수록 놈의 신음도 점차 줄어 갔다. 뭐, 뭐지? 원래 여기저기서 잘 싸는 놈이었잖아. 갑자기 지루라도 된 거야? 의외의 상황에 다급하게 자세를 바꿨다. 손바닥으로도 문지르고, 훑어도 보고, 더 주물러도 보고. 손안에 있는 물건은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 같았지만, 아무리 만져 봐도 그 상태를 유지할 뿐이었다.
“…끝인가요?”
잠시 손을 쉬고 있으니 놈이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들며 물었다. 여태 놈을 본 중 가장 이성적으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여태 보여 준 헤픈 모습도 다 연기였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그냥 내가 더럽게 못하거나…. 놈이 옆에 풀어 뒀던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10분 지났어요.”
“뭐? 벌써? 거짓말…!”
“…진짠데….”
놈이 시계를 보여 줬다. 시발, 진짜네? 그것도 12분이나 지나 있었다. 젠장. 평소엔 잘만 싸더니 왜 이래?!
“…못하겠어요?”
“…….”
“그렇다면야…. 아쉽지만… 내기는 여기서 끝인….”
“아냐! 아직, 아직 안 끝났거든?”
몸을 일으키려는 놈을 세게 밀쳐 다시 침대로 눕혔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제안이라고 했다. 이대로라면 평생 화장실은 놈과 함께 가야 할지도 몰라! 조급함에 성기를 쥐고 있던 아귀힘이 강해지자, 놈이 괴롭게 신음하며 시트를 내리쳤다.
“헉, 선, 유 씨- 지금, 복수하는, 건가요? 그때 바, 반지 사이즈 잘못 맞춘 거 때문에… 아윽. 미, 미안해요!”
“어…? 복수하는 거 아닌…데?”
갑자기 잘못했다며 반성하는 놈 때문에 묘하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게 아닌데…? 물론 놈이 전부 잘못한 건 맞지만, 지금은 놈을 싸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지 사과를 받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그래도 순순히 사과하는 걸 보니 괜히 다른 마음이 드네…. 이대로 힘을 줘서 이걸 부러트려 버리면…. 아니야. 괜히 이상한 짓 하지 말자.
슬쩍 손에 힘을 풀자 놈이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며 침대 위로 널브러졌다. 헉헉. 헐떡이는 놈의 성기는 여전히 서 있었지만, 아까보다는 풀이 죽은 듯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놈에게 더 큰 자극을 줘야 했다. 뭘 어떻게 해야…. 남자를 사정시켜 본적이 있어야 알지! 놈이 나한테 어떻게 했더라?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빨고, 도구로 괴롭히고, 뒤를 괴롭히고…. 전부 끔찍한 일뿐이잖아!
고민하는 사이 놈이 반쯤 상체를 일으켰다. 헉. 급한 맘에 놈을 다시 밀치며 몸을 숙였다. 당황하니 머릿속이 하얗게 날아가는 것 같았다. 손엔 벌써 땀이 한가득 넘치고 있었다. 젠장, 그렇게 사정해도 거절했는데! 화장실이 뭐라고!
“헉!”
다급하게 성기의 끝을 입으로 물자 놈이 화들짝 놀라며 숨을 들이켰다. 설마 입에 물 거라고 생각은 못 한 모양이었다. 나도 몰랐는데 놈이 알았겠어? 남성 특유의 비릿한 살 내음이 콧속을 가득 메웠다. 순간 비위가 상해 다 때려치고 싶었지만, 이렇게 한번 고생하는 게 배설하는 걸 계속 보이는 것보다는 낫다고 애써 자위했다.
그래. 비록 강제긴 했지만, 처음도 아니잖아. 개구기를 물고 있었던 그때 상황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나은 상태였다. 금방 끝날 거야. 한 번만 희생하자. 빨아 달라고 그렇게 애원했던 놈이니까 금방 쌀 거야.
그런데 왠지 입안에 있는 놈의 물건이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냥 몸이 떨고 있는 건가? 흥분과는 좀 다른 떨림이었다.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여전히 놈의 것을 물고 시선을 위로 향했다. 그러자 눈을 마주친 놈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서, 선유 씨, 나, 나 무서워요. 이빨, 이빨 닿았, 흐아아….”
아무래도… 저번에 물릴 뻔했던 기억들이 강하게 남은 모양이었다. 울먹거리는 놈을 보고 입에 있던 것을 뱉어 냈다. 퉤!
뭐 이래. 해 줘도 지랄이네!! 평소엔 싫다 싫다 해도 미친놈처럼 발정해서 달려들더니! 한 번만 빨아 달라고 쫓아다닐 땐 언제고! 나도 싫거든! 사내새끼 물건은, 특히 네놈 것은 죽을 만큼 싫거든?!
이제 놈은 제 사타구니를 양손으로 감싸고 앉아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째깍, 째깍. 놈의 시계가 15분을 넘기고 있었다. 벌써 반이나 지났잖아! 타임! 몰라요, 흑…. 흘러가는 시간에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졌다. 아씨, 뭐라도 해야 해! 다리 사이로 손을 뻗으니 놈이 흠칫 놀라며 선유 씨이… 하고 우는소리를 냈다. 야. 이럼 내가 나쁜 놈 같잖아.
“손 치워.”
“그렇지만.”
“안… 물 테니까 손 치우라고.”
놈이 덜덜 떨며 곧 죽을 사람처럼 체념한 얼굴로 눈을 감고 누웠다. 기분이 더러웠다. 오히려 나를 강간범인 양 대하는 놈이 어이없기도 하고, 열 받기도 하고. 이상하지만 자존심도 좀 상했다. 평소엔 보기만 해도 좋다고 아무 데서나 막 싸 놓고 왜 저런 태도냔 말이야…! 하지만 여기서 화를 냈다간 가뜩이나 점점 시들어 가는 놈의 물건이 완전히 죽어 버릴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사람이 살면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라는 게 있다. 개인마다 기준이 다르긴 하겠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어려운 것도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동물보다 나은 취급.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우! 거창하게 말하고 있지만 단순하게 하자면, 그냥 혼자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건 그 대우를 쟁취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고.
자, 그럼 이제 어쩌냐. 근본적인 해결법으론 이를 세우지 않는 건데…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겠다. 조금 전에도 일부러 세운 게 아니란 말이야. 그냥 입에 들어와서 닿은 거라고…. 그렇다면 안 넣는 방향으로 해 볼까? 저번처럼 목구멍까지 들어차서 게워 내는 건 나도 싫으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다시 몸을 숙여 놈의 것을 쥐었다. 그리고 혀를 살짝 내밀어 손에 쥔 흉물을 가볍게 찔렀다. 움찔. 놈이 몸을 떨었으나 아까에 비하면 많이 진정된 듯했다. 이번엔 조금 더 넓은 면적을 핥았다. 윽. 느낌이 이상해. 냄새도 나고….
혀를 세워 가르듯 움직이자 성기 끝에서 투명한 액이 조금 흘러나왔다. 우욱! 순식간에 혀끝으로 퍼지는 비린 맛에 비위가 상해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 새끼는 어떻게 내걸 좋다고 물고 빨았지?! 너무 역겹고 싫었지만, 힐끗, 여전히 겁을 먹고 누워 있는 놈을 흘기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혀끝으로 살기둥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뿌리 쪽으로 향했다. 점점 짙어지는 사내의 냄새의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지독함이었다. 남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서 어느새 심장이 쿵쾅거리며 요동쳤다.
놈의 성기를 간질이듯 핥으며 아래 매달린 음낭을 손으로 가볍게 밀었다. 딱히 의미가 있던 행동은 아니고 그냥 더럽게 거슬려서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놈의 손이 머리 위로 올라왔다. 깜짝 놀라 시선을 높이자 반쯤 상체를 세우고 있는 놈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표정이었다.
“거, 거기… 좋아요.”
“……?”
“응, 거기.”
놈의 손이 제 음낭 위에 있던 내 손 위로 겹쳐졌다. 때문에 놈이 손을 쥐자 자연히 내 손도 따라 쥐어졌다. 곧 놈이 누르는 데로 손이 움직이며 음낭을 쭈물거렸다. 꼭 내가 스스로 만지는 것 같이 보여서 기분이 이상했다. 핥아 줘요. 놈이 재촉하듯 제 성기를 흔들었다. 주저했지만 놈이 자꾸 재촉하는 통에 마지못해 혀를 내밀었다. 순식간에 주도권을 빼앗겨 버렸다.
“하악….”
혀끝에 둥근 것이 느껴짐과 동시에 놈이 신음을 터트리며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차마 혀를 다 쓸 용기는 없어서 혀끝으로 쿡쿡 공격하듯 찌르고 있는데, 갑자기 놈의 성기가 내 얼굴로 내리쳐졌다. 찰싹! 찰싹! 살과 살이 맞닿으며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아프진 않았지만, 말 그대로 기분이 더러웠다. 심지어 얼굴에 닿자마자 그 끝에서 물방울이 튈 땐 정말이지…. 시발. 평범한 행위로는 흥분이 안 되냐?
“하지 마!”
“앗, 죄송.”
미간을 좁히고 있던 놈이 정신을 차린 듯 손을 놓았다.
“선유 씨가 원하는 대로 하는 거죠. 참.”
“이상한 말 하지 마. 애초에 내가 원한 적 없거든?”
“싫으면 그만해도….”
“그냥 닥쳐.”
아쉬운 얼굴을 하며 놈이 얌전히 침대로 몸을 뉘었다.
가볍게 혀로 핥고, 찌르고, 침을 바르고… 입술로 문지르기까지. 또 한참이나 턱이 아플 정도로 혀를 움직였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시간이 갈수록 놈의 신음은 줄어들고 헐떡이던 호흡이 진정됐다. 초조한 마음이 커져서 뒤늦게 혀를 조금 더 사용해 살기둥을 핥아 올렸다.
숨을 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안 가득 놈의 향으로 가득했다. 힐끗, 눈을 치켜뜨니 묘한 얼굴을 하고 있던 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선유 씨. 힘들면 그만해도 돼요. 노력한 건 알겠으니까…. 뭐, 두어 번쯤은 혼자 가게 해 줄게요. 응?”
놈이 고개를 슬쩍 시계를 바라봤다. 내 시선도 놈을 따라 움직였다. 시발…. 벌써 25분이란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허탈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자 놈이 서둘러 나를 포장했다.
“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댔어요!”
아. 그러니까 내가 너무 못해서 흥분이 안 된다는 소리 아니야…. 씨발, 어이가 없네. 저 변태 입에서 그만하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내가 못…. 아니, 일단 잘하든 못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가 날아가게 생긴 게 문제지. 맨날 지 꼴리는 데로 좆을 세우고 헐떡거리던 놈이 왜 갑자기 무성욕자처럼 구는 거야?! 진짜 일반적 행위로는 흥분이 안 되는 건가? 이상한 기구라도 써야 해?!
게다가 피곤하다, 바쁘다를 습관처럼 달고 살던 게 그냥 한 소린 아니었는지, 놈은 졸려 보이기까지 했다. 놈이 옷을 입고 오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야! 장난하냐?! 습관적으로 제 성기를 매만지며 침대를 떠나려는 놈을 급하게 붙잡았다.
“아, 아직!”
“네에?”
“아직 5분 남았잖아! 아직 안 끝났어!”
내 고집에 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럼 내가 하고 싶어서 미친 애 같잖아! 꼴이 우습게 됐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5분밖에 안 남았어요.”
“차, 찬스!”
놈을 꼭 붙잡으며 찬스! 하고 외치자 놈이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아… 귀여워…. 중얼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지만 애써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5분만… 아니 10분만 더 줘.”
“그 대신 뭐 해 줄 건데요?”
놈이 거래에 응했다.
“네가 원할 때 손으로… 아니, 입으로 한 번 빨아 줄게.”
“…으응… 그건 그다지….”
시발, 언제는 제발 빨아 달라며? 시원찮은 반응에 서둘러 조건을 붙였다.
“키…스도… 한 번 정도는 받아 줄게!”
“정말요?”
놈의 눈이 커졌다. 긍정적 반응이었다. 이럴 때 고민할 틈을 주면 안 돼. 그럼 이제 15분 남은 거다?! 놈을 강제로 잡아 눕혔다. 못 이기는 척 떠밀리는 놈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기분 나쁜 얼굴을 하며 완전히 누운 놈의 얼굴로 숨통을 틀어막듯 베개를 들어 콱! 내리눌렀다.
“선유… 으풉!”
“고개 들지 마. 그러고 있어. 쳐다보면 목 졸라서 죽여 버릴 거야.”
살벌하게 경고하며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었다. 씨발!! 화장실 때문에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쯤 되자 오기도 있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게 느껴지는데, 이상하게 귀는 계속 화끈거렸다. 베개로 얼굴을 가린 놈이 앞을 보지 않는지 감시하며, 조용히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침을 잔뜩 발랐다.
젖은 손가락을 엉덩이 사이로 가져갔다. 안 그러려고 해도 손끝이 계속해서 떨려 왔다. 숨을 멈추며 부어 있는 구멍의 안쪽을 천천히 비집어 열었다.
다행이라 해야 하나, 어제가 바로 3일째의 날이었다. 반나절 동안 딜도를 넣고 있을 때만큼 풀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근육이 완전히 돌아온 상태는 아니었다. 흐윽. 손가락을 3개로 늘리자 조금 뻑뻑한 느낌으로 구멍이 벌어졌다.
손으로도 안 되고, 펠라도 안 되고. 시발. 여기까지 할 생각은 1도 없었지만 이젠 선택권이 없었다. 판이 좀 커진 건 인정하지만… 평생 저 새끼 앞에서 볼일 보고 싶지 않은걸! 어제도 했던 거다. 처음도 아니잖아. 왜 긴장하고 그래. 게다가 놈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우위에 있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만큼 난 필사적이었다.
놈은 여전히 베개를 들고 멍청하게 누워 있었다. 허리를 숙이고 구멍 안에서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봤다. 혼자 뒤를 풀어 본 적이 없어서 어느 정도가 괜찮은 건지 모르겠는데…. 대충… 3개를 넣어도 안 아픈데 괜찮지 않을까? 놈이 나한테 자주 쓰는 딜도도 이거랑 비슷한 사이즈였던 것 같다.
“퉤!”
놈의 성기 위에 감정을 담아 침을 뱉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놈이 몸을 움직였다. 움직이지 말라니까! 소리를 지르자 놈이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얌전히 베개를 끌어안았다. 젤도 없고 뒤가 괜찮은지 확신도 없으니 침이라도 잔뜩 발라 놔야 할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침을 대충 펴 바른 뒤 놈의 배 위에 찝찝해진 손을 닦아 냈다. 그리고 바로 놈의 몸 위로 올라타자 놈의 마른 몸이 단단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보지 마. 베개 꽉 붙잡고 있어. 보면 정말로… 죽여 버릴 거야.”
무릎을 세우고 앉아 천천히 몸을 내렸다. 윽. 엉덩이 사이에 놈의 물건이 닿자,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후회가 밀려왔다.
“어, 어? 선유 씨? 지금, 어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씨발! 고개 들지 말라니까!”
이제야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눈치챈 놈이 베개를 얼굴 위로 힘껏 끌어안았다. 안 봐도 웃고 있을 놈의 면상이 선명하게 보였다. 괜히 짜증이 올라서 베개 위를 주먹으로 퍽! 내리쳤다. 분명 아플 텐데도 놈은 신음 한번 하지 않고 얌전히 누워 기대로 몸을 떨었다.
서서히 구멍이 벌어지며 성기가 안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게 처음이라 그런지, 아님 뒤가 덜 풀린 탓인지 놈의 것이 과하게 크게 느껴졌다. 흐윽. 본능적으로 조여드는 구멍에 힘을 빼며 놈의 것을 삼키려 한참을 애썼다. 거부감과 수치심이 뒤엉켜 자연스레 놈을 거부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더 힘을 주고 버텼을 텐데, 이게 뭐야….
성기의 끝을 억지로 누르자 두꺼운 머리 부분이 내벽을 밀며 안으로 들어왔다. 몸을 조금 숙이자 묵직하게 뱃속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반쯤은 들어왔다 생각하며 아래를 더듬거리니 겨우 귀두 부분이 들어갔을 뿐이었다.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 줘.
역시 침이 젤을 대신하는 것은 무리였다. 자꾸 말라 건조해지는 탓에 안쪽이 뻑뻑하게 쓸려서 더욱 더디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무리하게 마찰하고 있는 살이 화끈거렸다. 손가락으로 계속 침을 덧바르며 어설프게 움직이고 나서야 겨우 반을 삼킬 수 있었다.
숨과 함께 참고 있던 피로가 몰려오자 그만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어중간한 자세로 반쯤 앉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나와는 상반되게 흥분한 목소리가 베개 뒤에서 웅얼거렸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 나 어떡하지…. 행복해서 죽을 거 같아요.”
그놈의 행복. 시발. 그럼 그냥 죽든지.
들이쉬고, 내쉬고-. 놈의 배 위에 양손을 올리고 한참을 심호흡하다 보니 어느새 까슬까슬한 음모가 느껴졌다. 젠장, 이 새끼 물건이 원래 이렇게 길었나? 오늘따라 뱃속이 깊어진 느낌에 속이 울렁거렸다. 속이 좋지 않아 습관적으로 배 위를 쓰다듬자 놈이 살짝 허리를 비틀었다. 기겁하며 놈의 뱃가죽 위를 찰싹! 내리쳤다. 시발, 움직이지 마!
화끈거리는 게 좀 진정되고 나서야 엉덩이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몇 번이나 느끼는 거지만, 살덩이가 안쪽을 빠져나가는 느낌은 섬뜩하기만 했다. 이질적인 감각에 구멍을 살짝 조이자 혀를 쓸 때보다 훨씬 더 단단해진 놈의 물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베개를 꽉! 쥔 놈의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으윽. 잔뜩 인상을 구기고 몸을 내리니, 내벽이 수축하며 놈의 것을 쥐어짜듯 조였다.
“하으….”
“읏.”
자연히 안쪽이 자극되며 아주 살짝, 앞쪽에 피가 몰렸다. 만지고 싶진 않았다. 놈과 하는 섹스가 뭐 좋다고 앞을 만지기까지 한단 말이야. 게다가… 그런 짓을 하면 진짜 뒤를 쑤셔서 흥분하는 변태 같잖아. 미약하게 아랫배가 찌르르 울렸지만 애써 모른 척하며 다시 다리에 힘을 줬다.
허리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심호흡을 하며 놈의 위에서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움직이자 슬슬 전신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온몸에 힘을 주고 반복되는 행위에 몸을 숙일 때마다 허벅지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하아…. 체력이 부족해…. 숨을 내쉬며 침대를 짚고 다리 위치를 옮겼다.
젠장. 언제 싸는 거야. 움찔거리는 거로 봐선 금방 쌀 거 같은데.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 상태였잖아. 설마 말 안 하고 이미 싼 건 아니겠지? 그러기엔 반응이 너무 얌전한데….
속으로 정신없이 고민하는 중 갑자기 놈의 손이 한쪽 엉덩이를 콱 움켜쥐었다.
“힉!”
“진짜, 너무너무 좋은데… 전희가 너무 길어요. 선유 씨….”
“보지 마! 쳐다보지 말라고! 눈 감아!”
“15분으로 되겠어요? 어림도 없을 것 같은데…. 애는 그만 태우고, 가게 해 주세요.”
허우적거리며 베개로 다시 놈의 얼굴을 가리려 했다. 하지만 놈은 멋대로 베개를 침대 아래로 던져 버리며, 다른 손까지 동원해 양쪽 둔부를 꽉 쥐고 벌렸다. 아직 실밥이 그대로 일 텐데 아프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성기를 물고 있는 구멍이 양옆으로 팽팽하게 벌어졌다. 흐윽! 예민해진 피부가 쓰라려 놈의 배를 때리듯 손으로 짚고 신음했다.
엉덩이를 움켜쥔 손이 어서 움직이란 것처럼 위쪽으로 힘을 주며 밀었다. 얼떨결에 놈이 유도하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반쯤 허리를 들어 올렸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듯 놈의 손은 계속해서 내 엉덩이를 밀어 올렸다. 어, 어디까지…! 그렇게 한참을 빼다 보니 구멍 끝에 귀두 부분이 걸리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는 뺐다가- 다시 넣어야죠.”
그리고 구멍이 완벽하게 놈의 성기를 삼킬 때까지, 두 손은 엉덩이를 놓지 않았다. 재촉당한 탓에 혼자 할 때보다 움직임이 급했다. 때문에 안쪽이 더 예민하게 열을 내고 있었다. 아 젠장.
“빨리 싸게 만들고 싶으면 구멍을 더 조여요. 처음엔 잘 조였잖아. 왜 날이 갈수록 헐렁거리지?”
“닥… 쳐!”
닳고 닳은 창부 취급에 손톱을 세워 놈의 배를 긁었다. 말이 긁었다지, 사실 할퀸 것에 가까웠다. 배 위에 아파 보이는 붉은 자국이 선명했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긋 웃으며 구멍을 조이라 재촉했다. 점점 세게 쥐어지는 둔부가 아파서 덩달아 구멍도 함께 조였다. 의도치 않게 놈을 만족 시키는 꼴이었다.
“좋아. 그렇게… 하아, 엉덩이를 비벼요.”
놈의 몸과 완전히 밀착한 상태로 앞뒤로 엉덩이가 비벼졌다. 놈이 강제로 골반을 잡고 문지르는 통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음모가 쓸리며 구멍 안을 꽉 채운 놈의 물건이 꿈틀거렸다. 이를 꽉 물고 앓는 소리를 내자 놈이 칭찬하듯 엉덩이를 토닥였다. 몸이 한번 흔들릴 때마다 뱃속이 휘저어지며 단단한 살기둥이 안쪽을 꾹꾹 눌렸다. 동시에 함께 흔들리는 내 성기를 놈이 장난스럽게 톡톡 건드렸다. 그렇게 만지면… 읏.
놈의 손을 피하듯 몇 번 더 허리를 문지르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근데 내가 왜 놈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거지?
“선유 씨가 너무 여유를 부리니까, 내가 팁을 주는 거잖아요.”
“아앗!”
놈이 가볍게 허리를 튕겨 올렸다. 덕분에 몸이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하자, 놈이 내 허리를 붙잡으며 중심을 잡아 앉혔다. 그리고 내가 반박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요구를 해 왔다.
“다리 벌려요. 더. 더…. 활짝 벌려서 내 자지 물고 있는 거 보여 줘요.”
굳이 놈의 말을 따를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화장실 내기로 시작한 일이 왜 이렇게 된 걸까. 물어 뭐하냐. 시발. 또 내 탓이지. 뒤늦게 놈에게 반항하며 다리를 오므리자. 결국은 놈이 힘으로 다리를 잡아 벌렸다. 유연하지 못한 몸이 한계로 벌어지고, 다시 움켜쥔 엉덩이가 밀어 올려지며 움직임을 재촉당했다.
치부를 활짝 드러낸 외설적인 자세에 수치심이 배가 되어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열이 오르는 눈가에 입술을 꽉 물고 애써 소리를 참았다. 놈이 검붉은 살기둥을 삼켰다 뱉는 구멍과 그 위에서 맥없이 흔들리는 내 성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콧김을 뿜었다.
“만져요. 앞에. 만지는 거 좋아하잖아.”
어쩌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으니 놈이 손수 내 손을 성기 위로 옮겨 줬다. 그래도 자위까지 하진 않았다. 수치스러운 건 둘째치고, 놈의 성기를 품고 움직이는 게 힘겨워서 앞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꼬투리를 잡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놈은 그냥 내가 앞을 붙잡고 있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놈의 흥분과 비례해 내 체력은 급격하게 바닥을 보였다. 이미 아까부터 힘들었거든. 놈의 재촉을 받으며 엉덩이를 흔들다 또 중심을 잃고 놈의 위로 쓰러졌다. 전신이 땀범벅이 돼서 헐떡였지만, 놈은 아주 상쾌하고 쾌적한 얼굴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단기간 마라톤을 달린 기분이었다. 연신 힘을 주고 버티던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다리 사이가 욱신욱신하는 걸 보니 순전히 운동 때문은 아닌데…. 쓰러진 몸을 일으키며 다시 다리에 힘을 주자, 허벅지 근육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내 머리를 뒤로 넘기며 놈이 다정하게 물었다.
“힘들어요? 그만할까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뒤에 이어진 놈의 말이 아니었다면 아마 포기했을 거다.
“물론 화장실은 포기해야겠지만, 선유 씨가 힘들면 이쯤 하고….”
“시, 싫어….”
내가 뭐 때문에 이 꼴을 하고 있는 건데. 하지만 이제 격하게 움직일 자신도, 힘도 없었다. 무리야, 이제 무리라고.
“그럼요?”
놈의 초롱초롱한 눈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찬스 투? 어지간히 그 말투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도와…줘.”
“응?”
“아 씨발…. 찬스!”
손 안 댄다고 해 놓고 이미 다 손댔잖아. 이왕 도와줄 거면 어설프게 하지 말고 제대로 하라고! 당장 싸고 꺼지란 말이야! 시발!
“그럼, 뭘 어떻게 도와줄까요?”
놈이 살도 없는 내 가슴을 좋다고 주물렀다. 손을 떼어 내려 했지만 꼬집듯이 살을 움켜쥐는 통에 대신 놈의 손목을 붙잡고 신음했다.
“아윽…. 저, 정액…을….”
“아니죠. 선유 씨.”
놈의 웃음이 짙어졌다.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올라가며 놈의 엄지가 유두를 꾹 눌렀다.
“제대로 말해야죠. 제 구멍 안에 좆물을 채워 주세요- 라고.”
좆물이… 뭐?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하지만 여기까지 해 놓고 포기하는 건 너무 억울한데…. 습관적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하도 깨물어서 곧 피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고 싶진 않지만, 이 짓을 끝내려면 해야 해. 절대 내가 원해서 하는 게 아냐…. 몇 번이나 속으로 되새기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제… 구멍 안에… 조, 좆….”
“좆이요? 구멍 안엔 이미 좆이 있는데?”
“하윽!”
놈이 낄낄거리며 허리를 힘껏 쳐올렸다. 순간 쿵, 하고 전기가 몸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눈을 크게 뜨고 손에 쥐고 있던 내 성기를 꽉 붙잡자 놈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붙잡지 않았으면 무언가가 흘러나올 것만 같아서였다.
“좆이면 되겠어요?”
“안, 아니… 좆무, 아앗!”
“제대로 말해요.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쿵, 쿵. 성인 남성을 위에 태우고 버겁지도 않은지 놈은 몇 번이나 몸을 위로 흔들었다. 골반이 세게 부딪칠 때마다 앞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더 강해졌다. 우, 움직이지 마! 그만! 소름 돋는 ‘그 느낌’이 순식간에 발끝으로 옮겨갔다.
제대로 말하라니까? 놈의 웃음소리가 괴로울 정도로 귀를 희롱하자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말, 말할, 아앗! 좆물! 좆물을, 하윽…! 좆물 주세요! 구멍 안에 흑, 좆물 채워 주세… 아앗!”
“그렇게 원한다면 얼마든지요.”
놈이 미친놈처럼 웃으며 환호했다. 갑자기 몸을 일으킨 놈 때문에 순식간에 시야가 뒤로 넘어가며, 동시에 허리가 꺾이듯 접혀 올라갔다. 아주 간단하게 상위를 차지한 놈이 내 양다리를 활짝 벌리며 다짜고짜 허리를 찍어 내리기 시작했다.
“앗! 아악! 하! 앗!”
방금 발끝까지 퍼졌던 감각이 아직 선명했는데, 퍽! 퍽! 쉬지 않고 박아 대는 통에 그 위로 계속해서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겹쳐졌다. 화끈거리고, 괴롭고, 그리고 찌릿거리는….
구멍 입구부터 뱃속 깊은 곳까지 열이 번지고 있었다. 거지 같은 첫날밤 이후로 젤 없는 삽입은 처음이었다. 놈이 움직이는 대로 내벽이 쓸리고 눌리며 아플 정도로 강하게 문질러졌다.
“싸 줄게요, 선유 씨가 원하는 만큼, 구멍에 잔뜩 먹여 줄게요!”
귓가에 숨을 내뱉으며 놈이 잔뜩 흥분해서 소리쳤다. 무서울 정도로 허리를 흔드는데 도망가지도 못하고 놈의 몸을 겨우 붙잡는 게 전부였다. 밀치는 대로 밀리고, 당기는 대로 끌려가며 신음했다. 이미 한계로 벌어진 다리를 더 세게 내리누르며 골반을 강제로 열고, 놈은 바들바들 떨며 첫 번째 사정을 했다.
놈이 정신없이 헐떡이는 나를 가볍게 뒤집어엎었다. 몸도 가누지 못하고 머리를 처박은 채 엎드리자, 놈이 내 엉덩이를 틀어잡으며 허리를 세웠다. 또다시 뒤를 벌려 오는 놈 때문에 울먹거리며 침대를 쥐어뜯었다.
“이미 쌌잖아! 아프단… 헉!”
갑자기 퍽! 하고 성기가 삽입됨과 동시에 다리 사이에서 짙은 액체가 또르륵 흘러나왔다. 허우적거리는 와중에도 성급하게 손을 내려 흔들거리는 물건을 붙잡았다. 몸을 지탱하고 있는 어깨가 쉬지 않고 시큰거렸지만, 어디가 아픈 줄도 모르고 연신 시트에 얼굴을 문질렀다.
두 번째 삽입은 처음보다 부드러웠다. 먼저 싸지른 정액이 조금이나마 젤의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놈은 제 것을 완전히 빼냈다가 벌어진 구멍을 구경하듯 벌리고, 다시 강하게 제 물건을 쑤셨다. 놈의 목적은 하나였다. 집요하게 한 곳을 괴롭히는 노골적 움직임에 비명을 지르듯 신음을 토해 냈다.
“싫, 아흐윽, 싫어! 거기, 하지… 아앗!”
“핫! 정말 싫은 사람 맞아요? 흐욱, 당신 계속, 큭, 손 흔들고 있는데?”
“히익, 아아앗-!”
정말 아프고 싫었다. 낯선 감각이 온몸을 기어 다니고 머리털이 쭈뼛거리며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도 난 계속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위로받으려고? 아니면 내가 정말 뒷구멍으로 느끼는 변태가 돼서? 지금 당장은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순간적인 본능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사정할 때까지 놈은 계속해서 허리를 흔들었다. 기뻐하며 바로 체위를 바꾼 놈은 웃다 못해 우는 것 같았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놈도 미친 듯이 움직이며 한 번 더 사정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한 듯 내 위로 쓰러져 누웠다. 하악, 하악. 누구랄 것 없이 거친 숨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그렇게 한참을 엎드려 있던 놈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안쪽을 누르고 있던 물건이 빠져나가자 허리가 절로 떨려 왔다.
“하아… 씻을까요?”
고개를 끄덕였다. 손발이 덜덜 떨려서 혼자 움직일 수가 없었다. 2일이나 연속해서 이런 거친 행위라니…. 놈의 도움으로 바닥을 딛고 힘을 주자 구멍 안에 고여 있던 것이 울컥하고 쏟아져 내렸다. 투툭, 바닥으로 떨어진 정액 덩어리를 본 놈의 성기가 또 흔들리고 있었다. 아까는 그렇게 안 서던 게…. 너무 지치고 짜증이 나서 놈이 침대에 엮인 구속구를 풀어 줄 때까지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대충 샤워를 끝낸 뒤, 옷을 입고 오겠다며 놈이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방안에서 힘없이 몸을 웅크리자… 뒤늦게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기 탓이야. 그런 이상한… 내기였으니까, 그래서 이 지경이 된 것뿐이야. 억지로 자신을 설득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기가 시작인 건 맞았으니까. 하지만 당연하다 인정을 하면서도 구석에 작게 피어난 불안을 숨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