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3화 (19/46)

“다녀왔습니다!”

놈이 큰 소리로 외쳤다. 빠른 발걸음이 방으로 다가오고… 벌컥! 문이 열리며 상기된 표정의 놈이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잘 있었어요?”

가방만 던져 두고는 쪼르르 달려와 내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전보다 놈의 이마에 땀이 더 송골송골했다. 밖이 더운가? 무릎으로 놈을 쳐올리며 찝찝함에 이불로 다리를 문질렀다. 악! 광대를 치인 놈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재갈을 풀어 준 놈이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쟁반 하나지만. 놈은 청소를 하는 동안에도 그 입을 쉬지 않았다.

“어휴, 이 먼지 좀 봐. 선유 씨, 혼자 얼마나 즐겁게 논 거예요. 내가 없는 데도 그렇게 신났어요? 서운해라…. 어라, 물이 그냥 그대로네. 마시긴 한 거예요? 근데 왜 오줌은 왜 이렇게 많이 쌌지?”

놈이 히죽거리며 소변이 담긴 페트병을 흔들었다. 아침에 물을 많이 마신 탓이었다. 시발, 네가 음식에 이상한 짓을 하니까…! 하지만 이미 얼굴엔 열이 잔뜩 올라 있었다. 평소보다 많이 쌌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놈 앞에서 하는 것보다야 미리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왜 참았냐, 내 앞에서 그렇게 보여 주고 싶었냐 할 게 뻔하잖아!

찰랑찰랑. 페트병 흔들리는 소리에 귀까지 붉어졌다. 그, 그만 흔들…! 놈에게 불평하려 입을 열다가 화들짝 놀랐다. 놈이 병뚜껑을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시발, 또라이 새끼. 서, 설마 마시는 건….

쪼르륵….

아,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병 안에 있던 내용물은 변기 안으로 쏟아졌다. 왠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요. 선유 씨.”

놈은 이제 병에 물을 채워 헹구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 화장실 안에서 놈은 물었다.

“오늘 뭐 하고 놀았어요?”

“…….”

“그냥, 나 없을 땐 뭐 하고 노나 궁금해서~. 응? 뭐 했어요?”

뜨끔. 괜히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오늘따라 긴장할 일이 많네. 근데 어제는 이런 거 전혀 안 물어봐 놓고, 갑자기…. 설마 뭔가를 알고 있는 건 아니 겠…지?

“말 못 하네…. 괜찮아요. 사실 다 알고 있어요.”

시발, 진짜야…? 어느새 손바닥 안이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덥지도 않은데 자꾸 땀이 났다. 꾸깃. 죄 없는 이불을 있는 힘껏 움켜쥐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버텼다. 아직 뭔갈 한 건 아니잖아…. 괜히 쫄지 말자. 그때, 놈이 휙! 하고 뒤를 돌며 말했다.

“내 생각 했죠?”

헤헤, 놈이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 시발…. 이래서 죄짓고는 못 산다는 거다. 방금 못해도 수명이 1년은 줄었을 거야. 말 못 할 안도감에 이불 속에서 놈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새벽이 됐다.

탁, 탁, 탁.

놈의 행동은 점점 대담해졌다. 하긴, 내 집에 몰래 들어와서도 이랬던 놈인데 제집에선 오죽할까. 이쯤 되니 무서워서라도 잠을 잘 수가 없게 됐다. 정말 곯아떨어졌을 때 내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입 좀 벌려 봐요. 옳지… 그렇게.”

오늘은 대담하다 못해 과감한 수준! 놈이 내 입안에 손가락 2개를 꽂아 넣고 이를 벌렸다. 자는 척을 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순순히 입을 벌리자,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혀를 살포시 어루만지며 자지러졌다. 혀끝이 짰다.

“예뻐 죽겠어. 안 예쁜 데가 없잖아. 하앗… 싼다, 큿.”

벌어진 입안으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들어 왔다. 단 한 번도 원하진 않았지만, 하루에 몇 번이나 먹고 있기에 익숙한 것이었다.

“하아, 하아….”

놈은 내 입을 벌려 고여 있는 정액을 확인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역겨워 죽겠는데 뱉어 낼 수 없는 상황에 이불 속에 있는 손만이 불안하게 떨렸다.

“여길 누르면 삼킨다던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 입을 틀어막더니 목을 꾹꾹 눌러 댔다. 자는 사이에 죽이려는 건가? 지금이라도 일어날까? 겁을 먹은 도중 목이 졸리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목구멍이 꿀렁거렸고, 자연스럽게 놈의 정액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읍!

“먹어요. 선유 씨. 옳지, 옳지. 잘 먹네…. 음란하긴. 좆물이 그렇게 좋아요?”

먹이려 한 건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해서 먹은 것마냥 말했다.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결국 욱-, 하고 작게 구역질을 해 버렸다.

“앗, 아팠어요? 너무 세게 눌렀나.”

다행스럽게 본인의 잘못으로 치부하며 내 목을 살살 문질렀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듯, 혹은 개를 쓰다듬듯. 일그러진 애정을 담아 놈은 그렇게 한참 동안 날 어루만졌다. 토닥토닥. 이불 위를 가볍게 토닥이던 놈이 한숨을 내뱉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아… 나중엔 선유 씨가 입으로 직접 해 줬으면 좋겠다….”

죽었다 깨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씨발. 수건을 내 얼굴을 닦은 뒤, 잘자요- 하고 인사를 건넨 놈이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욱…!”

놈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벌떡 일어나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당장이라고 게워 내고 싶지만 그래서야 내가 깨어 있었다는 걸 놈이 알게 될 것이다. 비참했지만 두려웠다. 혹여나 놈이 알게 될 것을. 그리고 그 뒤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걱정과 거부감이 스스로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참아야 해. 지금은 참는 것밖엔 할 수 없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야…. 

매트리스 사이로 손을 넣자 작고 차가운 것이 만져졌다. 무력한 나를 대신해서 손끝에 닿은 못이 날카로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선유 씨, 일어나요. 밥 먹어야죠.”

서늘하게 피부 위를 어루만지는 손길에 눈을 번쩍 떴다. 언제 잠들었지? 그것보다 간밤의 역겨운 행위 탓인지 입안이 텁텁하고 비렸다. 미간을 좁히고 혀를 굴리자 놈이 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웃었다. 

그런데… 근래에 그래 왔듯이 출근 준비로 허둥거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여유로움을 넘어 행복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에 약간의 의아함을 담아 놈을 올려다봤다.

“오늘은 좀 늦게 출근해도 돼요. 그러니까 앞으로 4시간 정도 선유 씨랑 더 있을 수 있어요.”

출근이란 단어에 잠시 시무룩해졌지만, 금세 상기된 얼굴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나를 번쩍 안아 들고 화장실로 간 놈이 익숙한 손길로 세면대에 물을 받았다. 목에 수건을 받치고, 젖은 손으로 내 눈곱을 떼어 내고…. 내가 할…. 에이, 가만히 있어요. 어린아이를 다루듯 꼼꼼하고 부드러운 손길은 여전히 부담스럽고 낯설기만 했다. 양치 후 입을 헹궈 내는 동안 내 칫솔을 물고 있는 놈의 추행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 착해. 우리 선유 씨.”

난동 한 번 없었던 세안에 놈은 퍽이나 만족한 듯 보였다. 입술을 바들바들 떨다 결국 못 참겠다는 듯 내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기 전까진 말이다. 작은 욕설과 함께 놈의 귀를 물어뜯으려 하자 놈은 비명을 지르며 금세 거리를 벌렸다.

아침 세안이 끝나면 놈이 가장 즐거워하는 식사 시간이었다. 내가 식탁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는 동안, 놈은 매번 뭐가 그리 신나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목 구속구와 의자를 연결해서 묶었다.

완성된 식사가 식탁 위로 옮겨졌다. 따끈따끈 김이 오르는… 밥? 평소라면 죽이 올라와야 하는데.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몇 가지 반찬이 더 올라왔다. 그리고 이제는 당연시된 놈의 자위….

“하아, 선유 씨. 나 봐줘요…. 내 거 봐줘요.”

탁, 탁, 탁…! 답답한 앞머리 사이로 번들거리는 두 눈이 나를 향하고 있다. 명백하게 거부감을 보이는 나를 보며 놈은 아침저녁으로 보란 듯 이 짓을 해 댔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머리를 흔드는 검붉은 살덩이. 놈의 물건은 당장이라도 싸지를 것처럼 단단하게 부풀어 있었다.

“선유 씨…! 흣!”

놈이 몸을 떨자 노랗고 탱탱한 계란말이 위로 정액이 흩뿌려졌다. 윽….

“하아, 오늘부터는… 밥 먹어도 될 것 같아…요. 후-. 계란말이 맛있겠죠?”

네 정액이 뿌려진 계란말이겠지. 생략된 단어를 입안으로 웅얼대며 발끝을 오므렸다. 

“아~.”

모습을 갈무리할 생각도 없이 마주 앉은 놈이 젓가락으로 가운데 있던 계란말이를 집어 내밀었다. 끈적해 보이는 액이 기름과 함께 주르륵 흘러내렸다. 흉측한 비주얼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어라? 선유 씨? 놈은 여전히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지만, 식탁 위에 올라온 손가락이 탁, 탁, 거리며 카운트를 세듯 움직였다. 저게 무슨 뜻인지, 얼마까지 셀는지는 몰라도 끝이 좋지 않을 거란 건 알 수 있었다. 놈의 눈치를 살피며 느릿하게 입을 벌렸다. 그제야 식탁을 두드리던 소리가 멈췄다.

계란말이가 반쯤 입으로 들어왔다. 가볍게 베어 물자 고소함과 비린내가 동시에 코를 찔렀다. 굳이 따지자면… 비린내보다는 고소함이 더 강했다. 하지만 기분이란 게 말이야, 무시할 수가 없다니까. 역한 느낌에 당장이라도 입안에 있는 걸 뱉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삼켜.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삼켜. 숨을 참고 대충 씹은 음식물을 알약을 먹듯 꿀꺽, 넘겨 버렸다.

“맛있어요?”

놈은 강요하지 않았다. 늘 상냥하게 물었을 뿐이다. 그리고 난 늘 대답하지 않았다. 맛을 느끼기 전에 이 행위 자체가 너무 끔찍했으니까…. 평소와 다름없는 침묵이 익숙한 듯, 놈은 숟가락으로 밥을 한술 뜨며 혼잣말을 이어 갔다.

“선유 씨를 위해 하루에 10알만 한정판매하는 유기농 계란을 주문했어요. 크기는 좀 작은데 확실히 부드러운 것 같기도 하고…. 어때요? 전에 먹은 계란말이보다 더 맛있어요?”

“…어.”

“그렇죠? 역시 유기농이라… 네?!”

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상태로 굳은 놈이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어? 어, 진짜? 진짜로? 지금 대답한 거예요?”

“…….”

“웬일로 순순히? 정말 맛있어요?”

해 줘도 지랄이네! 갑자기 놈에게 수긍했다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계획이 성공하기 전까진 놈의 비위를 좀 맞춰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이번엔 막연히 뜬구름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시간만 허락한다면 못으로 손발을 묶고 있는 가죽을 긁어서 끊어 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놈에게 걸리지 않고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게 문제지. 그러니 그 전까지 괜한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비굴하게 비위를 맞춰서라도 놈이 조금이나마 방심해 준다면….

“진짜 맛있어요?”

놈이 되물었다. 믿을 수 없다는 말투였지만 얼굴은 기대감으로 터질 듯 보였다.

“…어.”

이를 꽉 깨물고 중얼거렸다.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웅얼거리는, 정말 작은 목소리였지만 놈은 확실히 들은 듯했다. 힐끔 바라본 놈은 황홀한 얼굴로 떨고 있었다.

“나, 나 요리 잘한다고 했잖아요.”

듣고 싶은 말을 들어 기쁜지 놈은 몇 번이나 몸을 들썩거리며 작게 웃었다. 헤헤. 멍청하게 웃으며 놈이 반쯤 남은 계란말이를 내게 내밀었다. 자, 맛있는 계란말이예요. 아~.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을 벌려 놈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아까보다 더 역했지만 참을 만했다. 아니 참아야 했다. 늘 먹었잖아. 오늘도… 참으면 돼.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한입, 한입. 인내와 함께 음식을 삼킬 때마다 놈의 웃음은 진해졌다.

“헤헤…. 선유 씨가 맛있다 그러니까 너무 좋다…. 있잖아요. 나는 요리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선유 씨가 맛있게 먹을까, 어떻게 해야 선유 씨가 좀 더 잘 먹어 줄까, 늘 고민했어요. 그래서 재료도 제일 좋은 것만 고르고, 조리법도 신경 썼는데….”

놈이 내 눈치를 보며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똥 마려운 놈마냥 우물쭈물하더니, 입에 담고 있던 말을 토해 내듯 빠르게 내뱉었다.

“뭐가 제일 맛있어요?”

질문하는 눈이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냥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괜히 입을 열었다 낭패를 볼 것 같은…. 길어지는 침묵에 놈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대답하기 어렵구나. 그렇죠? 나 열심히 했으니까, 다 맛있었을 거야. 안 그래요?”

“…….”

“게다가 내 사랑도 듬뿍 들어가 있고~ 그리고… 선유 씨가 좋아하는 정액도 항상 듬뿍 뿌려 줬잖아요.”

사랑과 정액. 묘하게 이질적인 두 단어에 놈이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했다. 그 모습에 오소소 소름이 올라왔다. 시발, 내가 언제 그딴 걸 좋아했다고…! 욱하는 감정에 주먹을 꽉 틀어쥐며 놈을 외면했다. 보고 있다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놈은 일부러 그러는 듯 내 시선을 따라 움직이며 깐죽거렸다.

젓가락질 한 번에 폭신하고 부드러운 계란말이가 촉촉한 속을 내보였다. 반으로 갈라진 그 모습이 어찌나 먹음직스러운지. 놈이 그중 작은 부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소스를 찍듯, 그릇 위에 흐르는 정액을 훔쳤다.

“자, 아~.”

놈은 다시 내게 젓가락을 내밀었다. 

“당신이 맛있다고 한 정액 범벅 계란말이에요. 오늘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 줘요.”

약간 식은 계란이 담뿍 올려진 놈의 분비물을 놓치지 않고 꼭 붙잡고 있었다. 아, 너무 싫어. 하지만 마지못해 또 입을 벌리자 놈이 푸흣,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잘 먹네. 얼마나 좋아하는 거예요. 정액이, 큭큭, 그렇게 좋아요?”

“흐웁….”

“맛있어요? 응? 선유 씨. 말해 줘요. 맛있어요?”

“…….”

몇 번이고 숨을 참으며 덩어리진 음식을 꿀꺽 삼키길 반복했다. 말해 줘요. 응? 기어코 대답을 들을 때까지 물을 예정인 것 같았다. 후회스러웠다. 구역질이 쏟아질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쾅쾅! 분통을 터트리며 발로 매트리스를 내리찍었다.

“으우으어!!”

씨발, 개새끼! 아니지! 개는 무슨 잘못이야! 개보다 못한 새끼! 아악!

몇 시간을 더 그러고 앉아 사람 성질을 살살 긁더니, 조금 전에야 옷을 갈아입고 출근했다. 중간에 몇 번 못 참고 화를 내긴 했지만, 평소에 비하면 너무 약한 반응이라 그런지 놈은 들리지 않는 시늉을 하며

“오늘따라 얌전하네요. 이제야 내 진심을 알아주는 거예요? 맨날 이러면 좋겠다.”

라고 기뻐했다. 징그러운 새끼! 여기서 나가기만 해 봐! 놈의 끈적끈적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몸서리를 치며 침대에 귀를 문질렀다. 어떻게 매번 맨정신으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내 사고로써는 놈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몇 번이고 사랑한다고 감미롭게 속삭여도 내게는 그저 미친 범죄자, 그뿐이었으니까!

놈 몰래 숨겨 뒀던 못을 꺼내 들었다. 개자식… 두고 봐. 꼭 네놈이 좌절하는 꼴을 보고 말 테니까.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손, 발 중 더 필요한 곳은 어딜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내 판단은 발이었다. 놈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손은 앞을 향해 묶여 있었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손가락을 쓰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발은 걷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가깝게 묶여 있었다. 발만 풀리면, 침대랑 연결된 줄만 끊어 낸다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양손으로 못을 꽉 쥐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가죽을 긁어 내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각

손끝에 만져지는 파인 자국이 조금씩 선명해져 갔다. 다만 두께도 그렇고, 구속구가 워낙 견고한 물건이었기에 쉽게 끊어질 것 같진 않았다. 혹시 오늘 안에 못 끊어 낼 경우도 생각해서, 놈이 잘 보지 않는 뒤쪽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속도 또한 더디기만 했다.

이제 시작이건만… 끝이 보이질 않았다. 가능할까? 이걸 벗어 낼 수 있을까? 아니지. 의심은 사치에 불과했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해야만 했다. 평생 여기서 저놈하고 뒹굴며 살 순 없잖아!

미친 듯이 손목을 움직였다. 사각! 사각! 그러다 불편한 자세로 혹사당하는 팔이 저릿거릴 때쯤에 잠시 팔을 쉬게 하고, 곧 다시 가죽을 긁어 내길 수천 번. 혹은 수만 번. 아픈 게 대수냐!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땀이 나는 것도 모르고 움직였다. 반복 또 반복. 바닥엔 어느새 새카만 가루가 수북했다.

삑삑삑삑삑, 띠리리-

필사의 집중이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뭐야,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 놈이 집으로 돌아온 소리에 허둥지둥 탈출의 잔재를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못도 마찬가지였다. 땀 때문에 가죽 찌꺼기가 들러붙어 당황했지만 어떻게든 이불로 털어 내려 애를 썼다. 저벅저벅. 놈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발…! 침대 위로 몸을 던짐과 동시에 방문이 벌컥 열렸다.

“다녀왔…, 선유 씨 뭐 해요?”

어정쩡하게 침대에 걸쳐 있는 모습을 보고 놈이 말꼬리를 흐렸다. 적잖게 당황했지만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애썼다. 꿈틀거리는 내게 다가온 놈이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 줬다.

“… 드, 등 가려워서.”

“앗, 내가 도와줄게요!”

아무렇게나 내뱉은 한마디에 놈은 들고 있던 가방을 집어 던지다시피 하며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힐끔 둘러본 바닥은 깨끗했다. 끈적이는 피부도, 이불도 마찬가지였고. 휴우…. 다행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걸릴 뻔했네. 놈의 손끝이 가렵지도 않은 등을 긁어 댔다. 여기요? 아니면 여기요? 돼, 됐어, 이제 안 가려워. 떨어져.

“방이 더웠어요? 왜 이렇게 땀을 흘려요. 아니면… 뭐 몸 쓸 일이라도 있었나 봐요?”

“…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그러자 여태 나를 마주 보고 있던 놈이 음흉하게 웃었다.

“나 없을 때… 자위라도 한 거 아니에요?”

“시발… 아냐!”

괜히 심장이 꽉 조여들어 화풀이하듯 빽!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내가 넌 줄 알아?!

“아니에요? 에이…. 다음엔 내 생각하면서 한번 해 줘요. 그런데 그것도 아니면 왜 이렇게 젖었을까?”

“…….”

“응? 알려 줘요. 오늘 뭐 했어요? 궁금하단 말이에요.”

이상한 낌새를 챈 걸까. 놈이 물그릇을 치우며 끈질기게 물어왔다. 하필이면 못을 던진 곳과 가까이 있는 페트병을 집어 들 때는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놈의 모습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가르쳐 줄 거예요?”

끈질기기도 하지!

“그냥… 더워서 그랬어.”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끝까지 파고들 것 같은 놈의 집요함에 변명하듯 둘러댔다.

“더워서? 방이 더웠구나. 알겠어요. 온도를 좀 내려 둘게요.”

놈은 옷을 갈아입고 돌아오겠다며 제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틈에 바깥 눈치를 살피며 발을 묶고 있는 구속구를 매만졌다. 놈이 돌아온 뒤 밝아진 방 불 아래서 살피니, 몇 시간 동안 한 일이 헛짓은 아니더라. 구속구의 표면은 확실하게 데미지를 입고 있었다. 바로 끊어 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조금만 더 긁어 내면 힘으로 끊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선유 씨.”

오늘 새벽도 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이어진 하이텐션이 진정 될 기미가 없이, 평소보다 더 신이 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선유 씨.”

이젠 딱히 조심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안 깬다고 생각하는 걸까? 발소리도 죽이지 않고 다가와 침대 위로 올라왔다. 끼익-. 그 무게에 매트리스 한쪽이 눌리며 놈의 체온이 다가왔다.

“자요?”

꿀이 떨어질 것 같은 다정한 목소리로 질문을 하며 내 머리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놈의 손길이 지나는 자리가 쭈뼛거리며 예민하게 날을 세웠다. 이젠 완전 멋대로 만지는구나. 눈가를 가리고 있던 머리가 귀 쪽으로 넘겨지고, 자연스레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놈이 실없이 웃었다.

“요즘 잠이 많아졌네…. 애기 같아. 귀여워.”

그렇게 몇 번 더 쓰다듬던 놈이 가볍게 내 볼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매일 밤과 같은 일을 시작했다.

찌이익-, 지퍼 내리는 소리에 긴장을 감추기를 수 분. 탁, 탁, 살이 맞닿는 소리와 함께 놈의 숨소리가 귓가를 찌르듯 희롱했다.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지는 사내의 살 내음에 오늘은 어디를 더럽히려나…, 그 생각뿐이었다. 눈이든 입이든 얼른 싸고 꺼져 버려!

하지만 내 생각이라도 읽은 건지, “하읏, 헉!” 하고 단말마의 신음을 참던 놈은… 아무리 기다려도 사정하지 않았다.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는 거로 봐선 일부러 사정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같, 후욱, 같이 가요….”

무서운 말을 작게 속삭인 놈이 천천히 내 위에 있는 이불을 걷어 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꽉 쥔 주먹을 숨기지도 못했다. 그저 원래 이렇게 잤거니, 하며 모든 게 자연스럽게 보이려 애를 썼다. 뭘 하려는 거지?

“예쁘다. 선유 씨 자지….”

그 한마디로 놈이 어딜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끼익-, 또다시 매트리스가 울었다. 놈이 침대 위로, 아니 내 위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오싹. 눈을 감고 있기에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단 두 번의 움직임으로 놈은 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미묘한 콧김이 음모를 간질였다. 젠장, 젠장! 당장이라도 꽉 쥔 손을 내려 음부를 가리고 싶은 충동이 가득했다. 놈이 내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싫었지만, 놈이 뭘 하려든 썩 달가운 일은 아닐 테니까.

“선유 씨….”

미, 미친?! 놈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내 성기를 입으로 덥석 물었다. 이를 꽉 깨물고 터져나갈 것 같은 신음을 참았다. 기억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날과 같았다. 놈이 내게 ‘닦아’ 준다며 처음으로 내 성기를 입에 문 날과….

놈의 입속은 미친 듯이 뜨거웠고, 놈의 혀는 마치 하나의 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징그럽게 움직였다. 츕, 추웁, 하…. 놈의 침이 고환을 타고 흘러내렸다. 쭙, 쭈웁. 입술을 조이며 혀로 살 기둥을 오르내리다 귀두를 물고 쪽쪽 빨기 시작했다. 아, 젠장 이게 무슨….

“우움, 선유 씨 자지 맛있어…. 하아, 너무 맛있어.”

움찔. 놈의 손이 엉덩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미 흘러내린 침이 윤활제의 역할을 했고, 입구를 지분거리던 놈의 손가락이 순식간에 안쪽으로 밀려들어 왔다. 끝까지 밀어 넣은 손가락이 안에서 작게 움직이며 다시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 안 돼…. 아랫배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날과 끔찍할 정도로 같았다. 진정해, 흥분하지 마!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전립선을 문지르는 놈의 손가락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미약하지만 확실하게… 발기하고 있었다. 여전히 놈이 끔찍하게 증오스럽고 무서웠지만, 그 감정조차 어쩌지 못하는 내 몸이 원망스러웠다. 이젠 이게 놈의 손가락 때문인지 입 때문인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자는 사람도 서는구나. 신기하네.”

이 혼란을 알 리 없는 놈은 태평하게도 서 버린 내 것을 보며 감탄했다. 이내 내 사타구니에서 처박고 있던 몸을 움직였다. 끼익. 뜨거운 손으로 내 다리를 매 만지며 일어나 가볍게 허벅지 위에 올라탔다. 흡…. 손보다 더 뜨거운 놈의 성기가 내 성기와 맞닿았다. 

“나랑 선유 씨랑. 같이 기분 좋아지는 거예요.”

커다란 손이 두 개의 살덩이를 한번에 부여잡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에 뭘 바른 건지 잔뜩 미끈거리는 통에 일반적 자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타인의 손이 닿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놈의 성기가 위로 올라가면 내 것도 따라 올라갔다. 가끔은 서로의 것이 미끄러지며 서로 방향이 엇나가기도 했다. 뜨거운 체온, 질척거리는 마찰. 그리고 놈의 신음 소리…. 모든 게 다 현실이라고 믿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솔직한 몸은 혼란 속에서도 착실하게 쾌락을 좇았다. 나도 모르게 살짝 허리도 흔들고 있었지만, 놈이 나보다 먼저 그것을 알아챘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선유 씨, 너무 좋… 흐윽, 너무 좋아, 선유 씨.”

연신 내 이름을 부르는 놈의 손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놈의 절정이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빨라, 빨라, 너무 빠르다고. 내 페이스에 비해 너무 앞서 있는 놈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한발 먼저 참고 있었기에 급하다는 건 이해하지만, 방금 발기한 나는 아직 사정감이 들지 않았다. 느끼기 싫다고 도리질을 치면서도, 본능이란 참 우스웠다.

“하앗, 흣!”

체온보다 뜨거운 액이 배꼽 근처에 흩뿌려졌다. 놈이 몸을 조금 일으키며 몇 번 더 손을 흔들자, 남은 정액이 모조리 내 몸 위로 쏟아졌다. 

윽. 결국엔 자기 혼자 싸 버릴 거면서 같이 기분 좋아지는 거예요- 라는 개소리는 왜 했던 거야. 물론… 내가 진짜 같이 싸는 것도 이상하지만….

내 꼴에 욕지기가 차올랐다. 순간적으로 내리쳤던 쾌락에 휩쓸려서는 한순간이나마 이대로 사정하고 싶다- 생각했던 내가, 정말 싫었다.

“하아…, 못 참고 먼저 싸 버렸어요. 미안해요. 같이 가고 싶었는데….”

놈이 잠든 나를 향해 사과했다. 말은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면서도 목소리는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들렸다. 그래서인지 놈이 다시 내 성기를 손에 쥐었다. 아까에 비하면 훨씬 느긋한 움직임. 찔꺽거리는 야한 소리가 생생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위험해. 그만…. 이러다 진짜 싸겠어.

“이게 다 선유 씨 때문이에요. 선유 씨가 너무 야하니까, 못 참고 싸 버렸다구요.”

큭큭. 내 탓을 하며 놈은 작게 웃었다. 성기를 쥐고 있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움찔거리면서, 야하게 허리도 흔들고. 그러니까… 그걸 보고 더 참을 수가 있겠어요?”

나도 모르게 놈의 쾌락에 탑승하려 했던 것이 들통나자 수치심에 전신이 붉게 물들었다. 어두웠기에 놈도 눈치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은 알 수 있었다. 속에서부터 타들어 가듯 죄책감과 수치심이 가슴을 조여 왔다.

“이번엔 선유 씨도 가게 해 줄게요.”

놈은 그리 말하며 몸을 숙였다. 흣! 놈의 혀가 성기의 끝을 찌르듯 핥아 올렸다. 혓바닥 전체로 귀두를 문지르며 원을 그리던 놈은 들뜬 신음을 내뱉으며 쪽,쪽. 내 성기 여기저기에 입을 맞춰 왔다.

화르륵! 작게 피어오르던 불씨는 수치심을 먹이 삼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랫배가 팽팽하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 느낌에 당황도 잠시. 할짝거리며 점차 아래로, 아래로 움직이는 놈의 움직임에 어쩌지도 못하고 이를 꽉 깨물었다. 이제 놈은 한쪽 고환을 입에 담고 손가락 끝으로 요도구를 지분거리고 있었다. 흡, 안… 돼…!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바로 사정할 것 같았다.

“그런데요, 선유 씨.”

내 이름을 부르는 놈의 손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놈의 목소리는 방금까지의 흥분이 거짓인 듯, 아주 평온하게 물어왔다.

“언제까지 자는 척할 거예요?”

무, 뭐? 섬뜩한 감각이 정수리까지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어이없게도, 죄를 진 기분이 들었다. 하면 안 될 짓이라도 저지른 어린애마냥…. 쿵쾅거리며 아플 정도로 심장이 날뛰었다. 그렇다고 바로 눈을 뜰 수도 없었다. 놈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생각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반응부터 생각까지, 놈은 이미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안 일어날 거예요?”

“…….”

“…그래요?”

“…….”

“알겠어요. 그럼 계속 누워 있어요. 어차피 나는 계속할 거니까. 참고로 알려 주자면, 곧 당신 구멍에 이것저것 넣고 기분 좋게 만들어 줄 예정이에요. 그러니까 편하게 누워 있….”

“씨발, 하기만 해 봐….”

그냥 하는 농담이 아니라 놈은 진심이었다. 결국, 끝까지 듣지 못하고 눈을 번쩍 떴다. 심 봉사도 눈뜨고 도망가게 할 개새끼 같으니.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놈은 기뻐하며 내 성기에 입을 맞췄다.

“로맨틱하네요. 내 키스로 눈을 뜨다니. 비록 당신 자지랑 키스했지만요.”

놈은 동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 황홀한 얼굴로 혀를 움직였다. 마치 진짜 키스를 연상시키는 움직임이었다. 흐, 읏…. 이미 단단해진 성기를 문지르는 뜨거운 감각에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그러자 놈이 나와 눈을 마주하며 웃었다.

“씹… 꺼져! 당장 꺼져!”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러웠다. 소리치는 목소리의 끝이 덜덜 떨리는 걸 놈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 마! 뒤늦게 무릎을 세워 놈을 밀어내려 하자, 그것보다 빠르게 놈이 내 다리를 붙잡아 눌렀다.

“밤마다 당신이 너무 귀여워서, 그대로 덮치고 싶은 걸 몇 번이나 참았는지 몰라요.”

“너, 그만…, 큿, 언제부터… 알았어.”

“한 3~4일 전부터?”

맙소사. 그럼 처음부터 내가 안 자는 걸 알고 있었단 소리잖아? 놈은 이제 내 성기를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제 볼에 문질렀다.

“당신이 진짜 잘 때는 말이에요, 입술에 내 자지를 물려 주면 쪽쪽거리면서 엄청 맛있게 빨거든요. 그게 얼마나 귀여운지 알아요? 그럼 선유 씨 입안에 적어도 2번… 아니 3번은 싸 줘야 선유 씨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단 말이에요. 선유 씨는 내 정액을 엄청 좋아하는 음란한 사람이니까….”

“거…짓말이야! 어디서 개소리를…!”

“거짓말 아니에요.”

놈은 억울하다며 뒷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두운 방에서 휴대폰이 환하게 빛나며 놈의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비쳤다. 화면을 몇 번 터치함과 동시에 ‘흐으응.’ 하고 보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놈이 씨익 웃으며 그것을 내 눈앞에 내밀었다.

‘선유 씨, 선유 씨….’

‘으웅….’

‘아 해요. 옳지…. 맛있어요? 내 좆 맛있죠.’

‘으우웅….’

‘하, 하으, 자지가 그렇게 좋아요? 음란해라-.’

‘으…음….’

“씨, 씨발!! 너 그거 당장 안 지워!!”

“안 지워요. 내 컬렉션인데 왜 지워요?”

영상 속에 난… 나는… 놈의 성기를 입에 물고 오물거리며….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그 수치는 배가 됐다. 내가, 내가 저런 짓을….

“아, 아냐, 저건 아냐. 아냐! 아니라고! 씨발!! 아아악!!”

“어어, 선유 씨. 밤에 소리 지르면 이웃 사람들이 싫어해요.”

“이, 이 개새끼야!!”

발작하듯 소리치는 나를 보며 놈이 두어 번 뒤통수를 긁적이다 몸을 일으켰다. 금방 돌아온 놈의 손엔 익숙한 재갈이 들려 있었다. 번쩍. 어두웠던 방에 불을 켜자, 놈의 분비물로 번들거리는 내 몸뚱이도 한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벌떡 서 있는 성기까지. 수치스러운 몰골에 성급히 이불을 당겨 몸을 가렸다.

“왜 가리고 그래요. 보기 좋은데.”

“꺼져! 손대지 마!”

놈이 이불 끝을 잡아당겼다. 엇! 순식간에 빼앗긴 이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신 손으로 중심을 가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래 봤자 침대 위였기에 놈이 다가오는 게 더 빨랐지만. 게다가 보고 싶지 않았지만… 놈이 움직일 때마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놈의 성기에 더 질색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으아악! 시발!

“선유 씨, 가만히 있어요.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 그래요.”

“가, 가까이 오지 마!”

방어 수단이라고는 몸밖에 없었다. 이제는 습관처럼 다리를 휘둘렀다. 시발! 저리 가라고! 변태 새끼야! 그 와중에 맞지 않으려 눈치를 살피는 놈의 시선이 간간이 내 성기에 머물렀다. 가끔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봐서는 또 병신 같은 상상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놈이 내 다리를 피해 조금씩 가까워질 때마다 그 혐오감은 배로 늘어났다.

“이 씨발!!”

찍, 찌직-. 발버둥을 칠수록 아주 조금씩, 찢기는 소리가 늘어나고 있었다. 종일 애쓴 보람이 이제야 보이네. 하지만 나도 놈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 난리 통에 아는 게 더 신기하지. 결국, 놈이 내 다리를 누르려는 것과 동시에, 힘을 이기지 못한 구속구가 몇 시간 동안 만들어 냈던 상처를 터트리며 풀려 버렸다.

퍽! 그리고 아악!

의도치 않게 튀어 나간 오른쪽 다리가 놈의 얼굴을 걷어찼다. 그러자 놈이 비명을 지르며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지금이야!

“!!”

알몸인 건 중요하지 않았다. 놈이 쓰러져 있는 틈을 타 있는 힘껏 침대를 박차고 나갔다. 양손으로 방문을 열고 허둥거리며 현관을 향해 달렸다. 구속구를 뜯느라 잔뜩 부어오른 발목이 시큰거렸지만 상관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밖이…!

“서, 선유 씨!!”

“안 돼!!”

쿠당탕! 뒤에서 껴안듯 달려든 놈 때문에 식탁 의자와 함께 덩어리가 되어 바닥을 굴렀다. 나보다 좀 더 앞쪽으로 날아간 의자는 장식장을 건드리며 안에 있던 액자 몇 개를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가식적인 정신병원 사진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무릎이고 어깨고 욱신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젠장! 저 문만 나가면! 저 앞이 밖인데…! 당장은 탈출에 실패했다는 공포보단 아쉬움과 좌절이 더 컸기에, 뒷일 생각 않고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쳤다.

“놔! 놔! 놔아아!!”

“선유 씨, 다쳤잖아요! 선유 씨! 어, 어떻게 해, 또 다쳤어. 선유 씨.”

놈이 내 허리에 올라타 몸을 내리눌렀다. 움직이지 마요! 피나잖아요!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소리쳤다. 아마도 놈이 울고 있는 모양인지 등 뒤로 뜨뜻한 액체가 툭, 투툭. 규칙 없이 떨어졌다.

“선유 씨, 많이 아파요? 여기 다 까졌잖아, 아! 진짜 속상하게….”

“씨바알!! 진짜!!”

눈물이 핑 돌았다. 아파서가 아니었다. 억울하고 아쉬워서, 그래서 눈물이 났다. 이왕 끊어질 거면 이 새끼 없을 때 좀 끊어지든가. 왜 하필 지금인데! 거기에 이왕 걷어찰 거면 아예 일어나지 못하게 더 세게 걷어차든가… 시발 이게 뭐야. 속절없이 솟아난 눈물이 멈출 생각도 없이 줄줄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선유 씨, 괜찮아요? 응? 대답 좀 해 봐. 선….”

“씨발! 선유 씨, 선유 씨!! 시끄러워! 병신 같은…!”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끝까지 하기는커녕 눈물까지 쏙 들어가 버렸다. 짜증스레 돌아본 놈은 전혀 울고 있지 않았다.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건 절대, 우는 얼굴은 아니었다.

내 등에 떨어지고 있는 건 놈의 코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코피였다. 기절시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세게 차긴 한 모양이었다. 사람 코에서 이렇게 많은 피가 나오는 건 처음 봤던지라 사고가 잠시 멈춰 버렸다. 

이 와중에 피어오른 일말의 죄책감. 놈과 다르게 나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간이었기에,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이 스쳤다. 그게 설령 죽이고 싶었던 사람이어도 말이다.

“괜찮아요? 또 어디, 어디 다쳤어. 선유 씨, 팔 좀 들어 봐요.”

물론 말 그대로 스쳐 갔을 뿐이다. 그보단 놈에 대한 분노가 더 컸으니까. 이대로 과다출혈로 죽어 버려라! 확실하게 한 번 더 때리고 도망칠 수 있을까?!

“진짜, 속상해. 이게 뭐야…. 유리에 찔리진 않았죠?”

“놔! 시발! 놓으라고!”

놈은 걱정스레 말하면서도 내 팔을 붙잡아 제압했다. 세게 누른 건 아니지만 성인 남자의 체구가 몸 위에 올라와 있는 건 충분히 부담스러운 포지션이었다. 그나마 버둥거리던 다리도 곧 놈의 무릎에 짓눌리며 꼼짝도 할 수 없게 됐다.

놈은 급한 대로 식탁에 있던 식사용 구속구로 내 발목을 다시 포박했다. 몇 번이나 용을 쓰고 반항했지만, 일부러 그러는 건지 놈은 내가 아픈 곳을 골라 누르며 괜찮냐고 물었다.

“시발, 놔! 이거 안 놔?! 풀어! 내보내 줘!!”

“이걸 정말 끊으면 어떻게 해요.”

안아 들려다가 하도 난리를 피우자 결국 짐짝처럼 들려 방으로 끌려왔다. 놈은 망설임도 없이 침대 밑에 숨겨 뒀던 못을 꺼내 들었다. 어, 어떻게….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놈은 약간 화가 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꼬물꼬물 뭘 하나 했더니, 겨우 이거였어요? 이 못 때문에 다치기까지 하고…. 나쁜 못!”

휙! 하고 거실로 못이 날아갔다. 챙그랑! 바닥에 깔린 깨진 유리조각과 못이 부딪히며 듣기 싫은 소음을 냈다. 애초에 내가 다친 건 놈이 날 붙잡았기 때문이다. 못을 탓하며 중얼대듯 말하는 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음산하고 어두웠다. 거기에 코에선 여전히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기에 그 모습이 배는 험악해 보였다. 긴 앞머리를 가볍게 털어 낸 놈이 내 앞에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설마 내가 선유 씨를 진짜로 혼자 뒀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 하지만 이 방엔….”

“저기. 저기. 그리고 저기에요.”

놈의 손끝이 방의 세 군데를 가리켰다. 거실 쪽 문과 화장실 문과 창문. 하지만 아무리 봐도 보이는 건 없었다. 그러자 놈은 친절하게 내 손을 붙잡으며 설명까지 곁들였다.

“다른 건 찾기 힘드니까… 저기, 창틀 모서리에 보여요? 작고 동그란 거요. 응. 저거.”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였다. 아마 놈이 알려 주지 않았다면 계속 부품쯤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같이 있어도 이렇게 그리운데…, 어떻게 내가 선유 씨를 두고 나갈 수 있었겠어요. 밖에서도 선유 씨를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견딜 수 있던 거예요.”

“씨발….”

한껏 애잔해진 얼굴을 보고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 내가 멍청한 놈이지. 놈이 나를 정말로 무방비하게 뒀을 리가 없었다. 남몰래 도청기까지 설치했던 놈이다. 그런데 제집에 뭐 하나 안 해 뒀을 리가! 나도 했던 걸 놈이 못하겠어?! 

분명 방을 다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보질 못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보이지 않을 뿐, 놈의 눈은 사방에 있었다. 단순히 보이질 않는다는 이유로, 놈의 구역이라는 이유로 더 해이하게 판단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선유 씨가 뭘 해도 내버려 뒀던 건, 내가 당신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믿음 같은 소리 하네! 너랑 나 사이에 그런 게 존재할 것 같냐?!

“하아…. 그런데 기어코 날 슬프게 하네요…. 이거 흉 지면 어쩌지…. 정말, 요즘 왜 이렇게 다치는 거예요.”

남자 몸에 흉 한두 개쯤 느는 게 큰일은 아니었지만, 놈은 정말 심각한 얼굴로 내 팔꿈치나 무릎 같은 곳을 살피며 혀를 찼다. 여전히 화가 난 듯 인상을 쓴 채로 말이다. 왜 피는 지가 펑펑 쏟으면서 내 자잘한 타박상에 더 마음을 쓰는 걸까. 놈의 옷은 이미 코피로 얼룩진 지 오래였다.

“그냥, 그냥 나 좀 놔줘! 풀어 줘! 풀어 달라고! 씨발! 내보내 줘!!”

“선유 씨, 제발…. 우린 행복할 수 있다니까요.”

“난 아니라고! 난 행복하지 않다는데 왜…! 날 좀 놔줘!”

“이러지 마요.”

“아, 안 풀어 주면 혀 깨물고 뒈져 버릴 거야!”

“네?!”

사실 정말 혀를 깨물 생각은 없었다. 놈이 내가 다치는 걸 하도 싫어하니 흥분한 상태에서 도박성으로 내뱉은 말이었지. 하지만 놈은 내 발언에 상상 이상으로 놀란 듯, 순식간에 내 입안으로 제 손가락들을 쑥! 하고 쑤셔 넣었다. 덕분에 더 놀란 내가 반사적으로 이를 꽉 물어 버렸다. 으드득-…. 듣기만 해도 아픈 소리가 머리를 통해 울렸다.

“아야야야!!”

아파요! 아파요! 하면서도 전혀 손을 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입안으로 손가락을 더 밀어 넣는 통에 턱이 아플 지경이었다. 놈은 당장 내가 죽기라도 할까 겁먹은 얼굴로 내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동시에 다른 손이 우악스럽게 내 입을 벌리며 바닥에 있던 재갈을 필사적으로 밀어 넣었다.

“으윽…. 무서운 소리 하지 마요! 나 죽는 꼴 보고 싶어요?”

“으우우아아어어!”

죽어! 차라리 죽으라고! 전달되지 않은 언어가 입안을 맴돌며 놈을 저주했다. 

새 구속구로 나를 침대에 다시 묶은 놈이 구급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팔꿈치, 무릎, 옆구리, 등, 어깨, 얼굴. 안 다친 곳이 없었다. 어쩐지 더럽게 아프더라. 까지고 멍든 곳에 약을 바를 때마다 쯧, 하고 놈이 혀를 차는 소리가 늘어갔다. 

약을 바르는 손엔 내 것임이 분명한 잇자국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더불어 핏방울도. 하지만 어떤 상처도 놈의 코피에 비하면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흐르는 양이 아까보다 많이 줄긴 했어도 간혹가다 한 방울씩 떨어지며 침대를 적시고 있었다. 치료가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놈이었지만, 굳이 그걸 지적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유리에는 베이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다음부턴… 이러지 마요. 나 정말 속상해요. 당신이 다칠 거면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나아….”

놈이 풀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나를 풀어 주면 될 것을 왜 이리 어렵게 사냐고! 발작하듯 옹알이를 하는 나를 무시하고, 놈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상처 수습이 끝나자, 내내 슬픈 멜로영화의 주인공처럼 무게를 잡고 있던 놈이 한숨을 쉬며 구급상자를 닫았다. 

“하아, 그럼 이제….”

구급상자를 내려 둔 놈의 손엔 또 다른 낯선 상자가 들려 있었다. 절대 가벼워 보이지 않는 상자가 침대 위에 놓였다.

“아까 하던 걸 마저 해 볼까요?”

상자를 옆으로 와르르 쏟자, 작고 알록달록한 성인용 장난감이 굴러 나왔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왜 그래요. 내가 아까 분명 그랬잖아요. 이것저것, 선유 씨 구멍에 넣고 기분 좋게 해 줄 거라고. 나가고 싶은 것도, 아픈 것도… 다 잊어버릴 정도로 기쁘게 해 줄게요.”

놈은 웃었다. 하지만 평소 같은 생글생글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처음은….”

놈이 침대 위를 구르는 장난감들을 고심하는 눈으로 훑었다.

“아. 이게 좋겠네요.”

놈의 손에 집힌 건 진분홍색의 고무 덩어리. 전에 봤던 검은 것과는 그 모양부터가 확연히 달랐다. 작은 구슬을 나란히 붙여 둔 듯 길고 올록볼록한 모양과 한 뼘 정도의 사이즈. 마치 유아용 장난감을 연상시키는 밝은 색상 때문에 언뜻 보기엔 성인용품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

그리고 순식간이었다. 놈이 내 발목을 붙잡고 침대 하단부로 끌어 내렸다.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며 시트가 엉망으로 구겨졌다. 뒤늦게 발버둥을 쳤지만, 내가 놈에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놈이 나를 뒤집어엎는 것이 더 빨랐다. 

헛, 하는 순간 침대에 머리가 처박히고, 엎드린 상태에서 무릎이 양옆으로 벌어졌다. 무방비한 다리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닿았다. 딸깍. 플라스틱 마찰음과 동시에 차가운 액체가 엉덩이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딸기향…. 미묘하게 딸기향이 풍겨 왔다.

“구멍이 움찔거리고 있네요. 기대돼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놈의 말을 부정하듯 몸을 꿈틀거렸지만 우악스레 골반을 붙잡은 놈은 내 반항 따윈 귀엽다는 태도로 웃었다. 놈의 손가락에 걸린 장난감이 구멍 주위를 비비며 젤을 넓게 펴 발랐다.

“힘 빼요. 안 그럼 진짜 다치니까.”

웃음 섞인 경고에 발악하던 몸이 단단하게 굳었다. 기구로 아래를 벌린 일이 생각난 탓이었다. 게다가 전엔 뒤가 풀어져 있기라도 했었지. 이번엔 정말 아래쪽도 피를 볼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장난감의 얇은 끄트머리가 강제로 뒤를 비집고 들어왔다. 미, 친…! 단어가 되지 못한 비명이 찔꺽거리는 소리를 잡아먹었다.

놈에게 뒤를 쑤셔지는 게 처음도 아니었지만 자주 경험했던 일도 아니었다. 낯설기만 한 행위는 여전히 내겐 공포 그 자체였다. 겨우 끝부분이었지만 이물질이 구멍을 파고드는 감각이 생생했다. 으으읏-. 앓는 소리가 재갈 사이로 흘러나오자 놈이 달래듯 엉덩이를 토닥였다.

“조금 더 넣어 볼까요?”

질문이 아닌 통보였다. 두 번째 마디가 안쪽으로 들어왔다. 발가락과 구멍이 동시에 조여들었다. 그만해, 제발 그만. 애원하듯 속삭였지만 일말의 아픔도 없이- 세 번째 구슬 역시 내 안으로 자릴 잡았다.

“으으….”

젤 때문이 분명했다. 게다가 손가락보다 조금 더 두꺼울 뿐이었고…. 의지와 상관없이 뒤를 조일 때마다 안쪽에 자리한 장난감이 과할 정도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물감을 참지 못하고 온몸에 힘을 줬다. 시트에 눌린 상처가 쉼 없이 욱신거렸다.

“넣기만 했는데… 좋아요?”

뒤에서 여유롭게 지켜보던 놈이 둔부를 가볍게 내리쳤다. 찰싹-. 마른 마찰에 파드득 몸을 떨자, 깊지 않게 들어와 있던 세 번째 구슬이 도망치듯 밖으로 밀려 나갔다.

“엇, 뱉으면 어떡해요! 아니면 설마, 움직여 달라는 건가요? 이렇게?”

놈이 말꼬리를 높이며 장난감을 쑥-! 밀어 넣었다. 흐읍! 빠진 구슬보다 더 많은 수가 밀려들어 왔다. 안쪽이 가득 차는 버거움에 반사적으로 엉덩이를 앞쪽으로 빼 들었다.

“아니면 이렇게?”

이번엔 들어온 속도에 비해 아주 천천히…. 놈의 검지에 걸린 장난감이 주르륵 딸려 나갔다. 흐으욱-. 강제로 배설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올록볼록한 장난감의 표면이 꽉 조인 구멍에 걸치며 마지막 구슬만을 남겼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한번 물면 어지간히 놓기 싫어하네요. 구멍으로 물고 있는 게 그렇게 좋아요?”

좋아할 리가 없잖아! 웅얼거리는 비명에 놈이 피식거리며 다시 구슬을 밀어 넣었다. 어때요, 좋아요?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놈은 쉬지 않고 느리게 손을 움직이며 물었다.

물고 있는 재갈이 뿌드득- 하고 갈리며 새로운 잇자국을 새겼다. 그만, 그마안! 이제 제발…! 낯선 감각에 등골이 오싹거리며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마치 섹스를… 연상시키는 노골적인 행위에 당장이라도 놈이 장난감을 뽑아내고 제 물건을 박을 것만 같아서 겁이 났다. 그리고….

“…선유 씨 자지 섰어요.”

싸아악…. 전신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아냐! 시발! 아니라고! 재갈에 막힌 부정이 신음으로 항의했지만, 놈은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내 몸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니라고 계속 도리질을 쳐도 놈의 손안에 잡힌 성기는 어느새 단단하게 발기돼 있었다.

“구멍만 쑤셨는데… 하핫!”

무서웠다. 나는, 이 느낌을 알고 있었다. 처음은 놈이 나를 욕조에 엎어 놓고 뒤를 만졌을 때-. 그때 처음으로 강제적 발기를 경험했었다. 그래서 놈이, 이 행위가 더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아예 모르는 것보다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라고…. 한 번이, 두 번으로, 그리고 몇 번이나 반복되는 상황에 제대로 된 반항조차 못 해 보고 익숙해져 버릴까 봐….

“으우우!!”

“앙탈은. 귀여워서 미치겠네.”

다리 사이로 내리눌린 성기에 놈의 입김이 닿았다. 소스라치며 앞으로 도망치려 하니, 놈이 허벅지를 세게 붙잡아 당기며 쪽, 쪽, 내 엉덩이에 입을 맞췄다. 가볍게 이로 긁고, 입술을 모아 세게 빨고, 혀로 부드럽게 핥고….

“하아, 선유 씨…. 엉덩이 너무 부드러워….”

제 얼굴을 내 엉덩이에 문지르며 신음했다. 동시에 구슬이 안쪽을 잔뜩 긁으며 퐁, 퐁, 퐁. 규칙적으로 괄약근을 희롱했다. 

“선유 씨는 전립선이 꽤 아래 있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입구만 대충 훑어도….”

“읏, 으!”

“기분 좋죠? 선유 씨.”

“흐으… 읍!”

놈이 연신 내 이름을 부르며 손바닥으로 장난감을 꾹 밀어 눌렀다. 헉! 끝까지 구멍 안으로 처박힌 장난감이 둥근 고리만을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내벽이 밀리며 놈이 말한, 그 빌어먹을 전립선에 꾸욱- 압박이 왔다. 사타구니가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허억! 그 오싹한 느낌에 발끝을 조이며 숨을 멈췄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채 적응하기도 전, 놈은 배려 없이 고리를 뽑아냈다. 흐아아!! 찔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에 담겨 있던 젤이 흘러나와 시트를 적셨다. 구슬 두어 개를 남겨두고 빼낸 장난감은 곧 다시 안쪽을 파고들었다. 

처음과 다르게 깊이감 있는 삽입에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싫어, 이제 그만…! 놈에게서 벗어나려 침대 끝으로 기어가자, 놈이 내 골반을 틀어잡고 힘껏 당겼다. 무릎을 세우고 엎드린 자세에 장난감을 물고 있는 엉덩이가 한껏 놈을 향해 솟았다.

“엄청 흔드네요. 음탕하긴, 싫다고 할 땐 언제고….”

놈의 비웃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좋아서 흔드는 게 아니었지만, 왠지 놈의 말대로 보이는 것만 같았다. 흐윽…. 네? 가고 싶다구요? 알겠어요. 놈은 내 신음을 좋을 대로 해석하며 다른 손으로 내 성기를 감싸 쥐었다. 따뜻한 손이 부드럽게 마사지를 하듯 움직였다.

“엄청 뜨거워요. 선유 씨 자지….”

엄지손가락이 성기의 끝을 세게 문질렀다. 읍…! 쾌락을… 느끼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분통 터지는 일이었지만, 아무리 도망쳐도 나는 놈의 침대 위였다. 예민한 부분을 실컷 자극당하고 있는 통에 전신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기분 좋아요? 쌀 것 같죠?”

눈을 꼭 감고 도리질을 쳤다. 동시에 놈이 장난감을 빠르게 뽑아냈다.

“흐으으!!”

순간적인 배설감에 허리가 바짝 섰다. 감각의 여운으로 허벅지가 파르르 떨며, 비어 버린 구멍을 다신 내주지 않을 것처럼 꽉 조였다. 이런 걸 몇 번이고 더한다면…. 안 돼, 더 이상은 못 하겠어…!

“더 흔들어 봐요. 너무 야하다.”

다시 안쪽을 파고드는 장난감을 피하려 했던 것뿐이다. 그걸 지켜보던 놈은 내가 야하다며 기뻐했다.

“꼬리가 달린 건 별로 취향이 아니었는데, 선유 씨가 이렇게 엉덩이를 잘 흔드는 줄 알았으면 하나 사 둘 걸 그랬네요.”

의도찮게 놈에게 유흥 거리를 제공한 셈이었다. 뒤늦게 움직임을 앞으로 제한했다. 그러자 놈 역시 감상은 끝났는지 내 골반을 세게 붙잡아 왔다. 아, 안 돼! 싫어! 내 비명과 동시에 또다시 놈의 장난감이 뒷구멍을 헤집었다.

“흐으!”

머리가 뜨거워서 눈을 꾹 감았다. 젠장! 나한테 왜, 무슨 권리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선유 씨?”

훌쩍거리는 콧소리에 놈은 끝까지 밀어 넣던 장난감을 잠시 멈췄다.

“선유 씨… 울어요?”

놈이 아까보다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울어요? 이게 싫어서 그래요?”

‘이게’라고 물으며 놈은 장난감을 꾹- 눌러 넣었다. 안쪽 가득 들어오는 이물질에 도리질을 치며 엉덩이에 힘을 줬다.

“싫어요? 이거, 정말 싫어요?”

이번엔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제대로 내 의견을 묻는 놈 때문에 지금이라면… 내 말을 들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지금 기댈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침대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살짝 들어 놈을 바라봤다. 그리고 끄덕끄덕. 젖은 눈으로 마주한 얼굴에 놈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 얼굴 뭐예요. 바, 반칙이야….”

손가락 사이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내가 뭘 했는데? 어쨌든 그렇게 한참 얼굴을 가리고 있던 놈이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선유 씨가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아, 이렇게 쉽게 들어줄 거라고는 생각 못….

“스스로 내보내 봐요.”

그럼 그렇지. 개자식!

“선유 씨가 뒷구멍으로 물고 있는 걸 예쁘게 뱉으면, 더 이상 이걸로 괴롭히지 않을게요.”

이미 망상을 시작한 놈이 황홀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해? 말아? 두 가지 선택을 저울질하며 고뇌하는 동안 놈은 제 사타구니를 옷 위로 매만지며 들뜬 숨을 내뱉었다.

계속했다간 어떻게 될지 꼴이 뻔했고, 놈이 시키는 대로 하면… 잠깐은 수치스러울지언정 당장의 두려움은 해소할 수 있을 터였다. 깊게 고민할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0초 줄게요.”

기다리는 것이 버거웠는지 놈이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10, 9, 8, 7…. 빠르게 줄어드는 숫자에 머리가 하얗게 비어 버렸다. 하, 하면 되잖아. 한다고!

“흣.”

급한 마음에 흣! 하고 배에 힘을 주자 내벽이 밀려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놈의 눈에도 그게 보였는지 숫자를 세던 입이 조용해졌다. 주르륵-. 잔뜩 힘을 준 구멍이 열리며 물고 있던 장난감을 밀어냈다. 구슬이 하나, 하나… 입구를 스쳐나갔다.

“흡!”

안쪽에서 내밀어진 무게를 이기지 못한 장난감이 순식간에 아래로 뽑히듯 빠져나갔다. 종아리 위로 떨어진 고무는 체온을 담아 뜨거웠다. 힐끗 돌아보니, 놈은 내 구멍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왠지 뱃속을 관찰당하는 불쾌한 느낌에 엉덩이를 꽉 조였다.

“잘했어요, 선유 씨.”

놈이 입꼬리를 활짝 당기며 내 엉덩이를 토닥였다. 미약한 해방감에 힘이 쭉 빠져 침대 위로 쓰러졌다. 떨어진 분홍 장난감을 주워 침대 아래로 내던진 놈이 쪽, 쪽, 아까 그랬듯 몇 번이고 내 엉덩이 위로 키스를 했다.

그리고 딸깍…? 뚜껑이 열리는 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놈은 아까의 그 젤을 다시 짜고 있었다. 왜? 눈이 마주치자 놈이 배시시 웃었다.

“왜 그렇게 봐요? ‘그걸’로 괴롭히지 않는다고 했지, 다른 걸 안 쓴다고는 안 했어요.”

놈은 또 다른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으우!! 으으우욱!!”

야 이 개새끼야!! 놈의 손엔 아까 그것보다 조금 더 두꺼워 보이는 성기 모형이 들려 있었다. 시바알! 놈을 피해 앞쪽으로 빠르게 기었지만, 순식간에 내 위로 올라탄 놈에 의해 흉한 모양의 물건이 배려 없이 안쪽을 밀고 들어왔다. 모양에 한 번, 상황에 한 번.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던 터라 나도 모르게 신음을 내질렀다.

“흐으윽!”

빠듯한 느낌으로 입구가 벌어졌다. 점점 깊이 들어오는 장난감에 도리질을 치며 시트를 어지럽혔다. 이 개새끼! 안 한다고 했으면서!! 내 울음 섞인 신음에도 놈은 꿋꿋하게 장난감을 끝까지 내리눌렀다. 음낭 모형이 회음부를 지그시 눌러 왔다. 심지어 놈의 체온이 더해져 진짜 성기라도 품은 듯 느껴질 정도였다. 원망을 가득 담은 눈으로 놈을 노려봤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놈의 턱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으우욱!”

예고 없이 추삽질이 시작됐다. 그 강제적인 움직임에 놀라 엉덩이를 꽉 조였지만 그렇다고 멈출 놈이 아니었다. 오히려 힘을 잔뜩 준 탓에 조여진 내벽이 딜도의 크기를 생생하게 느꼈다. 뱃속이 괴롭게 꼬이는 것 같았다. 놈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찔꺽거리며 미끄러운 거품이 흘러나왔다.

상처가 날 정도로 아프진 않았지만, 아슬아슬하게 입구가 당겨 왔다. 거기에 정신적 고통까지. 원망의 신음이 커질수록 원치 않는 생리적 자극에 허리가 빳빳하게 굳어갔다.

“흐으으!!”

놈의 말대로 내 전립선은 꽤 얕은 곳에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몸이 이렇게…. 점차 붙은 속도감에 손가락 마디가 새하얗게 질리도록 시트를 쥐었다. 흐윽, 흐윽. 물건이 안쪽을 비빌 때마다 우는 소리가 절로 났다.

얼굴에 닿는 시트가 축축했다. 재갈 사이로 흐른 침과 눈물이 스며든 탓이다. 다리 사이의 시트도 축축했다. 젤이며 이것저것 흐르는 액체들 때문에. 하지만 이 정신에 아래쪽 상황이 어찌 되고 있는지는 몰라도 좋을 일이었다. 차라리 모르는 쪽이 더 속 편했다.

“어때요, 선유 씨. 좋아요? 응? 좋을 거야…. 내가 더 기분 좋게 해 줄게요.”

놈의 손이 사타구니를 파고들었다. 흠칫! 성기를 덥석 부여잡고는 뒤를 쑤시는 속도와 비슷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참 자극을 받고 있던 터라 사정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발가락이 오그라들고 허리가 말리며 경련했지만, 놈은 계속해서 사정을 주도했다. 순간적인 쾌락에 휩쓸린 전신이 격하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고…. 아, 쌀 것 같…!

“하아…, 싸요. 나한테 싸 버려요.”

“흐욱…! 흐…!”

몇 번이고 허리를 튕기다 멈추고 있던 숨을 내쉬며 굽었던 허리를 천천히 펼쳤다. 급격히 몰려오는 피로감에 조금씩 새어 나오던 눈물은 멈출 기미가 없이 침대 시트를 적셨다. 원래 이렇게 눈물이 많지 않았는데. 이 변태 새끼 때문에!

“뜨거워… 선유 씨 정액…. 으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놈은 제 손에 흐르는 정액을 입으로 가져갔다. 쪽쪽거리며 다디달다는 표정으로 손가락 구석구석을 핥는 놈. 나 대신 사정의 여운을 느끼는 듯, 놈이 황홀한 얼굴로 눈웃음을 쳤다. 하지만 내 눈엔 그 얼굴이, 놈의 존재 자체가 역겨울 뿐이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눈을 뜨면 전과 같이 출근을 준비하고, 회사에서 후임들한테 잔소리도 하고, 구시정이 내뱉은 헛소리에 웃어 주며…. 누가 봐도 그게 평범한 거잖아.

서러움에 더 굵은 눈물방울이 쏟아졌다. 나를 이 꼴로 만든 주제에, 내 정액을 핥으며 행복해하는 저 변태 같은 놈이 너무 미워서. 머릿속에선 몇 번이고 놈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찌르고, 베고, 내리치고, 불태우고. 놈은 괴롭게 비명을 지르며 죽었다. 하지만 현실은….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진 않았다 생각한다. 매달 정기적으로 기부도 하고 있고, 놈을 제외하고는 사고든 고의든 누구를 다치게 한 적도 없었다. 부모님에게 효도를 못 한 건 마음에 걸리지만… 그게 내가 이렇게 당할 이유는 안 되는 거잖아! 왜 나한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건데! 왜…!

“…그런.”

놈의 축축한 손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마약이라도 들이킨 것처럼 웃고 있던 얼굴은 어느 순간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그런 눈으로 좀 보지 말라니까요.”

묘한 오싹함이 전신을 휘어 감았다.

“지금… 지금 더 억울한 게 누군데 그래요. 내 마음도 몰라주고….”

놈의 눈꼬리가 축 늘어졌다. 그리고 우는 시늉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계속 나가려 그러고, 죽는다 하고! 여기 있으면 우리 둘 다 행복할 수 있는데, 가만히 있었으면…! 다칠 일도 없었을 텐데…. 속상하게 왜 그래요….”

시늉만은 아니었던 듯 놈의 눈가가 조금 붉게 변했다. 놈이 훌쩍거리며 내 팔뚝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상처를 쓰다듬었다. 미약한 고통에 미간을 좁히자 놈이 다른 상처로 손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나는 선유 씨를 믿고 사랑하는데… 당신은 나를 배신하려 했어요.”

놈이 제 입가에 반쯤 굳어 버린 피를 손등으로 훔쳤다. 핏덩이가 엉망으로 뭉개지며 얼굴로 번졌다.

“내가 편한 길을 놔 주겠다잖아요. 왜 자꾸 그 길을 자꾸 벗어나려 그래요. 네?”

인격 장애라도 있는 게 아닐까.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새카맣게 가라앉은 눈과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 평소에 멍청해 보이던 놈은 없었다.

놈이 침대를 타고 올라왔다. 여전히 따뜻한 손이 몸을 쓸어 올리며 목까지 올라왔다.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지난밤에 그랬듯 놈은 천천히 내 목을 문질렀다.

“선유 씨.”

목을 감싸고 있는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지난 기억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물밖에 아른거리는 놈의 얼굴, 턱까지 차오른 숨, 허공을 휘젓는 손…. 결국엔 날 죽이려는 거야? 난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거야? 무서워, 젠장. 무섭다고.

“쉬- 괜찮아. 괜찮아요. 떨지 마요.”

순식간에 다정해진 목소리가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작게 웃었다.

“실수…한 거잖아요.”

놈의 손가락이 목을 가볍게 눌러 왔다. 아주 살짝 눌렀을 뿐인데 말도 안 되게 숨이 가빠졌다. 진짜 숨통이 조인 건지,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놈이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선유 씨를 혼자 두고 출근해 버리는 바람에 좀 외로웠죠?” 

놈이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빌어먹을…. 단지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 혀를 깨물까, 살인을 해서 나갈까. 몇 번이고 죽고 죽이는 상상을 했지만, 사실 그 어느 것도 선택할 자신이 없었다. 이 상황조차 내가 선택한 게 아닌데 어째서, 왜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냔 말이야!

“그래서 심술부린 거구나. 그죠?”

이유는 상관없었다. 이 새끼는 분명 지가 원하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할 거니까. 그저 놈의 마음이 찰 때까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점점 세게 조여지는 손에 더 빠르게 고개를 흔들며 놈에게 동의했다. 시발, 맞아. 맞다고! 네 말이 다 맞다고!!

“역시, 그런 거였네요.”

피로 얼룩진 얼굴이 웃었다. 하지만 목에 있는 손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컥! 더 조여드는 손바닥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괜찮아요. 내가 이해할게요. 실수할 수도 있죠. 다음부터 이렇게 위험한 짓은 하지 않기로 해요. 네? 또 그러면 나 정말 화낼지도 몰라요.”

끄덕끄덕.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제야 목을 감싸고 있던 손에 힘이 빠졌다. 착하다. 우리 선유 씨. 놈이 나를 쓰다듬으며 입에 물려 뒀던 재갈의 버클을 풀어냈다. 공 안에 고여 있던 침이 주르륵 흐르며 베개 끝을 적셨다. 재갈을 얼마나 세게 물고 있던 건지 턱이 다물기 힘들 정도로 아려 왔다.

“흠, 그럼 어떻게 해야 선유 씨가 좀 덜 외로울까요. 있어도 늘 부족한 게 돈이라… 하하. 평생 우리 선유 씨 먹여 살리려면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인데.”

“흐윽!”

침대 아래로 돌아간 놈이 뒤를 막고 있던 딜도를 뽑아냈다. 예고 없는 행동에 막을 틈도 없이 신음이 터졌다. 재갈을 물고 있을 때와는 다른 소리였다. 왠지 더 수치스러운…. 입술을 꽉 다물며 계속해서 흘러나가려는 소리를 붙잡았다.

“일단은.”

놈이 들고 있던 것을 무심하게 등 뒤로 내던졌다. 

“이 귀여운 구멍을 좀 더 즐겁게 해 줄까요?”

“…아니야.”

“선유 씨가 좋아하는 곳을 실컷 만져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죽고 싶은 마음도…. 그런 나쁜 것들은 금방 잊어 버리게 해 줄게요.”

그러며 내밀어진 물건은 놈의 손안에서 우웅- 하고 작게 울었다. 작은 원을 그리며 꿈틀거리는 전동 기구였다.

“싫어! 제발, 제발 이건….”

이런 것까지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놈이 주는 쾌락은 두렵기만 했다.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놈이 시큰거리는 발목을 부술 듯 쥐고 당기는 바람에 어쩌지도 못하고 놈의 밑에 엎드렸다. 

놈은 즐거운 얼굴로 이게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진동하는지, 몇 단계까지 올릴 수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딴 거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

“기대되죠?”

“씨발!!”

“힘 빼요.”

“으- 아아! 그, 그만!”

“벌써 이렇게 기뻐하면 어떡해요. 겨우 1단인데.”

여태 강제로 자극당한 탓에 가벼운 진동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 들어왔을 때도 내 몸을 어쩌지 못했는데, 겨우 1단이 이 정도라고? 놈은 내게 3단까지 올릴 수 있는 버튼을 보여 줬었다. 버튼이 끝까지 다 올라간 뒤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예민해진 몸이 그 자극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흐, 흐읍-.”

“어어, 입 막지 마요. 좀 더 소리 질러도 괜찮아요.”

언제는 밤에 소리 지르지 말라면서!

“흑, 그마안- 멈추… 하앗! 흐… 으아!”

짝-! 놈의 손이 엉덩이 위를 내리쳤다. 아앗! 비명을 지르며 파드득 몸을 떨자, 덕분에 배 속에 있던 것이 엉뚱한 곳을 찌르며 움직였다.

“으- 흐익!”

순간 오줌을 지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뭘….

“와, 만지지도 않았는데… 또 갔네요. 3단으로 올리면 질질 싸는 거 아니에요? 하… 보고 싶다.”

“무, 무리야, 제발- 아!”

드드득-. 구멍에 꽂힌 물건이 머릿속까지 뒤흔들고 있었다. 무언가 매달릴 곳이 필요했다. 허우적거리는 손에 잡힌 거라곤 눅눅하고 냄새나는 시트뿐. 필사적으로 시트를 움켜쥐었다. 손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세게! 심지어 놈이 손에 쥔 것을 앞뒤로 움직이기까지 할 때는 제대로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또 갈 것 같아요? 당신 자지가 경련하고 있어요. 근데 조금 서운하네요. 이런 장난감보다야 내가 더 기분 좋게 해 줄 수 있는데.”

몸을 떨고 있으니 경련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놈이 계속 흔들어 댄다고 말을 하니, 순간 자신이 음란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아니야, 아닌데. 난… 이런 거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야.

“흐…아앗! 싫어-!”

달칵 소리와 함께 진동이 더 강해진 걸 느꼈다. 빠르고 강하게 내벽을 사방으로 찔러 대는 장난감에 비명을 지르며 도리질을 했다. 빠드득- 움켜쥔 시트가 한계까지 늘어났다.

“싫어! 싫-!”

놈에게서, 그리고 낯선 물건에게서 멀어지려 침대 끝으로 몸을 물렸다. 구멍을 희롱하던 물건이 반쯤 빠지며 입구를 강하게 자극했다.

“어, 도망가지 마요.”

“아욱!”

놈이 태연하게 내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손에 쥔 것을 안쪽 깊이 푹- 박아 넣었다. 허억-! 내장이 통째로 밀려 올라가는 기분…. 약간 아프게 느껴지는 자극에 배를 움켜쥐며 신음했다.

“아- 우, 흐읏!”

“하아.”

깊이 박힌 물건이 천천히 빠져나가자 놈이 동시에 숨을 몰아쉬었다. 게슴츠레 뜬 시야엔 놈의 입가를 핥아 올리는 붉은 혀가 보였다. 젖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놈은 제 사타구니를 아파 보일 정도로 세게 내리눌렀다.

“흑, 안…돼, 아-! 으앗, 또…!”

발끝이 꽉 조임과 동시에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으앗, 흑! 견디다 못해 허리를 튕기자 은연중에 참고 있던 정액이 또다시 놈의 손에 터져 버렸다.

몇 번이나 이어진 사정에 몸은 당연히 녹초였다. 울먹이며 숨을 몰아쉬자 놈이 붙잡고 있던 장난감에서 손을 거뒀다. 드디어 끝인 건가? 여전히 뱃속을 휘젓고 있는 장난감이 소름 끼쳐 본능적으로 이물질을 밀어냈다. 읏-! 끝부분이 미친 듯이 움직이며 입구를 지날 때는 나도 모르게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런데 장난감이 빠져나간 뒤에야 놈의 말이 떠올랐다.

선유 씨가 뒷구멍으로 물고 있는 걸 예쁘게 뱉으면, 더 이상 이걸로 괴롭히지 않을게요.

그래 놓고 놈은 바로 직후에 다른 물건으로 내 안을 헤집었었다. 설마…. 뒤늦게 겁에 질려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힐끔. 놈을 바라보자, 놈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

숨을 죽이고 자신의 바지를 반쯤 내린 채 자위하며, 놈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렇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야하잖아…. 이제 못 참겠어요.”

“헉!”

놈이 돌연 내게 달려들었다. 허겁지겁 제 바지를 벗어 던지고는 내 발목을 붙잡고 위로 밀어붙였다. 환하게 노출된 치부에 놈의 시선이 내리박힌다. 여전히 시트 위에서는 웅웅-거리는 장난감이 놈의 움직임을 따라 구르며 진동하고 있었다.

“하- 시발!”

한 번도 욕을 하지 않던 놈이 거칠게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콰직! 방해가 된다며 손에 쥔 것을 벽으로 내던졌다. 산산조각 난 파편이 엉망으로 바닥을 굴렀다.

“아- 흣, 예뻐요. 선유 씨. 어쩜 이 정도로 내 맘에 쏙 들 수가 있어요.”

어디가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든다는 지 모르겠다. 잔뜩 부어오른 구멍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놈의 하반신이 점점 가까워졌다. 설마, 지금 넣으려는….

“뭐, 뭘 하려는 거야.”

“조금만. 응? 조금만요.”

“하지 마, 하지 마! 제발….”

“딱 한 번만 뺄게요. 금방 쌀 거니까….”

“싫어!”

낯선 불안에 발버둥을 쳤지만, 놈은 간단하게 내 몸을 내리눌렀다. 반항하는 무릎을 나란히 붙잡아 제 어깨 위로 올려 버리는 놈. 허벅지에 비비는 놈의 단단한 성기가 느껴질 때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결국에 이렇게 되는구나. 마지막 남은 자존심에 방어적으로 힘을 꽉 주며 구멍을 조였다. 절대로 싫어! 끔찍해! 

“씨발, 싫, 어… 싫어, 싫어! 개새…! 그만하라고!”

“가만히 있어요.”

“싫어!!”

내 비명과 동시에 놈의 성기가 딱 붙은 허벅지 사이로 미끄러졌다. 왜 여길? 실수인 건가? 실수라고 하기엔 놈은 원래부터 허벅지가 목적이었던 것처럼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내 예상이 틀린 것에 대한 당혹감이 뒤엉켰다.

하지만 아니라고 하기엔 허벅지 사이를 퍽퍽- 소리가 나게 쳐 대는 놈의 행위가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다. 허벅지 사이로 검붉은 살덩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뭔가 발랐던 기억도 없는데 충분히 젖어서 미끄러지고 있었다. 직접 넣지만 않았지, 이건 섹스와 다른 바가 없었다.

놈의 시선이 움직였다. 내 얼굴부터 시작해서 가슴, 배 그리고 성기까지…. 한껏 젖은 두 눈이 난잡하게 나를 핥고 있었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직접적 삽입이 없다는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언제 놈이 돌변할지 몰라 두려웠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허벅지를 비틀고 놈을 걷어차고 싶었지만, 괜히 놈을 자극해 진짜 당하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 작은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놈의 행위가 끝나길 기다리는 수밖에는.

“아, 흐-.”

놈이 신음하며 손자국이 날 정도로 내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금방 싼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앗! 하는 신음과 동시에 놈이 허리를 튕겼다. 허벅지 사이에서 세차게 움직이던 놈의 시커먼 성기가 정액을 토해 냈다. 투둑. 뜨거운 액체가 가슴 위로 흩뿌려지고- 뻗어 온 손이 내 가슴 돌기를 문지르며 정액을 펴 발랐다. 여전히 허벅지 사이에 놈의 성기가 끼워진 채였다.

“끝났으면… 비켜….”

최대한 자극하고 싶지 않았기에 높아지려는 언성을 강제로 잡아 내렸다. 하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까지 붙잡진 못했다. 견딜 자신이 없었다. 이미 할 짓, 안 할 짓 다 한 뒤였다.

“하아, 하아…. 자꾸 그렇게 엉덩이 흔들면서 유혹하지 말아요. 오늘은 날이 아니니까.”

날이 아니라고?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하겠다는 경고와도 같은 말에 신물이 올라왔다. 놈은 나를 달래려 한 말일지 몰라도, 오히려 더 극심해진 긴장에 널브러진 시트 끝을 잡아당겼다. 조금이나마 몸을 가리기 위한 방어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마저 놈이 빼앗아 가는 통에 다시 알몸으로 놈을 마주해야 했다. 

경계 가득한 두 눈을 내려 보며 놈이 가볍게 허리를 움직여 여운을 즐겼다. 하아. 나른해 보이는 묘한 얼굴이 제 입술을 핥았다.

“순서라는 게 있는 거고…. 원래 이렇게까지 할 생각도 없었는데…. 선유 씨가 나빠요.”

한국말인데 알아들을 수가 없네.

“처음엔 조금 화가 났어요. 날 배신하고 나가려 하다니. 게다가 다치기까지 하고…. 당신이 나빴어요. 그래서 제대로 알려 주려 했는데, 선유 씨가 너무 야해서…. 그래서 조금 도를 넘었어요. 미안해요….”

한참을 침묵하던 놈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얼굴에 그렇게 피칠을 하고 수줍어 해 봤자 더 소름 끼치는데….

“그러니까 보채지 말아요. 첫날밤은 분위기 있게 하고 싶단 말이에요….”

개소리를 참 획기적으로 하네? 첫날밤이라 하면 보통 결혼한 사람끼리 보내는 밤일 터. 놈과 나에겐 해당이 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농담이 아니었는지 놈은 오늘은 참을 거예요-! 라고 말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허벅지 사이로 놈의 성기가 미끄덩거리며 뽑혀 나갔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힘껏 발기된 성기가 아래위로 흔들거렸다. 흉하고 위협적인 모양새에 당장이라도 놈이 다시 달려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놈은 그 상태 그대로 주변을 정리할 뿐이었다. 중간에 집어 던져 산산조각 난 전동 딜도를 보고 조금 울상을 짓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별다른 감정의 변화도 보이질 않았다.

함께 샤워를 하고 상처에 다시 약을 발랐다. 온몸을 뭉개는 통에 먼저 바른 약은 시트에 닦여 나간 지 오래였다. 약과 더불어 이런저런 액으로 더러워진 침구를 새로 갈고, 그리고 끊어졌던 구속구는 새것으로 교체한 뒤 조금 더 단단하게 침대와 연결했다. 이런 걸 몇 개나 사다 둔 걸까. 다시 몸을 옥조이는 무게가 생생했다. 또 망가트리면 안 돼요. 다치는 것도 안 돼요. 마지못해 끄덕이는 고개에 놈이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방문을 활짝 연 놈이 흠칫 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난장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방도 엉망이었지만 거실은 더했다. 깨진 액자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있었고, 놈의 동선을 따라 핏자국이 낭자했다. 누가 보면 살인현장인 줄 알겠네. 침대 위에서 봐도 끔찍한데 안 보이는 쪽은 오죽할까. 거기에 그 피가 코에서만 난 피는 아닌 것 같았다. 뒤늦게 놈이 절뚝거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냥 피가 부족해서 비틀거리는 줄 알았는데 아까 거실에서 유리를 밟은 모양이었다.

“휴…. 저게 선유 씨 피가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오싹한 발언이었다. 그래, 다행이지. 어쩌면 내 피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나마 입은 타박상도 놈이 그런 게 아니라 혼자 난리를 치다 박은 상처였다. 이것 또한 놈의 선택이겠지.

“피곤하죠?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먼저 자요.”

놈이 내 볼에 입을 맞췄다. 저는 청소 좀 하고… 뭐, 시간이 남으면 그때 잘게요. 이미 새벽을 훌쩍 넘긴 시간에 놈은 잠을 포기한 것 같았다. 어찌 됐든 알 바가 아니었지만, 몸도 마음도 지쳤기에 대꾸 없이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탁. 놈이 불을 끄고 문을 닫자 방안엔 앞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의 어둠이 내려앉았다.

더듬거리며 잡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욱신거렸다. 한껏 몸을 웅크리며 새 이불을 끌어안았다. 은은히 퍼지는 좋은 향기에 방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일이 거짓말 같았다. 그러기엔 허리도 엉덩이도… 상처들도 너무 아팠지만. 

“흑….”

다 울었다 생각했는데 지치지도 않고 눈물이 쏟아졌다. 시발… 이게 뭐야. 씨발…. 기회가 있으면 뭐해. 결국은 이 꼴인데. 죽고 싶다면서 죽지도 못하고…. 자존심이고 뭐고 너무 괴롭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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