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1화(2권) (17/46)

감금

놈이 말하길, 원래 이 집은 방음이 잘 되는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선유 씨 목소리가 너무 큰 탓에 벽을 넘어가네요. 이것마저도 내 탓으로 돌리며 놈은 처음으로 내게 옷을 입혔다. 며칠 전 부녀회장에게 곧 방음 공사를 할 예정이라 한 게 헛소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공사하는 분들 오시니까 얌전하게 있어야 해요. 혹시 모르니까… 옷은 입혀 줄게요.”

놈이 옷 아래 숨긴 구속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혹시- 라는 건 내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소리? 옷을 입긴 해도 손발이 묶인 게 뻔히 보이는데, 이 꼴도 괜찮은 건가?

“저기….”

“왜요?”

“아냐.”

의문은 곧 해결됐다. 놈이 날 붙들고 화장실로 향했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 앞에 날 내놓을 리가 없지. 혹시 모른다는 건 정말 혹시나 하는 상황을 말하는 거였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욕조였다. 빈 욕조였지만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여긴 싫어…. 놈은 우뚝 서서 버티는 나를 번쩍 안아 들더니 마른 욕조 안으로 앉혔다. 조용히 기다릴 수 있죠? 구속구를 욕조 수전에 묶으며 상냥하게 물었다. 역시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내겐 선택권도 의사도 존재하지 않았다. 착하다. 선유 씨. 놈은 내 모든 반응을 긍정으로 이해하며 재갈까지 물린 뒤 화장실을 나갔다.

잠시 후. 조용하기만 하던 집에 벨이 울리고, 네댓 명은 되는 것 같은 인파가 몰려 들어와 집안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바로 이 화장실 문밖으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놈이 아닌 다른 사람….

방 한번 썰렁하구만. 팀장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저쪽으로 빼자. 침대 조심하고, 여기 잡아봐. 끼익-. 

육중한 침대가 힘겹게 옮겨지고 있었다. 얼마나 무거웠으면 몇 번이나 내리고 드는 걸 반복할까. 나 혼자 옮기는 건 절대 무리였구나. 그리고 동시에 든 생각은, 이 공사가 끝나면 이제 내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놈이 유일하겠구나.

잠깐, 아주 잠깐은 저 사람들의 도움을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저들도 놈의 편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아닌 게 아니라 놈의 측근일 수도 있지. 만약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런 상황에 놈이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알고 있다. 지금 내 생각이 비참할 정도로 소심하다는 걸. 그렇지만 놈은… 내가 경험한 놈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완벽했다. 성격이나 그런 면이 아니라, 나를 가두기 위한 준비가. 놈에게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걸 생각하면 저걸 대비하고 있고, 저걸 생각하면 이걸 대비하고 있었다. 무기력. 무능력. 바닥 끝까지 떨어진 희망. 며칠간의 경험으로 나는 철저하게 무너진 상태였다.

어떤 상황이어도 놈은 태연하게 대처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정말로 화를 낼지도 모르지. 물에 빠지는 수준이 아니라 더 무서운 짓을 당할지도….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고 찾아온 기회를 외면하기로 했다.

김 형!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바깥에 있던 목소리 중 하나가 외쳤다. 그런데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순식간에 문 앞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뭐야? 설마 이쪽으로 오는 건가? 내 의문이 무섭게 벌컥! 세차게 문이 열렸다. 많이 급했는지 작업복을 입은 남자는 벌써 바지춤을 반쯤 열고 있었다. 

“헉!”

“……!”

남자도 나도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묶인 몸으로 욕조 안에서 발버둥 쳤다. 남자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먼지투성이의 손으로 내 입에 물린 재갈부터 풀어냈다.

“사, 살려 주세요….” 

“네?”

“제, 제발 도와주세요. 납치당했어요.”

분명 포기했는데…. 막상 닥친 상황에 나도 모르게 본능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여나 놈에게 들킬까 봐 목소리를 한껏 죽인 채,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도움을 구했다. 납치요?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지, 진짜란 말이야. 옷 속에 숨어 있던 구속구를 날름 보이며 다급하게 말했다.

“도와, 도와주세요, 그 남자가 저를….”

“어라? 형…. 또 그런 소릴 하면 오해하시잖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소리도 없이 다가온 놈이 문턱에 서서 나와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놈의 태연함에 남자도 나와 놈은 번갈아 가며 돌아봤다.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이쪽 화장실은 사용하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분은….”

“아…. 사정이 있어서요. 설명해드릴 테니까 밖으로 나오시겠어요?”

남자는 어쩔 줄 모르고 눈을 굴리다 결국 바지춤을 붙잡고 일어났다.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지만, 집안 가득한 내 사진을 봤기에 상황 판단이 잘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화장실을 나가자 놈이 문을 닫으며 내 앞에 쭈그려 앉았다.

“선유 씨 설마 지금….”

“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바람피운 건 아니죠? 다른 남자랑 말 섞지 마요. 질투 나니까.”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놈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뾰로통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일부러 헛소리를 하나? 그러자 놈이 피식, 웃으며 벗겨졌던 재갈을 도로 물렸다. 잔뜩 겁먹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놈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요. 어차피 당신은 나한테서 못 벗어나니까.”

하지만 그 사람들은 놈과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아무리 명분이 있더라도 내 꼴이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겠지. 어영부영 방음 공사가 끝나고, 모두가 떠난 지 10분도 되지 않아 경찰이 찾아왔다.

놈은 태연하게 경찰 조사에 응했다. 내가 아직 욕조에 앉아 있는데도 말이다. 뻔뻔한 새끼. 얼마나 간이 큰 거야. 게다가 옆집 부녀회장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쪼르르 나타나서는, 이 집 형이 증상이 심하다, 단단히 미쳐서 시도 때도 없이 발작한다, 이 총각이 얼마나 지극정성인데, 내가 한참을 봐서 잘 안다, 라는 등의 말을 보탰다. 시발, 아줌마가 뭘 봤는데?! 나 역시 끼어들고 싶었지만 내 입엔 여전히 재갈이 물려 있었고, 바깥의 대화는 철저하게 나를 제외하고 진행됐다.

결국, 경찰은 ‘증거 자료’ 라는 것을 들고 아무 소득 없이 떠났다. 도대체 뭘 보여 줬길래 날 보지도 않고 가 버린 거지? 상태 정도는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답답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끙끙거리는 내 앞에 놈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진짜예요. 상담은 내가 했지만, 본인이 안 가도 처방은 해 주거든요.”

그 증거 자료는 내가 정신착란, 피해망상, 편집증 등의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진짜… 처방전이었다. 병원 이름과 의사 이름까지 선명하게 찍힌 진단서를 떨리는 손으로 읽고 있으니 놈은 한마디를 보탰다.

“난 이게 꼭 우리 혼인신고서라도 되는 것 같아서 설레요.”

내겐 이 종이 한 장이 사망진단서처럼 느껴졌다. 사진처럼 합성이 아닌 진짜…. 이 종이는 사회에서 효력을 갖는다. 나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정신병자가 돼 버린 것이다. 정말 놈에게 벗어나는 것은 무리였던 거구나. 나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구나.

“내 집은? 내 가족들은? 하다못해 회, 회사나….”

“걱정 마요. 회사엔 제대로 사표 냈고, 부모님한테는 일 때문에 해외에 나간다고 직접 연락 드렸어요. 그리고 선유 씨 집은… 곧 처리될 예정이에요.”

“씨이발….”

묶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속절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정말 빠져나갈 구멍 하나를 안 주네. 이젠 내가 어떻게 하지도,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세상이 와르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울지 마요.”

놈의 가슴에 안겼다. 강제적 포옹이었지만 반항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내가 잘 할게요.”

등을 토닥이는 놈의 손은 따스했다. 마치 평범한 사람인 양. 그래서 더 서러웠다. 왜 하필 날까? 왜 하필 내가 놈을 도와줬을까? 그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왜 하필, 하필이면 나였을까.

“당신 인생을 내게 줘요. 꼭 행복하게 해 줄게요.”

“흐으윽….”

“사랑해요. 선유 씨….”

놈은 절망하는 나를 보듬으며,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웃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