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 -2화 (15/46)

까무룩 놓아 버린 정신을 차렸을 땐 문틈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얼마나 잔 거지…. 힘없이 침대에 축 처져 있는데 이상할 정도로 정적이 흘렀다. 감각이 이상해졌다고 느낄 정도였다. 너무 조용한데. 숨소리까지 죽였지만, 밖에선 조금의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이봐!”

뭐라고 불러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엔 이봐. 하지만 대답은 없다. 호칭 때문이 아니었다. 멈춰 있던 머리에 핑- 하고 피가 돌기 시작했다. 혹시 싶어 두어 번 더 크게 놈을 불렀지만 역시나 조용했다. 놈이 없었다. 이건 기회였다.

손발은 여전히 묶여 있었지만 입은 비어 있었다. 침대 아래로 몸을 굴렸다. 쿵! 그새 살이 빠졌다고 마른 어깨뼈가 부딪히며 엄청난 고통이 왔다. 하지만 아파할 틈도 없이 끙끙대며 바닥을 기었다. 침대와 발목 사이에 단단하게 묶인 사슬이 작은 소음을 내며 끌려왔다.

쿵- 쿵-

침대가 기대 있는 벽에 머리를 박았다. 처음에 놈을 부를 때 했던 것처럼.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여기 사람이 갇혀 있어요! 도와주세요!”

쿵! 쿵! 잘 울리는 부분을 찾아 여기저기 머리를 박으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어지러운 와중에 남은 힘을 쥐어짰다. 제발 누구라도 들리면 도와줘요! 제발! 중간중간 눈앞이 아득해지는 바람에 몇 번이나 멈춰서 숨을 돌렸는지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벽에 귀를 대고 인기척이 나지는 않을까 기대했다. 

근데 얼마나 방음이 잘되는 집인지, 그 흔한 층간 소음도 들리질 않았다. 들리는 거라곤 창 너머로 아득하게 넘어오는 차 소리뿐이었다.

“사람 살려요! 도와주세요! 제발!!”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어쩌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서 목이 점점 메어 왔다.

“살려 주세요! 꺼내 주세요…! 으아아악! 제발 좀!”

뒤통수가 깨진 줄 알았다. 얼마나 아팠냐면 나도 모르게 피가 나는지 살폈을 정도였다. 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좀 도와 달라고…! 숨이 가빠질수록 어지러웠다. 더 이상 머리를 박다간 나가기 전에 죽을지도 몰라. 눈앞이 핑 도는 느낌에 눈을 꾹 감으며 몸을 돌려 누웠다. 

쿵, 쿵. 머리 대신 다리로 벽을 두드렸다. 힘이 없어서 이젠 정말 두드리는 수준이었다. 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작아졌지만, 마음만큼은 너무나도 간절하고 절박했다. 여기 사람 있어요! 제발…! 제발….

그렇게 고통을 넘어서서 정신을 잃을 지경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띵동-

“어! 어어!! 여기요! 살려 주세요! 경찰에 신고 좀 해 주세요! 사람이 갇혀 있어요!”

구원의 벨 소리가 죽어 가는 희망에 숨을 불어넣었다. 필사적으로 외쳤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나를 구해 달라고! 곧 기절이라도 할 것 같았는데, 어디에 이런 힘이 남아 있었는지 나조차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삑삑삑삑삑- 도어락을 해제하는 소리에 모든 게 신기루처럼 끝이 나고 말았다. 띠리릭-. 멀리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해요. 저희 형이….”

“어휴, 깜짝 놀랐어.”

낯선 목소리. 놈과 누군지 모를 나이 많은 여자가 대화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득하게 들려오는 대화가 내가 원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사람이 갇혀 있어요! 신고해 주세요!”

간절한 외침에도 문밖에선 하하 호호 하는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하다 하다 이젠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건가? 뒤통수가 여전히 욱신거리는 게 분명 현실이 맞는데.

“또 저러네요. 속상하게….”

“총각이 고생이 많겠어, 병수발이 좀 힘들어?”

“그래도 형인걸요. 미리 말씀 못 드린 건 죄송합니다.” 

병수발? 형? 누구 얘기 중인 건데?

“원래 내일쯤 찾아뵈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됐네요. 가진 게 이 집 하난데, 괜히 소문이라도 나면 아파트 집값 떨어질까 봐 걱정돼서….”

“그래~ 다들 얼마나 예민한데~! 생각이 깊은 총각이네.”

“아, 맞다. 이거 부녀회장님 드리려고 산 건데 오신 김에 가져가세요.”

다행히 시골 촌구석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흐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사람이 도와 달라는데 왜 그렇게 태연한 거냐고! 이봐요! 도와주세요!

“어머! 뭘 이런 걸 다! 이거 비싼 거잖아!”

“제가 죄송해서 그래요. 받아 주세요. 생각보다 별거 아니에요.”

“흠흠, 그렇다면 뭐….”

“놀라셨죠. 저희 때문에.”

“솔직하게 부녀회장으로서 말하자면… 아파트에 정신병자 있다고 해 봐. 다 쫓아내라고 할 거야. 그럼 나만 힘들다고~ 흠흠! 나니까 총각 얼굴 봐서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거야. 소문만 안 나면… 괜찮을 거야.”

정…신병자? 설마 그거 나 아니지?!

“아, 아니에요! 저 새끼 납치범이에요! 아줌마! 도와줘요! 도와주세요! 사람 살려요!”

“…감사합니다. 며칠 안으로 방음 공사도 할 예정이에요. 그럼 아주 작은 소음도 안 샐 거예요.”

“큼, 흠… 그래요. 잘 생각했어. 서둘러 주면 더 좋고.”

내 말이 안 들리나?! 몇 번을 더 소리쳤지만 마치 내가 없는 사람처럼 계속 대화를 이어 갔다. 날씨가 어쨌네, 인테리어가 어쨌네. 시발, 좀 도와 달라고!

“수다가 길었네~ 나는 이만 가 볼게요. 힘내요. 총각~”

몇 마디 도란도란 인사를 주고받은 뒤 내 희망이라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 떠나 버렸다. 철컥. 문이 닫히자 집안은 적막에 휩싸였다. 이 침묵이… 지독할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놈이 없었기에, 기회가 왔기에 내 나름의 노력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실패했을 경우는 생각하지 않았다. 못 했다는 게 옳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으면 여기 이러고 있지도 않았어. 혹시라도 놈이 의심을 샀다며 화를 내면 어쩌지? 순간적 분노로 칼이라도 들이민다면? 상상만으로 오싹했다. 하필이면 내려온 동아줄이 썩어 있을 줄이야.

저벅, 저벅. 가벼운 발소리가 방을 향해 다가왔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이미 닿아 있는 벽을 파고들 것처럼 뒷걸음질 쳤다.

“선유 씨.”

“사, 살려 줘. 살려 줘….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어요.”

놈은 비굴하게 애원하는 나를 보고도 아무 표정이 없었다.

“요 앞에 잠깐 나간 건데, 그새를 못 참고 사고를 치면 어떻게 해요.”

작게 한숨을 내쉰 놈이 나를 안아 침대에 내려놨다. 흠칫. 묘하게 매만지는 손길이었지만 겁을 잔뜩 집어먹은 탓에 뿌리치지도 못했다. 침대를 치우고 이불로 바꿀까? 하지만 그럼 어디에 묶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던 놈이 혹이 볼록 튀어나온 내 뒤통수를 속상하다며 어루만졌다.

“그래도 부녀회장님이 이해심이 많은 분이라 다행이에요. 그죠?”

그걸 이해심이라 해야 할까? 어떻게 사회의 부조리보다 아파트의 관리가 더 먼저냔 말이야.

“궁금해요?”

말은 하지 않아도 내 표정이 영 아니었는지, 놈이 밖에서 작은 액자와 앨범 몇 개를 들고 돌아왔다. 입꼬리를 당기며 놈은 하나- 하나- 정교하게 조작된 사진들을 내게 보였다.

휠체어에 타고 있는 나. 병원에 누워 있는 나. OO정신병원이라 대문짝만하게 박힌 간판 앞에 서 있는 나…! 누가 봐도 나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완벽한 사진들이었다.

“이 정도 합성은 나한테 일도 아니에요. 나 생각보다 유능하거든요.”

맞아, 이 새끼 LN엔터에서 일하지…. 한두 장도 아니고, 놈에 손엔 그런 사진이 수십 장이었다. 시발, 왜 그냥 갔는지 알겠네! 계절도 날씨도 다 달라 보이는 사진들이 집안 곳곳에 놓여 있으면 믿을 수밖에 없지!

오랜 시간 정신병원에서 생활한 형. 그 형을 집에서 보살피는 착하고 순한 동생. 집안 곳곳에서 보이는 형제의 우애…. 이걸 누가 범죄로 볼 거며, 부조리로 보겠어! 어느 누가 내 편을 들겠냔 말이야!

놈은 완벽했다. 그건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쳐도, 최소한 부녀회장인지 뭔지 하는 그 아줌마는 절대 나를 도와주지 않을 게 확실했다. 그래서 놈은 처음부터 내가 소리를 질러도 태연했던 거다. 놈의 이 철저한 준비성을 다른 곳에서 봤다면 박수라도 쳐 줄 텐데.

“누가 정신병자야! 시발! 정신병자는 너잖아! 미친 새끼야!”

“어, 아무리 양해를 구했다 해도 너무 시끄러우면 곤란하죠.”

“아악! 시발! 아아악! 놔! 손대지 마!”

놈은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내 입에 재갈을 물렸다. 잇자국이 선명한 붉은 공이 다시 입을 틀어막으며, 뒤통수에 솟은 혹을 꽉 조였다.

굶주림에 정신을 놓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처음으로 방이 아닌 곳에 있었다. 문틈으로만 보이던 주방. 그리고 모서리만 조금 보이던 식탁…. 바로 그 4인용 식탁에 내가 앉아 있었다. 슬쩍 몸을 움직이자 팔걸이에 묶인 가죽 수갑이 타이트하게 당겨졌다.

“깼어요?”

눈앞엔 어머 어마한 진수성찬이 한 상 가득 펼쳐져 있었다. 김치찌개, 잡채, 갈비, 장조림, 생선구이, 버섯 무침…. 제대로 된 음식 냄새에 위장이 꼬르륵- 아플 정도로 조이며, 이젠 좀 먹으라 항의했다. 힘겹게 고개를 들자 앙증맞은 분홍색 앞치마를 맨 놈이 내 몫으로 보이는 죽을 뜨고 있었다.

눈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한쪽엔 내가 갇혀 지내는 방과 현관으로 향하는 것 같은 복도가 있었고, 그 반대쪽인 거실엔 벽걸이 TV와 비싸 보이는 소파가 보였다. 커다란 베란다 창문은 먹색의 암막으로 완전히 가려져 있어 밖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차분하게 꾸여진 집안…. 가장 튀는 점이라면 여기저기 없는 곳이 없는 내 사진이었다. 물론 합성이 분명한 사진. 나는 병원에서 저런 걸 찍은 기억이 없으니까!

갇혀 있는 방 맞은편에 문이 하나 더 있었지만, 닫혀 있었기에 무슨 방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 놈의 방이겠지.

“어때요? 맛있는 냄새 맡으니까 배고프죠?”

놈이 따끈해 보이는 전복죽을 내 앞에 내려 두며 씨익- 웃었다.

“기분 전환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밖으로 나왔어요. 별로 큰 집은 아니지만, 둘이 살긴 괜찮지 않아요?”

내 뒤에 선 놈이 백허그를 하듯 팔을 내밀어 재갈을 풀어냈다. 빨간 공을 따라 입안에 고여 있던 침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추욱- 가슴이고 허벅지 위로 다 흘렀지만 닦을 수가 없었다.

바로 옆에 의자를 빼 앉은 잡은 놈이 수저를 들어 전복죽을 조금 떠 올렸다. 몇 번이나 봐 왔듯이 후- 후- 불어 죽을 식히더니, 내 앞으로 가져와 아~ 하고 입 벌리는 시늉을 했다. 꼬르륵- 꼬르르륵-. 잔뜩 쪼그라든 위장이 울어 대는 큰 소리에 놈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보였다. 이번에는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 해 봐요. 괜찮아요.”

네가 괜찮으면 어떻고 안 괜찮으면 어떠냐. 어차피 안 먹을 것을. 조가비마냥 입을 꾹 다물고 버티자, 몇 번 수저를 흔들던 놈이 가뜩이나 처진 눈꼬리를 더 늘어트렸다.

“한 입만 먹어 주면 안 돼요? 열심히 준비했는데…. 냄새 좋지 않아요?”

인정한다. 냄새는 정말… 내 결심이 무너질 뻔할 정도로 좋았다. 앞에서 흔들리는 숟가락과 눈앞에 아른거리는 음식들 때문에 입안엔 이미 침이 잔뜩이었다. 꿀꺽. 꿀렁이는 목울대를 본 놈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하지만 30분이 넘게 입을 벌리지 않는 내 고집에 지친 듯, 놈은 결국 그 숟가락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맛만 좋은데…. 나 요리 잘해요…. 진짠데….”

우울한 목소리로 자기 어필을 하던 놈이 몇 숟가락을 더 떠먹더니, 다시 내 앞으로 숟가락을 내밀었다. 어르고 달래고. 또 어르고 달래고. 그래도 내가 놈의 음식을 먹을 일은 없었다. 이 지경까지 오니 오기에 가까웠다. 굶어 죽어도 먹나 봐라.

“왜 안 먹는지 모르겠어….”

“너 같으면 먹겠어?”

“당연히 먹죠.”

음식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열기도 싸늘하게 식어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젠 놈이 정성스레 죽을 식힐 필요도 없었다. 결국 그렇게 의미 없이 2시간이 지나갔다. 

“선유 씨. 독해요. 기어코 이걸 안 먹다니.”

“…….”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요. 먹는다고 하면 상도 다시 차려 줄 거예요. 정말 안 먹어요? 진짜! 정말로! 마지막 기회에요. 후회하지 말고 어서….”

“여기서 나가기 전엔 아무것도 안 먹어! 퉤!”

보란 듯 놈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정확하게 놈의 오른쪽 볼에 맞은 침이 끈적끈적하게 얼굴 위를 타고 흘렀다.

“선유 씨….”

놈이 숟가락을 들고 있던 손으로 제 얼굴에 흐르는 침을 닦아 냈다. 화를 낼 줄 알았다. 안 먹으면 말아요! 그러면서 또 방에 가두겠지. 하지만 이 미친 새끼는… 닦아 낸 침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할짝-

“우리 방금 간접 키스한 거예요.”

정말 수줍게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소름이 쫙 돋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미친놈이 아니지. 놈은 내 침이 흐르는 자신의 손가락과 키스하듯 혀를 섞었다. 감미로운 듯 눈까지 감고 있는 꼴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시발, 기분 나쁘게 뭐 하는 거야!

“으음…. 그런데요. 선유 씨.”

손가락으로 제 혀를 애무하던 놈이 살포시 눈을 뜨며 나를 바라봤다. 놈의 손가락은 여전히 입안을 구석구석 헤집고 있었다.

“안 씻은 지 좀 돼서 그런가… 움, 할짝, 당신 침에서 냄새나요.”

홧, 하고 몸에 불이 붙는 기분이었다. 수치심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가뜩이나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이었다. 며칠이나 양치도 거르고 세수도 거르고. 그게 얼마나 찝찝한 건지 알아?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건데…! 

“내가 씻겨 줄까요?”

“헛소리 하…!”

갑자기 다가온 놈의 얼굴에 헙! 하고 입을 닫았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누구라도 당신 입 냄새 나요. 라는 소리를 들으면 입 벌리는 걸 주저하게 되잖아!

“앗, 나 신경 써 주는 거예요? 감동이야….”

신경을 쓰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입을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놈에게서 고개를 완전히 돌린 뒤에야 씨발! 하고 소리칠 수 있었다. 귓불이 뜨겁다 못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내가 씻겨 줄게요. 우리 같이 씻어요.”

“건드리기만 해 봐!”

놈이 벌떡 일어나 내가 고개를 돌린 쪽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왜요. 부끄러워서 그래요?”

난 다시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흡! 개소리하지 말고 이거 풀어 줘. 풀어 달라고!”

“씻을 때 입는 구속구도 따로 있어요. 나 이것저것 많이 사 놨거든요.”

놈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쪼개며 내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아까 흘려 반쯤 마른 침이 놈의 손가락에 펴 발라졌다. 혐오스러운 터치에 발작하듯 움직였지만, 의자만 조금 끽- 소리를 내며 흔들렸을 뿐이다.

“미친 새끼! 정신병자는 내가 아니라 너야! 너! 정상이 아니라고!”

“맞아요. 사랑에 빠진 남자는 비정상이라고… 그랬어요. 난 단지 사랑에 빠진 것뿐이에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하고 말이에요.”

“난 아니라니까!”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럼 제발 놔줘!”

“…그것만 빼구요. 나 좀 믿어 주면 안 돼요? 선유 씨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요.”

놈은 애원했다. 자신을 믿어 달라, 사랑해 달라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내가 미쳤다고 널 사랑하겠냐고!

“…처음엔 그럴 수 있어요. 나도 그랬으니까요.”

놈은 내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난 그 말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원망스레 바라보는 내 눈을 피하며 놈은 식탁 구석에 있던 재갈을 도로 주워 들었다.

“밥… 정말 안 먹어요?”

“안 먹어.”

“어쩔 수 없지…. 그럼 씻을래요?”

“안 씻어! 씹새끼야!”

“알겠어요. 강요는 안 해요. 내일 씻어도 되니까.”

그리고 재갈을 다시 내 입에 물린 놈이 의자째로 끌어 날 방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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