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
복종하지 않는 동물을 가장 빨리 굴복시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폭력이다. 비록 잘못된 방법이긴 해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사용된 방법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흔히들 말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비단 개돼지가 아니어도 폭력은 통한다.
사랑해서 납치했다는 개 같은 소리에 아, 그렇구나. 그럼 우리 예쁜 사랑 나눠요. 하고 기뻐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뭐… 찾아보면 어딘가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시간도, 장소도 모를 어두운 방 안에 갇혀 한참을 누워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갈 방법은 보이지 않았고, 설상가상 약에 취해 몸마저 아픈 상황에 불안한 마음만 커졌다. 나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 가족들에게 몸값을 요구하려나? 그게 아니면 내 장기를 팔아 치울 속셈이라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살인이나 학대를 즐기는 사이코패스거나, 다른 건… 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선유 씨. 자요?”
정적을 깨며 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훅 끼얹어지는 따뜻한 공기가 고소한 냄새를 품고 있었다. 꼬륵…. 덕분에 문뜩 속이 비었다는 걸 깨달았다.
“선유 씨?”
내 이름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하고 상냥했다. 납치범의 목소리라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기력이 없기도 했고, 놈이 부른다고 순순히 반응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반항하듯 눈을 꾹 감고 침묵했다. 이내 무언가가 달그락거리며 바닥에 닿았다.
“…자요?”
눈을 감고 있지만, 놈의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만이 아니다. 스치는 옷자락 소리와 차분한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짐을 느꼈다.
“…….”
“…으아악!”
“악! 선유 씨!”
저 미친놈이 내 고추를 만졌어!! 당황스럽고, 무섭고, 놀라서 묶인 발로 있는 힘껏 놈을 걷어찼다. 순식간에 발라당 넘어진 놈이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것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쿵! 쿵!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놈의 손이 닿았던 사타구니를 숨기듯 손으로 가리고 허둥지둥 침대 끝으로 기었다.
“아파라…. 에이, 안 자고 있었네요? 대답을 안 해서 자는 줄 알았잖아요.”
시발, 뭘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 역겨운 새끼! 오히려 처음으로 폭력을 행한 건 나였다. 심지어 놈에게선 일말의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걷어차는 순간 아차 하고 겁을 먹은 게 무색할 정도였다. 놈은 그저 걷어차인 어깨를 문지르며 아쉽다는 얼굴을 보였다. 진짜 잠들었으면 무슨 짓을 했을지…. 으 시발! 잠깐의 상상으로도 털이 쭈뼛거렸다.
“배고프죠? 밥 안 먹은 지 꽤 됐잖아요.”
아까 바닥에 내려 둔 게 죽이었던 모양이다. 놈이 침대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 쟁반을 내보였다. 한눈에 봐도 정성이 가득해 보이는 죽 한 그릇. 참기름이 밥알 위를 흐르는 모습이 괴로울 정도로 시각을 자극했다. 꿀꺽…. 절로 침이 넘어갔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밥을 안 먹었더라.
놈이 숟가락을 들어 죽을 한술 크게 떠 올렸다. 후- 후-. 혹여나 너무 뜨거울까, 너무 식을까, 제 입술에 직접 대고 온도까지 세심하게 체크 했다. 그러더니….
“아~.”
나더러 저걸 받아먹으라는 건가?
“어서요. 맛있어요.”
두 번째 폭력 역시 내가 행사했다.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저 새끼가 한 밥을 먹을까 보냐. 방긋거리는 놈의 면상이 역겨워 죽이 있던 쟁반 자체를 발로 뒤집어 버렸다. 덜컹-! 둔탁한 소릴 내며 바닥으로 엎어진 죽을 보는 놈의 얼굴이 한순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놈은 절대 내게 화를 내지도. 분노를 보이지도 않았다.
“에이… 아직 밥 먹기 싫었구나.”
놈이 엎어진 죽을 맨손으로 모아 다시 그릇 안에 담았다. 여전히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뜨거운 내색은 전혀 없었다.
만약 놈이 내게 폭력을 가했다면 어땠을까. 혹은 죽일 거라는 암시를 했다면? 그랬다면 더 악에 받쳐 반항하거나, 혹은 쉽게 굴복했겠지.
허나 놈은 절대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이 점은 내겐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옳을 거다. 이해하면 인정해야 했다. 놈이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사랑의 형태는 다양했겠지만, 놈이 보여 주는 사랑은 그랬다.
놈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놈은 내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증거 없는 가설이었지만 그냥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 그래서 나는 놈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서 개기다 죽나, 평생 이대로 있나 끔찍하긴 마찬가지였으니까.
비명을 지르고, 욕을 하고, 발작하듯 폭언을 쏟아붓고. 그것도 모자라서 놈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묶인 발로 반격을 가했지만, 놈은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 절대 내게 맞서려 하질 않았다. 보이는 곳에 멍 자국이 늘어 갈수록 오히려 내 마음만 무거워지고 있었다. 미안해서는 절대 아니었다.
역겹지만 놈은 정말 날 아끼고 있었다. 불면 날아갈까, 놓치면 깨질까. 장식장 안에 가둬 놓은 유리 인형을 대하듯. 놈은 날 그렇게 다루고 있었다. 이 소름 끼치게 혐오스러운 사실이… 모순적이지만 나를 조금이나마 안도하게 했다.
이 사실만 놓고 본다면 내가 저놈보다 우위에 있는 듯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상황적으로… 내가 저 새끼보다 나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난 알몸으로 사지가 구속당한 채 누워 있었고, 사타구니를 가리려 애쓰며 발버둥 치는 것 말고는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 안도는 당장에 죽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사랑하니까요.”
“시발, 좆같은 소리 하지 마!”
“좆이라니. 너무 야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놈이 내 다리 사이를 힐끔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반사적으로 다리가 오므라들었다.
“풀어 줘, 제발!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신고도 안 할게. 풀어만 주면 뭐든 다 해 줄게. 돈, 돈 줄까? 나 모아 둔 돈도 많아! 달라는 대로 다 줄 테니까… 없던 일로 칠 테니까 풀어 줘, 제발….”
“풋.”
애원하는 나를 보며 놈이 웃었다.
“없던 일로 치면 안 되죠. 난 지금이 행복한데. 그리고 돈은 내가 더 많아요.”
“이 개새끼…!”
“당신이 원한다면 난 평생 개로 살 수 있어요.”
“미쳤어! 너 미쳤다고! 정상 아니야!”
몇 번째인지 모르게 엎어 버린 죽 그릇을 쟁반에 담으며 놈이 일어났다. 하도 엎으니 이젠 걸레까지 미리 들고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쯤 열린 문 너머로 바깥이 보였다. 전형적인 가정집의 주방. 아파트? 주택? 어찌 됐건 누군가가 주변에 살고 있지 않을까.
“살려 주세요!! 여기 사람이 갇혀 있어요! 사람 살려요!”
소리쳤다.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누군가는 듣고 있겠지! 누군가는 도움을 주겠지!
“우리 선유 씨는 목소리도 참 예뻐.”
놈이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릇을 정리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 놈을 보니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주변에 아무도 살지 않는 게 아닐까. 사실 여긴 어딘가 산골짜기고, 아무도 모르게 나와 저 빌어먹을 새끼 단둘만 있다면? 끔찍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자꾸 그러면 이웃집에 폐가 될 수도 있어요.”
다행이다. 이웃이 있긴 하구나…! 이번엔 더 큰소리로 외쳤다. 살려 주세요!! 그러자 놈이 곤란한 듯 고개를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목도 걱정되니까, 소리는 그만 지르면 안 될까요? 게다가 동거라는 게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거잖아요. ”
“동거 같은 소리 하네! 납치범 주제에!”
“… 처음부터 들어줄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안 했어요. 어쩔 수 없네요. 당신을 괴롭게 하긴 싫었는데.”
정말 내 의지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 말을 끝으로 놈은 뒷주머니에서 작은 공과 가죽 벨트가 달린 물건을 꺼냈다. 이 나이 먹고 저게 무슨 물건인지, 어디에 쓰는 건지 모를 리는 없었다.
질색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그래 봤자 침대 위였다. 놈이 아주 가볍게 내 위에 올라타 입안으로 붉은 재갈을 밀어 넣었다. 입을 다물고 있으려 해도 볼을 꽉 누르는 억센 손에 당해낼 수가 없었다. 탁구공 크기의 공이 혀를 짓누르자 어느새 비명은 기괴한 소리로 변했다. 놈이 내 머리 뒤쪽으로 벨트를 둘러 묶으며, 제 밑에 깔려 버둥거리는 나를 보고 입꼬리를 당겼다.
“빨강으로 사길 잘했네. 잘 어울려요.”
입에 물린 공 위로 손가락이 지나갔다. 개를 쓰다듬기라도 하는 듯 애정이 가득한 움직임이었다. 알몸으로 묶어 두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더니, 이젠 입을 막기까지. 말로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달콤하게 속삭이면서 놈이 내게 한 짓은 몹쓸 짓뿐이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우조차 베풀지 않았다. 마치 짐승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 길에서 개를 주워 와도 이것보다는 잘해 주겠네. 시발!
하지만 심한 취급은 이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후를 생각하면 가장 나았다고 할 수 있지. 진짜 짐승처럼 다뤄진 건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였다.
“으응!! 으으!!”
요의가 몰려왔다. 언제 마지막으로 소변을 봤더라? 기억에 있을 리가 만무했다. 먹은 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싼 걸 기억할 리가. 게다가 위염 때문에 먹은 것보다 더 많은 걸 토해 냈었다. 덕분에 소변을 볼 틈도, 필요도 없었고….
한번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 욕구는 점점 더 강해졌다. 어떻게 하지…. 급한 마음에 침대 아래로 몸을 굴리자, 쿵. 묵직한 충격에 방광까지 자극이 닿았다. 으윽! 팔꿈치와 무릎을 바닥에 대고 문을 향해 기었다. 고개를 숙이니 입안에 고여 있던 침이 재갈의 구멍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렇게 침대와 문의 중간쯤 갔을 때였다. 덜컥! 빌어먹을 사슬! 쇳소리와 함께 가죽이 조이며 다시 발목을 당겨 왔다. 묶여 있던 것을 깜빡했다. 몸이 절로 비비 꼬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간 진짜 바닥에 지릴 것만 같았다. 시발! 그래선 정말 개랑 다를 게 없잖아!
여전히 입에선 침이 흐르고 있었다. 시각적으로도 위험했다.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바라봤다. 이젠 초조함에 다리까지 덜덜 떨렸다. 어쩌지, 어쩌지. 급한데. 일단 묶인 손으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아래를 꽉 쥐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정말… 샐 것 같았으니까.
“으으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하던 놈이 왜 갑자기 조용한지 모르겠다. 몸을 꿈틀거리며 침대로 머릴 돌렸다. 그리고 뒤통수로 침대를 쿵쿵 쳐 내렸다. 놈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입까지 막혀 있는데 이거 말고 뭘 어쩌라고! 간혹 방향을 잘못 잡아 뒤통수가 침대 모서리에 찍히기도 했지만, 다리로 치자니 방심하다 힘이 풀릴 것 같아서 시도조차 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쿵! 쿵! 둔탁한 타격음이 점점 빨라지자 드디어 밖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죠?”
“으읍! 으으!”
얄미울 정도로 느긋하게 열리는 문. 그 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놈이 놀란 눈을 껌뻑였다. 그래, 놀랄 만도 하지. 거시기를 붙잡고 침대에 박치기나 하고 있는 꼴이라니….
“지, 지금 나 유혹하는 거예요?”
시발, 저 또라이 새끼!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밤이니까…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입에 문 거 풀어 줄게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제야 내 속도 모르는 새끼가 천천히, 열이 받을 정도로 천천히 다가왔다. 놈은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야 머리에 감긴 재갈을 풀어 줬다.
“시발…!”
“어어, 소리 지르지 말랬잖아요.”
공이 빠져나가자마자 절로 욕이 나왔다. 그러자 놈이 쉿! 하고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내며 다시 재갈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자, 잠깐만! 소리 안 질러! 안 지른다고!”
“지금 지르고 있는데…. 근데 선유 씨 혹시… 발기했어요? 그거 혹시 나랑 섹스하고 싶다는 소린가요?”
뭐, 뭐?! 섹, 뭐?!
“지랄하지 마! 화장실, 화장실 가고 싶어! 급하단 말이야!”
“아, 화장실…. 근데 내가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는데.”
온몸에 피가 싹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분하지만 정말 한계였다. 이젠 하다못해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 놈을 노려봤다. 놈은 그제야 방긋 웃으며 “잘했어요.” 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화장실 가고 싶어요?”
“…….”
“대답해야죠. 가기 싫어요? 나 다시 나갈까요?”
“아, 아니…. 화장실 가고 싶어요….”
최대한 순종적으로 보이려 노력했다. 최소한 지금만큼은…. 내 노력이 통했는진 모르겠지만, 놈이 연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쁘다, 예쁘다 중얼거렸다.
“그럼, 싸게 해 달라고 말해요.”
“뭐?”
귀를 의심했지만 해맑은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 모양이다. 수치심에 어버버거리며 입술을 떨자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손이 아래로 내려왔다. 마르고 길쭉한 손이 내 볼을 감싸들었다.
“쉬야 하게 해 달라고 말해요. 안 그럼 안 보내 줄 거예요.”
아무리 급해도 그 말이 쉽게 나올 리는 만무했다. 3살도 아닌 30살이다. 30살이나 먹고 쉬야라는 말을 어떻게….
“있잖아요, 선유 씨. 강아지를 처음 분양받아 오면 가장 먼저 하는 게 뭔 줄 알아요? 배변훈련이에요.”
예쁘다. 예쁘다. 놈은 품 안에 안긴 강아지를 사랑스럽다는 듯 어루만졌다.
“사람이랑 개가 다를 게 뭐 있겠어요. 화장실 가고 싶으면 말해요. 뭐든 처음이 힘들지, 몇 번 하면 익숙해질 거예요.”
앞으로도 3살짜리처럼 말하지 않으면 화장실을 보내 주지 않을 거다. 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시간을 조금 더 줄까요? 나는 기다릴 수 있어요. 크나큰 배려를 해 준다는 식으로 속삭였다.
시발. 누, 누굴 진짜 개로 알아?! 본능이 거부했고 자존심이 거부했다. 하지만 생리현상은 더 이상 막을 수가 없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뻐끔뻐끔, 벌어진 입술이 소리 없이 몇 번을 움직였다.
“…세요….”
“뭐라고요?”
“쉬… 쉬야… 하게 해 주세요.”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배덕감이란. 나까지 변태가 된 것 같았다. 수치심에 온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사람들의 비웃음이 귓가를 희롱하는 것 같았다. 놈과 나 이외에 이 방에 존재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미 모든 사람이 내 수치스러운 언행을 알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잘했어요!”
놈은 기쁘게 웃으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으, 아으!”
너무 오래 참은 탓에 작은 움직임에도 몸이 굽으며 고통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소변이 요도 끝을 비집고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이미 꽉 쥔 손에 힘을 더 주며 신음하자 놈의 콧바람이 거세졌다.
“자꾸 앙앙거리지 마요. 설 것 같으니까.”
한 가지 지적을 하자면 내 몸에 닿는 놈의… 그곳은 이미 단단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놈이 제 하반신을 연신 내 몸에 비벼 대는 통에 모를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같은 사내라서 더. 내 몸에 닿고 있는 살덩이가 더럽게 무서웠다. 아까도 놈은 ‘섹스’라는 노골적인 단어를 입에 담았었다. 소름 끼치지만… 놈은 진지하게 나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떨어져 달라 불평을 할 수조차 없었다. 혹시라도 놈이 마음을 바꿀까 봐 오만 가지 걱정과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와 동시에 이대로 무슨 짓을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점점 커져만 갔다. 내가 남자랑? 제발, 난 그런 취향도 흥미도 없단 말이야.
놈이 침대와 연결된 사슬을 풀어내고 나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빼빼 마른 몸이어도 남자라는 건지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이 나를 화장실까지 옮겼다. 피부 위로 쏟아지는 놈의 콧김이 거슬렸지만 역시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정면에 있는 문이 나가는 문이라면, 좌측에 있던 문은 화장실이었다. 작은 욕조가 딸린 아담한 크기의 화장실은 방과 마찬가지로 물건 하나 없이 휑했다. 심지어 변기 물탱크 뚜껑조차 없네. 하지만 더는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그 밑에 달린 깨끗하고 새하얀 변기를 보자 마음이 더 급해진 탓이다.
“빠, 빨리!”
사슬만 빠졌을 뿐, 여전히 손과 다리는 묶인 상태였다. 놈이 나를 안아서 옮기지 않았다면 화장실까지 울면서 기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부축을 받아 변기 앞에 서자 수치심보다는 생리적 욕구가 더 강하게 치솟았다. 그런데… 안 나가나? 아무리 기다려도 놈이 내 뒤에서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어깨에 고개까지 얹으며 내 것을 빤히 바라봤다. 씨발…. 여기서 더 참는 건 내겐 기행에 가까웠다.
쪼르륵-
힘을 빼자 꽉 붙잡은 성기의 끝에서 샛노란 소변이 쏟아졌다. 얼마나 오랜만에 누는지 색이 평소보다 배는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변기 안에 작은 물결이 요동칠수록 지독한 암모니아의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수치스러웠지만, 약간의 해방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힘을 쭉 뺐다.
그때, 단순히 부축만 하고 있던 놈의 손이 허리를 지나 갑자기 아래로 흘러내려 왔다. 배출의 쾌감에 잠시 놈을 잊고 있었기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움찔! 변기 커버 위로 노란 물방울이 조금 튀었다.
“조준 잘해야죠.”
내 양손 사이로 놈의 손이 비집고 들어오며 대신 성기를 붙잡았다. 다른 때도 아니고 소변을 누는 중이었다. 게다가 남자의 성기는 중요한 급소 부위. 이런 상황에 급소를 붙잡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놔….”
“쉿-.”
“놓으….”
“어 발버둥 치지 마요. 튀잖아. 아… 손에 묻었다.”
그러더니 소변이 묻은 손가락을 들어 제 입에 넣고 쪽- 소리가 나게 빨았다. 경악스러운 행위에 입이 떡 벌어졌다. 마치 음식을 흘렸네? 라는 식으로 손가락을 핥은 것이다. 그것도 화장실에서 내 거시기를 붙잡고 있다가….
“미, 미친…!”
“음, 생각보다 비리고 짭짤하네요. 당신 몸에서 나오는 건 다 달달할 줄 알았는데.”
이 변태 새끼의 만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물 내린 변기 위에 나를 앉혀 둔 놈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왜 이러는지 차마 물을 수도 없었다. 그저 겁에 질려 놈이 하는 짓을 내려다보는 것 외엔…. 뭔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여태 알몸으로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성기를 내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겁도 나고, 수치스럽기도 하고. 덜덜 떨며 양손으로 중심을 가리듯 누르고 있었는데 놈이 그것을 치우라 요구했다.
“손 치워 봐요.”
“시, 싫어.”
“싫으면 강제로 할거예요. 다리를 활짝 벌려서 양쪽으로 묶으면, 그럼 당신의 구석구석이 잘 보이겠죠…. 와, 생각만 해도 너무 좋다!”
거부감이 드는 걸 어쩌란 말인가. 허나 기뻐하는 놈의 모습을 보니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발목 구속구에 손을 올리는 걸 보니 이대로 있다간 정말 제가 원하는 대로 묶어 버릴 작정인 듯했다. 주저하며 성기를 내리누르던 손을 들어 올리자, 놈이 기다렸다는 듯 소변 배출 후 축 늘어진 내 성기를 덥석 붙잡았다.
“흡! 뭐, 뭐 하려고….”
“닦아야죠. 쉬야- 했잖아요.”
쉬야라는 말에 울컥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 것이 다시 놈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이 더 두려웠다.
호선을 그리던 입술이 벌어지며 붉은빛의 통통한 혀가 삐죽이 나왔다. 설마 설마 하던 찰나에 놈의 혀가 내 요도 끝에 닿았다.
“헙!!”
놀라서 말도 안 나왔다. 할짝, 할짝. 침이 가득한 혀로 일부러 더러운 소리를 내며 내 성기의 끝을 닦아 내고 있었다. 놈이 말하는 닦는다, 라는 행위가 이게 맞는다면 말이다.
“우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입안 가득 내 것을 물었다. 놈의 가지런한 치열이 연약한 살갗 위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내걸 깨물면 어쩌지? 가능성 있는 잔인한 망상에 덜컥 겁이 났다.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떨림을 느낀 놈이 경고하듯 한 손으로 내 둔부를 세게 움켜쥐었다.
“…흣!”
“움, 우웅.”
놈의 혀가 기이할 정도로 굴러가며 귀두 전체를 부드럽게 핥았다. 여자친구 중 누구도 이렇게 잘 빨진 못했다. 허나 지금 정신상태로는 놈이 뭘 하고 있는지, 얼마나 잘하는지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무섭고, 무섭고, 무서웠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겁을 먹는지 놈은 알고 있었다. 자꾸 앞니로 앙앙대며 내 것을 긁는 걸 보면 분명했다.
“흐으윽….”
결국에 겁에 질려 앓는 소리를 내자, 놈이 성기를 문 채로 나를 올려다보며 베에- 하고 입을 벌렸다. 놈의 입에서 빠져나온 성기는 징그러울 정도로 침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뭐야. 왜 안 서지?”
놈의 손에 들린 성기가 추욱- 힘없이 늘어졌다. 아깐 소변을 오래 참은 탓에 원치 않게 살짝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함을 잃어 가는 살덩이에 놈은 어지간히 실망한 것 같았다.
“별로예요? 이상하다. 연습 많이 했는데….”
충격으로 말을 잃은 나를 잠시 지켜보던 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어디서 연습을 어떻게 한 건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구속구까지 직접 체험한 놈인데 오죽할까.
“놀랐구나. 선유 씨. 벌써 이러면 어떡해요. 우리 둘이 쌓을 만리장성은 이제 시작도 안 했는데.”
만리… 뭐? 아저씨 같은 비유에 굳어 있는 나를 놈이 다시 안아 들어 욕조로 옮겼다. 욕조에 앉아 제대로 ‘닦아 낸’ 뒤에야 침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럼 쉬어요. 필요하면 또 부르고.”
사슬은 다시 묶였지만, 내가 난동을 피우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재갈은 채우지 않았다. 놈이 문을 닫고 나가자 어두워진 방안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전신이 허전한 느낌에 시트를 당겨 머리까지 덮었다.
“큽.”
참고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비참하지만 정말 무서웠다. 난생처음 느낀 감정을 뭐라 정의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처음엔 생리현상조차 내 의지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비참했다. 하지만 이젠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저 새끼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게 뭘까. 애완동물이 필요한 걸까. 성욕 처리용 노예가 필요한 걸까. 나를 인간으로 보고 있긴 한가? 시발 알게 뭐야. 저 새끼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와중에도 바닥나지 않은 자존심에 입술을 앙다물었다. 혹여나 소리가 새나가면 놈이 돌아올까 봐서 숨을 죽이고 몸을 떨었다. 이런 식으로 살 순 없었다. 어떻게든 여기서 나가야만 해….
이날 이후론 절대 수분을 섭취하지 않았다. 저 미친 새끼가 또 무슨 짓을 할까 봐, 두려움에 기를 쓰고 입을 닫았다. 가뜩이나 먹은 것도 없는데 물까지 안 먹으면 어떡해요. 놈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애를 썼다. 재갈을 물린 뒤 그 구멍으로 부어도 보고, 빨대를 입술에 꽂아도 보고. 놈은 자신의 선에서 할 수 있는 짓은 다 해 봤다. 하지만 입엔 들어와도 목구멍이 꾹 닫혀 있는 걸 어쩌겠는가.
결국, 물이 기도로 넘어가는 바람에 발작하듯 기침을 토해 내자 놈이 먼저 항복을 선언했다.
“알았어요! 고집불통! 내가 졌어. 강요는 안 할게요. 옆에 둘 테니까 제발 나중에라도 마셔요.”
그러며 놈이 침대 옆에 둔 것은… 개밥그릇같이 납작한 그릇에 담긴 물이었다. 이 새끼는 아무래도 나를 개에 가깝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밥도 먹지 않았다. 소변볼 때마다 앞에서 구경하겠다 지랄인데 대변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거부하자 몸은 눈에 띄게 힘을 잃었다. 근래 음료를 빼고는 제대로 먹은 음식이 없었기에 그 후유증이 배로 지독했다. 그마저도 다 토해 냈지만.
죽을 것 같진 않았지만, 첫날처럼 미친 척 날뛰기엔 팔다리가 너무 후들거렸다. 눈앞이 자꾸만 노랗게 변하고… 잠이 늘었다기보단 의식을 잃는 일이 잦아졌다.
이 방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라고는 천장에 내장된 에어컨이 전부였다. 시트지가 덕지덕지 붙은 창문은 단 한 번도 열린 적 없었고, 그 흔한 벽걸이 시계조차 없었다. 낮인지 저녁인지, 시간이 얼마가 됐는지, 날짜가 며칠이 지났는지… 모든 게 무감각했다. 어쩌면 내가 이 집에 들어온 지 고작 몇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벌써 일주일이 지났을 수도 있고. 눈을 꿈뻑일 때마다 변하지 않는 풍경에 감각조차 무뎌지는 것 같았다.
“선유 씨.”
유일한 변화라면 놈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놈이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밥 먹어요.”
피부에 맞닿은 손이 축축했다. 불쾌했지만 아무리 뿌리쳐도 좋을 대로 만져 댔기에, 힘을 빼지 않고 그냥 가만히 누워 있었다.
“제발… 나 좀 풀어 줘.”
“한 숟갈만. 딱 한 숟갈만 먹어요.”
“풀어 주세요….”
“원하는 대로 다 해 줄 테니까, 밥 좀 먹어요.”
“풀어 주길 원해!”
“…그거 빼구요.”
“씨발! 아아악!”
이 대화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야채 죽. 참치 죽. 게살 죽. 전복 죽. 죽이란 죽은 죄다 만들어 오는 걸 전부 걷어찼다. 죽만 찬 게 아니라 기운이 좀 있을 땐 놈의 턱주가리도 몇 번 날렸었다. 그래도 놈은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여기서 더 살 빠지면 보기 흉해요. 이제 밥 먹어요.”
“안 먹는다고.”
“선유 씨 집에서부터 며칠째 제대로 안 먹었잖아요. 응? 조금만 먹자.”
“이게 누구 때문인데…. 이제 귀도 병신 됐어?!”
“위, 위험해요.”
“안 먹는다잖아! 풀어 줘! 풀어 달… 윽!”
놈을 향해 묶인 다리를 휘두르고 있는데 현기증이 핑 돌았다. 풀썩- 시트 위로 늘어지자, 턱에 시퍼런 멍을 단 놈이 허둥대며 나를 품에 안았다.
“선유 씨! 괜찮아요?! 그러니까 왜 고집을 부려요. 사람이 밥을 먹어야 살죠!”
“이게 사는 거야…? 시발. 이러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네 눈엔 이게 사람이 사는 거야?!”
이 새끼 앞에서 울기까지 하는 건 너무 굴욕스러워서 참으려 했지만, 결국 한계가 와 버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손등으로 눈을 가리자 놈이 내 손을 치워 내고 자신의 엄지로 눈물을 훔쳤다. 시발, 만지지 마!
“그냥 내 말만 잘 들으면 둘 다 행복할 텐데, 왜 고집을 피우는지 모르겠어요.”
놈이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행복은 지랄…! 나 그냥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치고…, 절대로 신고 안 할게. 아니, 안 할게요. 정말이에요. 약속할 수 있어요. 그니까 풀어 주세요. 네? 제발 좀!! 풀어 달라고…!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데! 시발… 나는 불쌍한 사람 한번 도와준 거밖에 없는데… 큽.”
제발 풀어 주세요. 저 좀 놔주세요. 벌벌 기며 엎드려 빌었다. 절그럭, 절그럭. 간절하게 손을 비빌수록 매달린 사슬이 크게 울었다.
“혼자 살 때보다 더 질 좋은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데 왜 그러지…. 내가 죽인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같이 사랑하자 한 거잖아요.”
“너는 사랑을 너 혼자 하냐! 이 개새끼야!!”
결국엔 또 참지 못하고 터졌다. 엉엉. 터진 눈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내렸다. 물도 안 마시면서 이 눈물이 다 어디서 나오는 거람. 놈이 중얼거리며 내 어깨를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