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회: 완(完)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
온 힘을 짜낸 기합을 내뱉으며 오능의 어금니를 때리는 순간!
-으득!
소뿔 격파에 성공한 최배달 선생님이 그랬을까?
“키에에엑!”
달리는 멧돼지 어금니를 격파하는데 성공한 나는 그대로 날리던 오능의 몸에서 떨어져 바닥을 내뒹굴고 말았다.
“우억!”
다행스럽게도 북한산 폭신한 흙바닥에 떨어져 충격이 흡수된 감은 있었다만 온 몸의 장기가 울렁하고 흔들리는 괴로운 기분이 들었다.
“쿨럭!”
세상에……! 내가 이런 액션을 찍다니! 괴로움이 있었지만 거기에 휘둘릴 틈이 없었다. 다음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나는 바로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들었다.
“구슬! 구슬!”
두 눈을 잃은 오능이 근방에 있던 나무에 대가리를 쳐박아 금조를 떨쳐 내려 하자 금조가 재빨리 날개짓을 해 하늘로 날아 올랐다.
-콰직! 우드득!
그와 동시에 굵다란 나무가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는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지져스…….”
내가 독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초코파이 받으러 세례명도 받은 놈이거든? 이런 때만 찾는다고 뭐라진 않겠죠? 아 나, 저거 부딪치면 진짜 꼼짝없이 이승과는 안녕할 판이네!
다급해진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으나 그보다 먼저 오능이 나를 향해 방향을 고정한 것이 보였다.
“크르르…….”
“어……. 너 눈이 안 보이는 거 아니었니?”
대답 대신 콧구멍을 벌렁 거리는 것이……! 아, 돼지도 냄새를 잘 맡지! 이런 그지 같은!
“퀴이이이!”
멱 따는 소리와 함께 오능이 다시 한 번 더 나를 향해 달려 들었다. 침착하자, 계범도! 이런 돼지들은 직선에 강하지 커브엔 약해! 브루스 윌리스처럼, 해리슨 포드처럼 날래게 옆으로 피하자!
“으읏! 컥!”
하지만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둘 다 이제 너무 나이가 많이 들었단 거 말이야! 차라리 토니쟈 처럼이라고 할 걸! 젠장!
피하려 했지만 아까 바닥에 떨어질 때 입은 충격 덕분인지 쉽지 않았던 나는 이번에는 오능의 반대쪽 어금니에 걸리고 말았다.
“쿠웩!”
-스스슥!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반대쪽 어금니를 붙잡고 질질 끌려가는 상황! 손을 놓치게 된다면 놈의 발에 짓밟힐 확률이 아주 높은 그런 위기 상황이란 말이다!
“구슬만 내어 놓아라! 그럼 네놈은 용서 해주마!”
“까고 있네! 내가 니 말을 믿게 생겼냐!”
이 와중에 타협 하려는 놈의 의지가 대단하다 느껴지지만 너 같은 교활한 놈에게 내가 넘어갈 건덕지가 있을까?
“그럼 죽어라!”
아니, 그래도 너무 단칼에 그런 성급한……! 정말로 날 보내버린 생각인지 오능은 사정 없이 나를 물어 뜯으려 하며 바위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다급한 순간 심장이 어찌나 쫄리는지! 아, 미칠 것 같은 기분이 가득한데 순간 나는 내가 오늘의 어금니를 잡고 있던 반대 손에 부러진 그의 어금니가 여전히 들려 있단 것을 뒤늦게 자각하고 말았다.
“니꺼 돌려 주마!”
이렇게 쳐박힐 바엔 차라리 피하는 게 낫지! 온 힘을 다해서 오능의 목덜미에 그의 어금니를 내리찍자 날카로운 어금니가 퍼억 하는 소리를 냈다.
“퀘이이이이익!”
오능의 두꺼운 가죽을 뚫진 못했지만 그게 효과가 있었던지 오능이 순간적으로 앞다리를 구부리고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우와앗!”
그와 함께 나는 잡고 있던 어금니를 놓고 그대로 몸을 굴러 측방 낙법을 시도했지만!
“컥!”
니미럴! 그게 먹힐 상황인가! 충격을 얼마나 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시 어마어마한 충격에 직면한 나는 울컥 하고 피가 입으로 거슬러 오르는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아, 젠장!”
500년 영력이 있으면 뭘 하나? 제대로 쓸 줄을 모르는데! 이렇게 이른 시기에 놈을 만난 게 천추의 한일 뿐이건만!
“까악!”
“금조……!”
난 혼자가 아니다! 어느 샌가 금조가 다시 오능을 급습하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아예 그의 두 눈을 후벼 파자 오능이 비명을 내 질렀다.
“퀴이이이익!”
“좋아, 금조야!”
하지만 그게 결정타는 되지 못할 것 같지? 이 돼지야! 그와 함께 나는 순간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쓰러진 오능의 몸을 향해 뛰어 들었다. 정확히는……!
“이거나 쳐 먹어라!”
그의 벌어진 아가리 속으로!
“아저씨!”
뒤늦게 그 자리에 도착한 시은이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걱정 하지 마라! 주인공은 쉽게 죽지 않는 법이거든!
-쑤욱!
“으으! 기분 진짜 좆같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 내 주먹이 도달한 곳은 다름 아닌 오능의 목구멍! 삽입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근데 이런 멧돼지 목구멍에 누가 뭘 끼워 넣고 싶겠냐? 잘못하다 내 팔 절단 돼서 붉은머리 해적단 선장이 될 수도 있는 판국에!
“에이!”
그리고 서둘러 팔을 빼내자 마자 오능이 벌리고 있던 아가리를 다물었다.
“어우씨!”
조금만 늦어도 내 팔이 잘릴 뻔 한 그 찰나의 순간!
“금조야! 이리 와!”
나는 금조의 이름을 부르며 뒤로 물러서보였다. 왜냐고?
“퀴이익!”
아무리 멧돼지의 가죽이 단단하다 하더라도 속살까지 강하진 못하지!
뭐, 이런 뻔한 건 아니고!
“쿠에에에에!”
그 순간 오능이 입에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그리고 동시에 울려버지는 상류의 비명 소리!
“인마! 형이 너보단 머리가 좋거든?!”
그래, 내가 방금 한 건 오능의 몸 안에다 벼락맞은 벽조목 팔찌를 쑤셔 넣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게 내부로 들어가 효과를 발휘하자 자연스럽게 오능의 몸을 점거하고 있던 상류 그 자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쿠어어어!”
요동치며 괴로워 하는 오능이 이내 꿀렁꿀렁 하고 요상하게 움직이는 복부를 보이더니 이내 ‘우웨엑!’ 하고 엄청난 양의 검은 액체들을 토하기 시작했다.
“저것들 모두 불태워 버려야 해!”
“걱정마! 아저씨!”
다행스럽게도 관악산 화기(火氣)를 이어받은 건 시은이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어느 샌가 본래의 너구리 꼬리 소녀로 돌아간 그녀가 입에서 불을 뿥으며 검은 액체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키아악!”
“너무 많아!”
계속해서 흘러 넘치는 액체들을 모조리 태우기란 역부족처럼 보였지만……!
-스윽!
“여우불!”
어느 샌가 모습을 드러낸 아리가 푸른빛 일렁이는 불꽃을 내뿜으며 화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아리와 시은이의 공격에 힘입어 엄청난 속도로 불타기 시작한 검은 액체가 이내 사람의 형태로 변화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까악!”
그 앞을 막아선 금조!
“금조야!”
불길 말곤 공격할 방법이 없어 걱정스러운 가운데 순간 금조를 기점으로 엄청난 불꽃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 어어?!”
그리고 그 불꽃이 마지 거대한 기둥처럼 금조를 감쌌을 때 거기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금조?”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금조 대신 모습을 드러낸 놀랄만 한 빅사이즈 가슴을 가진 소녀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꼭 주미 원장이 10살 어리면 저렇게 될 법한……?
“불 타버려. 비루한 주제에 감히.”
새로운 모습의 금조는 주미 원장의 성격을 판에 박은 듯, 아니 그녀 그 자체인 듯 했다.
“어, 어어?”
당혹감 가득한 가운데 세 요괴의 불길이 하나가 되어 검은 액체들을 모조리 다 불 태우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듣기 싫은 상류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그걸 살려둘 생각은 전혀 없는지 점점 더 불길이 높아져 갔고 마지막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을 때.
“안 돼……! 싫어……! 이렇게 죽을 순……! 키악!”
그것을 마지막으로 세 사람이 만든 불꽃도 서서히 그 크기를 줄여갔다. 금조의 변신에 당황스러운 가운데 점차 사그라진 불꽃 속에서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크기가 작아진 오능이 원래의 모습을 하고서 쓰러진 것이 보였다. 금빛이었을 털은 고열로 그슬려 검은빛이 되었지만 생명은 붙어 있는 모양인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그 앞에는 새까맣게 타들어간 벽조목 팔찌가 다시 세상 빛을 보고 있었다.
“후우…….”
이제 모든 것이 끝이 난 것인가?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 앉은 나.
“이제 정말로 다 끝난 거겠지?”
나의 물음에 시은이와 아리, 금조 모두 그런 것 같다 서로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어떻게 됐지?”
그 사이 뒤늦게 그 자리에 도착한 청령이 아직도 남아 있는 여기가 싫은지 거리를 둔 채 물음을 던졌다.
“이제 모두 끝난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을 하자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있던 그녀가 도도하게 뒤돌아서며 머리를 가다듬었다. 그 모습에 모든 것이 드디어 끝이 났다 안도감이 밀려오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됐다! 다 끝났다!”
그대로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버린 나는 이 길고 길었던 하루가 무사히 끝이 났음에 감사하며 뿌듯한 맘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다!”
“아저씨!”
그 기쁨을 함께 누리려는 듯 시은이가 쪼르르 달려와 내 품에 안겼고, 사람으로 변한 금조도 지기 싫다는 듯 ‘이이!’ 하고 이를 악 물고 내게로 안겨 들었다.
“대체 금조 어떻게 된 거야?”
“저에요, 주인님! 저 건방진 것들이 젊음을 무기로 내세워 어느 쪽이 더 우월한 지 보여주려고 다시 몸을 재구성한 것 뿐이에요!”
“뭐? 그런 게 된단 말이야?”
“그럼요! 그러기 위해선 금조가 조금 더 성장 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워낙에 압도적인 부분이 있으니까!”
그래, 금조가 주미 원장의 화신이니까 뭐 그래서 금조의 몸으로 다시 새롭게 계승을 했다 이런 건가? 하지만 너무 앳되어 보이는데? 엄청나게 압도적이긴 하지만!
“난 그 원숙한 맛도 좋았는데…….”
“어린 몸에 원숙한 맛이 가미 된 건 어떨까요?”
“아유, 그럼 난 땡큐지!”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원래 몸도 압도적인 공격력을 가지고 있던 주미 원장이건만 젊음 까지 가미한 몸이 얼마나 더 공격적이고 무한 체력일지 사실 좀 걱정이 되긴 해……. 아무튼 어색하게 서 있는 청령과 그 모습을 보며 안도한 듯 미소 짓는 아리까지 보이는 순간 안도감은 극으로 치닫고 말았다. 됐어! 모든 게 끝이 난 거야!
“후후, 수고 많았네.”
그 순간 등 뒤에서 신령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진짜 신령님 맞습니까?!”
그리고 반사적으로 성성자를 내밀자 이곳에 모여 있는 나의 아리따운 요괴들 덕분인지 성성자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걱정 말게. 난 놈이 아닐세.”
진정하라 제스처를 취하는 그의 등 뒤로 화극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하모가 보였다. 아, 둘이 같이 있는 걸 보니 이건 정말 진짜 신령이겠군. 휴…….
“상류를 물리치고 내 거처를 찾아줘 정말 고맙네.”
“아뇨, 뭐. 해야 할 일을 한 건데요. 뭐, 나 잘되자고 한 것도 있구요…….”
감사를 표하는 그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어차피 놈이 노리고 있던 건 구슬이라서 필연적인 일이었고, 그걸 처리하는데 도움을 받게 된 게 있으니. 뭐, 좋은 게 좋은거지.
“아무튼 난 이만 가보도록 하지. 오래도록 못 처리한 일이 있었는데, 오늘 날에서야 마무리 짓게 되니 기분이 좋군.”
그 와중에 하모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고맙다 이야기를 꺼기도 전에 퍼엉 하고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진 그의 몸. 그 모습에 왠지 ‘다시 한 번 더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짧은 만남 속에서도 영감을 주었던 사람이기 때문일까?
“쿨하게 가버렸네요.”
“원래 저런다네. 후후.”
사라진 하모를 보며 웃음 짓던 신령님이 천천히 나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가 손을 내밀자마자 검게 타고 그을렸던 자리들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신기하기 짝이 없는 광경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동안…….
“이걸 받게.”
“예?”
신령님이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이건……?”
“면세부라네.”
“면세부요?”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종이로 만든 알 수 없는 부적. 부적인지도 모르겠다. 뭔가 낙인이 찍혀 있는 것이…….
“세속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권을 자네에게 준 것이라네.”
“세속의 법칙?”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세상이 정해놓은 선이 자네를 괴롭히진 못 할 것이네.”
“이게 무슨 말이죠?”
“인간과 요괴가 연을 갖는 것은 금기이나 그게 가능하다 특별히 인정 해주는 것이지.”
그 말에 나는 아…… 하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힐끔 고개를 돌린 곳에는 격전의 흔적이 남아 있긴 하다만 여전히 아름다운 아리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리고…….”
이내 신령님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리의 앞에 멈춰선 그가 후후 웃으며 인자한 표정을 짓자 주미 워장 앞에서도 주눅 든 적이 없던 아리가 굉장히 난처한 얼굴을 하고서 무릎을 꿇었다.
“어?”
“지금이라도 구슬을 돌려준다면 너를 탓하진 않으마.”
“아!”
여우 일족이 구슬을 가지고 왔던 그게 원래 저 신령님이었단 말인가? 그 순간 나는 벙찐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말았다. 내 목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구슬이는 여전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홀릴 정도로 아름다웠다만…….
“저 구슬은…….”
“너희 일족 모두가 원래는 이 자리에서 구슬을 지켜야만 했으나 욕심으로 구슬을 가지고 도망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구슬을 정해진 자리로 돌려놓는다면 그 죄를 모두 용서하고, 너를 계가의 여인으로 보내어 줄 생각이다. 네 마음이 있는 곳 말이다.”
아! 그 순간 다시 한 번 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계가? 여기 계씨는 나밖에 없잖아? 계가라니? 마음이 있는 곳이라니?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하고 아리를 쳐다보자 거의 포커페이스에 가까워 감정을 읽기 힘든 그녀가 눈에 띠게 붉어진 얼굴을 해보였다.
“인간세계로 몰래 나갈 정도로 그를 마음에 품지 않았더냐. 원래의 자리로 구슬을 돌리려는 것 뿐이다. 이것이 운명이니 그걸 거부하지 말고 달게 받아들여, 행복을 되찾았으면 하는구나.”
인간세계? 설마…… 설마하니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아리였단 말인가? 설마 지현이?! 입이 떡 벌어진 채 아리를 보니 아리는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조신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지현이 맞네! 맞아!
“그랬구나……. 그랬었어! 지현이!”
뭔가 끌리던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였던거였어! 바래다 주는 걸 매번 거부했던 것도 그런 거였구나! 아, 정말인지! 만리장성 쌓은 사이는 아니지만 그 직전까지 함께 했었던 그 지현이가 바로 아리였다니!
다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역시 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아니, 에베! 어쨌든 이거도 공인 받은 관계고 사람보다 훨씬 더 나은 요괴들이잖아!
아무튼 신령님은 소중한 구슬을 훔쳐간 여우일족들이었지만 여전히 그들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는 듯 했다. 그의 말에 아리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중한 구슬이긴 하지만 정해진 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걸 오랜 세월 노림을 받고 가족들을 잃어버리며 깨우친 것일까?
그녀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다시 신령님이 내게로 걸음을 옮겼다.
“아, 여기…….”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구슬을 넘겨줬더라면 아마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뭐 구슬이가 정해진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니 마음만큼은 기쁘기 짝이 없다.
“고맙네. 비록 흔들리기도 하고, 가끔은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마음 만큼은 참 강직한 사람이니 아리를 잘 보듬어 주게나.”
“아, 예!”
조금은 얼떨떨하긴 하다만 이토록 기분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간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구슬이를 신령님에게 넘겨주자 구슬이가 한 번 도 보지 못했던 환한 빛을 온 사방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와…….”
“본디 이 구슬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왔다네. 이 구슬이 사라지면서 그 문이 닫혀버렸지. 그래서 하늘은 땅을 보기만 할 뿐 지켜주질 못했다네. 이제부터는 많은 것들이 달라질게야. 이 모든 게 다 자네의 덕이라네.”
“아, 아뇨. 뭐 저는 그냥…….”
칭찬과 달리 주미 원장이나 청령은 구슬이에 대한 욕심을 여전히 버릴 수 없는 눈치였다.
“금…… 아니, 주미, 청령.”
이제 원장이라기도 뭣하지! 그 말에 주미 원장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곤 내게로 걸음해왔다. 청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곁으로 선 두 여자. 어깨를 다독이는 손길에 두 여자 모두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에게도 상이 있다네. 물론 지금은 둘 모두 요괴의 본성을 버리지 못했으니 전해지지 않겠지만 만일 그대들이 계가의 여인이 되어서 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한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면 그대들이 바라지 마지 않았던 일들을 이룰 수 있게 해주겠네.”
그리고 신령님이 짝 손가락을 마주치자 푸른빛의 청옥과, 붉은빛의 홍옥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그 순간 주미와 청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뭔데? 의문을 품기도 전에 청령이 감격한 듯 한 얼굴로 소리쳤다.
“여의주……!”
서로 감격한 표정이 비슷한 것을 보니 주미 역시 비슷한 물건인가 보다. 오……, 그럼 둘 다 나한테 잘 하고 착하게 살면 그토록 바라던 완전한 금시조와 용이 될 수 있단 이야기네?
“그를 잘 모시도록 하게.”
그 말에 주미와 청령이 동시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 했다. 이거 평범한 신령님치곤 굉장히 특권을 주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걸. 그런 생각이 든 찰나 신령님이 후후 웃으며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모든 게 정리 되었으니…….”
“나는요! 시은이는?!”
그때 마침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던지 시은이가 울상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뭐…… 그래도 마지막에 한 건 해줬잖아? 혼자만 못 받으면 서운 하다는 듯 한 시은이의 모습에 신령니도 후후 웃음 지었다.
“이걸 받거라.”
“이게 뭔가요!”
“변신요결 36체. 이제 더 이상 꼬리는 없을 거란다.”
와, 이렇게 막 아이템들 뿌려도 되는 거야? 그래도 요괴들이 착한 일을 했으니 얼마나 기특할까? 다른 이들에 비하면 별 거 아닌 보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시은이는 그걸 받고 좋아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었다.
“고마워요! 신령님! 고마워요!”
후후 웃음을 머금은 채 그가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더 할 이야기가 있느냐는 듯 한 그의 눈빛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면세부는 오직 저에게만 해당 되는 이야기겠죠?”
“그렇다네.”
“그럼…… 육도와 성성자를 전달하지 않아도 용서해주겠단 말이겠군요…….”
그 말에 신령님이 천천히 눈을 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하지만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이야.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네.”
정해진 운명이라. 어쩜 이것들 모두가 내 앞에 주어진 운명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알고 있으니 대비 할 수 있겠지. 분명히 말이야.
“네, 신령님! 부디 천운이 있길 너만큼 빌어 주십시오!”
“걱정하지 말게. 어쩜 자네보다도 훨씬 더 천운을 타고 났을지도 모를테니!”
허허 웃음 짓는 신령님. 그 모습에 기운을 얻은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들보다도 더 중요한 걸 제가 가르칠 테니까 문제는 없을 겁니다!”
파워 오브 러브! 사랑의 중요성을 내 몸소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임무가 또 하달 되었구나!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두 요괴와 정체를 확인한 아리, 요 앙증맞은 것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결혼을 하게 되면 주례는 신령님이 서주실 겁니까?”
“태상노군의 주례라니 그보다 좋은 건 없을 것이네.”
태상노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거 같은데.
“신령님이 한 자리 하셨나봐요?”
속닥이며 물음을 던지자 신령님은 그저 껄껄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주인님! 태상노군은 정말로 높은……!”
“허허, 아닐세! 어쨌든 이제 이 일은 마무리가 다 되어 가는군.”
인자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태상노군 신령님. 어디서 들어본 거더라? 모르겠다, 여지껏 몰랐던 도사님 겸 신령님 겸 저 분 이름이라고 생각해두자.
“으음…….”
때마침 쓰러져 있던 오능이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죽음에 이르진 않은 모양이다. 내 덕에 오른쪽 어금니 하나가 부러지긴 했지만 생명을 부지 했으니 이만큼 다행인 일이 어디에 있을까?
“오능!”
오능을 알고 있던 시은이와 아리가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오능이 몸을 일으켜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의 프리티 요괴들과는 다르게 멧돼지 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조금 이질감이 있다만…….
“내가 어떻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에 큰 의문을 느끼고 있던 모양이다. 어리둥절해 하던 오능이 이내 신태상노군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무릎을 꿇어 보였다.
“태상노군!”
“상류에게 몸을 빼앗기고도 생명을 부지했으니, 이는 모두 계가의 덕이라. 은혜를 입은 것이네.”
“아!”
그 말 한 마디로 말귀를 알아 먹은 것인지 멧돼지 오능이 나를 돌아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무렴 이겨냈다한들 몸 안에 상류의 독이 남아 있을지 모르니 자네는 나와 함께 가세나.”
“그리 하겠습니다, 노군.”
어딜 간다는 말인지……?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대답 대신 오능이 내게로 걸음을 옮겨와 말했다.
“언젠가 반드시 이 빚은 갚겠습니다.”
“아, 뭐……. 언제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니 태상노군이 살며시 오능의 위에 올라섰다.
“그럼 다음에 또 보세나.”
“어디로?”
“먼저 구슬을 원래의 자리로 돌릴 계획이네. 그 후에 이 자리를 다시 회복시켜야지.”
“아.”
역시 신령님의 한 자리도 절차의 문제란 게 있는 모양이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태상노군이 구슬을 들자 한줄기 빛이 그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달빛같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더 고고한 빛을 가진…….
“와…….”
새파란 빛이 하늘에서 이곳으로 닿아 따스한 기운을 뿌리자 점차 오능과 태상노군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저들을 부탁함세.”
그의 마지막 부탁이자 당부! 아니, 뭐 요괴들 잡고 다니란 말도 아닌데 무슨 걱정이겠는가? 변신요결을 얻어 좋아하는 시은이도, 각 자 원하는 바 위치를 이룰 수 있는 주미나 청령도,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날 얻어 행복해 하는 아리의 모습에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하지 마십쇼!”
============================ 작품 후기 ============================
바로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