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럭키가이-86화 (86/120)

<-- 86 회: 럭키 가이!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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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름이 정말로 용구야?”

택시를 타고 온 지라 집까지는 아주 무사하게 들어왔다만 바로 지척이 주폭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이다 보니 용구는 유난히 긴장한 듯 한 얼굴이었다. 함께 우리의 집 빌리지 타운으로 들어가는 길. 얼어 있는 용구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서 착한 변태인 나는 호기심 반, 배려심 반을 담아 물음을 던졌다.

그 물음에 함께 계단을 오르던 용구가 처음보다는 상당히 경계심이 누그러진 얼굴로 힐끔 나를 돌아 보았다. 난데 없이 그건 왜 묻느냐는 의미심장한 얼굴이었다. 남자, 그것도 완전 시골 상남자 이름이 곱상한 얼굴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상당히 콤플렉스가 있는 듯 보였다.

“아니, 이름이랑 너무 안 어울리니까. 혹시 별명인가 해서.”

뭐, 요즘 애들은 모를거다. 예전에 도신, 도협, 도성으로 이어지는 홍콩 도박 시리즈를 알고 있는 우리 세대라면 용구라는 이름이 상당히 익숙하지. 도신 주윤발과 두 제자 도협 유덕화, 도성 주성치. 그 중 도성 시리즈에 나왔던 용오의 여동생, 미녀 경찰 용구와 같은 이름의 소유자가 바로 우리 동네 용구인지라 괜스레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이거 이름 정말 특이하잖아? 우리 세대에도 이런 이름은 찾기 힘든데 이런 이름을 가진 18살짜리라니! 혹시 그 주폭 아버지가 홍콩 영화 팬은 아닌가 심각하게 고려하며 진지하게 던진 나의 질문에 용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린 얼굴을 해보였다.

“네……. 진짜 이름 맞아요.”

“진짜? 정말 안 어울리는데?”

거의 집 앞까지 다다른 나의 물음에 용구가 불안한 듯 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 보았다. 아버지가 너무나도 무서운 모양인지 경계심 가득한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한 편으로 다시 긴장을 풀어줘야 겠다 생각한 나는 걱정 말란 얼굴로 미소 지어 보였다.

“왜 웃어요?”

“응?”

하지만 용구가 두려운 건 아버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를 향한 경계가 담겨 있는 눈빛은 내 웃음마저도 불순한 것으로 오인한 듯 싶었다. 아 놔! 끝끝내 변태 이미지는 벗지 못한 터라 뭐라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보였다.

“이 선량한 미소를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드니?”

“네……. 착하지만 아저씨는…….”

“……그런 게 아니라니까…….”

요즘 애들 솔직하다 그러더니 정말로 그런 모양이다. 아, 나 진짜 왜 말을 못하니? 계범도! 왜 말을 못 해?! 너 바보야? 멍청이야? 둘 다 내꺼다, 내 여자다 왜 말을 못 해?!

버럭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내 맘 속의 한 줄기 양심이 ‘내가 어떻게 말 해요?’ 하고 울먹이며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파리의 연인 참 재미 있었는데……. 결말이 좀 그지 같긴 했지만.

“아저씨?”

“아, 아냐. 내가 가끔씩 좀 드라마에 몰입 할 때가 있어서 그래.”

어쨌든 거짓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용구의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나는 잠자코 문을 열었다.

“정 못 미더우면 내 폰이라도 들고 있어.”

그리고 못 미더워 하는 용구를 위해서 폰을 내밀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용구.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기댈 곳이 나밖에 없다 싶었던 모양인지 이내 용구가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요…….”

“……너무 걱정 하지 말고 들어와. 아저씬 정말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냐……. 착한 변태……잖아.”

착한 변태라니! 치욕스러운 별명이다. 후우!

하지만 변태에게 착한이란 수식어가 붙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 모든 남자는 다 변태적인 성향이 있잖아……? 맞잖아……? 그렇다고 얘기 해줘! 그 가운데 그나마 착한 변태니까 난 좋은 사람이란 거야…….

되먹잖은 삼단 논법 합리화를 시행해 보았지만 내가 너무 구질구질해보여 그만두고 말았다.

“아무튼 일단은 들어와. 씻고 좀 쉬어야지.”

말 하나, 하나가 조심스러운 가운데 문을 열고 불을 켜자 그제야 용구도 좀 안심한 눈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집 안으로 들어온 소녀. 믿는다고 하긴 했으나 상당히 경직된 얼굴이 왠지 모르게 나도 불편해질 지경이다.

시은이도 있으니 처음은 아니라만 겉만 10대인 시은이랑은 역시 차이가 있는 오리지날 여고생의 모습에 나는 더욱 더 조심스러움을 가미했다.

“뭐 입은 건…… 티라도 좀 내 줄까……? 그 젖은 거 계속 입고 있으면 감기 걸리잖아. 별 다른 뜻 있는 거 절대로 아니니까. 이해하지?”

집주인이면서도 도리어 쩔쩔 매는 나의 모습에 용구가 이내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저씨……. 고맙습니다.”

조용조용 이야기 하는 그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애가 정말로 순하고 착해서 다행인 것 같다. 이런 애를 이렇게 때려서 가출하게 만든 그 아버지란 작자는 정말인지 아버지란 이름 쓸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잠깐 기다려 봐.”

시간 걸리면 또 어색해질까봐 나는 서둘러 방에서 티셔츠를 꺼내왔다. 나의 20대 시절, 꽃돌이 계범도로 군림했던 때 입었던 머슬핏 티셔츠가 그나마 제일 작은 사이즈였다. 어차피 바지는 고무줄이니 좀 헐렁해도 대강 맞지 않을까 싶어서 파자마와 티셔츠를 가지고 오니 용구가 사뭇 고마운 맘이 든 모양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은 씻고 옷도 좀 갈아 입고 해. 빨래 바구니는 내가 여기 문 앞에다 가져다 놓을 테니까 다 씻고 놔두면 될 거야. 저거 드럼 세탁기라서 금방 건조 되니까 걱정 말고.”

그 말에 용구가 다시 한 번 꾸벅 인사를 했다. 모난 구석 전혀 없이, 도리어 좀 내성적이고 유해보이는 모습에 다시 한번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대체 진짜 이런 애를 어디 때릴 때 있어서 때리고, 그 바닥까지 내몰리게 한 거야?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안타까움과 화가 다시 치밀어 올라 표정 관리가 되지 않자 용구가 괜스레 쑥스러운 얼굴로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도망치듯이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아저씨는 방에 좀 들어가 있을 게!”

“네!”

혹시라도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도록! 필승의 노력을 기울이며 방으로 들어온 나는 너무 조용하면 또 용구가 어색해 할 것 같아 거실에 티비를 켜놓고 방문을 닫았다. 아, 정말인지…… 지금 이 나이도 저렇게 어색한데 나중에 나도 애낳고 아빠가 되면 진짜 얼마나 어색할까? 새삼스럽게 미래 걱정이 들었다.

“에고,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제는 어떻게 한다? 용구가 나오면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겠지만 애가 충격을 참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아침에 짐 싸들고 집을 뛰쳐 나와서 모텔로 끌려가 그 빌어먹을 계집애들에게 폭행을 당한 것이라면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아도 속은 참 많이 애릴테니 말이다.

“후. 밥은 먹었으려나.”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도 어릴 때 그랬거든. 괜히 툴툴 거리고 싸우면 ‘나 밥 안 먹어!’ 하고 단식 투쟁을 하곤 그랬지. 그러다 저녁에 화해하자고 엄마가 ‘아들 치킨 안 먹을래?’ 하면 속으론 ‘예쓰!’하면서 괜히 겉으론 ‘몰라!’ 하고 시크한 척 코스프레를 하곤 했으니까.

그러니 용구도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배가 많이 고플 거다. 그 생각이 들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밥을 차려다 주는 일이란 것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집 밥이 짱이지.”

이런 상황은 사회 생활 하면서도 쉽게 겪는 게 아니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지만 생각이 그리 되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은 것 같았다. 따뜻한 밥이나 해서 먹이고 좀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 해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면, 특히나 남자들이 하는 착각이 있다면 상대는 궁극적으로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궁극적으로 상대가 바라는 것은 어떠한 문제에 직면해 있고, 이런 심정이라는 것을 이해 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걸 잠깐 망각할 뻔 했던 나는 오랜만에 대화의 기본, 상담의 기본을 떠올리며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나, 먹을 게 없네.”

전에 잠깐 장을 본 것 말고는 딱히 뭐 할 거리가 없었다. 이래서 혼자 사는 남자의 냉장고는 서럽다. 인스턴트 아니면 거의 배달음식 남은 거. 그것도 아니면 집에서 보내준 썩기 직전의 반찬들 밖에 없으니 말이다.

“후라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후라이와 햄 뿐이라니.

“정말 귀엽기까지. 반전 매력 덩어리야.”

왜? 우리 엄마가 인생은 자신감 있게 살아야 된다 그랬거든.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나의 초딩 입맛이 분명히 어린 나이의 용구와도 맞을 거라 생각한 나는 장금이가 되어 밥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쌀을 부드럽게 씻고! 쌀겨가 떨어지게 빡빡 문질러선 안 된다. 장삼풍이 되어 태극권을 시행하듯이 부드럽게, 유려하게 쌀을 씻고, 거의 근 한달 간 침묵 상태이던 밥솥 ON!

1인분이니 나올 때 쯤이면 밥도 다 될 것이고, 미리 미리 반찬거리 준비해야겠단 생각에 후라이 팬에도 불을 올렸다. 여기다는 먼저 먹다 남은 햄을 구울 생각이다.

“지금 후라이는 너무 일러.”

속물이래도 좋다. 어차피 내가 돕고 싶어서 돕는 거니까. 그러니까 용구에게 지금 당장 제일 맛있는 밥을 먹이고 싶었던 나는 장인 정신으로 후라이팬을 예열하여 꼼꼼히 햄을 굽고는 시계를 체크 했다.

그나마 좀 남아 있는 김치를 꺼내서 기름에 살짝 볶아 볶음 김치를 먼저 만들었다. 어차피 남는 게 가사도구라고 후라이는 다른 거에다 하면 돼!

“흠흠흠.”

오랜만에 요리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먹을 게 아니라 남에게 해주는 요리라 그런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졌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티비를 보던 나는 생각보다 용구가 화장실에서 늦게 나온단 생각이 들어 빨래 바구니를 들고 화장실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바구니를 앞에 놔두는 척 안에 귀를 기울였다.

오해는 하지 마! 혹시라도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런 거니까……!

-흑…….

그리고 영기 덕분인지 극도로 예민해진 내 귀에 소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숨죽인 울음 소리였지만 묻 닫힌 화장실 소리는 작은 소리도 크게 키워주는 효과가 있었다. 크게 소리 내어 우는 것보다는 혼자 이렇게 숨어서 숨죽여, 소리 없이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훨씬 더 서럽게 느껴졌다. 그 소리가 귓가를 울리자 얘가 내 앞에서 안 울고 버틴 게 정말로 용하단 생각이 들어 맘이 찌르르 아파왔다.

“진짜 어떻게 애를 이렇게 키우냐…….”

용구의 서러운 맘이 고스란히 느껴져 먹먹한 가운에 나는 요리를 멈추고 소파에 살짝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용구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릴 요량으로 멍하니 티비를 보았다. 뭐, 이게 내 일 같지만은 않은데 나도 혹시나 나중에 저런 아버지가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생기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아마 용구 아버지는 자기가 정말로 잘 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겠지? 거의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그렇다. 죽어도 가족 말은 듣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그럴 수가 없는 일 아니겠냐.

어쨌거나 다시 한 번 더 나는 정말로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생각하는 동안.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밥도 다 됐다 신호가 울리고, 뜸도 다 들었을 때 쯤 용구가 화장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물 온도는 괜찮았지?

“아, 네……!”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하고서 괜찮은 척 하는 애를 보니 막 눈물이 자꾸……. 나아쁜 사람! 정말인지 아버지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화를 삭이며 나는 최대한 웃는 얼굴을 해보였다.

“배고프지? 짜식, 타이밍 잘 맞추네. 딱 뜸 들었을 때 나왔다. 여기 반찬이 없어서…….”

그리고 후라이팬에 불을 켜고 딱 후라이를 올리니 이미 예열된 후라이팬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계란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용구가 조금 당황한 듯 한 얼굴로 쭈뼛 거리다가도 배가 고프긴 고팠던 모양인지 꼴깍 침을 삼켰다.

“노른자 터뜨려줘?”

“네? 아, 아뇨. 저는 그거 별로 안 좋아 해서…….”

“아직 계란 맛을 모르네. 계란은 반숙이야, 반숙.”

후후 웃으며 꺼낸 말에 용구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다 익은 후라이를 접시에 덜고 먼저 볶아 놓은 김치로 데코를 했다. 그리고 먼저 해놓은 햄까지 착 올리자 겉보기엔 꽤 그럴 듯 한 모양이 갖춰졌다.

“자, 여기 밥도.”

그리고 거실의 테이블 위로 밥그릇과 접시를 가져다 놓자 용구가 여전히 어색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린이 정식이야. 계란, 햄, 볶은 김치. 뭐가 더 필요해?”

그 말에 그제야 용구가 웃음을 터뜨렸다.

“다 저 좋아하는 거에요…….”

역시 애들 입맛엔 이거 세 개가 짱이지!

“이래서 아저씨가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거야.”

“아, 아저씨 원래 40대……?”

아, 나! 은근히 얘가 사람 마음에 대패질을 하는구나! 진심 어린 용구의 물음에 나는 씁쓸함을 머금고 고개를 흔들었다.

“삼삼한 33살…….”

어떤 의미로는 시은이 녀석보다 더 나와 천적관계에 있는 듯 한 모습에 입술을 깨물고 찌릿  용구를 째려보자 용구가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웃음 지었다.

“일단은 먹고 혼 낼 거야, 인마.”

“죄송해요……. 나이보다 젊어 보이신다 그래서…….”

“……제 나이로는 보이는거지?”

“네, 딱 33살처럼 보여요.”

어려보인단 립서비스 따윈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린 모양이다. 거짓말을 모르는 소녀의 순수함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수저를 내밀었다.

“이거나 먹어라.”

그 말에 용구가 수저를 받아들고 내게 무척이나 미안한 듯 한 눈빛을 보였다.

“그럴 거 없어, 인마. 손님 오면 대접 하는 게 당연한 거니까. 이거 한돈으로 만든 햄이야. 한돈 알지?”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좋은 햄이란 건 만 알아둬.”

다시 뻔뻔함을 회복한 나의 모습에 용구가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진 얼굴로 다시 미소 지었다. 훈훈해 보이는 그 모습에 나는 멀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티비로 고개를 돌렸다. 밥 먹는데 누가 빤히 쳐다보면 더 밥이 안 넘어 가잖아.

“아빠는 인기가 없다 봐? 오늘 마지막 회래.”

“아, 저는 드라마 안 봐요…….”

“그럼 내 드라마 타임 방해 하지 말고 밥 꼭꼭 씹어 먹고 있어.”

“……네.”

나의 팬심에 용구가 어이 없단 얼굴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사실 뭐 내가 그렇게 드라마를 꼭꼭 챙겨 보는 편은 아니거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나도 달리 할 게 없는지라 드라마로 눈을 고정하고 있으니 곧 용구가 밥 먹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그 소리에 힐끔 눈을 돌려 용구를 살펴보니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볶은 김치를 먼저 먹는다. 배가 많이 고팠던지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거리며 열심히 먹는 모습에 흐뭇함을 느끼고 티비로 시선을 돌린 나는 얘가 쉬려면 내가 없는 게 훨씬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 먹고 나면 설거지 해놓고 저기 저 방에 침대랑 이불 있거든? 거기서 자.”

“네?”

“오해 하지 말어. 아저씨 절대로 그런 사람 아냐. 난 친구 집 갈 거야.”

“네? 저 때문에 안 그러셔도…….”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인마. 날 위해서 그런 거야.”

“네……?”

그 말에 용구가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도 어릴 땐 안 그럴 거 같았는데 나이 먹으니까 치사해질 수밖에 없더라. 남 일에 끼면 손해라는 거 아니까 주변에서 이런 일이 있어도 모른 체, 내 일 아니니까 그냥 쉬쉬하고 지나치려고만 하고. 그건 그동안 비겁하고 치사한 어른이었던 나한테 경종을 울리는 거야. 어른은 애들한테 좋은 걸 가르쳐 줘야 하니까. 세상은 아직도 믿을 만 한 구석이 있고, 좋고 멋진 곳이라고. 그게 진짜 어른이 해야 할 일 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그런 멋쟁이 어른이 되기 위해서 그런 거야, 인마.”

33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다. 그런데 아직도 어른이란 게 어떤 뜻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살다 보니 1살씩 나이를 먹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어른이라네.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고, 깊이 느껴본 적도 없고.

그 단어의 정체를 찾아서 오늘은 깊은 생각을 해보고자 정의를 내린 말에 용구가 이런 건 처음이었던 모양인지 무척이나 신기하단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고마움과 신기함이 담긴 소녀의 눈빛에 나는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괜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일찌감치 확인해야 할 일들도 있고.”

지금 주미 원장에게로 가서 육도 해석본을 조금 더 일찍 접해 수련을 해도 되는 것이고!

아무튼 이젠 남들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진 삶을 살게 됐단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 나는 오랜만에 맘에서 우러나오는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버느냐 보다 얼마나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아, 나는 태생이 이타적인 놈이었던 모양이다. 후후후!

“그리고 너도 오늘 푹 쉬어야지, 인마.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다른 것보다 이게 제일 중요한 거다. 지금 억지로 이야기 꺼낸다 해서 뭐가 해결될 거도 아니고. 진심 어린 나의 목소리에 용구가 순간 글썽이는 눈을 해보였다. 금방 눈물이 차올라서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을 한 소녀가 목이 메였던 모양인지 밥을 먹다 말고 손으로 눈을 훔치자 나는 아무런 말 없이 용구의 등을 다독였다.

“고맙습니다…….”

그 말에 괜히 나도 목이 메였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박현숙씨 이후로 두 번째. 큰 돈을 쓴 것도 아니고, 뭔가를 기똥차게 해준 것도 아니지만 사소한 것 하나에 누군가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인생 살아가는 보람 아니겠는가.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어. 무서우면 뽀로로 인형 있으니까 꼭 끌어 안고 자도 돼.”

“아…….”

뽀로로 인형에 빵 터진 듯 울다 말고 용구가 웃고 말았다.

“배 누르면 소리도 나. 노는 게 제일 좋아!”

아, 이거 봐라! 진짜 어떻게 30대가 이렇게 귀엽지? 진짜 미치겠다, 치명적인 매력 덩어리 같으니.

나의 귀여움에 다시 한 번 감탄하는 동안 다시 한 번 더 용구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저씬 정말 착하고…… 멋있는 변태 같아요……!”

============================ 작품 후기 ============================

착하고 멋진 변태로 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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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보고 왔습니당. 생각한 것 보다는... 음... 좀... 너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너무 많이 넣어서 도리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한정된 시간에 그 모든 메세지를 느끼기가 애매했던 것 같습니다. 킬링타임용은 아니고 사회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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