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회: 럭키 가이! -->
“오빠!”
“지현아!”
도사님이 준 육도로 수행을 열심히 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한자란 장벽에 막힌 나는 결국 낮 시간을 수면 시간으로 보내고 말았다. 음, 물론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수면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 보니 그걸 한다고 해서 시간이 아까울 것은 없었지만……!
“몸은 좀 괜찮아요?”
그 덕에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이게 잠을 안 자고 살아도 버틸 것 같다가 막상 잠이 드니까 못 일어나겠는 거야! 영력으로도 나잇잠은 없앨 수가 없는 모양인지 하마터면 약속 시간보다 늦을 뻔 했다. 물론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 터라 다행히 지각은 면했지만!
“음, 안 좋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해.”
“정말 어떡하다 그렇게 사고가 난 거에요?”
애교 섞인 눈빛을 던지며 고개를 흔들자 지현이가 귀엽단 생각보단 측은하단 생각이 먼저 들었는지 나를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글썽한 눈빛을 보니 정말로 이 사람이 나를 많이 걱정하고 있었구나 싶은 기분이 들어 마음 한 켠이 흡족해졌다.
아, 이러니 내가 사실은 전혀 아프지 않다는 게 괜스레 미안한 기분마저 드는걸. 하지만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런 걸 이야기 할 수는 없지. 어차피 믿지도 않을 테니!
“아침에 수술은 잘 되었나 싶어서 보러 갔더니 그때 마침 사고가 난 거야. 뺑소니라서 범인은 못 찾았어.”
“정말요? 진짜 나쁜 사람들이다! 많이 다치진 않았어요?”
내 말에 정말 놀란 듯 지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다. 오늘은 하얀색 핫팬츠에 시스루한 느낌의 까만 셔츠를 입고 왔는데 역시 패셔너블 하다니까! 걱정하는 지현이의 얼굴과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몸매를 바라보자 절로 미소가 나왔다.
“나 많이 아파 보여?”
“음, 살은 빠진 거 같은데 많이 아파 보이진 않는데요……?”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마취 효과가 있대. 지현이 보니까 흐뭇해서 그래.”
“아이 참! 오빠!”
그 말에 지현이가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어허허, 근데 정말인지 이런 게 좋단 말이야! 지현이 리액션은 탈 아시안 몸매와 달리 너무 순수해 보여서 두 번 봐도 즐겁다. 순수한 즐거움이 묻어나는 나의 얼굴이 지현이가 그래도 걱정스럽다는 듯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래도 오빠, 하루 만에 살이 이만큼 빠진 거 보니까 정말 많이 아픈 거 아니에요?”
“응?”
사실 자고 일어나서 옷을 입으면서 느낀 건데 몸이 갑자기 급격하게 좀 작아진 느낌은 들거든? 그러니까 키가 아니라 내 살찐 소녀 몸뚱이가 자고 일어났더니 그냥 보통 남자 체격이 된 것 같은 묘한 기분 말이다.
그래서 살 찌기 전에 입었던 옷을 오랜만에 꺼내 입었는데 그게 들어가더라고!
“원래 내 칼날 턱선은 종이를 벨 정도로 날카로웠는데?”
“음! 저 만나고 나선 그 칼날이 좀 많이 무뎌졌던 것 같았는데요!”
“아냐, 지현이 니가 요즘 일이 많아서 잘 기억을 못했던 거야.”
뻔뻔하게 이야기를 꺼내니 지현이가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오빠 많이 안 아파 보여서 다행이에요! 다들 걱정 되게 많이 했었어요! 요즘 오빠 매번 사고 나고 막 안 좋아 보여서!”
“내 걱정을? 믿을 수가 없는데. 그렇게 많이 쪼아댔는데 걱정을 했을 리가…….”
장난스러운 나의 말에 지현이가 후후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를 부축하듯이 팔짱을 끼고는 힐끔 고개 돌려 내 눈을 아직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봐 주었다.
“저도 그렇고 다들 걱정 많이 했어요. 정말로.”
진지한 그녀의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찡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뭐……. 서른 넘기고 나니까 이상하게 어릴 20살 코찔찔이 시절엔 못 느끼던 감정들이 느껴지더라고. 음, 나이 들면서 점점 남자는 몸에 여성 호르몬이 증가 한다더니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눈물이 부쩍 많아졌다.
지금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괜히 또 울컥하네! 아, 이래서 내가 맘 놓고 쉬질 못하는 거야! 이 휴머니즘 덩어리 같으니!
“그러면 빨리 나을 수 있도록 몸에 좋고 맛있는 고기를 많이 먹어야겠다.”
감동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지하게 던진 나의 말에 지현이가 참지 못하고 푸훗 웃음을 터뜨렸다.
“고기는 당분간 먹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고기 많이 먹으라고 했어. 사고 나서 피도 났잖아. 그러니까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한우.”
역시 고기 중 왕은 한우라고 그 말에 지현이가 내 팔을 꼭 끌어 안아 보였다.
“알겠어요. 음……. 아직 계산은 제가 못 하지만 그래도 오늘 오빠 아무 것도 안 해도 되게 잘 할게요!”
현실적으로 지현이가 지금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들 밖에 없을 것이다. 음, 당연한 이야기지! 이제 20대 초반에다 막 회사에 들어온 애가 월급을 받았겠어? 뭘 받았겠어?
“육즙 안 잃어버리게 조심!”
“최선을 다해볼게요!”
후후 웃음 짓는 지현이와 함께 나는 단골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다들 일은 잘 하고 있지?”
“음, 좀 급한 거 같긴 해요. 오빠 일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대요. 특히 거기 건설회사 사장님들도 그 이야기 듣고 많이 놀라서 걱정들 많이 했다네요.”
“당연하지. 내가 그 양반들한테 따준 공사들이 몇 억짜린데. 걔네 입장에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임시 휴업한 기분일걸?”
“그래요? 후후, 오빠 정말 능력자였네요!”
어렴풋이 회사 돌아가는 분위기는 이제 지현이도 파악을 한 모양이다. 나를 대견스러워 하는 모습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말 내 입으로 하긴 뭣하지만 이 바닥에서는 기록의 사나이였어. 그런데 그게 지현이 너 만나고 터진 거니까 니가 나의 행운의 여신?”
“에이, 그런 게 아닐 거에요! 오빠가 워낙 잘 하니까!”
후후 물론 립서비스지만 지현이도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늦은 저녁 시간에 걸린 노을만큼이나 붉은 얼굴을 하고서 미소 짓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 보였다. 아, 뽀뽀 하고 싶다! 순간적인 충동을 느끼고는 잠깐 멈칫한 나는 애써 그 느낌을 꾹 눌러 담았다. 비록 지현이와 내가 첫 날 거의 섹스 직전까지 간 사이라고 하지만 그 이후로는 텀이 있었으니까!
“왜요?”
“뽀뽀 하고 싶어서.”
“네?”
하지만 어느 정도 우리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호감이나 좋은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 일수록 남자는 스트레이트해져야 하는 법이거든. 괜히 어줍잖은 기술 부리면 상대로 기술 부리기 마련이니 기습 공격을 가하는 게 참으로 유용하다.
“아…….”
내 말에 지현이가 금방 귀까지 새빨개져서는 조금 긴장한 듯 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가 떨어지지 않았어. 그리고 내가 지금은 몸이 안 좋아서 참을 수밖에 없어. 윽…….”
그 말에 지현이가 큭큭 하고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만 참으면 돼죠.”
그리고 풍만한 가슴으로 내 팔을 다시 꼭 안아주는데 그 포근한 느낌에 나는 무엇보다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7시 5분 경 과천에서 지장보살이 강림하셨다! 이름은 계범도라고!
“그런데 진짜 지현이 넌 보면 볼수록 예쁜 것 같아.”
그러면서 나는 은연중 내 본심을 꺼내들었다. 아니, 이게 진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지현이는 처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예쁜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식당에서 일하는 밝고 귀여운 아이였던 것 같은데 그 날 저녁 화장을 한 모습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예뻐지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 참……! 그렇게 비행기 태우지 마요, 오빠!”
그 말에 부끄러워 하는 지현이가 앙탈을 부린다. 허허, 자꾸 그러면 자꾸 그러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데 말이다. 사랑에 빠지면 예뻐진다 했던가? 그렇다면 지현이는 분명히 내게……?
계범도, 이 프로폐셔널한 사랑꾼 같으니!
“안 돼. 달 까지 보낼 거야. 가서 토끼랑 셀카 좀 찍어 오라고.”
기분이 좋으니 말도 술술 튀어 나온다. 장난기 섞인 대답에 지현이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오빤 어렸을 때 엄청 장난이 심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단골 가게로 들어가며 지현이가 이야기를 꺼내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릴 땐 되게 조용했어. 말수도 적고. 왜 학교 다닐 때 보면 그런 애들 있잖아? 막 우수에 찬…….”
“오빠, 지금 정우성 흉내 냈다!”
“아이 참. 이럴 때는 닮은꼴이 안 좋아. 뭘 하면 따라한다고 하니까 말이야.”
“음……. 그런 건 아닌데…….”
“이모~! 여기 안창살 한근!”
재빠르게 주문으로 이야기를 커트하자 지현이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치, 오빠 불리하니까 도망쳤다!”
“게릴라 전술은 역사적으로 증명이 된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음……. 정말요?”
“아, 갑자기 몸이 안 좋을 것 같아.”
그 말에 지현이가 ‘그러면 안 돼요!’ 하고 졌다는 듯 웃음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귀여운 볼이 정말 가만히 놔두기 싫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아, 역시 나도 남자는 남잔가 보다. 요 일주일 간 그렇게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도 또 이렇게…….
그 사이에 이모가 안창살을 가져왔다. 한근이면 이게 얼마냐? 하지만 나 계범도! 음식값 ㄸㆍ위에 쪼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는 남자다.
“이젠 좀 괜찮아졌어요?”
“고기 냄새를 맡으니까.”
능글맞은 모습에 지현이가 다시 후후 웃음 지었다. 그리고 왼팔에 끼고 있던 머리끈을 들어 머리를 올려 묶는데 와 그게 왜 이렇게 섹시해 보이는지! 여성스러움과 섹시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장면에 다시 흐뭇한 표정을 짓자 지현이가 부끄러운 듯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제 고기 구우려고 묶은 건데! 아, 오빠가 그렇게 보니까 부끄럽잖아요!”
“난 잘못이 없어. 날 왜 이렇게 만들어?”
이럴 땐 도리어 뻔뻔한 게 최고라고 지현이가 고기 구을 집게를 들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뭘 했다구 그래요?”
나를 나무라는 듯 애교 섞인 목소리에 나는 그저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치사하게 그걸 직접 듣고 싶단 말이야? 너무 사랑스러운 걸 어떻게 하면 좋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할 돌직구라지만 이럴 땐 가리지 말자! 다시 한 번 더 지현이가 부끄러운 낯을 하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
“이제 말보단 먹기에 충실한 시간이 왔으니까 괜찮을거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 하니 지현이가 다시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나도 함꼐 미소를 띤 채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예쁜 그녀를 바라보자 발그레한 얼굴의 지현이가 불판 위에 고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많이 먹고 빨리 나아요, 오빠. 다들 걱정 하니까…….”
“응, 금방 다 나을 거야!”
“나도 걱정 많이 되니까요…….”
그리고 지현이가 고개 숙인 채 고기를 구우며 그 말을 꺼냈다. 다른 말보다 쑥스러워 하는 모습에 마음이 이 안창살처럼 녹아내리네. 정말인지 오늘 하루 내게 일어난 흉을 모두 보상받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이모, 여기 이슬 오리지날!”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진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술을 주문했다.
“안 돼요! 오빠, 아픈데 술 마시면!”
“아냐. 적당한 알콜은 몸의 체온을 올려주기 때문에 건강에 괜찮다고 했어. 딱 한 병이면 될 거야.”
“음…….”
근거는 전혀 없지만 설득력 있는 나의 말에 지현이가 ‘정말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주 없는 안창살은 반쪽 밖에 안 돼. 둘을 견우와 직녀로 만들 셈이야?”
“아이 참! 그런 거 보단 오빠 몸이 최우선이니까 그렇죠!”
미소 짓고 있긴 하지만 내가 정말로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 눈빛에 다시 한 번 기분 좋아진 나는 입이 귀에 걸린 줄도 모르고 바보처럼 헤헤 웃음 지어 보였다.
“지현이 네가 있으니까 괜찮아. 그럼 딱 한 병만!”
“음……. 알겠어요. 그러면 오빠는 반잔만 마셔요.”
“네, 알겠습니다. 시키는대로 할게요…….”
그 말에 지현이가 후후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안창살의 핏기가 가시기 전 살짝 고기를 뒤집어 보였다. 육즙과 불판이 슬 닿으며 치익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자 내 마음이 위로 되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아, 힐링 사운드야. 이건.”
“정말요? 근데 오빠! 그때 본 새는 어디 있어요? 집에 있어요?”
일전에 금조를 보았던 지현이가 금조 생각이 났던지 물음을 던지자 나는 후후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걘 심부름 보냈어.”
“심부름이요?”
“음, 전서구 같은 거도 할 줄 아는 녀석이거든.”
“네?”
이내 지현이가 빵 터진 듯 웃음을 터뜨렸다. 자그마한 금조가 그리 일을 한다고 하니 상상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뭘 보낸 건데요?”
“음, 뭐 좀 부탁 할 게 있어서 도와달라고 보낸 거야!”
“엄청 신기하다!”
요 기특한 녀석! 자리를 하지 않고 있어도 그 찬란한 비주얼로 이렇듯 주인에게 기쁨을 주는구나! 다름이 아니라 데이트도 자유롭게 할 겸 육도를 금조에게 맡겨 주미 원장 편으로 보낸 나는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정말 신의 한수지? 아무리 주미 원장이 좋은 요괴라고 해도 남녀 사이의 일은 은밀한 게 좋잖아?
“자, 우선은 한 잔!”
“네! 오빠! 많이 마시면 안 돼요!”
그럼 지현이 니가 많이 마시면 돼……? 원래는 그랬겠지만 적당히 조절하자! 절제하며 고갤 끄덕이는 나의 모습이 지현이도 안심한 듯 했다.
“짠!”
그리고 잔을 부딪치며 나는 지현이와 함께 흥겨움을 나누기 시작했다. 한 잔, 두 잔! 하다보니 한 병은 어느 샌가 두 병이 되었고 시간도 늦은 저녁에서 확연한 밤이 되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안창살의 풍미와 소주 특유의 그 달콤 씁쓸한 맛이 어우러져 기분을 좋게 만들었고 날 걱정해주는 사랑스러운 지현이가 눈 앞에 있다보니 기분이 확 좋아지는 상황이었다.
“이거 되게 맛있어요!”
한 근을 소주 2병과 함께 싹 다 비운 지현이가 너무나도 즐거운 얼굴로 이야기를 ㄲᅠㄴㅐ자 나는 또 다시 지장보살에 빙의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소의 정점이 안창살 아니겠어?”
후후 웃음 짓는 나의 말에 나보다 많이 술을 마신 지현이가 벌써 발그레 해진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또 이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될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드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좀 섭섭해 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주미 원장이나 시은이, 또 청령과는 케이스가 다르다. 일단은 그쪽은 요괴란 것도 있지만 뭐랄까? 그쪽은 내 의사보다는 상대의 의사가 강했다면 지금 이건…… 내 힘으로 쟁취해냈다는 그런 느낌이 있으니까!
역시 남자는 자존감으로 사는 생명 아니겠냐!
“이제 슬 밖으로 나갈까?”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조금 더 분위기 좋은 곳으로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 오늘 밤은 나도 오랜만에 청춘으로 돌아가 미쳐 버리는 거야!
“그러면 2차는 제가 낼 게요! 카페 같은데……?”
“……데보다는 가볍게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데로?”
그 말에 지현이가 음 하고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해보였다.
“근데 오빠 몸이 안 좋은데 술 계속 마셔도 돼요?”
살짝 꼬부러진 목소리가 왜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럽게 들리는지! 크게 개의치는 않겠지만 그게 걸린다는 듯 한 지현이의 말에 나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맥은 힘들 거 같은데 위 안에서 소맥 되는 건 괜찮을 것 같아.”
“안 되는데, 오빠 아프니까 술 마시면……!”
“안 된다 하지 말고, 아니 된다 하지 말고 어떻게? 될 때 까지 하면 된다! 이 좋은 분위기 그렇게 날려 버릴 수 없지 말입니다!”
하면 된다! 불굴의 의지를 담은 구호에 결국 지현이가 고개를 끄덕여 버리고 말았다.
“알았어요. 그러면 거기 가서는 오빠 정말 맥주 한 컵만 마시기! 약속!”
조금 취기가 올랐던지 앙증맞은 새끼 손가락을 내미는 지현이의 모습에 나는 그저 흐뭇한 웃음을 지을 따름이었다. 조금 취한 모습이 이렇게 사랑스럽습니다.
“응. 약속.”
그리고 손가락을 걸자 지현이가 해맑게 웃음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당겨 지현이의 입에 가볍게 입술을 마주쳤다.
“도장 꽝.”
“아……”
“이건 인감도장이야.”
그 말에 지현이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인감도장……! 치, 나쁜 도장이네요……!”
기분 좋아 보이는 모습에 나도 다시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금 취기가 올랐던지 비틀 거리며 지현이가 내게 기대어 섰다.
“오늘은 조금 취하는 것 같아요. 히히, 오랜만에 취직해서 그런가?”
술을 마셔서 그런지 열기가 확 오른 지현이의 몸이 닿자 저도 모르게 꼴깍 하고 침이 넘어갔다. 이렇게 뜨겁고 푹신한 몸이라니! 아, 정말인지 완벽하기 짝이 없구나.
“괜찮아. 오빠 있잖아.”
이렇듯 듬직합니다. 이 멘트를 얼마 만에 뱉어 보는지! 계산을 끝내고 함께 가게를 나서는 동안 지현이가 내 팔을 더욱 더 꼭 끌어 안아 보였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난 오빠가 되게 좋은 거 있죠……?”
그리고 술기운에 이야기를 꺼냈는데……. 어? 이거 고백 아냐? 순간 놀란 눈으로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지현이도 이야기를 꺼내고는 놀란 듯 토끼눈을 해보였다. 그러다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이 더욱 더 붉게 물들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지현이의 얼굴을 손을 감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 말과 함께 지현이의 얼굴을 향해 다시 한 번 다가서자 이번에는 지현이가 먼저 스륵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알콜향과 화장품 냄새가 조금 섞여서 왠지 모르게 달콤 끈적한 느낌이 드는 입술에 입술을 마주치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까? 크, 뭔가 오늘 시작부터 안 좋았던 하루가 모두 보상을 받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꽉.
어느 샌가 마주 잡은 깍지손을 꽉 움켜쥔 지현이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36.5도 이상의 온기를 담고 있었다. 섹스? 그런 걸 떠나서 아, 이 애랑은 정말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단 그런 일체감이 순간적으로 느껴졌다.
그 순간 또 다시 아리의 얼굴이 얼핏 머리를 스치는 듯 했지만 이미 그쪽은 인연이 아니라 고개 흔들어 생각을 떨쳐내고는 나는 지현이의 몸을 다시 한 번 끌어 안았다.
“음…….”
내 품에 기댄 채 나를 마주 안는 그녀. 내게 기댄 채 부끄러운 듯 한 얼굴을 한 게 너무 사랑스러워 보여 미소 짓고 있는 동안 왠지 모를 시선이 느껴졌다.
“응?”
그리고 슬쩍 고개를 들어 지현이 너머 번화가쪽을 바라보니…….
“어……?”
먼발치에 웬 청소년 무리들이 보인다. 그리고 야한 차림과 진한 화장을 한 여자아이들과 미래의 차이니즈 푸드 딜리버리 역할을 톡톡히 할 사내놈들 틈바구니에서 어울리지 않게 수수한 차림을 한 여자애가 나를 아주 그냥 인간 쓰레기처럼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혐오감 가득한 그 눈빛에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은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아, 아니 아침에는 시은이와! 그리고 지금은 지현이와 이러고 있는 걸 목격했으니 당연히 그럴만도 하다. 아니, 이게 정말 뭐라고 오해라고 할 수도 없고!
“아, 왜……!”
그저 답답한 맘에 말이 툭 하고 튀어 나왔다.
“네?”
그 소리를 들은 건지 품에 안겨 있던 지현이가 뭔가 이상하다 싶었던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는 동안 나를 향한 경멸의 시선을 남긴 채 무리들과 어디론가로 사라지는 308호 소녀! 왜 하필 쟤가 지금 여기에서 나를!
아, 아아! 빌어먹을 수미쌍관법! 왠지 모르게 울적해진 맘으로 나는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아, 아냐……. 아무 것도…….”
============================ 작품 후기 ============================
고개 숙인 남자 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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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 신청했는데 아직도 개통을 안해줘서 취소 했습니다... 장사하기 싫은가봐요. 아무리 인터넷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느린데는 처음이네요. 월요일에 용산 나가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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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필드의 사기꾼 쓰는 게 훨씬 더 재미있네요. 축구는 잘 모르기도 잘 모르고, 축구 만화 보는 기분으로 가볍게 쓰는 터라 코멘란을 닫아놔서 반응 보는 재미는 덜하지만 그래도 쓰는 맛이 좀 더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러합니다!
이제 럭가도 슬 정리하고 좀 더 스토리 본위적인 글들을 써야 할 것 같단 느낌이 오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