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회: 럭키 가이!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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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몸도 좀 좋게 만들 겸, 호신술로도 쓸 겸 해서 왔습니다.”
“음, 운동은 하신지 오래 되셨죠? 앞으로 꾸준히 하셔야 겠어요.”
도사님과의 만남을 뒤로한 채 JKD 센터에 도착한 나는 바로 상담을 시작했다. 강남역 근처에 위치한 건물은 생각보다 거대하고 내부 또한 상당히 멋스러워 보였는데 내가 생각했던 전통적인 수련장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물론 영화에서 보았던 그 절권도 수련의 목기들도 갖춰져 있었고, 주말이지만 시간을 내서 수련을 하는 듯 한 사람들 일부가 보여 신기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운동을 할 시간이 없었죠. 회식이다 뭐다 해서. 이제는 그런 거 좀 조절을 해보려고 알아보고 있는 거구요.”
솔직히 살만 빼려면 이런 거 말고 헬스나 하는 게 낫겠지. 일주일 전에 비해서 살은 빠진 기분인데 어쨌거나 볼품 없는 싸움을 피하기 위한 초이스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렸다!
“네, 먼저 식이요법 위주로 하셔야 겠습니다. 팔 다리는 가는 편인데 복부에 지방이 집중 되어 있으시네요.”
헐, 대박!
“그래요? 제가 나름 한 팔뚝 한다고 자부하는데?”
“운동 좀 하셨던 테는 있는데 지금은 많이 유실 되셨네요. 살찐 소녀 팔뚝…….”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JKD 사범의 말에 나는 충격을 받고 말았다. 아무래도 여기가 연예인들도 영화 찍으러 많이들 오는 곳이라고 알려져서 그런지 몰라도 이 양반도 말재간이 꽤 좋은 듯 했다.
“그래도 살은 좀 빠진 건데…….”
“지금 이대로 계속 놔두시다간 중년의 복부비만이 되실 거에요. 내장 지방 아시죠?”
아, 놔! 벌써 내가 이런 걸 걱정해야 할 나이가 오다니! 인정하기는 싫지만 내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취업한 이래로 매일 같이 술은 입에 달고 살았고, 사무직 특성 상 하루의 반 이상을 앉아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방과 콜레스테롤은 내 혈관을 막으며 온 몸 구석구석 촘촘하게 배포되어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이걸 어떻게든 태워내버려야겠네요.”
“절권도의 수기나 죽기는 동작이 매우 신속, 간결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다면 몸에 있는 이 지방들이 버틸 재간이 없을 겁니다. 거기다 웨이트 시설도 갖추고 있으니까 함께 프리 웨이트도 병행한다면 아주 빠른 속도로 지방이 날아가겠죠? 운동한 테가 있으셔서 그래도 지방들 컷팅 하고 데피만 좀 만져주면 몸은 금방 좋아지실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가 그래도 깨작깨작 헬스 다니고 중량은 좀 쳐서 그런지 테는 좀 남아 있단 사실이다. 하, 여름 휴가때 해운대, 경포, 대천으로 원정 뛰던 게 이런 데서 빛을 보는 구나.
“하지만 이제 점점 대사량이 떨어지시는 나이니까 예전만큼 성과가 안 나온다 하더라도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몸을 이렇게 둔 건 전적으로 자기 잘못이지, 누구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사범이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이게 참…… 말하는 뻔세가 좀 그렇다.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은근히 사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묘한 맛이 있어! 왠지 모르게 사람 자존심을 살살…….
“예, 뭐. 그럼 간단하게 그 수기인가, 죽기인가 하는 거 좀 봅시다.”
하지만 거기에 울컥할 나이는 아니잖아? 그리고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두런두런 좋게 넘어가려는 나는 먼저 절권도의 동작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뭐 이게 헬스 같은 거면 트레이너의 몸이 결과를 말해주겠지만 이런 거라면 좀 성격이 다르긴 할 거 아니냐?
“수기는 손기술, 죽기는 발기술이거든. 원래 처음에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이런 요청을 한 번씩은 다 하세요. 이리로 오세요. 보여 드릴게요.”
익숙하다는 듯 사범 녀석이 ‘목인장’을 향해 나를 이끌었다. 오오, 저거 영화에서 많이 본 건데!
“실물은 처음 보시죠?”
“그러네요! 이거 딱딱 치면서?”
“그런 셈이죠. 잘 보세요!”
그리고 사범 녀석이 목인장 앞에 자리를 잡았다. 원통형 나무에 꼭 사람의 팔 다리를 형상화 시킨 듯 한 가지가 뻗어 있는 형태였는데 그 앞에서 사범 녀석이 자리를 잡자 거의 1:1 형식으로 지도를 받고 있던 사람들이 잠깐 트레이닝을 멈추고 그 장면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후!”
그리고 숨을 고르던 사범이 한 순간 숨을 내뱉으며 목인장을 치기 시작했다.
-파박!
“오!”
동작은 사범 녀석이 자부 했던 것처럼 정말로 빨랐다. 번개처럼 사람의 팔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을 내려치고는 안면부에 해당하는 스펀치 두른 부분을 가격 하고, 다음은 복부!
“처음 보시는 분은 빨라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수도 있어요.”
자부심이라고 해야 할지, 거만함이라고 해야 할 지! 아무리 봐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 녀석의 모습에 또 다시 심사가 꼬인 나는 비어 있는 목인장에 자리를 잡아 보았다.
“이거 뭐 이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한 번 해보시죠.”
초보가 절대로 잘 할 수 있을 리 없다는 듯 사범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손을 내밀었다. 해보란 뉘앙스에 왠지 모르게 또 다시 자극을 받은 나는 아까 보았던 대로 사범과 같은 자세를 취해 보였다. 아니, 사실 뭐 이게 묘한 느낌이 있었는데 빠르게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그렇게 빠르게 ‘느껴지진’ 않았거든.
영기를 쌓아서 그런지 몰라도 최소한 지금 내 눈의 선구안은 전성기 장성호의 선구안을 능가한다!
“후!”
절권도라는 게 예비 동작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여기 상대방의 손을 먼저 제압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목인장에도 양 팔을 형상화한 두 개의 팔이 달려 있는 거지! 사나이 계범도! 백령도 태권도 1단이라고!
나는 무도인의 기운을 살려 번개처럼 팔에 해당하는 목인장 팔을 왼손으로 내리쳤다.
-우직!
“어어?!”
-퍼억!
그리고 번개처럼 오른손으로 안면에다 한 방! 다음은 바디……!
-우지끈!
“어, 엉?!”
치기 무섭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목인장의 팔과 바디에 해당하는 목인장 몸통이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어, 어! 씨발 뭐야!”
당황한 나도 깜짝 놀라 뒤로 빠지고 곁에서 얼마나 잘 하는지 보자 했던 사범도 놀란 얼굴이다. 그 뿐 아니라 JKD 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놀란 얼굴을 해보였다.
“이거 왜 이렇게 약해요?!”
화들짝 놀라서 내가 소리를 치자 잠깐 멍해있던 사범이 당황한 얼굴로 ‘아, 아!’ 하고 허둥지둥하며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다치신데는 없죠?!”
“예! 다친 데는 없습니다!”
“다행입니다!”
왜 자꾸 소리를 지르는 건데! 왠지 모르게 흥분한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소리를 지르며 대답을 해보였다. 하지만 지금 나 정말 당황했거든? 이게 왜 부러져?
“혹시 영기 때문에……?”
내가 정말 타고난 역사가 아니라면 그걸 33살에 발견했을 리 없지! 혹시나 이 영기가 내게 무슨 힘을 발휘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나는 다시 한 번 주먹을 꾹 움켜 쥐었다. 그 사이에 사범은 부러진 목인장을 보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해보였다.
“이게 이렇게 부러질 리가 없는데…….”
하지만 상식적으로 살찐 소녀 몸뚱이를 하고 있는 내가 무슨 괴력으로 목인장을 부수겠냐?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인지라 사람들이 서로 고개를 의아해했다.
“이거 불량 아니에요?”
“아, 예……. 그런 거 같긴 한데 부서진 면이…….”
“이거 들여온데다 환불 해달라 그래요. 진짜 깜짝 놀랐네.”
영기! 영기를 쌓아 올려 영력을 갖춘 나이기 때문에 가능한 그림인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굳이 절권도를 배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뭐! 이 정도면 그냥 눈으로 보고 대강 따라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내가 슈퍼맨이랑 싸울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정말 처음치고 동작은 좋으셨어요! 속도는 오히려 저보다도 더 좋은 것 같던데……! 소질이 있으신대요!”
“제가 원래 무술에는 좀 소질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쿵푸보이 친미와 권법소년을 독파했었죠.”
친미는 친미 성향을 가진 진보 중국인일까……? 문득 나이가 드니 이런 쓰잘 데 없는 생각만……. 아, 아니다. 그게 아니라 정말 통배권 같은 그런 것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순간 머리를 번뜩이는 생각에 잠깐 다른 생각으로 빠져든 동안 다른 사범들이 부서진 목인장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 동안 사범이 꽤 달라진 얼굴을 하고서 내게 물음을 던졌다.
“혹시 전에 트레이닝 받으신 적 있으신가요? 이쪽이 아니면 뭐 무에타이나 혹시 다른 쿵푸나 그런 쪽으로라도.”
“군대 있을 때 휴가가려고 태권도 1단 딴 거 말곤 없는데요.”
“정말요? 그럼 정말 이쪽으로 재주가 있으신 건데! 와, 정말 아깝네요!”
후후, 역시 사람은 실력으로 말을 해야지. 건방진 자부심 대신에 나를 향한 존중의 빛을 내보이는 사범의 모습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에헴, 그래도 사람이 좀 겸손한 맛은 있어야겠지?
“에이, 이런 몸으로 무슨 재능입니까. 그냥 소발에 쥐잡기 격이죠.”
“아닙니다! 홍금보도 있지 않습니까? 홍금보 같으셨어요!”
아 놔, 이 새끼가 정말! 왜 홍금보인데? 내가 그 정도는 아니잖아!
“……아무튼 뭐 가서 찬찬히 생각 좀 해볼게요.”
“아아, 가시려구요?”
“예, 뭐. 약속도 있고 해서. 이거 부러진 거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흥! 33살 중년이 얼마나 섬세한지 넌 모르는구나? 나의 마음은 물에 젖은 티슈와 같고, 나의 멘탈은 쿠크다스, 웨하스와 같은 걸 하나도 모르는 바보!
“그런데 정말 제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여기 와서 트레이닝 하는 사람들 중에서 첫 폼이 제일 좋았습니다. 진짜 이 지방만 다 걷어 내시고 나면 정말 영화 배우 하셔도 손색이 없으시겠어요! 은근히 정우성, 이정재 분위기도 나시고!”
영업 좀 하는데! 이 자식!
“으하하하! 거 참, 그건 맞는 말입니다.”
칭찬에 약한 다루기 쉬운 33살 계범도입니다. 이내 정우성, 이정재 분위기라는 말에 기분이 풀린 나는 칼 같이 밖으로 나가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뭐, 좀 있어도 상관은 없지 않겠어?
“이게 무슨 일이래요?”
그 와중에 도장 입구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 목소리? 땡! 남자 목소리였는데 정말로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음성이었다.
“응?”
그리고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어, 어?! 이수영!”
이런데서 영화배우를 다 만나다니! 나보다 2살 정도 많은 인기 영화배우 이수영이 모습을 보였다.
“어, 수영이 형님 오셨습니까!”
놀란 나와 달리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하는 사범 녀석. 아, 맞아! 저 녀석이 티비에 나와서 절권도 수련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긴 했었지! 몸 진짜 겁나게 좋다고 부러워 했었는데! 개자식, 얼굴도 잘 생기고……!
“정수야, 이게 무슨 일이야? 저 목인장은 왜 이래?”
아직까지 목인장 잔해가 남아 있던 터라 그걸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해 보이는 모양이다.
“저게 불량이었나봐요. 이 분이 처음 와서 쳤는데 부서지는 바람에…….”
“그래? 어제 내가 연습하던 자리였는데. 어젠 별 문제 없었는데.”
그리고 이수영이 그럴리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아니, 뭐 그거야 둘째치고 와 내 생애 연예인을 이렇게 가까운 자리에서 보게 될 줄이야!
“뭔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상식적으로 저 튼튼한 게 사람 손에 부서지겠어요? 뭔가 이상이 있었나 봐요.”
“완전 산산조각 났는데……. 음, 그런가보다.”
우리네 세상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있지. 그래서 더 이상 그걸 문제로 삼을 생각은 없었던 모양인지 이수영이 가방을 내려놓고 내게로 걸음을 옮겨 왔다.
“안녕하세요.”
와,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겁나게 잘 생겼네! 내 얼굴에 꼴뚜기와 정우성이 공존한다는 건 알았지만 정말 순도 100% 미남을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에 주눅이 든다. 이런 씨! 부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네, 안녕하세요.”
“형님, 이 분 대박이에요! 보기와는 다르게 진짜 완전 날렵해요! 홍금보, 홍금보!”
아, 놔! 왜 자꾸 홍금보래! 내가 그런 몸은 아니잖아!
“오, 진짜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수영이 내게 흥미를 보이는 듯 했다. 미소와 함께 손을 건네는 영화배우의 모습에 나도 괜시리 마음이 흡족해졌다. 이 녀석……. 아,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녀석은 아닌가?
“제가 권법소년을 3회 정독 했거든요.”
“큭, 재미있으네요! 그거 재미있죠?”
왠지 모르게 사람이 수더분하고 털털해 보이는 것이……. 음, 뭐. 괜찮네.
“만화는 역시 옛날 만화가 감동이 있죠. 요즘 것들은 눈만 땡그랗게 커서. 수라의 각 같은 게 죽여줬는데.”
“오오! 그거 아는 사람 진짜 찾아보기 힘든데?!”
내 말에 반색하며 반가워 하는 영화배우, 이수영! 너무나도 좋은 리액션에 덩달아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 놔, 설마 내가 만화책 이야기 하면서 영화배우랑 친해질 줄은 몰랐네!
“나이가 좀 있으시죠?”
“저 33살입니다. 삼삼한 나이죠.”
“어? 저보다 형님이실 줄 알았는데!”
“왜 그러세요? 형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전국민이 형님 나이를 다 아는데.”
“큭큭, 그렇습니까?”
“그럼요! 근데 진짜 35살 맞으세요? 나이 속이신거면 제가 형님 할 수도 있는데…….”
“아, 속인 건 맞아요 프로필상 35살이고 실제로는 36살.”
아, 놔 억울하네! 더!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미남미녀의 씨는 따로 있었던 모양이로구나……!
“어쨌든 앞으로도 자주 뵈었으면 좋겠네요! 아주 재미있는 분이시네!”
흥, 남자한테 이런 이야기 들어도 딱히 기분 좋지 않아……! 하지만 직장 외의 자리에서 사람을 만난 것도 오랜만이고, 그게 또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그것 때문에 기분은 좋더라.
“제가 생각을 좀 해보려고요.”
도도하게 머리를 쓸어 넘기는 나의 모습에 이수영이 크악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 개그 코드가 이 양반에게 직빵인가 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업 된 나도 따라서 함께 웃음을 터뜨리자 이수영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 꼭 여기 아니더라도 술 한 잔 하게 연락처 좀 주세요.”
“예?”
뭐야? 왜 내가 남자한테 번호를 따이는 건데? 그것도 저렇게 잘난 놈한테 말이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저는 여자를 미친 듯이 좋아합니다. 음란마귀, 색마에요.”
“아, 아니! 그런 거 아닙니다! 저도 남자 좋아하면 몸 반듯하고 멋진 사람을 좋아하지!”
“어, 어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말을 하자면!”
“말 하자면……?”
“예, 말 하자면!”
“말 하자면 너를 사랑했다는 말이야? 하지만 나는 말 할 수 없단 얘기야……?”
“푸하하핫!”
그 말에 순간 이수영이 무너지고 말았다. 故김성재의 노래를 인용해 이렇게 공격해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도장 바닥에 주저 앉아 배를 잡고 웃고 있는 그의 말에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아닙니다.”
“아니란 증거를 대기 위해서 그 자리엔 꼭 여자 사람이 대동했으면 좋겠네요. 물론 제가 작업이나 수작을 걸기 위함이 아니라 저를 지켜내기 위해서…….”
“아, 진짜 정말 말 잘 하시고 재미있으시네요! 와, 그게 아니라 제가 조만간 예능 프로에 나가야 되는데 여긴 운동 하는 사람들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 좀 전수나 받을까 싶었죠!”
인기 배우라면 사람을 가릴 법도 한 데 이수영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 이거 왜 이래? 얼굴도 잘 생긴 게 왜 자꾸 호감형이 되려고 하는 건데?
“아, 그래요?”
“아무튼 그런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 말에 나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계범도라고 합니다. 그냥 뭐, 수영이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아유, 알겠습니다! 아우님!”
아주 첫 만남에 내가 마음에 들었던지 이수영이 내 명함을 받아들고 미소를 지었다.
“이번 주말 안으로 연락 드릴게요.”
“꼭 여자 사람을 대동해서…….”
“……음란마귀라고 해서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요.”
“마귀도 누울 자리 몰라보고 여기저기서 까불면 퇴치 당해요. 안심하셔도 돼요…….”
“큭!”
역시 사나이 계범도! 난 입으로 약을 팔 때 가장 매력적인 남자지. 후훗!
“어쨌거나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은 어제 꼬박 밤을 새서!”
“그 연유가 혹시 음란한 이유는 아니겠죠?”
“아, 음란하진 않고 제법 음탕했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다 지나간 과거니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에 수영이 형님이 다시 한 번 으하핫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람이 매번 겁내 진지한 역할만 맡아서 좀 어려울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부르르!
때 마침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아, 잠시만요!”
이쯤하면 슬 어색한 정적이 흐를 만 한데 그 타이밍에 딱 울려주는 핸드폰이라니! 핸드폰을 꺼내 든 나는 순간적으로 광대뼈가 터져 나올 뻔 했다.
-남지현
지현이다! 지현! 핸드폰 메인이 떠 있는 이름 석 자! 음하하!
“그러면 형님,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꼭 여자 사람과 함께……!”
“조심해서 들어가고 오늘이나 내일쯤 연락 하지요!”
다른 것보다도 지현이의 전화가 더 급했기 때문에 나는 급히 사범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건네고는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오빠!
어, 그래! 지현아! 그래, 오빠는 너한테 들어야지! 시은이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빠란 말은 지현이에게!
“그래, 그래! 지현아!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은요! 오빠 아프니까 걱정 돼서 연락 한 거에요. 몸은 좀 괜찮아요?
대외적으로는 교통사고로 알려진 만큼……. 아, 좀 병약자 코스프레를 해야 겠어. 혹시 모르니 나중에 법원 갈 때도 먹어주도록 말이야.
“아, 몸은 이제 좀 괜찮아……. 사고가 뭐 그렇게 심한 건 아니어서. 넌? 오늘 오랜만에 쉬는 날일 텐 데? 푹 쉬고 있고?”
-네, 오빠! 지금 막 일어났어요! 일어나자마자 오빠 생각나서 전화 했어요, 히힛!
그리고 뒤따른 멘트가 크아~! 완전 내 마음을 35도 대구 날씨 아래 더위사냥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게 만드는 구나!
“정말? 이야 오늘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식이네!”
정말 영화배우 수영이 형님과 인연을 트게 된 것보다도 더욱 더 반갑다.
-정말요? 우와, 일어나자마자 연락하기 잘했네요!
그리고 지현이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 듯 들리니,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단 말이냐? 흐뭇한 맘 한 가득 가진 가운데 지현이의 맑은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아,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현이는 보면 볼수록 만나고 싶은 뭔가가 있는 것 같다니까!
“기특해서 상이라도 주고 싶네!”
원래는 어제 지현이를 만나서 지현이와 하나가 되었겠지만……. 요괴 삼인방과 하나가 되고 말았지. 피로할 만도 하지만 지금의 내 몸이라면 오늘도 충분히……. 후후, 남잔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다 그렇잖아.
“어제 못 봤으니까 오늘 줘야겠다!”
고로 돌직구다! 속임수 전혀 없는 나의 돌직구에 순간 지현이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오빠, 몸은 괜찮아요? 어제 사고 난 건……?
“안 괜찮으니까 지현이 너한테 보살핌 받을래.”
계속 괜찮아, 괜찮아 하는 건 하수야! 아프다는 것도 이용을 할 수 있지! 모성 본능을 자극하자! 그리고 만나고 나서 널 보니 괜찮아 졌다, 너 때문에 괜찮다. 이것만큼 쿵, 짝이 맞는 콤비네이션이 없다니까. 상대에게 자연스럽게 명분을 제시해주잖아.
-음……. 그러면 제가…… 저녁에 오빠 집으로 갈게요!
“일단은 종합청사 쪽에서 만날래? 나도 지금 병원 진료 때문에 밖에 나와 있거든. 다 끝내고 들어가면 그쯤일 거 같은데.”
-아, 네! 검사 결과는 어때요?
사실 병원이란 말은 거짓말이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는데 적당히 보살핌만 받으면 괜찮아질 모양인가 봐.”
그 말에 지현이가 수화기 너머로 후후 웃음 지어 보였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이 다 정화되는 기분이다. 오늘 지현이를 보고 나면 이제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도 확신이 생길 것 같아.
“그러면 일단은 종합청사 앞에서 7시에 보기로 하자.”
사실 지금 집에 돌아가면 여유 시간이 꽤 있다. 아직 12시가 안 됐으니까. 하지만 그 시간동안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지.
“까악!”
“쉿.”
금조가 들고 있던 육도를 살펴보고 뭔지 공부를 해보는 것 말이야.
-네, 오빠! 그러면 그 시간에 맞춰 갈 게요!
어쨌거나 타이트한 이 삶이 싫진 않다. 그래, 길이든 흉이든 꿀릴 거 없지! 길이면 순풍 돛단배처럼 쭉 나아가면 되고, 흉이라고 해도 뚫고 지나가면 그만이니까! 자신감 충전 완료다! 가자!
“알겠어! 그러면 이따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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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범도의 추억 대방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