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회: 럭키 가이!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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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
미끄러지듯 나가는 대형 세단을 보았니? 엔진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극한의 정숙함에 금방이라도 곯아떨어질 듯 한 안락함! 거기에다 이렇게 부드러운 핸들링과 가속 능력을 갖춘 차! 나의 새로운 애마 쓰클이!
“아, 이 맛에 운전 하는 구나. 정말!”
구간이 그런 구간이 아닌지라 속도를 내본 건 아니지만 가속력은 어제 시은이를 통해서 체험해봤고, 결국 차가 판가름 나는 건 기본기가 얼마나 탄탄하냐다.
묵직한 하체의 서스펜션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란! 원가 절감을 위해서 종잇장 같은 문짝과 부실한 차체로 인해서 120킬로 돌파 하는 순간 진동이 시작되는 차량들과는 천지차이거든!
역시 차든, 사람이든 하체가 중요하다니까!
“대체 흉이 왜? 왜? 이렇게 차도 잘 나가는 데 왜?”
그런데 도대체 왜! 왜 하필이면 구슬이는 내 오늘 하루가 흉이라 이야기를 해준 것일까?
“아,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아니 아무리 안 좋으려고 해도 안 좋을 수가 없는 상황 아니냐?
이미 청령은 주미 원장 선에서 처리 되고 있기 때문에 위험 요소는 모두 사라졌고, 선물로 쓰클이를 얻지 않았나? 거기다 프로토 당첨금도 7천만 원 받을 게 있고! 거기다 청령과 동침한 덕분에 어마어마한 영력을 얻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축제 무드라고 할 만 하다.
“대체 이유가 뭘까?”
“까악?”
“역시 어제가 대길이라서 오늘은 그거에 비해서 그렇단 건가?”
진짜 이놈의 운수는 부처, 예수가 와도 모를 거다. 당최 갈피가 잡히지 않는 운빨에 금조에게 물음을 던져 보았지만 금조 역시 알 리가 없다. 그저 고개를 갸웃하며 나와 함께 어리둥절함을 나누고 있는 작은 새를 보고 있자니 덩달아 할 말이 없어진 나는 피식 헛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뭐 흉수가 있는 날이면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서 쉬면 되는 거 아니겠냐? 어차피 잠도 못 잤는데 잠도 좀 채울 겸!”
그래, 까짓 거 내가 꿀릴 게 뭐냐! 역시 운대를 바꾸는 건 마인드의 차이라고 단단하게 마음을 먹은 나는 후후 미소를 머금은 채 나의 터전 빌리지 타운으로 속도를 냈다.
“마음이 중요한거지, 마음이. 그쟈?”
따지고 보면 문제 될 것들이 하나도 없는데 구슬이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흉수일 수도 있다. 내게 너무 구슬이에 의지 하지 말란 경종을 울리는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자고! 어차피 오늘 하루는 집에서 좀 휴식도 취하고 이것 저것 알아봐야 할 테니 말이다.
“흠.”
그러면서 백미러로 뒷좌석을 보니 이미 시은이는 드림랜드 여행이 한창이다. 쓰클이가 크고 조용해서 그런지 몰라도 뒷좌석이 꼭 맞는 사이즈인 듯 잠이 든 모습을 보니 ‘흉’이라고 쓰여진 문구도 금방 잊혀지는 기분이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고! 계범도!”
모든 일이 다 잘 해결 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더 이상 흉에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그저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기세 좋게 극복해내고 이겨내면 되는 거 아니겠냐? 결국 운칠기삼!
“절권도 같은 거나 배워 볼까?”
건설적인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음, 지금은 뭐 더 이상 위협이 될 만 한 것들도 없단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뭔가를 하긴 해야 할 것 같다. 세상 천지에 요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 같고, 그럼 구슬이가 있는 한 또 다른 트러블은 언제고 다시 발생할지 모른다.
아, 혹시 우리 집에 또 다른 요괴가 있는 거 아니야?
“음……!”
설마 하니 벌써 그럴까? 조금 미심쩍은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워낙에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는 시은이가 있으니 집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상황 종결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래. 어쨌거나 그런 걸 떠나서 조선족 불체자 새끼들과의 싸움을 다시 떠올려 보았을 때 나도 제법 멋들어지게 싸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멋보다도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이란 게 필요하단 거겠지?
“분명히 내가 몸 상태가 엄청 좋아진 건 맞는 것 같은데.”
정력만 강해진 건 아닐 것이다. 그동안은 뭔가 상대가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상대가 느리게 느껴진 것이 영기를 쌓아서 영력을 얻었기 때무에 체감한 일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가능성은 있는 대목이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딱히 뭐 하질 않았는데 몸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
처음엔 단순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왜 우리 나이쯤 되면 알잖아? 이게 살이 빠지는 게 몸이 안 좋고, 신경 쓰여서 빠지는 거랑 건강하게 빠지는 느낌 말이다.
지금 내 느낌은 전적으로 후자다. 불로소득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예전 내가 젊어서 한창 운동하던 때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배에 지방이 많이 사라진 기분이거든? 안 좋아서 빠진 살은 몸도 축 늘어지고 뭔가 피로에 쩔어서 제대로 활동도 못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데, 지금은 아주 가볍고 개운하다. 밤새도록 뜨거운 밤을 보냈다 하더라도 후유증 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여기다 운동까지 같이 하면 진짜 끝장 나겠는데?”
솔직히 안해도 근육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다. 헤헤, 그렇긴 한데 그래도 뭔가를 몸으로 익히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큰 편이니까. 음, 뭔가 해보고자 하는 의욕으로 충만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상태가 무척이나 리프레쉬한 상태인 것 같긴 하다.
“과천 반담 나간다잉!”
우리 땐 반담, 시걸이 먹어줬지! 유니버설 솔저! 이 명작을 요즘 애들은 알랑가 몰라! 하긴 뭐 알 리가 있겠냐? 가만히 보면 요즘은 이런 B급 영화도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뭔가 좀 리얼하진 않지만 그래도 사나이 용심을 자극하는 뭔가 그런 문화가 소실된 것 같달까.
“아, 이거 액션 스타 한 번 진출 해봐?”
몸만 잘 만들어서 한 번 뛰어들어 보면 이거 나쁘지 않은 선택인지도 모르겠어! 어차피 내 외모야 과천 정우성 아니냐?
“어때? 금조야! 나 영화 배우 하면 진짜 끝장 날 것 같지?”
아, 정말인지……!
“까악?”
고개를 갸웃하는 금조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아, 이런 걸 새랑 논해선 안 될 일이지.
“그러고 보니 연예계 진출이 그렇게 어렵진 않겠네.”
이미 주미 원장의 고객들 가운데에는 진짜 이름만 들어도 알 만 한 유명인들이 즐비하지 않은가? 그녀들 대부분이 미혼향에 취해서 엄청난 열량을 소모 하고 간다는 은밀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
“참, 내 주제에 무슨 연예인이냐! 그치? 금조야!”
“까악!”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저 개새……. 그렇게 세게 긍정 안 해도 알거든?!
아, 정말 안 되겠다. 살을 빼서 나의 날렵함을 되찾아야지! 그 생각과 함께 어느 샌가 흉에 대해서 잊어버린 나는 매끈한 운전 실력을 뽐내며 집 앞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역시 집이 최고구나.”
나는 물건이든, 뭐든 내 소유의 것에는 상당한 애착을 보이는 편이다. 그런 것들 가운데에서도 유난히 의미가 있는 게 있다면 바로 이 곳, 나의 전셋집일 것이다. 물론 내 소유가 아니라 전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전 본사에서 김부장, 윤이사 손 잡고 혈혈단신으로 올라와 자리 잡은 첫 집이기도 하니까.
“이제 너도 조만간…….”
뭐 언젠가 떠날 자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이렇게 이를 줄은 몰랐다. 이미 나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쓰클이로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이제 이 집도 다른 곳으로 터전을 옮겨야만 하겠지? 아니, 뭐 내가 돈지랄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아무래도 이래저래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다 보니 좀 더 안정적이고,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냐? 나타 팔고, 전세금 되찾고, 그 동안 모아둔 돈이랑 토토 당첨금 절반을 찾아낸다면 모르긴 몰라도 과천을 떠나서 관악구나 사당, 방배동 등지로 진입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뭐 떵떵거리며 살겠단 건 아니고 적당히 지금의 내 수준에 맞게, 내 수익에 맞는 곳에서 사는 건 어떨까 하는 거지! 일단은 당장에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으니 출근 시간도 좀 줄일 겸, 여러 가지로 겸사겸사해서 말이다.
“까악!”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깨운 것은 금조의 높은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정신이 든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말았다.
-끼이이익!
“우워, 씨바!”
너무 놀란 나머지 반사적으로 욕을 내뱉고 말았는데, 다름이 아니라 우리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쪽에서 무엇인가가 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와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이, 깜짝이야!”
정신을 다른 데다 판 나도 나지만 아직 7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인 터라 사람이 저렇게 갑자기 툭 튀어 나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비틀거리며 튀어 나온 것은 시은이와 비슷한 체구의 자그마한 여자였는데 뭔진 몰라도 상태가 그리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덜컥!
“괜찮으세요?”
씨바 이게 혹시 흉인가?! 놀란 마음에 당장 운전석을 벗어나 물음을 던지자 사고는 나지 않았으나 조금 놀란 듯 본 네트에 손을 올리고 고개 숙인 여자가 보였다. 큼직한 까만 가방이 바닥에 넘어져 있는 것을 보니 급히 어디론가로 나서다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와, 그래도 사고가 안 나서 다행이네! 그래, 맞다! 내가 사는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이고, 거기에 대해서 책임은 내게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슨 이런 영력 같은 걸 얻었다 하더라도 만능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냐?
후우, 그래! 이런 식으로 세상은 내게 경종을 울려주는 구나!
“너무 갑자기 튀어 나오셔서……! 아무튼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민인가? 내가 이런 여자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하긴 뭐 내가 빌리지 타운 모든 입주민을 알고 지낼 것도 아니고 모른다 해도 이상 할 일은 없겠지. 어쨌거나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과를 건넸다.
“됐어요…….”
그런 내게 힘 하나 없는 음성이 들려왔다.
“응?”
그 음성이 너무나도 앳되게 들려 순간적으로 나는 귀를 쫑긋하고 말았다. 아니, 뭐 목소리로 사람 나이를 정확히 가늠 못 할 수도 있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한데…….
“어째…….”
꼭 시은이 녀석의 목소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뭔가가 이상하단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며 여자를 보니 잔뜩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이 비쳤다. 퉁퉁 부어 있는 눈은 밤새 울어서 그리 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눈 두덩 주변이 붉게 부어오른 게 꼭 이건 맞아서 부어오른 자국 같았다.
“어?”
뿐만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니 민소매 아래로 훤히 드러난 팔에도 자질구레한 상처들이 꽤 있었다. 특히 까진 무릎 위로 멍자국이 보이는 것이…….
“혹시 308호……?”
그 순간 여자애가 움찔하며 넘어진 가방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도망치듯이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아니, 잠깐! 이게 무슨 일이람……!
“잠깐 기다려 봐! 너 308호 사는 애 맞지? 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항상 어딜 가던지 문제 인물은 하나씩 있는 법이다. 우리 동네에선 308호가 그랬다. 거기 아저씨가 주폭이라고 소문이 났거든. 나도 부녀회장 아줌마한테 가끔씩 이야기 전해 들은 거 밖에 없는데 그 집 아저씨가 술만 마시면 마누라고, 자식이고 그렇게 가족들을 두들겨 팬다더라고.
뭐, 나랑은 딱히 만날 일이 없었는데 혹시나 해서 던진 물음이 역시나였던 모양이다.
“알 거 없잖아요!”
무척이나 화가 난 듯 한 앙칼진 외침에 나는 일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사회생활백서 11조, 절대로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란 구절이 생각이 났거든. 게다가 이건 가정사니까 더 문제가 복잡할 게 분명했고…….
“아니, 뭐…….”
아주 우연찮은 일이라만 이런 걸 끼어들면 오지랖 인증을 하는 거 아니겠냐? 아, 혹시 흉이란 게 이런 건가? 그 순간 나는 무척이나 큰 딜레마를 느끼고 말았다. 왜냐? 왜냐하면 이런 건 안 끼는 게 짱이란 걸 알면서도 나는 그런 걸 그냥 지나칠 위인은 되지 못하거든.
그래, 까라! 본격 호구 인증해주마!
“확실히 내가 뭐라 할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너 아직 학생이잖아. 이런 모양으로 어딜 가려고 하는 거야?”
“여행 가요……! 신경 끄세요!”
뭐가 그리도 308호 애를 화나게 만든 건지 모르겠다만 목소리, 얼굴, 심지어 몸짓까지도 화가 가득 차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 꼴로?”
계범도 가라사대 ‘여자는 타이밍’이다. 연애 측면 뿐 아니라 이런 부분 역시 타이밍이란 게 중요한데 이 어리고 여린 여자애가 이렇게 성이 난 채로 세상에 뛰어들게 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준비되지 않은 시기에 세상으로 내몰린 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이 음지의 일 뿐이다. 우리는 아직 그런 세상이 아니거든!
“아저씨도 너랑 같은 빌라 사는 주민이야. 207호! 너네 집 아랫층에 사는 아저씨거든? 지금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
아, 나 집에 들어가다 말고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하지만 청소년 계도는 계범도의 몫 아니겠냐? 의심하지 말라는 듯 손을 들어 보인 나의 모습에 308호 애가 조금은 경계심이 누그러진 눈빛을 해보였다. 그래, 그래. 일단은 진정을 시켜 줘야지. 생판 남인 내가 지금 얘를 설득하려고 한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일 테니……!
“솔직히 말해서 아저씨도 지금 몹시 당황스럽다. 집에 들어오던 차에 이런 일이 생긴 터라…….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냥 너가 여행을 가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거든?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있었니?”
이렇게 일면식조차 없는 사이에서는 솔직이 가장 큰 무기다. 그것을 전면에 배치하고 308호 애에게 물음을 던지자 308호 애가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나는 손을 들어 절대로 뭔가 해꼬지 할 생각이 없다는 경계 해체의 바디 랭귀지를 취하며 다시 말했다.
“별 일 없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네가 그렇게 별 일 없는 상황이 아닌 것처럼 보여서 말 하는 거야.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아저씨가 널 도와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는데 있어서 기술적이고, 또 능숙하려 노력하는데 그거 다 헛방이다. 제일 좋은 말은 얼마나 진심이 느껴지도록 전달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서툰 표현도 진심이 묻어나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처럼 진심으로 308호 애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 그 맘을 담아 이야기를 건넸다.
“아…….”
그 순간 그 애의 눈빛이 흔들렸다. 굉장히 화가 나서 씩씩 거리다 집을 뛰쳐 나온 듯 한 모습에서 이 상황에 조금은 당황한 듯 했지만 눈빛에 점점 습기가 차는 것이 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추론해낼 수 있는 그림은 주폭인 308호 아저씨가 쟤를 두들겨 패고 못 살게 구니까 얘가 집을 나온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갈 데는 있니……?”
-움찔!
저게 준비된 가출이라면 분명히 지 또래의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겠지. 혹시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지자 움찔하고 308호 애의 눈빛이 흔들렸다. 딱히 갈 데가 있는 건 또 아닌 모양이다.
음…….
“생각이 굉장히 급했지……? 그래, 그랬던 것 같아. 많이 화도 나고, 왜 그래야 하나 싶고. 그래서 많이 혼란스럽고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을 거야. 그치? 아저씨가 다 이해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가 이렇게 아무 대책 없이 집을 나서면 정말 큰일 난다. 그건 너도 알 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집으로 들어가다 말고 갑자기 왜 내가 네고시에이팅을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뭔가 갑작스럽게 친 애드립치고는 상황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 근데 얘가 안 간다 그러면 또 이제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하냐? 구슬이가 정말 정확하긴 정확한가 보다. 어째 하루도 걸러 가는 날이 없네……!
“자, 일단은 집에 들어가라 그런 소리는 안 할게! 너도 답답한 게 있으니까 집을 나왔을 거니까! 하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그러면 절대로 안 된다. 알지……? 그래, 분명히 잘 알 거야!”
일단은 이야기를 좀 해봅시다! 그래, 어차피 계범도! 운으로 얻은 절반은 사람들을 위해서 쓰기로 했으니 이 오지랖 좀 부린다 뭐가 달라지겠는가?
“아…….”
급작스러운 감은 있지만 그래도 내 설득이 먹히긴 하는 모양이다. 처음엔 씩씩 거리며 화를 내던 308호 애가 점차 호흡이 가빠오고, 거칠어 지듯이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 얼굴에 나는 조금만 더 하면 최소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들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래서 막 이야기를 다시 꺼내려는 찰나!
-덜컥!
“우웅! 아저씨! 왜 시끄러워요? 아직 집 아니에요? 시은이 졸린데!”
그 순간 쓰끌이의 뒷좌석 문이 열리고 말았다. 그리고 덩달아 덜컥 내려 앉은 심장에 휙 고개를 돌리니 교복 차림의 시은이가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저씨 때문에 어제 밤에 한숨도 못 잤으니까!”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소리친 귀요미!
아, 안 돼! 지금 그런 소리를 하면 이건……! 그 순간 내 심장이 180미터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내가 진짜 청령이한테 잡혀 갔을 때도 이런 느낌은 안 들었거든? 뭔가 이거 좀…… 막말로 좆됐다는 느낌이 덜컥하고 온 몸을 엄습했다.
“아, 아니!”
그리고 울 것 같던 308호 애의 눈빛에 불이 붙었다. 그것도 아까보다 훨씬 더 거대한! 훨씬 더 강렬하기 짝이 없는……!
경멸과 혐오감이 뒤섞인 눈빛……! 와, 내가 살면서 저런 눈빛은…… 진짜 저런 눈빛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이 변태 새끼……!”
“아, 아……!”
너무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잃은 내가 어버버 손을 흔들었지만 308호 애는 도망치듯이 가방을 들고 달려가 버렸다.
“아니야! 오해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내가 얼마나! 얼마나……!”
진짜 아니란 말이야! 정말로 나는 내 양심을 모두 지켜왔는데!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황망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를 ‘얍!’ 하고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시은이.
“근데 쟤는 누구에요?”
“어……억. 미치겠네…….”
“안 되는데! 아저씨 미치면 안 되는데! 왜 그렇지? 왜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치도록 얄미운 시은이의 체온을 느끼며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아, 왜……!”
============================ 작품 후기 ============================
원조범도
+
서울 와서 물이 안 맞나 장염 증상으로 며칠째 골골 거리고 있네요. 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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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골 거리면서 슬램덩크를 다시 정독하고 느낀 건데 아마 슬램덩크가 한국 장르 소설이나 노블레스 작품이었다면 어마어마한 비난에 직면 했을 것 같네요 ㅋㅋ
퇴장왕 강백호 시절은 주인공이 찌질하다고 폭풍 까였을 것이고, 해남전에서의 마지막 패스 미스는 개연성 제로의 무리수라고 엄청난 디스를 당했을 것이며, 전반적으로 이게 고교생들 실력이라면 또 현실에선 말이 안된다 현실 디스가 들어왔을 것이고, 시합 중 강백호의 개그는 쓰잘데 없는 소리 주절주절 많다고 까였을 것이고, 산왕 공고와의 시합 이후 엔딩은 제대로 된 마무리가 아니라고 또 비판을 받았겠지요.
보면서 느낀 건 사람들의 반응에 쫄지 말고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가야지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는 구나. 물론 만화와 소설의 표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나도 그렇게 개성이 확실한 인물들과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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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요즘 특히 이런 경향이 심한가봐요. 여기 저기에서 우는 소리들이 많이 들리네요. 저도 하루 걸어 하루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 편이고.
사실 작품은 작가의 고유한 권한인데 돈 내고 본다고 해서 그걸 침해할 수는 없거든요. 어디까지나 볼 수 있는 권리를 얻은거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게다가 허락된 시간 안에 자유자재로 작품을 선택해서 볼 수 있는 선택권이 가장 큰 권리인데, 이런 간단한 권리 하나 제대로 구사 못하면서 이건 별로네 저건 어떠하네 가르치려 드는 게 개그죠.
일단 그런 사람들은 전혀 소통 할 생각이 없더군요. 말을 해도 듣질 않으니 그냥 잘라버리는 게 능사더라구요. 그냥 자기 삔도 상하거나 거슬려서 가하는 개인 사견을 전체 의견인 마냥, 그리고 그게 자신의 정당한 권리이자 의견이라고 주장하며 이런 말이 있어야 작가가 발전이 있다고 이야기 하는데 사실 우습죠.
상대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은 눈꼽만큼도 없으면서 발전 운운하는 건 참 솔직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단어 하나로도 애정이 있다, 없다 판별 할 수 있는데 그런 건 신경도 안 쓰면서 포장만 거창하게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요.
예컨데 뷔페에서 내가 돈가스를 요리하는 요리사라고 합시다. 다들 만족하며 잘 먹는데 일부가 와서 '씨발 이건 이렇게 해야 맛있는건데!' '존나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맛 구리네! 별로다!' 깽판 쳐봐야 그건 진상이지 '아유, 고명하신 의견 감사합니다!' 하지 않습니다. 요리의 대가 구본길이신가? 아니잖아요. '아, 네! 무조건 고명하신 님이 정답이고 잘 먹고 있는 나머지 8천명이 병신입니다!' 하겠어요?
먹기 싫으면 먹지 마라 하는 거죠. 그냥 8천명 선택하고 하나 재끼는거에요. 걔도 지가 좋아하는 게 있으니 뷔페 오겠죠. 내 돈가스 때문에 오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거 같으면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는 해줘야죠. 그 사람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겐 이게 메인 디시인데 왜 그 사람들에게 제일 맞는 요리를 못하게 만들어요? 왜 자꾸 자기 입맛에 맞추고, 또 가르치려고 그래요?
그러니 그러면 니가 만들던가 하는 이야기가 튀어 나오는거죠. 왜 자기가 정답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건지. 다른 사람은 아니라잖아요. 더불어 사는 세상 몰라요? 하긴 모르니까 그렇겠지만.
불쌍하긴 한데 친하게 지내긴 싫은 그런 친구 같아요. 나중에 나이 들어서 애 생기면 애들이 싫어하는 아빠, 엄마 될 거에요. 독단적이고 남의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뭐, 이해는 합니다. 그렇게 살아왔을 테니까. 어쩌겠어요? 인생 잘못 살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살아라라곤 못 하잖아요.
근데 대접 받고 싶으면 대접 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죠. 군대 선임도 진상 부리면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 하는 판국에 사회서 그러면 인생 헛살았다고 밖에 얘기 못해요. 그냥 가볍게 쓴다 그러면 제발 가볍게 쓰는구나 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네요.
아님 아예 진짜 한판 붙자 하고 당당하게 쪽지로 들어오시던가요. 졸렬하게 댓글만 싸고 가진 맙시다. 물론 일찍 그래주면 고맙긴 해요. 불량 등록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