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럭키가이-56화 (56/120)

<-- 56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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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냐? 사람이 너무 놀라면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턱 풀린다는 것 말이다.

“으, 으아아아아!”

그리고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머리털이 바짝 곤두섰다. 거기다 심장은 자이드로 드랍을 탔다가 내려온 마냥 크게 덜컥 내려앉고는 사정없이 뛰기 시작한다.

“대체 뭐야! 뭐!”

순간적으로 놀라 힘이 빠지니 와, 진짜 왜 바지에 지린다는 표현이 생긴 건지 알 것 같더라. 다행히 나의 돌돌이는 여전히 돌+돌=돌돌이라는 공식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실금이라는 쪽팔리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왜 유지인, 선우용녀가 디펜더 팬티 광고를 찍는 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어쨌거나 내게 안겨온 상대가 누구인지 알 겨를도 없이 다리에 힘이 빠진 나는 혼비백산하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우워, 대체 뭐야! 우리 집에 왜 이런 게 있는 거야?!

순간적으로 주미원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주미 원장이 이렇게 작진 않지! 게다가 주미 원장이라면 안기는 순간 먼저 주미원장이 가지고 있는 바스트의 푹신함이 먼저 전해져 왔을 것이다. 이렇게 내게 쏘옥 안길 정도로 작진 않단 말이야!

“히힛!”

그 찰나 나를 꼭 끌어 안은 자그마한 녀석이 웃음 소리를 냈다. 와, 진짜 요즘 여기 저기에서 여복은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이거 뭐야!

“너, 너 누구야?!”

“까악!”

숨마저도 거칠게 흐트러진 가운데 버럭 소리를 지르니 흥분한 금조가 날개 짓을 퍼덕이며 내게 안긴 자그마한 누군가를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이내 내게 안겨든 자그마한 그 누군가가 ‘어?’ 하고 내 품에서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 보았다.

“아저씨, 나 기억 안 나?”

“우, 우어어! 너 귀신! 뭐야?! 대체 정체가 뭐야?!”

그래, 우리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놀랍게도 시은이였다. 도대체 우리 집에 어떻게 들어간 것인지 몰라도 그것보다도 더 후달리는 건 얘가 사람인지, 요괴인지, 그리고 귀신인지 아직도 모른단 것일 것이다!

“대체 우리집은 어떻게 들어간 거야?! 응?!”

“음, 우선은 저기 무서운 금조 좀 진정시켜 줘요! 아저씨!”

사람이 놀라거나 말거나 시은이는 해맑기 그지 없었다. 순간적으로나마 이런 애한테 겁을 먹은 내 자신이 너무 쭈구리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까악!”

“그, 금조. 아직은 아니야. 진정해!”

후우, 후우. 금조 뿐 아니라 내 숨도 함께 고르며 금조를 진정시키자 이내 금조가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까악?”

“인마, 오늘 너 나 많이 깠잖아. 좀 참아봐.”

“까악!”

그 말에 잠깐 생각하던 금조가 오늘은 여기서 타협을 봐주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금조, 이 개새……. 도대체 누가 주인인지를 모르겠네.

“아무튼……. 일단은 나 물 좀 마시자. 속을…….”

“내가 가져다 줄게요!”

그리고 시은이가 내 품에서 떨어져 나와 우리 집안 구조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콧노래를 흥얼 거리며 싱크대에서 컵을 꺼내고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따르기 시작했다.

와, 이거 도대체 뭐야……? 얼이 빠져 있던 나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다 일단은 정신을 차려야겠단 생각에 뺨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젠장, 이게 뭐여? 아까전까지만 해도 연애소설을 연상케 하는 로맨스가 가득 했는데……. 아, 물론 내가 좀 바보 같아 보인 건 쿨하게 인정한다.

그런데 갑자기 시은이라니!

“자요!”

“대체 너 정체가 뭐야?”

의심의 눈초리를 가득 안고 있는 내게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며 컵을 내미는 시은이. 음, 정말 수상해! 대체 뭐지!

“시은이는 시은이인데요?”

“너, 이씨! 죽을래? 금조 맛 좀 볼래?”

“우와, 아저씨가 어린애 괴롭힌다!”

이게 윽박 질러도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운 미소 한 가득이다.

“우선은 물부터 마셔요. 자~!”

그리고 내게 다시 컵을 내미는데 순간 여기에 무슨 짓을 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왜냐하면 나도……. 흠, 뭐.

“아무 것도 안 했어요. 걱정하지마요! 아저씨, 소심하다!”

“소심하긴 누가 소심하다 그래?”

괜히 욱하는 마음에 컵을 받아든 나는 시은이가 내민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일단 시원하니 갈증은 가신다만…….

“잘 먹는다.”

흐뭇한 얼굴로 날 왜 이렇게 쳐다보고 있는 건데?

순간 머리에 혼란이 더해진 나는 단숨에 물컵을 다 비우고는 집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너 구미호지?! 아리?”

“응?”

그 말에 도리어 시은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듯 나를 바라본다. 아, 나 진짜 이거 이야기 하면 할수록 내가 이상한 놈 되는 것 같네!

“오늘 전화 해놓고 왜 안 온 거야? 그리고 박현숙씨 딸은 안시은이 아니라 김민지였다고, 김민지. 나 속일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거야. 니가 정체가 뭐든지……!”

하지만 난 이성적인 놈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좀 웃긴 바보형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걸로 날 치부할 수 없는 날카로움을 갖추고 있다고! 오죽하면 내가 진중권 닮았단 소리 듣겠냐? 생긴 게 닮은 거 아니거든……?

“엄마는 괜찮아요?!”

그 순간 시은이가 글썽거리는 눈으로 물음을 던진다. 아, 또 이 얼굴을 보니 얘가 박현숙씨 딸이 아니라고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뭐야? 뭐지?

그렁그렁하는 눈을 보니 또 마음이 약해져 온다. 아, 안 돼! 지금은 진짜 호구가 되는 거야. 이럴 때 일수록 정신을 차려야지!

“확실하게 먼저 이야기 해. 그전엔 아무것도 안 가르쳐 줄 거야. 니 정체가 뭐야?”

금조에게 줄 소고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긴장감 가득한 얼굴로 나는 시은이에게 물음을 던졌다.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맴도는 가운데 시은이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아저씨!”

“구미호야? 귀신이야? 아니면 뭐야? 너 박현숙씨 딸은 아니지?”

아, 진짜 너무 궁금하잖아! 아니, 궁금한 걸 떠나서 제발 귀신은 아니라고 말해줘! 다른 건 몰라도 시은이가 박현숙씨의 딸, 귀신이라고 하면 좀 오싹할 것 같으니까!

“음, 구미호는 아니에요!”

그런 내 낌새를 눈치챈 건지 보이쉬한 짧은 커트 머리에 여전히 과천여고 교복을 입고 있는 시은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 그럼 귀신이란 말인가? 근데 왜 이름이 달라?! 왜?!

“그, 그럼 귀신……?!”

“음, 그것도 아니에요!”

응? 그 말에 순간 굳어 버린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시은이가 꺄르르 웃으며 다시 한 번 더 몹시 즐거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즐거움에는 묘한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왜, 꼭 지현이나 주미 원장이 나를 쳐다볼 때처럼…….

아, 아니……! 이거 도끼병 아닌데! 분명히 지금 분위기가……!

“사실 시은이는요.”

“그래, 인마. 너는 뭐?”

그 순간 시은이가 후후 웃으며 스커트 자락을 살짝 들어올렸다.

“뭐, 뭐 하는 거야! 인마!”

까딱 잘못하면 쇠고랑 찬단 말이야! 놀란 내가 홱 고개를 돌리자 시은이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런 게 아닌데! 아저씨 변태구나!”

“뭐? 교복은 위험하단 말이야……!”

“음……. 아무튼 시은이는요!”

교복이 왜 위험한지 그 위험성을 전혀 모르고 있구나. 하긴, 몸 판 여자는 무죄! 사간 놈은 유죄라는 굉장한 법이 판치는 세상인 걸! 아무렴 명백히 성인인 상황이면 모를까 지금은 위험하지!

“이거에요!”

“치마를 내리라니까! 안 돼, 지금 그 옷 입곤 위험하다구!”

아청법 덕에 잔뜩……. 아니, 혹시 시은이가 뭔가 무기 같은 걸 꺼내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던 나는 스커트를 위로 완전히 올려버린 그 모습에 내 시선을 보이지 못했다. 그런 나를 보며 시은이가 답답하다는 듯 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뭔지 물어봐 놓고 안 보면 어떻게 해요?”

“아, 진짜 어쩔 수 없는 거다. 이거 진짜 불가항력이야. 포돌이가 이해해줘야 할 텐데……!”

그리고 나는 정말 진정으로 어쩔 수 없이 눈을 뜨고 말았다. 그리고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올라간 스커트와 함께 드러난 시은이의 새하얀 엉덩이……가 아니라 뭐여! 이건 또!

“뭐야, 인마! 그게!”

“꼬리!”

“구미호! 너 여우지?!”

“아니에요! 시은이는 꼬리 하나밖에 없어요!”

응? 그 순간 나는 멈칫하고 스커트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 시은이의 꼬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길다란 꼬리가 엉덩이를 절묘하게 가리고 있어서 노출은 없다지만……. 아니, 이런 데 집중 할 때가 아니지.

어쨌거나 짧은 스커트 아래로 삐져나온 오동통한 줄무늬 꼬리는 확실히 여우 꼬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풍성해보이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우 꼬리와는 다른 것이…….

“너구리?”

“정답!”

그 말과 함께 시은이가 다시 돌아서며 내게로 쪼르르 달려와 와락 안겼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게…….

“뭐야? 그럼 넌 너구리 요괴란 거야?”

“그런 셈이죠~!”

후후 웃으며 내 품에 안겨서 나를 올려다 보는 시은이. 그 모습에 나는 다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와, 그러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니, 그럼 너 나한테 왜……? 혹시 구미호가 시킨 거야? 일부러 접근 하라고?”

“여우 언니랑은 아는 사이지만 만난지 오래 됐어요. 난 2년 전에 하산 했다구요!”

“뭐?”

아, 뭔가 이게 해결되려는 조짐이 보인다만 상황이 확 들어오지가 않네. 그러니 정리를 해보자면…….

“그러니까 넌 너구리고, 구미호가 보낸 건 아니고……?”

“네!”

“그럼 너도 구슬이를 노리고?!”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조금 긴장한 게 민망해질 정도로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흔드는 시은이. 보이쉬한 숏 커트가 이렇게 귀여워 보일 수도 있단 말인가? 순간적으로 흐뭇한 아빠 웃음이 떠올랐지만 은팔찌 덜그럭 거리는 포돌이를 생각하며 다시 이성을 회복한 나는 손을 들어 시은이를 제지 시켰다.

“그럼 대체 나한테 접근한 이유가 뭐지?”

“그냥 공원에서 놀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금시조를 부리길래 신기해서 말을 건 거에요!”

“음……?”

그리 이야기를 하는 시은이는 진정으로 별 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이게 여고생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 걸까? 너무나도 해맑아 보이는 모습에 경계심이 자꾸만 누그러진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요괴들이 겉으로 보기엔 이리 보여도 사실 청령도 그렇고, 주미 원장도 그렇고 상당히 잔혹한 성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걸론 다 믿을 수가 없어.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그렇게 널 쉽게 믿어줄 상황이 아니거든.”

“음, 그건 이해해요. 하지만 아저씨는 날 이해해줄거에요!”

그리고 확신에 찬 얼굴로 미소 짓는 시은이의 모습에 나는 그저 허탈한 듯 얼 척 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대책 없이 해맑으니 뭐라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 아, 이게 진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허물어 버리는구나.

후, 그래. 그건 둘 째 치고 일단은 그럼 박현숙씨에 대한 것부터 좀 정리를 해보도록 하자. 그래, 뭐. 구슬이를 노린다고 한들 지금 당장 얘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을 테니까.

“일단은 그럼 너랑 박현숙씨가 무슨 관계인지 이야길 해봐.”

“엄마는 괜찮아요?!”

“너구리인 너가 왜 박현숙씨 딸이야?”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시은이가 너구리 요괴라면, 여타 다른 요괴들과 마찬가지로 잔혹한 본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왜 시은이가 내게 전화를……. 아, 전화도 어떻게 건 지 모르겠네. 아무튼 내게 연락을 취해서 박현숙씨를 구하게 만든 것인지 말이다.

“음……. 사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습은 엄마 딸의 모습이에요.”

“응?”

엄마의 딸……. 그러니까 그 민지란 아이의 모습인가?

“그걸 니가 왜?”

“음, 그러니까 2년 전에 여우 언니에게 둔갑술을 배우고 있었어요. 나 같이 약한 요괴들은 그런 거라도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사정사정해서 여우 언니 가족들에게 둔갑술을 배워왔죠. 그런데 어느 날 그 무서운 구렁이가 찾아오는 바람에 미처 둔갑술을 다 배우지 못하고 하산하게 된 거에요.”

와, 이야기가 상당히 판타스틱한데? 하긴, 뭐 주미 원장도 구슬이 가지러 인도에서 여기까지 온 가루라 요괴인 마당에…….

“음……. 그래서?”

“마침 산을 내려오고 있는데 거기서 차에 치인 부녀를 발견한 거예요! 사실 그러면 안 되지만 불완전한 둔갑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을 따라서 변신하면 되거든요. 여우 언니와 달리 난 영기도 부족하고, 수행이 모자라서 다 변해도 항상 꼬리를 감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 민지란 애로 변신을 했단 거야……?”

그렇게 들으니 타이밍이 맞아 떨어진다. 확실히 2년 전 사고로 박현숙씨 가족들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고 했지. 현상에서 사망했다고 했으니 그게 맞을 거다.

“난 둔갑술만 완성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요괴는 인간들의 일에 관여해서도 안 되는 거고. 아무리 안타까워도 그게 법칙이니까 그냥 둔갑술만 완성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애로 변신을 했더니 꼬리도 감출 수가 있게 된 거에요.”

“……죽은 민지 때문에 둔갑술이 완성 된 거야?”

“사실 아직도 다른 건 안 되고 이 모습만큼은 완벽한 사람과 같이 변 할 수 있어요. 나머진 조금 더 수행이 필요해서…….”

흐음. 시은이가 꺼내 놓은 이야기는 묘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금방 지어낸 거짓말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그리고 내가 익히 경험해 알고 있던 요괴의 본성과도 관련이 깊었고……. 죽음에 이른 민지를 시은이가 굳이 살려줄 필요는 없을 테니……. 그리고 변할 대상이 죽는다면 완벽하게 사자의 모습을 취득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아무튼 그래서 너무 신이 나서 그 모습을 하고 인간 세상을 아주 많이 돌아 다녔어요.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엄마를 만나게 됐어요.”

그 말을 하면서 시은이의 눈이 다시 촉촉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건 결코 거짓된 감정이라 볼 수 없었다. 절로 눈가가 젖어가더니 주르륵 하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감정을 짜낸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이라고 밖에…….

“날 더러 자기 딸이라고 하면서 우는데 처음엔 무서워서 도망을 쳤어요.”

요괴도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걸까? 하긴, 그런 것 같다. 그런 번뇌들이 있기 때문에 구렁이도 용이 되고 싶어 안달을 하는 것이고, 주미 원장도 구슬을 탐내는 거겠지.

“음.”

“그때까진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날 부르다가 길에서 쓰러진 모습을 봤어요. 아니라고 이야기 했지만 들리지도 않는지 날 쫒아오다가 쓰러졌는데…….”

“그래서 그때 어떻게 한 건데……?”

“인간 일에는 끼어들면 안 되니까. 그냥 먼 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했어요. 왜냐하면 그 애는 죽은 사람이고 난 그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뒤를 따라가서 살펴보고 했는데 처음으로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도 여우 언니처럼 가족을 잃어서 슬픈데, 아프기까지 하니까.”

그런데 말이다. 시은이는 여타 다른 요괴들과는 달라 보였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려 보이는 용모 탓일까? 아니, 구렁이나 구미호, 가루라처럼 강하고 오래 산 요괴가 아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더욱 더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요괴라니! 아이러니하게도 시은이에게서 몹시 짙은 인간미를 느끼고 있는 동안…….

“그래서 멀리서 지켜보고 그러곤 했는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엄마가 날 알아보는 것 같았어요.”

“민지라고……?”

“그건 아니고! 그냥 걔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종종 보러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박현숙씨도 자신을 지켜보는 시은이의 존재에 대해 눈치를 챘던 모양이다. 물론 그녀가 시은이의 정체가 너구리 요괴였단 걸 알았을 리는 없겠지. 단지 죽은 딸과 같은 용모를 하고 있는 시은이를 보고서는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고통스러워 했을 것이다. 친 딸이 아니라고 같은 용모를 가진 아이인데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까? 나라면 절대로 못 그럴 것 같다. 음, 절대로.

“음…….”

“나도 좋았어요. 왜냐하면 나도 가족이 없고, 또 여우 언니가 슬퍼하는 걸 봤으니까. 그래서 그냥 같이 지내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가서 같이 밥을 먹기도 했어요. 엄마가 좋아하니까 엄마라고 부르기도 했구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울먹울먹하는 얼굴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시은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했다, 인마.”

박현숙 씨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은 터라 수술을 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얼마나 살 지는 모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은이가 도와주려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시은이가 있어줬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잘 버텨준 것인지도 몰랐다.

“박현숙씨 상태는 안정 됐어. 조치가 빨라서 다행스럽게도 괜찮아졌고, 수술 성공하면 그래도 잘 버틸 수 있을 거야.”

“아……!”

시은이가 박현숙씨에게 얼마나 큰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든, 요괴든 진심으로 타인을 위해서 눈물 흘릴 줄 아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는 잘 알고 있다. 나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이야기를 꺼내자 시은이가 눈물과 미소를 동시에 띤 채 나를 끌어 안았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정말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시은이가 박현숙씨에겐 딸과 다름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 오늘 하루 시은이의 정체를 두고 별의별 생각을 다 했던 게 모두 녹아내리고 마음이 덩달아 흐뭇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짜식. 기특하네. 그래도 마음 씀씀이가…….”

니가 사람보다 낫다, 인마! 비록 그 모습을 얻게 된 연유야 개운치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금 시은이가 박현숙씨를 걱정하는 건 진심일 것이다. 거기에 음모가 있지 않을까 음모론 가지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런 감정적인 부분을 이성으로 설명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체가 우스운 것 아닌가!

“아저씨한테 말을 걸길 잘 했어요! 아저씨가 도와줄 줄 알았어!”

그리고 뿌듯한 얼굴로 시은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이처럼 귀엽고 땡그란 눈망울에 저도 모르게 아빠 미소 일발 장전되었다. 아, 진짜 귀엽네! 정말!

“그래, 인마. 덕분에 사람 목숨 하나 살려냈다. 잘 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아저씨한테 이야기도 다 해줘야 하고, 또 아저씨가 너무너무 좋으니까!”

“응?”

“왜냐하면 아저씨는 내가 만나본 인간 중에 제일 착한 인간이니까!”

얘가 왜냐하면의 법칙을 아네? 말 버릇인지 왜냐하면 하고 설명하는 시은이의 모습에 기분 좋은 웃음이 절로 터져나왔다. 아니, 뭐 종을 떠나서 이렇게 귀여운 애가 좋다고 하니까 기분 좋은 건 당연한 일이겠지. 허헛……!

“인마, 아저씨 그렇게 착한 인간은 아니거든?”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고개를 흔들며 또 내게 안겨드는 시은이! 오, 이건 또 주미 원장이나 지현이와는 다른 유형의 귀여움인데……!

자그마한 몸 덕분인지 쏙 안기는데다 애교가 철철 흘러 넘치는 모습이니 자꾸만 입안에서 밖으로 웃음이 팍 터져 나오려고 한다. 으흐흥……. 아냐, 아직 방심하면 안 돼. 포돌이가 수갑을 끼릭끼릭 만지고 있어!

“아무튼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난 문을 잘 열어요! 왜냐하면 냄새에 민감하니까! 아저씨가 자주 누르는 번호엔 냄새가 다 있어!”

“참 알아듣기 쉬워서 좋다. 왜냐하면 왜냐하면이라고 설명해주니까.”

“왜냐하면 시은이는 머리가 좋으니까!”

금방 또 거만한 얼굴로 잘난 체 하는 시은이. 아, 정말 이거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순간 팬심 생길 뻔 했다! 삼촌 팬이 될 뻔 했다고! 어유, 위험해!

근데 진심으로 요괴들의 비주얼이 인간보다 월등한 것 같다. 물론 본 모습을 보면 또 다르겠지만……. 아, 아무튼 인간보다 요괴랑 같이 사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자꾸만…….

“아무튼 그래. 나한테 그거 설명하러 온 거구나. 뭐, 일단은 알겠어. 나쁜 녀석 같지도 않고 그러니까 내가 믿어는 줄게.”

“네!”

해맑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에 괜한 의심을 가지고 싶진 않았다. 아이, 인생이란 게 그렇잖아. 방심하는 순간 눈 뜨고 코 베인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미담까지 꼬아서 보고 싶진 않다. 좋은 게 좋은거라고 다 좋으면 좋은 거지! 안 그래? 박현숙씨도 수술이 잘 돼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시은이도 민지는 아니지만 딸 민지처럼 오래도록 박현숙씨 곁에서 행복하게 잘 살면 내 마음도 편안하고 따스해질 테니.

“그럼 이제 넌 어떻게 할 거야……? 이제 나한테 얘긴 했으니 오해는 다 풀렸네. 이제 어디로 갈거야……? 집은 있니?”

“시은이는 어디 안 갈 건데!”

“응?”

“왜냐하면 여기서 아저씨랑 같이 살 거니까!”

그 순간 또 다른 청천벽력이 내 귀에 몰아쳤다.

“응?”

“시은이는 아저씨랑 같이 살 거니까!”

“뭐?”

“왜냐하면 시은이는 아저씨가 좋으니까!”

헐 대박!

“인마, 아저씨가 아무리 잘 생겨도……!”

“왜냐하면 시은이는 외모 따위는 눈꼽 만큼도 안 보니까! 정말 이만큼, 이만큼, 이만큼도요!”

아……. 왠지 짓밟힌 기분이다. 이상하게 얘가 날 깐 건 아닌데 엄청 무참하게 짓밟힌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닌 거 같은데……. 날 좋아한단 건…….”

“아저씨가 거머리보다 못 생겨도 시은이는 좋아요! 왜냐하면 착한 사람이니까!”

“너 이씨! 내가 거머리 보다 못 생겼단 거야?! 눈코입도 없는 그 징그러운 놈보다?!”

“말이 그렇단 거죠! 아저씨, 거머리보다는 잘 생겼어요!”

한 마디도 지지 않는 건 여전하구나. 아, 왠지 모르게 말로 밟힌 기분이야. 내가 이런 놈이 아닌데…….

아니, 참!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인마, 아무튼 여기서 살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전세로 살고 있는 판국에!”

“아저씨는 시은이 안 쫒아낼 거에요. 왜냐하면 착한 아저씨니까~!”

와, 이 녀석이 착한 아이 빌딩을 알고 있나? 진짜 쫓아내기도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 너구리가 뻔뻔하고 능청맞은 동물이라더니 지금 이 기집애 하는 짓이 딱 그 짝이네! 내 품에 쏙 안긴 채 여기에다 뿌리를 내릴 기세로 미소 짓고 있는 그 모습을 보니……. 와, 얼 척이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온다. 근데 더 신기한 건 이렇게 진상 짓 하고 있는 걸 봐도 전혀 기분이 안 나쁘단 거다. 이런 뻔뻔한 진상 짓이 귀여워 보일 수가 있다니, 오 맙소사!

“인마, 아무리 아저씨가 착해도 아저씨는 이런 미성년과 동거할 수가 없어요.”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시은이가 아저씨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았을 건데?”

“쪼그마한게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난 여기 전쟁이 일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살았어요.”

응? 전쟁……? 그게 6.25를 말하는 건가? 그렇게 따지면 우리 아버지뻘인데…….

“근데 왜 아저씨야?”

“그게 더 잘 어울리잖아요!”

아……. 할 말 없네.

“왜냐하면 아저씨가 더 늙어 보이니까!”

꺄르르 웃으며 쐐기 박는 이 잔망스러운 계집애를 봐라. 아, 이거 다른 유형으로 너무 센데. 요 근래에 내가 만난 많은 여자들 가운데 구렁이 다음으로, 아니! 어떤 의미로는 구렁이보다 더 상대하기 벅찬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뻔뻔한데다, 귀엽고, 사랑스럽다니. 이건 좀 반칙 아냐? 그건 그렇고 최근 요 일주일 사이에 내 주위에 늘어나고 있는 엄청난 미녀들의 향연이라. 지현이 하나 빼고는 다 요괴지만 이거 참…….

“아무튼 아, 이걸 어떻게 처리 하면 좋겠냐……?”

그냥 내버려두면 확실히 눌러 붙을 것 같다. 아니, 뭐 그게 싫은 건 아닌데……. 이게 너무 갑작스러우니까.

“아저씨, 떡볶이 사줘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 뻔뻔한 계집애는 이제 자기 집에 온 사람 마냥 당당하게 내게 먹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맙소사, 행패를 이렇게 귀엽게 부리고 있다니……. 계속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 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나는야 유혹에 약한 33살. 그것도 귀여운 것은 사죽을 못 쓴다는 삼촌 팬의 나이를 가진 사나이가 아니던가.

“그래, 일단은 뭐 좀 먹고 생각을 해보자.”

결국 귀여움에 굴복하고 만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배달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떡볶이! 떡볶이!”

“아, 알겠어. 시켜 줄 테니까 저기 금조한테 고기나 좀 줘.”

“네! 알겠어요, 아저씨!”

뻔뻔하게 버티고 있긴 하다만 그래도 말을 또 잘 들으니까 그건 그것대로 귀엽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자꾸 보니까 막 흐뭇해진다. 아, 서른 넘어서는 풋풋한 것만 봐도 이러게 기분이 좋아지다니. 얄궂은 나이여!

-띵동.

“응?”

때마침 울린 벨소리. 뭐 시킨 것도 없고 올 사람도 없는데 뭐지?

“잠시만요!”

그 소리에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현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까지도 시은이는 해맑게 웃으며 금조에게 포장해온 꽃등심을 내밀고 있었다.

“자, 아~!”

“까악!”

자그마한 금조에게 소고기를 먹이는 모습이 또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네! 아, 정말인지 저런 귀여운 외모를 하고 있는 너구리 요괴에게 또 다시 고백을 받다니.

“진짜 계범도 미친 매력덩어리.”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정말! 너 정말 너무 매력적인 놈이야, 범도야!

나는 내 자신의 매력을 찬양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어?”

이내 문을 연 나는 의외의 방문객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문을 열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얼굴보다도 공격적으로 솟아 있는 볼륨감 넘치는 바스트였다.

“주인님.”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이토록 공격적인 바스트의 주인인 즉…….

“주미 원장?”

============================ 작품 후기 ============================

시은이는 귀신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귀요미니까요.

반전 따위는 NO WAR. 왜냐하면 이건 정말 가볍게 쓰는 킬링타임이니까요.

그리고 명백히 미성년을 벗어났기 때문에 아청법도 벗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상상에 맡길게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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