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
삼성병원을 나설 때까지 뒤따라 와 인사 하는 박현숙씨의 동생을 뒤로한 채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기다리고 있던 금조가 다시 나의 어깨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오빠! 진짜 너무 멋있어요! 정말 너무너무!”
그와 동시에 지현이가 나를 와락 끌어 안았다. 아, 이거 마음이 완전 우쭐 해지는걸? 정말인지 나란 놈은 외유내강의 전형이 아닐까? 정말 겉만 봐선 여리여리하기 짝이 없지만 마음이 강단이 있는 것이……!
“지금은 잘난 척 해도 봐줄 거지?”
“그럼요! 후훗! 진짜 정말…… 오빠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거에요!”
감명 받은 지현이의 모습에 나는 대답대신 제법 거만함 묻어나는 얼굴로 지현이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뭐, 액수가 얼마나 나올지는 몰라도 진짜 많이 나오긴 할 거다. 그게 어떻게 생각하면 좀 아깝단 생각도 솔직한 말로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그걸 가지고 차를 사고, 좋은 옷을 사고, 혹은 김부장이랑 같이 룸빵 가서 아가씨 끼고 술 마시며 낭비하는 것보다는 분명히 가치가 있을 거다. 이런 씀씀이는 자랑을 해도 되지 않겠냐?
“진짜 대단해요…….”
“나도 내 앞가림 되는 상황이니까 그런 거야. 만약 내가 살아갈 여력 없이 퍽퍽했으면 그렇게 못 했을 거야. 너무 바람 넣지마. 나도 평범한 사람인데.”
너무 바람 넣으면 뻥 터진다, 지현아!
유혹에 약한 33살은 칭찬에도 약한 법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자제 해야겠단 생각에 선을 그어 놓으니 지현이가 히히 웃으며 다시 내 몸을 꼭 끌어안았다. 다른 말보다도 더 확실한 지현이의 칭찬도 내 마음도 으쓱, 으쓱하네 정말.
“근데 오빠 암수술비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 데 괜찮아요……?”
“뭐, 운 좋게 들어온 돈이 있어서.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생활력 나쁜 놈은 아니야. 여윳돈 들이는 거 치고 꽤 크긴 한데 그래서 사람이 먼저니까.”
구슬에 대한 이야기까진 할 수 없지. 그냥 당첨금이 있단 것도 다 이야기 하기보다는 이 정도로 그치자. 그 말에 지현이가 더 물음을 던지지는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정말 완전 멋있다. 돈 잘 버는 것보다도 이렇게 다른 사람 생각 할 줄 아는 게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저 처음 만났을 때 도와준 것도 그렇구요…….”
“아, 자꾸 비행기 태우지 말라니까. 이러다가 달까지 날아간다? 한국인 최초 달에 발도장 찍는 사람 된다고.”
괜히 또 칭찬 대놓고 들으니까 쑥스럽네! 머리를 긁적이는 나의 모습에 지현이가 후후 웃으며 내 볼에 살며시 입술 도장을 찍었다.
-쪽.
가볍게 닿는 그 느낌이 어찌나 좋던지! 초여름의 후덥지근한 느낌도, 살짝 끈적한 느낌도 모두 사라지는 듯 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아, 이거 또 한 여자를 이렇게…….”
“까악!”
“인마! 알았어!”
차마 멘트를 다 치기도 전에 금조가 지겹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에 버럭 소리를 지르자 지현이가 또 다시 꺄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아, 좀 멋져 보일 뻔 했는데 정말.
“진짜 누구든 다 반 할 거에요……. 오빠라면.”
하지만 우려와 달리 이런 유머러스함이 또 지현이 마음엔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이렇게 작고 성격 더러운 금조랑도 다정한 모습을 보이니 휴머니즘 철철 흘러 넘쳐 보이지 않겠냐?
“일단 조각 같은 외모에서 반하고, 그 다음은 외모만 잘난 게 아니었네, 마음까지도 반반하구나 하고 반하는 게 필수 코스야.”
“음……. 그건 좀……?”
“왜 이래? 유성구의 조각미남 계범도였는데.”
“산산조각……?”
“야!”
그 말에 또 다시 웃음이 빵빵 터져 나왔다. 잔망한 것. 칭찬 할 때는 칭찬 다 해주지……. 얘도 할 말은 다 하는 구나…….
“아무튼……. 오늘 뭔가 하나 해서 기분은 좋네.”
“나두요! 오빠의 새로운 면모를 본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래. 내 껍데기가 아니라 내 본질을 바라봐주는 듯 손을 꼭 잡은 지현이의 모습에 마음이 또 다시 녹아내린다.
마주 잡은 두 손이 이 후덥지근한 날에도 기분이 좋은 건 흔치 않은 일이지. 그렇지……? 이런 설렘 느끼기도 정말 오랜만이라 자그마한 손을 꼭 잡고 살며시 엄지손가락으로 어루만지니 더욱 더 꼭 내 손을 붙잡는 지현이! 아, 정말 볼매라니까! 지현이는!
“저녁 먹고 들어갈까?”
“음……. 내일 오빠 월급 타면요!”
“같이 밥 먹을 정도는 충분히 되는데…….”
“그래두 오늘 오빠도 이런 저런 일 많고 피곤할 텐 데 오늘은 푹 쉬게 해야겠어요. 왜냐하면 내일은 제가 오빠 일찍 안 보낼거거든요.”
오오! 지현이의 귀여운 도발에 입이 귀에 걸린 내가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고 새침한 스탭으로 앞서 걸음을 옮기자 지현이가 다시 웃음이 빵 터졌다.
“왜 그렇게 신나는 걸음이에요!”
“안 보낼거라잖아! 일찍!”
“정말 오빠 못 말려요……!”
“내일 진짜 늦게 갈 거다, 정말!”
“후훗, 알겠어요! 오빠……!”
예쓰! 예쓰! 예쓰! 설레이는 이 마음은 뭘까? 왠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혹시 꿈을 꾸고 있는지 몰라~! 안녕! 디지몬!
매우 어릴 때는 아니지만 조카 보다가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도리어 내가 빠져들었던 디지몬 주제가를 흥얼거려본다. 그 정도로 지금 나의 마음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있는 거다. 도대체 이게 몇 년 만이냐?
“왜 그렇게 싱글벙글이에요? 오빠! 민망하게……!”
“일찍 안 들어 갈 거야. 일찍 안 가.”
“아이 참……!”
김부장은 와이프 때문에 일찍 들어가기 싫겠지만, 난 혼자인 집이니 당연히 일찍 들어가고 싶지 않은 거다. 이건 엄연히 차이가 있지! 혼자이고 싶어 들어가기 싫은 사람과 혼자이기 싫어 들어가기 싫은 사람이란!
아, 나도 가정 생기면 그렇게 되려나? 에이, 설마! 난 그러지 않겠지? 물론 이 생각 김부장도 분명히 결혼 전에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는 않는다…….
아무튼!
“아, 그럼 오늘은 일찍 헤어져야겠다.”
“네, 역에서 헤어지면 될 것 같아요!”
“집까지 안 바래다줘도 되겠어?”
“아, 네! 괜찮아요! 오빠 집이랑은 반대 방향이고 거리도 얼마 되지 않는걸요!”
하긴 그건 좀 오버인가? 그 생각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뭐 일단은 오늘도 고생 했는데 나도 오늘만큼은 맘 편히 좀 푹 쉬어줘야지. 그래야지 내일이……!
“그래 알겠어. 하지만 과천역 갈 때 까진 떨어지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네, 오빠!”
“그리고 내일 절대로 일찍 보내는 일 없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후훗, 걱정마요.”
“증빙서류를 좀 남겨 주시죠.”
“대신에 이건 어때요?”
그리고 지현이가 다시 한 번 내 뺨에 입을 맞췄다. 다른 뭣보다 확실한 입술도장!
-흐뭇!
아마 내가 소설가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효과음을 집어 넣었을 거야.
“싸인은 원래 싸인란에 해야 하는 법인데.”
가끔은 어머니가 날 이렇게 뻔뻔하게 낳아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생긴 건 좀 꼴뚜기 필이 나지만 사랑해요, 엄마!
“부끄러운데…….”
그리고 지하철로 향하며 주변 눈치를 살피던 지현이가 사람들이 없다 싶었던지 재빨리 입술에 입술을 쪽 하고 가져다 대었다. 이내 금방 떨어져선 아무 것도 없는 척 하지만 이미 귓불까지 붉어진 모습이…….
“죽어도 못 보내.”
불끈불끈한다. 애교는 이런 게 진짜 애교지, 아 정말 녹는다. 나……!
“알겠어요, 오빠……. 음, 근데 오빠 선수 같아요! 혹시……?”
그런 내 모습에 지현이가 굴복하고 말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조금은 심통이 난 듯 한 귀여운 모습에 또 내 마음에 훈풍이 불어와요.
“그럼. 우리 대전에 있을 땐 우리 동네 조기 축구회 최고 영건이었어.”
“음, 그런 선수가 아닌데!”
“그럼 어떤 선수에요? 저는 순진해서 그런 건 하나도 모르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지현이를 바라보자 지현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우와, 오빠 거짓말 한다!”
“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서…….”
“까악!”
-콰악!
“아야! 인마! 이거 안 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 하긴 무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금조가 적당히 하라는 듯 내 귀를 깨물자 지현이가 웃음이 빵 터진 모양이다. 이런 씨, 오늘 완전 멋스러움이 넘치고 있는데 요놈이!
“아야……. 조커에 이어서 짝귀로 만들 셈이냐? 이놈이…….”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픈 금조 부리에 항의 하듯이 투덜거리자 금조가 나몰라라 고개를 돌린다. 그러기에 진작 잘하라는 듯 한 저 당당함이란!
“봐요, 오빠! 거짓말 하니까 새가 오빠 공격하잖아요.”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절대 아닌데?”
“음……. 정말요?”
“그럼! 이게 금조의 애정 표현이야. 그렇지?”
“까악!”
이놈의 자식! 이게 기회다 싶었던지 장난치고 싶은 금조가 다시 날렵하게 내 귀를 물어 뜯으려 하자 나는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들어 금조의 부리를 막아냈다.
훗, 네놈 패턴은 이미 내가 다 파악하고 있지!
-콰악!
“아야!”
단 하나 내가 계산하지 못한 게 있다면 귀든, 손이든 아프긴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푸훕!”
대범하기 짝이 없는 쿨가이와 조금 모자란 동네 바보의 콜라보레이션을 보인 탓에 지현이가 걷지도 못하고 멈춰 서서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 젠장……. 나 오늘 좀 휴머니즘 가득한 멋쟁이였는데 마무리가 왜 이러냐? 이건 필시 누군가의 농간일 것이다. 이 개새…….
“인마! 아퍼! 아프다고!”
“까악~!”
그래도 금조는 신이 난 모양이다. 역시 성격 더러운 게 어디 가는 게 아니라고 결국 내 피를 보고 나서야 기분 좋아 깍깍 거리는 모습이 아유, 진짜 못돼 빠졌다. 이 엄석대 같은 놈. 저 새끼 저거 아주 나쁜 놈이에요!
“아, 배 아퍼……. 광대도 아파요…….”
너무 웃다보니 눈물까지 보이는 지현이의 모습에 나는 급진지한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괜찮아……?”
“푸훕! 오빠, 귀에서 피나요!”
“아유, 저걸 진짜!”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론 뭘 해도 개콘이구나. 젠장! 아, 진짜 오늘 나름 멋있었는데!
“괜찮아요……?”
“음, 이제 괜찮을 거야. 이놈이 성격이 고약해서 피를 봐야지 멈추는 습성이 있거든.”
“까악?”
아직 멀었다는 듯 한 금조의 개입에 찌릿 하고 눈빛을 보내자 모른 척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올라가는 금조. 아, 그러고 보니 어느샌가 지하철이다.
“체 게바라 같은 녀석이야. 치고 빠질 줄은 알거든.”
“오빤 혼자 있어도 하나도 안 심심하겠어요!”
“아니. 내일 죽어도 일찍 안 가. 안 보낼 거야.”
“네! 알겠어요!”
그리고 지현이가 손가락으로 내 귀에 묻은 피를 슬쩍 닦아냈다. 이내 쪽 하고 손가락으로 내 피를 빨아들이는데 그게 또 왜 이렇게 섹시해 보이는 건지!
“……야릇한데.”
“오빠, 야한 생각 했죠?!”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세일러문은 왜 갑자기 불러요!”
또 다시 웃음이 터진 지현이와 함께 지하철로 오른 나는 자연스럽게 지현이의 어깨를 꼭 감싸안았다.
“자, 이제 긴긴 여행이 되겠어. 도곡, 선릉, 사당. 무려 3번을 갈아타야 하는구나.”
“그래도 오빠랑 같이 있으니까 심심하진 않을 것 같네요!”
그 말에 다시 한 번 더 마음이 녹는다. 지현이가 나 좋아하는가봉가?
“일단 얼굴만 봐도 재미있잖아.”
“네.”
미처 멘트를 다 치기도 전에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지현이. 어? 의미가 좀 이상하게 전달된 것 같은데…….
“……뭐, 음…….”
“푸훗! 오빠, 진짜 표정이 너무 재미있는 거 알아요?”
“얼굴은 잘생겼는데 표정이 재미나단 말을 많이 듣지. 내가 좀 짐 캐리과거든.”
“약간 진중…….”
“진중하게 생겼다고? 권하진 마. 혼난다. 정우성이야, 난.”
“정우성은 좀…….”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내가 누누이 말하는 바이지만 여자한테 항상 멋진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의 모습만 보이고 살 수 있겠냐? 완벽하길 원하지만 그건 이상향일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야 더욱 더 끌리는 법이다. 그러니 다소 모자라 보이는 나의 다양한 모습이 상대에겐 모두 매력이 될 수 있거든?
그러니까 항상 내가 진중하고 까리한 모습이 있다면 이런 좀 모자라는 동네 형 코스프레도 마련을 해둬라. 반전이라는 극적 효과가 있을 때 가장 큰 매력을 느낄 터! 그래, 이거 일부러 준비한거다. 후훗, 소름끼치는 반전이지? 아니라고 생각하는 너, 일어나. 나랑 싸우자!
아무튼 막간에 설명 하나를 더하자!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관심이 없다면 애시 당초 당신한테 호감이 없는 거다. 그냥 포기해. 시간 낭비야. 왜냐? 여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핵폭탄 개그를 때려도, 마음에 드는 사람의 썰렁 유머를 더 선호하는 생명체니까.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정도로 가치 있는 여자라면 그러면 되겠다만 그게 아니라면 혹시나 한 번 눕혀보고자 그러진 마.
그러면 남자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거야. 인생 한 번 사는 건데 퀄리티 있게 살아야지. 안 그래?
“오빠?”
“아, 잠깐 텔레파시 좀 보내고 있었어. 가끔씩 이 세상 너머의 존재와 할 말이 있어서…….”
“푸훕! 오빠 가끔 이상한 것 같아요.”
“사람이 너무 완벽할 순 없어요. 나 정도면 좀 허술한 면이 있어야 사람들이 부담감은 가지지 않아.”
“음……. 생각보다 허술함이 너무 크면 어떻게 해요?”
“그럼 지현이가 채워줘야지. 별 수 있어?”
뻔뻔하게 얼굴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하자 지현이가 다시 웃음 짓는다. 자리는 할랑하나 앉을 자리 없는 지하철. 마주잡은 두 손이 이렇게 또 기분이 좋습니다! 허허, 여러분 저 조만간 장가 갈 것 같습니다!
“평강 공주 처럼요?”
“우와, 내가 바보 온달 급은 아닌데…….”
“풉! 그냥 말이 그렇단 건데……!”
이야기 할 때 마다 빵빵 터지는 지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과천으로 가기까지. 거의 1시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조차도 짧게 느껴졌다. 어느 샌가 지하철이 과천역에 도착했을 때. 평소보다 훨씬 더 늦은 시간이었지만 박현숙씨를 도왔단 뿌듯함과 지현이와의 지하철 여행이 너무나도 즐거웠단 생각에 내 마음이 바운스, 바운스 했다.
“시간이 진짜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정신없이 웃던 지현이도 광대가 얼얼한 모양인지 얼굴을 꾹꾹 눌러 보였다. 그 모습에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
“근무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져야 할 텐 데.”
“후후, 그러게요. 그래도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일도 배우고, 또 여기 오빠랑 같이 있을 거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여전히 밝고 긍정적인 지현이의 모습에 나 또한 미소 지었다. 이게 정말 인연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그렇지만 좋은 것 같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구슬이 만나고 나서 내가 나쁜 일들도 더러 있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이겨내고 운대를 길로 가져가고 있는 것처럼 지현이를 만난 건 분명히 길일거야.
“아쉬워서 바래다 주고 싶은데.”
“들어가서 오빠 저녁 먹고 푹 쉬어야죠! 저는 밤도 샐 자신 있는데 오빤 괜찮겠어요?”
“아, 안 되겠다. 집에 가서 하체 위주로 좀 운동을 해야 겠어. 피티 11번…….”
“왜 하체예요!”
“영업상 비밀입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또 다시 웃음 터진 지현이가 더 이상은 웃기도 힘들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오빠 때문에 광대뼈 엄청 나왔겠다.”
“그 광대뼈, 내가 가지겠소.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음, 지금 오빠 원빈 성대묘사 한 거에요?”
“일단은 얼굴이 비슷하니까.”
-쉐엑!
“까악!”
“아야!”
과천역 밖으로 나왔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원빈 발언에 분노한 앵그리 금조의 급 활강한 기습 공격! 조 조그마한 게 진짜 얼마나 단단한지 부딪친 이마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동안 지현이가 다시 눈물을 흘리며 배를 잡았다.
“아, 오빠! 괜찮아요! 아, 너무 웃겨……!”
걱정도 되는데 웃긴 게 먼저였던지 참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지현이.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 광경을 보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놔! 저거 진짜! 귀도 밝지, 정말!
“아유, 안 그럴게! 진짜 세상 팍팍하게 산다, 금조 너!”
“까악!”
우리 엄마가 내가 제일 잘 생겼다 그랬는데 다 일러줘야겠다. 아, 아파.
“괜찮아?”
“흐흑……! 저 웃다가 우는 건 처음이에요……! 아, 진짜 너무 웃겨……. 앵그리 버드…….”
그 와중에 지현이가 정신을 못 차린다. 양 손으로 눈가를 훔치는 그 모습에 나도 웃음밖에 나오지 않아 피식피식 웃음 짓자 지현이가 다시 손으로 눈을 훔치고 입을 막고 큭큭 웃음 짓는다.
“아, 웃다가 진이 다 빠지네요. 오빠…….”
“내일 각오해둬.”
“푸훕! 진짜 무서운데요……? 나 웃다 쓰러지는 거 아니에요?”
“쓰러지면 위험해. 하체 위주로 단련을 해둘 거라서.”
“으……! 뭐에요, 그건!”
또 웃음이 터질 뻔 한 지현이가 간신히 입술을 앙 다물어 웃음을 참아 보였다. 내가 일부러 웃기려고 그런 건 아닌데 아, 정말……. 이상하다. 분명히 오늘 병원 갔을 때 까진 멋있었는데.
“아무튼 그러면 나 가볼게요, 오빠. 아, 내일 출근은 언제해요?”
“보통 6시 30분에 집에서 나오니까 여기 도착하면 한 40-50분 정도?”
“그럼 저도 그쯤에 나올게요! 내일 아침에 봐요!”
그리고 지현이가 이제는 웃음의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듯 한 눈빛을 담아 이야기를 꺼냈다. 보내주고 싶진 않지만 너무 웃는다고 힘이 빠진 모습을 보니 좀 미안하기도 하고, 더 이상 있자니 오늘 보여준 휴머니즘이 극대소멸주문을 쳐맞고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도 이쯤에서 작별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알겠어. 내일은 준비 단단히 하고 와. 아마 토요일쯤 되면 복근 생길거야.”
“진짜 배 땡기는데 어떻게 해요? 후, 알겠어요.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올게요. 그럼 내일 봐요!”
기분 좋은 웃음과 설렘을 남긴 채 지현이가 손을 흔들고는 걸음을 옮겼다. 금조와 나란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웃음을 머금고 집을 향해 걸음을 돌렸다.
“야, 금조야. 오늘 타이밍 좋았어. 근데 인마, 너무 세게 부딪쳤잖아? 웃긴 것도 좋지만 우리 몸 생각도 해야지. 앞으로는 살살해. 알겠어?”
“까악.”
그 말에 금조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렇다. 사실 이 모든 게 준비된 나와 금조의 슬랩스틱.
……은 개뿔, 아 겁내 아프다. 진짜. 나중엔 금조가 불도 뿜는다는데 아유, 진짜 그땐 원빈의 원 짜도 못 꺼내겠어.
“아, 맞다. 프로토 결과가 떴으려나.”
아직 축구는 안 떠도 야구는 떴을거다. 집에 가면 먼저 그걸 확인해야겠다. 뭐, 보나마나 구슬이와 함께 캐치했겠지!
“금조야, 내일은 엉아 데이트 있으니까 오늘처럼 이러면 안 돼. 소고기 사다줄 테니까 말 잘 들어야 된다. 알았지?”
“까악!”
고기를 좋아하는지 피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금조의 파괴본능을 충족시켜주려면 피가 철철 흐르는 소고기를 지금부터라도 듬뿍 먹여야겠다. 그 생각으로 정육점에 들려서 나도 못 먹는 한우 꽃등심을 한근이나 구매한 나는 금조와 함께 집을 향해 신나는 걸음을 내딛었다.
“자, 이건 어차피 10장으로 다 커버 될 테니까!”
“까악!”
오늘 날 까고 피도 보고 이제 소고기도 먹는 금조가 신이 나서 내 목소리에 호응하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아, 착한 일을 하고 와서 그런지 너무 기분이 좋네! 지현이랑도 아주 진도가 척척 잘 나가니까! 기분 좋게 들어가서 체크 하고 씻고 푹 자면……!
-띠리릭.
“오늘 하루는 잇츠 퍼펙트! 인생의 진리지!”
기분이 몹시 좋아 노래를 흥얼 거리며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온 나.
-와락!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갑작스럽게 무엇인가가 내게로 다가오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으, 으아아아아!”
============================ 작품 후기 ============================
쿨가이와 동네바보의 공존.
웃긴 호감형 바보형
-흐뭇!
+
점심들 맛있게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