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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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
7시 30분. 평상시보다 훨씬 더 일찍 일어나서 호흡법과 영단으로 아침을 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고 쾌적한 기분을 가지고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리님! 오늘 엄청 일찍 나오셨네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괜찮다마다. 지금 내 상태 어마어마하게 좋아 보이는 거 안 보여?”
세상에, 이 이른 시간에 말끔히 출근을 한 것도 한 것이지만 아침에 내 몸이 이렇게 가벼울 수도 있다니!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러 화장실에 가거든 내 어깨 위에 애기 귀신이 올라타 있는 것 같은 환상이 보일 만큼 피로에 쩔어 있는 생활이 보통이었건만! 지금은 절로 어깨가 으쓱할 정도 몸이 가볍다.
마치 나이트에서 부킹 연달아 뺀찌 먹고 체념한 상태에서 한신 포차 들어갔다 운 좋게 합석에 성공해서 시원하게 국밥 한 그릇 해장 때리고 새벽과 함께 모텔 입성해서 시원하게 푸닥거리하고 근심, 걱정을 모두 떨쳐낸 채 싸질러 재긴 바로 그 기분?
“기분 되게 좋아 보이시는데요?”
역삼동 테헤란로 뒤쪽 음식점 및 주점들이 즐비한 자리에 방을 구한 터라 매번 출근이 제일 빠른 은경이가 그리 이야기를 꺼냈다. 뭐 은갱이가 지금 내 기분을 어떻게 알겠느냐마는 그래도 기분 좋은 건 다 보이는 모양이다.
“뭐, 평일에 하루 쉬었잖냐! 충전도 됐고, 보너스도 두둑하게 들어온단 소식 들었는데 어떻게 안 좋을 수 있겠어?”
“아, 정말! 진짜 대단하세요! 대리님!”
“그러게요! 진짜 어제 다들 모여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어요! 정말 우리 대리님 짱! 본사에서도 진짜 놀랐는지 계속 연락 오고 그랬었어요!”
은갱과 마찬가지로 설희 역시 일찌감치 출근을 한 상태다. 나와 김부장, 그리고 아직 출근 하지 않은 영수를 제외하고는 가장 고참 반열에 있는 두 사람인지라 선후임끼리 아귀가 착착 맞아 떨어지는 구만.
“뭐 그까짓 게 대수라고. 은갱이랑 차설희, 그리고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됐어?”
“영수씨가 소액건 두 개 있고, 설희씨랑 혜리씨도 한 건씩 했어요!”
“오, 그래? 그리고 또?”
“에, 저는…….”
“은갱, 그래서 되겠어?”
“아! 다음 달엔 정말 다를 겁니다! 결과 꼭 내겠습니다, 대리님!”
은갱의 기합 들어간 목소리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참, 우리 은갱이 예쁘진 않지만 이런 거 하나는 싹싹해서 좋다니까. 중고딩때 컬링 선수라서 그런지 몰라도 보통 여자들과는 행동거지가 달라서 편안하고 좋단 말이야.
“기대해보겠어. 은갱이 지금 노스코어로 8일째지?”
“아……. 금방 깨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부담주냐, 인마! 이럴 때 일수록 천천히 가란 거야. 넌 성격이 급해서 그게 문제야. 내가 뭔가 해야 된다, 건수 올려야 된다 그런 거에 너무 사로잡히지 마. 사회생활 짧게 치고 빠지는 거 아냐. 길게, 길게.”
“옙, 대리님!”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직원들보다 은갱이는 진짜 여동생처럼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뭐, 다른 사원들이 있으면 은경씨 하고 이야기 하겠지만 지금이야 달리 그럴 필요가 있겠냐.
“아무튼 설희, 신입사원들은?”
“아, 다들 잘 하고 있어요! 특히 형석 씨가 계산에 밝아서 그런지 몰라도 모의 투찰 결과가 좋더라구요.”
“성현이랑 형은이는?”
“음, 형은씨는 뭐 평소랑 똑같구요. 성현씨도 결과는 잘 나오는데 투찰 자체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뭐 그거야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깨닫는 거니까. 별 수 있겠어? 사정률 범위 안에서 값 떨어지는 게 계산으로 산출되는 거도 아니고 랜덤인데 도리가 없지.”
정해진 범위 안에서 가격은 임의로 결정이 된다. 그 가격을 맞추는데 솔직히 무슨 계산이 필요하겠냐? 단지 자료가 있고, 해온 시간 만큼 감이 있으니 그만큼 퍼센테이지를 조금이나마 늘일 수 있는 게 전부다. 그런고로 강성현 사원의 문제는 누군가가 옆에서 설명을 해주기보다는 직접 체감하면서 느껴야만 해결이 될 문제라고 볼 수 있겠지.
“그때까지는 아 이게 되는 거구나 싶도록 은갱이랑 차설희가 타의모범을 보여야 할 텐 데. 에휴.”
장난기 섞인 나의 목소리에 이내 은갱과 설희가 히히 웃음 짓는다. 나 다음으로 우리 사무실에서 짬밥 많이 먹었다 하지만 기껏 해봐야 얘네도 이제 20대 중반일 뿐인지라 일을 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지금은 여느 20대 여자애들과 다를 바가 없다.
“진짜 다음 달에는 제대로 된 모습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대리님!”
“그래, 빠이팅 있게 가자고! 빠이팅 있게!”
그러다 보니 이렇게 업무 외적으로 볼 땐 다들 내 동생이고, 식구 같은 맘도 들고 해서 맘이 짠하기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달리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냐? 그저 믿고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는 거지. 넌 해낼 수 있다는 위로의 말을 던지기에는 너무 애매한 시기인지라 입을 앙 다물고 내가 없는 동안 일이 어떻게 되었나 확인을 하는 동안.
“그런데 대리님. 입술은 왜 그러세요?”
“그러게요!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혹시 다치신데가 입술이신거에요?”
“수포?”
설희와 은갱이 다시 내게 물음을 던졌다. 아무래도 이 이른 시간에 출근해서 갑자기 일을 시작하려니 그건 또 죽어라 싫은 모양이다. 쉬고 온 나도 싫은데 니들이라고 좋을 리 있겠냐?
“그냥 어제 좀 다쳤어. 그런 건 아니고!”
아무튼 입술에 대한 물음을 들으니 참 어이가 없어서 다시 웃음이 피식 새어나온다. 참 내, 이런 게 안 보일 리가 없지! 아유, 금조 이걸 진짜!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 거울 보면서도 느꼈다만 어제 금조가 주미 원장을 따라서 감행한 애정표현은 내 입술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 주었다. 젠장, 그것도 오른쪽, 왼쪽 모두 다! 양 쪽으로 사이좋게 말이다.
“혹시 어제 그 여자분 만나셨어요?”
“우와, 선배님! 그건 너무 격한 그림이……!”
세상에 살면서 입술 다칠 일이 얼마나 있겠냐?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그 쪽으로 향하는 모양이다. 아직까지 머리카락도 다 마르지 않은 두 여직원의 모습에 나는 팔짱을 끼고 쀼루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격하긴 했지, 확실히.”
“어머! 정말요?!”
“어제 그럼 진짜 그 여자분 만나신 거에요?”
그러고 보니 아직 금조가 수컷인지 암컷인지는 모르겠네.
“음, 남잔가. 여잔가.”
“네, 네네?!”
“대리님!”
그 순간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정말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아니, 정말 금조가 암놈인지 수놈인지는 모르겠단 말이야. 주미 원장의 화신이라고 했으니 암놈 아닐까?
“아무튼 입술을 막 물어 뜯는 거야. 이게 쪼그만한 주제에 얼마나 거칠던지. 물고 떨어지질 않는 거야. 그래서 떼어 내느라 고생했지. 셋이 같이 있었는데.”
“쪼그만……!”
“세, 셋이요?!”
순간 무슨 상상을 하는지 몰라도 두 사람이 잔뜩 굳은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후후, 눈빛을 보아하니 마음에 음심이 깃든 게로구나.
아, 정말. 남자고, 여자고 밝히긴 마찬가진데 드러난 게 차이가 있을 뿐이라니까? 남자야 대놓고 좋아하는 거고 오히려 변태스러운 걸로 따지면 여자들이 더 은근한 구석이 있다 이거지. 사회적인 관념 자체가 여자들에게 허용적이지 않다보니 관음적인 경향이 있어서 이렇게 상상력을 발휘해선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곤 하잖냐?
“이 저질들,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호, 혹시 대리님! 저희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시죠?!”
“무슨 생각?”
“아, 아닙니다!”
“은갱 지금 뭔가 매우 불순한 생각을 한 것 같은 얼굴인데? 야한 만화책 보다가 걸린 고삐리가 순간적으로 빙의 된 것 같은 페이스라고.”
“예, 예?! 그럴 리가요!”
아니라고 하지만 순진한 은갱과 설희는 얼굴만 봐도 뭔지 안다. 두 여직원에게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 있다면 은갱이는 운동 선수 출신에다 털털하고 싹싹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모가 미흡하여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단 거고, 설희는 작고 보호 본능 자극하는 용모와 다르게 상당히 터프한 성격의 소유자라 연애를 거절해온 사람이란 거다.
그러다 보니 모태쏠로인 두 부하직원의 머리 속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아무래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중성체 1인과 나,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 셋이서 아주 사이 좋게 뭔가를 나누는 장면이 아닐까?
“쯧쯧…….”
“대, 대리님!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니들 왜 이렇게 진지하냐?”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냥 어제 대리님께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이 되어서요!”
“맞아요! 꼭 지금 배트맨 나오는 조커 같으십니다!”
“조커?”
푸핫! 그 말에 도리어 내가 빵 터지고 말았다. 아, 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싶더니 조커였어! 이런 씨!
“아, 나! 차설희!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네? 죄송합니다! 대리님!”
은갱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김부장, 나, 영수라는 상급자 라인이 남자라서 그런지 남자 말투를 따라 쓰는 곱디고운 전라도 아가씨의 반박자 빠른 사과에 나는 더 장난칠 기분도 느끼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에라이, 허튼 생각 말고 일이나 해!”
그리고 내 옆자리에 있는 유리창을 통통 두드리자 사무실 밖 창틀에 자리 잡은 금조가 내게로 휙 고개를 돌렸다.
“어, 어머?!”
“우와! 저거 뭐에요?!”
그제야 금조를 발견한 두 사람이 금조의 판타스틱한 비주얼에 놀라 들뜬 얼굴로 소리를 쳤다. 여튼 여자들 이쁘고, 귀여운 거에 환장하는 건 알아줘야 돼. 뭐, 실제로 금조 성격 보면 경을 치겠지만.
왜 전 재산 29만원가지고 경호원 대동하시는 그 분도 그러잖아? 자기한테 당해보지도 않은 것들이 말이 많다고.
“저놈이 내 입을 조커 입으로 만든 그 장본인이야.”
“저기 밖에다 둬도 돼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쟨 프리버드야. 돈 터치. 근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은갱! 그러니까 결과가 안 뜨는 거지!”
“죄송합니다, 대리님! 근데 저는 진짜 야한 생각 안 했어요!”
“귀에 불 들어왔어, 인마.”
그 말에 은갱이 양 손으로 귀를 가린 채 “대리님!” 하고 앙탈을 부린다. 그래, 은갱이도 여자는 여자지.
하지만 이게 어디서 앙탈이야? 죽을라고! 미안하지만 은갱이 너는 애교를 부려선 안 되는 사람이야. 왜냐하면 마이너스로만 기록될 테니까…….
“콱!”
“죄송합니다! 대리님!”
눈치 있는 은갱이 재빨리 군대식 사과를 하자 그제야 나의 얼굴도 인자한 대웅전 부처상 표정으로 돌아왔다.
“마, 그냥 쿨하게 저 딱 까놓고 대리님이 남자랑 놀아나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럼 쿨하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대리님!”
“아, 놔 그냥 알고 들어도 그건 진짜 싫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남자를 좋아 할 일은 결단코 없을 거라고. 니들 내가 여잘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그러냐?”
“대리님 여자 좋아하는 거야 본사에서도 익히 알려진 일이긴 하지만…….”
“음,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른다고 하셔서…….”
“전에도 대리님 한 번 그런 적이…….”
“야! 그땐 진짜 여잔 줄 알았지! 인마! 그 얘긴 꺼내지도 마! 생각도 하기 싫어!”
대전 유성구 가면 좀 누나 형들이 많이 있지. 우리도 하도 술 마시는 거 좋아라 하고, 또 나는 헌팅도 좋아라 하다 보니 이름도 조아라였다. 그래, 아라라는 누형을 만난 적이 있지. 씨발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이름 자체가 좀 게이스럽다 봐야 했었어.
“상식적으로 니들이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생각을 해 봐! 술집서 합석을 하고 딱 거하게 마신 상황에서 화장실에 갔더니 옆자리에 익숙한 사람이 있네! 아까전까지만 해도 나랑 같이 술마시던 여자가 소변기에 서서 볼 일 보는데 인마! 진짜!”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불알이 쪼그라드는 그 기분을 어떻게 알 테냐? 여자들은 그게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모를 거다. 그래, 모르지.
“푸하하핫!”
“그 이야긴 매번 들어도 너무 재미있습니다, 대리님!”
“진짜 매정한 것들. 니들의 심장엔 아픔에 대한 이해가 없지?”
“하지만……! 정말 재미있습니다! 어떻게 바로 옆에……!”
“급해서 그랬다잖아! 급해서! 아 씨 어쩐지 맥주 존나 쳐먹더라니까. 와, 진짜 내가 살다살다 그렇게 술 잘 마시는 여잔 처음 봤다 싶었는데 그게 누나가 아니라 형일 줄 누가 알았겠냐고!”
진짜 그때 위기였다. 소맥을 연달아 몇 잔을 마셨는지. 그때 잘못했음 의식 잃고 그대로 모텔로 끌려가서 누형의 매직 스틱을 영접했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존나 적극적이더라. 거의 3시인가? 진짜 막 타임에 딱 한잔만 하자는 당시는 노총각이던 김부장 덕에 들어갔다가 딱 인원 맞는 테이블을 보고 불같이 달려들었건만…….
내가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 꼴일 줄 누가 알았겠냐? 물론 정말 다행스럽게 화장실에서 보고, 그거도 보고……. 나보다 실한 것을 달고서 왜 그렇게 사냐 싶어 내 마음이 다 울적해지더라. 차라리 나한테 주지…… 씨발.
혹시 영기를 수련하면 고추도 커질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 9센티면 모든 여자를 만족 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 여자들 가슴 사이즈나 남자들 고추 사이즈는 자기만족과 관련된 부분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커졌으면 좋겠다…….
“하아.”
한숨과 함께 걸치고 있던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어 놓자,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때 마침 형석이와 형은이 두 사람이 출근을 했다.
“오, 일찍 왔네요! 두 사람 모두!”
“아,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괜찮으세요?”
나의 인사에 안부 묻기로 화답하는 두 사람! 그 모습에 나는 걱정하지 말라 고개를 끄덕였다.
“몸 이제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들 말고.”
“어, 근데 입술이……?”
“조커 같다고? 와이 쏘 시리어스?”
이런 씨, 생각보다 심한가? 금조 이 개새……! 조커보단 좆커가 되고 싶어……. 도그 버드라는 별명을 습득한 금조를 떠올리며 입가를 어루만지자 형은이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먼저 웃음 짓는다.
“아니에요! 근데 입술 다치셔서…… 좀 놀라서…….”
“아유, 우리 형은씨 엄청 착하네! 저기 못된 은경 선배랑 설희 선배는 나 가지고 어찌나 이상한 생각들을 하던지. 아, 정말.”
“선배님!”
“저희가 언제 그랬다고!”
“상처는 입술에 난 게 아니라 마음에 난 거야. 내 마음에.”
비록 얼굴은 조커지만 피해자 코스프레를 단단히 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신입 사원 두 사람도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요 형은이 요 녀석 웃는 게 예사롭지 않네. 아, 또 이렇게 한 여자의 마음을 훔친 건가?
“저기……. 대리님.”
“왜? 형은씨. 내 웃는 모습에 반했어?”
“진짜 조커 같아요! 대리님! 그러지 마세요!”
“네? 아, 아뇨!”
은갱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꿋꿋하게 미소 짓는 나의 모습에 형은이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더욱 더 당당한 포즈를 취해 보였다. 양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고개는 비스듬히 45도로 세우면 둔덕한 나의 턱 선이 드러나기 마련이지!
나의 그 모습에 형은이가 더욱 더 붉어진 얼굴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얘, 왜 이래? 어제도 내 걱정을 했다더니 혹시 정말인가?
“왜?”
혹시나 싶은 맘에 던진 물음.
“저기 남대문 열리셨는데요!”
그리고 들려온 건 역시나 싶은 대답.
“응?”
“지퍼가!”
그런 내 꼴을 도저히 못 봐주겠다 싶었던지 형은이가 붉어진 얼굴을 홱 돌린 채 소중한 부위를 가리켰다.
“이런 씨!”
“대리님! 설마 그렇게 출근 하신 거에요?!”
“야, 니들은 얘기도 안 해주고!”
“저, 저희도 몰랐어요! 아까는 재킷 입고 계셨잖아요!”
아이, 진짜! 오늘 하루는 좀 산뜻하게 시작하나 했더니!
“가끔씩은 창을 열어둘 필요가 있는 법이야…….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아우! 대리님!”
은갱이 좀 오버를 해서 싫단 듯 한 표정을 지었지만 뭐 어쩌라고?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원래 남자 경험 없는 애들이 더 그런 거라고, 고백이라도 많이 받아본 설희나 지금 연애 중으로 추정되는 형은이는 오히려 웃음이 빵 터진 모습이다. 미안하지만 은갱, 내가 그렇게 호구스럽게 빌빌 거릴 위인이 아니잖아?
“쏘리.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 너희들의 시선이야 잠깐 버렸다 칠 수 있지만 이 상태로 강남역을 활보했을 날 생각해보란 말이야. 섬세한 내 맘을 떠올려 보라고. 내가 아무리 사무실의 섹시 아이콘이라지만 이런 원치 않은 노출까지 즐기고 싶진 않아. 일탈을 즐기기엔 너무 나이가 많이 들어버렸어. 이 나이에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이게!”
“큭!”
오히려 이런 땐 당황하지 말고 뻔뻔해져야 한다. 그 말에 은갱이고, 형석이고 할 것 없이 다들 웃음이 빵 터지기 시작했다. 아, 역시 사무실엔 내가 있어야 제 맛이지.
“안녕하세요. 다들 일찍 나오셨네요.”
그런 가운데 영수가 출근했다. 아침부터 웃고 있는 분위기에 들어오자 마자 뭔가 하고 신기한 듯 미소 짓는 후임의 모습에 손을 흔들어주자 영수가 반가운 얼굴로 소리쳤다.
“몸은 이제 좀 괜찮으세요?! 대리님!”
“그래. 앞으로 세 번, 넷, 아니 영업부 이대리까지 다섯 번만 더 대답해주면 괜찮을 것 같아.”
그 말에 영수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사람들이 들어올 때 마다 괜찮다 대답하는데 지친 내 심정을 헤아린 모양이다.
“아무튼 선배님! 그거는 들으셨어요?”
“뭐?”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전환한 영수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영수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윤 이사님이 이번에 비서 뽑았대요.”
“응?”
윤 이사가 비서를?
“매번 본사랑 왔다 갔다 하는 게 좀 시간 낭비다 싶으셨나봐요. 어차피 올해 성과만 잘 나오시면 본사랑은 완전히 분리 하는 거니까 그래서 그것도 좀 미리 준비하시는 것 같구요.”
“그런 얘길 나 없는데서 얼마나 나눴어? 좀 배신감 느껴지는데?”
“월요일 회식 자리에서요.”
……그러니 할 말은 없네? 뭐, 아무튼!
“그러면 우리 또 신참 하나 더 들어올 수 있단 거네? 수행비서는 아니고 사무비서겠네. 오, 그럼 뉴 페이스 하나 들어오는 건가?”
“네, 어제 윤 이사님이 면접 봤나 봐요. 이대리님 말로는 꽤 미인이라고 하던데요?”
“오홍.”
비서라……. 그러고 보니 지현이도 사무직 비서 이력서를 냈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우리 회사 오는 거 아니야?
“설마 그런 일이 있기야 하겠어?”
와, 그러면 정말 대박인데. 하지만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네?”
“아니다, 임마! 아무튼 그러면 그 비서는 언제 출근 한다는데?”
“오늘부터 당장 출근한대요. 근데 이것도 3개월 수습기간 적용 할 거고, 그 기간 동안은 아마 대리님더러 일 좀 가르치라고 하실 거 같네요. 자세한 건 김부장님이 출근하시면 얘기해주지 않으실까요?”
강남에 넘치고 넘치는 게 이런 회사들이다. 그러니까 지현이가 이력서 냈다고 해서 우리 회사일 리는 없지!
“뭐 그렇겠지. 근데 지금 우리 상황에 굳이 비서 같은 인사 문제는……. 아니다.”
아무튼 이런 건 좀 냉정해야지. 이 와중에 굳이 윤이사에게 비서가 필요할까? 좀 낭비란 생각도 들긴 하는데. 이제 서울 지사도 안정궤도에 오르긴 했지만 그걸로 충분한 상황은 아닌데 말이다. 그러니까 굳이 비서를 뽑을 필요가 있겠냐?
하지만 뭐 어차피 올해 안에 본사랑은 독립할 거고, 윤 이사가 그럼 짱인데 윤 이사 맘이겠지. 요즘 스크린 골프 재미나다고 같이 한 번 갈래 얘기 하더니 그때 자기 대신 업무 볼 사람이 필요한 모양인가보다.
“일이나 보자.”
“예, 대리님!”
그리고 혜리, 은지, 성현이 세 사람까지 마지막 출근을 끝내고 슬슬 김부장이 올 때가 됐는데도 김부장이 보이질 않았다. 부장 오르고 나선 워낙 정시에 출근하는 걸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인지라…….
“뭐야? 부장님 무슨 일 있어? 영수씨, 연락 좀 해봐.”
“예, 대리님!”
오다가 사고라도 났나? 그 생각에 영수에게 연락을 시키니 금방 영수에게 대답이 들려왔다.
“지금 들어오신데요! 요 앞에서 면접 합격한 여자 분이랑 같이 만나서 온다고 좀 늦으셨다네요!”
“그래?”
그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별 일은 없다니 다행이다. 뭐 어련히 다들 알아서 잘 하지 않았겠냐.
“참, 부장님이 다음주 월요일 엄청 벼르고 계십니다! 대리님!”
“아, 왜 또?!”
“대리님 낙찰 엄청 대박 내시고, 또 새로운 사람도 오잖아요! 그래서요!”
아마 얘네들도 어제 그 사실을 알았던 모양이다. 그걸 굳이 전화해서 아픈 내게 일러줄 필욘 없을 것이고. 뭐, 아무튼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나야…….
“에이, 술귀신 진짜.”
마시긴 정말 싫긴 싫지! 에라, 정말. 하지만 뭐 사회생활 한 두 번도 아니고 직선배 비위는 맞춰줘야지. 어떡하겠냐. 단발로 치고 그만 둘 거도 아니고.
“형은씨, 여기 청원전문건설 사장님이랑 통화한 거야?”
“아, 네! 사장님은 아니시고 담당자 분이랑 통화 했습니다!”
“그럼 담당자 누구라고 써놔야죠?”
“아,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빼먹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다음부터는 틀리지 않도록 조심해요. 자, 이제 입찰건 요청 전화 돌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어제 애들이 내 대신 관리한 고객들에게 문제는 없는지 확인을 하고, 투찰 요청 전화를 돌리도록 시켰다. 이게 제일 중요한 일 중 하나인데 가격을 산출해내서 제시를 해줘도 고객이 투찰을 안 하면 정확하게 맞춰도 무용지물이니까.
“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제이비드 조형은 사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11시에 투찰건이 있으셔서 연락 드렸어요…….”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제이비드 강성현 사원입니다. 오늘 오전 11시에 투찰건 있으셔서……!”
“안녕하세요. 제이비드 오형석 사원입니다. 오늘 투찰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연락 드렸습니다. 네, 10시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곤조곤 전화를 하는 형은이와 남자답게 전화 거는 성현이. 그리고 침착하게 전화 이어가는 형석이. 음, 신입 세 사람도 이제 전화 업무는 익숙해진 것 같다. 슬슬 쟤네들도 이제 밑에 자기 고객을 줘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오, 다들 일 열심히 하고 있네!”
한창 전화에 불이 붙은 그 순간 제법 늦은 김부장이 덜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왔습니까, 부장님!”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네자마자 김부장이 날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인마, 계대리! 너 입이 왜 그러냐?! 어제 혼자 뭘 그렇게 맛있는 걸 먹었길래 그래?”
“아귀찜 먹고 아귀 됐습니다!”
“에라, 혼자 먹으니 맛있더냐! 치사하긴! 월요일도 저 혼자 배신하고 가더니!”
진짠 줄 아나, 이 양반이!
“아귀 안 먹었습니다, 부장님!”
“누가 먹어서 그렇대? 생긴 게 닮아서 그런거지.”
이런 씨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을까 보다. 아, 나! 머리를 꾹 움켜쥐며 씁쓸함을 달랜 나는 전화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 사원들을 살피고 다시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에이, 뭐 그건 됐고 부장님! 윤이사님 비서 뽑았다더니 그거 사실입니까?”
내 물음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부장이 오묘한 미소를 짓는다. 흡사 뭔가를 알고 있는 듯 한 아주 오묘한 미소를 말이다. 어? 이거 왠지 느낌이…….
“음, 안 그래도 오늘 계대리한테 일거리 하나 던져주러 왔다 아니냐!”
“안 그래도 유능한데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유능해지라구요?”
“넌 다 문젠데 그게 제일 문제야, 인마.”
그러는 댁은 존재 자체가 문제올시다! 쳇, 신삥들만 없으면 그러고 놀 수 있겠다만 직장 내 위계질서는 지켜줘야지. 불만 가득한 나의 얼굴에 김부장이 씩 웃음 지었다. 뭔가 그런 느낌이다. 아빠가 해외여행가서 존나 진귀한 장난감 선물로 사와서 자랑하려고 하는 듯 한 초딩을 보는 느낌……. 아, 진짜 사람이 유치하게 정말.
“자, 이쪽으로 오세요!”
그러는 동안 대략 예상하고 있었던 신입을 김부장이 불러 왔다. 옆으로 슬쩍 비켜서서 김부장이 꽤나 젠틀해 보이도록 손을 내밀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자가 조금 긴장한 듯 ‘후!’ 하고 깊게 숨을 내쉬고는 또각이는 구두소리를 내며 우리 사무실 안으로 걸음을 옮겨왔다.
“어?!”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무척이나 반갑고 들뜬 얼굴로 내게 미소를 보내어 보였다. 입가에 가득한 환한 미소! 와, 정말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지현이……!”
============================ 작품 후기 ============================
수목 이틀 서울 갔다 왔는데 잠을 너무 못 잤네요. 이틀간 8시간 정도 잔 것 같습니다. 이거 한 편만 쓰고 자야지, 자야지 하고 쓰다가 겨우 다 썼네요. 그래서 좀 빈틈 많더라도 양해 좀...
아, 이제 잘 수 있다니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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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호... 조아라는 동명이인이라능... 게이물이 많단 건 아주 우연의 일치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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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럭키한 아침식사 쌍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