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럭키가이-44화 (44/120)

<-- 44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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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을게요! 아저씨!”

“그래, 많이 먹어라. 많이.”

참 내 신세도 우습지. 밤을 꼴딱 새고 공원 와서 기껏 하고 있는 게 이름도 모르는 여고생이랑 같이 떡볶이 먹는 일이라니.

“아저씬 안 드세요?”

“됐어. 내가 공원에서 떡볶이 먹을 군번처럼 보이니? 너나 많이 먹고 살 좀 쪄라. 요즘 애들 비쩍 말라서 한 대 툭 치면 부러지겠어.”

아직 이름 모를 소녀가 내게 또 다시 물음을 던졌다. 아, 이 녀석 참 당차네. 하긴 날 보고 쫄지도 않고 씨발놈, 개새끼 하고 욕 하던 주둥이 복서에 비하면 이건 당찬 축에도 들지 못 할 거다.

“네! 그러면 저 혼자 먹어요!”

“그래, 그래. 많이 먹어라. 금조랑 같이.”

“히힛~!”

그래도 아직 애는 애인가 보다. 뭐 먹고 싶냐니까 떡볶이를 먹고 싶다네. 금조를 데리고는 식당 어디도 들어 갈 수가 없는지라 공원까지 떡볶이를 사다 오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괜히 쪼그만한 애가 잘 먹는 걸 보니 또 마음이 흐뭇하다.

“까악!”

그리고 덩달아 금조 반찬으로 소고기 등심도 사왔는데, 역시 신선한 고기에 금조도 신이 나서 고기를 먹고 있다.

“귀엽다, 금조! 이름이 금조 맞아요?”

“어, 그래.”

“종류가 뭐에요?”

“새.”

“아뇨, 무슨 새에요?”

“금조새.”

“……그게 무슨 새인데요?”

“하늘 나는 새.”

“음…….”

이게 무슨 선문답이란 말인가. 하지만 금조가 정확히 뭐 하는 새인지는 나도 모르겠거든.

“혹시 아저씨도 모르는 거 아니에요?”

“그래, 인마. 내가 알고 있는 건 얘가 정말 성질 더럽다는 거랑, 앞으로 밥 값 엄청 들어갈 것 같단 거.”

“헤……. 이렇게 작은데요?”

“너 지금 얘가 먹고 있는 고기 하나면 너 떡볶이 한 100개는 살 수 있거든?”

“우와…….”

역시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구나. 아무리 양이 적기로소니 한우란 말이다, 한우. 물론 처음부터 너무 센 고기를 맛을 들인 건 아닐까 싶지만…….

“까악!”

또 이리 좋아하지 않냐.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피식 터져 나온다.

“근데 아저씨 이런 거 막 사도 돼요? 아저씨 백수 아니에요?”

“참 내. 내가 어딜 봐서 백수로 보이냐?”

“다른 사람들 다 출근할 시간인데 혼자 이러고 있잖아요.”

“그럼 넌 학생 아니냐?”

“그건…….”

“짜식, 니가 아직 어려서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구나. 아저씬 오늘 하루 쉬는 날이라 산책 나온 거야. 산책.”

“그렇구나. 난 아저씨 막 그런 건 줄 알았어요.”

하긴 내가 이 시간에 하릴 없이 공원 와서 담배 태우고 있으니 당연히 그렇게 보였겠지. 하긴 슬리퍼 질질 끌고 와서 이러고 있으니 당연히 그렇게 보이겠지.

“뭐?”

“막……. 그런 사람 있잖아요. 새 덕후 같은 거…….”

“참, 내……! 내 살다 살다!”

“근데 아니네요!”

내가 버럭 화를 내기 전에 눈치를 읽은 것인지 이름 모를 소녀가 헤헷 웃으며 선수를 쳤다. 이것 봐, 제법 눈치가 있는데?

“흠, 아무튼 아저씨 나름 잘 나가는 직장인이거든?”

쳇, 애 앞에서 이런 잘난 척이나 하고 있다니. 계범도 가오 상하게끔 이게 뭐냐?

“넌 왜 여기 있는데? 학교는 왜 가기 싫고?”

그래도 뭐 집 가봐야 딱히 할 게 없는데 이런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깍깍 하고 한우 먹는 금조와 떡볶이를 오물오물 먹고 있는 이름 모를 소녀가 묘한 대치를 이뤄서 저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양쪽으로 왜 이렇게 귀엽냐.

“음, 그냥요. 아저씨도 오늘 출근하기 싫어서 휴가 쓴 거 아니에요?”

“아저씨는 남모를 사정이 있어요. 단순히 출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저도 남모를 사정이 있어요. 그래서 그냥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요 거 좀 보게! 이게 말주변이 제법 되는 걸?

“떡볶이 사줬으니까 그 정돈 말 해 줄 수 있는 거잖아?”

“음……. 알겠어요. 인심 썼어요, 내가.”

“헐 대박.”

이 어린 것이 벌써부터 리드를 잡을 줄 아네! 감탄을 금치 못한 내 모습에 소녀는 조금 당혹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던지 웃음을 빵 터뜨리고 말았다.

“왜요? 뭐가 대박인데요?”

“아니, 사주고 이렇게 선심 쓰듯이 이야기 듣는 얼 척 없는 경우는 참 오랜만이라서. 너 나중에 사내놈들 여럿 울리겠다.”

이거 사립 호구왔뜨 수석 스카우터가 될 자질이 충만한데?

“음…… 그런 거 아닌데.”

그런 내 눈빛이 못내 부담스러웠던지 떡볶이 먹다 말고 웃음이 터진 이름 모를 소녀가 손으로 입을 막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무리 요즘 애들이 영악하다 하더라도 이런 건 또 나이 본연의 풋풋함이 묻어나서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었다.

“그래, 까짓 거 인심 쓴 김에 팍팍 써서 얘기 야무지게 해 봐라.”

그 귀여운 모습에 마음의 문을 연 나는 어느 샌가 다소 누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왜, 아까 전에 애새끼들이랑 시비가 붙어서 떡볶이를 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던 게 사실이거든.

“음, 그냥……. 학교 짜증나고 지루하잖아요.”

“참 내. 남모를 사정은 아니네.”

“음…….”

역시 얘도 아까 걔네들이랑은 다를 바가 없었던 모양이다. 너무 선입견이 강한 건 아닌가 싶지만 뭐 그냥 그렇고 그런 거지.

“인마. 학교가 아무리 짜증나고 지루해도 그래도 이렇게 슥 빠지면 안 돼. 그러면 부모님이…….”

“부모님 안 계세요.”

“응?”

알아듣게 이야기를 막 꺼내려는 순간 떡볶이를 먹던 이름 모를 소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어?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이야? 부모님이 없다니?

다소 당혹스러운 기분 스치는 가운데 이내 이름 모를 소녀가 헤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얌마! 놀랬잖아! 할 말 못 할 말이 있지, 어디서 그런 걸로 장난을 쳐?!”

“……음. 장난은 아닌데…….”

“이놈 자식이 혼날라고!”

“정말이에요! 아빠는 안 계시니까.”

으잉? 막 이름 모를 소녀를 혼내려던 나는 애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이야기를 꺼내자 다시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아니, 이게 사실이야? 거짓이야? 잘 알 수가 없는 가운데 이름 모를 소녀의 눈가에 스친 처연함이 이런 건 얘가 연기를 전공하지 않는 이상은 속일 수가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왜? 무슨 일 있냐?”

“아, 아뇨……. 그냥…….”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 아냐? 그럴 땐 이상하게 목이 먼저 턱 막히고, 그 느낌에 숨이 가빠지고, 그리고 뜨뜻해진 눈시울이 자꾸만 흐려진다. 그러면서 괜히 몸엔 힘이 없어서 배배 꼬는데 지금 눈 앞에 있는 이름 없는 소녀가 딱 그 모양이었다.

“까악?”

한우 한 근을 다 비우고 아쉬운 모양인지 빈 통을 쪼던 금조도 어느 샌가 고개를 갸웃해 보이며 내 어깨 위로 돌아 왔다.

“아니, 무슨 일인데 그래? 왜 울라 그래?”

“아니에요! 안 울어요!”

이내 이름 모를 소녀가 손으로 눈가를 슥슥 문질렀다. 그러고 보니 얘는 화장도 안 했네. 아까 우럭 소녀는 얼굴에다 화장을 떡칠을 해서 꼭 변극 가면을 보는 것 같았는데……. 확실히 걔네들이랑은 차이가 있구나.

“에이, 울 거 같은데?”

“안 울어요!”

“떡볶이 맛있어서 우냐?”

“헤……. 아니요! 맛있긴 하지만 그 정돈 아니에요!”

내 앞에서 우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던지 눈가를 훔치고는 그래도 밝은 척 웃음 지어 보이는 이름 모를 소녀. 그 모습에 왠지 모를 사연의 진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아까까지 가졌던 선입견을 떼고 걱정 가득한 목소리를 해보이니 그제야 이름 모를 소녀도 분위기가 달랐다 느낀 건지 ‘그냥…….’ 하고 우물쭈물 하며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 있니?”

“……그냥 이제 세상에 혼자 남으면 어쩌나 해서요.”

“응?”

“아, 아니에요! 그냥 그래서요…….”

알아듣지 못 할 말을 꺼내곤 고개 흔드는 소녀. 오, 소녀. 이 속마음 알아차리기 힘든 존재 같으니.

“왜? 엄마가 아프시니?”

하지만 난 사회생활 만 렙, 사회적 지능은 아인슈타인 급 계인슈타인 되겠다 이거지! 정황 상 아버지가 없단 말과 혼자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말을 미뤄 보았을 때 이 이름 모를 소녀가 뭔가 난처한 상황이 아닌가, 그리고 또한 그게 가족의 큰 일은 아닐까 싶어 물음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자 금방 이름 모를 소녀의 눈시울이 촉촉하게 물들어 갔다. 순간적으로 촉촉해지는 눈빛이 어찌나 맘이 애리던지 분명히 이 소녀의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겠지만…….

“까악?”

성격 드러운 금조도 고개를 갸웃하며 힐끔 내 눈치를 살핀다.

“왜 그래? 무슨 일 있니?”

다시 한 번 더 물음을 던지자 소녀가 결국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진짜. 요즘 내 주변은 왜 이런 걸까? 나비의 날개짓이 어느 곳에서는 엄청난 폭풍우를 일으킨다더니 구슬이를 얻어 내 운이 트였기 때문인지 어째 내 주변으로 사연을 가진 사람이든 요괴든 뭐든 속속들이 생겨나는 기분이다.

“엄마가 많이 아프셔?”

“……네.”

목이 메여서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던지 소녀는 떡볶이 먹기도 그만두고 눈물 닦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히려 청초해보이기 까지 한 것이 얘가 정말 나중에 나이 들어 어른이 된다면 얼굴 하나만으로도 여러 남자들을 울리겠단 생각이 절로 들 지경이었다.

“얼마나 많이 아프신데?”

“……아주……많이요.”

엄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지 처음엔 안 그런 척 하던 게 온데 간데 없고 이제는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아, 거 참…….

“그래, 그래서 학교를 안 갔구나. 엄마 걱정 돼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맘이 짠해졌다. 얘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 모르겠지만 하나 밖에 없는 가족이 많이 아픈 상황이라면 학교에 있을 기분이 도저히 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굳이 공원까지 나와 있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아, 나. 내가 정말 감정이 메말라가긴 하나 보다. 이렇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애를 두고 그런 의혹을 먼저 가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인마, 괜찮아. 걱정 없을 거야. 그래, 알고 봤더니 효녀네.”

하긴 내 주변에 좀 신기한 일들이 많았어야지. 그러다 보니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 지금도 혹시 은팔찌 철컥철컥 전자발찌 찌릉찌릉 하지 않을까 소녀의 등도 다독여주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자, 괜찮을 거야……. 어, 그래. 옳치. 뚝.”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소녀의 모습에 응원을 더했지만 오히려 그게 또 소녀를 흔들어 놓은 모양이다.

“이이이잉…….”

“아, 괜찮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아, 나 진짜 좀 당혹스럽네! 갑자기 얘는 떡볶이를 잘 먹다 말고……! 에라이, 지금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답이 나오겠냐? 그저 아주 조심스럽게 이름 모를 소녀의 등을 다독여줄 수밖에 없었다.

“아유, 괜찮지. 괜찮아. 음, 그래그래.”

계속해서 등을 다독이며 별 의미 없는 말들을 늫어 놓고 있다만……. 위로가 별 거냐? 영혼 없는 말이라도 이렇게 누가 옆에 있단 자체가 가끔은 사람에게 의미가 되는 법이다. 솔직히 얘가 왜 이렇게 울고 있는지, 그리고 사정이 어떤지도 모르겠다만 이거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래, 그래. 다 괜찮을 거야. 응, 아무런 걱정 말고. 아유, 착하네.”

근데 참 내가 보모도 아니고 정말…….

그래도 애가 이렇게 서럽게 우는 걸 보니 왠지 모르게 맘 한 구석이 짠하다. 찌릿찌릿하고 올라오는 것이 아, 역시나 여고생은 지켜줘야 하는 대상이란 걸 무엇보다도 명백히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 봐? 내가 애한테 뭐 할 까봐……? 수상한데…… 경찰청 가고 싶어!?

“으, 으윽…….”

“자, 아무튼. 이제 좀 진정 됐냐?”

뭐 이래 저래 달래는 동안 시간은 갔고, 이름 모를 소녀도 감정적으로 진정이 되긴 한 모양이다.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도 엄마 괜찮으실…….”

“암이래요.”

“어……?”

암……? 그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이름 모를 소녀를 재차 바라보았다. 아무렴 애가 못 됐다 하더라도 이런 걸 가지고 거짓말을 할까?

“암……?”

“아저씨, 암 걸리면 사람은 다 죽어요……?”

“아, 아냐! 걸려도 살 수 있지! 상태에 따라서 수술하면 완치도 가능하다고 하니까!”

그 말에 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러면……. 수술비 없으면 못 살겠다…….”

아……. 얘가 왜 이러는지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아버지 없는 편모 가정에 엄마가 암이 걸린 모양이다. 세상에……! 이럼 나라도 학교 나갈 생각이 전혀 안 들겠다. 와, 진짜 이런 일이…….

“엄마가 어디가 어떠하신데……?”

“모르겠어요……. 근데 엄청 아파 보이는데 병원도 못 가고 있어요…….”

“왜……?”

“병원비가 없어서요…….”

잘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이름 모를 소녀. 이게 거짓말이면 다행이고, 사실이면 정말 너무 안타까운 사연 아니냐? 이름 모를 소녀의 사연이 전해지자 절로 내 맘도 먹먹해져왔다. 아까까지 혹시 이 녀석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던 맘이 좀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니가 학교에 앉아 있질 못 했구나.”

그 말에 소녀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눈가를 훔쳤다. 보이쉬 해 보이는 짧은 머리카락도 어쩐지 사연을 알고 나니 슬프게 보인다. 혹시 엄마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머리카락을 잘라서……. 아, 이건 너무 앞서 갔다.

“아무튼 엄마는 그럼 집에 계신거야?”

“……네.”

그러니 애가 학교는 있질 못하고 집엔 또 돌아가질 못한 모양이다.

“집이 어딘데?”

“네?”

“집이 어디냐구.”

“지, 집은…… 갑자기 왜…….”

갑작스러운 나의 물음에 소녀가 조금은 당황한 듯 힐끔 고개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뭘 봐? 미남 처음 봐?”

집을 갑자기 물어보니 놀란 모양이다. 그걸 또 달래주려고 자신감 있게 이야길 꺼내니,

“……아저씨, 진중권 닮았어요.”

“너 슬퍼도 할 말은 다 하는 애구나. 매정한 것.”

진짜 이거 파이팅 있는 년일세. 어쨌거나 그 말에 울먹이던 소녀도 잠깐 웃음을 되찾았다. 그러다가 울다가 웃음이 터지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던지 굉장히 부끄러운 듯 한 얼굴로 날 쳐다본다.

“씨……. 그러지 마요!”

그리곤 내가 얄밉다는 듯 작은 손으로 내 팔을 툭 치는데 참…….

“아퍼, 치지 마!”

나도 모르게 괜히 맘이 짠해져선 울컥한 티 안 내려고 우스운 얼굴로 소리치고 말았다. 그 말에 그나마 이름 모를 소녀가 ‘칫!’ 하고 그나마 한결 풀린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나는 이름 모를 소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 복싱 해볼 생각 없나?”

“나 주먹 꽤 세죠? 손 맵단 소리 많이 들었는데!”

무거운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던지 내 말에 소녀가 다시 웃음을 되찾은 듯 활발한 얼굴로 이야길 꺼냈다.

“고사리 손이구만. 뭘.”

그러다 잠깐 정적이 흘렀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소녀가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쭈뼛거리며 눈을 피했다.

“근데 우리 집은 왜요……?”

아무래도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떡볶이 사준 동네 아저씨를 쉽게 믿지 못하는 눈치다. 하긴 새 덕후인 줄 알았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냐.

“가서 너네 엄마 상태 보고, 내가 도울 게 있으면 도와드리려고 하지.”

“음…….”

그러자 소녀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저씨가 왜요……?”

“내 맘이지.”

내가 왜 이러는지 영 미심쩍은 눈치다. 하긴 요즘 애들 영악해서 세상 돌아가는 걸 다 아는데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하면 그게 또 더 이상하게 보이겠지? 하지만 정말 그 사연이 사실이라면 도와주고 싶단 생각이 든다.

“믿고, 안 믿고는 너 자유야. 그냥 가서 보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주겠단 거야. 정 못 미더우면 이거.”

그리고 나는 지갑 속에서 명함을 꺼냈다.

“아…….”

명함을 받아든 소녀는 제이비드 계범도 대리라는 이름을 보고 그제야 안심한 눈치다. 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는지. 호의를 베풀어도 있는 그대로 믿기가 힘들고, 또 진실을 말해도 있는 그대로 믿기가 힘드니.

“아저씨 성 되게 특이하네요…….”

“엑센트 조절 잘 해라. 계범도지, 개범도 아니다.”

그 말에 소녀가 다시 살짝 웃음 지었다. 명함을 받고나선 좀 긴장이 풀렸던 모양인지 한결 누그러진 얼굴을 해보였다.

“음……. 그냥요. 나중에 다시 연락 드려도 되요……?”

“그래, 뭐 그러던지.”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쉽게 믿기는 어려운 세상일 거다. 그래,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멍 때리면서 뉴스를 봤는데 진짜 기도 안 차더라.

엄마 병원비 마련하려고 학교 그만두고 당구장에서 일하던 17살짜리를 당구장 주인 개호로 새끼가 내가 깡패다, 깡패 친구들이 많다는 둥 협박과 애가 일을 계속 해야만 하니까 그 사정을 가지고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해왔다더라고.

1년 6개월간 그랬다니까 애가 한 15살 먹었을 때부터 그 짓을 당해왔단 거 아니냐? 진짜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보니 이런 것도 당연한 노릇이겠지.

“아무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라.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알겠냐?”

“네, 아저씨! 고맙습니다!”

그래도 소녀가 기분은 좋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혼자 끙끙 앓아오던 고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그리고 그 사람이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경험을 해봤단 자체가 아마 지금 이 애한테는 기적적인 일이지 않겠냐?

“지금 나 좀 멋있는 것 같은데. 자, 이거 사진으로 좀 찍어봐.”

고마움 가득한 소녀의 눈빛이 괜히 부담스러워진 나는 퉁명스럽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소녀가 다시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진중권 닮았어요.”

“너 이씨! 나 소싯적에 정우성 닮았단 소리 많이 들었거든!”

“네? 아저씨, 어디가서 그러지 마요.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해요.”

“와, 너 파이팅 있다.”

“아저씨가 더 그런 거 같은데! 어떻게 감히 정우성을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잠깐 어색했던, 그리고 어려웠던 분위기가 다시 스르륵 녹아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내 마음도 참 이유는 모르겠지만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뻥이든 아니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냐?

“그래, 내가 섹시 멸치 하마!”

“살찐 멸치!”

“아, 나 진짜! 너 파이팅이 넘치는구나!”

지지 않고 한 마디 푹푹 던지는 소녀의 말에 살을 좀 빼긴 빼야 되나 싶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 진짜. 살만 빼면 정우…….

“근데 진짜 나 진중권 같아? 아닌데, 내가 그런 류가 아닌데.”

“뭐 그냥 멀리서 보면 정우성도 쪼끔 비슷할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진짜 쪼금. 엄청, 엄청! 정말 이만큼!”

“진짜 너 파이팅 있게 강조한다. 아저씨가 떡볶이도 사줬는데 너무 한 거 아니냐?”

“그러니까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해야죠. 그래야지 아저씨한테 더 도움 되는 거잖아요?”

요거 아주 재능 있네. 말도 조리 있게 잘 하고, 당황도 잘 안 하고. 나중에 영업 하면 잘 할 것 같은데.

“소녀야. 너 이름이 뭐니?”

“네?”

“그러고 보니까 내가 니 이름을 모르잖아.”

“아……. 저 안시은이요. 안시은.”

“그래, 시은이? 나중에 학교 졸업하고 취직 할 데 없으면 연락해. 내가 널 전화 영업의 제왕으로 만들어 주마.”

그 말과 함께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저씨는 가려구요……?”

“그래. 아저씨 바쁜 사람이야. 생각보다 산책 시간이 길어졌어. 집에 가서 자야 돼.”

“그게 뭐에요? 하나도 안 바쁘면서.”

“아무튼 무슨 일 있으면 혼자 앓지 말고 연락해라. 알겠냐? 속상해도 학교는 꼬박꼬박 나가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냥 집에 들어가서 쉬어. 이런데 돌아다니면서 양아치 같은 애들한테 어울리지 말고.”

나도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자꾸 애가 걱정이 되니까 잔소리가 많아지네. 지금도 그렇지만 누가 나 가르치려 드는 거 참 싫어하는데 내가 그러고 있으니 원…….

“네, 아저씨.”

하지만 시은이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내 다 식어버린 떡볶이를 들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야, 그거 다 식었어. 버려.”

“싫어요. 다 먹을 건데요.”

그리곤 보란 듯이 냠냠 하고 떡볶이 먹는 여고생이란……. 항상 그렇지만 안 좋은 케이스 대조군으로 맹활약하는 승미 년이 또 떠오르는 구나. 쓸 데 없이 존나 비싼 빕스 가서 스테이크 질기다, 맛없다고 투덜거리는 그 꼬락서니가…….

아, 사랑이란 이름의 호구 시절이다. 후. 그러니 난 과천 정우성이 될 자격이 있어. 국민 호구형…….

“암튼 밥도 잘 챙겨 먹고. 사람이 그게 뭐냐? 비쩍 골아선. 개가 물어가겠다. 뼈다귄지 알고.”

“치, 요즘은 날씬한 게 대세거든요? 아저씨가 살을 빼야 돼요!”

참 내. 그래도 애가 너무 우울해하고 슬퍼하지만은 않아서 좋네. 파이팅이 있다.

“뺄 거야! 두고 봐라!”

그 소리와 함께 나는 손을 들어 흔들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뭐, 일단은 돕고 싶은 맘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원할 때 도움을 주어야겠지? 부담감 느끼지 않게 먼저 걸음을 떼자 뒤에서 시은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떡볶이 진짜 맛있어요, 아저씨! 나중에 심심할 때 연락해도 돼요?”

“하지마! 아저씨 바쁜 사람이니까!”

“치! 하나도 안 바뻐 보이는데!”

“살 빼야 돼서 엄청 바쁘거든?”

그 말에 시은이가 다시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 왠지 모르게 덩달아 내 맘도 정화되는 기분이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시은이에게 손을 흔들자 시은이도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 여고생이랑 인사하게 될 줄은 또 몰랐네. 이 나이 먹고 그런 일이 생길 줄은…….

“아저씨, 잘 가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아, 아아!”

계속 손을 흔들어 주는 그 모습에 아, 자꾸 입 꼬리가 스탠드 업 하네. 그냥 무진장 흐뭇하다. 뭔가 내가 좀 남들한테 보람 되는 일 하고 살아온 것 같진 않은데 그런 기분이 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또 이런 식으로 한 소녀의 마음을 훔친 건가? 후후후훗!

“금조야!”

“까악?”

“이 엉아 잠깐 들릴 때가 있으니까, 토방 도착하면 넌 밖에서 망 좀 보고 있어라. 알았지.”

“까악?”

자꾸 내게 의문을 표하는 금조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구슬이를 들어 보였다.

“혹시 모르니까 병원비 마련하러 가봐야지. 인마!”

“까악?”

“에이, 알 것 없다!”

아, 아무튼…….

“존나 멋있어. 그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 작품 후기 ============================

파이팅 있는 소녀와 휴머니즘 있는 호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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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도는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법 한, 적당히 약삭 빠르고, 적당히 허세도 있고, 적당히 성격 있고,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비열하기도 하고, 적당히 정의심도 있고, 적당히 음란하며, 적당히 사회물도 먹고, 적당히 소심하고, 적당히 대범한 구석도 있는, 평범하고 웃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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