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럭키가이-43화 (43/120)

<-- 43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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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11시 40분. 어제 밤을 샜으니까 이 시간 정도면 딱 꿀잠에 빠져들만 하다만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구미호 아리가 있기 때문에? 아냐. 걘 간 지 꽤 오래 됐어. 한 4시간 전에 갔을 걸?

“까악!”

“금조야, 대체 이를 어찌 하면 좋단 말이냐?”

나를 숙면 대신 딜레마로 몰아넣고 만 것은 바로 아리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진짜. 내 인생이 원래 이런 인생이 아니었는데!”

EBS 교양 방송처럼 잔잔하기 그지 없던 내 인생에 왜 이런 폭풍이 몰아친단 말인가? 바둑 교실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 다큐가 된 기분이다.

“아, 안되겠다.”

도저히 이대론 잠을 잘 수도 없을 것 같단 생각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찾았다. 어제 내내 재킷 안에 꿍쳐 놓았던 담배를 끄집어 내니…….

“이런 씨! 나가리네!”

아, 언제 내가 돛대까지 태웠단 말이더냐! 집 밖 편의점가지 걸어 나가서 담배를 사야만 한다는 비극적 사태에 직면한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담배 대신 주미 원장에게 받은 주머니를 꺼냈다.

이게 뭐냐 하면 말이다.

“하루에 한 알씩 먹으랬지.”

“까악! 까악!”

다름 아닌 영단이렸다! 주미 원장이 천년도 넘게 산 대요괴이다 보니 만들어 놓은 영단도 수량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담배 대신 몸에 좋은 영단이나 먹자 싶어서 영단을 꺼내니 금조가 금방 날개 짓을 해 날아왔다. 허허, 녀석. 먹고 싶으냐?

하지만 내 몸에 그리 좋다는데 내가 이런 걸 양보할 것 같아?

“저도 이 영단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음, 오도독 씹히는 맛이 일품인데요?”

“까악! 까악!”

안 줘, 인마! 못 줘!

-오도독!

영단을 달라고 날개 짓하는 금조를 뒤로한 채 나만 영단 하나를 꺼내서 씹어 먹으니 절로 기분이 개운해졌다. 아, 그래! 인생에는 이런 리프레쉬함이 있어야지! 사람들이 담배 대신 은단을 씹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제 상쾌하게 담배 사러 갈 수 있겠어.”

“까악!”

항의 차원에서 금조가 내 머리를 쪼긴 했지만 뭐 이 정도야 애교지! 아까 낮에 구렁이 부하들 얼굴 씹창 만들어 놓은 거 생각하면 말이다.

“인마, 형아가 맛있는 거 사줄게! 영단보다 훨씬 맛있는 고기다, 고기. 오케이?”

이게 이렇게 쪼그마한데 먹으면 얼마나 먹겠냐? 뭐, 돈도 많은데 소고기가 사다 놓고 매 끼니 챙겨주면 되겠지? 다행스럽게도 금조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항의 차원에서 쪼던 것을 멈추고는 내 어깨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아, 근데 머리가 또 축축해진 것 같아.

“인마, 그리고 인간적으로 우리 머리는 건드리지 말자. 가득이나 요즘 머리 감고 나면 추풍낙엽인데 거기 정말 소중하고 예민한 분위라고.”

혹시라도 날카로운 금조의 부리에 내 소중한 머리털들이 상하진 않을까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자 금조가 조금 뚱한 표정을 짓는다. 새 주제에 표정도 다양하고 말귀도 알아 들으니…….

“약속.”

얼핏 남들이 보면 미친 놈 같겠지만 금조는 다르다고!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새끼손가락을 말없이 바라보던 금조가 발톱을 걸었다. 극적 타협이 이뤄진 영광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자, 그럼 우리 기분 좋게 고기나 사러 가자!”

“까악!”

작고 사납긴 하지만 이렇게 든든한 친구도 없을 것이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금조와 함께 편의점으로 가는 길.

“아, 날씨 똥 때리게 좋네.”

참 버라이어티한 내 인생과 달리 날씨는 가열치게 좋았다. 덥단 느낌도 살짝 들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바람이 제법 불어와서 그렇게 덥다는 생각이 많이 들진 않았거든. 그냥 적당히 볕이 좋은 날 정도.

이런 날 이불을 좀 널어다 놔야 하는데. 아, 귀찮아서 그건 못 하겠다.

“나온 김에 담배 사고, 산책 좀 하다 고기 사들고 갈까?”

“까악!”

금조도 실내보단 바깥이 좋은 모양이다. 하긴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세상을 다 알겠냐? 이렇게 넓디 넓은 세상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좋지 않겠냐?

아, 참 귀엽다니까. 우리 금조가.

“그래, 나온 김에 토토도 한 판 하고 말이다.”

그래야지 금조 소고기 값 마련하지. 그리고 나는 구미호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목에 걸려 있는 구슬이를 어루만졌다. 금조 덕분에 존재감이 좀 약해진 감이 있었지만 여전히 막강한 파워 자랑하는 건 구슬이다. 내 인생이 이 사단 난 것도 다 이걸 가지고 있기 때문일테지.

“후. 복수라니.”

물론 그 덕분에 EBS 교양 같던 삶이 무한도전스러워진 건 사실이야. 아직까진 정착이 안 돼서 무모한 도전급이겠지만.

“하필이면 왜 그런 걸 요구해?”

솔직한 말로 구렁이랑은 나도 학을 뗀 사이라 구미호를 돕는다면 내게 유리 할 것이다. 그래, 내게는 주미 원장도 있고, 금조도 있으니 거기에 구미호 아리까지 합세한다면 분명히 청령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말이다.

‘청령은 오랜 기간 도를 닦은 고승을 잡아먹고 영력을 얻은지라 지금도 고승과 같은 방식으로 수행을 하고 있을 거에요.’

아리에게 전해들은 바, 청령은 고승을 잡아먹고 신통력을 얻은 청사 구렁이였다. 절간의 바닥에 자리를 잡고 있던 영물이었는데 오랜 기간 수행을 닦은 주지승을 통째로 잡아 먹고 주지승의 영력을 그대로 얻어내 지금의 모습에 이러게 되었단 것이다.

그게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청령은 ’관계‘를 가져 육욕과 음욕을 느끼게 된다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잃어버리게 돼요. 그건 평생 용이 되고 싶어 안달하던 그 계집에게 죽음보다도 더 괴로운 일이 될 거에요. 그건 범도씨만이 도와줄 수 있어요!’

나더러 청령과 한 번 하라 이 말이렸다!

단순히 그냥 구렁이 잡으러 간다고 하면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내가 뭘 그렇게 꺼리겠냐?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이거지. 나더러 구렁이랑 하래! 이런 씨!

“후우.”

아무래도 아리는 일족의 원수인 청령을 쉽게 처단 할 생각이 아닌 듯싶었다. 하긴 나라도 가족을 그만큼이나 잃었다면 쉽게 쳐 죽이진 못 할 것 같다. 아주 잔혹하게 요리를 하듯이…….

그러니까 그 역할을 지금 내게 맡긴 것 아니겠냐?

“금조야, 이게 과연 럭키일까?”

문제는 그러고 나서 구렁이가 평생 내게 앙심을 품지 않을까 하는 거다. 왜 여자들 한이 서리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물론 구렁이가 힘을 잃는다면 무서워 할 이유는 전혀 없겠지. 하지만 뒤가 그리 개운하진 않을 것 같다.

“까악.”

근데 생각을 해보니까 말이다.

“……주미원장이 교합을 하라고 했지…….”

어제 기억을 떠올려 보거든 그랬지. 주미 원장이 굳이 내게 자리를 비켜주고, 구렁이 청령과 관계를 가지라 한 건…….

와, 리얼 소름 돋았다! 그런 식으로 청령을 처리했다면 주미 원장으로썬 후환이 전혀 없을 테지? 게다가 자신에게 미약을 쓴 것도 알고 있는 상태잖아? 그러니까 그걸 통해서 복수를 한다면…….

“진짜 무서운 여자였어…….”

소발에 쥐잡기로 어떻게 끝판 대장을 내 사람으로 만든 기분이 들었다. 어쩜 주미 원장이 청령의 독을 경계해서 일부러 거기에 빠져든 건 아닐까? 그래, 천 년도 넘게 살아왔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수명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100년이 채 안 될 건데. 그 시간만 기다리면 구슬이를 가지는 건 또 일도 아닐 거니까.

“그래서 주미 원장이 나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드는 건가?”

혹시 내 수명 깎아 먹으려고?!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만 확실하게 느낀 것이 있다면 정말 요괴들이 살벌하긴 살벌하단 거다. 참 생긴 건 다들 개성도 또렷하고 예뻐서 친하게 지내면 내가 다 흐뭇할 것 같은데…….

“어쨌거나 그건 좀 생각을 해보자, 금조야. 구렁이가 또 다시 사람을 보내서 뭔 수를 부리거든 그땐 나의 살모사를 침투 시키겠어.”

침투조, 이상무! 강직도와 모닝 발기력 또한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 근데 혹시 막 하다가 구렁이로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씨발 그럼 존나 쫄릴 것 같은데.”

그럴 리 없을 거야. 그래. 설마…….

일단은 구렁이 청령을 제거하는 게 모두에겐 이득이 될 테니 말이다. 이게 참 물리고 물리는 관계가 오묘해졌네. 그 와중에 끼인 내가 지금 제일 왕 노릇을 하고 있단 것이…….

“이게 운수인지 아닌지 정말 모르겠다, 금조야. 구슬아.”

“까악?”

사람 아닌 것들 데리고 대화하는 나도 참 우습다. 에그! 어쨌거나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걷다보니 편의점도 금방이었다.

“돈 많으니까 양담배 펴야지. 던힐요. 라이트.”

초여름 강렬한 햇살에 브리티쉬 간지를 내뿜고 싶었던 나는 던힐 라이트를 한 갑 가서 나오자 마자 담배를 뺴물었다. 지금 존나 정우성 비트 간지 나지 않을까?

-힐끔.

아, 안 돼! 유리창 보지 마! 범도야! 짜증나게 정말! 딱 꼼장어같이 생긴 게 담배를 물고 있다. 아, 진짜…….

“후.”

착잡한 맘에 절로 담배 생각이 나 불을 착 하고 붙이니 깔끔한 입맛이 확 와 닿았다.

“근데 살이 좀 빠졌나?”

얼핏 편의점 유리창으로 비치는 내 모습을 보니 지현이 만나러 나갈 때랑은 또 달라 보였다. 아무래도 요 며칠 사이에 심적 고생을 해서 그런지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다행히도 없어 보이진 않네. 중국 부동산 부자 느낌인데.”

그래, 씨발. 돈이라도 많아 보이면 됐지…….

어쨌거나 담배를 피니 뭔가 마음의 안정이 생기는 것 같았다. 던힐 라이트가 다른 담배보다 미묘하게 짧아서 개새끼들 존나 양아치라고 욕했지만 지금의 나는 나의 부를 과시하고 싶다. 요플레 뚜껑도 핥지 않을 것이며, 또한 쭈쭈바 꼭다리도 씹고 빨지 않고 버릴 정도로 과감하게 말이지.

“이게 웬 사치야.”

담배 연기 내뿜으며 토방으로 걸음을 옮기던 나는 잠깐 햇살을 만끽하고 싶단 기분이 들어 동네에 있는 공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최근 일상에 너무 시달리고 지쳐 있다 보니 그런 것에서 벗어나 이 한적함, 유유자적함을 만끽하고 싶구나.

“그치? 금조야.”

“까악!”

내 어깨를 벗어나 유유히 하늘을 날고 있는 금조가 대답이라도 하는 마냥 소리를 낸다. 그래, 그래도 니가 구슬이보단 이야기 상대로 낫다. 그 생각과 함께 공원에 도착해서 벤치에 자리를 잡은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도 먹고, 뱀도 먹고, 사람은 언제 먹나?”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요괴로 얼룩진 30대여. 이게 아주 오래오래 갈 것 같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황당한 웃음만 피어 오르는 가운데.

“아유 씨발! 내가 그래서 그 깝치는 새끼 아주 죽싸발을 만들어 놨잖아! 알지? 나 복싱 배운지 3개월만에 프로 선수도 때려 눕힌거!”

응? 나의 여유로움을 방해하는 이 앵앵거림은 뭐지? 조용한 공원이라고 생각했건만 일찌감치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던지 애새끼들 몇이 무진장 떠들어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짱이다! 복싱 천재 막 그런 거 아냐?”

“하여튼 좆밥 새끼들 있으면 말만 해! 내가 다 조져 놓을 테니까!”

어허! 고개를 돌리니 멀지 않은 자리에 교복을 입은 무리들이 보였다. 저게 과천고등학교인지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형형색색 다른 교복들이 공원에 모여서 보란 듯이 담배를 빨아재끼고 욕 섞어가며 떠들고 있으니…….

“이러니 나라의 미래가 이 모양 이 꼴이지.”

딱 봐도 중딩, 고딩이 섞여 있는 무리들이렸다.

“이놈의 새끼들아! 어디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교복 입고 담배 피고 지랄들이야! 담장 불 안 꺼?!”

어른 된 도리로써 올바른 길로 아이들을 이끌고자 나는 망설임 없이 소리를 질렀다. 솔직히 요즘 애들 무섭다고 하지만 지금 내가 애새끼들 무서워 하게 생겼냐?

“뭐야?”

까리하게 던힐을 입에 물고 꼰 다리, 슬리퍼는 엄지 발가락에 살짝 걸쳐 고수의 면모를 풍기는 나의 모습에 애새끼들이 당황한 듯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숫자는 여자 애들이 4명, 남자 애들이 3명.

“지금 뭐라고 했냐? 저 백수 새끼가.”

“존나 혐짤이다.”

서로 눈치를 살피다 이내 숫자로는 자기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느꼈던지 가당찮게도 이것들이 무서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하, 진짜 기도 안 찬다.”

요즘 애들 참 버릇 없다. 소크라테스도 그 말 했다만 아, 요즘 애들은 정말 급이 다르다.

“아저씨가 뭔데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에요?”

“얘 복싱 존나 잘 하거든요? 뒈지기 싫으면 입 닥치고 꺼지세요!”

“씨발 존나 못 생겼어! 토 나올 것 같아!”

“우리 무서운 아이들이거든요! 건드리지 마세요!”

이런 씹새들이 얼굴 가지고 공격하기냐!

“내가 니들이 자라서 이렇게 됐다, 씹새끼들아! 이런 존만한 것들이 어디서 어른 무서운지 모르고 눈알을 부라려? 니들이 아빠 배에서 티슈에 떨어질까 변기통에 떨어질까 고민하고 있을 때 벌써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려온 사람한테 그따위로 하라고 누가 그리 가르치디?”

이것들이 어디 한 번 나랑 랩배틀 한 번 해보자 이거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 치니 잠깐 애새끼들도 주춤하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저 나이때 다 그렇지. 사람이 많으면 자기들이 존나 제일 센 줄 알거든.

“씨발! 지는 백수 주제에!”

“씨발? 야, 너 이리 와. 좀 맞아야 정신 차리겠다.”

진짜 애들이 겁대가리 없다고, 없다고 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순간 열이 확 오른 나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손으로 들고 대장 노릇하고 있는 놈을 불렀다. 저게 복싱으로 프로를 쓰러뜨렸네 뭐네 하던 놈이었는지 키는 제법 컸다. 180 정도? 하지만 어좁이에다 팔도, 다리도 극세사인지라 막 말로 쫄리진 않는 모양새였다.

“뭐요? 뭐 씨발! 해보자고!?”

와, 씨발 존나 박력있네. 공원 와서 설마 내가 애새끼들이랑 배틀 모드가 될 줄은 몰랐다만 가방을 내던지고 다가오는 애새끼의 패기에 살짝 내 기세가 꺾일 뻔했다.

“아주 입에서 씨발씨발 소리를 달고 사는 구나? 씨발 호로새끼. 얼마나 배운 게 없으면 지 입으로 부모욕을 쳐 먹이고 다니냐? 씨발, 존만아! 안 되겠다. 오늘 아저씨한테 좀 많이 맞고 정신 좀 차려라!”

“이 씨발!”

나의 도발에 흥분한 듯 갑작스럽게 선빵을 날린 고삐리는 젊음이 있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민첩해보였다. 씨발 이러다가 나도 고삐리한테 로드킬 당하고 뉴스 타는 거 아니야?!

어?

“뭐가 이렇게 느려?”

-찰싹!

근데 이 고삐리가 막상 주먹을 휘두르니 너무너무 느리게 느껴진다. 어렵잖게 고삐리 주먹을 피하고 슬리퍼로 싸대기를 날리자 고삐리가 더욱 더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씨발 죽여 버려! 개새끼!”

-후웅!

아니, 근데 이게 왜 이렇게 느리냐고.

“요놈 주둥아리가 문제네! 주둥아리가!”

-찰싹!

그리고 슬리퍼로 이번엔 고삐리의 입을 때리자 고삐리가 으악 하고 손으로 입을 슥슥 문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복싱 좀 배웠다고 까불다가 연달아 뺨이랑 주둥이를 슬리퍼로 맞았더니 조금 겁을 먹은 모양이다.

씨발 구라를 까도 적잖이 까야 귀엽구나 하지! 이딴 실력으로 프로를 이겼다고 야부리 까다니, 참!

“마, 일로 안 와!”

자신감이 붙은 나의 외침에 고삐리가 주춤한 듯 주먹을 꾹 쥐었다.

“씨발 죽여버려요! 형!”

“그래, 맞아! 저런 못 생긴 아저씨 죽사발을 내버려!”

“씨발 예쁘게 생긴 게 그런 소리 하면 내가 참기라도 하지! 어디서 우럭 같이 생긴 게! 나만 어패류냐? 너도 어패류야, 이 존만한 년아!”

이것들이 자꾸 얼굴 가지고 공격 할래?! 니들 미워한다, 정말!

“이익!”

그 사이에 고삐리기 기습적으로 또 주먹을 날렸다. 아주 동작이 큰 것이 이게 사람 잡으려고 아주 환장을 한 모양이다. 여전히 좆도 느린 슬로 모션을 보는 기분이라 간에 기별도 안 오거늘!

“이런 씨불 쉑들이!”

분노한 나 역시 슬리퍼를 그대로 코삐리의 면상을 향해 후려쳤다. 아까는 찰싹이었다면 이번에는……!

-철썩!

“악!”

눈 두덩이에 슬리퍼를 맞은 고삐리가 움찔하고 움츠러들자 그대로 슬리퍼를 치켜들었다.

-찰싹! 찰싹!

“아야! 아야!”

“예로부터 예의 없는 것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그랬다! 어디 이놈의 새끼, 좆도 안 되는 것 같지고 까불어?! 응?! 죽을라고, 이 존만한 것들이!”

“이, 이 씨발!”

슬리퍼로 등짝을 두들겨 맞던 고삐리가 억울했던지 울컥하는 목소리로 욕을 하고는 그대로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신고하자! 신고! 도망쳐!”

그리고 이것들이 참……. 우르르 몰려 도망을 치면서 신고를 하려고 하다니! 아, 정말로 말로 해선 알아먹지 못 할 놈들이구나!

“금조야!”

그런 것들에겐 실력 행사가 제격인 법! 유유히 나뭇가지에 앉아 사태를 관망하던 금조를 부르니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금조가 애새끼들을 향해 달아든다.

“까악! 까악!”

“폰부터 제거 해버려!”

“까악!”

흉폭한 성격답게 이런 명령은 마다하질 않는다! 날아든 금조가 핸드폰 꺼낸 우럭의 손을 공격하자 ‘엄마야!’ 하고 그대로 핸드폰을 떨어뜨린 우럭 소녀!

“꺄아악!”

“으아, 이게 뭐야!”

그리고 경기를 일으키는 애새끼들과 신이 나서 여자애들이고, 남자애들이고 무참히 공격하는 금조를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흐뭇해진다. 음, 역시 짐승은 자연 방목을 키워야 한다니까. 그리고 애들은 자연과 함께 어울리도록 키워야 하는 법이지.

그래야 뭐가 무서운지, 뭐가 가혹한 지 일찌감치 깨닫지. 후후후…….

“애들인데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말고 머리카락만 좀 쥐어뜯어라, 금조야!”

신고는커녕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아이들과 집요하게 뒤를 쫓는 금조!

“이 우라질 놈들! 다신 교복 입고 당당히 담배 피고 다니지 마라! 알겠냐!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마음의 양식을 쌓아야지, 존만이들이 여기서 어디 니코틴이나 빨고!”

뭐, 금조도 적당히 장난을 치는 것 같다. 엎어져서 우는 애들은 안 괴롭히고 도망치는 애들만 집요하게 쪼고, 뜯고 하는 것을 보니 그래. 심한 일은 없겠어. 흐뭇한 맘으로 슬리퍼를 다시 신은 나는 느긋하게 벤치에 엉덩이를 붙였다.

“한 대 더 빨아 볼까?”

이게 바로 성인의 권리다, 씹새들아!

“잘못 했어요! 잘못했어요! 제발 저 새 좀! 아아아아악!”

새 공포증에 걸릴 정도로 혼비백산 한 애새끼들의 처절한 목소리 울려 퍼지는 공원. 아, 이쯤 하면 인정상 거둬 줘야지.

“금조! 컴 온!”

“까악!”

하지만 금조는 이제 재미가 붙은 모양이다. 내 명령에 따르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주둥이 복서를 공격하는 금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센 척 하던 건 온 데 간데 없고 눈물 콧물 짜내는 그 모습에 나는 흐뭇함을 느끼고 다시 금조를 불렀다.

“금조야!”

아, 씨발 여기서 금조가 내 말 안 들으면 쪽 팔리는데. 하지만 금조도 양심은 있었던 모양인지 내가 재차 이름을 부르자 아쉬움을 머금고 ‘까악!’ 소리를 내며 내 어깨에 올라탔다.

“스, 스웨인이다! 빨리 도망가!”

스웨인은 또 뭔데?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여튼 요즘 애들 말 하는 거 참 이해를 못 하겠다.

“이놈의 쉐끼들! 앞으로 다시는 까불지 마라! 그땐 금조 한 무데기로 풀어 버릴 테니까!”

“으아악!”

경기를 일으키며 도망치는 애새끼들. 정말 혼비백산 했을 거다. 후후…….

“잘 했다, 금조야. 정말 넌 조자룡 못지않구나.”

“까악!”

칭찬에 으쓱해 하는 금조는 정말 귀엽다고밖에…….

“그 새 아저씨 말 알아들어요?”

“응?”

애들이 모두 도망친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샌가 그 애들 무리 중 하나였던지 교복 입은 애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자애가 하나 더 많았었지. 그 애들 가운데 제일 조용하고 말이 없던 애였는데 괜히 같이 우르르 도망치지 않아서 금조가 공격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까악?”

이것도 마저 괴롭혀야 하나 고개를 갸웃하는 금조를 진정시킨 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 알아 듣지.”

“신기하다. 새가 어떻게 말을 알아들어요?”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금조에게 손을 내미는 소녀. 아주 짧은 숏커트가 보이쉬해 보일 법도 하다만 상당히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이라 오히려 우리 아래 있는 섬나라 미소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심. 너 손에 상처 난다.”

“까악!”

“우, 우왓!”

까칠한 금조가 어디 사람 외모보고 까겠는가? 일단 까고 보는 금조인지라 소녀의 손도 무자비하게 공격하려 하자 소녀가 화들작 놀라 손을 뒤로 뺐다.

“진짜 작고 예쁜데 사나운 새네요!”

“그래, 그래. 근데 넌 쟤네랑 같이 안 가니?”

“그냥 오늘 처음 본 애들이에요.”

“응?”

“그냥 학교에 있기 싫어서 나왔는데 같이 이야기 하자 그래서 같이 있었던 것뿐이에요.”

음? 홀로 남은 소녀는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얘만 교복이 다르구나. 음……. 뭔지는 몰라도 얘는 아까 우럭 소녀나 주둥아리 복서랑은 좀 다른 것 같다. 뭐라고 해야 할까? 불량아스러운 부분이 많이 느껴지지 않는, 그냥 좀 질풍노도의 시기에 놓인 여자아이 느낌?

“왜 학교에 있기가 싫어? 인마, 학교를 잘 다니고 졸업장을 잘 따고 좋은 대학 가야지 나중에 잘 먹고 잘 살아요. 얼른 학교 가!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안 갈래요. 음, 내 인생인데 내 맘대로 살 거에요.”

어? 망설이는 눈치는 보였지만 나름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드는 걸 보니 뭔가 사연이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야, 인마. 그래도…….”

“아저씨! 저 배고파요!”

“어?”

뭐, 어쩌라고……? 날 더러 왜 배가 고프대?

당황한 나는 얼떨떨함 가득한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얘도 염치 불구하고 그런 말 하고 있는 걸 아는지 얼굴이 조금 발그레하다. 그 모습이 풋풋하고 솔직해 보여서 오히려 웃음이 나오는 가운데…….

아, 안 돼! 아청법! 까딱 잘못하다 은팔찌 찰 수도 있으니 요즘은 교복의 교짜만 봐도 조심해야 돼! 주미 원장이 교복 입어도 잡혀갈지도 모르는 세상이니까!

퍼뜩 정신이 든 나는 이 애는 정체가 대체 뭐길래 또 이러는가 의문을 가지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저 밥 좀 사주시면 안 돼요……?”

============================ 작품 후기 ============================

Q 난사, 금조가 날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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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범도는 아청법의 마수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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