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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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뭐?”
“우리 누님 어디로 데려 갔냐고!”
다시 한 번 버르장머리와 재수를 동시에 잃은 운전기사놈이 소리쳤다.
“니네 누님이 누군데?”
“이 새끼가 정말!”
뭐야? 지금 설마 구렁이가 사라졌단 건가? 구렁이가 없어졌어?
“설마 지금 내가 그 구렁이 데려 갔다는 거냐?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뇌내망상세포가 자리 잡은 모양이지?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왕왕이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퇴근 시간 되어 만난 것도 짜증나는 판국에 갑자기 내 멱살 잡고 한다는 소리가 그런 소리라니! 참, 내! 어이가 없다. 이렇게 어이가 없을 수가 있나?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새꺄! 하루 종일 일 하고 왔더니!”
그래, 씨발. 설령 내가 나갔다 왔다 하더라도 어떻게 구렁이를 데리고 가냐? 얼 척이 없어 짜증이 샘솟으니 이 깡패 같은 놈에게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 멱살을 붙잡은 손을 뿌리치고 셔츠 깃을 정리하자 놈이 이글이글 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누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널 가만 두지 않겠어!”
“이런 미친 새낄 봤나! 막장 드라마 찍냐? 아유, 씨발 진짜 내가 참으려고 했더니 참을 수가 없네, 정말! 어디서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반말질 찍찍에다 멱살까지 붙잡고 지랄을 한 트럭으로 씽씽 몰고 가? 니가 옵티머스 프라임이냐? 씨팔, 누가 성질 없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그래, 씨불! 구렁이 없으면 내가 니깟 놈한테 꿀릴 것도 없지! 여기 법치주의 국가다 이거야! 비록 법이 좆 같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선빵 날리는 순간 니 인생도 뻑 투 더 퓨처다! 개쉐리야!
“어디서 말 같잖은 소릴 하고 있어? 씨발 재수 없게! 내가 그럴 능력 있었으면 진작에 그랬지! 개념 없는 개놈의 새끼가 어디서 개 같은 소릴 계속 해대고 개지랄이야.”
모두 손들어, 테헤란로 에 온 모든 사람들! 오랜 시간 단련된 말은 날카로운 비수와 다를 바 없지. 착착 떨어지는 날카로운 라임에 운전기사 놈도 후달린 모양이다. 그래, 씨바 상식선에서 생각을 해야지.
“니네 누님 사람 아닌 거 너도 알잖아. 씨발 근데 내가 데려갔냐고?”
그게 결정타였다. 분명히 이 새끼도 구령이 년이 사람 아닌 거 알고 있어! 그 눈이 흔들리는 걸 보니 알 수가 있는 대목이었다.
“앙? 모르면 가르쳐 주랴?”
“……네놈이 그랬단 걸 알면 죽여 버릴 테니까 각오해둬라.”
“엄한 사람 붙잡지마! 너나 각오해둬라, 씹새야. 니 미래가 뻑 투 더 퓨처로 열렸으니까. 해석 해줘? 좆 된 거야, 너도. 경찰 부르기 전에 꺼지시지.”
사회생활에 있어서 힘든 난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라면 그건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마음씨일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엇나가기 십상이고, 적을 만들면 안 되는데 만드는 셈이라고 하지만……!
이런 좆같은 경우까지 내가 참아줄 필요가 있냐? 씨바, 구렁이가 없어지던지 말던지 내가 알 게 뭔데? 특히 저런 우라질 깡패 새끼들한테도 쫄릴 필요가 전혀 없다 이거지. 솔직한 말로 조폭들이 앙심을 품고 날 해꼬지 하면 어쩌나 내심 쫄리기도 하지만…….
나한테는 비장의 카드가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오늘 토방은 물 건너 갔네.”
지옥철 참더라도 일찍 돌아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운전기사 놈이 페이튼을 몰고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도 지하철로 발걸음을 돌렸다. 근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구렁이가 사라졌다니!
“그럼 구슬이를 안 넘겨줘도 된단 건가? 아, 정말 요즘 재수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대박이 난 거지, 그럼! 당장 구미호가 나타나서 달라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아쉬울 것도 같다만…….
“흠.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그래도 궁금한 건 사실이었다. 그 날 밤에 보았던 구렁이가 워낙에 포스 있었고, 또 여지껏 카리스마가 쩔어줬잖냐? 그러다 보니 감히 누가 그랬을까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혹시 여우가 내게 구슬을 맡기고 막 며칠 간 풀 파워로 충전해서 대낮에 구렁이를 잡은 건 아닐까?
“그래, 빛에 약하다 했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는데.”
가설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 그 중에서 제일 확률이 높은 것은 아무래도 구미호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왜, 그게 제일 자연스럽지 않은가?
“설마 주미 원장은 아니겠지……?”
물론 내가 구렁이를 처리 해달라고 이야기 하긴 했지만 이건 너무 빠르지 않나? 에이, 그런 건 아닐 테지. 혹시 정말 그런 거면 어떻게 하지?
“내가 살요교사…….”
설마 상식적으로 그럴까 싶었지만 주미 원장 자체가 상식적인 존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렇지. 그리고 그 미약도…….
“설마…….”
슈퍼 똥 파워 미약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주미 원장이 설마 바로 구렁이 청령을 납치해버렸다고 한다면 이건…….
“설마가 사람 잡는다 하더니 설마…….”
역삼역 출입구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 안으로 걸음을 내디는 대신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테헤란로를 오가는 퇴근 인파와 가득 찬 차들을 돌아보며 불안한 맘으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통화음이 채 한번 울리기도 전.
-여보세요!
마치 아이마냥 들떠 있는 주미 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기다렸어요! 정말 내내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색기 넘치는 목소리에 가득 담긴 희열! 그걸 듣는 순간 묘하게 꼴릿함이 밀려왔지만, 꼴릿함보다도 더 거대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어……. 약 빨 때문에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왜 이렇게…….
“아, 주미 원장. 오늘 잘 지냈어?”
-네! 하루 종일 주인님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마냥 순종적인 그녀의 말투에 잠깐 놀란 마도 스륵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아, 그래. 당연히 이렇게 날 좋아하게 된 것이었지. 음. 그래, 당연한 일이다.
“오늘 뭐 별 일은 없었지?”
-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주인님과 떨어져 있었단 것 말곤 전혀요!
“아, 그래?”
그래, 그럼 그렇지! 그런 부탁을 했다고 해서 단 하루 만에 설마 행동으로 옮기기야 했겠는가? 음, 어제 우리가 거칠게 관계도 나누고 했으니 주미 원장도 피곤 하겠……지?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긴 어려운 감이 적잖지만 뭐 그러지 않겠냐?
-보고 싶어요! 주인님! 병이 날 것 같아요!
그 사이에 주미 원장이 다시 내게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아, 처음엔 안 그랬는데 이거 참. 미약 파워 덕분인지 애교 섞인 앙탈에 저도 모르게 입가의 미소가 번졌다. 아니, 참. 그냥 파트너 개념으로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애교에 흔들리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별 일은 없었다는 걸 보니 구렁이 일에 주미 원장이 개입된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구미호가 일을 친 게 아닐까? 그 생각과 함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하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버글버글 거리는 사람들 탓에 집중해서 통화를 하기는 힘이 들었다.
“음, 그럼 오늘도 잠깐 보는 걸로 할까?”
빨리 전화를 끊어야지! 귀를 막고, 핸드폰을 딱 붙이고 이야기를 하자 핸드폰 너머로 들뜬 주미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주인님! 그럼 제가 그리로 갈까요?
주미 원장이 와준다면 그게 좋겠지. 아무래도 용운사까지 가려면 우리 집에 들렸다가 가야 하잖아? 내 차 몰고 말이다. 지금 영단 효과 때문인지 그렇게 피로하진 않은데 그래도 귀찮은 건 귀찮은 것!
“그렇게 해주면…….”
-하지만 주인님께 드릴 선물들이 있어서 이번엔 주인님이 직접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응? 선물?”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향을 달라 그랬지. 그래, 요괴 냄새를 지우는 향 말이다. 당장 필요한 것들은 아니지만 언젠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닌데…….
-영단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이 한 가득이예요! 모두 주인님께 드리고 싶어요!
영단도 효과가 대단했는데 그것 말고 다른 게 있다니! 아, 크리스마스날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흐뭇함이 맴돌았다.
“정말? 얼마나 많은데 그래?”
-제가 여지껏 살아오며 모았던 소중한 것들을 드릴 거예요! 그러니 제발 이번 한 번만 주인님이 절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절 보러 와주세요! 주인님! 제발요……!
선물 주고 싶다고 이렇게 보러 와달라 애원하는 경우는 참……. 아, 정말인지 알 수 없는 희열감이 느껴진다. 뿌듯함도 함께 말이다. 어쩜 지현이와 잘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미 원장 데리고 평생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게 진실된 사랑은 아니겠지만 요즘 세상에 진실된 사랑이 얼마나 있다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 맘이야 뭐, 만나다 보면 생기는 것들인데 말이다. 요괴라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알겠어. 그럼 내가 그쪽으로 갈게. 한 한 시간쯤 걸릴 거야.”
집에 들어가자마자 차를 갈아타야 할 것 같다. 뭐 좀 귀찮긴 하더라도 내게 득이 되는 것인데 질질 끌 필요가 있나?
-네, 주인님! 그러면 주인님을 맞이 할 준비를 하고 있겠어요! 빨리 보고 싶지만 조심해서 오도록 하세요! 정말 보고 싶어요!
“아, 알겠어. 그럼 이따 보도록 해. 주미 원장.”
그리고 나는 흐뭇한 맘으로 핸드폰을 끊었다. 비록 주미 원장이 요괴라 하더라도 정말 이렇게 예쁜데 기대가 안 될 리가 있나? 더구나 선물까지 있다는데! 하핫! 아, 뭘 줄지 기대가 되네.
주미 원장의 이야기를 미뤄 보았을 때 주미 원장은 다른 요괴들과는 차별화 되는 요괴인 듯 하다. 구렁이 청령의 일화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선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 살아왔고, 그렇다면 그 시간 동안 모은 진귀한 보물들이라면 어쩜 구슬이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일지도 모르겠다.
“와, 구슬이 같은 걸 하나 더 받으면 정말…….”
어쩜 난 구렁이가 준 샘플로 최고의 카드를 뽑은 셈이다. 진짜, 이렇게 운이 좋을 수 있나? 오늘 대박친 300만원 인센티브는 정말 별 게 아닌데?
허허헛! 이게 바로 운대라는 것인가?
“정말 행복합니다!”
이거라면 지옥철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리는 플랫폼. 그 안에서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와 같았지만, 마음만큼은 언제나와 달랐다. 집에 가도 할 게 없는 게 아니라 뭔가 해야 할 것들이 생겼으니 그게 또 다른 재미지!
“이젠 돈 쓸 생각도 좀 해봐야겠는데.”
그리고 더욱 더 날 즐겁게 해주는 것은 이 소득에 대한 지출을 생각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짜세 나게 좋은 시계도 하나 딱 걸어주고, 집에 홈 오디오 시설도 딱 갖춰 주고. 소나 타라고 해서 소나타라는 지금 내차를 까리한 비엠베로 바꿔도 될 것이다.
아니, 어쩜 돈 더 모아서 승미 년이 내 속을 뒤집었던 반포 지구로 입성해도 될 것이다! 오, 그래! 그거 나쁘지 않네! 그리고 고 소시오패스 같은 년이 그걸 보고 땅을 치며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면 이것만큼 좋은 복수가 어디 있을까?
아, 생각만 해도 속이 다 후련하네!
물론 도사님에게 던졌던 내 말을 잊진 않았다. 구슬이를 통해 얻은 수익의 절반은 사람들을 위해서 쓰겠다고 했으니 그 부분도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1900만에다, 오늘 번 300만원의 절반. 약 2천 만 원 정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면 되겠지?
“단순 기부 같은 건 별로 안 땡기는 데.”
이 돈을 어떤 경로로 사용 할 지도 모르고, 정말로 값어치 있는 방향으로 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도사님에게 받은 요 팔찌가 없었다면 혹시라도 주미 원장이 중독되기 바로 직전에 내가 먼저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지 않았겠냐? 그런 부분을 소흘히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비록 유혹에는 약하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내 입으로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니까!
“죄송합니다! 뒤에서 자꾸 미네요!”
그리고 지하철이 도착하자마자 나는 안으로 사람들과 함께 걸음을 내딛었다. 내가 제일 후미였는데 어느샌가 또 사람들이 몰려와서 꾸역꾸역 지하철로 사람들을 밀어 넣고 있었다. 와, 전세계 지하철 랭킹 1위가 서울 지하철이라더만!
이 복잡함도 1위겠지? 이런 젠장!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그나마 영단을 통해 기운을 얻어 그런지, 이번엔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어 그런지 몰라도 오늘은 꽤 버틸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아, 나 좀 자연스럽게 몸에 근육이 붙은 느낌인데? 간 밤에 주미 원장과 격렬한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내 몸 안에 잠자고 있던 근육이 자극을 받아 눈을 뜬 것 말이다. 참,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만 그래도 정말 어제와는 뭔가가 다른 것 같았다.
“아침마다 영단이 짱이네.”
흑 마늘이 좋다니 해서 먹을 때 느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워다. 정말로! 기분 좋게 지하철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나는 지하철의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아, 오늘은 좀 잘 생겨 보이는데? 일을 잘해서 그런가? 짜식, 멋져! 정말!
“음?”
그러다 문득 내 눈에 들어온 것. 그걸 본 순간 나는 얼음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
“어……?”
더 이상 사람들이 들어올 공간이 없어 사람들이 쓴웃음을 띤 채 걸음을 멈춰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쉬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미소를 띤 채 플랫폼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
“어……?!”
소복은 아니었지만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분명히 그 날 보았던 구미호였다. 빛나는 호박색 눈동자에 옅은 웃음기를 머금고 정확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여자 말이다.
“자, 잠시만요!”
순간적으로 얼 빠진 내 얼굴을 보며 더 환한 웃음을 머금은 그녀의 모습에 나는 사람들의 틈을 해쳐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푸쉭!
이미 지하철 문은 닫히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내린다는 것은 조자룡이 장판파를 뚫고 나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런 젠장! 구미호가! 구슬이를 줘야 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람들 틈에 끼인 채 우왕좌왕하는 나를 보며 구미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무리 하지 말라는 듯 한 얼굴로 미소를 띤 채 말이다.
“아…….”
그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지하철. 순간 다시 한 번 더 그 날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달, 그리고 호박색 눈을 가진 바로 저 여자.
-두근!
오 마이 갓! 내 심장이 왜 이래?! 점차 멀어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맘이 너무나도 안타깝단 것을 느끼고 끝끝내 시선을 떼지 못했지만 결국 차는 떠나가고 말았다.
“……다시 만났네. 정말…….”
아쉽게 그리 만나긴 했지만 그래도 다신 보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던, 정말 날 찾아올 수 있을까 싶었던 구미호를 그리 만나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터져 나왔다. 지현이나 주미 원장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존재감 자체가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듯 한 그런 느낌말이다.
구렁이를 처리한 건 아무래도 구미호였던 모양이다. 그래, 대낮이라면 구미호가 훨씨 유리 할 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구렁이를 잡았고, 그래서 내게 다시 모습을 보인 게 아닐까? 구슬을 찾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보단 쉽게 끝이 났네.”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한 편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자꾸만 남아 여전히 사람들 가득한 지하철에서도 자꾸만 눈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역삼을 지나서 강남, 교대, 서초, 방배, 사당에 이를 때 까지도 말이다.
짧은 시간이나마 구슬이를 돌려줄 때가 온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구미호는 조금 있다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내일쯤……?
“그래, 뭐. 2천이 어디야?”
덕분에 복권 당첨 된 정도로 얻은 게 있고, 또 그뿐 아니라 주미 원장도 있지 않은가? 그 정도면 채 5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진장 많이 얻은 거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는 사당에서 지하철을 갈아 탔다. 구슬이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주미 원장이 내게 또 뭔가를 안겨준다면 그걸로도 좋은 느낌을 이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구슬이를 넘겨준다면 이 운대는 잃어버릴 수 있겠지만 더 이상 구렁이의 위협이나 뭐 그런 비일상적인 것들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까.
“오케, 긍정적으로!”
비교적 할랑해진 사당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과천으로 향하는 길. 그 사이에 핸드폰에 진동이 느껴졌다.
-퇴근 했어요?
지현이다. 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낮까지 연락을 하다가 점심 먹고 나서는 통 연락을 못 했구나!
음, 구미호는 뇌리에 강력하게 남았지만 결국 그건 사람과 이어질 수 없는 운명 아니겠냐? 요괴잖아. 그냥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지……. 그래, 그렇다. 아니, 뭐 그런 감정 가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응! 이제 집으로 가는 길! 그래도 집 도착하자마자 또 친구 만나러 나가야 돼!
-우와, 오빠 엄청 바쁘네요! 피곤하겠다! 저녁 챙겨 먹고 해요!
-그래, 지현이 너도 잘 챙겨 먹구! 금요일 잊지 말아!
그래, 뭐 솔직히 이런 좋은 만남이 더 좋은 편 아니겠는가? 단 두 번 보았을 뿐인데도 자꾸만 잔상이 머리에 남은 듯 아쉬운 구미호 생각을 떨쳐내며 나는 지현이와의 대화에 몰입했다.
-네, 오빠! 금요일까진 계속 다이어트 해야겠어요! 잘 보여야지~!
-에이, 안 돼! 지금 지현이 몸매가 최고라니까! 국가적으로 다이어트 금지 시켜야 겠어.
-그게 뭐예요~! 아닌 것 같은데……!
잃어버리기 쉬운 소소한 것들을 지키는 게 행복이지! 큰 욕심은 부리지 말자, 계범도! 조금 아쉽긴 하더라도 말이다. 후후, 내가 나이 헛으로 먹은 놈도 아니고 이젠 그럴 줄 알아야지. 암. 일확천금이 전부는 아니잖어? 되면 좋긴 하지만!
-아무튼 이따 도착하면 다시 연락 할게, 지현아!
-네, 오빠! 조심해서 들어가요!
그리고 나는 핸드폰을 품에 넣고 목에 걸린 구슬이를 어루만져 보았다. 참, 그래도 너랑 헤어지는 건 아쉽다. 구슬아. 우리가 그리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진 않았지만. 그지?
“마지막으로 너랑 토토 한 판만 해야겠다. 보내기 전에 한 1억만 내 수중에 넣고 보낼게. 괜찮지?”
일확……천금은 아니잖아? 그 정도면 말이다!
어쨌거나 잠깐 비틀렸던 일이 이제야 바로 잡힌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지하철은 과천역에 다다랐다. 뭐, 시간은 가는 거고 곧 자기들 자리는 찾아가야 하는 거지. 이 순간을 난 잊지 못 할 거야.
“택시.”
빨리 이별을 준비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던 터라 걸어가도 될 거리지만 택시를 타고 집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던져 놓고 차 키만 챙겨 밖으로 나온 나는 애마 나타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자, 구슬아.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
출발하기 앞 서 셔츠 안에 넣어둔 구슬이를 꺼내어 보였다. 여전히 영롱하고 신비로운 빛을 내뿜는 구슬. 하지만 구미호가 다시 나타나 나를 보았단 것은 내가 어디에 사는지, 어디서 일을 하는지도 알았단 말이겠지? 구렁이가 사람 부렸으니 구미호도 그럴 수 있을 거다. 뭐, 아무튼 아쉽지만 주인 품으로 돌아가야지. 그 예쁜 구미호한테 말이지.
“일찍 갔다 와서 형아랑 같이 토토 한판 찐하게 하고 가자! 알겠지?”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나의 럭키! 그 맘을 담아 구슬이에게 쪽 입을 맞춘 나는 나타를 용운사 방면으로 몰기 시작했다.
“흠흠~”
이별이야 아쉽지만 그것도 긍정적으로~! 계긍정이다, 내가! 뭐 구슬이를 잃어도 주미 원장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을 거다! 모두!
기분 좋게 흥얼거리며 차를 운전해 나가던 나는 바깥에 서 있는 가로등들을 지나 용운사 방면으로 나타를 틀었다.
“기아가 오늘은 소사가 선발이래. 그럼 무조건 오버로 가겠지? 구슬아. 마지막이니까 엉아한테 잘해줘야 된다, 정말.”
그리고 그땐 미처 몰랐다. 은근한 가로등 아래 빛이 살며시 새어 들어와 구슬이가 ‘대흉(大凶)’이라는 글자를 내비춘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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