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럭키가이-35화 (35/120)

<-- 35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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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들 배 채웠으니까 이제 커피 사러 갑시다! 같이 갈 사람 선착순 한 명!”

직장인 생활백서, 점심시간 배달음식은 통일 할 것! 맛보단 효율이 먼저다. 가득이나 짧은 점심 시간을 허비 할 수 있는가? 빠른 배달, 빠른 식사는 빡빡한 직장 생활에 그나마 한숨 돌릴 여유를 안겨주는데 말이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대리님!”

“남자 싫어. 난 음란마귀야. 여자랑 갈 거야.”

“아, 대리님~! 그런 말 너무 막 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다들 조심해. 나 무서운 남자야.”

오전 내내 일만 하다가 맞이한 점심시간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돈이 굳어서 그런지 다들 분위기는 편안해 보였다. 기존 사원들이 낯을 많이 가리고, 아직도 신입들은 어색한지라 분위기가 제법 서먹했다만 어디 내가 그걸 두고 볼 수 있나?

“함부로 좋아하고 그러면 마음에 스크라치 날 수 있어. 소싯적에 내가 사포질 좀 해왔던 놈이라서 여럿 상처 주고 그랬지. 그러니까 좋아하지 마요. 끌리면 그냥 끌리는대로 두기만 해. 알겠죠?”

낯짝이 뻔뻔하면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고 꼴뚜기 같은 내 꼴 생각지 않고 막 말을 던지자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이, 그럴 일은 없습니다! 대리님!”

“맞아요! 대리님! 그리고 지금 또 잘 되고 있는 여자분 계시다면서요?”

“그 분이랑은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어제 같이 뭐하셨어요~?”

그나마 나와 친한 은경이, 설희, 혜리가 남의 연애사에 들떠 있던지 꺄르르 웃으며 물음을 던졌다. 원래 싸움이랑 연애는 남의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는 거거든. 사랑과 전쟁이 인기가 많은 것은 그 남이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니까 인기가 있는 거다.

뭐, 아무튼!

“설레발은 필패! 그 이야기는 나중에 정말 잘 되면 해줄 테니까, 일단은 커피나 사러 가자고. 난 내 금 같은 점심시간을 아끼고 싶단 말이야. 그러니까 더 이상 말장난 말고 빨리 선착순. 따라오면 프레즐도 사준다.”

지금 중요한 건 뭐다? 시간을 아끼는 거지! 뭐, 커피 마시면서도 이런 이야기들 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정해진 시간 안에 말끔한 게 좋은지라…….

“오! 그럼 저 갈래요!”

이내 먹기를 좋아하는 은경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으응. 아냐 은경아. 넌 좀 빠져.

“혹독한 다이어트 중이잖아요, 우리 장사원님. 정말 하고 있는 건 맞지?”

“그건…….”

“장사원 보호차 묵비권을 인정합니다. 그런고로 여기서 제일 날씬한 형은씨, 당첨! 같이 갑시다! 요즘 일이 많아서 그런가 살이 홀쭉 해진 것 같네.”

“아, 네! 대리님!”

그리고 나는 오늘 내내 표정이 좋지 않던 형은이를 지목했다. 관리 차원에서 이야기를 좀 나눠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둘이 있을 필요가 있었고!

사실 남자 사원 둘도 있다만 저 둘이야 나중에 같이 술이나 한 잔 하면서 풀어주면 되니까. 근데 여자 사원은 그렇지도 못하거든. 둘이서 술 마시면서 이야기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 되어 버리니까 일상생활 면에서 이리 하는 수밖에.

내 밑에 영수를 제외하고 전원 여자가 남아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여자만 우대한 건 아니란 걸 꼭 알아주길 바란다. 정말이야. 진짜…….

“일은 어때요? 좀 할 만 한 것 같아요?”

아무튼 힘 좋고 쓸모 많은 남자 사원을 남기는 것도 중요한 일인데, 사실 이런 경우가 그렇다. 형은이가 일을 그만두면 그게 시발점이 되어서 나머지도 우르르 그만 둘 수가 있단 거다. 그러니까 직접 마킹해서 안 그만두도록 만들어 줘야지. 모르긴 몰라도 신입 사원들끼리는 사적으로 연락도 주고받고 꽤나 친하게 지내고 있을 거다.

내가 얼빠져 있는 사이에 이 모질이들이 신입들 연락처도 안 따고 그냥저냥 회사에서 일만 진행시켰으니 말이다.

“아, 네! 그냥…….”

“그냥 짜증 좀 난다구?”

“아, 아뇨!”

나와의 외출이 어색한지 토끼눈을 하고서 고개를 흔드는 형은이. 참 귀엽긴 하다. 물론 어제 주미 원장을 만나 진하게 놀아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지현이라는 좋은 만남이 있어서 그런지 그저 귀엽단 생각뿐이다.

“에이 그냥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요. 일도 생소하고, 감도 잘 안 잡히고 그렇죠? 나도 그땐 다 그랬어요.”

그래서 더 편하게 이야기가 나왔다. 여잘 대할 때의 팁 하나를 설명하자면 우선 편안해라. 그래, 상대를 편하게 만들어 주기 전에 내가 편해야 한다. 그래야지 상대도 덩달아 편안해지거든.

만약에 내가 상대에게 뭔가 바라는 게 있다면, 직설적으로 말해서 한 번 눕혀 보겠단 욕심 가지고 껄떡이면 그것 때문에 안 되는 거다. 가령 나이트에서 불꽃 부킹 돌리다 하나가 얻어 걸렸는데 나와서 술집에서부터 뭔가가 꼬였다 싶으면 그런 거 때문에 그런 거다. 발정난 면상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개 껄떡 거리니까 부담스러워서 튕겨져 나가는 거지. 고수는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어느 샌가 같이 누워 있는 거지 눕히려고 애를 쓰지 않는단 말이다. 후후후!

그러니 기본은 뭐다?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

여자 자체가 불안을 안고 사는 생물이다 보니 더 그렇거든. 여성 호르몬 역할 자체가 그렇잖냐. 젠더 누형들도 호르몬 맞으면 기분이 오락가락한다는데, 그게 다 시스템 자체가 그리 설계가 되어 있는 거다. 아주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말이다. 그러니 여잔 자길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법이다.

“아, 일이 좀 많이 어려워서……. 조금 그런 건 있어요…….”

“그래도 형은씨 모의투찰 하는 거 보니까 감이 있던데!”

“아, 그건 그냥 막 찍으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워낙 생소하다 보니 신입들에겐 실제 공고를 가지고 모의투찰을 돌리곤 한다. 입찰 지점을 찾는 방법을 연습 시키는 거지. 주로 외각지점을 공략하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못해도 한 달에 3-4건씩은 걸린다. 뭐, 그게 전에도 말했다시피 입찰가가 랜덤으로 떨어지다 보니 그 자체에 회의감을 느껴 그만두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감이 중요한 거예요. 많이 하다보면 패턴이란 게 보이는데, 그 감을 가지고 패턴에 맞춰서 찍다보면 낙찰이 나오는 거지.”

“음…….”

“요는 형은씨 되게 잘 하고 있단 거에요. 사회 생활도 처음 일 텐데 정말 기대 이상으로 선전해주고 있어서.”

신입사원에게 필요한 게 뭐냐 하면 이 일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는 거다. 그런데 우리 일이 그렇게 쉽게 확신과 자신감을 가질 순 없거든. 그러니 그나마 사람이라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는데 영수나 은경이, 이 모질이들이 그걸 못 해주는 거다. 왜냐하면 얘네도 자기들이 악착 같이 살아남은 애들이라 밑에 들어온 애들도 당연히 다 그리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까.

“아직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요…….”

“원래 1년차까지는 버티는 게 일이예요. 그 정도는 되어야 이제 회사 돌아가는 거나, 하는 일이 뭔지 감이 잡히고 자기만의 요령이 생기는 거거든. 이걸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 그러니까 지금은 버티는 게 최선인거야. 뭔가를 해내려고 하기보단 버티면서 배워 나가는 것. 그게 신입 사원의 핵심 요건이거든요.”

“아…….”

“짜증 날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을 거야. 왜 저러나 이해가 안 될 때도 있고, 또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고.”

“아……. 네…….”

“근데 그런 고비가 올 때 마다 버티는 게 정말 일이야. 진짜 형은 씨 나이치곤 정말 잘 하고 있는 거야. 이건 내가 확실히 장담 할 수 있어. 전국에 있는 20살 가운데 제일 잘 하고 있는 축에 속할 거야.”

그 말에 형은이가 옅은 미소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대리님.”

“평가는 원래 다른 사람이 하는 거야. 떽.”

“아……. 하핫…….”

아무래도 이런 칭찬은 생각지 못했던 모양인지 수줍게 머리를 긁적긁적한다. 아, 참 귀엽네. 하는 짓이. 때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는 밥 먹고 나가던지, 아니면 밥 먹으러 나가던지 하는 사람들이 몇 타 있었다.

괜히 또 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형은이를 보니 참 20살이란 나이가 많지 않은 나이란 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아무튼 형은씨 나이가 20살이라고 했지? 와, 그럼 나랑 한 바퀴 돌고도 내가 한 살 더 많네. 삼촌이다, 삼촌.”

“그……러네요. 하핫…….”

순간 계산이 잘 안 됐다가 금방 계산이 풀린 건지 형은이가 다시 미소 지어 보였다. 와, 근데 진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13살 차이. 20살이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대 초반도 끝이 나간다.

“그럼 내가 대학교 입학 할 때 형은씨 초딩이었네. 헐, 대박!”

“엇, 정말이네요!”

“완전 초딩이네. 초딩.”

그 말에 형은이가 다시 꺄르르 웃음 짓는다. 처음엔 많이 어색해 하더니 또 이런 이야기를 하니 금방 스스럼없이 맘을 열어 놓는 것 같았다. 음, 아무래도 낯가림이 있어서 처음에 어색해 하는 거지 친해지면 제법 말이 많을 것 같다.

“그러니까 앞으로 뭐든 힘든 일 있으면 물어보고 얘기하고 해요. 뭐 나이차는 씁쓸하니 많이 나지만 그래도 내가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서 대답해줄 테니까. 오케이?”

“네, 대리님!”

역시 편안한 분위기가 짱이지. 손가락으로 오를 그리며 물음을 던지자 형은이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더 말 없이 오를 그려 보이자 이내 형은이가 날 따라서 오를 그리곤 뭐가 그리 어색한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무튼 다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통일하고 우리는 다른 거 먹자. 형은씨는 카페모카?”

“아, 저는……. 저는 녹차라떼 먹어도 돼요……?”

“그럼. 난 카라멜 마끼아또 시럽 듬뿍 넣어서 먹을 거니까.”

“네? 정말요?”

또 뭐가 웃긴지 형은이가 나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이번엔 뭔데? 왜?

“왜?”

“아, 아뇨! 그냥……. 마끼아또 하시니까…….”

“30대도 단 걸 좋아할 수 있어. 특히 요즘 같은 날엔 당 보충을 해줘야 한단 말이야. 내 몸을 봐 봐. 이게 어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거 같아? 그렇지 않아요. 꾸준한 당보충과 운동생략을 통해서 빚어진 거라니까. 이러다 제 명에 못 살까 싶어 가끔 내 자신이 무서워질 때도 있긴 해.”

그 말에 형은이가 또 웃음이 터졌던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았다. 아, 역시 20살 풋풋한 애들 웃기는 일만큼 쉬운 일이 없다니까.

“형은씨도 시럽 듬뿍?”

“아, 아아! 저는 단 거 별로 안 좋아해서!”

“DANGER 라서?”

“네?”

“그대로 읽으면 당 거잖아.”

“아…….”

순간 형은이가 난처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개그의 신도 아니고 어떻게 매번 웃기겠냐? 하지만 당황하지 말자. 그러면 안 된다.

“나도 던지고 나니 가슴이 서늘하다. 친해지러 같이 나왔는데 더 서먹서먹해질 것 같아. 너무 후회가 돼.”

“푸훕, 아니에요! 재밌었어요!”

“정말이야?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 아냐? 진짜 막 지금 등줄기에 서늘함이 맴도는데.”

“네, 재밌었습니다! 대리님!”

말은 센스거든. 삑사리가 나도 살릴 수 있는 신묘한 컨트롤이 있단 말이다. 어쨌거나 단 거 는 너무 쌍팔년도스러워 불발이 났지만 셀프디스로 위기를 모면한 나는 형은이와 조금 친해진 채로 탐스 안에 드러 섰다.

“프레즐 먹을 거지?”

“아, 네! 사주시면…….”

“근데 형은씨 먹는데도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지? 잘 먹는 것 같은데도 어떻게 이렇게 날씬하냐? 이거 완전 반칙인데?”

“네? 아닌 데요! 살 많이 쪘어요……. 예전에 비해서…….”

“정말이야? 지금 나 농락하는 거 아니지? 살 많이 쪘다고.”

“아, 아니에요! 정말로요! 근데 진짜 학교 다닐 때 비해서는 살이 많이 쪘어요…….”

“와, 진짜 그 말 은경씨가 들으면 완전 분노 할 걸? 나도 소폭 분노했어.”

큐트한 30대의 진가를 보여주마. 허리에 손을 올리고 찌릿 형은이를 노려보자 형은이가 또 웃음이 터진 듯 양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던지 난처해  하는 모습이 참 귀여워. 아, 정말 이런 여동생 하나 있으면 좋겠네.

“제가 속 살이 많아서…….”

“그럼 드러난 살이 많은 사람은 어떡해?”

그 말에 다시 한 번도 손으로 입을 막고 큭큭 웃음 짓는 형은이. 내가 이렇게 웃긴 놈인 줄 몰랐을 거다. 승미 년에 상처 입은 짐승 모드 였을 땐 그냥 회사 와서 일이나 하고 쉬는 시간에 담배나 피러 가고 그랬을 테니.

“알겠지? 그런 고민 상담은 나나 여자 사원들 말고 말라비틀어진 영수씨한테 해야 돼.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우리의 마음이 아야 할 수가 있어요.”

“아, 네……. 근데 저 정말 살은 많이 쪘는데…….”

“정말? 요즘 계속 앉아 있으니까 붓기가 쌓여서 그런 거 아닐까?”

“아, 그런 것도 좀 있는 것 같아요.”

“원래 형은씨 구두 안 신고 다녔는데 구두 신고 다니느라 더 그럴 수도 있겠다.”

“네, 맞아요! 우와……. 대리님은 모르는 게 없으신 것 같아요.”

“당연하죠. 난 다 알아. 그러니까 다 물어 봐.”

하나 그런 반전 있는 남자! 끌리는 남자, 가지고 싶은 남자 계범도가 아니더냐? 뻔뻔한 나의 응수에 형은이가 다시 웃음 짓고 말았다. 설마 이딴 식으로 대답 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단 얼굴이다.

“아무튼 질문 좀 생각하고 있어봐. 일단은 주문 먼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8개랑 시럽 듬뿍 넣은 카라멜 마끼아또 하나랑 시럽 안 들어간 녹차 라떼 하나요. 아, 프레즐도 하나 포장해주시고, 아메리카노들은 시럽 대강 넣어주세요.”

척 하면 딱! 주문을 완료하고 슥 고개를 돌리자 형은이가 또 깜짝 놀란 얼굴을 해보였다.

“두달이나 봤는데 얼굴이 적응이 안 돼……?”

“아, 아뇨!”

이번엔 정말로 웃음이 크게 터졌던지 순간 형은이가 양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았다. 와, 이 영혼 실린 리액션! 좀 상처 받을 것 같은데…….

칫, 그래도 난 지현이랑 주미 원장이 있다. 흥!

“그, 그런 게 아니라요! 근데 그런 거 물어봐도 돼요?”

30대 남자의 토라짐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 그걸 아는지 형은이가 다급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내 쓰리 사이즈랑, 자산 규모 말고는.”

“아……. 저기 제 친구 이야긴데요. 친구가 남자친굴 사귀었는데, 남자가 스킨쉽을 너무 빨리, 많이 하려고 한 대요.”

급조된 듯 한 질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진실성이 느껴졌다. 친구인 고로 형은이란 말이고, 최근에 형은이가 남자친구가 생긴 건가? 으흠.

“스킨쉽을? 그냥 싫다 그러면 되잖아?”

“네! 근데 그렇게 얘기 해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친구는 별로 안 내켜하는데요……. 연애는 나도, 걔도 한 번도 안 해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대요……. 또 친구가 처음 사귀는 거고 해서요…….”

급조된 것 같기도 하지만 풋풋함이 묻어나니 합격이다.

“자, 이건 내가 정말 위험을 무릎쓰고 알려 주는 거야.”

“네?”

“남자가 스킨쉽을 요구 해올 때. 이걸 확실히 끊어내는 방법이야. 잘 들어봐. 알바, 관심 있어요? 그럼 귀를 살짝 열어 놓고 기울여 봐요.”

아메리카노 만들던 탐스 알바생도 순간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얼굴에 철판 깔고 다니는 게 이래서 좋은 거야.

“그럴 땐 한 마디만 하면 돼.”

“어떻게요……?”

“너 이러려고 나 만나니?”

여배우에 빙의된 나의 연기력에 순간 커피 만들던 탐스 알바생이 오히려 빵 터진 듯 ‘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죄,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내 마끼아또만 잘 만들어 줘요.”

“네, 넵!”

그러는 동안 형은이도 웃기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단 듯 한 얼굴로 날 쳐다 보았다. 그 눈빛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남잔 원래 자존감으로 먹고 사는 동물이거든. 그러니까 너 정말 할 줄 아는 게 뭐냐? 이런 소리를 들으면 진짜 기분이 바닥 뚫고 아래로 떨어져 나가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종류의 말을 들으면 아무리 환장한 놈이더라도 일순간 물러설 수밖에 없거든.”

“하지만 사랑한다고 그래서 그런 거라면……?”

“그러니까 역할을 부여 해줘야지. '그러려고 나 만나니?' '아니, 아냐! 널 너무 사랑해서 그래!' 그럼 이 타이밍에 '그럼!' 하고 딱 소리를 높여. 여기가 포인트야. '그럼!' 할 때 딱 끊어줘야 돼. 오케이?”

“네, 네!”

“그럼 날 사랑하거든 날 지켜줘. 난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 됐어.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 난 오빠, 혹은 너 믿어. 그 것도 못 참는 짐승 같은 사람은 아니라고 믿어.”

그 말에 형은이가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친구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수상해!

“못 참고 덮치려 들거든 이제 형편없는 인간 되는 거야. 믿음을 배반한, 그저 그런 놈이 되는 거야. 자존감 떨어지는 거야. 막말로 성인 남녀 연애 하는데 그걸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 그거야 정말로 마음이 준비가 되고, 여력이 있을 때 그때 허락해주면 되는 거야. 그 전까지는 이걸로 충분히 통제가 될 거야. 아마 이거 직빵 먹으면 한 한달 정도는 그래도 잘 참다가 나중엔 하고 싶다고 징징 거릴 거라고. 남자들이 애가 되어서 떼를 쓰는 바로 그 시점에 이제 주도권은 여자 손에 잡히는 거야. 이때 하나, 하나씩 진도를 나가주고적당한 때 끊어버려. 밀당은 원래 이렇게 해야 돼. 애 타게 만들어 줘야 한다 이거지.”

뭐, 안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거나 형은이가 즐겁고 건전한 연애 생활 할 수 있도록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전해주자 유난히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정말 계대리님은 모르는 게 없네요.”

“그럼. 내 별명이 계이슈타인이었거든. 너무 게이스럽다고 싫어하긴 했지만.”

“크윽!”

또 다시 탐스 알바생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정말 여기저기서 빵빵 터지는구나. 그래, 이게 계범도지. 그간 승미 년 때문에 묵언수행 스님처럼 너무 정적인 삶을 살았어.

“오해 마세요. 진짜 저 여자 무진장 좋아 합니다. 성이 계씨라서 그래요.”

“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답니까? 자꾸 미소로 사람 홀리시네요. 내가 형은씨랑 같이 안 왔으면 번호 따는 건데 참습니다. 운 좋은 줄 아세요. 우리 엄마가 나 장동건보다 잘생겼다 그랬거든요?”

뻔뻔함을 가미한 들이댐에 탐스 알바생이 또 웃음이 터진 듯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거 더 공격하면 넘어가는데? 하지만 형은이도 있으니까 사귀든 안 사귀든 여자가 있으면 거기에 집중해주는 것이 예의지.

“자, 아무튼 궁금증 해결 됐나요? 별점 몇 점?”

“아……. 다섯 개요!”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지.”

뻔뻔함이란 게 그렇다. 지나치면 꼴불견이고, 적당한 자기디스, 그리고 유머와 배합되면 이렇게 사회생활에 유용한 게 없거든.

“저기……. 주문하신 커피들 다 포장 완료 되었습니다.”

“사랑과 정성을 듬뿍?”

“풉! 네……. 열심히…….”

“고마워요. 땡 큐. 자, 갑시다! 형은씨!”

어쨌거나 좋은 느낌의 탐스 알바생을 뒤로한 채 아메리카노 8잔, 그리고 나의 마끼아또와 형은이의 녹차라떼를 들고 돌아가는 길은 제법 맘이 편했다.

“아유, 정말 미쳐 버리게 달다. 이거 진짜 물대신 시럽만 넣었나봐. 형은씨도 한 번 맛 볼래요?”

“아, 아뇨! 저는 단 거 정말 안 좋아해서……!”

“까불면 단맛 볼 줄 알아요.”

“네, 대리님! 열심히 할 게요!”

그리고 또 다시 웃음을 터뜨리는 형은이와 함께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잠깐 외출이었지만 확실히 타고 내려갈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역시 남자는 서른 넘어가면서 매력 발산이 되는 거라니까. 내가 서른 넘어서 그렇다 말하는 게 아니다. 정말로!

“그런데 형은씨 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됐으면……. 학교 다닐 때 별명이 뭐였어요?”

“네? 별명이요?”

“난 학교 다닐 때 연극부 했었거든. 모노드라마가 주특기라서 연기는 잘했는데 다른 사람이랑 호흡이 안 맞아서 계륵. 이건 있어도 쓸 데가 없고, 없어도 아쉽고.”

“푸흡! 계륵…….”

“물론 내가 연극부 최상위 먹이 사슬에 올랐을 땐 계리 올드만으로 바꿨지.”

“하하핫……. 저는 음……. 그냥……. 성이 조씨니까 조형물이라고…….”

“아유, 유치해! 걔네 별꼴이다, 정말!”

아마 형은이가 우리 회사 취직하고 나서 이렇게 웃어본 적이 없을 거다. 너무 오랜만에 웃어서 광대가 얼얼한데 그쪽을 어루만지는 형은이를 뒤로 한 채 나는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걸음을 내딛었다.

아, 점심시간도 참 보람차게 보냈다. 막내 직원 관리~! 훌륭하다, 계범도. 내 시간을 포기하고 이렇게 후배를 위해서!

“자, 커피 왔습니다. 다들 커피 드시고!”

뿌듯한 맘으로 다시 사무실 안에 들어간 나는 환호 대신 정적이 날 반긴단 사실에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그건 나와 함께 커피를 사들고 온 형은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다들 왜 그래요? 사람을 왜 그런 눈으로……?”

“대리님!”

그 순간 영수가 믿을 수 없단 얼굴로 내 이름을 불렀다. 뭐, 임마! 왜? 얼떨떨한 기분에 그리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공은 공! 신입들 있는데 지킬 건 지켜야지.

“왜 그래? 영수씨?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지금 본사에서 먼저 연락 왔는데 어제 대리님이 투찰하신 거 12개 넘게 낙찰 됐대요! 역대 최고 기록 경신 하셨어요! 그리고 삼미 건설 4억짜리도 정말로 낙찰 되셨요!”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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