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럭키가이-34화 (34/120)

<-- 34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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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평소보다 늦은 감이 있어도 출근이야 제 시간에 했다만 문제는 아침 출근 시간에 걸리고 말았단 것이었다. 비교적 할랑한 과천역에서 타고 가는 거야 일도 아니라지만 사당에서 환승한 이후로 시작된 지옥철은 정말 진정…….

“진짜 버러지 같은 출근 시간! 아, 진짜!”

미어터진다는 표현을 몸소 체험하고 싶은가? 그러면 출근 시간 2호선을 이용해 보시라. 정말 어느 정도로 사람과 부대끼는 게 괴로운 지 알 수가 있을 테니 말이다.

“아유, 진짜. 영단 아니었으면 삽 될 뻔 했네.”

만약 지금 이 시간에 멍하고 피로한 상태 그대로였다면 진짜 나는 지옥을 맛 봤을 거다. 아, 생각만 해도 살 떨리네. 나른하고 무기력한데다 서 있을 기운조차 없는데 온 몸으로 버텨야만 하다니! 진짜 영단을 먹고 원기를 회복하지 않았다면 정말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주미 원장에게 받은 영단은 진정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주미 원장이 수행으로 쌓은 영기의 불순물 정도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효과는 내가 먹어본 그 어떤 약보다도 뛰어났다. 하긴, 재료 자체가 보통 약들과는 달라서 그런가?

“아무튼 약 빨이 쩔어 준다, 구슬아! 그치?”

주미 원장 말로는 자신도 영단을 배출해내고는 그것을 보관해두고 손상에 있을 때나 체력의 보충이 필요할 때 다시 복용한다고 이야기 했다. 즉, 말이 불순물이나 찌꺼기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효험이 있는 약이라고 볼 수 없지 않겠는가? 아침마다 배출을 한다니 모닝 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영단의 효과를 보고 지옥철을 이겨낸 나는 서둘러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 함께 집을 나서 주미 원장은 용운사 근처에 있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고, 나는 회사로. 아무튼 지금 시간이 거의 정시인지라 지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김부장과 같이 들어가는 것보단 내가 먼저 들어가 있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겠냐?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엄연히 상하관계에는 선이 있다. 어제 윤이사 왔는데 불구하고 내 개인적인 용건으로 회식도 빵꾸 냈으니 그거 가지고 또 트집 잡을 수도 있다. 물론 시작은 장난이겠지만 나중엔 장난이 아니게 될 거다. 사회생활이란 게 그렇잖아? 이런 식으로 한 번 엇나가다 보면 영영 찍히는 거다. 그럴 여지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특히나 지켜야 할 부분이기도 하고!

“흐음. 어쨌거나 오늘의 운세를 좀 봐볼까?”

아직까지 구슬이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장담은 못하겠다. 주미 원장에게 구렁이 청령의 처리를 부탁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호락호락할 것 같지만은 않았다. 물론 나도 믿는 구석이 생긴 터라 마음은 든든하다만.

“아, 또 왜! 왜 흉이야? 오늘은!”

이런 씨! 들뜬 마음에 초 치는 구슬이!

“너 왜 이렇게 센치하니? 정말. 너란 아이, 대체 마음을 모르겠다!”

구렁이에 대한 대항 방법을 찾았다 싶었건만 내 운대는 흉이었다. 대체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그러는 건데? 운대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흉도 길이 될 수 있단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긴 하다만 지금 상황으로써는 이상적이지 않은가? 대체 왜 흉이 된 거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남 몰래 구슬이를 살피던 나는 그 순간 무엇인가를 떠올리고 말았다.

“……지현이!”

맞아! 그러고 보니 내가 연락을 하겠다 하지 않았던가? 맙소사! 젠장! 그걸 왜 잊고 있었지?!

“아…….”

순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이 건물 다른 회사 사람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순간적으로 정말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아 나, 진짜! 어제 주미 원장이랑 놀아난다고 그걸 까맣게 잊어 버렸던 것이다. 이런 젠장, 집에 들어가거든 연락을 하겠다 했는데……! 후우! 범도야, 범도야! 정신 차려야지! 잊을 게 따로 잊지 그걸 잊니?!

연락을 미처 하지 못 한 일에 애가 타는 것은 그만큼 지현이와의 만남이 기분 좋은 인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람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주미 원장이 미약에 취하고 나서야 그런 눈빛과 모습을 보여준 것을 지현이는 아무런 사심 없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러다 보니 왜 이게 흉인지 순간 알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애를 만나고도 주미 원장의 품에서 욕망에 쩔어 떡이나 치고 말이야! 아, 계범도!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지현아! 오빠가 어제 기절 해버렸네! 정말 미안하다!

생각이 드니 손은 빛보다 빨라야 했다. 연애는 곧 타이밍!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다지만 시작하는 연인에게 나쁜 일이 있어선 곤란했다. 물론 지현이와의 관계가 아직 정식 연인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놓치고 싶진 않았다. 주미 원장이 생기긴 했지만 그건 정말 마음이 마음에 닿아서 이뤄진 관계가 아니니까.

“아유, 정말.”

순간적으로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사람을 만나면서 느끼는 무게감이 남다르단 게 이런 거다.

“아, 답장. 답장.”

혹시 자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한창 휴학하고 알바를 뛸 때, 취업 준비 할 때 보통 기상 시간이 9-10시 사이였으니 아직 잠에서 깨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좀 초조하네. 연락하겠다고 해놓고 완전히 무시하고 주미 원장과 놀아나서 그런지 몰라도 좀 맘이 불편하다.

이래서 흉이구나. 내 맘이 편치 않으니 이래서 흉이야! 크, 정말 구슬이가 천기를 읽어내는 구슬이라더니 신묘하기 짝이 없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내가 초조한 얼굴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부르르 하고 진동이 울렸다.

-오빠, 어제 기절 했었어요? 친구랑 같이 술 마신 거예요?

왔다!

-아, 어제 일이 좀 그렇게 됐어. 기가 허해졌나봐. 어제 코피 쏟고 기절하는 바람에…….

-코피요?! 괜찮아요?!

물론 과정은 생략했지만 코피 쏟고 기절한 건 사실이지 않은가? 후후, 그 말에 지현이가 깜짝 놀란 듯 칼 같이 답장을 보냈다. 제대로 된 걱정을 받고 있단 사실에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괜찮아. 아침에 좋은 약 먹고 기운 차렸어. 그런데 어제 기절하는 바람에 연락을 못해서! 미안하다, 지현아.

-아, 아니예요! 어제 연락이 없어서 혹시 기절한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긴 했었어요! 아무튼 정말 몸은 괜찮아요? 아침은요?

하해와 같이 넓은 이 마음이란! 아, 나를 걱정해주는 지현이를 보니 또 내 마음이 스르륵 녹아 내렸다.

-아침은 못 먹었어! 이따 점심 먹어야지!

-아침 거르면 안 좋대요! 두유 같은 거라고 꼭 챙겨 먹어요, 오빠! 몸 안 좋으니까 더 챙겨 먹어야 돼요!

-응! 걱정해줘서 고맙다, 지현아!

-뭘요~! 얻어먹은 게 많아서 그래요!

정말 이러면 사주지! 여자들이 있다면 명심해야 된다. 이러면 알아서 지갑이 열린다고!

아무튼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은 가운데 내가 사람도, 사람도 아닌 것들도 모두 만나고 있지만 정말로 운이 좋다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사람을 만났기 때문 아니겠냐?

흐뭇한 가운데 나도 모르게 ‘땡’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세상과 단절하고 지현이와의 대화에 몰입하고 있던 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층을 확인했다.

“잠시만요!”

오 마이 갓! 우리 사무실은 14층에 있는데, 가는 동안 너무 카톡에 집중하다보니 깜빡 우리 층을 지나칠 뻔 했다. 정시 전에는 도착하는 것이 좋은지라 사람들 틈을 파헤치고 간신히 내려 사무실로 들어가니……!

“계대리님! 오셨어요?”

어제도 진탕 달렸던 모양인지 유난히 초췌해 보이는 우리 팀원들이 나를 반긴다.

“어, 그래. 다들 좋은 아침……은 못 되는 것 같네. 딱 보니 어제 무진장 퍼다 마셨구만!”

그 말에 다들 대답대신 쓴 웃음을 지을 따름이었다. 특히나 주요 타깃으로 설정된 듯 한 신입 사원 세 사람이 퀭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것을 보니…….

“절대로 부장님이랑 윤이사님 사이에는 앉지 마세요. 거기다 이대리까지 껴 있으면 거긴 공포의 트라이앵글 존이니까. 그 자리 앉았다 하면 다음 날 지독한 숙취랑 싸워야 된다 생각하면 돼요. 나 좀 달리고 싶다, 술에 자신 있다 하면 가는 자리고. 딱 보니까 성현씨는 좀 여유 있는 것 같고, 형석씨랑 형은씨는 괜찮아요?”

“예, 대리님……. 괜찮습니다.”

“두 분이 정말 엄청 드시더라구요…….”

술이 좀 안 받는 체질인지 창백한 얼굴의 형석이와 형은이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두 사람 표정이 좀 안 좋은 것이 월요일부터 회식을 해야만 했나 싶은 표정이다. 아직 신삥들이라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어 입을 꾹 다물고 있긴 하다만…….

보인다, 보여. 저게 좀 쌓이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 회사 때려치겠지!

“아무래도 김부장님이 오랜만에 또 필 받은 것 같아서 절대로 그 옆은 가지마요. 알겠죠? 이따 꿀물 좀 타다 마셔요. 속 풀리게!”

이 귀여운 신입사원들이 이탈하면 안 될 텐데! 아, 정말 신삥들 관리 좀 잘 하라니까!

“영수 씨, 은경 씨. 나 좀 봅시다.”

우리 회사가 참 안 되는 게 있다면 이런 부분일 것이다. 역사가 짧고, 자체 내에서도 능력껏 벌어가는 것이 분위기인지라 신참 관리가 잘 안 된다. 나름 한다고는 하는데 어디 그것만 가지고 되겠냐?

“예, 대리님! 왜 그러시는지……?”

“회식 때 챙겨 주라니까! 특히 지금 힘들 땐데 월요일마다 회식 해봐. 영수씨랑 은경씨도 힘들었잖아. 많이 힘들어 하는 거 몰라서 그래?”

나 다음으로 사무실에서 제일 고참인 두 사람이 쪼르르 달려와 물음을 던지자 나는 조금 정색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두 사람에게 사적인 감정은 없다. 얘들이라고 월요일마다 회식 하고 싶겠냐? 술 개떡 같이 좋아하는 김부장이나 윤이사가 문제인거지. 하지만 이런 부분을 잡아줘야만 한다. 어떻게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있겠냐? 가끔은 싫은 소리도 해야 되는 게 사회생활이거늘. 불합리 해보여도 윗 선이 그렇게 움직이면 아래는 따라서 움직여야만 하는 게 조직의 이치다. 그게 싫거든 조직을 벗어나는 수밖에. 그런데 그게 또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지. 그게 사회생활의 어려움이자 진리 아니겠냐? 좆 같아도 참아야 한다는 거 말이다.

“아, 예……. 죄송합니다, 대리님.”

“우리 인간적으로 신입사원 근속년수 1년은 넘겨봅시다.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잖아? 매번 사람 새로 뽑는 것도 일이라고. 그거 다 누가 처리해? 중간 관리자 입장인 영수씨랑 은경씨 일만 늘어나는 거야. 나나 부장님은 그냥 보고 받고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무슨 말인지 알지?”

“옙…….”

신입사원들은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지만 그 분위기 모를 회사원들이 어디 있겠냐?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다 같이 한번 파이팅 해봅시다! 알겠죠? 심기일전해서! 그리고 오늘은 점심 내가 쏠 테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지금부터 생각 해놓으라고!”

그리고 파이팅 있게 모두에게 소리치자 모두 의외라는 듯 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쏘면 안 돼? 알았어. 그렇게 할게.”

“아, 아닙니다! 대리님이 사주신다면이야!”

눈치 빠른 영수가 혼남 분위기는 끝이 났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며 소리치자 은경이와 혜리, 은지가 덩달아 분위기를 보고 “와아~!” 하고 환호를 질렀다.

“그런데 대리님 무슨 돈으로 쏘시는 거래요?”

“내가 누구? 럭키 가이 계대리거든. 토토 긁어서 시원하게 적중금 받았으니 그걸로 오늘은 계대리가 쏜다! 빵야, 빵야!”

어제 내가 빠지는 바람에 삐진 김부장이 더 열심히 술을 퍼다 마셨을 거다. 그러다 보니 분위기도 풀어줄 겸 장난스럽게 총질을 해대자 침체된 분위기의 신입 사원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생겨났다.

물론 저게 진실은 아닐 거다. 나도 경험해봐서 알지. 속으론 저 색히 좀 웃긴 놈이네 라고 생각하고 있을 걸? 어쩜 웃기 싫은데 억지로 웃어주고 있는지도 모를 테고. 그러지만 어떻게 하겠냐? 축 늘어져 있기만 해선 버티기가 힘든 사회생활이다. 조금이나마 맘의 무게감을 덜어주는 게 사회생활 선배로써의 일이기도 하지.

“얼마나 당첨 되신 거예요? 비싼 거 해도 돼요?”

애시 당초 신입사원이란 언제 마음이 떠날지 모르는 존재. 얘들이 아니라 영수, 은경, 설희, 혜리, 은지 같은 중간 직원들이 풀리면 절로 분위기가 살아서 덩달아 쟤네들 기분도 풀리는 법이니까.

“에이, 술 그렇게 퍼다 마셨으면 인간적으로 해장국 합시다! 월급날 아직 아니잖어!”

여력이야 충분하다만 직장인 가라사대! 돈이 생겼다 한들 티를 내지 말지어다! 티 내봐야 직장 안에서 득 볼 거 하나도 없으니!

그 말에 다들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해장국이래두 점심값 굳는 게 어디냐? 게다가 입이 몇인데? 나, 영수, 은경이, 설희, 혜리, 은지와 신입사원 삼인방에다 김부장도 포함해야 할 테니 총 10명. 거의 점심값만 10만원 쓰는 셈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좀 쪼잔 하겠지? 얘긴 안 해줘도 3800만원이나 벌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커피도 쏜다. 믹스 말고 요 밑에 카페에서 주문한 원두로! 그 정도면 다들 기분 좋게 콜?”

“와~!”

그 말에 모두가 환호했다. 그 중 특히나 형은이가 좋아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우리 회사로 바로 취업을 한 친구라 사실 제일 먼저 그만두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는 대단히 예쁜 친구다. 사실 내가 승미 년 때문에 경황도 없었고, 또한 형은이가 낯가림도 심한 터라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이야, 형은 씨가 이렇게 좋아하는 거 처음 봤네. 앞으로 종종 우리 막내 형은씨 위해서 내가 힘 좀 써야겠네요. 형은씨, 카페모카?”

이상하게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카페모카’라는 단어를 내뱉자 형은이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 내가 좀 매력이 있나? 승미 년 이후로 완전히 자신감이 꺾였다만 최근 요 며칠 사이에 지현이도 그렇고, 약빨이긴 하지만 주미 원장도 있었고. 아, 자신감 붙는데!

“네, 대리님……!”

“아 형은씨가 너무 좋아하는데? 카페모카? 카페모카?”

“아, 아니에요! 대리님!”

꺄르르 웃으며 고개를 흔드는 형은이. 아직 20살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참 뭘 해도 풋풋하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좋은가? 카페모카? 아니면 혹시 형은이가 나한테……?

어쩜 나는 남자로써의 색기가 철철 흘러넘치는지도 모른다. 특히 20대 초반 여자들에게 잘 먹히는 것인지도 몰라. 뭐라고 해야 할까……? 중후함……? 남자 패왕색? 그래, 사무실의 현아급. 그 정도?

앞으로 날 계색기라고 불러야……. 씨발, 욕 같네. 안 되겠다. 지나치게 과도한 자신감에 경종을 울리는 별명인 것 같다. 그래, 정신 차려야지.

“아무튼 다들 기운 냅시다! 파이팅 하시고!”

“네, 대리님!”

그나마 분위기를 한 번 끌어당기니 다들 아까보단 표정이 풀어진 상태였다. 덩달아 나도 아침에 와서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내가 회사를 때려 치지 않는 이상 이 부서, 이 사람들은 언젠가 내 팀이 될 테니까.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주미 원장이 구렁이를 잘 처리해서 구슬이를 안 넘겨줘도 되고, 또한 주미 원장을 곁에 둬 구미호에게 구슬이를 넘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보장된 미래로 가는 건데, 그럼.”

내가 내 운대를 알 수 있다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주식을 하더라도 운대가 대길이 나오는 날이 혹시 또 있다면 그날 몰빵 해버리면 될 텐 데 말이다. 운대가 흉인 날에는 아무 것도 말고 몸을 사리고 있으면 될 것이고.

순간 구슬이를 구미호에게도 넘겨주지 않으면……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아니, 안 된다! 욕심은 부리지 말자! 과도한 욕심은 언제나 패망의 지름길이다. 토토를 할 때도 무리해서 폴더(선택) 수를 늘이면 나가리 되기 십상이다. 그런 것처럼 이게 내 물건도 아닌데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사회생활이란 게 그렇다. 언젠가는 내 욕심만큼 내게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언제라도 구미호를 다시 만나거든, 구슬이를 달라 거든 그때 넘겨주도록 하자.

순간적으로 다시 그 날 밤이 떠올랐다. 달을 등지고 있는 호박색 눈을 가진 소복 여자. 어쩐지 슬퍼 보이는 눈매의 그녀가 말이다.

“다들 일찍 나왔네! 아유, 생생해 보이는데?! 젊어서 그런가?”

그 사이 김부장이 출근을 했다. 질리게 퍼다 마신 게 뻔 할 테지만 말짱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걸 보니 저건 필시 술 요괴가 틀림없다. 아우, 징그러.

“오! 우리 배신자, 계범도! 어제 아가씨랑 데이트는 잘 했나!”

“덕분에 잘 되어 가고 있습니다, 부장님!”

잠깐 구미호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김부장의 인사에 다시 지현이를 떠올렸다. 아니, 내가 지현이를 두고 누굴 생각하고 있는거람! 주미 원장도 있는데 그러면 지현이에게 너무 매너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 고개를 흔들어 구미호 생각을 지우기 시작했다. 뭐, 아직 그렇다고 할 건 아니지만 구미호는 이상하게도 내 뇌리에 너무 강하게 남아 있어서 그런가?

단순히 몸으로 즐기는 관계와 마음까지 주는 관계는 엄연히 다르다. 그래, 그런 거다. 어쩜 구슬이 덕분에 자꾸 생각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인마! 그 아가씨 생각 하냐? 갑자기 왜 정줄을 놨어?”

“아, 아뇨. 부장님 얼굴 보니까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네요.”

“뭐? 지금 너 날 갈구는 거냐?”

“너무너무 존경하다 보니 순간 넋을 잃었습니다, 부장님. 사랑합니다. 부장님은 제가 항상 따라가는 뒷모습이십니다.”

까고 싶은 뒤통수의 주인공이란 말이지. 하지만 표면적으론 입 발린 소리라고 하지만 김부장이 얼 척이 없던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튼 계대리, 저거 아주 인간이 얍삽해서!”

“원래 우리 바닥에선 이래야지 일 잘 한다는 소리 듣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김부장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아, 정말 술자리는 계범도가 있어야 된다니까.”

“에이, 어제 많이 드셨다면서요?”

“너 때문에 속상해서 그러지!”

“지금 저랑 밀당 하시는 겁니까? 저 그렇게 쉬운 남자 아닙니다. 부장님.”

이내 김부장이 그만하라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징그러, 인마! 개불 같이 생긴 게!”

“……인간적으로 개불 같이 생겼단 말은 너무 한 거 아닙니까? 부장님!”

와, 개불은 진짜 너무 한데! 다른 말로 아주 좆 같이 생겼단……. 그거보다 더 이상한 거 같은데……?

어쨌거나 다들 우리 대화가 재미있었던 모양인지 한결 풀린 분위기로 미소 짓고 있었다. 그래, 사회생활 각박한데 조금은 이런 여유가 있어야지. 이내 김부장이 웃기지 말라는 듯 내게 손짓을 해보였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책상 옆에 두곤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자, 아무튼 그러면 오늘 다들 일 열심히 잘 해서 결과 냅시다! 결과! 다들 일 시작합시다!”

뭐, 아침의 여유야 이 정도면 됐지. 안 그런가? 일은 해야 먹고 살지. 다들…….

“다들 본사에 본때를 보여줍시다! 오늘 내가 4억짜리 먹습니다! 다들 파이팅!”

“화이팅! 계대리님!”

“결과 내자, 아자!”

이제 본격적으로 업무 시작이렸다. 그 생각과 함께 나는 꺼져 있던 모니터를 켜고 손에 익은 익숙한 일들을 시작했다. 어제 신입들이 걸러낸 공고들 중 미스는 없는지 확인을 먼저 해야 한다. 회사 자체 내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안의 내용들을 확인하다 문득 또 다시 구미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왜 자꾸 생각이 나는 걸까? 이상하단 기분이 들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생각 안 하려 하는데도 자꾸만 뇌리에 박힌 듯 그 모습이 떠오르는 것.

“잘 맡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 가져가라.”

그래, 맡은 물건은 돌려줘야지. 그 다음은 어떻게 되던지 그때까진 구슬이를 내가 잘 지켜줘야지. 그 생각과 함께 나는 목에 걸려 있던 구슬이를 다시 꺼내 보았다.

“길.”

다행히도 연락을 취하고 나서 운대가 흉에서 길로 바뀌었다. 역시 이건 내 마음의 상태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사회생활에 찌들다 보니 지금처럼 긍정적이고 좋은 마음을 먹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매일 매일이 힘들고 잘 풀리지 않는다 느껴질 수밖에.

어쩜 운이 없는 건 그런 것에 길들여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것 모두가 구슬이가 있기 때문이겠지? 아마 구슬이가 없었다면 그것들 모두를 불행이라고만 여겼을 테니 말이다.

“그때까진 네 덕 좀 보자!”

============================ 작품 후기 ============================

계범도 계색기.

운이 좋은 계긍정.

+

현자의 시간 5(1부 완) 사인본

1 의미있는 나날

2 묘지기

3 琴鶴

4 천공의 성

5 에르시리나

6 기린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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