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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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안 바래다 줘도 되겠어?”
“괜찮아요! 바로 요 앞이에요, 우리 집! 오빠도 들어가서 쉬어야 하잖아요?”
참,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 듯 한 느낌도 오랜만이다! 퇴근 하자마자 만나서 밥 먹고, 카페에서 같이 커피 마시고. 달리 한 게 없었다만 벌써 9시 반이 다 되어버렸다. 많은 것을 하지 않아도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간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지현이화 함께 하는 것에 많은 몰입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긴 하지. 그래도 여자 혼자 밤길 보내는 건 좋지 않아서 그래.”
“정말요? 그래도 우리 동네니까 괜찮을 거예요! 저 여기 산 지 벌써 20년도 넘었으니까!”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걱정이었다만 지현이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오래 살아온 동네라는 말 덕분일까? 느긋한 모습을 보니 내가 도리어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과연 동네 주민이다 이거지?”
“네! 그것도 관악산 토박이!”
브이를 그리며 웃음 짓는 그 모습에 또 다시 빙구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 어쩜 이렇게 밝고 건강해 보이는지!
“혹시라도 이상한 사람 나타나면 바로 전화해! 내가 달려갈게. 내가 과천 배트맨이 되어서 달려갈게.”
“푸훕! 정말요?”
“음. 그 이상한 사람이 위험할지 모르잖아. 너무 심하게 때리고 있진 말구.”
“아, 그런 거예요? 오빠 올 때 까지 때리지 말고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꽃 다운 나이에 구속 당하게 둘 순 없으니까. 알겠지? 함부로 때리면 안 돼.”
장난기 섞인 내 목소리에 지현이는 또 뭐가 그리 좋은지 티없이 해맑은 웃음을 지을 따름이었다. 이런 가벼운 말장난에도 미소 지어 주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 사람들이 개그맨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남 웃게 만드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웃어주는 사람을 보다보니 마음에 묘한 뿌듯함과 안정감이 느껴지잖아? 아, 난 연애 하기 직전이나 연애 초반부에 이 느낌이 정말 좋거든. 연애 이후엔 나만 봐도 웃게 만들 자신이 있다만…….
어휴, 승미 년 때문에 어디 가서 연애 박사 계범도라고 자랑을 못 하겠네.
“아무튼 그럼 가볼게요! 오빠도 조심해서 들어가요!”
“그래, 지현아. 무슨 일 생기면 전화! 잊지 마.”
걱정하지 말란 지현이지만 그래도 걱정 받는 게 무척이나 좋은 모양이다.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발그레한 얼굴이 자못 여성스럽게 느껴져 내 맘도 덩달아 설렜다.
“네, 오빠! 무슨 일 없어도 해도 돼죠?”
이제 가면 되겠지만 지현이가 못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던지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물음을 던졌다.
연애 직전, 일명 썸싱 단계. 설렘을 공유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만의 공감대가 있는 시점! 그 기분 좋음을 아낌없이 만끽할 수 있도록 솔직하게 맘을 내비추는 그녀를 보며 나를 고개를 끄덕였다.
“요 앞에서 친구 만나서 연락이 조금 늦을 수도 있는데, 늦더라도 반드시 연락할게!”
“친구요? 바로 집으로 안 들어가요?”
“아, 요 앞에서 잠깐 아는 사람 만나기로 했어.”
“그랬구나! 그럼 오빠 빨리 가 봐요! 나 때문에 늦겠다!”
아유, 요 귀요미 정말! 내가 약속이 있단 걸 알자 이제는 지현이가 빨리 가보라고 발을 동동 구른다. 허허, 정말 흐뭇하지 않냐? 만난 건 몇 번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날 좋아해주니 내가 정말 엄청난 매력남이라도 된 기분이다. 남자는 자긍심에 사는 동물인데 이런 걸 이렇게 올려 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내 부족한 몰골에도 불구하고 이리 좋아해주니 지현이 취향이 좀 독특한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대치에 부응 할 수 있도록 정말 몸을 좀 관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이 복주미 원장인지라, 그리고 오늘 나는 그녀와 만리장성을 쌓을 계획인지라 다소 미안한 맘도 있지만.
“그래, 알겠어 지현이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 봐. 먼저 갈게.”
어떻게 하겠냐? 좆 달고 태어난 게 죄지! 도의상 그러면 안 되는 건 알지만 막말로 안 끌리며 그게 고자 아니겠냐. 어쨌거나 남녀 사이의 의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기대가 완성되고, 확신을 가지기 시작하는 시점부터다. 그 전까지는 프리 바디로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
막말로 이렇게 지금은 좋다가도 나중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일이잖냐? 그러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지. 뭐, 지금 내 경우는 아주 특수한 경우이기도 하지만!
“네, 오빠! 그러면 이따가 오빠 집에 들어가면 연락해요! 그 때 연락 할 게요!”
“그래, 알았어! 연락 할 게! 금요일 잊지 말구!”
“네~ 오빠!”
아무튼 그것을 마지막으로 지현이와는 작별 인사를 했다. 손을 흔들고 뒤돌아서자 계속 날 쳐다보는지 지현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힐끔 고개를 돌리자 날 바라보고 있던 지현이가 귀엽게 웃으며 다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여 가. 일찍 들어가서 쉬어야지!”
“알겠어요, 오빠! 그럼 정말 가요!”
그리고 후후 웃으며 손을 흔든 그녀가 관악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과천 중학교 근처에 있는 주택가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음, 그럼 정말로 멀진 않네. 과천초, 과천중, 과천고 이렇게 세 군데 학교를 나왔을까?
“좀만 과천에 일찍 왔었다면 교복 입은 것도 볼 뻔 했네.”
구속 될 까봐 무섭지만 내 뇌내 망상 까지 검거 할 순 없으렸다! 어쨌거나 그거야 나중에 우리가 연인이 된다면 충분히 즐겨볼 수 있는 플레이가…….
“마귀가 씌였구나, 계범도 이놈”
실제로 요괴를 만났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이상 할 것은 없었다. 어쨌거나 이제는 정말 어른들의 시간을 가질 때가 온 것 아니겠는가? 복주미 원장 말이다! 나의 떡볶이 아줌마!
일단 그 날 살펴본 것으로 봐서 주미 원장도 좔좔 색기가 흐르는 것이 꽤나 밝힐 것 같은 분위기이지 않은가? 물론 그런 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날 더러 자꾸 주말에 와라, 개별 지도를 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냐?
아니, 오버한다 싶기도 하겠지만 막말로 남자라면 다 그렇게 생각할 걸? 게다가 주미 원장이 보이긴 그렇게 한 보여도 40대 중반이니까. 뒤늦게 성욕이 활활 불타오를 시기이기도 하지! 뭐, 나이 면에서도 그렇게 걸릴 게 없고 또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니 연인이나 결혼 대상보다는 아주 좋은 파트너 쉽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엄연히 연인과는 다른 거지, 암.
까놓고 말해서 섹스 파트너를 마다 할 남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다. 물론 5년 뒤에 주미 원장이 50대라는 게 좀 걸리긴 한다만…….
“그 전까지는 내 기꺼이 육보시를 해드려야지.”
그래,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리고 지현이와 혹시라도 좋아진다면 그 전에 예행 연습은 필요한 법이지! 내 봉술 실력이 오랜 공백기를 거쳐 많이 약해졌을 수도 있니까 말이야. 후후훗!
한결 가벼워진 맘으로 나는 품 안의 공 병을 다시 어루만져 보았다. 구렁이에게 받은 것은 여전히 내 품에 자리 하고 있다. 사실 구슬이를 넘겨준다면 이제 주미 원장 뿐 아니라 평생 거느릴 여자들이 수십여명이 될 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미약이라.”
솔직히 구슬이를 안 넘겨주고 싶긴 하다. 그런데 뭐 어떻게 하겠냐? 안 넘겨주면 내가 그 괴물 같은 구렁이한테 이길 도리가 있겠냐? 구미호도 아마 안 될 거다. 차라리 구미호가 나한테 왜 넘겨줬냐고 따지러 왔을 때 구렁이한테 받은 미약으로 막는 게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널 주는 게 좋을까? 아니면 가지고 버틸까?”
구슬이에게 길흉을 물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건 결과가 불을 보듯이 뻔했다. 준다, 안 준다를 떠나서 이게 좋게 풀릴 여지가 전혀 없잖냐? 결국은 빼앗기고 말 것이다.
그 날 밤에 구미호도 구렁이한테는 일방적으로 밀렸잖아? 난 보통 사람인데? 게다가 페이튼 같은 고급 차종에다 사람까지 부린다면 구렁이 말대로 정말 자기 손 하나 안 대고 날 해꼬지 할 수도 있는 노릇일 것이다.
“여보세요? 원장님?”
객기 부리는 22살도 아니고 난 이제 33살이다. 먹는 것도 내 몸에 좋은 것들만 골라 먹는 나이인데 몸 좀 사려야지.
구미호한테는 미안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냐? 도사님한테 부적이라고 받은 염주가 있다만 이건 그냥 내 몸 하나 지켜주는 거 아니겠어? 다른 방법이 있으면 뭐라도 할 텐 데 이 독도 안 통한다 하고. 솔직히 나로써도 방법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도사님한테 넘겨줄 걸 그랬나? 아, 젠장. 여기서도 힘이 없어 서러워야 하다니.
-어디에요? 범도 씨! 핸드폰 일찍 고쳤네요!
“업무에도 써야 되니까요! 아무튼 저 친구 만나고 헤어져서 중앙청사 근처에 있거든요. 어디서 보실까요?”
-범도 씨, 좋은데서 봐요. 퇴근하고 왔을 텐 데 많이 피곤하지 않겠어요?
후후 웃으며 화사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주미 원장! 주미 원장이 정말 묘한 게 목소리 자체가 끈적하다고 해야 할 까? 뭔가 야릇하게 들린다. 왜 초콜렛을 막 녹이면 걸쭉한 액체처럼 변하잖아? 마치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달달하면서도 끈적한 느낌이라 사람의 상상력을 거침없이 자극해준다니까.
“그럼 우리 집에서 볼래요?”
자극 받은 만큼 돌직구를 날려 보았다. 장난기를 담아서 싫다 그러면 ‘물론 장난입니다!’ 하고 빠져 나갈 요량으로 말이지! 이게 될까 싶기도 한데 만약 주미 원장이 그렇다고 한다면 분명히 그녀 또한 나와 같은 욕심이 없진 않을 것이다.
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그래요, 그렇게 해요! 나도 오랜만에 높은 굽 신어서 발 아팠는데 그쪽이 편안하긴 더 편안할 것 같네요!
색기가 흐르는 음성으로 주미 원장이 대답했다. 오 마이 갓! 역시 주미 원장이 나와 그런 게 좀 있었나 봐! 아, 이런 드라마틱한 전개가 또 있구나!
미약을 쓴다는 자체가 좀 떨떠름한 감도 있었지만 상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니 그런 느낌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은 파트너 쉽에 미약 하나 더해질 뿐 아니겠냐?
“그러면 정말 저희 집에서 보실래요?”
-그러도록 해요! 갈 때 선물 사들고 가야 하나요?
어쩐지 끈적한 주미 원장 목소리에도 뭔가 희열이 느껴졌다. 이것 봐라, 아주 벼르고 있었던 거 아닌가?
“아닙니다! 몸만 오시면 됩니다!”
요가로 단련된 몸을 오늘 드디어 영접하겠구나. 그 생각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빡 됐다. 주미 원장 몸매와 분위기로 보아서 오히려 내가 수비 측일 것 같은데…….
-그러면 제가 그 쪽으로 갈게요! 언제 연락 오나 계속 그것만 봤더니 머리로 외워버렸네요! 아직 집 아니죠? 먼저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 말이 꼭 ‘각오해, 널 잡아 먹을 테야!’ 라는 것처럼 들려왔다. 아 나, 이거 은근히 긴장 되네.
“예, 알겠습니다! 잘 모르시겠거든 연락 주세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알겠어요. 이따 봐요.
끈적한 주미 원장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통화가 끊어졌다.
“후. 이거 참 죽여주는데?”
왠지 모르게 스릴이 넘친다. 이 아줌마 같지 않은 아줌마가 얼마나 현란한 플레이를 선보일지, 요가로 단련된 압도적인 바디를 내세워 공격해오면 버틸 수 있을까 싶은 생각까지!
“아, 5분은 버텨야 되는데…….”
요 근래 살이 찌고 피로가 증가해 나의 ‘진짜 사나이’가 예전같지 않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들었다.
“따먹히는 한이 있어도 남잔 만족을 줘야지.”
어떻게 보면 남자란 참 불합리적인 생물이다. 섹스는 파트너쉽이고, 둘이 같이 하는 건데 전적으로 상대를 만족시켜줘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으니까! 아, 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우리들 모두가 당당한 남성이고 싶지 고개 숙인 남자는 절대로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일찍 들어가서 펌핑 좀 시켜 놔야겠다.”
이제 근육의 흔적도 남지 않은 몸이라지만 그거라도 좀 해놔야…….
어느 샌가 구슬이를 넘겨준다는 것이나, 미약에 대한 고민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말에도 상당히 기대를 했었건만 지현이와는 아쉽게 불발해버리고 말았잖아. 나 정말 오랜만에 한단 말이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자고.”
차분하게 스스로를 가라앉히며 집으로 향한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발장에 둔 페브리즈를 온 집안 구석구석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뱀 허물 마냥 벗어놓은 옷들을 모두 세탁기 안에 짱 박아두고 대충 눈에 보이는 자리만 치워 놓고 말았다.
“이 정도면 준비는 다 됐으려나.”
그리고 재킷을 벗고 셔츠 차림으로 집을 둘러보았다. 휑허니 익숙한 집이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야릇하게 보인다.
“쇼파에서는 너무 좁지……? 침대…….”
기왕에 하는 것 알차게 하고자 내 방 침대까지 정리를 했다. 뭐 그래봐야 시트와 이불을 좀 가다듬는 것 정도지만. 그래도 경건한 맘으로 맞이 해야지! 정말 반 년 만에 하는 건데 말이다.
“아, 문제는 이걸 뿌리거나 먹인다……?”
정말 큰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무드야 빈 집안에 남녀가 있으면 자연히 형성 되는 거라지만 이걸 면전에다 대고 뿌릴 순 없잖아?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저도 모르게 커피포트로 눈을 돌리고 말았다.
“그래, 커피라도 대접한답시고…….”
어차피 구렁이가 아무런 맛도, 색도, 냄새도 나지 않는다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커피에 타 내어 놓으면 알 수 있을 리 만무할 것이다. 오, 그래! 이게 짱인걸! 그걸 미리 셋팅 해놓고 자연스럽게 내어 주기만 하면 될 일이잖아?
그 생각에 나는 모양이 다른 머그컵을 미리 꺼내 놓았다. 그리고 새하얀 머그컵에다 받은 미약 샘플을 살며시 뿌려 놓았다.
“후우. 혹시라도 속임수는 아니겠지.”
혹시라도 정말 구렁이가 뻥을 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뭐 이런 중요한 물건을 얻기 직전인데 뻥으로 딜을 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난처한 상황에 날 몰아 넣는다면 정말 어딘가에다 구슬이를 숨겨 놓아버려야지.
그래, 그런 식으로 감히 날 어떻게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후우, 후우.”
원래대로 그냥 서로 좋은 감정에, 혹 서로의 욕구 때문에 만나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런 미약을 이용한다니 보통 때보다 더 긴장이 되는데? 아, 이거 정말…….
저도 모르게 바짝 타는 목에 생수로 목을 축이고 있는 동안 ‘띵동!’ 하는 벨소리가 들렸다.
“와, 왔다!”
“범도씨! 안에 있어요?”
“잠시만요!”
드디어 주미 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나는 현관으로 걸음을 옮겨 재빨리 문을 열었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문을 여는 손이 덜덜 떨려 얼굴이 어색하게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끼익.
그리고 열린 문 너머에는 착 달라붙는 회색 V넥 티셔츠와 스키니 진을 입은 주미 원장이 보였다.
“와, 이렇게 보니까 정말 더 어려보이시네요!”
정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주름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고, 거기다 그리 깊은 V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매는 옷을 야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일상적인 복장으로도 야하단 분위기가 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인지…….
“어머, 정말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인데! 어려보인다는 거!”
그 말에 주미 원장이 미소 지었다. 화려한 용모와 달리 제법 수수해 보이는 미소에 내 맘도 점차 바운스!
“안으로 들어오세요!”
긴장감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이끌자 주미 원장이 ‘그럼 실례 할 게요!’ 하고 집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철컥. 띠리릭.
문이 닫히며 자동으로 도어락이 문을 잠그었고, 플랫슈즈를 신은 주미 원장이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남자 혼자 사는 집 치곤 말끔 하네요?”
“에이, 휑한 편이죠.”
후우, 후우! 자꾸만 긴장이 되네! 최대한 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만 어색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그런 내가 이상했던지 주미 원장이 힐끔 나를 바라보았다.
“범도씨, 괜찮아요?”
“아뇨, 안 괜찮은 것 같아요. 주미 원장님이랑 같이 있으니까 너무 긴장이 돼서.”
“어머! 호호호홋!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니죠?”
“예쁜 것도 죄래요. 그럼 정말 큰 죄를 저지르셨는데.”
“어머나~!”
물론 긴장의 이유는 전혀 다르지. 과연 이 미약을 먹고 주미 원장이 어떻게 되느냐 그게 관건 아니겠냐. 그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서 나의 현란한 말 빨이 불을 뿜었다. 다행히도 주미 원장이 그걸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이다. 그저 나를 바라보며 알 수 없이 야릇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럼 일단 앉아 계세요. 커피라도 한 잔 드릴게요!”
“네, 알겠어요.”
그리고 주미 원장이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쇼파에 앉아 보였다. 요가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지런한 자세를 하고 있자 더욱 더 가슴이 부각 되어 보였다.
와, 정말 저 가슴은……. 월드 클래스다. 정말 러시아, 중남미, 유럽과 비교를 해봐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오늘 여기까지 무슨 일로 나오신 거예요?”
“음, 향이 떨어져서 향도 살 겸 해서 나왔어요! 우리 요가원 있는 곳이 너무 또 외지니까 사람 구경도 할 겸 해서요.”
직접 들으니 저 목소리가 더 야하게 들린다. 아, 전립선 떨려!
“그래요? 사람 구경은 많이 하셨어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나는 머그잔에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주미 원장에게 건네다 줄 미약이 담긴 하얀 머그컵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말이다.
“후후, 그냥 그랬네요. 인도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친구가 없었거든요. 혼자 쓸쓸히 돌아다니다 범도 씨가 생각나서 연락 해본 거에요. 참, 초라하죠?”
“에이, 초라 할 리 있나요? 한국에 들어오신 지 얼마나 되신 거에요?”
“이제 1년 정도 됐는데 아직도 친구가 없네요. 원생들은 다들 나이가 너무 어리고, 또 비슷하다 싶으면 가정주부들이라서 만날 시간이 안 되고. 그래요, 참.”
쓸쓸함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나와 같은 공감대를 발견한 것만 같았다. 주미 원장이 많이 외로워 그런 게 아닐까?
“저도 과천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친구가 없는데 잘 됐네요.”
그 외로움을 이 한 몸 덜어다 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그녀를 위하는 맘을 담아서 나는 머그컵을 내밀었다.
-두근! 두근! 두근!
“정말요? 범도 씨도 친구가 없어요? 아, 고마워요.”
미약이 들어있는 잔! 그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 드는 주미 원장! 순간 조금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이걸 악용하진 않겠으니 걱정 하지 마시길!
“그럼요. 일 바쁘고, 그래서 동네 친군 사귈 시간도 없었죠.”
“그렇군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니 어쩐지 안심 되는데요?”
그 말과 함께 주미 원장이 드디어 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 원래 나이 들어 친구 사귀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뭐 다들 그런 거죠, 예.”
그리고 순간 두근, 두근 하고 내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빨간 입술이 하얀 컵이 닿았고, 이내 가벼운 목 넘김을 육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음, 맛있네요! 범도씨가 타줘서 그런 가요? 후훗!”
이내 커피를 한 번 더 입으로 가져가는 주미 원장! 확실하다! 확실하게 마신 거야!
과연……! 어떻게 될 런지……!
============================ 작품 후기 ============================
바르샤 승
뮌헨 승
그라나다 승
세비야 승
소시에다 승
셀타비고 승
마요르카 승
레반테 무
'사라고사 무'
'라요 승'
여기까지 다 맞추고 에틀레티코 승과 라요 무를 놓치다니... ㅠㅠㅠ
목전에서 패배했습니다... 아아, 언 럭키 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