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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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는 어디로 낸 건데?”
“음, 그냥 사무직이요. 두 군데 정도 냈는데 하나는 비서직이고, 다른 하나는 쇼핑몰 직원 채용이요.”
회사 취직하고 나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술 없는 소고기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꽃같이 빗깔 고운 고기를 불판에다 올리고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새빨간 육즙이 위로 살며시 스며 오르면 바로 뒤집어서 적당히 핏기 가시지 않은 때. 가볍게 챙 하고 소주 마시곤 적당히 구운 소고기로 입가심을 하면 으아아아~!
그러면 진정 천국이 따로 없겠지만 오늘은 알콜 제외하고 소고기의 풍미만을 느껴보도록 하자꾸나.
“진짜? 오, 그럼 남비서님 되는 거야?”
다른 날보다 오늘은 특별하니 말이다. 물론 남녀가 만나는 자리에 술이 빠져서는 안 되겠지만 오늘은 그렇게 마시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틀 연장 술 마셨던 것도 그렇고, 너무 일들이 많았던 것도 그렇고.
게다가 지금 지현과와 나는 굳이 술을 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이야기 나눌 수 있을 만큼 분위기는 살가웠거든. 이런 건 승미 년과 만나서 한창 좋았을 때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분위기다.
“네! 후훗, 그래도 뭐 그냥 계약직 같은 거예요. 음, 어디가 될 진 잘 모르겠어요. 그리구 말이 비서지 하면 막상 일 시작하면 잡다한 일만 다 시킬 거예요. 그냥 사무보조랑 다를 바 없어요!”
아무래도 저 좋을 때만 살랑살랑 꼬리치는 여우같은 승미 년이 아닌 순진한 지현이기 때문일까? 소고기를 먹는 내내 내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정말 월요병의 몹쓸 병마들이 모두 일거에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래? 정말? 비서들도 그런 일 해?”
기분 좋은 감정만큼이나 내 질문도 따사롭다. 아, 원래 작업 들어갈 땐 이런 질문들을 굳이 하지는 않는다. 왜 속 답답하게 현실 이야기들을 하겠냐? 달달 빨아주는 사탕발림 멘트들과 재미나는 만들이 전부다. 하지만 그런 관계를 만들고 싶진 않기에! 그렇기에 조금 더 진지하게, 깊이 있게 알고자 하는 것이지!
“네. 음, 그냥 사무실에서 잡 일 한다고 생각하면 될 거에요. 돈은 얼마 안 되겠지만 사실 이쪽이 다른 데보다 일은 편안한 편이거든요. 딱히 중책도 아니고……. 그래서 윗사람만 잘 만나면 좀 편안하게 할 수 있어요.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 같이 큰 데 가지 않는 이상은 대체로 그럴 거에요. 그런데는 학력도 많이 보고 해서 낼 엄두도 못내는 게 사실이지만! 히힛! 그냥 이상한 사람만 안 만나면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아무래도 지현이가 비서 쪽 일에 제법 경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상관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면 힘이 들 수 있다 난색을 표하는 지현이의 모습에 어렴풋이 그녀의 이전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어디 가서 빠지는 얼굴도 아니고, 특히나 몸매는 감히 대한민국 상위 10% 안에 드는 어리고 예쁜 여자애니 당연히 음란마귀 씌인 노인네들이 껄떡 거렸겠지. 아, 생각만 해도 짜증이 절로 나네. 한국 땅에는 나이값 못하는 영감네들이 너무 많다. 그러니 공무 중에 제 딸 뻘 되는 여자를 성추행하는 일까지 벌어지잖냐? 이건 정말 국가 망신이다. 파렴치의 거인 같으니. 종류를 붙이자면 추행종이라고 하면 될 거다.
“내가 성공해서 비서로 고용을 해야겠는데.”
“정말요? 그러면 이력서 미뤄두고 기다리고 있을까요?”
“크, 아직까지는 보장이 안 되어 있네!”
아쉽게도, 정말 아쉽게도 구슬이만 있다면 충분히 그리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왜냐? 말했다시피 내 일 자체가 운을 요하는 일이니까! 물론 아직까지는 구슬이가 정말로 낙찰들을 모두 다 이끌어 줬다 아직 보장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오늘 공고들 낙찰된다 하더라도 이건 정말인지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운 것일 것이다. 일단 삼미와 천공만 먹어줘도 내 월급의 50% 이상이 나오는 셈이다. 거기다 다른 업체들 기록까지 모두 합친다면 아마 오늘 하루만으로 이번 달 인센티브가 300만원 가까이 나올걸? 이건 또 다른 당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여력이 있으면 정말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텐 데 말이야.”
“정말요? 그럼 그때까지 저도 경력 쌓고 있어야 되겠네요! 대학 안 나왔으니까 그 경력이라도 많이 있어야죠.”
귀엽게 웃음 짓는 지현이의 모습에 또 빙구 웃음이 터져 나왔다. 히히히힝~! 아, 어쩜 이렇게 말하는 게 이쁘지? 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겁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내 말에 경청하는 그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학교는 왜 안 간 거야……?”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지현이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33살, 알만큼 알고, 먹을 만큼 먹은 나이이다 보니 더 이상 다른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지는 것도 많지 않은 나이다. 그런 내게 더 알고 싶고, 궁금한 사람이 생겼단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설레는 일 아니겠냐?
“그냥 사정이 그래서요. 딱히 그쪽으로 뜻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시간 낭비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지금은 조금 후회하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다 사는 방식이 다른 거잖아요?”
지현이가 가진 매력이라면 너무나도 밝고 긍정적이란 것이었다. 승미 년이 예쁘긴 했다만 매사에 불평, 불만 많고 징징 거리기 선수였다면 지현이는 정반대였다. 물론 아직 속단할 순 없지. 이제 겨우 두 번째 보는 것이니까. 하지만 징징거리는 법도 없었고, 밝은 모습을 쉽게 잃지 않는단 것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미소. 그래, 얼굴만 따지자면 승미가 더 예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것은 지현이 쪽이다. 그것도 아주 월등히 말이지!
“맞아. 굳이 꼭 대학 나올 필요는 없지. 그래도 대학 안 나오면 힘든 구석이 많아서 대학 졸업장은 들고 있는 게 좋지.”
“네! 그런데 지금은 그만한 여력이 없으니까요. 먹고 살기 바빠요! 그건 나중에 나도 자리 좀 잡히고, 또 넉넉해지면 그때 생각해 볼래요. 아직까지는 뭐 공부해보고 싶은 것도 없는데 굳이 그러는 건 좀 낭비 같단 생각도 들구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일까? 내색하지 않았지만 지현의 말을 미뤄 봐서 어렴풋이 넉넉한 집안에 살고 있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탓에 학교를 포기하고 사회생활로 일찍 뛰어 들었다거나 그런 배경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몸이 아파 일을 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당에서 일을 도와야 한다면 분명히 생활력도 있고, 착실한 스타일일 것 같았다.
물론 그 와중에 1년 모아 명품 가방을 샀다고 하지만 사실 저 나이 때면 누구든 그럴 거다. 한창 예뻐 보이고 싶을 나이인데 당연히 남들처럼 좋은 가방, 예쁜 옷들 마음껏 누리고 싶을 테지. 그걸 1년이나 기다려서 돈을 모아가지고 산 것도 참 용하다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
“그래도 대견하네! 부모님한테 전혀 손 안 벌리고 있는 것 같은데!”
“이제 나이가 있는데 어떻게 그러겠어요? 우리 집이 또 아메리칸 스타일이거든요! 20살 넘었으니까 손 벌리지 말고 알아서 먹고 살래요!”
꺄르르 웃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꺼내는 지현이! 너무나도 즐거워 보이는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허허, 정말 나이 차이 덕분에 그런지 몰라도 이거 너무 산뜻하다!
“정말? 보통은 그런 거 부모님이 다 챙겨주지 않아?”
“우리 집은 안 그래요! 중학교 다닐 때부터 부모님이 용돈 대신 전단지 배부 아르바이트 구해다주고 그러셨던 걸요.”
“진짜?! 헐 대박!”
“네! 그래서 고등학교 다닐 때도 거기 식당에 종종 와서 일 하고 그랬었어요. 그래서 지금 일 그만두고 잠깐 와서 일 거들고 그러는 거예요!”
이런 집안이 정말 있긴 있구나! 밝고 싹싹하고, 생활력까지 갖춘 지현이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 부모님을 닮았던 모양이다. 아메리칸 스타일이라는 말이 딱인데? 허, 참 이거! 전통적인 한국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방식으로 애를 키워서 그런지 이렇게 느낌이 색다른 거구나!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시구나! 어떻게 이렇게 예쁜 딸래미한테 일을 시킬 생각을 다 했지? 나 같으면 진짜 딸 바보 됐을 것 같은데!”
“엄마가 이 각박한 세상 살아가는데 나약해선 안 된다고, 자립심이 제일 중요하다고 가르쳤거든요.”
그 말에 나는 정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바로 이런 거지! 이래서 지현이가 승미 년이랑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거야! 나이는 승미 쪽이 더 많겠지만 철은 지현이 쪽이 더 들어 있다. 바로 이런 경험의 차이가 사람을 다르게 만든 거겠지?
“아무튼 정말 대단하신 부모님이네. 크, 나 같으면 걱정이 돼서 그런 거 못 시켰을 것 같은데.”
“사실 다 아시는 분들한테 맡긴 일이라서 그렇게 걱정 할 것들도 없었어요. 전단지 배부 하는 것도 가게 앞에서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것 정도 밖에 안 했었고, 식당 일도 주말에만 와서 도와줬으니까요. 그런데 그때는 오빠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지현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면 한 3-4년 전이겠지? 지금 지현이가 22살, 23살 정도라고 보면 말이다.
“그땐 나도 대전에 있었어. 우리 회사 본사가 대전에 있었는데, 나도 서울로 올라 온지도 한 2년밖에 안 됐어. 이 동네 들어온 게 딱 그 시점이었지.”
“아, 그랬구나! 오빠 원래 과천 사는 게 아니었네요?”
“그렇지.”
그리고 그 시점에 우연히 만났던 게 승미였고. 그렇게 근 2년 만나다가 이렇게 끝이 난 거고. 에라, 그 생각 나니까 웬지 모르게 착잡하다.
“어여 고기나 먹어.”
“네, 오빠!”
그리고 지현이가 불판 위에 올려다 진 새빨간 소고기를 짚었다.
“어?”
“맛있다!”
아직까지 핏기 가시지 않은 소고기는 지현이 같이 어리고 예쁜 여자애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단 인상이 있어서일까?
“그래, 소고기는 피가 뚝뚝 떨어져야 제 맛이지! 고기 먹을 줄 아는데?”
“네, 소고기는 너무 익으면 질겨서 맛이 없어요! 저 고기 집에서도 일 해봤거든요! 이렇게 붉은 물 올라왔을 때 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돼지고기는 구석구석 다 익혀 먹을 때!”
고기가 맛이 있는지 행복하단 얼굴로 이야기 하는 지현이! 이 고운 얼굴을 하고서 안 해본 일이 없어 보였다. 어쩜 얘가 나보다 아르바이트 같은 건 많이 해봤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자 그저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 안 해본 일이 뭐야?”
“음, 밤에 하는 일은 거의 안 해봤어요. 몸은 고생해도 정신이 상하는 일은 하지 말라고 하셔서! 바텐더 같은 건 칵테일 만들기 배우고 싶어서 한 번쯤 해보고 싶었는데, 실제로 가면 그런 거 아니래요. 그래서 그런 건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가면 칵테일보다 진상들을 더 많이 다뤄야 하니까 안 하길 잘 했어. 정말!”
“오빠도 그런 데 많이 가본 거 아니에요?”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며 살며시 나를 바라보는 이 눈빛! 좀 찔리긴 하지만…….
“그냥 업무 차원에서 몇 번 가본 것 뿐이지, 뭐. 그리 즐겨 가고 그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에이, 아닌 거 같은 데요~?”
내 맘에 후후 웃으며 의혹의 눈빛을 보내는 지현이. 그 귀여운 모습에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이, 아니야. 난 절대로 그러지 않아요.”
“오빠, 말도 되게 잘하고 그래서 그런 데 가면 예쁜 언니들한테 인기 많을 것 같은데~ 막 쿠폰 있고 그런 거 아니에요?”
“쿠폰제 바가 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지만 그런 식으로 찔러보는 거 아니야. 내가 어딜 봐서 말을 잘 해? 내 별명이 벙어리 삼룡이야. 나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글 뗐어.”
그 말에 지현이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참 복스럽게 잘 먹기도 하지! 깨작깨작 거리지 않고 잘 먹다가 웃음이 터져 손으로 입을 막은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피로감에 굶주린 배도 보고 있자니 절로 부른 기분이다.
“뭐, 사회생활 하다 보면 그런 데 갈 수도 있잖아요! 술자리 빠질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 정말 우리 부장이 또 알콜 중독자 수준으로 술을 좋아하는 양반이거든. 그러다 보니까 내 간이 짱아지 수준으로 알콜에 절어가고 있어.”
“그래서 오늘은 술 안 마시는 거에요?”
술이 조금 아쉬웠던지 지현이가 그리 물음을 던지자 순간적으로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지금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술 한 잔 하고 또 잘 풀어 가면 아주 좋게 발전할 수 있을 것도 같다만…….
“월요일부터 술 마시는 건 좀 그렇잖아. 그리고 술보단 지현이 너랑 얘길 더 많이 하고 싶어서. 뭐, 술 마시고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것보단 좀 더 진지했으면 좋겠단 거 알지?”
내가 지현이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 흔히 여자 만날 때 쫄리기 싫어서 좋아하는 티 안 내려고 하는데 그러지 마라. 좋아하는 게 밑지는 거 아니다. 괜히 쫄려서 티 안 내려 하는 순간 내가 밑지고 들어가는 거다. 그게 오히려 더 역효과를 낸다.
왜냐? 후달 릴 것도 없는데 괜히 나가리 될 까봐 쫄아 가지고 어줍잖게 밀당 하려 드니까 여자가 그걸 감지하고 손바닥 위에 남자를 올려두고 재고 따지려는 거다. 아주 여자 심리에 통달한 고수라면 모를까, 여자 맘 가닥은 하나도 알 지도 못하고 그럴 센스도 없으면서 어설프게 그러니 더 안 되는 거다. 차라리 진정 맘이 있으면 우직하게 밀고 들어가라. 밀당을 생각하지 못 할 정도로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란 말이다.
물로 그게 지나치면 여자가 부담감을 느낄 수 있지. 요 선이 말로는 설명하기 참 애매한데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확실히 나 너 좋아한다, 맘이 있다 어필을 해주란 말이다.
여자란 태생 자체가 불안한 존재고, 그러다 보니 확실함을 원한다. 그 정도 확신이 있다면 어장에 걸려 퍼덕이는 물고기 신세가 될 일도 없다. 왜냐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어장 물고기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계범도 가라사대, 연애의 왕도는 진실성에 있단 것! 그게 얼마나 상대에게 와 닿게 전달되느냐가 성공적 연애의 관건이라고! 물론 승미 년 한테 개 까인 주제에 이런 소리 해봐야 설득력은 없겠지만……!
“나도 그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응! 오빠 말이 맞아요!”
“술 필요하면 같이 마셔도 되긴 하는데!”
“아니에요! 오늘은 술 없이 계속 이렇게 이야기 해요. 그게 더 좋아요!”
하지만 승미 년과 달리 지현이 같은 사람도 있고, 이제 나도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아직도 인생은 현재 진행형이니 이런 부분 하나, 하나에 조금 더 섬세함과 신중함을 더해가는 거다. 벌써 삼십 초반이라고 하는데 이제 겨우 삼십 초반일 뿐이다.
왜 컴퓨터 프로그램 설치할 때 70퍼센트면 왜 아직도 이것 밖에 안 됐냐고 짜증내잖아? 마찬가지다. 나이 삼십은 겨우 인생의 삼십 퍼센트를 온 것일 뿐이라고. 그런데 다들 왜 이렇게 많이 왔다고 난리들이야?
아, 잠깐 내 눈물 좀 닦고…….
“지현이 너 술 좋아하는데 나 때문에 참는 거 아닌가 몰라!”
“아니예요! 술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그때도 얼마나 많이 마셨는데요! 오빠 있어서 긴장해서 안 취한거지, 정말 많이 마셨어요. 집에 들어와서 속이 안 좋아서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정말? 그런데 그 날은 무슨 일 있었어? 아침에 일어나서 정말 깜짝 놀랐어. 혹시나 식당 일 돕는 거 아닌가 해서 식당도 찾아갔었는데 없었고. 핸드폰까지 그 모양이었으니까.”
“아, 그 날은 언니랑 같이 쇼핑하기로 했었거든요. 이 옷도 그 날 산 거예요! 이거 되게 예쁘죠?”
그래?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언니가 있었구나! 왠지 사이 좋아 보이는 자매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지현이의 육감적인 몸매를 고스란히 살려주는 하얀 원피스에 다시 한 번 더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최고. 지현이는 과천의 보물이야. 아유, 정말.”
“그건 너무 오버 같아요~! 보물이라뇨!”
“아냐, 정말 세계적인 라인이야. 자부심 가져도 돼.”
그 말에 지현이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기분은 몹시 좋은지 얼굴에 함박웃음 가득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미약을 떠올렸지만 쓸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밝고 건실한 애를 그런 약으로 이상하게 만들 수는 없잖냐?
“그러면 오빠, 우리 밥 먹고 나서 오늘은 일찍 헤어지는 거예요?”
“응? 그냥 오늘 밥 먹고 차나 가볍게 하고 일찍 가서 쉬자. 사실 우리 집 가서 쉬어도 되는데.”
“음~ 그건 좀 순수하지 못한 것도 같은데요?”
“들킨 건가?”
그 말에 지현이가 후후 웃음 짓는다. 내가 더 밀어붙이면 그냥 고개를 끄덕여줄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오늘은 지현이 너도 이력서 내고 피곤할 거니까 일찍 들어가서 쉬어야지. 대신 금요일! 내 월급날에 보는 걸로 하자. 그 날은 이렇게 쉽게 보내지 않을 거야. 각오해.”
“우와, 우리 자연스럽게 금요일에 보는 걸로 정해진 거예요?”
“그럼. 각오 단단히 하고 오는 게 좋을 걸?”
“후훗, 알겠어요! 오빠가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지도 모르는데! 한 4일 굶고 가야겠어요!”
귀여운 한 마디에 다시 또 빙구 미소가 절로 얼굴에 자리 잡았다. 뭐든 다 해주고 싶게 만드는구나, 이 귀염둥이가 정말!
“오늘은 그럼 일찍 가고 장도 미리 좀 봐놓아야겠어.”
“우와, 오빠가 날 집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페브리즈도 구석구석 좀 뿌려 놓고, 촛불도 사다 놓을까?”
“완전히 유혹한다!”
“정전 대비하는 거야. 정전. 알지?”
“아닌 것 같은데~!”
“이럴 때 알아도 모른 척 해줘야 하는 거야. 자, 지현이 아~ 고기 먹자.”
그 말에 지현이가 손으로 입을 막고 큭큭 웃음 지었다. 아, 계범도! 입은 여전히 살아 있어! 참, 이런 조화로운 분위기에 미약 같은 건 쓸 수가 없지! 지현이에 대한 예의도 아니거니와, 내 자신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사나이 가오가 있어야지!
아, 근데 한 편으론 또 이걸 어떻게 하냐 싶다. 아무래도 구슬은 구렁이한테 넘겨줘야 할 거 같고, 그러니까 이 미약을 쓰긴 써봐야 할 것 같은데 대체 누구한테 써야 할지! 말죽거리 떡볶이 아줌마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총각, 이것 좀 만져 봐 하고 적극적으로 몸의 대화를 즐기는, 전혀 부담이 없을 그런…….
-부르르!
때마침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음? 잠시만.”
혹시나 일인가 싶어 잠깐 핸드폰을 꺼내보니 전혀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는 아니고 문자가 날아 왔는데…….
-범도씨, 나 복주미 원장이에요! 생각은 잘 해봤어요? 오늘이 할인 마지막 날이라서 연락해 봤어요! 나 지금 범도 씨 동네 쪽에 나와 있는데 시간 괜찮으면 오늘 보지 않을래요?
때마침…….
“누구에요?”
“아, 별 거 아냐. 회사에서 날아왔어. 오늘 회식 하는데 빠졌더만 아쉽다고 보냈네.”
적당한 떡볶이 아줌마가 연락을 해왔네?
“아, 나 때문에 회식도 빠진 거예요?”
“그럼. 지현이 때문이지. 그러니까 금요일에 도망칠 생각 하면 안 돼.”
“후훗, 알겠어요! 그 날은 절대로 도망 안 칠게요! 약속!”
지현이와는 좋은 분위기로 오늘 하루가 마무리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내게는 또 다른 선택지가 왔군! 어쩐지 바람을 핀다는 생각도 들었다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 잖냐. 적당한 활용이 돋보여야 할 시점이다.
“그럼 이제 자리 일어날까? 여기 계산은 내가 할 게. 차는 지현이가 사.”
“아니에요! 전에도 오빠가 샀으니까 오늘은 내가 계산 할 게요. 그 정도는 있어요. 대신 커피랑 금요일에 맛있는 거 사주세요! 그 날 진짜 많이 먹을 거니까!”
그리고 지현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도망을 쳐버렸다. 그 모습에 또 어찌나 흐뭇한 웃음이 나오던지. 저런 여자라면 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데 말이다. 여자들이 그걸 또 모르지?
그리 생각하니 이게 또 신경이 쓰이긴 한다만 이건 지현이 널 아끼기 때문에,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야! 설령 효과를 본다고 하더라도 만약 우리가 잘 된다면! 그래, 이게 중요한거다. 잘 된다면 절대 이것으로 인해서 문젤 만들지 않을 테니 믿어주렴.
그리고 지현이가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주미 원장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러도록 하죠. 이따 10시쯤에 만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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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