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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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얘길 했다지만 그래도 9시에 딱 나가는 것은 너무 눈치 보이는 일이다. 신입들이 투찰 요청 전화 돌리는 것까지 다 지켜보고, 오늘 중요하게 해야 할 미래 건설 업무의 하도급 일까지 알아본 다음에야 나는 외근을 하러 나올 수 있었다.
폰 고치는 것이나 삼미 건설의 유과장 만나는 일도 있지만 요 외출의 가장 주된 이유는 단 하나!
“환급 받으러 왔습니다!”
으하하핫! 바로 수천만원짜리 로또뱃의 결과물이지! 신한은행 본점까지 가야 된다는 수고가 있다만 그 정도 수고야 일도 아니지 않은가? 수중에 공짜로 수 천 만원이 생긴다면 말이다.
“네, 환급…… 어머!”
환급을 담당하는 여직원도 깜짝 놀란 눈치다. 그도 그런 것이 이 정도 규모의 적중금도 흔치 않을뿐더러, 이만한 배당도 흔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와, 이 정도 배당금은 진짜…….”
많고 많은 배터들이 있겠지만 그들 가운데 2만 단위의 배당급을 먹은 사람은 또 얼마나 있겠는가?
흐하하하하! 갑자기 또 어깨가 으쓱, 뿌듯해지는 구나! 아마 이걸 다 먹은 사람은 대한민국 땅에 오로지 나 하나뿐일걸? 이걸 누가 먹겠냐?
“운이 좋았슴돠. 럭키가이라고 불러주십쇼.”
“정말 말 그대로 럭키네요. 축하 드려요.”
“감사합니다! 아무튼 이 배당금 현찰론 들고 다닐 수 없으니까 계좌로 이체 해서 받아가려고 하는데 가능하죠?”
은행에서 설마 계좌 이체가 안 된다고 하진 않겠지? 어차피 신한은 신용카드를 쓰는 곳인지라 따로 개설해둔 계좌가 있다.
“물론 가능하죠! 타행이신가요? 아니면?”
“당연히 신한~! 배팅 하는 사람이 신한 계좌가 없겠어요?”
그 정도 센스는 있어줘야 제 맛이지! 그 말에 은행 직원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 이게 또 일이 이렇게 터져 주니까 계범도 말 빨도 살아나는 것 같은데?
승미 년 덕분에 한동안 본의 아닌 침체기를 맞이했었다만 이제는 그것조차도 모두 떨쳐내고 일어나는 듯 했다. 그게 하도 사람 정나미를 떨어지게 해서 그런지, 아니면 지현이를 만나서 새로운 사람으로 위로를 받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적중금 4975만 8천원에서 세금 22%, 1094만 6760원 공제해서 3881만 1240원 계좌로 입금 처리 완료 됐습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배팅금액 2천원! 세금만 천만 원! 지나치게 세금 높게 붙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만 뭐 이거야 일도 아니지. 지금 내 손에 떨어진 돈이 흐흐흐흐……!
“감사합니다! 앞으로 신한 종종 이용 할게요! 땡큐입니다!”
실성한 사람처럼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 이거 정말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자꾸 웃음이 멈추질 않네! 아유,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누군가는 1억도 안 되는 거 받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땅을 파봐라!
신사임당 한 장만 주워도 그날 하루 기분이 좋을 판에 3881만원!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우선은 먼저 내 총알이 후달리는 터라 돈을 좀 뽑기로 했다. 아직까지 현실감 느껴지지 않는 와중에 두둑한 지갑을 위해서 20만원을 인출하니 아……!
“나온다!”
크하하하핫! 아, 미치겠네. 웃음이 멈추질 않아! 요괴도, 뭣도 지금 당장은 그런 게 중요한 일이겠냐? 이렇게 일이 잘 풀리고 있는데 말이다.
“아, 기분 좋게 가볼까? 대리점~!”
20만원을 빼고 나니 통장 잔액은 원래 있던 5만원을 합해서 3866만원. 은행 통장에 찍혀 있는 숫자에 다시 한 번 흐뭇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니, 내가 그러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자동으로 터져 나와서 그래. 혹시 네덜란드에 손가락으로 댐을 막아 사람들을 구하고 숨진 소년 이야기를 알고 있나? 지금 내 상태가 그 터진 댐이란 말이다. 후후후후! 지금 이 웃음을 막으려면 소년이 아니라 초대형 흑 형을 데리고 와서 막아야 할 것이다.
극도로 기분이 좋은 가운데 나는 택시를 잡아 타고 즐거운 마음으로 AS 센터로 향했다. 버스 타고 가도 되겠지만 아직 근무 시간 중이기도 하고, 오늘 정도는 돈 걱정 하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고 싶은 맘도 컸으니까.
“LG 서비스 센터로 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또 삼미 건설까지 가려면 지하철타고 인천까지 가야 된다. 거기까지도 택시를 타고 갈까 싶은데 그건 좀 오버 같다. 아니, 돈이 걸리는 게 아니라 사실 그런 건 지하철이 더 빠를 거거든.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봐요. 싱글벙글 하시네요.”
“일이 잔뜩 꼬여 있다가 이제 좀 풀렸네요. 앞으로도 다 잘 될 거 같아서요!”
사실 어쩜 이 로또뱃을 얻고 더 큰 일에 휘말려 있는지도 모르겠다만! 내가 어떤 상태로 그 일을 마주하느냐에 따라서 내 운대가 달라지니 한결 같이 자신감 있고, 강단 있는 태도를 가져야겠다.
그래, 뭐 문제 있겠냐? 솔직히 구렁이? 이무기? 아무튼 그 가죽 옷이 나를 찾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또한 구미호가 나를 해꼬지 한다는 보장도 없는 것을 말이다.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고! 도사님 만나서 팔찌도 받았겠다, 구슬이가 알려주는 운대가 있으니 문제가 없다.
“그렇지?”
“예?”
“아뇨, 아닙니다.”
구슬이랑 대화 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꺼낸 말에 택시 기사가 물음을 던졌다. 그를 보며 고개를 흔든 나는 와이셔츠 안에 넣어 둔 구슬이를 다시 꺼내 보았다. 지금은 빛을 받지 않아 글자가 보이지 않지만, 영롱한 푸른빛의 구슬은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값어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아까 회사에 있을 때 여우 구슬이라는 게 뭔가 싶어서 잠깐 검색을 해봤다. 민간전승에 의하면 그게 구미호가 들고 다니는 정수라는 말도 있고, 구미호가 채집한 사람의 영혼이란 말도 있더라.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차적으로 민간전승보다는 내가 만난 도사님 말이 더 신빙성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 일어난 일을 알아냈잖아? 단순히 찔러 본 것도 아니었고.
아무튼 그 도사님 말이 맞다면 이건 채집한 영혼이 아니라 산신령의 보물일 테지? 그러니 구미호가 내 영혼을 가져갈 일은 없지 않을까? 하긴, 그 여잔 내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구미호와는 또 이미지가 달랐다. 고소영, 김태희, 신민아 예쁜 여자들이 그런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매체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구석이 있어 보였다.
“어디다 세워 드릴까요? 바로 앞이요?”
내가 생각에 잠긴 잠깐 그 사이에 택시가 서비스 센터에 도착했던 모양이다.
“아니요, 그냥 여기 세워주세요. 건너갈게요.”
“예, 알겠습니다~!”
택시 기사의 말에 굳이 서비스 센터 앞까지 세워줄 필요는 없는 터라 그리 대답을 꺼내니 택시 기사가 바로 차를 세웠다. 잔돈을 챙겨 택시에서 내리고 나니 LG 서비스 센터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I Goed 서비스 센터.”
자, 빨리 가서 핸드폰을 고치자! 그리고 지현이와 연락이 되거든 오늘 약속이나 잡을까?
“몸 안 좋아서 쉬고 있다 그랬으니까 시간은 있겠지?”
아니다. 쉬다가 이제 일자리 구하려고 한다고 했던가? 에이, 뭐 일단은 폰 살리고 연락을 해보지! 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생각을 정리하고 서비스 센터 안으로 들어가니 예쁜 언니야가 나를 반긴다. 오, 이 언니 이쁘네. 선한 마스크가 무척이나 인상적인 늘씬한 언니야 모습에 받은 감동도 잠시! 한국 여자 특유의 빈약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주미 원장 생각이 떠올랐다.
“폰이 고장나서 고치러 왔습니다.”
“아, 그럼 번호표 뽑고 잠시 대기 해주시겠어요?”
“옙. 번호표 뽑았으니 그쪽 번호도 뽑아도 되나요?”
“네?”
지금의 나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그 찝찝한 용운사도 다시 가볼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 이래서 사람이 돈이 있어야 하는 구나. 자신감 가득한 나의 모습에 LG 서비스 센터 아가씨가 별꼴이라는 듯 나를 힐끔 살폈다. 그리고 이내 어색한 웃음 지어 보이며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농담입니다!”
그래도 자신감과 성공률은 별개의 문제구나. 뺀찌는 먹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내 말에 LG 서비스 센터 아가씨도 얼굴을 붉히며 후후 웃음 지어 보였다. 뺀찌 먹었지만 한 번 더 들이대면 될 것도 같은데?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심하게 끌리진 않는다. 저 아가씨가 지현이보다 그렇게 극적으로 예쁜 것도 아니고 몸매는 지현이 쪽이 더 출중하니까. 그리고 지현이가 아니더라도 주미 원장도 있고.
물론 용운사로 다시는 갈 생각이 없는지라 그녀를 볼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69번 고객님.”
때 마침 내 번호가 나왔다. 69번이라니, 이런 잔망스러운 번호를 봤나. 후후, 하지만 뭔가 끌리는 번호다.
“핸드폰이 아예 먹통이 되어 버려서요.”
“아, 그러십니까? 아예 작동을 하지 않던가요?”
“예. 이게 토요일까진 멀쩡했는데 일요일에 일어나 보니까 안 되더라구요. 배터리가 방전된건가 싶어서 충전도 해보고 갈아 끼워도 봤는데 돌아가질 않더군요.”
그 말에 서비스 센터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원버튼을 눌러 보았다. 하지만 불이 들어올리 만무했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서 내가 몇 번 해봤는데 안 됐어. 뭘 해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 핸드폰에 그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핸드폰을 깠다.
“제가 업무 때문에 핸드폰을 빨리 좀 다시 써야 하거든요. 이거 고쳐질 순 있나요?”
“저기 죄송한데요, 고객님. 핸드폰 가지고 어디 가시진 않으셨죠?”
“예? 갈 데가 어디있겠습니까. 그냥 동네에서 술 한 잔 하고 집에 왔었죠.”
“핸드폰 메인보드가 새까맣게 다 타버렸는데요.”
“음?”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직원의 말에 나는 믿을 수 없단 얼굴을 해보였다. 내 떨떠름한 얼굴에 그 역시 마찬가지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도 폰 많이 봤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요. 이건 과열 현상도 아닌 것 같고 꼭 누가 태운 것처럼…….”
그리고 그가 나를 이상하다 바라보는데…… 이보쇼! 내가 미친 사람도 아니고! 아니,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냐?
“아무튼 이건 수리가 불가능합니다. 부품 교환도 안 되겠고 새로 장만하셔야겠는데요……?”
“이게 왜 이런 건데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건 정말…….”
“아니, 대체 이게 무슨. 그러면 기계 이건 무상으로 교환해주시는 거죠? 이거 아직 5개월밖에 안 된 건데.”
서비스센터 기사도 난감한 얼굴이다. 이게 뭐다냐? 아니, 왜 핸드폰 내부가 타들어갔어? 이게 뭐야? 혹시 핸드폰이 잠든 사이에 폭발한 거 아닐까?
“이거 핸드폰 폭발 사고 뭐 그런 거 아니에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그 순간 서비스 센터 고객들의 이목이 내게로 집중됐다.
“아, 아닙니다! 고객님!”
최근에 갤럭시 3가 폭발 사고를 일으켜서 일 치르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 여기도 조심스러울 거다.
“사유는 모르겠지만 자체 내의 결함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겉만 멀쩡하고, 안이 모두 다 불에 타버렸네요.”
“아니, 그거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거 아닌가요? 이 폰 안에서 불 난 게 아니면?”
“그,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즉 이건 기계 결함이다 이거죠? 무상 교환이 가능하다?”
물론 지금의 나는 돈지랄 하기 충분한 상황이나 이런 쓸 데 없는 데에 돈을 낭비 할 순 없지! 서비스센터 직원도 처음이라는 듯 무척 당황한 얼굴이었다만 바깥에서 보기엔 아주 말짱한 폰이지 않은가? 내부 결함으로밖에는 결론 지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기계는 저희가 무상으로 교환해드리겠습니다. 원인이 왜 그런지는 시간을 두고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아, 그러면 일단 기계부터 좀 바꿔 주십시오. 급히…….”
그러다 문득 머리를 떠오른 생각.
“아, 잠시만요! 그러면 이거 핸드폰에 저장 안 된 번호는 다 날아가는 거네요?”
“아, 예. 저장하지 않으셨다면 그렇게 됩니다만.”
백업이야 우리 집 노트북이랑 회사에 해놓은 게 있다지만 지현이 번호는 저장이 안 되어 있잖아? 그 순간 착잡함이 밀려왔다. 아, 왜 그걸 저장을 안 해 놓은 거니? 계범보, 바보 같으니!
“아……. 그렇네요.”
혹시나 지현이나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이건 또 이 나름대로 만날 일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좋은 인연을 놓칠 것 같단 불안감이 생겨났다. 이런 젠장! 갑자기 폰이 왜 타고 지랄이야? 괜히 LG에 대한 원망이 생겨 찌릿 하고 서비스기사를 바라보자 그도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폰은 이야기 해놓을 테니 아래층에 있는 대리점에서 받으시면 될 겁니다.”
“유심 칩까지 다 타들어 간 거예요?”
“그쪽도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이라 정말 죄송합니다.”
고칠 수 없단 그의 말보다 지현이 번호가 사라져버렸단 생각이 더 짜증이 났다. 아, 젠장! 정말 왜 저장을 안 했던 걸까? 그 생각으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만 어쩔 수 없지 않는가?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아래로 내려가서 얘기 하면 되나요?”
“예,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도움 못 되어 드려 죄송합니다. 기계는 저희가 맡아서 한 번 분석 해보고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뭐 그거 어디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가는 길에 서비스 센터 아가씨가 힐끔 나를 보며 안녕히 가시라 인사를 했지만 인사도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유, 젠장.”
괜히 속이 상한 것이 하필 왜 그 날 메인보드가 타들어 갔냔 말이다. 서비스 기사도 못 고칠 정도로!
“불판에다 구운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날이 더워서 그런가? 이른 초여름 날씨에 열이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켜둔 핸드폰이 저절로 열이 받아서 안이 타들어가 버렸던지 아무튼 그러하겠지. 에이, 몰라!
“어차피 가서 번호 물어보면 되니까.”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식당에 사장님이 있단 것일 것이다. 잠깐 와서 일 돕는다 했으니 모르는 사이는 아닐 것이고 번호쯤이야 알고 있지 않겠는가? 오늘 마치고 저녁 먹으러 가서 물어보면 되겠다.
그 생각과 함께 아래층 대리점에 들어오자 미리 연락 받았던지 대리점 직원이 물음을 던졌다.
“안녕하세요! 아까 옵티머스 AS 맡기셨던 분이신가요?”
“예. 무상교환!”
확실하게 무상교환을 못 박자 그 역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 좀 그렇긴 하지만 요즘은 대기업이 더 도둑질을 많이 하기 때문에 확실히 못을 받아줘야 한단 말이야.
이내 그가 새 핸드폰을 꺼냈지만 기쁜 맘보단 여전히 착잡함이 밀려 왔다. 다른 건 모르겠고 지현이! 아, 제길! 내가 금요일엔 구미호를, 토요일엔 지현이를, 일요일엔 주미 원장을 만났다만 셋 중 그래도 제일 끌리는 사람이 지현이였는데 말이다. 물론 얼굴은 구미호가 짱이고, 몸매는 주미 원장이 짱이었지만 그 둘은 논외의 대상 아니겠냐?
하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는 사람이긴 하지만 너무 찝찝한 동네에 사는데다 나보다 나이도 12살이나 많고. 봉술 연습하긴 딱이지만 그래도 코 꿸 것 같은 찝찝함이 있단 말이야.
“바로 개통해드렸습니다. 바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번호는 백업 하신 게 있으시죠?”
“아, 예. 집에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 사이에 직원이 폰을 개통 시켜 내게 건네주었다. 아, 새 폰은 좋은데 지현이 번호가 없단 게 문제지! 운 좋게 연락이라도 오면 좋으련만! 그럴 일이 있겠냐?
“휴, 그럼 수고하십쇼!”
대체 왜 폰이 타들어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맘도 타들어 간다. 아, 아니지! 이렇게 또 만난지 얼마 안 된 애 한테 애착 가지다 또 승미 년 꼴 날지 모른다. 그래, 릴렉스. 스스로를 차분히 돌아볼 때야, 계범도.
“오케이, 중심을 잡아야지.”
괜히 조바심 내지 말자. 인생 즐기는 나는 위너다! 굳이 내 발로 솔로의 자유로움을 잃지 말자고!
그렇게 다시 스스로를 다잡으며 시계를 보니 생각보다 시간은 많이 지체되지 않았다. 10시에 나와서 은행과 서비스 센터 다녀오는데 약 35분 걸렸으니 상당히 효율은 있는 셈이었다. 물론 수리 자체가 안 된다 그러니까 더 빨리 마무리 된 거겠지만.
“하아. 그럼 일단은 유과장이랑 통화 좀 해볼까.”
나오기 전에 통화는 했다만 가기 전에 또 연락 해주는 게 예의지. 그래, 일단은 내 일부터 먼저 생각하자.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을 할 땐 확실히 일을 먼저 해야 하니까.
“영수야. 나다. 아, 핸드폰 완전 안이 다 타버렸대! 그래서 무상으로 교환 받았어! 삼미 건설 유순화 과장 번호 좀 이리 보내줘라. 일단은 만나고 들어가 봐야지. 같이 점심 먹을지도 모르니까 먼저들 먹고. 그래, 알겠다! 이따 보자!”
우선은 삼미 건설의 노처녀부터 박멸해보자. 이 여자가 관리 차원에서 협조 요청한다고 전화할 때 마다 자기 자랑을 해대고, 또 꼬리를 쳐서 상당히 난감했는데 말이다. 설마 이걸 빌미로 내 몸을 요구 한다거나 그러면…….
“땡큐지, 노처녀라도 처녀일 텐 데.”
코 꿰는 게 싫을 뿐 쿨 파트너라면 환영이지! 난 프리 바디라고! 어디 귀속된 몸이 아니야!
인생을 즐기잔 그 생각과 함께 지하철 역으로 가는 택시를 타기 위해서 도로변으로 향하던 나는 새까만 대형차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 앞에 멈춰 선 것을 볼 수 있었다.
“응?”
까만색 썬팅이 된 차는 어디서 많이 본 차 같았다. W로고가 떡하니 박혀 있는…….
“폭스바겐 페이튼!”
오늘 아침에 날 칠 뻔 했던 그 차가 아니더냐? 그 생각이 나자 짜증이 확 샘솟았다.
“아니, 무슨 택시 잡으려는데 이게 길을 막고 지랄이야?”
열등감이라고 해야 할 지! 괜히 꿀리는 느낌에 투덜투덜 이야기를 꺼내며 걸음을 옮기자 지잉 하고 창문이 열렸다.
“이봐요.”
“음? 나 불렀습니까?”
아주 조금 열린 창문으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며 걸음을 멈춘 나는 뭔가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 돌린 그곳에서 차 안에 있는 여자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어……?”
마치 파충류 같이 차가운 눈을 하고 있는 그 여자. 몸에 착 달라붙는 가죽 옷을 입은 그 무시무시한 여자.
“다, 당신은…….”
순간 후덜덜 하고 몸이 떨려 왔다. 이런 씨, 이 구렁이? 이무기?! 아무튼 이 요괴가 왜 이런 고급차에?!
패닉상태란 게 이런 것인가? 큰 혼란감에 미처 움직이지도 못하고 굳어버린 나를 향해 여자가 손짓했다. 그녀의 손짓에 도망을 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도망친다고 해서 될 것 같지가 앉았다. 저 여자가 빛을 싫어한다더니……. 아, 젠장 설마 저런 썬팅 된 차 몰고 다닐 줄이야! 저걸로 날 치면 어떻게 해?!
순간 잔뜩 쫄아 버린 나를 향해 그녀가 묘하게 섹시한 비웃음을 지었다. 여왕님이라는 분위기가 이런 걸까? 그런 취향은 아니지만 상당히 매혹적인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녀가 매혹적인 분위기가 한껏 실린 얼굴로 속삭이듯이 내게 말했다.
“죽기 싫으면 안으로 들어오는 게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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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새옹지마.
1권 분량 컷 - 오랜만에 예전 속도 나네요~ 한 권 쓰고 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