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럭키가이-10화 (10/120)

<-- 10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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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놔, 늦겠네!”

갑작스러운 약속이다 보니 나가는 것도 일이었다. 지현이 만나서 내가 딱히 뭘 하겠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 만나러 가는데 대강대강 할 수 있나? 머리도 빨고, 면도도 하고 달라진 내 모습 보여줘야지!

옷이야 사실 큰 문제가 없었다. 백화점 세일 할 때 고른 네이비색 면 바지가 있는데 그거랑 위에는 간단하게 셔츠 하나 걸치고 팔이나 좀 걷어 주면 되니까. 아무리 이른 여름 날씨라고 해도 해 떨어지고 나면 적당히 선선한 것이 반팔은 좀 오버스럽지 않을까?

“아, 머리.”

그런데 정말 문제는 바로 머리였다. 한때는 나도 샤기컷으로 왁스 세팅 하고 머리에 공들이던 시절이 있었다만 서른 넘고 나니까 그것도 모두 다 귀찮더라. 특히 승미 년이랑 헤어지고 나선 거의 꾸미기와 담을 쌓은지라 머리가 도무지 만져지지가 않았다.

“아이씨, 나가기 싫게. 이게 왜 이렇게 안 돼? 길이가 어정쩡해서 그런가? 아, 숱 좀 칠 걸!”

머리 만들다 망치면 얼마나 짜증나는지 알 거다. 지금 머리가 엄청 마음에 안 드는데 그래도 어떻게 하겠냐? 시간이 없는 터라 대강 모양만 만지고 시계까지 차니 그래도 꽤 괜찮아 보였다.

“이 정도면 뭐 어디 가서 꿀리진 않지. 아, 짜식. 잘 생겼어. 정우성 닮았는데?”

술을 많이 마셔서 볼록 나온 배 때문에 배만 타이트한 셔츠도 힘을 주니 꽤 예전처럼 슬림해 보인다.

“살을 좀 빼긴 빼야겠다.”

오랜만의 외출을 앞두고 스스로를 돌아보니 몸이 참 많이 불었다. 아, 진짜! 한창 땐 안 이랬는데 정말 나이 먹는 게 서럽다, 서러워!

시간적 여유,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나도 연예인들처럼 관리 받고 그럴 텐 데. 그러면 식스팩은 아니더라도 몸 라인만큼은 유지 되지 않겠냐? 솔직히 나도 헬스 좀 끄적여 봐서 안다. 돈 있어도 몸짱 되는 거 힘들어……. 운동 하는 것 그냥 좀 참으면 되는데 회식 자리 때문에 먹는 거 관리 하는 게 진짜 지옥이거든.

특히 우리 회사 같은 경우는 회원 기업체에 건설 입찰권 따주는 걸 주 업무로 하고 있는데, 억 단위 계약 하나 따고 나면 그 날은 바로 회식 예약이다. 거기다 우리 부서장인 김부장이 술을 그따위로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 아래 사람들이 술자리를 빠지고 하겠냐? 그러다 보니 살이 찔 수밖에!

“아무튼 나가자! 늦겠다, 진짜!”

지금 당장에 뱃살이 쏙 빠질 것도 아니고 어떻게 시간 날 때 마다 틈틈이 운동이라도 해야겠다. 두 달 뒤에는 여름이고, 여름엔 그래도 바닷가는 놀러가야지. 그러려면 요 배는 좀 없앨 필요가 있겠다.

“후! 후!”

괜히 이렇게 숨 내뱉으면 조금이나마 살 빠질 것 같아 거칠게 숨을 내뱉곤 까만색 로퍼를 신었다. 운동화 신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아까 슬리퍼 질질 끌던 게 생각나서 이번엔 좀 다른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

“숨겨왔던 나의~”

뒷부분은 모르겠고 맨날 이 부분만 맴도는 알렉스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남은 시간은 20분! 좀 촉박할 수도 있겠지만 차 끌고 나갈거라 그렇게 막히진 않을 거다.

“오랜만에 엔진 돌리는구나, 나타야.”

유류비 때문에 주말 전용이었던 나의 애마 소나타도 이별 이후론 딱히 빛 볼 일이 없었다.

“아, 세차 좀 할 걸.”

괜히 또 방치해둔 탓에 차가 지저분해 보이고 신경이 쓰였다. 아, 놔! 계범도, 너 왜 이러니? 지금 선 보러 가는 거 아니야! 그냥 귀여운 동네 동생 만나러 가는 거야!

“그래, 차면 됐지. 뭐.”

그래도 너무 지저분한 건 좀 그래서 트렁크에 넣어든 털이개로 보이는 자리만 슥슥 닦아 냈다.

“이 정도면 됐네. 오케이, 콜!”

그리고 다시 털이개를 트렁크에 실고 접었던 백미러를 폈다. 차는 청사에다 세워 두면 될 거다. 술이 사실 땡기긴 하지만 이제 20대 초반인 애랑 술 마셔서 뭐에 쓰겠냐?

물론 실질적으로 가장 술 마시기 좋은 상대가 20대 초반의 꽃다운 아가씨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여자에 마음 쓰고 싶지 않다. 아마 승미 년도 이렇게 깊게 알고 지내지 않고, 그냥 아는 애로 뒀으면 이런 사단까진 나지 않았겠지.

33살.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도 어느 정도 알지만, 그래서 더 상처 받기 쉬운 나이이기도 하니까.

“어, 씨발 이게 뭐야!”

그러다 문득 백미러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럴 수가! 아까 까지만 해도 정우성이었는데 지금은 왜 윤종신이냐?”

어린 시절부터 가져왔던 의문 중 하나다. 왜 화장실 거울로 보면 잘생겨 보이는데, 이렇게 스쳐지나가다 보는 모습은 뭣 같아 보이는 것인가? 그래도 이건 너무 하지 않나? 아깐 그래도 좀 괜찮아 보였는데 이건 꼴뚜기잖아? 아 놔! 뒷머리는 또 눌렸네!

우연히 스친 꼴뚜기 같은 내 모습에 다시 한 번 더 속이 쓰려왔다.

“젠장, 내가 살을 빼고 만다! 꼭!”

살 뺐더니 정우성이 아니라 진중권이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여튼 지금보단 나아질 게 자명했다. 마음이 울적한 가운데 운전대에 올라 차를 몰고 드디어 중앙동에 있는 정부청사 건물로 향했다.

막히지만 않으면 제 시간에 딱 도착 할 거다.

“꼴뚜기 왕자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짠!”

다소 유치하다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 살아봐라. 흥을 찾아서 나도 모르게 뮤지컬 스러워지는 구석이 있단 말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로 보여주지 않지.

“아, 또 신호 걸렸어! 이런 씨!”

어쨌거나 차를 몰고 정부 청사 건물 까지 가는데 자꾸 신호가 걸린다. 안 걸리고 쭉 가면 10분만에 갈 것을 지금 벌써 10분이 지나간 것 같다. 그 생각에 나는 나도 모르게 챙겨온 파란 구슬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대길은 개뿔이냐? 아유, 정말.”

이걸 챙겨올까 말까 고민 했다만 그래도 챙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유는 몰라도 왜 그냥 이게 좀 운수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그래, 인정한다. 솔직히 나 귀 좀 얇은 편이거든.

아니, 예전엔 안 그랬는데 나이 드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게 다 안 빠져나가고 살며시 남아 있어서 괜히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챙겨온 거지 이게 예뻐 보인다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냐! 흥!

“아, 이럼 아슬하겠는데. 목걸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오늘 대길이라면서?”

심심하지 않은 주말이긴 하다. 밥 먹으면서 일진 할배랑 대판 붙었고, 낮잠 자고 일어나서 승미 년에게 욕을 한 사발 해줬고. 그리고 지금은 지현이 만나러 가고.

“대길이면 하나도 막힘없이 막 잘 풀려야 하는 거 아니야? 이게 대길이야? 신호마다 죄다 걸리는데 이게 대길이냐구?”

윌슨 마냥 구슬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구슬이 대답이나 해주겠냐? 심심해 보이는 내 모습이 한심해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튼 가서 뭐 먹지? 고기 먹어야 하나? 아, 오리 먹으러 가면 되겠다. 그죠? 구슬아.”

누가 보면 미친 놈이라 하겠지만 뭐 어떠냐? 누가 지금 날 본다고. 네비게이션이랑도 대화 해본 적이 있는데 하물며 구슬이야. 신호 걸린 김에 구슬을 쓰다듬고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다시 차를 출발 시켰다. 그리고 정부 종합청사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맞은편 안쪽 골목 쪽으로 차를 세워 놓았다.

오래 있진 않을 거니까 세워 두고 저녁에 금방 찾아가면 된다. 공터 앞이라서 딱히 뭐 길막 하는 것도 아니고!

“자, 그럼 구슬아. 오빠 갔다 올게요. 차 좀 잘 지키고 있어. 알겠지?”

이 정도 되면 내가 좀 맛탱이가 간 것 같긴 한데 뭐 어떠냐? 이렇게 다정한데!

“뭐? 같이 가고 싶다구? 구슬이도 고기 먹고 싶어? 그래, 알았어. 그럼 같이 가자. 대신 주머니에 잘 들어가 있어야 돼.”

외로움에 미쳐 가는지 그 말을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나왔다.

“이런 미친 계범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주머니로 파란 구슬을 집어넣고는 차에서 내려 건널목 앞에 서니 청사 건물 앞에 서있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응? 저거 지현이야?”

종합청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자는 지현이가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왜 쟤가 정장을 입고 서있느냐는 거지. 사실 정장이라고 하기엔 좀 뭣했다. 그냥 H라인 스커트에 구두, 거기다 말끔한 반팔 블라우스를 입고 있어서 정장 스러워 보였던 거지. 어쨌거나 아까 전보다는 확연히 꾸민 모양이 분명했다.

“식당 알바생 복장이 아닌데. 아, 맞아. 그때 전화 왔으면 쟤도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나왔겠네!”

아마 집이 이 근처였던 모양이다. 나도 그렇고, 지현이도 그렇고 아까 처음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란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고 가슴이 설레왔다.

“내가 좀 괜찮아 보였나?”

자꾸 백미러에 비친 꼴뚜기가 맘에 걸려 머리를 매만져 보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만. 왜 이렇게 은근히 기대가 되냐? 잔망한 시츄에이션 같으니!

“흠흠.”

목소리도 가다듬고 다시 옷매무새도 다듬고.

“아, 향수! 향수 안 뿌렸네!”

아냐, 정신 차려! 계범도! 넌 그냥 동네 동생을 만나러 나왔을 뿐이야! 앞으로 네 인생에 여자란 없는 거라고!

꼴뚜기 같은 모습이나 눌린 뒷머리. 그리고 향수의 부재 등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게 많았지만 그래. 뭐 여자 만나러 온 게 아니라 동생 만나러 온 거잖아? 그치, 범도야. 오늘 건전하게 놀기로 했잖아. 응, 괜찮을 거야.

“후. 음란마귀 같은 놈. 그렇게 디이고도 정신을 못 차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짝짝 소리 나게 뺨을 두들겼다. 얼얼한 느낌이 드니 그래도 정신이 좀 돌아온 것 같았다. 그래, 어차피 오늘 내 외로움 덜어준 고마운 동생에게 밥 한 끼 사러 온 건데 내가 중심을 못 잡으면 안 돼지.

그 와중에 기다리고 있던 지현이가 주변을 돌아보다 날 발견한 건지 내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오빠!” 하고 날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귀엽긴 하다. 어려서 그런가?”

그 모습에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끼며 지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갈 게!

맘이 자꾸 팔불출 마냥 술렁술렁 거렸지만 사나이 계범도, 내색하지 않는다. 그저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서 기다리는 동안 등 뒤에 쇼윈도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음?”

아 놔! 꼴뚜기 진짜!

왜 화장실 거울만이 나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가? 의문을 담아보았지만 해답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꼴뚜기 같은 모습을 한 번 더 확인한 채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로 지현이를 만나러 가야 할 뿐.

-딩동댕!

이내 안내음이 울리고 신호가 바뀌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지현이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꼴뚜기였다니……. 그래도 체념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포기하면 편해. 그래, 그게 진리다.

그 진리를 담아서 종합청사 앞으로 오니 기다리고 있던 지현이 조금은 수줍은 듯 한 얼굴로 미소 지어 보였다.

“왔어요?”

아까와 달리 화장도 했는지 고운 피부에 향긋함마저 느껴지는 듯 했다. 아, 이거 왠지 느낌이 좋은데?

“어. 좀 늦었지?”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 그런데 오빠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아까랑은 전혀 다른데요?”

“나이만 삼삼한 게 아니란 걸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말에 지현이가 푸훗 웃음을 터뜨렸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해맑게 웃는 그녀를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 편이 흐뭇해졌다. 오는 내내 신호 걸린 베스트 드라이버도, 뒷머리 눌린 꼴뚜기의 속상한 맘도 모두 스르륵 녹아 내리는 듯 했다.

“그럼 뭐 드실 거에요?”

널…… 이라고 섹드립을 날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구속 당하겠지?

“고기 먹으러 가자, 고기! 오늘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던데 원기 보충 해야지!”

“네! 좋아요! 맛있는 고기 집 있어요?”

“안 맛 있는 고기는 없어.”

타고난 육식주의자인지라 단호한 목소리에 지현이가 다시 꺄르르 웃음 지었다.

“자신감이 굉장한데요! 오빠도 혹시 고기 매니아?”

“그럼. 난 종류를 가리지 않지.”

육해공을 비롯하여 백마, 흑마…….

후후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아. 난 새롭게 태어났잖아! 정신 차려라, 계범도! 이 썩을 음란마귀 새끼야!

“기대 되는데요! 그럼 가요, 오빠!”

“어?”

그리고 지현이가 먼저 내게 팔짱을 꼈다. 도우미 아가씨들이 으레 그러는 것처럼 가슴으로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살며시 손으로 붙잡는 정도였지만 순간 기분 좋은 느김이 온 몸으로 쫙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몸은 아니지만 마음 만큼은 풋풋했던 20살로 돌아가는 듯 한 기분 말이다.

“그래, 가자!”

============================ 작품 후기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거울을 화장실 거울화 시켜야 합니다. 그게 나의 진짜 모습이에요. 여러분들은 속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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