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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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패인 것처럼~!
“아아!”
갑작스럽게 귓가에 들려오는 재범이 형의 보이스는 내가 갑자기 공연장으로 날아왔거나 그게 아니면 내 폰이 울었단 것일 것이다. 근데 갑자기 내가 어느 공연장에 가거나, 혹시 재범이 형이 우리 집에 와서 라이브로 이 노랠 불러줄 일이 있겠냐?
그러니 당빠 후자지.
꿀 같은 낮잠을 퍼질러 자다 울린 전화에 눈을 떠보니 아직도 온 세상은 눈살 찌푸릴 만큼 밝았다.
“아…….”
5월 중순이라 여름이라고 하기도 뭣한 시기지만 날씨는 여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도 여전히 창가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이 강렬한 가운데 혹시나 지현이 연락이 올 것을 대비해서 벨소리를 켜놓은 핸드폰이 힘차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지워지지 못한 상처들이 괴롭다~!
크, 예술이구만! 승미 년이랑 헤어지고 나서 한창 필 받아 선곡해놓은 낙인을 음미하며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누가 전활 했나……?”
간밤에 잠은 좀 편안히 잔 것 같은데 낮의 꿀잠은 아직도 정신이 없었다. 노안이 오기 시작하는지 흐린 두 눈을 부비며 아직도 노래 하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니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응?!”
핸드폰 화면을 본 나는 순간적으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런 쒸발! 이게 미쳤나!”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분노는 휴식기 맞았던 후지산이 방사능 폭발에 야마 돌아서 활화산으로 전향한 것만큼 강렬했다.
“이런 씨벨 것이 감히 어디라고 전화를!”
내가 이렇게 열을 내는 이유는 단 하나! 지금 내 단잠을 깨우고 전화질을 한 것이 씹어 죽여도 모자랄 승미 년 번호였기 때문이다.
“와, 나 진짜 이 개 같은 년이 누굴 호구로 보나!”
원래 이런 전화는 안 받는 게 현명하다지만 사나이 계범도! 이런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이 개 같은 것이 사람을 아주 좆으로 보는 모양인데 내가 누군데! 백령도에 있을 때 오죽하면 물병들이 개범도라고 별명을 지어줬겠냐?
이게 내가 잘해주다 깔끔하게 헤어져 주니까 정말 분수도 모르고 깝치는 모양인데!
“여보세요!”
거의 끝무렵에 전화를 받자 “아!” 하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씨바! 내가 너 목소리를 모르겠냐? 이 개 년아! 같이 밤을 지새운 게 몇 달인데!
“씨발 너 뒈지고 싶냐? 어디서 개 갈보 같은 게 전화질이야?! 씨바 사람 그따위로 우습게 만들어 놓고 지금 뭔 할 말이 있어서 전화질이야?”
자다 일어났다지만 그런 것으로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승미 년에 대한 원망이 크면 클수록 분노를 터뜨리고 싶은 맘도 큰 법이니까! 이 년이 그래도 한 때는 연인이었고, 그리고 지금은 산모니까 내가 조금 참는다. 순화를 하자. 그렇다고 해도 전혀 욕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아니, 솔직히 상식적으로 바람나서 애 생기고 일방적으로 헤어져 달라 통보했던 년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이 개…… 아니, 뭣 같은 년이 염치가 있어야지! 그렇게 사람 엿 쳐 먹인 것도 암 말 안 하고 헤어져 줬으면 미안해서라도 전화 못 걸겠구만! 진짜 뒤질라고!”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터져 나온 단말마를 제외하고 아무런 말도 못하는 승미 년을 향해 나는 일방적으로 욕을 퍼다 부었다. 그나마 뱃속에 얄미운, 좆 같은 차팔이 새끼 자식 덕분에 순화한 감이 있다지만 요 년 아주 당황스러울 거다! 지금! 내가 진짜 나이도 있고 진지하게 결혼 생각도 하면서 이 년 한테는 아주 각별하게 대해줬었다. 그래서 헤어질 때 조차도 이런 욕질까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땐 정신이 없어서 그랬던 것도 있고. 이별 전조야 있었지만 설마 남의 애까지 만들고 결혼 한다 헤어질 줄 누가 알았겠냐 말이다.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전화 했냐! 개 쓰레기 같은 년아!”
한참 정신없이 욕을 퍼붓고 나서 버럭 소리를 지르니 핸드폰 너머로 승미 년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누군데 오빠래? 씨발 누구신데요?”
-오빠, 화 난 건 이해해! 그런데 나 정말 할 말이……!
“무슨 할 말? 씨발 이미 우리 한 달 전에 끝났어! 개 같은 년이 그때 아무 소리 없이 끝내 줬음 그걸로 됐지 무슨 할 말이 남았어?”
이런 미친년을 봤나! 화난 게 이해되면 이렇게 전활 하면 안 되지! 혹시라도 이 미친년이 정말 잘못했다, 용서 해달라고 빌려고 그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왜냐하면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처음에 며칠은 그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거든. 이 빌어먹을 년이 그래도 순간적으로 실수라고, 잘못 했다고 최소한 사과는 해주길 바랬으니까. 그럼 아주 야멸차게, 그리고 쿨하고 냉정하게 뒤돌아 설 거라고.
다시 받아주진 못해도 그래도 그나마 그렇게 해주면 적어도 내려 앉아 버린 내 남자로써의 자긍심은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승미 년이 아니라 그냥 강승미라고 사람 같이 대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연락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게 갑자기 생뚱맞게 이렇게 연락이 오니 더 화가 나는 거다.
-나 애기 오빠 애 같단 말이야!
그리고 그 순간 승미 년이 폭탄을 던졌다.
“뭐?”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 앉을 것 같은 아주 좆 같은 말에 얼척 없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뱃속에 있는 애기, 오빠 애기 같다구!
이 미친년이 지금 무슨 개 같은 소릴……! 뱃속에 애가 내 애라고?
순간 아침 드라마 같은 막장 전개에 나는 얼척이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너 배에 애 몇 달 됐냐?”
-……두 달.
“씨발 병신 같은 년아! 우리 안 한지 반년이 넘었어! 이런 씨발 대가리 나쁘면 평생 고생한다더니 이런 개오라질 게 지금 누굴 무슨 호구 병신으로 아나?! 야! 뒈지고 싶냐! 이런 씨발 또 어떤 새끼랑 붙어먹고 기억을 못해서 나한테 뒤집어 씌우려고 개지랄염병이야?! 씨발 니가 석달 전부터, 아니! 한 반년 전부터 피곤하다고, 피곤하다고 내가 옆에서 잠만 곤히 잔 거 기억도 안 나냐?! 이 병신 같은 년아!”
아, 나 이런 창의적인 년을 봤나! 이 미친년이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약을 팔어?
“씨발 우리 자는 사이에 황새가 애기 물어다 줬냐! 아님 나 잘 때 내 정자라도 체취해갔냐?! 어디서 병신 같은 게 병신 같은 소릴 병신 같은 주둥이로 늘어 놓고 있어!”
아 나 진짜! 내가 웬만하면 그래도 산모라고 욕은 안 하려고 했는데 이런 미친년이 욕을 아주 패밀리 팩으로 만들게 하는 구만!
잘 자다 걸려온 전 여자 친구의 좆같은 소식에 나는 분개를 금치 못했다. 정말 이 들 떨어진 게 사람을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냐? 정말 억울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울컥하고 분노가 차올라 순간적으로 핸드폰을 집어 던질 뻔 했다.
“씨발 너 진짜 인생 그 따위로 살래? 진짜 내가 많고 많은 사람 만나봤는데 너 같은 쓰레기는 처음이다. 이 개 같은 게 어디 차팔이 새끼랑 잘 안 되니까 나한테 넘어 온거지?”
-오, 오빠! 난 그런 게 아니라……!
또 승미 년이 훌쩍이며 수습을 하려 한다. 이 병신 같은 게 구라치다 걸리면 맨날 눈물이지.
“씨발 반성해서 흘릴 눈물이었음 니가 구라를 또 쳤겠냐? 병신 같은 게 생각대로 안 되니까 속 상하냐?”
여자의 눈물은 반성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 흘리는 법이다. 고추 친구들, 기억해라. 여자의 눈물에 진실성이 담겨 있는 일은 거의 0에 수렴한단 걸 말이다! 그러니까 맨날 질질 짜고 떼 쓰고, 땡깡 부리는 거지!
그걸 여지껏 여자친구란 이름으로 받아줬다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는 거고!
-나, 나는! 내가 실수 했어, 오빠!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 했어!
아마도 차팔이 새끼한테 버림받은 모양이다. 하긴 내가 진작에 알아 봤지! 요 년 애 생겼다고, 반포 지구 사는 차팔이랑 결혼할거라고 설레발 칠 때부터 말이다. 븅신 같은 게 저 같으면 나이트에서 만나서 한 번 따먹고, 종종 계속 따먹으려고 꼬셨던 걸레 같은 년이랑 결혼하고 싶겠냐?
승미 년이 덜떨어진 건 알았지만 그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진짜 강승미, 이 병신! 너 그 새끼 한테 차였냐?! 애도 있다면서!”
-흐흐흑……! 애 지우래! 오빠 나 어떡해! 어쩜 좋아……?!
가만 보면 이 년도 참 불쌍한 년이다. 머리는 텅텅 비었고, 허영심 밖에 없어서 나이트에서 바람난 차팔이 새끼한테 붙었다가 몸 망치고 버림 받고.
“어쩜 좋긴 엿 쳐먹어야지, 등신아. 남녀 사이에도 의리가 있어야 하는 법이야! 난 너 같은 년한테 지켜줄 의리 없다.”
-전에 오빠가 나 평생 지켜 준다고 그랬잖아……! 오빠, 미안해! 내가 이렇게 빌게! 오빠!
“그 약속 니가 엿 먹인거야.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지 말고 생각이란 걸 좀 해. 너 말을 머리로 뱉어야지, 위장에서 뱉어 내냐? 지금 니가 하는 말들은 내가 먹고 싸는 똥이랑 다를 게 없어. 승미야. 인생 똑바로 살어. 뿌린대로 거두는 거야. 인생 낙장불입이거든?”
그리고 나는 핸드폰을 끊어 버렸다. 씨바 이 년이 모멸차게 사람 나가리로 만들 땐 언제고 지금 와서 아쉬우니 이 지랄이지?!
자다 말고 일어난 거지같은 일에 흥분이 감춰지질 않았다.
“아우! 씨발!”
아니, 정말 잠 자기 전까진 괜찮았는데 갑자기 왜 이 지랄 같은 년이 연락을 한 거야?!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이 년 전화를 받고 뒤숭숭해진 내 마음이었다. 사람 맘이 맘 같지 않단 것이 대체 이게 뭐라고, 이 년이 뭐라고 이제 또 신경이 쓰이는 거냐?
말은 참 야멸차게 내뱉었는데 이게 또 차팔이 새끼한테 까였다니까 고소하기도 하고 한 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씨발 이 사단 나려고 날 차고 헤어졌나? 그 새끼랑 붙어 먹은 건가? 여튼 여자든 남자든 의리 없는 것들은 곁에 두면 안 된다. 이런 개 버러지 같은 일을!
“후우! 아유, 씨발! 이 년은 왜 자꾸 전화질이야!”
승미 이 병신 같은 게 자꾸 전화를 걸어 더 짜증이 났다. 이 년은 사귈 때부터 그랬다. 뭐든 남들 하는 건 다 해야 하고, 남들 눈에 주목 받아야 하지만 정작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그러니까 지가 뭘 먹고 싶은지도 결정 못하는 아주 정신적인 부분이 유아수준으로 퇴화한 년이었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스파게티 먹을래?’ 물어보면 싫다 하고. ‘고기 먹을래?’ 그러면 또 싫다고 하고. 그러면서 ‘오빠는 센스가 별로인 것 같아!’ 하고 재고 따지기나 할 줄 아는 개 같은 년 말이다.
아마 지금도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모양이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멍청하게 저게 사고 치면 수습을 내가 해주기도 했고. 그러니까 또 이런 사단이 났으니 나한테 연락한 모양이다. 이게 멍청해도 적당히 멍청해야 사람이 받아줄 요량이 있지, 진짜. 멍청한데다 이기적이고 이렇게까지 못되 쳐먹었으니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다.
“에이씨, 짜증나게 진짜!”
전활 안 받으니 문자를 보낸다. 이 병신이 갈아탔으면 그걸로 끝난 거지 뭔 지랄이야? 짜증이 나서 이 년 번호를 스팸으로 지정하고 차단 해놓으니 그제야 핸드폰이 조용해졌다.
“후.”
비싼 돈 들여서 세부 갔는데 쓰나미 만난 기분이다. 씨발 오늘 대길이라고 하더니 이게 뭐냐?
“참 나.”
허탈한 맘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자다 일어나서 맨 정신도 아니고, 얼빠진 상태서 이런 일 겪어 그런지 몰라도 맘이 좀 더 심란한 것 같았다.
“멍청한 년.”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롱 밖에 없다지만 정말 왠지 모르게 맘이 쓰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길, 이 년이 후회하는 날을 마주치면 이렇게 욕을 해주고자 했었다만 엄청 시원하지만은 않네. 정이란 게 참 무섭다, 무서워!
“몰라, 씨벨 것!”
왜 내가 이따위 년 때문에 맘 써야 하는 건데? 짜증이 울컥 솟아 올라서 한숨을 푹 내쉬며 티비를 켰다. 지현이에겐 연락이 오지 않았고, 아무래도 연락이 오진 않을 것 같았다.
“대길은 개뿔!”
맘이 착잡해진 가운데 나는 자기 전에 맞춰놨던 야구 채널을 보는 순간…….
“에라이! 이것도 나가리네!”
역시나……! 한화가 7회 말에 6대 1로 깨지고 있었다. 씨발, 역배는 무슨!
“안승민이네! 아 놔!”
순간 승미 년이 다시 한 번 맘을 흔들어 놓은 데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바뀌지 않는 토토운에 허탈한 맘이 들어 하루가 다시 축 늘어지는 것 같았다.
“술이나 마시자, 술이나.”
지금 내 꼴이 한화와 다를 게 없었다. 하, 씨발. 총체적 난국이네, 정말. 그래도 한화는 좋겠다. 생불 같은 팬들이라도 있어서. 누군가의 믿음을 저렇게 받고 있는데도 부응하지 못한다는 건 참 어떤 의미로 대단하기도 하다.
“에휴, 젊어서 퍼다 마시자! 그래!”
-칙!
피쳐를 까고 인생의 시름을 안주 삼아서 한 모금 마시니 그나마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크.”
새하얀 거품의 부드러움과 목구멍을 톡톡 쏘는 알싸함에 그나마 답답해졌던 속이 풀리자 생각이 여유를 가진 듯 했다.
“아니, 뭐 따지고 보면 그래. 이것도 길은 길이지. 씨발 승미 년 꼴 좋다. 개 같은 년. 아유, 속이 아주 그냥 시원하네!”
사실 정말 그렇게 깔끔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게 편하다. 아무리 안 좋게 헤어졌어도 한 땐 결혼까지 생각했던 년인데.
“언년이 같은 년.”
이것 봐라!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거 엄청난 행운 같다. 지금 당장은 좆 같긴 하지만 차팔이 덕분에 몸 안쪽으로 날아드는 빈 볼 같은 승미 년을 걸러낸 거 아닌가?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 년은 인생에 빈 볼 같은 년이었어. 벤치 클리어링도 사람 가려가며 해야지, 팔푼이 같은 게.”
그렇게 생각하니 좀 짠한 것, 왠지 찝찝하던 거 다 사라지고 맘이 개운해졌다. 원효대사 해골물이란 게 이런 거구나.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생각하기 따라서 다 다른 거야! 고맙다! 이 해골물 같은 년아!
“빠이빠이다, 요 년아.”
그리고 승미에게 보내는 맥주 한 잔을 컵에 가득 따라 마시니 때마침 안승민이 안타를 맞았다.
“아주 그냥 내 돈도 빠이빠이 하는구나.”
뭐 토토 분야는 이미 해탈했으니까. 5천원 가지고 15만원을 먹으려던 내가 나쁜 놈이다.
“에고고. 나가서 술이나 한 잔 빨고 싶은데…….”
진짜 오늘 같은 날은 정말 술 친구가 필요하단 걸 절실히 느끼는 바이다. 그렇지만 이 동네에 나랑 술 마셔줄 사람이 누가 있겠냐?
-꿀꺽.
“크으. 이거나 하나 다 비우고 그냥 일찍 자야지.”
그게 현명한 거다. 그렇지? 그 생각과 함께 세 번째 잔을 채웠다.
“한화 야구 하는 거 보니 내 마음이 너무 아프네, 진짜. 차마 내 눈 뜨고 못 보겠다, 이놈들아!”
그리고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케이블 예능 재방송이나 봐야지, 뭐. 그러고 앉아서 혼자 맥주를 홀짝이니 참 뭐라 말 할 수 없는 비참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게 정말 막 확 비참해서 ‘아 나 진짜! 씨발!’ 하고 꺼이꺼이 울 정도는 아니고……. ‘하아…… 씨발…….’ 딱 요정도?
세탁물에서 나는 세제 냄새처럼 은은한 비참함이 맴돌았다. 아, 계범도 표현 한 번 시적이다. 아트야, 아트.
-가슴을 패인 것처럼~!
그 순간 다시 핸드폰이 울었다.
“응?”
설마 승미 년이 다른 루트로 전화를 건 건 아니겠지? 그 생각에 인상을 팍 구긴 채 번호를 보니 낯선 번호였다.
“……씨발 이 년이 아직도 욕을 들 쳐먹었나.”
욱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더 알아 듣게 욕을 해줄 요량으로 통화버튼을 눌러보니……!
“너 이 개…….”
-오빠! 저 퇴근했어요!
승미 년의 우울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와 180도 다른 화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뭐라구요?
아! 지현이! 아까 번호를 저장 안 해놨구나!
“너 이……제 퇴근 하니? 하고 물으려고 했지!”
아유 씨 깜짝이야! 조금 당황했지만 사나이 계범도 임기응변에 능숙한 남자! 백령도 출신은 뭐가 달라도 다르지? 재빠른 나의 임기응변에 전화를 건 지현이가 다시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네! 저 이제 퇴근해요! 오빠는 뭐 하고 계셨어요?
“아……. 나는 그냥 집에 있는데…….”
-아, 그렇구나……. 그럼 혹시 저녁은 드셨어요?!
그리고 지현이가 내게 물음을 던졌다. 그 물음에 나는 얼떨떨한 기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직. 저녁 먹긴 좀 이르니까…….”
-그럼 저녁 같이 드실래요? 오빠!
“어?”
아까 지현이가 다시 전화 한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는데도 참……. 이 어린 친구가 그래도 약속을 지켜주니까, 그리고 지금 혼자 있기 정말 싫었는데 이렇게 연락을 해주니까 왠지 모르게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특히 해골 물 같은, 빈 볼 같은, 언년이 같은 승미 년과 180도 다른 모습이다 보니 더더욱 말이다.
“그래! 오늘 너 고생 했는데 오빠가 맛있는 거 사줄게.”
사람이란 게 참 나이 들수록 이런 사소한 거에 고마워지고 감동 받는 거다. 비록 월급 일주일 전이고, 돈은 없지만 걔 하나 내가 못 먹이겠냐? 고맙다, 지현아!
-아니에요, 오빠! 제가 사드려야죠! 그러면 어디에서 볼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찬 아이는……! 아, 감동 그 자체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애가 있다니!
“거기 종합청사 앞에서 보자! 금방 나갈게.”
-네! 천천히 오세요, 오빠!
“그래! 그럼 내가 5시 30분까지 갈게!”
-네! 이따 봬요!
“그래, 알겠어.”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아, 세상에! 세상에나 세상에! 정말 승미 요 년한테 감사해야겠다. 승미 년이랑 비교해보니 이렇게 천사 같을 수가!
물론 속단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기분이 좋았다. 대길이라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 아니지만 마무리만큼은 좋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토토는 벌써 나가리가 된 것 같다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사람운 만큼은 좋은 것 같았다. 어쩜 오늘 내가 만난 최대의 행운은 다른 게 아니라 요 식당 알바생이 아닐까?
이 타이밍이 너무 드라마틱하다 보니 아, 굳게 닫혔던 맘이 또 이성적으로 끌리려 하는 감도 적잖다. 하지만 그건 안 돼, 계범도! 지현이는 너무 착하고 좋은 애고, 또 어리니까 지켜줘야지.
“건전하게 놀아야겠다. 건전지인 줄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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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킹, 드립의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