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럭키가이-7화 (7/120)

<-- 7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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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걸로 밥이나 먹을 걸 그랬나?”

막상 토방을 나서고 나니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밀려왔다. 지갑 안에 들어 있는 말도 안 되는 배당금을 생각해보면 이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토토 좀 해봤다 하면 백이면 백 다 알지. 이런 로또 뱃이야 말로 돈낭비란 것을!

괜한 짓을 했나 싶기도 한데 그래도 혹시나 이게 4900만 원짜리 종이가 될 줄 누가 알겠냐? 세금 22%떼면 한 3800만 원 정도 나오나? 푸하핫! 될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이 혹시나 하는 생각만 해도 기분은 좋다. 대길이라는 문구가 자꾸 떠올라 혹시나 싶지만 그럴 리 없지.

대길이는 추노에서나 보는 거니까.

“에라, 밥이나 먹으러 가야지!”

그래도 왠지 모르게 기분은 좋았다. 간밤에 뒤숭숭한 일 겪고 찝찝하다가 대길이라는 문구 하나가 이렇게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들 줄 누가 알았겠나? 지난 밤 일은 또 지워 버리고 그냥 그렇게 편히 사는 거지, 뭐.

그리고 슬리퍼 질질 끌고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삼만원 밖에 없으니 불백이나 하나 먹고 남은 돈으로 대강 장보고 들어가야지.

-딸랑딸랑.

“어서오세요!”

“이모, 여기 불백 하나만 줘요.”

“네~! 잠시만요!”

들어가자마자 주문을 하니 처음 보는 여자가 경쾌한 얼굴로 대답했다. 대학생인가? 어설프게 앞치마 두르고 일을 하는 것을 보니 이 가게 이모 조카거나, 아니면 알바를 구했거나 한 모양이다. 종종 와서 먹긴 한다만 그렇게 단골은 아니다 보니 누군지 내가 또 알게 뭐냐?

“불백 가져다 드리면 되죠?”

“네, 맛나게 2인분 같은 불백 1인분이요.”

일이 익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 들떠 보이는 얼굴이 꼭 내 20대를 연상케 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와 과하지 않은 화장이 발랄한 얼굴과 어울려 무척이나 풋풋해 보였다. 젊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끌릴 법 한 고운 용모였다만 지금의 난 현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

귀엽게 생긴 건 사실이나 승미 년 때문에 당분간 여자는 오만정이 떨어져 만날 생각이 없다. 당분간이라 함은 결국은 또 여잘 찾게 될 나의 남자 본성을 이기지 못 할 것이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어쨌거나 그렇다. 헤어진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그 오라질 년 때문에 맘에 스크라치가 너무 크게 생겨서 참. 이젠 어떤 여잘 봐도 끌리진 않는다. 물론 섹스를 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다. 이제 난 여자랑 같이 하고 싶은 건 섹스 밖에 없는 상처 입은 짐승이 되었다. 쳇.

“뭘 사면되나.”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다. 집에 도통 뭘 사다 놓으면 좋을지가 문제가. 어차피 쌀이야 있어봐야 해먹지도 않을 거고, 햇반이나 기타 등등을 사다 놓으면 되는 건데.

“서럽다, 서러워.”

혼자 사는 게 편하긴 하지만 간간히 서러울 때가 있다. 바로 이런 때 말이다. 뭘 해먹어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지치고,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자니 내 몸이 축나는 게 그대로 느껴지지 않는가? 여자가 있던지 없던지 보양식이 베스트 초이스인 나이인데 말이다.

“불백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손님.”

“아 예. 걱정 말고 천천히 가져다 주세요.”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참 알바생이 인사성도 밝고 싹싹해 보였다. 어린 나이와 함께 맞물려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었다만 이젠 그런 것도 믿을 수가 없다. 승미 고 년도 그랬거든. 처음 봤을 땐 정말 한 없이 순수하고 맑은 줄만 알았다.

영수가 조무사는 별로라고 했을 때 얜 다르다 했던 내가 등신 팔푼이였지. 물론 조무사 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단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이거지. 대체로 할 게 없어서 그 일로 내몰린 사람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단 거다. 설마 승미 고 년이 술을 그렇게 좋아하고, 술 마시면 남자한테 꼬리치는 성격의 소유자일 줄 누가 알았겠냐고.

“후.”

생각하니 또 한숨이 한 가득이다. 물이나 마셔야지.

“야, 여긴 물도 안 가져다 주냐?! 응?!”

아우 깜짝이야! 내가 얘기한 줄 알았네!

막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가지러 가려던 나는 뒤에서 들려온 진상의 기운에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목소리 들어보니 딱 낮술 한잔 자시고 젊게 살고 싶은 마음에 깽판 치는 노친네일 것 같다.

“아주 그냥 서비스가 엉망이야! 엉망! 시킨 지가 언제인데 음식도 안 나오고!”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아주 그냥 입에 불평불만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자존감 떨어지고, 열등감 센 사람들이 그런데 이 사람들 특징이 바로 저런 거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은 없고, 누려야 할 권리만 있다 보니 지 돈 내면 어딜 가서든 진상을 부린단 거다.

“죄,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손님!”

“그 소릴 벌써 몇 분 째 하는 거야!”

-쾅!

세팅된 반찬들이 들썩일 정도로 세게 테이블을 내리치는 남자는 역시나 내 예상대로 머리가 벗겨졌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젊을 때 꽤나 날려줬나? 그런 게 아니라도 나이 꽤나 먹어 보이는 영감은 등빨이 좋았다. 키는 작았지만 팔뚝도 나이에 비해서 튼실한 것이 힘 좀 쓰고 살아온 것 같았다. 뭐 건달 아니면 막일이겠지. 이 대낮에 술 자시고 식당에 와서 소란 피우는 꼬라지를 보니 예사 영감은 아닌 것 같았다.

니미 나이를 똥구멍으로 쳐드셨나?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손님들이 많아서…….”

“내가 여기 온 지가 얼마나 오래 됐는데!”

-쾅!

다시 한 번 테이블을 두드리는 걸 보니 알바생이 쫄아버린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지 손녀뻘 되는 애한테 뭐하는 짓이냐?

“저, 정말 죄송해요! 금방…….”

“됐어! 이런 거지 같은 가겔 봤나! 손님이 왕이란 말도 몰라? 서비스가 아주 엉망진창이네, 엉망!”

특히나 저런 인간들의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는데, 자기보다 약한 사람이거나 곤란한 입장의 사람을 만나면 저렇게 독하게 이빨을 들이댄단 거다. 이, 혹은 치아 아니고 이빨 맞다. 난 저런 것들 인간 취급 안 하거든.

아무튼 일진 할배가 자꾸 난리를 피우는 통에 먼저 들어와 밥 먹고 있던 사람들도 여간 불편하단 눈치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보아 하니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저 난리를 피우는 것 같다.

“이런 썅노무 자식들이 어디 손님을 우습게 보고 말이야!”

아, 점점 나도 야마가 도는데. 저거 그냥…….

“죄송해요!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하지만 참자. 이제 나도 33살이다. 누울 자리 구분은 해야지. 아무리 경우가 드러워서 울컥하고 솟아나도 저런데 엮이면 내 손해다. 쩔쩔 매고 있는 알바생을 보니 맘이 참 편치는 않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냐?

“고생 많네요.”

지나가며 위로의 한 마디를 던지니 난처한 얼굴을 하던 알바생이 그래도 활짝 웃음 지어 보였다. 승미 년의 가식적인 미소와는 달라 보였지만 그것 또한 장담은 못 할 테지.

“씨부랄 것들! 날 아주 우습게 봐! 손님이 왕이라고, 왕!”

뭐가 그리 불만이 많은지 혼자 투덜거리던 맘만은 10대 양아치와 동급인 일진 할배가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진짜 한 판 뒤집어 버리고 싶은데 울 아버지 뻘이라서 내가 참는다.

“여기 있어요!”

그 사이에 식당서도 저 영감 먼저 달래고 보내는 게 낫겠다 생각했던 모양이다. 알바생이 땀을 뻘뻘 흘리며 설렁탕을 날랐다. 일찍 온 사람들이 불평 할 법도 한데 다들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홀에서 혼자 고군분투 하는 알바생이 좀 짠해 보였던 모양이다.

“맛있게 드세요.”

“흥!”

심사가 꼬여도 어쩜 저리 꼬였을까? 나이 값 좀 하지. 그래도 손님이라고 공손히 인사 하는 알바생에게 콧방귀를 끼고는 거만한 얼굴로 숟가락 집는 영감의 모습은 존중, 존경, 공경이라는 단어를 가져야 할 대상과는 철저히 거리가 멀었다. 저거 나이만 쳐먹었을 뿐이지 진짜 양아치랑 다를 게 뭐냐?

-챙그랑!

“이게 맛이 왜 이래! 누굴 정말 똥으로 아냐! 야! 사장 나오라 그래!”

아무래도 저게 시비를 트려고 작정을 하고 온 모양이다. 와, 세상에 저런 영감이 정말 실존하는구나.

“무,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정신 없이 바쁜 와중에 자꾸만 진상 손님 하나가 지랄염병을 하니 알바생이 울먹이는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맛이 없잖아, 맛이!”

-쾅!

그리고 또 테이블을 내리치는 영감. 아, 저게 진짜 여기가 자기 혼자 쓰는 데인 줄 아나? 순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에 뭔가 욱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썅! 편안한 맘으로 밥이나 먹으러 왔더니 내가 왜 이런 불편한 꼬라지를 봐야 하냐?

“손님, 자꾸 이러시면 곤란하죠!”

그 소동에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던 식당 주인도 팔을 걷고 밖으로 나왔다. 한창 바쁜 와중에 이런 일이 터지니 짜증이 난 모양이다. 다소 신경질적인 음성에 일진 할배가 열이 뻗었던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결국 테이블을 엎어 버렸다.

“뭐야?! 이것들이 손님을 뭘로 보고!”

-우당탕!

“아, 진짜!”

그리고 그 순간 내 인내심도 뚝 끊어져 버렸다. 씨파, 사나이 계범도! 이런 좆 같은 경우는 내 성격 상 못 참아주겠다. 웬만해서 연장자한테는 안 그러겠는데!

“어이, 할배! 지금 여기 전세 냈어?”

“뭐, 뭐야?!”

“손님이 왕이라고? 그럼 왕끼리 한 판 붙어보자! 씨발 나이를 쳐드셨으면 곱게 쳐드셔야지, 왜 지랄염병이야? 다른 왕님들 밥맛 떨어지게! 왕끼리 매너 좀 지키자고 씨부랄 영감탱이야!”

어젠 내가 술도 많이 마시고 급 똥 실려서 좀 약한 모습 보였다만……. 이런 말 하기 뭣 하지만 나 학교 다닐 때 꽤 치고 다녔다. 최대 2대 2로 싸워서 이긴 적도 있단 말이다!

“너, 넌 뭐야?!”

나의 등장에 영감이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아마 지도 지 성격을 못 이기고 엎어버리곤 좀 놀란 모양이다.

“뭐긴 뭐야! 다른 나라 왕이지! 할배 손녀 뻘 되는 애 앞에서 이게 무슨 개지랄이요? 돈은 댁만 냈나? 여기 사람들 다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씨바 밥을 먹으러 와서 불편한 맘만 먹고 가면 되겠냐고!”

설마 내가 저 작은 영감 주먹질에 당하겠냐? 그리고 주먹질이야 애들용이다. 어른들의 싸움이란 ‘어휴! 이게 정말!’ 까지만 일 뿐이다. 그 다음은 무서워서 함부로 하지 못한다.

게다가 저기 저런 영감들.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이나 골라서 지랄하고 진상 부리는 종류의 사람들은 나 같이 젊고 등빨 있는 놈 앞에선 어쩔 줄 몰라 한다. 허세 부리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지금 일진 할배가 다소 당황한 듯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사장님, 소란 키우지 말고 경찰 불러요. 이거 영업 방해 행위에 해당 되니까 법적으로 처리 합시다. 어요, 할배! 깽판 부렸으니까 그 정도 배짱은 있지?”

“이, 이 새파랗게 젊은 놈이!”

“뭐? 그럼 댁은 시뻘겋게 늙은 영감이야? 꿀리니 나이 밖에 내세울 게 없소? 부끄러운 줄 아쇼! 애 앞에서 안 좋은 꼬락서니 세트로 보여 주시네! 나 같으면 지금이라도 아유 내가 많이 취해서 실수 했다, 미안하다 하고 넘어가겠다. 그런 생각은 아예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거요?”

씨바, 내가 한때는 이빨로 국빈관, 한국관 등 관급 나이트를 주름 잡았던 계말빨이다 이거야! 그 말에 순간 욱한 듯 영감이 “이 씨부럴 놈이!” 하고 내게로 달려들었다.

“뭐야! 지금 나랑 해보자 이거야?!”

아 나 진짜! 밥 쳐먹으러 와서 이게 무슨 꼴이야?! 참지 못한 탓도 있지만 대길은 개뿔! 이런 씨!

선빵으로 죽빵이라도 날리고 싶다만 아버지 뻘 되는 양반을 차마 칠 수는 없었다.

“그래, 어디 한 번 쳐보쇼! 영감 치고 경찰서 가자! 가중 처벌 받아서 어디 한 번 빵에 다녀오시던가 하자고! 쳐 봐! 쳐 보라고! 돈 많으면 쳐보라니까! 어여, 어여!”

“이, 이이이!”

대신 영감 머리통 터질 때 까지 약을 바짝 올려줄 수는 있지! 당당히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강짜를 부리니 결국 영감도 주먹질까진 하지 못했다. 분을 이기지 못해 내 멱살을 붙잡긴 했으나 그 다음은 어떻게 문제를 만들 텐가?

“지, 진정들 하세요!”

그 와중에 겁을 먹은 듯 한 알바생만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아, 괜찮으니까 빨리 경찰부터 불러요.”

“부르긴 뭘!”

“왜? 경찰 오면 쫄리나봐? 할배! 그럼 자기가 잘못한 줄은 아나 보네. 사장님! 뭐 합니까? 신고 안 하시고.”

그 말에 일진 할배도 겁을 먹긴 먹은 모양이다.

“내 더러워서!”

버럭 성질을 내며 날 밀치고는 식당 의자에 걸어둔 재킷을 들고 도망치듯이 걸음을 옮긴다.

“어딜 도망쳐?! 나이 똥구멍으로 쳐 먹은 영감아!”

“애미 애비도 없는 새끼!”

“지난달에 안마 의자 사드렸다, 손자자식도 없을 영감아! 부럽냐!”

도망치면서도 악담을 늘어놓는 영감이라만 내가 질 거 같냐? 하지만 서까지 가서 끝장을 볼 생각은 없는지라 도망치는 영감을 두고 그리 소리를 지르자 분한 얼굴로 영감이 날 노려 보았다.

“너 밤길 조심해라! 이 씨불 놈아!”

“니 앞길이나 조심하세요. 주정뱅이 영감아!”

하지만 세상에 말로 날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 엄니밖에 없다. 그 어떤 존재도 날 말론 이기지 못한다. 내가 누구냐?! 사나이 계범도! 20대가 되면서 주먹질을 함부로 못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 주먹 대신 갈고 닦은 말빨의 소유자가 아니더냐!

“에잇, 더러워서! 퉷!”

“사장님! 소금 없수? 다신 못 오게 소금이나 팍팍 뿌리시지!”

“너 이!”

“뭐?”

내가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렇게 기가 약한 사람이 아니다. 결국 일진 할배가 식당을 도망치는 것으로 점심시간의 소란은 마무리 되었다. 일진 할배가 도망쳐 나가자 마자 식당에서 밥을 먹던 손님들이 짝짝짝 박수를 쳤다.

“이야! 진짜 말 잘 하시네요!”

“용감하시네요!”

아무래도 사람들 모두 답답했던 모양이다. 물론 난 애미애비 없는 놈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냐?

“아유, 고마워요! 정말 난감했는데!”

“감사합니다!”

“저런 사람 나오면 망설이지 말고 경찰 부르세요, 이모. 여기 이모랑 또 여자 알바생만 있으니까 괜히 더 저러는 거야. 경찰 오면 찍소리도 못 한다니까.”

사람들도 좋아하고, 식당 이모와 알바생도 감사를 표했지만 사실 맘은 그리 편치 않았다. 왜 그런 거 있잖아? 괜히 싸울 것 같은 흥분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러다 막상 이겨도 막 뒤가 구린 그런 기분. 암만 진상이라도 아버지 뻘인 사람이랑 싸워서 이긴 게 그렇게 통쾌하지만은 않다.

“에휴, 아무튼 이거 좀 치우셔야겠네.”

“아, 이건 제가 금방 치울게요!”

“정말 죄송들 합니다! 금방 정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모와 알바생이 일진 할배가 엎은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자리에 앉은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니, 대길이라더니 이게 뭐냐?

“역시 대길이는 추노에서…….”

좋았던 기분도 다 망친 셈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엎어진 밑반찬들 치우면서 알바생이 정말 고맙단 눈빛으로 인사를 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런 일 또 있으면 그렇게 계속 죄송하다고만 하지 말고 빨리 이모나 불러 와서 경찰 부르거나 배달하는 아저씨한테 말 해. 저런 진상들이 어리고, 또 여자니까 우습게보고 그래서 더 큰소리치는 거거든. 어린데 고생이 참 많네. 그래도 이것도 경험이라 생각하고 잘 하고.”

“네! 정말 감사합니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그냥 별 일 아니다 하면 되는 걸 이렇게 길게 말하고. 어쨌거나 알바생이 그래도 정말 성격 좋고 싹싹한 모양이다. 이런 일 겪고도 저렇게 싹싹하게 인사를 하니 나빠졌던 내 기분도 좋은 일은 했다 싶어 다시 좋아지는 듯 했다.

“그래, 뭐. 안 나쁘면 그게 대길이지 뭐냐.”

그래, 인생이 별 거냐? 그냥 이런 일 있어도 기분 풀리고, 보람 있다 하면 그게 운수가 좋은 것이지.

“아, 근데 여기 리모컨은?”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잠시만요!”

도움을 줘서 그런지 몰라도 알바생이 그릇들을 치우며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귀여운 얼굴이 참 보기만 해도 절로 흐뭇해지는 것 같았다.

“여기 있어요!”

그리고 금방 알바생이 아까 일진 영감이 앉아 있던 옆 자리 의자에서 리모컨을 가져왔다.

“오, 땡큐. 땀 좀 닦고 쉬고 해.”

그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도 하고, 한 편으론 안쓰럽기도 하고. 반반의 기분을 느끼며 나는 티비 채널을 돌렸다. 티비엔 뉴스 나오고 있었는데, 바로 그 옆에 리모컨이 있었던 걸로 미뤄 보았을 때 아마 그 영감이 틀어놓았던 모양이다.

“드라마 채널이…… 여기구나.”

“드라마 보시나봐요?”

뒷정리를 서둘러 마무리 짓던 알바생이 힐끔 날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아유, 귀여운 것. 딱 여동생 삼았으면 좋겠네.

“응.”

하지만 뭘 더 바라겠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KBS 드라마 채널에 채널을 고정 시켰다. 그리고 티비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언년아!

“오늘은 대길이 봐야 되거든.”

============================ 작품 후기 ============================

진상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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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는 스포츠와 별개입니다. 결과만이 중요하거든요. 후후후... 그래서 맨날 털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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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스트레스 풀리는 글은 진짜 오랜만이네요! 머리 안 굴려도 되는 이 느낌 오랜만에 맛보니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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