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회: 럭키 가이! -->
* 이 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혀 생각 없이 쓰는 가벼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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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
맑은 소주잔 소리가 울렸다.
“자, 건배!”
그리고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같이 마시고 죽읍시다! 자!”
나는 그 목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아무 일도 없는 척 말했다.
“오케이! 계범도, 인마! 파이팅 있게 달려보자고! 알겠지?!”
“예써! 부장님! 시동 겁니다! 부릉부릉!”
“으하하! 그래, 역시 이래야 계범도지! 자, 다 같이 들자고! 자자!”
익살맞은 한 마디에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아, 그래. 애도 아니거니와 사회에 몸 담은지도 어언 10년. 내 상처 있다 한들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
-꿀꺽!
“크! 달다, 달아! 계대리 한잔 더?!”
“크으!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아닙니까!”
달긴 커녕 씁쓸함이 맴돌아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회식 또한 업무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단지 고객이 아니라 상사를 서비스 마인드로 대해야 하는 차이가 있을 뿐. 결코 방심하지 말자, 계범도.
이제 넌 더 이상 뜨내기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그런 일에 휩쓸리지 말자.
-벌컥!
“크! 이야, 계범도 오랜만에 달린다잉! 한동안 술 마시는 꼴 보기가 힘들더만!”
“노병은 죽지 않습니다! 단지 사라질 뿐! 한 잔 더 받으십쇼, 부장님!”“좋다! 그래! 요즘 계범도 무슨 일이 있나 싶었더니 술이 고픈 거 였구만! 술이!”
“계대리님, 부장님이랑 너무 격하게 달리시는 거 아닙니까? 조금 슬로우 하게 가시는 게 어때요?”
그나마 내 사정 알고 있는 영수가 걱정스런 말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걱정마라, 영수야. 이 형이 어디 그 정도로 약하더냐?
“걱정마라. 내가 언제 민폐 끼치는 거 봤니? 이 형,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 아니다. 한 때 간에 필터를 단 사나이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할 뻔 했다고.”
“으하핫! 역시 계범도! 요놈, 요거 말 빨 하나는 정말 끝장 아니냐! 그래, 영수야! 걱정하지 말고 들이 부어 마셔버려!”
그 말에 하하 웃음 터뜨리며 고개 끄덕이는 영수였다. 안 웃겨도, 마지못해 웃어줘야 하는 것이 바로 회식이거늘.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김부장은 좋다고 함박 웃음이다.
“자, 그런 고로! 원 샷 노 브레이키! 사요나라 베이비!”
“아! 영수야! 자리 좀 바꿔줘라! 계대리, 오늘 완전 무섭다!”
영업 일 하면서 느는 건 인내와 주량밖에 없거늘, 어디서 약을 팔어? 이 양반이!
“오늘 집에 못 가십니다. 부장님!”
술 좋아하기로 소문난 부장인 만큼 강인하고 단호하게 한 마디 내 뱉으니 김부장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귀를 뚫어줘야겠다. 입 좀 걸고 다니라고.
이러다 분명히 김부장은 간경화 아니면 간암 같은 것으로 사망에 이를 것이다. 작작 좀 마셔라, 이 술 귀신아!
“자, 자자! 그래! 오늘 내가 계범도 봐서 끝장을 본다! 자, 다 같이 한 잔 더!”
하지만 이 술 귀신이 그걸 마다 할 리 없지. 후. 아무리 힘들고 버거워도 이 앞에서 무너지진 않아. 이깟 술도, 실연도 내 마음에 생치기 하나 낼 수 없다고.
-챙!
“원 샷!”
사나이 계범도. 그런 것 따위로, 그런 것들로 절대로 무너지지 않아……!
* * *
“왜…… 내가 대체 뭐가…… 왜……!”
“임마! 계범도! 정신 차려봐! 범도야!”
“으으으……. 부장님, 한 잔. 따악 한 잔만 더 합시다…….”
“얌마! 너 지금 혀가 꼬부랑 할머니야, 인마! 정신 좀 차려 봐! 정신!”
남자의 이별 후유증은 그렇다. 첫 날, 아무런 감흥도 없다. 그 다음 날, 그리고 그 다 다음날까지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러다 문득 일주일째, 나 홀로 맞이하는 첫 주말을 시작하게 되면서 이별이 피부로 와 닿는 것이다.
그게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약 한 달에 이르렀을 때 후유증의 강도는 최고도에 달하게 되고, 연애에 몰입했던 기간과 감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리고 헤어질 때 입었던 충격이 크면 클수록 그 충격은 감히 벗어나기가 어렵게 된다.
“왜! 도대체 내가 뭐가 모자라서! 이런 씨발! 부장님! 예?! 내가 뭘! 비전이 없어?! 이런 씨! 비전, 씨봘! 그게 뭔데!”
결연한 맘으로 시작한 술자리이건만 결과는 이 모양이다. 술은 진정제라 했던가? 평소 억누르고 있었던, 본능을 억누르고 하는 이성을 진정시켜 주고 그로 인해서 해방된 본성은 이렇듯 직장 상사 앞에서 추태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실연이란 나이가 많던지, 적던지 그렇게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긴 그걸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놈이 어디 있겠냐?
다만 군 전역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23살부터 사회생활 경력도 어언 10년차. 그리고 서른 넘기면서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무던한 맘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했지만 참 그거 쉽지 않았다.
“하아……. 결혼도 생각했는데……. 진심으로…… 씨빨…….”
한 살, 한 살 나이는 먹어 가는데 어른 되는 느낌은 없고 이것 참. 나이 헛으로 먹는단 게 이런 건지, 아니면 나만 이러고 있는 건지. 아직 마음은 그대론데 몸과 나이는 늙어만 가고 있단 서글픔만 밀려올 뿐이다.
“글쎄 계대리님, 여자친구랑 헤어졌답니다! 그 된장 년이 바람이 났데요!”
회사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이야기를 꺼냈던 게 후임 영수다. 그 사정 알고 있는 여수가 오해 말라는 듯 재빨리 이야기를 꺼내자 김부장이 상당히 놀란 얼굴을 해보였다.
“뭐야? 그게 정말이야? 어쩐지 그래서 저 똘망한 계범도가 요즘 개판 오 분 전이었구만. 야, 계범도! 계대리 인마! 그런 일이 있었으면 미리 얘길 해줬어야지, 자식이! 그래서 술을 그렇게 들이 부었구만! 아이구, 화상아!”
“우우……. 아직 끄덕 없습니다…….”
1차 회식 자리 보내고, 2차로 온 포장마차. 일차에서 둘이서 깐 소주가 3병이고, 2차에서 같이 깐 게 4병. 도합 7병.
“없긴 개뿔! 영수야! 안 되겠다! 여기 계범도 부축 좀 해줘라! 이거 지금 이래가지고 집에는 제대로 들어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예, 부장님! 계대리님, 일어나시죠!”
“으음…….”
진짜 나도 나지만 김부장도 김부장이다. 둘이서 깐 소주만 한 7병인데 아직 목소리도 행색도 멀쩡하다. 필시 저 인간의 간은 특수 재질로 만들었다거나 몸에 알콜 여과 장치가 있는 게 틀림없다. 술 센 상사를 두고 있단 게 상당히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만, 이런 경우엔 종종 이득을 보기도 한다.
아마 이제 내 속사정을 알게 되었으니 허구헌날 날 불러서 위로주 명목으로 술을 사다 먹일 것이다. 물론 내 몸 축내고, 또 내일이 디립다 피로해지겠지만 그거라도 마셔줘야 속이 풀리지.
“음……. 죄송함돠……. 부장님……!”
“미안하려면 영수한테 미안해야지! 계범도, 아직 정신은 있지? 집에 들어갈 수 있겠어?”
“오브 콜스! 폴 스콜스!”
“으하핫, 이거 취해도 입 털썩 이는 건 여전하네! 그래, 그만하면 집은 잘 찾아가겠다!”
막말로 회사에선 좆같은 직장 상사라지만 이런 자리에선 그래도 인생 선배였다. 사나이 계범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잔 생각으로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제 몫은 톡톡히 해왔던 터라 김부장도 날 상당히 아끼는 편일 것이다.
아니, 그런 걸 떠나서 회사 생활 해보면 알 거다. 상사든 후임이든 말이라도 통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그러면 영수야. 계대리, 잘 들어가게 택시 좀 잡아 줘라. 이걸로 택시비 하고. 너도.”
그런 의미에서 포장마차까지 온 나나 영수나 김부장 요 라인이 우리 회사 남자 사원 중에선 제일 진국일 것이다. 최소한 귀찮아도 남들한테 피해는 안 주려고 할 만큼은 하는 사람들이니까.
“아, 아닙니다! 부장님! 택시비 있습니다!”
“됐어, 인마! 넣어둬! 택시비로 쫑코 먹고 싶냐?”
“아,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부장님!”
다른 건 몰라도 김부장이 이건 좀 좋은 것 같다. 주당이라 사람 좀 괴롭게 술을 먹여서 그렇지, 뒤는 참 잘 봐준다. 물론 술에 쩔어 있는 날 처리하는 건 영수 몫일 것이다.
“그러면 다음 주에 보자, 범도! 영수!”
먼저 손을 들어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그를 보며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가십쇼…….”
“오냐! 늦지 말고 출근이나 제 때 잘 해!”
쿨하게 인사하고 사라져 버린 김부장을 뒤로한 채 영수가 날 부축하던 손을 바로 잡았다.
“음……. 괜찮다, 가 봐라! 영수야!”
“형님 차타고 가는 거 보고 가야죠!”
괜한 존심 부릴 이유야 없다만 참 술이란 게 그렇다. 오묘하게 이런데서 자존심 부리고 싶게 만든다.
“후……. 그냥 저기까지만 부축해줘라. 요 앞에 택시 바로 보이네…….”
하지만 그런다 한들 무슨 소용이련? 이방원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고 정몽주에 시를 보냈다지? 난 엄연히 이방원과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냐? 괜한 존심으로 혼자 가겠다 뻐튕기는 것보단 이쪽이 더 덜 피해 주는 것을.
“……고맙다.”
“뭐가요, 형님! 당연히 하는 일 하는 거죠!”
“택시비는…… 너 챙겨 가람마.”
“에이, 부장님 주신 건데…….”
“마! 사나이 계범도, 라스트 존심은 지켜줘라!”
최소한 그 정도는 내 힘으로 해야지. 술에 꼴아 있어서 솔직히 나도 좀 불안하긴 하다만, 아직까지 불안감이 있단 것은 정신력으로 버틸 순 있단 것이다. 물론 집에 가서 완전 나가리 되겠지.
“그럼…… 다음에 이거 아껴뒀다가 좋은데 같이가죠, 형님!”
“가긴 어딜 가……. 토방이나 가서 토토나 긁자……. 터지면 그걸로 시원하게 안마나 쏘는 거야! 쉬발…… 난 이제 자유의 몸이잖아!”
“예, 형님!”
큭큭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영수.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먼저 간다. 월욜에 보자…….”
“예, 형님! 잘 들어가십시오! 내일 보겠습니다! 아저씨, 과천 중앙동 빌리지 타운으로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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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1인칭으로 돌아왔습니다. 뭔가 맘이 한결 가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