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불편한 시선
규빈 오빠가 보내온 문자를 보며 잠깐 가슴이 쿵 했다. 결혼식에도 오지 않고 브라질로 떠나버린 규빈 오빠가 1년 반 만에 돌아온 것이다.
분명 오빤데, 왜 오빠의 문자가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는 걸까?
나는 간단하게 문자에 답했다
[멀리는 못 가요. 우리 태성이가 나 없으면 자꾸 보채서요.]
그러자 바로 다시 전화가 온다. 전화를 보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오빠. 잘 지냈어요?”
어색한 공백이 잠시 전화기를 타고 흘렀다. 그건 지나간 과거의 혼란이 가져다주는 공백이었지만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태성이 두고 나오기 힘들면 태성이 데리고 나오면 되겠네.
“그러지 말고 차라리 오빠가 우리 집으로 오시겠어요?”
- 사돈어른도 계시고 그건 내가 좀 불편하다.
“그럼 내가 우리 태성이 유모차 태우고 갈게요.”
아기 데리고 나가려니 태성이가 잠이 들었다.
“태성이 자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어요?”
“이제 막 잠들었는데, 잠투정이 심해져서 칭얼대다가 이제 겨우 잠들었어요. 사모님 왜요?”
“아니 태성이 데리고 잠깐 나가려고 그랬는데 안 되겠네요.”
“사모님 오늘은 안 되겠어요 저렇게 막 잠들었는데 깨웠다고 계속 칭얼거릴 거예요.”
아이를 돌봐 주는 아줌마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저 상태로 데리고 나갔다가는 울고불고 생떼를 드릴 테니 말이다
집에 있던 것보다 조금은 단정하게 하고서 가야 할 것 같아서 간단한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머리를 빗었다. 늘 고수하는 생머리가 그동안 손질을 안 했더니 어깨까지 길게 드리웠다. 단단하게 머리띠를 하고 립글로스를 바르고 거울을 보니 조금 더 생기 있게 느껴진다.
자연석 돌계단을 내려가 대문을 나서자 기사가 인사를 한다.
“사모님 어디 가세요?”
“잠깐, 요 앞에 가요. 차타고 갈 거리도 아니니 걸어갔다 올게요.”
“네, 다녀오십시오. 사모님. 그런데 회장님이 혹시 찾으시면 뭐라고 말씀드릴까요?”
할아버지는 요즘 잠자는 시간이 길어서 주무실 때는 어디 나가도 인사도 잘 하지 않고 조용히 다녀온다. 그러나 내가 없는 동안 깨워서 나를 찾거나 하실까 봐 기사가 묻는 말이었다.
“요 앞에 공원에 갔다고 해 주세요. 잠깐 산책하고 올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따라갈까요?”
기사가 묻는다. 라울은 나 혼자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먼 곳에 가거나 할 때는 꼭 경호원이 대동했는데 나는 웬만한 장소에 가는데 경호원과 함께 가는 건 익숙하지가 않아서 싫었다.
더구나 지금은 사촌 오빠를 만나러 가는데 경호원과 함께 가는 건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기사의 말에도 그러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괜찮아요. 잠깐 그냥 잠깐 다녀올게요.”
그렇게 말하고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공원으로 걸어갔다.
성북동에 주택가에는 마땅한 카페가 없다. 커피전문점으로 가려고 해도 차를 타고 조금 나가야 해서 선택한 게 공원이었다.
공원 입구에 가자 산책로를 따라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 다닌다. 그러고 보니 퇴근 시간 때가 되어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요즘은 퇴근 후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녁 시간에도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 사이를 따라 걸으며 첫 번째 벤치에 다다르자 규빈 오빠가 보인다. 스페인에서 봤을 때는 얼굴이 하얀 귀공자 같았는데, 지금 보니 얼굴이 많이 그을려 있다. 게다가 머리도 짧게 잘라서 다부져 보이는 인상이 예전과는 다르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오빠를 보니 규빈 오빠도 나를 보고 웃는다. 아버지 집에서 나도 이랑이를 좋아한다고 소리치는 오빠를 보고 그 뒤로 처음이었다.
그때는 아버지를 처음 만났고 내가, 네 아버지라고 하는 말에 놀라서 규빈 오빠의 마음 같은 건 생각도 못했지만,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디아나.”
오빠가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온다. 아직도 디아나라고 부르는 걸 보면 처음을 어떻게 불렀느냐에 따라 부르는 호칭도 굳어지는 거 같다. 아빠는 늘 이랑이라고 부르는데 말이다.
“규빈 오빠, 더 멋있어 졌네. 오랜만이에요.”
나는 익숙하게 오빠라고 불렀다. 사실 이 오빠라는 말은 규빈 오빠에게 문자를 받은 후로 계속 연습해서 더 익숙하게 나올 수 있었다
“힘들게 왜 여기까지 와요? 내가 한남동 갈 때 같이 봐도 되는데.”
내 말에 오빠가 씩 웃는다. 웃는 얼굴이 멋지다. 조금 더 단단한 남자 같은 느낌이랄까? 이전의 착하고 푸른 청년 같은 느낌이 사라지고 다부져 보이는 인상으로 변했다. 2년이 채 안 돼서 이렇게 변하기도 하는구나.
“사람들하고 같이 보기 전에 너 보고 싶어서. 그냥 네 결혼식도 못 보고 브라질로 가서 마음에 걸렸거든. 미안하다. 그리고 축하해. 결혼한 것도 태성이 낳은 것도.”
“미안하기는요. 무슨 그런 말을 해. 축하해 줘서 고마워. 우리 태성이 정말 예쁜데, 지금은 자느라고 데리고 나오지 못했어요.”
사실 그때 규빈 오빠가 내 결혼식장에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드레스를 입고 오빠 얼굴을 보는 건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빠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에 사촌 오빠라는 것이 밝혀졌어도 얼굴을 마주하기 어색했다. 이런 내 마음을 오빠도 알았기 때문에 그대로 브라질로 간 게 아닐까?
“나도 소식 들었어. 결혼식도 아주 잘하고 태성이가 너무 잘생겨서 우리 규은이가 반했다고. 규은이 이상형이 태성이라고 하더라.”
“정말로?”
오빠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규은이 언니가 집에 와서 태성이 잘 안아주는데 태성이가 언니의 이상형이라는 말이 정말 웃기다. 하긴 태성이는 크면 정말 멋있게 클 거야.
“그래. 그 멋진 아들 나한테도 조카잖아. 그래서 축하해 주고 싶어서 선물 샀다. 이거 받아. 내가 브라질에서 오면서 너하고 태성이 것을 사 왔거든. 2년 사이에 아기 엄마가 되는 걸 보면 여자들은 정말 빨리 변하는 것 같아.”
“나 그렇게 많이 변했어? 오빠?”
“아니, 겉으로 보는 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 아기 엄마잖아. 이렇게 빨리 변해줘서 고맙네. 덕분에 나도 이렇게 축하하면서 너 편하게 볼 수 있고.”
“오빠, 브라질에서 연애는 많이 했어?”
“당연하지. 내가 어딜 가도 여자가 없었겠어? 사실 너도 나 멋있다고 느꼈잖아.”
“착각도 자유야.”
나는 편하게 웃으며 받아쳤다. 오빠 말이 맞다. 라울이 먼저 너무 강렬하게 들어와서 그렇지 오빠도 멋있다. 다만 라울도 규빈 오빠도 타고난 왕자병은 어쩔 수가 없다. 불치병이라고 할 수 있다.
“맞아. 왕자병이라는 불치병만 나으면 말이지.”
이렇게 웃으니 정말 좋다. 라울이 오면 이제 같이 봐도 이렇게 웃을 수 있을 거 같다.
* * *
생각보다 일찍 출장이 끝났다. 디아나에게 바로 전화를 하고 올 수도 있었지만 깜짝 놀래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틀 후에 나올 줄 알았던 내가 바로 집으로 들이닥친다면 얼마나 놀라면서 반가워할까?
사실 2주간의 출장 기간 절실하게 느꼈던 건 내가 얼마나 디아나를 사랑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녀 없이 그저 일만 한다는 건 참 삭막하다. 디아나를 만나기 전에는 그런 거 모르고 일하는 기계처럼 다음 스케줄과 그 다음 스케줄을 정신없이 뛰기만 했다. 하지만 디아나와 결혼한 후에는 그런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일하는 의미와 목적 그 모든 것이 다 내 아내와 자식을 향하고 있다는 걸 지금의 나는 선명하게 알고 있으니 말이다.
착륙한 다음부터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마음이 먼저 집에 도착해 있었다. 차가 집 앞에 멈춰서 내리자 집 앞에서 디아나의 기사가 먼저 인사를 한다.
“사장님 내일모레 오신다고 했는데 벌써 오셨어요?”
“일정에 좀 빨리 끝났습니다.”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기사가 뒤에서 내게 말한다.
“저 사장님!”
나는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기사가 겸연쩍게 웃으며 나를 본다.
“사모님 지금 안 계세요.”
“어디 갔습니까?”
“요 앞 공원으로 산책한다고 가셨어요.”
“혼자 말입니까?”
평소에 없던 일이었다. 나를 보고 놀라며 반겨줄 디아나의 얼굴만 생각하고 왔는데 집에 없다고 하니 갑자기 마음이 상한다. 안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바로 공원 쪽으로 걸었다.
* * *
“응애. 응애…….”
지나가는 유모차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니 태성이가 깨지는 않았을까 마음이 급하다.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아서인지 잠깐 나온 것도 이렇게 마음이 불편할지 몰랐다.
“오빠. 나 태성이 깰 거 같아서 어서 들어가 봐야겠어. 오빠도 라울 있을 때 규은 언니하고 같이 집에 놀러와.”
“그래. 역시 아기 엄마라 바쁘구나.”
그때였다. 누군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따갑게 느껴지는 불편한 기운에 고개를 돌리자…….
라울! 어떻게 라울이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질투나 하는 그런 남자가 아니란 말이야.”
속으로 여러 번 말했다. 축축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 아래서 마주 보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규빈과 디아나를 보며 주먹을 꼭 쥐고 어금니를 물었다.
그런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린 그녀가 놀란 토끼 같은 눈을 하고 나를 본다.
나한테 들키면 안 되는 나쁜 일이라도 한 거야? 왜 놀라는 거야?
그녀의 놀란 눈은 토끼처럼 커다라고 동그래졌다. 저런 눈을 하면 참을 수 없게 키스를 하고 싶은데 하필 임규빈이 있는데서 저런 눈을 하다니! 그런 놀란 토끼 눈을 보자 더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웃으며 둘에게 다가갔다. 억지로 웃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처음 알았다. 양 볼이 부들부들 떨리고 알 수 없는 결심한 마음이 용암처럼 솟아오른다.
“라울, 당신 언제 온 거예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온다는 연락도 안 하고 이렇게 사람 놀라게 해도 되는 거예요?”
“놀라게 해주려고 말도 안 하고 온 거야. 오랜만에 뵙습니다. 임규빈 사장님. 이제 형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말하는 표정이나 목소리가 어찌나 부자연스러운 옆에 있는 나와 규빈 오빠가 민망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규빈 오빠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매제라고 부를게요. 매제 오랜만이에요.”
내미는 규빈 오빠의 손을 라울이 잡고 흔든다. 흔드는 모습이 둘 다 불편하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나도 어색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웃었다.
“마침 잘 됐네요. 오빠가 당신 못 보고 그냥 가서 서운할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당신이 일찍 와서 얼굴이라도 보고 갈 수 있잖아요.”
“그런가? 그럼 잘됐네.”
“설마 지금 나하고 디아나 사이를 질투 하고 그러는 거 아니지요?”
하도 라울이 이상한 모습을 많이 보여서인지 규빈 오빠가 선수를 치듯이 말한다.
“당연히 아니지요. 내가 아무렴 결혼 전에 야릇한 관계에 있었던 남녀가 나무 그늘에서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해도, 사촌 사이를 의심 하고 그러는 옹졸한 남자는 아니지. 안 그런가요? 형님.”
아! 창피해. 라울의 대책 없는 말투가 발동이 걸렸다. 야릇한 관계? 은밀한 이야기? 도무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은 어쩌면 저렇게 전부 직설적이고 낯 뜨거운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순간 라울의 눈이 뭔가 생각하는 듯 빠르게 돌아간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빛을 내며 더 밝은 보라색을 띠더니 약간은 장난스럽게 보인다.
“형님, 일단 제가 여자부터 소개해 줘야 될 거 같은데. 당장 시간 잡죠. 괜찮죠. 형님?”
못 말리는 라울. 지금 얼굴 보자마자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길거리에서 여자를 소개해 줄 테니 시간을 잡자고?
라울의 말에 규빈 오빠는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원래 규빈 오빠가 그렇게 능청맞은 스타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주책바가지 라울, 계속 오빠에게 시간을 잡으라고 한다.
“형님 스타일이 어떤 겁니까? 글래머? 청순가련? 그것도 아니면 베이글녀?”
“…….”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규빈 오빠. 그런데 나도 궁금해졌다. 이상형은 대체 어떤 걸까? 나도 라울을 닮아서 주책이 되는 건지 오빠에게 물었다.
“정말 라울이 소개해 주려고 하는 거 같아. 오빠, 오빠 이상형은 어떤 사람이야?”
묻기는 오빠에게 묻고 쳐다보기는 라울을 쳐다본다. 그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빠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는 건지 그게 궁금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라울의 보랏빛 눈동자가 묘하게 빛난다. 보통 이럴 때는 뭔가를 꾸밀 때 다.
하긴 라울이 사람을 소개해 주고 그런 사람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일정을 잡으며 규빈 오빠에게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고 있다. 소개해 주겠다고 그것도 여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할 때는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당연하다.
“…….”
규빈 오빠가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자 라울이 빠르게 핸드폰을 꺼내서 일정을 보면서 시간을 정한다.
“내일 어때? 내일 리즈 호텔 양 식당 예약해 놓을 테니 7시까지 와요. 내가 절대 후회하지 않게 여자 소개해 줄 테니까.”
“…….”
좋다고도 싫다고 하지 못하고 규빈 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우리 먼저. 일단 여기서 헤어지고 내일 리즈 호텔에서 7시에 보지. 잘 가요. 형님.”
혼자서 빠르게 인사를 하고 라울이 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한다. 어찌나 손을 꽉 잡고 걷는지 손이 아플 지경이었다.
“라울 나 좀 봐요. 대체 왜 이렇게 일찍 왔는지, 연락은 왜 안 했는지, 그리고 오빠한테 갑자기 보자마자 여자를 소개해주겠다니 이게 다 무슨 말이에요?”
그러나 라울은 여전히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빠르게 걷는다. 내가 걷다가 그의 손에서 내 손을 살며시 뺐다. 계속 빠른 걸음으로 걷는 라울이 점점 앞으로 가고 있다.
또 삐친 거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내가 일부러 더 천천히 걷자 앞에 가던 라울이 뒤를 돌아본다. 그 눈길이 평소보다 거칠다. 나도 지지 않고 쏘아보며 계속 천천히 걸었다. 그러자 돌아서 앞을 보고 걸어가던 라울이 다시 뒤를 돌더니 내게 다가와 번쩍 나를 틀어 안고 걸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웃으며 한 번씩 쳐다본다. 동네 공원에서 이런 짓을 하면 대체 나더러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라고 이러는지.
“나 좀 내려 봐요. 라울 안 창피해요?”
“응. 안 창피해. 내가 내 아내를 데리고 갈 때 걸어가든 안고 가든 누가 뭐라고 할 거야? 왜? 아예 여기서 키스까지 할까?”
“…….”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이제 딱 벌리고 그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그의 입술이 바로 겹쳐 오면서 입술을 세게 빨아들인다. 입안에 모든 감각이 그의 혀가 건드릴 때마다 미친 듯이 살아나고 있었다.
“읍읍.”
조금의 틈도 없이 꽉 들어차 내 입을 막고 있는 그 입술과 지독하게 관능적인 그의 혀 놀림 때문에 단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이런 거친 키스가 왜 이 상황에서 이루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어깨너머로 언뜻 보이는 규빈 오빠의 얼굴을 보면서 난 라울의 목에 팔을 감았다. 결국이 남자는 매 순간 규빈 오빠에게 내가 자기 여자라는 걸 확실하게 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규빈 오빠가 나 말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더 소개해 주겠다고 했는지 모른다.
이럴 때는 아무리 창피해도 이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제일 낫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라울의 키스가 점점 깊고 관능적으로 변해가면서 나도 라울도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공원 끝에 있는 커다란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로 가더니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를 나무에 등이 닫도록 밀치며 보랏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로 내려다보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은 세비야의 까스틸로 성에서 똑같이 연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달빛이 흐르는 밤이 없고 성대한 파티가 있던 날이었다.
그의 눈동자를 보니 내 마음도 세비야의 그날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라울.”
그의 입술이 다시 내 입술 위에 얹어 졌다. 뜨거운 온기가 주는 말할 수 없는 짜릿함. 그리고 그보다 더 뜨거운 그의 손길이 커다란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서 나를 흥분하게 한다.
장장 보름 만에 만나는 우리였다. 내가 그를 그리워 한만큼 그도 나를 그리워한 게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은 적어도 이 순간을 서로 간절히 원하고 있다.
계속 이어진 키스 뒤에 라울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안 되겠다. 디아나 우리 잠깐 호텔로 가자.”
“하지만 태성이가 깰 수도 있어요. 자는 거 보고 나왔거든요.”
“됐어. 나 안 보고 싶었어?”
라울이 정색을 하고 묻는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럼 됐어. 가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보자마자 다른 남자들이 가득하네.”
지금이 남자가 말하는 다른 남자들이 하나는 사촌 오빠이고 하나는 이제 겨우 7개월 된 아들이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호텔 방문이 닫혔다. 그의 손에 이끌려서 바로 차를 타고 멀지 않은 특급호텔로 왔다. 이렇게 단둘이 호텔에 온 게 신혼여행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다.
“하하……. 응응…….”
그가 내 기분을 풀고 목덜미에 이를 박자 내 입에서는 거친 신음이 쏟아졌다.
“네 신음소리 날 미치게 해. 디아나 얼마나 널 그리워했는지 알아?”
“라울…….”
그가 내가 다른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내 입술을 물었다. 그의 입술에서 느껴지는 향은 언제나 그렇듯이 지난 올리브 향기와 지중해를 품은 바람과 같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은 라울의 향기보다는 아기 냄새 더 익숙해 있었다. 젖 냄새 풍기는 보드라운 살결을 쓰다듬으며 남편보다는 아기에게 모든 신경이 집중하며 지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태성이 엄마가 아니라 라울의 여자로 이 방 안에 있다.
라울이 내 허리를 감싸고 키스하며 나를 벽에 밀착시켰다. 등에 닿는 단단함 보다 그의 팔이 주는 단단함이 더 느껴진다.
성북동 집에서는 아무리 1층에는 우리밖에 없다고 해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언제 아기가 깰지 모르고 또 할아버지가 언제 부르실지도 모르고 하는 것들이 모두 신경 쓰였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도 그랬다. 그래서 라울의 품에 안겨서도 때로는 밖에서 나는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적도 있다.
예전에 라울은 섹스 중에 내가 잠시만 딴생각을 해도 집중하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도 집중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도 확실히 남자는 여자 보다는 섹스에 더 집중한다. 사실 결혼하고 나서 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느낄 때가 많았다. 아기에 대한 마음도 엄마와 아빠는 또 다르다. 하지만 지금은 그도 나도 태성이의 엄마 아빠가 아니라 그저 남자와 여자였다.
그가 몸을 밀자 나는 벽과 라울의 사이에 끼어 고스란히 그 무게를 받아 내고 있었다. 그의 거친 숨결과 지독하게 관능적인 눈은 이전과 다르다. 조금 더 굶주린 맹수 같은 느낌이 난다. 나도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있는 대로 매달렸다.
“아기를 키우는 게 그렇게 힘든 거야?”
그가 살짝 입술을 떼고 나에게 묻는다. 이미 진한 보랏빛으로 물드는 그의 눈동자는 지독한 관능 덕분에 음란하게까지 느껴진다. 스페인에서 그에게 느껴졌던 석고상 같은 차가움과 함께 강렬한 남자의 느낌이 물씬 난다.
“왜요?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요? 하…….”
“이렇게 마르다니. 남들이 보면 남편이 능력 없어서 아내 힘들게 하는 줄 알겠네. 난 그런 거 원치 않거든.”
“내가 그렇게 많이 말랐어요?”
“떠나기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거 알아? 태성이 그놈이 힘들게 했나? 아니면 할아버지가 시집살이라도 시켰나?”
그의 목소리는 딱딱한 듯했으나 말은 걱정을 하고 있었고 말 뒤에 따라오는 눈동자도 부드러웠다. 이 남자가 주는 이런 부드러움이 나를 설레게 한다. 차갑게 보이는 딱딱한 얼굴과 무심한 말투, 그러나 진한 보라 빛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 사이로 느껴지는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움과 따스함, 그게 라울의 매력이다.
“당신이 없는 동안 내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매일 밤마다 당신 보고 싶어서 침대 위를 굴러다녔다고요.”
“…….”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본다. 하긴 그가 다가와도 귀찮아하고 태성이 만 챙겼으니까, 나의 이런 말이 그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라울, 나 정말 당신 많이 보고 싶어서 입맛도 없었어요. 이런 거 상사병 맞지요?”
“디아나.”
그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다시 입술을 겹쳐왔다. 아랫입술 물고 쪽쪽 빨아 당기다가 입술을 가르고 말캉한 혀를 밀어 넣는다. 거칠게 파고들어 치열을 훑고 입 안 구석구석을 건드리며 자극한다.
너무 오래 그를 원해서 그런 건지 키스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내 가슴이 크게 요동을 치며 들썩인다.
“아기를 낳고 나서 더 섹시 진 거 알아? 사람 미치게 눈앞에서 유혹하면서도 내 마음껏 건드리지 못해서 나 그동안 욕구 불만이었거든.”
“나도요.”
“디아나도 그랬다고? 정말?”
나는 대답 대신 까치발을 듣고 그의 목에 매달린 채 그 입술을 길게 키스했다. 내 허리를 감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그가 나를 번쩍 들어 안았다.
성큼성큼 침대까지 걸어가면서도 그의 눈은 오직 나만을 향했다. 완전히 나에게 집중된 보랏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가 내 마음을 뒤흔든다.
그래, 라울은 이런 남자였다. 쳐다보기만 해도 여자의 마음을 정신없이 흔들어 놓는 매력을 가진 남자. 그래서 더 차갑게 느껴지고 다가갈 수 없을 만큼 높이 느껴지는, 내 남자는 그런 남자다.
그가 나를 침대 위에 눕혔다. 내 위로 올라와 나를 내려다보는 눈길에서 뜨거운 욕구가 거칠게 품어져 나온다.
블라우스 형태를 갖춘 티셔츠가 순식간에 위로 벗겨져 나갔다. 가슴을 감춘 브래지어도 그의 손동작 몇 번에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훤하게 드러나는 가슴이 공기 중의 차가움을 느끼며 정점에 붉은 유실이 꼿꼿하게 뭉친다.
“사람 돌겠군! 디아나, 더 예뻐졌어. 가슴은 약간 작아졌군. 그래서 더 섹시해.”
“태성이 젖 떼는 중이에요. 요즘은 우유를 더 많이 먹어요.”
“하……. 잘 됐군. 하지만 지금은 태성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지금은 말이지.”
라울이 내 스커트와 함께 팬티를 내려 버렸다. 완전한 알몸이 되어 그를 올려 보고 있는 이런 상황 자체가 자극적이다.
여전히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은 그의 아래서 나는 완전한 알몸이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넥타이를 천천히 풀었다. 그대로 풀어진 넥타이가 그의 목에 걸려 있는데 그게 그렇게 섹시하게 보인다.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 풀었을 때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하나하나 제 옷을 벗어버린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그의 중심에 달린 물건이 흔들리며 발기한 페니스가 육중한 위용으로 서 있다. 그가 바로 살을 겹치며 내 위로 올라온다. 거칠 것 없는 입술이 가슴을 머금고 커다란 손이 양쪽 가슴을 힘 있게 쥔다.
엄청난 자극으로 밀려드는 그 힘에 내 입에서는 기대감이 섞인 신음이 터졌다. 양쪽 가슴을 가운데로 모아 뜨거운 입술로 이쪽저쪽을 빨고 또 빤다. 그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젖가슴이 아릿한 통증을 일으키며 아랫배 저 깊숙한 속이 뭉근하게 흔들린다.
아래로 쏟아져 나오는 액체는 그의 것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사랑해서 원하고 간절히 원하기에 더 사랑한다. 가슴을 빨던 그 입술이 천천히 내려오면서 이제 완전히 편편하게 들어간 내 배를 핥는다. 출산 후에 꾸준한 운동으로 내 배는 출산을 한 것 같지 않다. 희미한 임신선을 빼면 말이다.
하얀 살결 위에 붉은 입술이 도장처럼 찍힌다. 진하게 빨아들인 살결을 질근 거리다 뱉으면 둔한 통증과 짜릿한 느낌이 빨간 자국으로 남는다.
“아아……. 라울…….”
내가 그를 부르자 그는 대답하지 않고 좀 더 입술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입술이 검은 수풀을 가르고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자 음모 하나하나가 곤두서며 지독한 전율을 온몸에 퍼트리고 머리끝까지 흔든다.
드디어 그의 입김이 가장 은밀하고도 뜨거운 나의 속살에 닿았다. 더 할 수 없이 뜨거우면서도 기대하게 되고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입김이었다.
그 뜨거운 느낌에 나는 미칠 듯이 가슴이 떨리고 내 엉덩이는 앞뒤로 흔들리면서도 그를 원하고 있다.
“아아……. 응……. 라울……. 못 견디겠어.”
나는 흔들며 신음하며 은밀한 속살을 빠는 그의 뜨거운 입술을 느끼고 또 느꼈다. 그의 입술은 집요하게 여린 속살을 물고 깊게 빨아들이고 핥고 흔든다. 그 뜨거운 느낌에 어디라도 도망가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더 느끼고 싶다.
내 손이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부드럽게 감싸고 싶었지만 진저리치게 뜨겁게 느껴지는 아래의 자극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다.
혀를 길게 내밀어 축축하게 젖어든 연한 살을 아래서 위로 여러 번 핥아 올리기를 반복 하자 아래서부터 시작된 전율이 온 몸으로 퍼지며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순식간에 뻗쳐 올라간다.
그 짜릿한 자극에 나의 머리가 뒤로 휘였다. 덕분에 흉곽부위가 부풀며 가슴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았다. 여전히 나의 검은 음모에 코를 박고 클리토리스를 핥고 빨던 그가 커다란 손을 뻗어 내 가슴을 세게 움켜잡았다.
위아래로 겹쳐지는 진한 자극이 나를 휩싸고 나는 다리를 벌린 채 허리를 뒤틀었다. 한쪽 엉덩이가 들리면서 애널이 그의 눈에 들어오자 그의 한손이 내 엉덩이를 감싸고 엉덩이의 갈라진 틈을 타고 계곡으로 내려와 애널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자극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그의 손길에서 떨며 죽어도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 그는 그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한다. 클리토리스를 거칠게 빨면서 손가락으로 애널을 자극하자 아랫배가 덜덜 달리기 시작한다.
그의 손길과 입술만으로 자궁 깊은 곳에서 수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쏟아진 액체로 이미 엉덩이까지 젖어 들어서 그의 손이 자극하고 있는 애널도 미끌미끌하게 젖어 있다. 그는 조심스럽게 살살 애널 주위를 매만지다가 주름 하나하나를 살짝 살짝 자극한다.
애널과 질구 주위가 움찔움찔 거리며 그에게 점점 크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는 혀를 꼿꼿하게 세워서 클리토리스를 꼭꼭 누르고 비빈다. 그의 혀끝에서 뭉개지는 작은 살덩이는 눌리고 비벼질 때마다 점점 더 진한 자극을 내게 선사한다.
“하……. 라울……. 안 돼……. 응……. 응…….”
사실은 더 느끼고 싶은데 미칠 것만 같은 뜨거운 자극에 내 입은 저절로 안 된다는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는 내 말을 믿지 않고 나의 욕구를 더 알고 있다는 듯이 더 세게 핥아 올리고 빨아들인다.
발가락 끝까지 뻗친 자극에 발가락이 춤을 추듯 오므라들었다 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두 손은 허벅지를 꽉 움켜잡고 내가 더는 벌릴 수 없을 만큼 넓게 다리를 벌렸다. 쫙 벌어지는 다리 사이로 그의 얼굴이 더 깊게 파고든다.
두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를 계속 비비면서 뾰족한 혀가 질구를 찔러대기를 반복하자 내안에서 비명이 터졌다.
“헉! 아아아……. 악!”
길게 이어지는 비명만큼이나 길게 이어지는 무서운 자극에 두 다리가 빳빳하게 경직된다. 그런데도 그는 입술을 떼지 않는다. 속살도 순간 경직되어 단단하게 뭉쳐지는 것 같았으나 그의 입술은 무자비하게 그런 속살을 물고 지근거린다.
아랫배가 경련을 일으키며 달달 떨리기 시작하자 아랫배에 얼굴을 대고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는다. 아랫배에 느껴지는 그 뜨거운 입김에 순간 몸이 이완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 전에 눈앞에서 터졌던 하얀 불꽃이 파닥파닥 눈앞에서 명멸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그가 더 위로 몸을 올린다. 점점 더 위로 올라오더니 내 가슴 정도의 부분에 무릎 꿇은 자세로 앉아서 내 입가를 무언가로 건드린다.
눈을 떠보니 아까보다 더 부풀어서 끄덕끄덕 거리는 그의 페니스가 입술을 건드린다.
“빨아줘. 나도 느끼고 싶어.”
그는 내가 하는 오럴을 끝까지 견디어 본 적이 없다. 내가 건드리기만 해도 참지 못하고 그가 더 움직이는 쪽을 택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나도 끝까지 해보고 싶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덥석 페니스를 입에 물었다. 입안에서 더 크기를 부풀리며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꿈틀거리는 페니스의 부피에 입안이 더 벌어질 수 없을 만큼 가득 차 버렸다.
“음……. 음…….”
그가 천천히 허리를 밀고 당긴다. 입 안 가득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그의 페니스에 나는 입술에 힘을 주어 그를 자극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페니스는 광포 하고 오만하게 내 입안에서 점점 더 부피를 키웠고 그 덕분에 그가 허리를 밀면 페니스 끝이 입천장을 자극하다 목젖을 건드리게 된다.
“욱욱…….”
어느 순간 너무 깊게 들어와 목젖을 건드리자 나는 왈칵 구역질을 쏟아냈다. 눈물이 찔끔 났지만 물고 있는 것을 놓지 않았다.
“컥! 디아나. 윽! 죽을 거 같아.”
성공이다. 그의 입에서 죽을 것 같다는 말이 다 나오다니.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깐 나는 울컥 올라오는 구역질에 그의 것을 뱉어버리고 말았다.
“잘했어. 점점 발전 하는군. 지금 이 오럴은 나를 그만큼 그리워했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어. 예쁜 디아나.”
그가 그렇게 말하며 내 입술을 세계 빨아들였다. 조금 전 깊이 페니스가 들어왔던 입안으로 이번에는 그의 혀가 꿈틀거리며 들어찬다. 그가 엉덩이를 들어 천천히 아래로 몸을 내렸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경련을 일으켰던 연한 속살에 그의 페니스가 비벼진다. 입술과도 다르고 손가락과도 전혀 다른 뜨거운 열기를 품은 그의 페니스가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질구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귀두를 살짝 넣었을 뿐인데 나머지는 내 안에서 그의 것을 깊게 빨아들이는 것이 느껴진다. 그가 밀어 넣는 힘과 내 안에서 빨아들이는 힘에 의해 그의 페니스가 깊게 내 안으로 들어온다.
자궁 끝에 닿는 아찔한 감각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있는 대로 힘을 주어 그의 것을 조이고 달라붙고 싶다. 근질거리는 깊은 안쪽으로 그것이 인정사정없이 거칠게 들어온다. 일단 들어오면 가장 민감한 쪽을 건드리고 자극하고 빠르게 찔러댄다.
“하응……. 응……. 아앙…….”
연거푸 쏟아져 나오는 신음에 그가 입술을 덮치며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신음을 먹어치운다. 더는 견딜 수 없이 연속되는 전율에 나는 두 다리를 허리에 단단하게 감았다. 떨어지고 싶지 않다. 이 지독한 자극을 더욱 더 느끼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그는 내 어깨를 두 손으로 꽉 누른 채 입으로 젖가슴을 물고 질근거리며 허리를 쳐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 안의 열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집요하게 열점만을 공격한다. 자궁 안쪽에서부터 지진이라도 나는 듯 격렬한 흔들림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의 페니스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쥐어짜듯이 조여 대고 있었다.
“큭……. 디아나……. 누굴 죽일 작정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라울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깊게 허리를 쳐올리는 순간에 페니스가 그렇지 않아도 민감하게 올리고 있는 내 자궁 끝을 세게 치고 말았다.
“아아악!”
조금 전에 느꼈던 절정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엄청난 규모의 자극이 몰려들어왔다. 감당할 수 없는 절정이 나에게 쳐들어오고 그 자극들은 고스란히 라울에게 전달되었다.
“큭……. 윽…….”
그에게서 짐승과도 같은 거친 신음이 쏟아져 나왔다. 귓가에 울리는 그의 큰 신음소리 보다 나는 내 안에서 터지고 있는 수없이 많은 불꽃들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사랑의 절정에서 터지는 수없이 많은 불꽃이 신경 가닥 하나하나를 태우며 온몸에 내려앉는다. 내가 느끼는 더 할 수 없는 이 희열을 라울도 느끼고 있을까? 그의 느낌을 알고 싶다.
* * *
죽을 것만 같다. 아니 죽고 싶다. 디아나의 안에서 나는 이미 죽었다. 끝없는 욕구 불만이 죽어버렸고 그녀를 향한 갈증이 완전하게 죽어 버렸다.
그녀는 나에게 더 할 수 없는 쾌감을 선사하며 나를 먹어 버렸다. 그녀의 안에서 나는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고 내 안에 있는 모든 욕망은 자유를 얻고 날아가 버렸다.
그녀는 넓은 대지이며 끝없이 펼쳐진 대양이었다. 웅크리고 비비 꼬이던 모든 감정이 그녀의 안에서 완전히 치유되었다. 이 순간에 나는 그녀를 숭배한다.
그녀는 이렇게 나에게 완벽한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그녀를 품에 안 자 그녀가 내 품에 안기면 작은 짐승 같은 숨을 토해낸다.
“라울……. 사랑해요.”
“내가 더 사랑해. 내 앞에서 주름잡지 마.”
“그럼 이제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까요?”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말하고 싶으면 해!”
이렇게 말하는 나도 웃음이 나온다. 그러자 그녀가 내 겨드랑이에 머리를 비비며 묻는다.
“그런데 진짜 규빈 오빠에게 여자를 소개해 줄 생각이에요?”
“당연하지. 이번에 아주 작정하고 해볼 생각이야. 임규빈은 내가 결혼시킨다!”
규빈은 벌써 열흘 동안 다섯 번이나 선을 보러 나가야 했다. 그것은 모두 다 라울이 계획한 일이었다.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게 만드는 라울의 말 때문에 규빈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약속이 정해지는 대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피치 못할 일이 있어서 못 갈 때조차 집요한 라울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벌써 열흘 동안에 다섯 번이나 미팅했는데도 라울은 그게 적다는 듯이 말한다.
“이렇게 게으르게 사람을 만나서 과연 결혼할 수 있을까? 나는 디아나를 매일 쫓아다녔는데 말이야.”
정말 이렇게 집요한 전화를 따돌릴 방법도 없다. 핸드폰 전화를 받지 않으면 비서실을 통해서 전화한다. 어느 비서가 감히 MK그룹 사장의 전화를 거절할 수 있을까?
결국 임규빈은 피곤하다는 꾀를 냈다.
“아 피곤해서 내일은 약속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매제, 나는 그냥 있어도 될 거 같은데요. 다음 기회에 만나는 걸로 하면 안 될까요?”
“왜 그러지, 매형? 혹시 결혼할 마음 같은 게 없는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이렇게 연달아 사람을 만나다가는 내가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모를 것 같아서 그럽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사인을 줘. 그럼 되잖아. 두 번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멈추는 걸로 하면 되지 않을까?”
“아직 두 번 만날만한 사람은 없지만 조금 쉬었다 만나는 게…….”
그러자 라울은 규빈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말을 꺼낸다.
“설마 우리 디아나만 쳐다보면서 평생 독신으로 살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형님?”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사촌 동생이지만 한때 디아나를 좀 마음에 두고 깊이 상처가 됐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아나의 남편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찔러대면서 디아나만 보고 독신으로 살 거냐니. 이런 말을 들으면서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을까?
“아, 그러면 내일은 그렇고 모레로 하죠.”
“그거 좋은 생각이네. 모레로 시간을 조정할 테니 꼭 나가서 잘 이야기해 보도록 하면 좋을 거 같아.”
라울의 말에 규빈은 한숨을 쉬었다. 쉬운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뚜쟁이도 이렇게 집요할 수는 없을 거다.
“매제……. 그런데 좀 궁금한 게 있는데…….”
둘의 말이 참 웃기다. 라울은 규빈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반말을 하고 규빈은 매제라고 부르면서 존대를 한다.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했고 라울이 너무 무게를 잡으니 규빈이 말을 놓을 수 없기도 했다.
“무슨 말이지? 형님.”
“대체 진 사장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기업가의 따님들을 나한테 소개해 줄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겁니다.”
“아, 그건 제가 좀 발이 넓어서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진시환 사장을 만나려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진시환 사장은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사업적인 일을 판단할 때 그는 데이터를 더 믿는 편이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을 만나는 걸 꺼려하는 편이다. 그런 사람이 발이 넓어서 그 많은 기업가의 딸을 안다고?
믿어지지도 않았다. 뚜쟁이도 아니고 이렇게 끊임없이 여자를 공급해대는 진시환 사장 때문에 지금 규빈은 울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선을 보러 나가보면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여자들이다. 그리고 모든 여자의 머리 모양이 다 똑같다.
생머리에 단정한 옷차림까지 디아나와 비슷한 이미지의 여자들이 날짜만 다르게 나오는 것처럼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단체로 미장원에 데리고 가서 스트레이트 펌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렇게 다 비슷한 외모를 하고 매번 다른 여자들이 나와서 선을 보러 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무조건 결혼을 시켜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두 발 뻗고 잘 수도 없어. 디아나가 친정 가는 것까지 불안해하면 안 되잖아? 그럴 수 없지.”
이상형이 뭐냐고 물어보기는 했지만, 이상형이 뭐겠어? 디아나겠지. 디아나한테 빠졌으니 디아나 같은 여자를 좋아할 거 아니야.
미리미리 손을 쓰지 않고서는 임규빈의 마음을 잡을 만한 여자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일단 라울은 주변의 모든 기업의 적령기에 있는 딸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 연락을 넣었다.
성진 그룹의 임규빈하고 맞선을 보라고 하면 싫다고 할 집안이 어디 있을까?
대신 요구 조건을 넣었다.
[임규빈 사장은 생머리를 좋아합니다. 단정히 하나로 묶으면 더 좋습니다.]
라는 글귀를 넣어서 보냈더니 임규빈을 만나러 오는 여자들이 전부 다 한결같이 생머리를 하고 하나로 묶고 나왔던 거다.
도저히 그게 어울리지 않는 여자조차도 말이다. 그러니 임규빈은 생머리에 하나로 묶은 여자들만 봐도 멀미가 날 지경이었는데 라울은 자신이 너무 훌륭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임규빈을 빨리 장가를 보내야지. 기필코 보내고야 말겠어.
라울의 집요한 사업능력이 뚜쟁이로 변신하자 그는 매일 다짐하며 어떻게 하면 임규빈에게 마음에 드는 여자를 소개해줄까 하는 그런 생각뿐이다.
그리고 선 자리를 마련하면 꼬박꼬박 비서를 통해서 보고를 받는다.
“오늘 임규빈 사장님께서 대성 그룹의 아가씨를 만나셨습니다.”
“분위기가 어때?”
“글쎄요, 임규빈 씨는 거의 늘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 편입니다. 분위기를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해주는 여자들마다 다 꽝이다. 규빈이 두 번 만난 여자가 없으니 말이다. 그럴수록 점점 라울은 인상을 써갔다.
“뭐야 이거 진짜 디아나만 마음에 들고 다른 여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야 뭐야, 어째서 이렇게 해주는 여자마다 줄줄이 퇴짜를 놓는 거냐고 거참.”
그렇게 시간이 두 달이 지나갔다. 두 달 사이에 규빈은 끊임없이 라울이 소개해주는 선을 스물일곱 번이나 봤다. 이제는 선이라면 지긋지긋하다 못해 물릴 정도다.
사람이라는 게 할 수 있는 대화가 정해져 있어서 화제가 제한된 몇몇 가지를 넘어설 수가 없다. 특히 처음 만난 여자하고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그렇게 많겠는가?
그러다 보니 임규빈은 마치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새로 만난 여자와 집안 얘기, 학교 얘기, 지나간 여행 얘기와 날씨 얘기를 하고 맛집 얘기를 하면서 똑같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번에 임규빈 사장이 만날 여자는 누구야?”
“그게, 베리베리 아이스크림의 딸입니다.”
“아, 베리베리 아이스크림? 거기는 기업 순위가 몇 위나 되지?”
“한참 밑이기는 하지만 아주 알짜 기업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 따님도 아이스크림 매장 하나를 운영하고 있다고 해서 이번에 선보는 장소는 자신이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집으로 한 거 같습니다.”
“말이 돼? 어떻게 장소를 그렇게 잡나?”
“그래도 여자 쪽에서 원하는 게 그거고 임규빈 사장께서 좋다고 해서 그렇게 정하게 된 거 같습니다.”
“에이, 이번에도 보나 마나 안 되겠네. 다음, 다음 소개해줄 사람 누군지 골라봐.”
완전 라울의 집무실은 결혼 정보회사를 방불케 되었다. 라울의 비서실에서는 매일 명단을 만들고 사진을 첨부하고 파일을 만들어서 라울에게 보고를 했다.
“사람 하나 결혼시키는 게 이렇게 힘이 드나? 그러게 결혼은 비즈니스가 아닌 게 문제야. 그냥 임규빈은 비즈니스로 결혼하면 안 될까?”
하도 연결하기가 어렵다 보니 라울은 점점 더 오기가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 * *
규빈은 토요일 오후에 베리베리 아이스크림 큰딸을 만나기 위해서 삼성동에 위치한 아이스크림 매장을 방문했다.
“참 독특한 아가씨인가 보네, 아이스크림 집에서 선을 보다니.”
아이스크림 매장은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원이 네 명, 그리고 사장인 지한영이 그것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차피 직원이 있기 때문에 잠깐 나와서 선을 봐도 될 텐데 굳이 아이스크림 매장으로 오라고 한 건 왜일까?
별로 선볼 의지가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규빈이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아이스크림을 시켜야 하는 건지, 지한영 본인이 찾아올 건지 순간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 지한영 씨 계십니까?”
“아, 사장님이요? 잠시만요.”
직원이 고개를 둘러보다가 한쪽을 응시한다. 규빈이 직원이 바라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쪽에서 베리베리 아이스크림 유니폼을 입은 여자 하나가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질끈 묶고 밖으로 나가고 있는 걸 가리키며 말한다.
“어? 사장님. 지금 저기 밖에 나가시는데 금방 들어오실 겁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 여자가 들어온다. 살짝 웨이브 머리를 하나로 질끈 동여 묶고 작은 캡이 달린 모자를 쓰고 앞머리가 곱슬곱슬 내려와 있었다. 눈에 띄는 미인이라곤 할 수 없지만 생생한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사장님, 여기 사장님 찾아오셨는데요.”
“아 혹시 임규빈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