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43)

로얄 스캔들 6

26. 진통

분명히 본대로 말았는데 말아서 옆에 다시 두루두루 풀려 버린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내가 그랬잖아 그렇게 만만하고 쉬운 게 아니라고 .”

라울과 할아버지가 서로 맞는다. 맞지 않는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안절부절못한다는 말이 딱 이랬다. 팔십 넘은 할아버지와 라울이 들어가서 김밥을 싸고 있는데 앉아있자니 마음이 불안해 죽겠다. 어쩌다가 김밥을 먹고 싶다는 말을 했을까. 차라리 밖에서 사 와야만 하는 것으로 말할걸.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주방에서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다. 참기름 냄새. 식욕이 돈다. 참기름의 고소한 맛은 세계 어디에서도 따라갈 수 없는 독특한 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비야에서 민박집을 할 때도 한국 여행객들이 가장 못 참아 하는 게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였다. 엄마가 오이를 무치거나 하면 여행객들이 모두 나오며 오늘 반찬이 뭐냐고 묻고는 했으니까 말이다.

나도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이끌려 주방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소리가 크게 들린다.

“좀 잘 썰어봐 이놈아. 사람이 마음이 바르질 못하니까 그렇게 삐뚤빼뚤 썰리는 거야.”

“그게 아니라요, 할아버지. 김밥은 썰기가 힘들어서 그런 거 같아요. 그리고 저 만큼만 반듯하라고 하세요. 제가 어떻게 마음이 삐뚤삐뚤한 사람입니까? 이 라울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그러나 라울의 뒷말은 할아버지의 말에 싹둑 잘려버렸다.

“시끄러워. 칼 이리 내. 그리고 김밥이 왜 이렇게 퍼져. 이것 봐라. 이렇게 단단하게 싸야 잘 썰리는 거야. 이리와. 내가 썰어볼 테니까.”

할아버지가 싼 김밥은 정말 단단하게 잘 말려서 잘도 썰린다. 모양도 예쁘다.

“할아버지가 정말 잘 써시네요.”

라울도 인정한다는 듯이 말했다. 옆에서 보는 나도 정말 신기했다. 엄마하고 김밥을 말아 본 적은 있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안다.

“내가 그랬잖아. 육십여 년 전에 자취생활 오래 했다고. 아가 이리 와라.”

할아버지가 부르셔서 식탁으로 오자 예쁘게 썰린 김밥 한 접시가 나왔다.

“이걸 정말 할아버지가 싸신 거예요?”

“그래. 내가 쌌지. 라울, 네가 봤지?”

“그러게요. 할아버지 제가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진짜 이런 재주는 왜 썩히신 거예요?”

“사람이 열 가지 재주가 있다고 열 가지 다 쓰면서 사는 거 아니다. 그러면 밥 빌어먹어. 옛말에도 열 가지 재주 가진 사람이 밥 빌어먹는다는 속담이 있잖아. 난 돈 버는 재주가 좋았으니 돈을 벌며 살았지. 그래서 김밥 안 싸고 산거다. 못 싸서 안 싼 게 아니라.”

할아버지의 말은 정말 들을수록 재미있다. 라울과 할아버지가 말하고 있는 걸 보면 이 집안 남자들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된다.

지는 거 싫어하고 안 되는 말도 되게 하고, 일단 하는 말은 확신에 차서 한다.

“아가야. 어서 와서 먹어라.”

먹어보니 정말 맛도 좋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돌같이 단단한 밥은 씹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소금을 씹는 거처럼 짜다.

“맛있어요, 할아버지.”

“그렇지? 그러니까 친정 갈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몸조리해.”

“네?”

“내가 몸조리 잘해줄게. 아주머니들 불러놓고. 절대로 보낼 수가 없어 잠시도. 내 말대로 일 년은 여기서 그냥 함께 있자.”

할아버지가 이렇게까지 말씀하실 때는 이유가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더 먹지?”

“아기가 변덕을 부리나 봐요. 이제는 자고 싶어요.”

“그래? 그렇지. 아기는 원래 변덕을 부린다. 어서 들어가 자.”

내가 먼저 주방에서 빠져나오는데 라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럼 이거 내가 다 먹을게요. 와 맛있어 보인다. 우웩! 짜!”

“시끄러워. 이놈이 이제 내 요리에 흠집을 내내. 디아나는 맛있다고 먹었는데 네놈은 왜 짜다고 그래?”

“디아나가 할아버지께 맛없다는 소리하기 싫어서 그렇지요. 할아버지도 한 번 들어보셔요.”

“먹으라면 못 먹을 줄 알아?”

나는 들어가다가 할아버지가 그 짠 김밥을 먹고 뭐라고 하실까 싶어서 돌아섰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김밥을 오물오물 씹으시며 아무렇지도 않게 꿀떡 넘기신다.

“맛만 좋으네. 디아나도 맛있다고 하고 나도 맛있다고 하니까 3대 2. 네놈이 틀린 거야.”

뭔가 이상하다. 할아버지 미각이 이상해지신 건가?

“진짜, 할아버지 너무 짜게 드신다. 난 그만 먹고 잘 거예요.”

라울이 하나 먹고 일어나자 김밥이 고스란히 식탁에 남아있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시무룩하게 보인다. 나는 식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저 할아버지. 이 김밥 하나 더 먹을게요.”

내가 다가오자 라울이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본다.

“진짜 내 입맛이 이상한 거야?”

구십이 다 돼 가시는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손수 입덧하는 손주며느리 먹이겠다고 김밥을 싸주시는 데 짜다고 일어난 게 더 미안하다. 하나 더 먹으면 더 기뻐하실 텐데.

“아주 맛있어요. 할아버지.”

“너 진짜 맛있는 거 맞아? 너무 맛이 없어서 눈물이 나는 거 아니야? 할아버지 도대체 김밥을 어떻게 싸셨길래 애가 울어요? 어디 하나 먹어보자.”

라울이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더니 한 번 더 눈이 똥그래졌다.

“이거 진짜……. 너무 맛있다.”

라울이 인상을 쓰며 나를 보고 눈짓을 한다.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라울이다. 평소의 라울이라면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맛없는 거 맛있다고 안 할 거라고 했을 텐데 이 사람도 많이 변한 거 같다.

“거봐, 맛있다고 했잖아. 정말 아주 맛있어요,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민망한 듯이 웃는다.

“내가 그랬잖아. 내가 육십 년 전에 자취도 많이 했던 경험이 있다고. 일단 내가 절대 미각이야. 안 먹으면 몰라도 먹었다 하면 맛있는 걸 먹고, 안 하면 몰라도 했다 하면 잘한다니까.”

저렇게 말씀하실 땐 정말 라울을 닮았다.

“할아버지가 싸주신 김밥 먹었으니까 예쁜 아기 낳을 거예요 저.”

“그럼, 그럼. 예쁜 아기 낳아야지. 우리 라울 애긴데 예쁘겠지. 그렇게 좋은 유전자로만 쭉쭉 뽑아서 줬는데 안 예쁜 놈이 나올 리가 있나. 그리고 디아나 너도 예쁘잖니.”

“정말이에요, 할아버지?”

“그럼 네가 이사벨보다도 훨씬 예쁘다. 이사벨 걔는 서양 애잖아. 그래도 좀 더 잘해줄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나도 너무 젊었지. 어찌 됐든 많이 먹고 예쁜 아기 낳아라.”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맛있는 김밥 먹어서 정말 예쁜 아기 낳을 거 같아요.”

따뜻한 마음이 서로를 적시는 그런 밤이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그때의 말대로 예쁜 아이를 낳았다. 진통이 올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기가 막히다.

“라울 아무래도 진통이 오는 거 같아요.”

“뭐?”

누었던 라울이 벌떡 일어났다. 새벽 2시 반. 한밤중인데도 자다 만 사람 같지 않게 눈동자가 초롱초롱한 라울이 갑자기 나를 막 무조건 들어 안고 가자고 한다.

“앗, 잠깐만요. 좀 내려놔 봐요.”

“배 아프다며. 당장 가자.”

“아이 같이 그렇게 공부해놓고도 왜 딴소리해. 첫 아이는 진통이 이렇게 와도 오래 시간이 걸리니까 좀 더 기다려야 돼요. 옷도 입고 아기 배냇저고리랑 싸놨던 것도 가지고.”

“그런 거야 기사가 가지고 와도 되고.”

“아니죠. 태어나면 바로 입혀야 하는데요. 우리 아기만 옷 없어서 둘둘 말아놓으면 어쩌라고.”

“알았어. 이 가방이지?”

아기 출산준비물을 넣은 가방을 들고 라울이 급하게 말한다. 마치 당장 내가 여기서 아기를 낳을 것처럼 겁이 나는 얼굴이다. 아기가 그렇게 빨리 나올 리가 없는데 말이다.

내가 일어나 앉다가 배를 잡고 뒤틀자 라울이 더 커다래진 눈으로 갑자기 밖으로 나간다.

“할아버지.”

“어, 라울. 이 새벽에 무슨 일……. 아니지. 디아나가 배가 아프구나. 진짜 아기가 나오는구나.”

그리고 잠시 후 가운을 입은 할아버지께서 방으로 들어오셨다.

“괜찮은 거냐?”

“아직은 불규칙해요. 그래도 규칙적으로 진통이 온 다음에 병원에 가는 게 좋대요.”

“그러다가 차 안에서 낳으면 어떡하려고.”

라울이 말하자 할아버지가 옆에서 등짝을 한 대 친다.

“이놈아, 이렇게 큰 덩치를 하고 그렇게 겁이 많아? 아기는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게 아니야.”

그래도 긴장이 되는지 잠시 후에 나를 보며 걱정하는 얼굴로 말씀하신다.

“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차라리 병원에 가서 기다리는 게 어떻겠냐? 그게 안전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잠시 진통이 멈췄을 때 나는 나름 안심시켜 드리고 싶어서 말씀을 드렸다.

“할아버지. 진통이 오래 걸리면 꼼짝 못하고 병원에 누워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병원에서는 답답할 거 같아요.”

“그러다가 여기서 아기를 낳으면 우리 둘밖에 없는데.”

할아버지와 손주가 손을 잡고 와들와들 떠는 모습을 보자 배가 아픈 중에도 웃음이 나온다. 지금 둘 다 그렇게 카리스마 넘치는 경영인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아기를 받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며 떨고 있다.

세상에 MK그룹의 그 대단한 총수가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다.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두 사람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에 나는 아픈 중에도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할아버지. 이건 그냥……. 아……. 아우 아파!”

또 배를 잡고 진통을 하자 라울과 할아버지가 동시에 얼굴을 돌린다. 차마 보지도 못하겠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게 배가 아프면서도 나는 뭔가 먹고 싶다.

인터넷에도 보니까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애 낳으러 들어갔다가 진통하는 내내 그 음식이 생각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힘을 쓸 수가 없을 거 같다. 다들 일단 병원에 들어가고 나면 못 먹는다고 하니 말이다.

“저기, 뭔가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

“뭐? 배가 아픈데도 뭐가 먹고 싶다는 거야?”

라울이 이상하다는 듯이 보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잘 먹어야 힘을 쓰지. 말만 해라. 뭘 줄까 뭘?”

“좀 든든한 고기 같은 거…….”

“그래. 애 낳기 전에는 힘이 있어야지. 잠깐만 기다려라.”

할아버지께서 주무시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깨워서는 주방에서 뭔가 만들라고 하는 거 같았다. 잠시 후에 바로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방에서 간신히 나오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너무 좋다.

“이걸 좀 나와서 먹어라.”

새벽 세시에 스테이크를 먹는 여자는 나밖에 없겠지만, 정말 맛있다. 과일과 스테이크 조각을 잔뜩 먹어 배가 든든히 불렀고 좀 시간이 지나자 조금 더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진통이 갑자기 빨라진다. 분명히 이십 분 이상 길었는데 지금은 십 분도 안 되는 것 같다. 갑자기 빨라지는 진통 시간에 나도 깜짝 놀랐다.

“빨리 병원 가야 할 거 같아. 라울. 진통시간이 갑자기 빨라졌어요. 아……. 아……. 아파……. 끙.”

“뭐야?”

허둥허둥 라울이 나를 데리고 나가자 할아버지께서 뒤에서 말했다.

“아가, 아기 잘 낳고 와라. 힘내는 거 알지?”

“예.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잘 낳아서 올게요.”

“나도 곧 병원으로 가마.”

그렇게 병원으로 왔더니 어느새 아버지에게 연락했는지 그 새벽 시간에 아버지가 먼저 병원에 와 계신다. 초조하신지 손을 깍지 끼고는 연신 입술을 꽉 다물고 계시다.

아버지는 나 낳는 것도 못 보셨으니 한 번도 자녀가 태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새벽에 산부인과로 달려온 아버지가 코끝 찡하게 감사하다.

“이랑아, 괜찮은 거냐?”

괜히 묻는 말 한마디에 눈물이 고인다. 슬퍼서도 아파서도 아니고 이 새벽 공기를 가르고 달려오신 아버지의 사랑에 목이 멘다.

“아버지 괜찮아요. 아침에 오시지 그랬어요. 아……. 아…….”

“어서어서 들어가라. 네가 진통을 하고 있다는데 내가 잠이 오겠냐.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들어가. 아기를 잘 낳아라.”

손을 흔드는 아버지를 돌아보고 나는 분만실롤 들어갔다. 진통하는 다른 산모들을 보면서도 괜히 마음이 아프다.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해서 진통하고 있는 산모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왜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걸까?

점점 진통시간이 빨라지면서 나는 온통 땀에 젖어 라마즈 호흡으로 숨을 쉬며 아기가 때어나기를 바라고 진통을 견뎠다.

다행히 첫 아이였는데도 진통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다섯 시간 만에 나는 예쁜 아들을 낳았다.

“어머, 어쩌면 아기가 이렇게 태어나자마자 예쁠 수가 있어요? 오늘 태어난 아기 중에 제일 잘생긴 아기 같아요.”

모두 한마디씩 했다.

“여자앤 줄 알았더니 남자애네? 너무 예뻐요.”

간호사들도 한마디씩 해주었다. 아기가 예쁘다는 말만 들어도 내가 예쁘다는 칭찬을 받는 것보다 훨씬 좋다.

그런데 정작 아기 아빠인 라울은 아기를 보고 난 뒤에 실망스러운 얼굴이었다.

“아기 예뻐요?”

“응. 뭐……. 그냥.”

어쩌면 저렇게 야박하게 자기 아들인데 예쁘다는 이 소리 하나를 안 할까?

그런데 한 술 더 뜬다.

“쟤가 우리 아기가 맞아? 혹시 바뀐 거 아닐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왜요?”

“저렇게 쪼그맣고 빨갛고 쭈글쭈글한 아기라니. 원래 저런 건가? 신생아실에 예쁜 아기가 하나도 없네. 뭐가 잘못됐는지도 몰라.”

심각한 얼굴로 정말 걱정스러워하며 말하는 라울을 보고 나는 라울을 확 째려봤다.

“태어난 아기는 다 저렇대요. 처음 태어나면 빨갛고 살도 쭈글거리고 그런 거지. 저 정도면 예쁘다고 다 그러는데 지금 나보고 못생긴 아기 낳았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정색을 하고 씩씩거리자 라울이 당황하며 변명을 한다.

“아니……. 뭐 꼭 그렇다기보다는……. 나도 충격을 받아서 그래. 난 정말 잘생긴 아기가 날 보고 방긋 웃어줄 줄 알았는데…….”

정말 기가 막히다. 오늘 태어난 아기를 보고 저런 말을 하다니!

나는 한 번 더 라울을 째려보다가 눈물을 왈칵 쏟았다. 아기 낳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우리 아기가 안 예쁘다고?

“그럼 뭐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방긋방긋 웃는 아긴 줄 알았어요?”

“정말 모두 처음 태어나면 저래?”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들 봐요. 어디 그렇게 다들 하얗고 방글 방글한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 아기 주변에 있는 아기들은 다 하루 이틀은 지난 것 같이 그래도 좀 뿌옇다. 그 옆에 있는 아기도, 그 위쪽에 있는 아기도 다 며칠 됐는지 적어도 우리 아기보단 덜 빨갛고 덜 쭈글거린다.

“아무래도 뭐가 잘못됐나 봐.”

“그만 안 해요?”

나는 태어나자마자 험담을 듣는 아기의 엄마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자 잠시 후 아버지가 다가오며 말했다.

“와, 우리 이랑이 아기가 제일 잘생겼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 오뚝한 코며, 역시 자네를 닮아서 눈도 길고 남자답고 잘생겼네.”

아버지가 좋아하며 말하자 라울이 대뜸 묻는다.

“아버님 눈에는 이게 잘생긴 걸로 보이나요? 저렇게 쭈글쭈글한데. 저는 지금 너무 실망스러워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어요.”

“자네는 신생아 처음 보나?”

“예.”

“하긴 나도 본지 오래되기는 했네. 하지만 조카들 태어날 때마다 가서 봤는데 이렇게 예쁜 아기는 처음이야. 아마 이틀만 지나도 깜짝 놀랄 만큼 잘생겨졌을 테니 걱정하지 말게.”

라울은 여전히 실망한 얼굴이었고 나는 그런 라울이 미웠다. 예쁜 아기 낳느라고 정말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를 못하고, 우리 아기가 제일 예쁘다는 말도 하지 않는 라울이 정말 밉다.

그런데 정말 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이틀이 지나자 우리 아기는 정말 하얗고 잘생긴 얼굴로 강보에 싸여있었다.

“안아 봐요.”

“내가?”

“그럼 아빤데 누가 안아요?”

“아니, 아니……. 나는 안을 수가 없어.”

“왜요?”

“너무 작아서 떨어뜨릴 거 같아.”

라울은 정말 걱정되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내가 안겨줄게요. 팔 이렇게 해봐요.”

조심스레 안겨주자 잔뜩 긴장했지만 아기를 안고는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아기가 한번 눈을 맞추고 다시 감았다. 잠깐 눈만 맞춰주었을 뿐인데 라울의 얼굴이 환해진다.

“허허, 얘가 웃은 거 같아.”

“애기 엄마는 하루에도 열두 번 거짓말한다는데 우리 집은 당신이 그러겠어요. 어디 웃어요? 배냇짓이지.”

“배냇짓?”

“그래요. 뱃속에서 하던 짓이라고 배냇짓이라고 쓰여 있더라고.”

“정말 수고했어. 디아나. 이렇게 예쁜 아기를 낳다니.”

드디어 저 오만한 입에서 딱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나온다. 라울은 정말 말을 못하는 거 맞다. 어차피 할 말인데 하루 먼저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딸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사실 나는 아들이 더 좋아요.”

엄마처럼 슬픈 사랑을 하게 될까 봐. 나같이 세상 무서워서 조마조마하면서도 당당한 척 그렇게 살아가게 될까 봐. 나는 딸보다는 아들이 좋았다.

“라울, 당신은 딸을 더 원했죠?”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했을 때 제일 먼저 한 말이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딸을 원했을 거다. 서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했지만 뜻밖에 라울은 편하게 말했다.

“딸이나 아들이나 다 좋아. 할아버지는 아들이라 더 좋아하시는걸? 디아나와 나의 아기잖아. 아들이어도 딸이어도 예쁘기만 하면 돼. 처음에 보고 정말 그렇게 생긴 대로 클까 봐 엄청나게 긴장했잖아.”

“무슨 아빠가 아기 인물에 그렇게 연연해요?”

“아, 내가 그렇다고 내 아기 인물보고 사랑하는 그런 아빠라는 이야기는 아니야. 난 그냥 우리 태성이가 하루 반 동안 못생긴 것에 대해서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그만 해요. 하루 반도 신생아치고는 예쁜 거라고 했잖아요. 아기가 다 들어요.”

라울의 입이 딱 붙었다.

디아나가 아들을 낳더니 갑자기 사나워진 것 같다. 아들 못생겼다는 말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다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다행이다. 이틀 만에 저렇게 예쁜 아기가 되는 것 보면 앞으로는 쭉 예쁜 아기가 되겠지?

내 말도 잘 듣고. 이제 아빠로서 군기를 잡고 아들이 내 말이라면 꼼짝하지 못하게 잘 키워야지. 역시 남자들의 세계는 서열이지. 암.

아가야. 넌 내 아들이니까. 내 말만 잘 들으면 정말 최고로 만들어 주겠어.

이런 생각을 하니 어깨가 으쓱하다. 아들이 엄청나게 나를 존경하게 그렇게…….

가만있자. 그런데 나는 아버지를 그렇게 존경했나? 내가 아버지 말이라면 끔뻑 죽어서 다 들었나?

반항적이었던 눈빛과 아버지를 향했던 감정들이 올라오자 갑자기 등에 소름이 돋는다. 태성이가 나보다 더 덩치가 커져서 반항적인 눈빛을 가지고 쳐다본다고 생각하자 무섭다.

아니 아니지. 잘 해줘야 해. 군기 잡지 말고. 다정하고 디아나에게 잘하고.

그러고 보면 내가 아버지를 가장 싫어했던 원인은 스페인에서 홀로 계셨던 엄마 이사벨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무책임하게 느껴지고 엄마를 책임지지 못하고 외롭게 만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지위가 높아도 옆에 있는 어머니 한 분을 지켜주지 못했던 아버지가 미웠다.

휴……. 난 그러지 말아야지. 아들에게 인심을 얻으려면 무조건 디아나에게 잘 해야 해, 암 그렇지. 역시 난 참 머리가 잘 돌아가.

* * *

할아버지께서 김밥까지 싸주시며 몸조리도 집에 들어와서 하라고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친정에 가서 몸조리하라고 배려해주셔서 나는 친정으로 들어왔다.

“아가, 내가 생각이 짧았다. 너와 아기를 매일 보고 싶은 생각만 했지. 네가 어디서 더 마음 편할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그러니 임 회장에게 가서 몸조리해라. 대신 한 달만 하고 오너라. 나도 우리 태성이가 정말 보고 싶으니 말이다.”

고마우신 할아버지. 정말 우리가 친정으로 가면 집이 휑할 텐데 너그럽게 배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아버지께서 산후조리하기 좋게 이 층 방을 또 고쳐놓으셨다. 전과는 또 다른 아기 침대까지 놓인 방은 커다란 모빌도 달려서 아주 포근하고 따스해 보인다. 아주머니들 몇 분이 번갈아가면서 봐주시고 한 번씩 주치의도 와서 아기를 진찰하고 갔다.

따스하고 행복한 것, 아기를 보고만 있어도 감동이 되어 눈물이 고이게 뭉클한 거. 엄마가 된다는 건 이런 거구나. 그래서 엄마도 스페인에서 나를 혼자 키우면서도 늘 행복할 수 있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엄마 생각이 더 나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출산하고 며칠 아기를 보면서 더 간절하게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 엄마가 나를 보며 미소 지을 때 그 따뜻한 눈동자를 생각하며 나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기를 보다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내 어깨를 언제 들어왔는지 라울이 감싸 안아준다.

“우리 예쁜 디아나,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울었나?”

“아, 라울…….”

“내 생각을 하면서, 라울 때문에 너무 행복하다는 그런 생각을 했나? 아니면 이틀 만에 못난이가 예쁜이가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나?”

“아, 좀. 우리 태성이가 왜 못난이에요? 이렇게 잘 생겼는데.”

“아니지. 아무리 내 아들이라고 해도 객관적으로 이틀은 못난이였다. 아주 걱정스러웠지.”

이 남자의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들었을까?

나는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아직 눈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남편을 째려보고 있는 내가 더 웃기다.

라울이 내 볼을 닦아주며 말했다.

“째려보는 것도 예쁘네.”

말과 함께 입술을 쪽하고 삼킨다. 한번 마주친 입술이 다시 진하게 파고들며 혀를 찾아 입안으로 침범한다. 연거푸 마주치는 입술의 열기로 잠시 둘의 숨결이 거칠어졌으나 라울은 다시 나를 당겨 안고는 등을 두드린다.

“장모님 생각이 나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제 나를 보기만 해도 내 마음이 읽히나 보다.

“장모님은 행복한 분이셨을 거야. 이렇게 디아나가 예쁘게 자랐으니까. 장모님한테 나는 매일 감사하고 있어. 디아나를 낳아서 이렇게 키워줘서 내 아내가 되고 이렇게 예쁜 아기도 낳을 수 있으니까.”

“고마워요. 라울, 그렇게 말해줘서.”

그가 큰 손으로 내 등을 쓸어내리며 내 정수리에 볼을 비빈다. 다정하고 따뜻한 그의 숨결이 느껴지자 나도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가 내 정수리에 입술을 대고 뭐라고 말한다.

“네?”

“다음에는 딸 낳자.”

“이제 겨우 아기 낳은 지 삼 일 됐는데 다음 아기 얘기가 나와요?”

“그러니까 다음에, 나중에. 얘는 아들이잖아. 우리 딸 낳을 때까지 낳자.”

못살아 이 남자. 몸조리나 좀 하고 난 다음에 말하지.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아내에게 딸 타령을 한다. 아무 상관없다고 하더니 딸은 꼭 갖고 싶은 가보다.

* * *

한남동에서 몸조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5주가 넘었는데 휴일인 지금 나는 멍하니 시체처럼 천장만 보고 있다.

아무래도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 참 잘못됐다. 나는 결혼을 하면 원도 없이 섹스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디아나를 끼고 아침이고 저녁이고 내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그런데 임신 초기에 하다가 유산할 뻔한 후로는 겁나서 근처에 가는 것도 어려워서 매일 밤 디아나의 몸만 더듬으며 입맛만 다시다가 밤잠을 설쳤다.

임신 중기쯤 돼서 몇 번 하려고 했더니 배가 나와서 하기 불편하고 이제 아기를 낳더니 몸조리를 하는 것도 6주는 걸린다. 도대체 한 참 젊고 제일 좋을 때 이렇게 아이가 생기면 언제 섹스를 하느냐고? 그런데 태어난 놈이 아들이다.

처음부터 얼마나 자존심을 내세우고 엄마를 차지하든지 임신 초기부터 나를 근처에도 못 가게 하던 놈인데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온 후로는 더했다. 출산 우울증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걸릴 것 같아. 디아나 곁에 가지를 못해서.

꿈속에서 디아나는 물의 여신처럼 다 비치는 옷을 입고 물속에서 나와 완전히 젖어든 몸으로 나를 유혹한다. 꿈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사정을 할 것처럼 육감적이다.

커다란 가슴 끝에 달린 젖꼭지도 젖병처럼 튀어나오고 풍만한 엉덩이와 검은 음모는 물기를 떨어뜨리는 다 비치는 젖은 흰 천을 뚫고 환하게 비친다.

그녀의 가슴을 잡고 원 없이 빨기 시작했다. 툭 불거진 젖꼭지로 달콤한 젖이 품어져 나오고 내 입가를 적신다. 따뜻한 엄마의 젖. 그리고 육감적인 디아나의 젖가슴.

입술을 내려 그녀의 검은 음모에 얼굴을 묻자 내 몸의 모든 힘이 아래로 쏠리면서 불끈 솟아오른다.

아아……. 하고 싶다. 디아나. 디아나.

디아나……. 꿈속에서 손을 뻗으면 말랑말랑한 그녀의 몸이 잡힌다.

그리고는 여지없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응애. 응애.”

태성이가 잠을 깨워서 자다가 꼭 두 번은 일어나게 된다.

“라울. 그러지 말고 당신은 다른 방에 가서 자요. 그러다가 회사 일에 지장 있겠어요. 피곤하잖아요.”

“아니, 싫어. 이제 아주 태성이 하고만 자겠다고? 절대 그럴 수 없어. 디아나 옆에서 잘 거야.”

디아나는 아기만 보고 나는 본 척도 안 한다. 처음에는 아기가 신기하고 예뻤는데 예쁜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이놈은 내가 가기만 하면 운다. 심지어 내가 안고 있을 때 똥까지 싼다. 괘씸한 놈. 유모도 들였는데도 디아나는 아기 젖도 꼭꼭 먹이려고 한다. 그냥 우유만 먹여도 될 것 같은데,

“디아나, 태성이 그냥 우유 먹이라고 해!”

“안 돼요, 초유는 꼭 먹어야지 아이한테 좋데요.”

“아이한테만 좋다고 그러고, 나는. 나는!”

“아니 나는 이라니요. 그럼 당연히 아이 젖을 아이한테 줘야지 누구에게 줘요?”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먹고 싶다. 디아나의 젖꼭지에서 나오는 젖이 정말 빨아보고 싶단 말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디아나는 더 풍만해졌다. 가슴이 이전보다 더 육감적으로 변해서 내가 퇴근해서 마중을 나올 때면 출렁거리는 그 가슴이 어찌나 탐스러운지 모른다.

나는 요즘 디아나의 가슴밖에 보이지 않는다. 6주가 조금 지나자 아기가 밤에 조금 더 잠을 잔다. 유모가 아기 방에서 아기를 데리고 있는 동안 나는 디아나를 품에 꼭 안았다. 얼마 만에 이렇게 꼭 끌어안고 편하게 자는 건지 모른다.

“라울, 그러고 보니 우리 태성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이렇게 편안하게 안아본 적도 없는 것 같아.”

“그러니까 너무 했지. 남편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은 있는 거야?”

“무슨 소리여요 맨 날 출근할 때 퇴근할 때 챙겨주고 내 마음은 당신뿐인 거 몰라요?”

이런 아이를 낳더니 디아나가 거짓말쟁이가 됐다. 디아나의 모든 눈길이 태성이에게 가 있는 걸 내가 아는데.

사람의 일이란 참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디아나를 잡았는데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아기가 생겼다. 아기가 생기면 그녀가 더 단단히 내 옆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나보다는 아기가 먼저가 되었다.

아기가 좋기는 한데 디아나가 나보다 아기에게 집중하는 건 역시 싫다. 게다가 이렇게 오래 금욕을 해야 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아니 생각은 했지만, 더 관능적으로 변한 디아나를 옆에 두고 참아야 한다니 시간이 한도 없이 길게 느껴지고 있었다.

“오늘도 태성이가 젖을 다 빨아먹었나?”

“그럼요. 얼마나 잘 먹는데요. 오늘은 젖을 다 먹고 모자라서 우유랑 섞어 먹었어요.”

“먹성 좋은 건 나를 닮았군.”

“그런 것 같아요.”

“그럼 이제 여기에 젖이 하나도 없나?”

아쉽다. 아직 좀 남아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디아나의 유륜을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듯 돌리며 손안에 가득 들어오는 가슴을 주물렀다. 가슴사이즈는 늘 이렇게 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그런데 내가 가슴을 주무르자 젖꼭지에서 주르륵 액체가 흘러나온다. 디아나가 수줍게 미소 지으며 닦으려고 옆에 있는 티슈를 바라보며 말했다.

“금방 또 이렇게 생겨요. 조금 있으면 우리 태성이 젖 먹일 시간인가 봐요.”

젖가슴을 적시며 흘러나온 젖이 그녀의 부푼 가슴을 적시고 반들거린다. 달콤한 냄새도 나는 거 같다. 내 환상일까?

“나도……. 나도 한 번 보면 안 될까?”

“그 정도만 해요.”

그녀가 웃으며 가슴을 가리려고 한다. 하얀 손이 살짝 가리는 가슴은 아찔할 만큼 탐스럽고 물기까지 머금고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한숨이 나오려고 한다.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진짜 달콤한 향기가 난다. 양손으로 가슴을 쥐고 힘껏 빨자 목으로 넘어가는 게 느껴진다. 그 감미롭고 신기한 경험에 더 세게 빨게 된다.

“으음…….”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난다. 그리고 그 신음에 페니스가 벌떡 일어난다. 요즘은 늘 욕구불만 상태로 발기해있는 이것이 지금은 최대치로 커져 있다.

“하아아…….”

한숨 같은 신음이 터진다. 그녀가 빙긋 웃으며 손을 내려 내 페니스를 살짝 잡는다. 머리가 아득해지는 느낌. 나는 진한 전율을 타고 아직도 젖어있는 그녀의 가슴 주변을 다 핥았다.

그러고 보니 6주가 지났다. 이제 해도 된다고 나와 있었는데…….

“디아나!”

내 목소리가 이렇게 뜨거울 수 있는지 몰랐다. 이제 해도 되느냐는 말을 노골적인 눈빛에 담고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산부인과 다녀왔어요. 괜찮대요.”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다 나올 거 같다. 완전히 아들에게 빼앗긴 디아나를 다시 찾는 순간이다.

“그럼 유모도 있으니 태성이 우는 소리 나도 절대 가지 않기.”

“많이 울면 가야지요.”

어림없는 소리. 나는 그녀의 입술을 머금고 탄력 있는 입술을 빨았다. 그나마 그동안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이 키스 때문이었다.

디아나의 입술은 아무리 빨아도 질리지 않는다. 그녀를 처음 만난 이후로 계속 생각났던 건 이 통통하고 예쁜 입술이었다. 예쁜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진한 핑크색을 한 디아나의 입술은 한번 키스를 시작하면 가슴을 찌릿하게 만들며 바로 나를 흥분하게 한다.

“으음…….”

키스가 격렬하게 길어지자 디아나의 입에서 신음이 터지며 그녀의 허리가 뒤틀린다. 이전보다 훨씬 더 관능적인 그녀의 몸을 느끼자 조급함이 몰려온다.

언제 태성이가 깨서 울지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여지없이 버림받게 될 거 같은 이 느낌. 하지만 임신 말기부터 산후조리기간까지 석 달을 하지 않았으니 함부로 파고들면 절대 안 된다.

게다가 이제는 엄마가 되어서 디아나의 어떤 순간에도 아기가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내 생각만 하게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그녀의 몸을 정성껏 어루만지고 민감한 곳을 입술과 혀로 애무한다. 금욕기간 내내 나는 이렇게 디아나를 맛보았다. 처음에는 간지럽고 부끄럽다고 했지만, 장장 석 달을 그렇게 했더니 디아나는 완전히 나에게 길들었다.

이제 나도 그녀의 어디를 애무하면 어떻게 신음하는지 안 다. 부드러운 배에 키스하고 혀로 깊게 누르자 몸을 움찔거린다. 윤이 나는 매끄러운 음모를 쓰다듬다가 아래로 손을 내리자 이미 촉촉하게 젖은 속살도 느껴진다.

여기까지는 매일 해봤다. 다음부터가 출산 후 처음이다. 그녀의 촉촉이 젖어든 꽃잎을 가르고 살살 내벽을 건드리자 그녀의 안이 부드럽게 손가락을 삼킨다.

비록 손가락 하나지만 나를 받아들여 주는 그 느낌에 감동한다. 이전과 다른 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좁은 곳으로 정말 태성이를 낳았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엉덩이를 크게 주무르며 미끈미끈하게 젖어든 속살을 문지르고 비비자 클리토리스가 부푼다. 작은 돌기를 꾹 누르고 비비자 디아나의 허벅지가 떨리며 골반이 뒤로 밀린다. 언제나 흥분을 하면 오히려 도망가려고 하는 이런 모습이 귀엽다.

단단하게 끌어당겨서 혀로 핥아 올리자 거친 신음이 터지며 내 머리를 감싸 쥔다.

“하응……. 응……. 라울.”

그녀의 이런 흥분을 보는 것도 도대체 얼마 만인지. 진주알을 혀로 치듯이 건드리며 자극하고 빨아들이면서 손가락을 깊이 밀어 넣었다. 그녀의 안이 수축하면서 손가락을 조여든다.

내벽이 부드럽게 감기며 빨아 당기듯이 안으로 잡아당기며 수축하면서 반기는 이 느낌에 나는 조금 더 세게 클리토리스를 자극했다.

질근 거리며 깨물자 바로 절정을 느끼며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리다가 굳는다. 근의 안에서 왈칵 쏟아지는 뜨거운 사랑의 액체가 손가락을 더 매끄럽게 감싼다.

“라울…….”

“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렇지? 디아나. 이제 괜찮은 거 맞다.”

나는 페니스를 그녀의 속살에 길게 문지르며 비볐다. 이미 쿠퍼 액을 흘리며 끄덕거리는 것이 기대로 더 커져 있다.

귀두 끝을 그녀의 입구에 대고 비비고 살짝 밀자 부드럽게 들어간다. 아주 조금이지만 머리가 아찔할 만큼 부드럽다.

“이제 들어간다. 아프면 말해.”

그녀가 아프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게 된다. 지금 내 상태는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여유 있지 않지만 소중한 디아나가 아픈 건 절대 안 되니까. 그녀는 섹스보다 더 소중하다. 나도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라울…….”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입술을 물고 깊게 허리를 밀어 넣었다. 처음 하는 것 같은 저항이 있었지만, 그것까지 배려할 수는 없었다. 단번에 끝까지 밀어 넣자 아우성치듯이 부드러운 속살이 페니스에 휘감기며 조여댄다.

“큭……. 윽…….”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며칠 전에도 이렇게 살짝 시도했는데 태성이 소리가 들리자 삽입 직전에 태성이에게로 달려갔다. 그때의 비참함을 떠올리자 서두르게 된다.

퍽퍽 허리를 쳐올리자 그녀가 내 어깨를 잡고 흔들린다. 밀면 꽉 움켜쥐고 빼면 따라 나오는 속살의 부드러움에 넋이 나갈 지경이다.

함께 밀고 밀리고 서로의 열점을 자극하고 사랑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내 안의 불만이 완전히 없어지는 걸 느낀다. 배부르게 먹고 난 아기처럼 포만감을 느끼며 나는 디아나를 품에 안았다.

점점 더 사랑하게 된다. 그녀의 모든 걸 말이다. 달게 느껴지는 그녀의 숨결을 느끼며 나는 더 꼭 그녀를 안고 눈을 감았다. 사랑이 주는 모든 따스함에 취해서.

태성이가 자는 동안 화장대를 정리하다 보니 엽서가 한 장 눈에 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이네루의 야경을 찍은 엽서였다. 나는 그걸 들어서 앞뒤를 보았다. 태성이를 낳았을 때 규빈 오빠에게 온 축하의 엽서였다.

이미 육 개월 전에 온 거였는데 보고는 바로 화장대 안에 넣어두었다. 라울이 보면 또 싫어할 거 같아서 넣어두고는 잊어버렸는데 지금 보니 또 느낌이 다르다.

[디아나 예쁜 아기 엄마가 된 걸 축하한다. 다음에 만나게 되면 태성이도 함께 볼 수 있겠구나. 태성이 선물을 사 가지고 갈게. 진 사장에게도 축하한다고 전해 줘.]

간단한 글자에 남은 마음이 조금 무겁게 다가왔다. 스페인에서 그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규빈 오빠가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가질 수는 없을 텐데, 앞으로 정말 좋은 오빠로서 그렇게 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무섭게 빠르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런 중에도 나는 더 빠르게 변하는 거 같다. 벌써 아기 엄마가 되고 말이다.

옆에서 자고 있는 태성이를 보니 정말 이 아기가 어디서 나왔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거울 앞에서 나를 본다.

임신해서도 몸무게도 많이 늘지 않았고 출산 후 한 달이 지나니 옛날 몸무게로 돌아왔는데도 엄마가 되었다는 마음 때문인지 나는 더 나이 들게 느껴진다. 결혼 전의 세계에서 한참을 떨어져 온 느낌.

어쩐지 혼자 있을 때는 지금의 내가 문득문득 낯설다.

* * *

“회장님, 염기훈 성진 건설 사장님께서 건강문제로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비서실장이 임 회장에게 성진 건설 사장이 제출한 사표를 책상 위에 올리며 말했다.

“하필 왜 이럴 때 건강이 그렇게 안 좋아서 사표를 제출 하는지. 평소 운동하라고 그렇게 말해도 괜찮다고 하더니…….”

임 회장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 들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건설 경기가 좋지 않아서 성진 건설 매출은 형편없이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중동지역에서 공사 수주 받은 게 몇 개 있기 때문에 넋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활기차게 성진 건설을 이끌어 나가야 할 젊은 경영인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하나였다.

“브라질에 연락해. 규빈이 들어오라고,”

“예 알았습니다,”

“규빈이가 브라질 성진 건설 공사 실적 49%가 향상됐다고 들었는데 맞나?”

“정확하게 41.5% 상승했습니다. 브라질에서에 성진 건설 이미지도 좋아졌고요.”

그렇게 능력 있는 놈이 디아나 하나 때문에 브라질에 가서 있는 게 마땅치 않다. 처음 갈 때부터 말렸지만. 이제는 규빈이 마음만 살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디아나가 결혼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태어난 아기가 기어 다니는데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브라질에만 있겠다는 건지……. 임 회장은 제대로 성진 건설 경영을 맡아 볼 수 있도록 임규빈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 * *

남반구의 별자리는 북반구와는 다르다. 서울이 가을로 가고 있는 지금 규빈이 있는 리우데자이네루는 겨울을 지나고 봄으로 가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총총히 빛난다. 규빈은 맥주를 한 캔 들고 발코니에서 하늘을 보고 쭉 한 모금을 들이킨다.

처음에는 상파울로의 성진 자동차로 와서 생산라인과 전체 관리를 육 개월 동안 했다. 브라질의 노동자들과도 함께 이야기 나누며 꼼꼼하게 생산라인의 문제를 개선해 단 육 개월 만에 성진 자동차의 생산량을 15% 증가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성진 건설이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의 랜드마크가 될 대형 빌딩공사를 수주 받게 되면서 성진 건설 총괄로 오게 되었다. 브라질 정부와 건물주, 그리고 한국정부와 성진 건설간의 복잡한 협상이 끝나고 설계도가 거의 나왔을 무렵에 서울에서 동생 규은이 연락을 했다.

“이랑이가 아들 낳았어. 나도 어제 가서 봤는데 너무 예쁘더라. 이랑이하고 진 사장을 닮아서 사람들 껌뻑 죽게 생겼어. 딱 내 이상형으로 클 거 같아.”

“뭐? 너는 아기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해?”

“크면 그럴 거 같다고. 얼마나 예쁜지 내가 이랑이네를 매일 간다니까. 오빠도 보고 싶지? 내가 사진 보냈어. 메일 열어봐!”

“너도 어서 시집가. 이랑이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지금 남의 아기에게 반할 때가 아니야.”

“지금 오빠야말로 남 말 할 때가 아니거든.”

팩 토라져서 전화를 끊는 규은의 목소리에도 웃음이 나왔다. 브라질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이며 짧게 친 머리며 이제 거울을 봐도 하얗고 귀공자 같던 임규빈의 얼굴이 아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았다. 잘 된 일이다. 큰아버지 댁에는 디아나 하나뿐이니 손자가 생겨서 큰아버지도 좋아하실 거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한숨이 나온다.

그 뒤로 또 육 개월 이상 지났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상처는 아물지가 않는다. 임규빈에게 있어서는 디아나가 그렇다. 스페인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게 마음에 걸렸던 게 결국은 핏줄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처음 느꼈던 설렘과 이 여자라는 확신으로 천천히 다가가려고 했다. 그만큼 깊게 마음에 담았고 공들이며 다가갔다. 그런데 사촌 여동생이었다. 그 황당한 마음이 오래도록 나를 뒤흔들었다.

이곳에 오고 1년 6개월 이상 지났다. 모든 잡생각을 잊으려고 공사현장에서 거의 생활했다. 개방적인 브라질의 문화는 그에게 상처가 아물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이제는 단단한 경영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규빈이 맥주 캔을 내려놓은 옆에는 노트북이 놓여있었다. 화면에는 한국 성진 그룹에서 온 메일이 있고 그 바로 위에는 규은이 보낸 [이랑이 아들 태성이 사진] 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있다.

규빈이 사진을 클릭하자 커다란 화면에 아기를 안고 웃고 있는 이랑의 모습이 보인다. 단정하고 깨끗하게 생머리를 넘겨 묶고 토실토실한 얼굴의 예쁜 아기를 꼭 안고 웃고 있다. 고른 치아며 선한 눈매며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데 이제 아기 엄마라니!

성진 그룹 차기 경영자로 손꼽히고 있는 29세의 임규빈은 그렇게 브라질에서 돌아올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 * *

“라울, 우리 할아버지 모시고 좀 좋은 곳으로 여행도 가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거 좋은 생각인데 이번 달에 출장 일정이 잡혀있어. 다녀와서 함께 가자.”

결혼 후 처음 가는 장기 출장이었다. 이랑과 아기를 두고 출장을 가고 싶지 않아서 가능하면 대리인을 보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꼭 가야 한다.

“출장이 길어요? 어디로 가요?”

“2주 정도. 로마로 가. 이번에는 꼭 가야해서 어쩔 수 없어.”

“꼭 가야 하면 가야지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얼굴은 힘이 빠진다. 이 남자가 출장 가는 거 처음이다.

“그럼 다녀와서 같이 가요. 태성이도 밖을 좋아하니 여행가면 좋아할 거예요.”

라울과 여행을 한 것도 출산 전이니까 한참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출장을 따라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같이 갈래?”

꼭 내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하는 말에 내가 눈을 껌뻑이며 바라보았다.

“로마에 태성이를 데리고 가도 될까요?”

“어떻게 태성이를 데리고 가? 가면 우리 둘이 가야지. 이제 태성이 이유식도 제법하고 우유도 잘 먹으니까 두고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 봐도 갈 수 있을 거 같지 않다. 엄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과연 그런 아기를 두고 2주나 출장을 갈 수 있을까?

“에이, 태성이 두고는 못 가요. 나만 보면 벙글벙글 웃으며 기어오는데. 없으면 울 걸요?”

“유모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고. 가려면 갈 수 있지.”

역시 나보다는 태성이다. 대체 언제까지 내가 태성이에게 순위가 밀려나야 하는 건지.

라울이 얼굴이 또 굳었다. 이 남자는 다 좋은데 꼭 아들하고 경쟁하려고 한다.

“잘 다녀와요. 2주 금방 가요.”

“태성이 두고 가면 2주나가 되고 나 혼자 가면 2주는 금방이라고? 말 해봐. 태성이 하고는 절대 2주 못 떨어지면서 나하고는 2주가 별거 아니라 이 말이지.”

“…….”

말은 못하지만 그런 건 사실이다. 아기를 돌봐야 할 때도 꼭 옆에서 저만 보라고 하는 라울 때문에 피곤할 때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는 말을 어떻게 하나?

“나 없는 동안에도 잘 할 수 있지? 할아버지 챙기는 거나 우리 태성이 보는 거.”

“날 뭐로 보고, 얼마든지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은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요.”

라울은 2주나 걸리는 출장치고는 간단한 짐을 챙겨서 로마로 떠났다. 그가 떠나자 정말 바쁘던 게 반으로 준 거 같다.

그러나 생각보다 라울이 없는 서울은 쓸쓸하고 외롭다. 라울의 존재에 내가 그렇게 의지하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태성이가 잠들고 나면 혼자 킹사이즈 넓은 침대에서 뒤척인다.

너무 달라붙어서 늘 좀 떨어지라고 했는데 그가 없으니 썰렁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제 이틀만 있으면 라울이 올 시간이다.

띠리링

문자 알림이 왔다.

[디아나, 나야 임규빈. 이제 정말 엄마가 됐네. 브라질에서 온지 얼마 안 됐어. 만나고 싶은데 나올래? 물론 사촌오빠 귀국을 축하하는 거지. 혹시 바쁘면 나중에 봐도 되니 부담 갖지 말고 나와라. 디아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