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송장 치를 일 있어?
이야기가 이쯤 되니 참을 수가 없다. 다른 모든 것은 다 참아도 디아나를 예쁘게 봐줄 수 없다는 말에는 꼭지가 돈다.
“디아나가 같이 들어가자고 한 게 아닙니다. 내가 디아나 따라 한남동으로 들어간 거라고요. 할아버지가 디아나에게 맹랑하다고 하는 건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나는 인상을 쓰며 일어서려고 했다.
“시환이 너 이놈!”
할아버지의 말이 뚝 떨어지며 나를 잡는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입술을 달싹거리는데 연이어 할아버지가 소리친다.
“참아 인마. 그 얼굴 보니까 나한테 뭐라고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입 꾹 다물고 들어.”
“할아버지야 말로 왜 그러세요? 혹시 연세 들어서 여성호르몬이 너무 많이 나오는 거 아닙니까? 지금 하고 있는 거 할머니들이나 하는 거 아니에요? 혹시 성 정체성에 혼란이 오십니까?”
내 말에 할아버지가 입을 딱 벌린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말주변머리가 그렇게 없어? 지금 나보고 할멈이라고 하는 거야?”
할아버지가 완전히 화가 나서 눈에서 섬광이 번쩍인다.
내가 좀 심했나? 그런데 정말 할멈 같다.
왜 없던 질투를 다 하고 그러냐고. 내가 언제 할아버지하고 가깝게 지낸 적 있나?
미국 유학 이후로는 같은 집에 산적도 없는데, 디아나와 어디를 들어가 살든지 말든지 뭐가 문제라고 저러시는지…….
내가 주춤하자 할아버지가 나를 째려보다가 조금 뜸을 들이신다.
아, 저럴 땐 정말 할머니 같아. 노망드시나?
“하나 묻자.”
“네.”
또 뭘 물으시려는 건지 몰라도 좋은 소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너, 지금 한남동 들어가서 사니 좋으냐?”
“당연히 좋지요. 장인어른이 얼마나 좋아하시고 잘해주시는지 모릅니다. 임 회장님은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말을 막 팍팍 내뱉는 분이 아니에요.”
“얼마나 좋으냐?”
왜 자꾸 꼬치꼬치 묻는 건지. 나이도 많아지셔서 이제 심술도 느는 건가?
“엄청 좋습니다. 천국 같아요. 아니 신선들이 사는 무릉도원처럼 좋습니다.”
나는 더 오기가 나서 할아버지 염장을 팍팍 찔렀다. 실제로 천국같이 좋으니까.
매일 디아나가 아침저녁으로 얼굴 보며 웃어주고 맛있는 것만 해주고. 사다 주고. 임 회장님도 늘 기분 좋으시다. 무엇보다 할아버지처럼 잔소리도 없으시다.
무엇보다 밤이면 디아나의 방으로 숨어들어 갈 수도 있으니 거기가 천국이 아니면 뭐야?
그러자 할아버지가 입맛을 쩝 다시더니 다시 말씀하신다.
“어떡할 거야. 지금이라도 나와서 네 집에 들어가서 살 거야, 아니면 나까지 임 회장네 들어가서 사랴.”
“뭐라고요?”
정말 믿을 수가 없다. 아무리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도 할아버지가 임 회장 집으로 들어오다니.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천연덕스럽게 한술 더 떠서 말씀하신다.
“그래. 나도 보기 힘든 네 얼굴 임 회장이 데리고 사는 꼴은 못 보겠다. 나도 아예 거기로 들어가지 뭐. 임 회장이 사람 하나 더 있다고 해서 힘들어할 사람도 아니고. 나 밥도 많이 먹지 않는데 내가 그리도 들어가랴?”
히익! 이건 노망이 분명하다.
“할아버지. 정말 이러실 거예요? 제가 거기 좀 가 있는 게 뭐가 어때서 이러시는 거예요? 아니 제가 좋은 꼴은 도저히 못 보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그 꼴은 보기 싫다 이놈아. 나도 네 얼굴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임 회장 집에 들어가서 살고 있잖아. 나는 너도 보고 싶고 임 회장도 보고 싶어. 그런데 어쩔 거야? 나도 임 회장네로 짐 싸?”
“할아버지. 언제부터 할아버지가 절 보고 싶어 하셨어요? 우리는 쿨한 사이잖아요.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일하시고, 저는 제 일하고. 여자관계도 서로 각자. 일도 각자. 아니었나요?”
“내가 널 보고 싶어 한 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여러 말 필요 없고, 어쩔래? 내가 짐 쌀까?”
설마……. 그렇다고 여기서 디아나를 포기하고 임 회장님 댁에서 나오고 싶은 마음은 이만큼도 없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 이야기가 되는 거지.”
내 이럴 줄 알았다. 할아버지는 원하는 게 있으시면 약한 곳을 찌르고 협박이 먼저다.
“말씀하세요. 원하는 게 뭔지 말입니다.”
“우리 집에, 성북동에도 들어와 살아 인마.”
“네?”
“결혼하고 일 년 정도 성북동에서 들어와서 살라고.”
“아! 싫어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동반사로 대답이 나온다. 신혼을 할아버지와 살라고? 세상에 그런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말을 왜 하시는 거야?
“싫기는 왜? 임 회장 집에는 잘도 들어가 살면서.”
“그거야 디아나가 아버지랑 살고 싶다고 하니까 따라 들어간 거지 제가 왜 결혼하고 할아버지랑 같이 살아요.”
“괘씸한 놈. 그럼 나도 임 회장한테 전화 넣을 거야 나도 거기 들어가서 산다고.”
“할아버지!”
“그러니까 너도 여기 들어와서 살아. 나도 디아나 얼굴도 자세히 보고. 잘해주고 싶어서 그래. 이사벨한테 잘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
전혀 생각하지 못한 할아버지의 말에 마음이 울렁 울렁거리면서 가라앉는다.
우리 엄마에게 잘해주고 싶었다고? 잘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셨다고?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던 말이었다. 할아버지 입에서 나오는 엄마에 대한 말은 ‘서양 애’가 전부였다.
그런데 엄마한테 해주지 못한 걸 디아나에게 해주고 싶다고?
“할아버지.”
“왜?”
“치사하게 이런 걸로 사람 흔들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왜 엄마 얘기는 끌어들이시는 거예요?”
“진짜다. 늘 마음에 걸렸다.”
“…….”
무슨 말을 하실지 감도 잡지 못하겠다. 할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엄마의 이야기라니!
“그래 내가 이사벨 별로 예뻐해 주지를 못했어. 바쁘기도 하고 서양 애한테 딱히 정이 가지를 않아서.
더 예뻐해 주었으면 그렇게 스페인으로 가지 않았으려나? 내가 힘들게 해서, 네 어미 아비가 헤어진 건 아닌지 마음이 아주 무거웠다.
헤어지고 나서 그놈이 그렇게 일찍 간 것도 마음에 걸렸고. 그 뒤로 이사벨도 한 번을 보지도 못하고 스페인에서 세상 떠난 것도 다 마음에 걸렸어.
그래서 네놈한테 잘해주고 있는 거야, 결혼도 반대하지 않고. 아니면 내가 그런 사생아에게 네놈을 주고 싶겠어? 아무리 애가 마음에 든다고 해도 말이야. 그러니까 네놈도 나한테 기회를 줘. 내가 너 하고 디아나한테 잘해줄 기회.”
“할아버지.”
가슴이 뭉클하다. 할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런 미안한 마음을 가졌는지도 몰랐고 날 이렇게 보고 싶어 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전화하면 늘 “여기 집으로 들어오면 어떠냐?” 하고 장난처럼 말을 던지셨는데 그게 정말 날 보고 싶어서였다니.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렇다고 무너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할아버지는 약한 틈을 잘 잡아 뜯으니 말이다.
“다 좋다고요. 그런데 어떡해 이랑이네 집에서 열흘을 할아버지하고 1년에 해당하느냐고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 세상에 살다가 신선들이 사는 데로 가면은 신선들의 하루가 여기 한 달이라고 한다. 못 들었냐? 그만큼 거기서 재미나고 신선놀음했을 테니까, 하루가 한 달이면 원래 15개월인데 내가 삼 개월 깎아준 거다. 내가 그만큼 봐줘서 1년으로 잡은 거야.”
“말도 안 돼요 할아버지!”
“말이 되 든 안 되든 여기서 살아. 나도 디아나도 좀 보고 증손주도 좀 보고 나도 죽기 전에 호강이나 조금 하자. 디아나 덕분에 말이다. 이건 사람이라고 구경을 못 해. 네가 집 얻어 나간 지가 언제야. 아주 사람 구경한지가 언제야. 매일 도우미 아줌마나 보고.”
“차라리 새 장가를 가세요. 할아버지.”
“예끼 이놈아! 90이 다 돼가는 늙은이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누구 송장 치르게 할 일 있어?”
어이가 없다. 지금도 헬스장에서 두 시간씩 매일 운동하시고 웬만한 젊은이들보다 훨씬 팔팔하신 어른이 송장 치른다는 이야기를 하다니 말이다.
이제 협박을 하다못해 죽는소리까지 하시나? 내가 볼 때 할아버지는 100세는 훨씬 넘게 사실 거다. 아니 영영 돌아가시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정정하신대 왜 돌아가시겠어요. 이제 아주 나이 많은 걸로 협박하시는 겁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 껍데기만 정정하지 나도 속은 다 갔어. 어찌 되었든 그렇게 알아. 지금부터 집 공사 들어간다. 결혼하고 너희 신혼여행까지 다녀오면 너희 둘이 널찍하게 사용할 수 있게 바꿔 놓을 거야. 그렇게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아직 확실한 건 아니에요. 디아나에게 물어보고요. 디아나가 싫다고 하면 절대 안 들어올 거예요. 알았지요?”
“자식. 그런 게 어딨어. 무조건 들어와!”
“그만 좀 다그치세요. 일단 알았다고 하잖아요.”
“디아나가 그렇게 좋으냐?”
할아버지가 웃으며 물어보는 말에 나도 웃었다. 저렇게 할아버지가 웃는 소리를 오랜만에 듣는 것 같다. 할아버지가 좋아해서 나도 좋다.
* * *
결혼식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드레스가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 말을 듣자 드레스 숍에서 라울과 했던 일이 생각나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스커트를 풍성하게 붙인 드레스는 집에 있는 상의만 있는 드레스하고 하늘과 땅만큼 이미지가 다르다. 은밀하게 팬티만 가렸던 레이스 아래로 열두 폭은 돌만큼 풍성한 드레스가 땅에 끌렸고 그 위로 엉덩이 위쪽부터 커다란 리본이 땅에 끌리게 늘어졌다.
누가 봐도 우아하고 얌전한 웨딩드레스인데 똑같은 디자인에 상의만 있는 드레스는 얼마나 야하고 색정적이었던가?
생각만 떠올려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그런 내 옆에서 라울은 나를 너무나 든든하게 지켜줬다.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리는 탓에 나는 식도 치르기 전에 현기증을 느꼈다.
“괜찮아?”
신부 대기실을 찾은 라울이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그는 완벽한 턱시도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세비야의 성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멋있어 보인다.
“괜찮아요. 라울……. 하……. 실은 너무 떨려요.”
“떨지 마. 아버님도 밖에서 하객들을 맞이하고 계시고, 또 디아나를 너무 좋아하는 세베로가 왔거든.”
“세베로가요?”
나는 눈이 커다래져서 라울을 보자 그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베로가 신부 대기실 안으로 정장을 하고 들어섰다. 늘 그렇듯이 정장차림의 세베로는 스페인에서도 서울에서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세뇨리따,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스페인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무슨 농담을요, 그때 저도 라울도 까스틸로 성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저는 알았습니다. 이사벨님을 닮은 디아나를 처음 보면서 우리 까스틸로 성의 안주인이 되실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고 할까요?”
그러자 옆에 있던 라울이 끼어들었다.
“뻥치지 마. 세베로.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결혼이 비즈니스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어떻게 아르바이트나 하는 영양가 없는 아가씨와 결혼을 할 거란 생각을 한 거지? 그건 내 비즈니스 방침과도 맞지 않고…….”
뭐? 아르바이트나 하는 영양가 없는 아가씨?
이 남자가 신부 대기실에 와서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 불가능하다. 물론 그때는 그랬다는 말이지만 말이다.
점점 내 양미간이 모이는 순간 세베로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지요. 주인님의 그 형편없고 잘못된 결혼에 관한 가치관을 뒤집어엎을 만큼 뛰어난 미모와 총기가 있다는 것을 제가 알아본 거지요.
주인님도 워낙 사람 보는 눈이 있어서 그런 가치관 따위 디아나 양을 만나고 나면 다 뒤집힐 줄 알았지요. 안 그렇습니까? 주인님?”
“어? 물론 그렇지. 디아나가 나의 그런 어리석은 가치관을 다 뒤집어 놓았지,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거야. 나처럼!”
웃어야 하는 건지. 좋아해야 하는 건지. 하지만 결론은 대단한 칭찬이 틀림없다. 세베로가 아니었으면 난 드레스를 입은 채로 식장 밖으로 뛰어나갈 뻔했다.
하지만 세베로와 말을 하고 있는 라울은 정말 진지하게 나를 숭배하고 있는 표정이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거라고 하는 마지막 말에 사실 감동하기도 했다.
대단한 세베로. 정말 내 마음을 이렇게 순간적으로 위로해 주다니!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 길이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나를 보던 아버지의 다정한 눈빛. 커다란 손. 그리고 엄마를 사랑했던 눈빛.
엄마가 사랑했던 그 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가며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손을 통해 엄마의 손길도 함께 느껴진다.
두 분이 맞잡았던 손길이 나의 근원이었으니 말이다. 감동이 몸을 울리며 눈이 촉촉해진다. 진짜 감사했다.
사실 결혼식은 가능하면 조촐하게 치르려고 했지만 MK그룹과 성진 그룹의 결혼식이라는 대단한 예식이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라울의 할아버지도 제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원하셨다. 덕분에 여기저기서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라울 같은 남자의 신부가 되려면 어쩔 수 없다. 높이 솟은 크라운과 면사포는 딱 내가 꿈꾸던 신부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면서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그를 보고 살짝 웃었다. 라울은 평소와는 달리 정말 벙글벙글 잘도 웃었다. 신랑이 웃으면 첫 딸 낳는다고 놀리자 바라는 바라며 웃고 다녔다.
주례가 끝나고 성혼을 발표하고 웨딩마치를 울리며 행진을 했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지만 임규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규은이 언니가 식이 끝나고 가족사진을 찍을 때 말했다.
“이랑아, 축하해! 정말 예쁘구나.”
“감사해요. 언니. 규빈 오빠는 오지 않았나요?”
내 말에 규은 언니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남미로 갔어. 남미에 새로 건설하는 자동차 공장에 자원해서. 결혼식에는 못 오지만 결혼 축하한다고 전해달라고 했어. 오빠 마음 알지?”
규은 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날 향한 오빠의 마음이 컸나보다. 아플 만큼. 그래서 결혼식을 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오빠가 마음 아픈 게 빨리 나았으면 한다.
“이랑이가 우리 식구여서 그렇게 스페인에서 만나게 되었나 봐. 정말 축하한다. 이랑아!”
숙부님과 숙모님도 축하해 주셨다. 그리고 오늘은 아버지와 이혼한 이재은 성진갤러리 대표도 왔다. 이혼은 했지만, 축하는 해주러 오신 게 고맙다.
이재은 씨와 아버지는 전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던 것처럼 그저 아는 지인으로 인사를 나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씁쓸하기도 했다.
그렇게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라울에게 물었다.
“우리 신혼여행 어디로 가고 있는 거예요?”
전용기를 타고 있어서 말해주지 않아서 행선지 같은 건 알 수가 없는데 라울은 신혼여행지에 대해서는 계속 함구했다.
이것도 일종의 서프라이즈 파티일까?
드레스와 턱시도에서 우리는 편안한 캐주얼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감색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흰 팬츠를 입은 그는 오늘따라 더 멋져 보인다.
“왜 행선지를 말해주지 않는 거예요?”
“두바이에 있는 섬 하나를 빌렸어. 아는 사람이 거기에 섬을 하나 샀거든. 그래서 보름간 빌려주기로 했지.”
“정말이요?”
“그래 우리 둘만 있는 섬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우리 둘만을 위한 섬이지. 우리 둘만의 왕국으로 가는 거야.”
“라울! 너무 멋져요.”
“앞으로 점점 더 멋지다고 소리칠 일이 많을 걸?”
“뭔데요? 말해줘요!”
“미리 말해주는 게 어딨어.”
라울이 나를 바짝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 내 눈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고마우면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이는 건 어때?
그의 눈동자가 짙은 보랏빛을 띠며 빛나고 있었다.
“회장님, 공사가 다 마무리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퇴근은 집으로 하셔도 됩니다.”
“그래? 거 잘 됐네. 호텔생활 이거, 오래 할 건 참 못돼. 열흘도 길어. 예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호텔에서 살았는지 모르겠네. 젊어서 그랬지.”
진 사장이 호텔 소파에서 일어나자 오랫동안 시중을 들어온 중년의 강 비서가 바로 알약이 든 작은 접시와 물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진시환 사장님께는 미리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까요? 그래도 명의를 옮기는 일인데.
“뭐, 그럴 거 없어. 어차피 그놈한테 갈 거 미리 주는 거니까. 내 깜짝 결혼 선물이지.”
“그래도 돌아오시면 놀라지 않으실까요?”
“놀랄 게 뭐 있겠어? 새아가는 좀 당황하려나? 뭐, 그 애 놀라는 걸 보는 것도 좋고. 시환이 놈이 더 놀라려나?”
“…….”
강 비서는 단정하게 고개를 숙였다. 회장 일가의 일이다. 함부로 입을 놀려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재킷을 입으며 창 너머 보이는 한강과 하늘을 길게 바라보던 진 회장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놈들이 잘 가고 있으려나?”
“예, 지금쯤 전용기 안에 계실 거 같습니다.”
시간을 보며 강 비서가 말하자 진 회장이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녀석이 인복도 있는지 마누라를 썩 잘 골랐어. 내가 볼 때는 욕심 많은 줄 알았는데 정작 결혼을 할 때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택하다니. 하긴 욕심도 정당한 기준이 있어야지. 결혼하려면 사람을 욕심내야지. 결혼하면서 돈을 욕심낸다면 그게 더 어리석은 거지. 사업은 돈 욕심 결혼은 사랑 욕심이 있어야지. 잘 살 거야. 그놈들…….”
“조찬회 몇 시야?”
“지금 내려가시면 딱 맞습니다.”
“가자.”
진 회장이 강 비서와 함께 호텔을 나섰다. 서울이 하늘이 밝아오는 그 시각 서쪽을 향해 날아가는 전용기는 어둠 속에서 비행하고 있었다.
“으음……. 라울……. 하아…….”
라울의 손이 원피스 속으로 파고들어 와 은밀한 곳을 건드리고 있다. 손길은 느긋하지만, 그의 숨결은 거칠고 조급하다. 이럴 때 라울은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집요하다고 해야 할까?
정신없이 몰아붙이며 내가 절정에 달할 때까지 손길과 입술의 애무를 그치지 않는다. 그의 손길에 숨이 막혀온다. 열점을 공략하는 손길에는 자비가 없다.
클리토리스를 비벼대던 엄지가 조금 더 힘을 주어 꾹 누르자 나는 견딜 수 없는 자극에 다리를 바르르 떨며 몸이 경직되었다. 순간의 자극이 주는 아찔한 감각 속에서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이다가 다시 숨을 고르게 쉬기 시작하자 그가 가슴에 입술을 내리며 유두를 물고 말했다.
“신혼여행지가 먼 곳인 건 좋은 일은 아닌 거 같아. 그렇지?”
그가 말할 때마다 유두 끝에 강한 전율이 느껴진다. 이미 예민하게 부푼 젖꼭지는 작은 진동에도 반응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신혼여행지가 멀어서 안 좋다는 말에 그를 보며 물었다.
“피곤해요?”
“음. 참고 있으려니 스트레스가 크군.”
“지금 이게 참고 있는 거예요?”
원피스 앞 단추가 다 열려서 가슴이 다 드러나 있었다. 조금 전까지 하도 빨아 대서 가슴이 끝이 빨갛게 부풀고 휘저어댄 손길에 아래 은밀한 속살도 한차례 경련을 일으키고 젖어들어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이런 상태다. 7시간 정도를 비행했을까? 물론 이미 그와도 한차례 몸을 섞고 함께 절정을 맛보았다. 물론 호텔처럼 편할 수는 없지만, 그가 참느라 불편할 정도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응, 나는 참고 있는 거야. 원하는 자세를 취할 수가 없으니까.”
“대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싶은 건데요?”
“큭큭…….”
말 대신 음흉하게 웃는 그의 웃음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지금까지도 충분히 야하고 외설스러웠다. 여기서 더 어떻게 하려는 건지 그냥 묻기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말해줘?”
그가 나를 보며 진지하게 묻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 말하지 말아요. 듣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그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쥐고 보랏빛 도는 검은 눈동자를 맞추며 작게 말한다.
“그렇지, 이런 건 말로 하는 게 아니야. 몸으로 해야지.”
그가 말과 함께 내 원피스를 잡아 내렸다. 이미 속옷은 진즉에 벗겨지고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알몸이 되었다.
“라울……. 그래도 도착할 때까지 좀 참아요. 응?”
“아니, 우리가 왜 참아. 참지 않으려고 결혼한 건데? 그리고 이 전용기야 당연히 그걸 염두에 두고 좌석도 얼마 전에 갈았거든.”
못살아. 정말 대책 없는 라울이다. 하지만 이 남자의 이런 면이 나를 사로잡은 것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뜨겁게 사랑하는 그에게 나도 정신없이 휘말려 들었으니까.
라울의 입술이 내 무릎 언저리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할짝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릎의 얇은 살갗이 간지러우면서도 뜨거운 자극을 전달한다.
핥는 건 무릎인데 떨리는 건 자궁 깊은 곳의 어느 곳이다. 몸살 나게 간지럽고 은밀한 곳이 젖어들며 갈망하게 된다. 알 수 없는 무엇을…….
몸이 저절로 뒤틀리고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무릎과 허벅지 안쪽만을 핥을 뿐 가장 원하는 예민한 곳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숨을 들이마시자 흉곽이 부풀고 가슴이 도드라진다. 이 짜릿한 자극이 주는 갈망에 입술이 마르고 작은 신음이 터졌다.
“그만 라울. 그만……. 그러지 말고…….”
“그러지 말고 뭐? 나는 정말 건전하게 다리에만 키스하고 있거든.”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렇게 하면? 어떤데?
말과 함께 그의 셔츠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래는 이미 전에 벗어버리고 없었다. 한 번의 사정을 하고도 바로 부풀어서 지금도 터질 듯이 보이는 페니스가 눈에 들어온다.
“이걸 원해? 응?”
그가 내 손을 가져다 그의 검붉은 기둥을 쥐어주었다. 뜨뜻하고 펄떡이는 맥박이 느껴지는 그의 것이 내 손에 들어오자 내 아래가 더 젖어든다.
“말해봐. 원하는 게 이거야?”
“…….”
나는 대답 대신 일어나 앉으며 그의 것에 키스했다. 작은 입맞춤만으로 그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마치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큭! 디아나. 하아…….”
귀두 끝을 살짝 물고 혀끝으로 비비며 빨았다,
“우욱……. 욱.”
갑자기 구역질이 나온다. 비행기 멀미를 하나?
“뭐야? 그 정도로 역겨운가?”
“아니요. 그게 아니라. 비행기 멀미를 하나 봐요.”
“멀미?”
한 번도 하지 않던 멀미를 하는 거 보면 내가 힘들기는 힘들었나 보다. 얼굴도 순식간에 창백해지는 걸 나도 느끼니까 말이다.
“내가 너무 잡아먹었나 보네.”
갑자기 정신이 확 깬 듯이 그가 내게 가운을 입혀 준다.
“혹시 추워?”
“그러고 보니 좀 추운 거 같아요. 그러게 옷을 좀 입혀놔야지. 비행기 타고 내내 벗겨놓으니까 이렇잖아요.”
“그랬나? 이리 와. 안아줄게.”
그가 다정하게 안아주자 잠시 후에는 또 괜찮아진다. 그러나 괜찮아졌다고 느낄 때 그의 손은 다시 내 몸 이곳저곳에서 진한 애무를 하며 요동을 치고 있었다.
“학학……. 라울…….”
안으로 파고든 손가락이 가장 민감한 곳을 건드리자 바로 내 몸이 달아오른다. 그는 여전히 알몸인 채로 아까부터 부푼 페니스도 여전하다. 풀어내지 않고는 절대 가라앉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디아나, 이제 괜찮지?”
나를 보며 동의를 구하는 그 눈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같은 현기증이나 구역질은 나지 않았다.
“짧게 하자.”
그가 말과 함께 입술을 겹쳤다. 조금 더 격하고 빠르게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혀를 얽으며 내 몸에 두른 가운을 열고 하체를 비빈다.
이미 젖어있는 아래가 그의 것을 여전히 원하고 있었다. 그가 패니스를 한 손으로 잡고 길게 비비며 올리자 클리토리스가 자극을 받으며 몸이 움직인다.
내 엉덩이를 들어 올려 그의 위에 앉히자 페니스가 깊게 밀려들어 온다. 한껏 다리를 벌려도 그의 크기만큼 질구가 벌어지려면 힘이 들었다.
“흐응……. 응…….”
“잘 하고 있어. 이제 움직인다.”
말은 천천히 하고 부드러운데 손길은 거칠다. 그가 내 허리를 양손으로 잡고 들썩이기 시작하자 다시 현기증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아래서 쳐대는 그의 몸짓에 위아래로 들고나는 자극은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아직 멀미가 다 가라앉은 게 아닐까?
머리가 빙빙 돌고 아래는 점점 더 자극이 세지는 동안 나는 점점 가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좋다기보다는 힘이 든다.
하긴 어제 새벽부터 일어나 결혼식까지 쉬지 못하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지금은 한국시각으로 새벽이다. 거의 하루를 쉬지 못하고 이 비행기에 타고도 잠시도 가만두지를 않고 있었다.
“으응……. 응……. 아아아……. 흑…….”
핑핑 도는 머리는 아득한 가운데서도 그의 페니스를 강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가 허리를 밀 때마다 깊은 안쪽의 민감한 부분이 자극을 받는다.
쿵 하고 짓찧는 강렬한 자극에 저절로 엉덩이가 움찔하며 뒤로 물리려 하지만 그의 두 손은 단단하게 골반을 잡은 채 놔줄 생각이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세게 몸을 밀착시키며 내리누르고 비빈다.
“하아……. 하아……. 라울 나 못 견딜 거 같아.”
입술을 다물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며 말하는 동안 입에 고인 타액이 입술 가장자리로 흐를 것 같다. 그가 그대로 입술을 겹치며 내 안의 모든 타액을 핥아 들인다.
꽉 맞물린 아래서 지진이 날 것 같은데 겹쳐진 입술도 혀를 건드리며 깊숙이 파고들자 또 속이 뒤집히는 듯한 구역질이 올라온다.
간신히 참고 그를 보자 눈동자가 젖어들어 있었나 보다.
“디아나. 눈이 너무 예뻐. 촉촉하게 반짝여.”
“하아……. 아……. 라울…….”
앓는 소리를 내며 그의 목에 감긴 팔에 더 힘을 주며 매달리자 그가 바짝 허리를 당겨 안으며 허리를 힘차게 올려쳤다.
“아아아……. 악.”
“큭! 디아나……. 으윽…….”
정신이 아득해지는 감각에 눈을 감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순간 라울이 내 안에 깊이 사정하며 나를 안았지만 나는 말도 못하고 그의 어깨에 매달려 품에 축 늘어졌다.
“왜? 디아나? 그렇게 좋았어?”
아, 진짜. 그렇게 좋은 건 라울이고 난 죽을 거 같아.
끄덕끄덕.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예뻐 죽겠다는 듯이 웃으며 내 볼에 키스한다.
“라울. 그런데 멀미가 아직 안 나았나봐. 속이 울렁거려요.”
“그래? 그럼 조금 잘까?”
그가 나를 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따뜻하지만 한번 시작된 멀미는 잘 가라앉지 않는다. 그렇게 잠시 잠이 들었다.
구름을 지나 더 높은 곳에서 경치 좋은 산과 물을 내려다보는 꿈을 꾸었던 거 같다. 끝없이 펼쳐진 풍경에 기분 좋은 느낌. 아마도 비행기를 타고 있어서 그런 꿈을 꾼 걸까?
다시 눈을 떴을 때도 비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라울이 나를 보며 웃는다. 따뜻한 차를 한 잔 주기에 마시고 났더니 한결 기분이 좋다.
“어? 이 차는 세비야에서 마셨던 장미향이 나는 차 맞는데.”
“물론이야. 세베로가 잘 챙겨왔지. 세베로는 우리랑 함께 섬에 머물고 바로 세비야로 돌아갈 거야.”
“그렇군요. 역시……. 차 맛이 너무 좋아요.”
내가 웃자 그가 내 등을 쓸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정말 피곤했나 봐.”
“이제 괜찮아요.”
결혼도 했고, 많은 축복의 말도 듣고 이렇게 함께 있으니 지나간 일들이 다 추억이 된다. 라울을 만난 후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국기업에 취업하고 라울과 사랑을 하고.
전쟁을 치르듯 지나간 일들이지만 라울이 내 옆에 있다는 걸로 모든 게 상쇄되고도 남는다.
“친정에서 보름간 행복했나?”
라울이 내 손등에 키스하며 물었다.
“행복했지요. 아버지 사랑도 받고 당신도 친오빠처럼 느껴지고…….”
“뭐야? 친오빠?”
“우리 아빠가 나한테 뭐 해줄 때마다 당신도 똑같이 해준 거 기억 안 나요? 꼭 형제처럼.”
“그 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군. 디아나 옆에서 오빠가 돼서 밀려난 임규빈이 있잖아. 그러니 오빠 같다는 건 꼭 나도 밀려나는 거 같아서…….”
“무슨 말이에요? 그만큼 가깝고 좋았다는 거죠. 당신이 보름간 아버지하고 같이 살아줘서 고마워요.”
“고맙기까지야. 내가 꼭 그런 소리를 듣기 위해서 거기에 간 게 아니라…….”
“알아요. 당신 이런 소리 들으려고 온 것도 아니고, 나를 찾아온 것도 아니고, 그냥 마음이 내켜서 왔겠죠? 어찌 됐든 집안이 훨씬 더 사람 사는 것처럼 북적대고 좋았잖아요. 우리 아빠도 기뻐하셨어요. 무엇보다 압권은 당신이 꽈배기 사서 온 거.”
“뭐, 그쯤이야.”
라울은 TV를 보다 꽈배기의 달인이 꽈배기를 만드는 걸 보고 찾아가서 직접 꽈배기를 사온 적이 있었다.
아빠가 그걸 보면서 저건 맛이 어떨까 한마디를 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어릴 때부터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엄격한 관리와 할머니의 보호 속에 자랐기 때문에 그 나이가 되도록 꽈배기 같은 걸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외국에서 공부한 적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그 말을 듣고 라울이 허름한 시장 골목까지 찾아가서 직접 사 왔다. 얼마나 많이 사 왔는지 풀어놓으니 식탁 한가득하다.
“이게 다 뭔가.”
“한 십만 원어치 샀더니 이만큼 주더라고요.”
“허, 참 이걸 다 어쩐다.”
난감해하면서도 아빠는 꽈배기를 6개나 먹었다. 나도 그 옆에서 꽈배기를 먹으며 이런 엉뚱한 짓을 한 라울을 보고 한 참 웃었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었나?”
“네 그래요. 나도 사실 그런 꽈배기 처음 먹어요. 라울은?”
“나도 그런 거 처음 먹어. 맛있더군.”
“저렴하고 맛있고?”
“잘하면 꽈배기 체인점을 만들어도 괜찮겠군. 커피하고 같이. 그러지 말고 아예 커피 전문점에 꽈배기를 넣어볼까?”
“안돼요. 그건.”
“응? 왜?”
내가 단호하게 반대하자 그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MK 같은 대기업 달인 꽈배기 시장까지 넘봐서는 안 되잖아요. 그리고 그런 꽈배기는 그렇게 서민적인 시장에서 사서 먹어야 제맛이라고요. 카페에서 팔기 시작하면 달인 꽈배기 사먹던 사람들이 덜 사먹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꽈배기는 팔지 마세요.”
내 말에 라울이 신통하다는 듯이 나를 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디아나가 아주 시장 원리를 다 깨우쳤네. 신통하게!”
“어머? 나를 뭐로 보는 거예요? 이래 봬도 대학에서 기본 경영과 경제 원리는 필수 과목이었다고요.”
“큭큭. 알았어. 절대 무시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정말 무시한 거 아니야. 그리고 실은 따끔했지. 맞아 보호해야 할 시장도 있어. 그건 인정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비행이 계속 되었다. 섹스가 끝나서인지 멀미도 가라앉는다. 역시 그가 너무 속을 쑤석거리고 흔들어서 그랬던 거 같다.
피곤할 때 너무 긴 섹스는 해로운 거 같아. 앞으로 자제해야지.
“주인님 그리고 세뇨라, 이제 곧 두바이 공항입니다. 공항에서 섬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세베로는 조금 잤나요?”
“그럴 리가요. 두 분이 주무시지 않으면 저도 자지 않습니다.”
“…….”
우리가 자지 않은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귀신같은 세베로.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섬은 정말 환상적인 인공 섬이었다. 두바이에 섬 중에 중간쯤 위치하는 이 섬은 타원형의 모형을 하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가며 해안선을 따라 야자수가 심어져 있다. 하얗게 이어진 해안선은 모두가 인공으로 가져다 놓은 모래라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해마다 조류에 휩쓸려가는 모래를 채우느라 그만큼의 모래를 가져다 쌓는다고 해서 더 놀랐다. 흰 모래사장에 파란 바다가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 파란 바다 끝에 파도가 넘실거리고 발자국 하나 없는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남서쪽으로 치우친 곳에는 대단히 고급스러운 저택이 있었다. 열쇠 모양으로 생긴 문 너머로 이어지는 양 가장자리로 열대 꽃들이 심어져 있었고 지붕은 빨간색이었다.
흰색과 조화를 이루는 집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안으로 들어가자 특급 호텔을 버금가는 데스크가 나온다.
“어서 오십시오. 머무르는 동안 모든 필요와 일정을 챙겨 드릴 이곳의 직원입니다. 일 층에는 식사하실 수 있는 테라스와 스파가 있고 마사지실이 있습니다. 2층에는 베드룸이 있고 와인 바가 있습니다. 3층에는 서재가 있고 영화감상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미리 말씀해주시면 미리 준비해놓겠습니다,”
완벽한 리조트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었다. 단지 객실이 아니라 개인 주택의 아늑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아담하고 정감 있다고 하겠다.
음식 맛도 최고였고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없었다. 처음으로 나온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바닷가재와 문어를 쪄서 만든 샐러드가 나왔다.
그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앞에 있는 샐러드도 정말 맛있어 보인다. 그런데 기분 좋게 한 입을 먹는 순간! 나는 그만 다 토하고 말았다.
“웬일이야 디아나.”
“어어 미안해요.”
화장실로 가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모두 토한다. 나 죽을병에 걸린 걸까?
“디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