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남의 떡
처음 겪는 생소한 두려움과 아픔이 그의 다정한 손길에 잦아들고 있었다. 방울방울 땀이 맺히면서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는 그녀의 안에 페니스를 묻은 채 그가 그녀의 귓불을 핥았다.
“많이 아파?"
끄덕끄덕.
촉촉하게 젖은 눈이 사슴처럼 맑다. 너무 맑아서 현실감 없게 느껴지는 청초한 아름다움에 정환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귓불과 목선을 따라 입술을 내렸다. 살갗에서조차 향기가 나는 것과 같다
“이제 움직일 거야. 괜찮지?”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안고 그대로 허리를 밀어 올렸다.
“흑……. 으윽…….”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그의 허리에 감고 혜원이 그를 바라보았다. 결합한 부위에서 화끈하게 열감이 치솟고 있었고 그는 그녀를 보자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사랑해! 너무 행복해. 믿어지지 않아.”
방안 가득 은밀한 사랑의 언어가, 꿀 같은 밀어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파고들면 들수록 갈증이 나고 죽을 것 같은 희열이 감싸고돈다. 스물일곱 무르익은 여체가 주는 달콤함과 설레는 심장의 고동이 임정환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함께 하면 할수록 혜원은 정환에 빠져들었고 임정환은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바로 다음 날은 출근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고 별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혜원아 왜 이제 나타났니. 왜 이제야 눈앞에 나타난 거야.”
“이제라도 나타났으니 됐잖아요. 이사님도 이제야 나타난걸 뭐.”
스물일곱의 생애 동안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임정한에게 느끼고 있었다. 혜원은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믿었다. 그만큼 정환의 눈길은 간절했고 그녀를 향하는 모든 시선은 순진하리만큼 담백했다.
제대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처음이었다. 이런 게 사랑이었다면 왜 짐작하지 못한 걸까? 이렇게 감미롭고 이렇게 저릿저릿하면서 그녀가 아니고는 아무것도 필요 없는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다.
수업이 있는 네 번, 그리고 수업이 없는 수요일은 따로 만났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매일 매일 얼굴을 보고 매일매일 함께했다. 그러면서 점점 드는 생각은 이 여자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만나는 거 말고 매일 떳떳하게 함께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
임정환은 점점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 * *
“이혼하자고. 도대체 왜 안 하겠다는 거야.”
이재은은 정환의 말에 담담히 쳐다보며 말했다.
“결혼도 우리 마음대로 한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이혼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왜 이래요. 여자 생겼어요?”
대답하지 않는 그였지만 얼굴을 보기만 해도 알겠다.
“알겠어요. 여자가 생겼군요. 괜찮아요. 만나요. 뭐라고 안 할 테니까. 뭐하느라 귀찮게 이혼까지 하자 그래요. 질릴 때까지 만나면 될 일 아니에요.”
이재은의 말에 정환이 소리쳤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냥 이혼하자 원하는 거 다 줄 테니까!”
“당신 그렇게 순진한 남자였어요? 무슨 이혼이에요 이혼은! 얼마나 복잡하게 회사 지분이 얽혀 있는지 알기는 해요? 그리고 두 집안 합작으로 벌리고 있는 일도 있는데. 절대로 안 돼요 이혼은. 그냥 만나요. 당신이 집에 들어오든 말든 신경 안 쓸 테니까.”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그가 혜원에게 주고 싶은 건 사랑만이 아니었다. 당당하게 그녀의 일을 하며 아내로 엄마로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시작은 잘못되었지만, 그녀에게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그런 삶을 주고 싶었다.
그는 매일 이재은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들어주지 않는 이재은의 말대로, 진짜 임정환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일 혜원을 안고 행복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는 점점 불안해진다.
이혼하고 혜원이를 제대로 아내로 맞이하지 않는다면, 이 여자는 내가 결혼한 것도 모르는데.
불안은 점점 쌓여갔다. 결혼했다고 이제 곧 이혼할 거라는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품에서 꼼지락거리면서 말했다.
“우리 결혼은 언제 해요?”
“응?”
“나 이렇게 사랑해서 매일 안으면서 프러포즈는 왜 안 해요. 내가 먼저 할까요? 내가 먼저 음…….”
그러나 그녀의 그 입을 그가 입술로 막았다. 달콤한 입맞춤 속에 그의 마음의 걱정이, 그녀의 마음에는 희망이 부풀고 있었다.
정환은 놀랄 만큼 자상한 남자였다. 스스로도 자신의 자상함에 놀랄 만큼. 주말에는 별장에서 함께 지내고 주 중에는 일부러 그녀를 위해 얻어놓은 오피스텔에서 함께 지냈다. 덕분에 혜원도 자신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휴, 이렇게 맨 날 만나다가는 안 될 것 같아요. 교수님도 못 찾아뵙고.”
그녀가 투정하듯 말하자 정환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입 맞추었다.
“나하고 같이 있는 게 제일 행복하지 않아?”
“당신하고 같이 있는 게 제일 행복해요. 하지만 어떡해요. 나도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이번에 전임 자리 나올 수도 있다고 하는데. 전문대 전임이래요. 그래도 나정도 이력이면 가능성 있다고 했어요. 교수님이.”
“그거 해봐야 얼마나 된다고.”
“헐! 돈 많다고 사람 무시해요? 돈이 문제가 아니지요. 나도 내 경력을 쌓고 사회에 내 힘으로 발 딛고 사는 건데.”
“그게 그렇게 좋아?”
“좋아요. 당신이 잘 나갈수록 나도 잘 나가야지. 그래야 나도 떳떳하지.”
“지금도 넌 내 앞에서 떳떳해. 오히려 내가 떳떳하지 못한 것 같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그에게 그녀가 말했다.
“겸손도 지나치면 교만인 거 알아요? 나한테 당신 너무 과분해.”
둘은 사랑을 했고 정환은 그녀를 위해 설거지를 하고 생전 해본 적 없는 요리도 했다. 자기에게 이렇게 요리 실력이 있는지 놀랄 만큼 그녀에게 멋진 오믈렛을 해서 접시에 놓아주면 그녀는 예쁜 눈을 반달처럼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가 뺨에 키스했다.
그것은 하루가 온통 솜사탕 위에 떠다니는 것 같은 달콤함이었다. 비교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오직 혜원만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그런 행복이었다.
그 날은 혜원이 교수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나 오늘 교수님 뵈러가서 조금 늦어요.”
“너무 늦으면 안 돼. 일찍 와서 기다릴 거야.”
“맨 날 늦으면서. 그래요 그러면, 되도록 일찍 올게요.”
그런데 혜원은 교수님을 만나고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어때 성진 그룹, 수업하기 괜찮지?”
“네. 수업하기 좋아요. 보수도 좋고요.”
“거봐 내가 특히 혜원이 아껴서 추천한 거라니까. 거기 임정환 이사는 잘 있나?”
“네, 그분 잘 아세요?”
“그럼 나한테 직접 강사 소개해 달라고 한 걸, 우리 남편 제자야.”
“네. 그분 어떤 분이세요?”
그에 대한 어떤 칭찬의 말을 기대했다. 사귄다는 말도 하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연애를 한다는 건 뭔가 부족하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내 사랑을. 내가 만나는 남자를 말이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교수님께 그에 대한 말을 기다렸다.
“결혼 한지가 벌써 9년짼가, 8년짼가. 애도 없고 어찌나 사람이 일만 하는지.”
쨍그랑! 혜원이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떨어뜨렸다. 혜원의 찻잔이 뒹굴었고 뜨거운 찻물이 밑으로 쏟아졌다.
“아이고 흘렸네.”
“제가 닦을게요. 교수님.”
옆에 있던 행주로 테이블을 닦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 물었다.
“임정환 이사님 결혼하셨어요?”
“왜 너도 관심 있었구나. 하긴 그 정도 되는 데 관심이 안갈 수가 없지. 나 같아도 그랬겠다. 꼭 싱글 같지? 아이가 없어서 그런가?”
“아아 결혼하셨구나.”
“그래, 결혼했어. 아무리 멋져도 남의 떡이니까 넘보지 마?”
“네.”
얼굴이 하얗게 창백하게 질린 혜원을 보며 교수가 얼굴을 갸웃했다.
“그런데 너 얼굴이 조금 안 좋은 거 아니야?”
“아니에요, 감기 기운이 조금 있나 봐요.”
“저런, 뜨거운 차 한 잔 더 줄 테니까 마시고 집에 가서 쉬어. 오늘도 저녁에 수업 있지 않아?”
“네, 있어요.”
그러나 그 날 저녁 수업은 휴강이었다.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강의실에도 오지 않은 혜원 때문에 정환은 돌아버릴 것 같았다. 전화도 없는 그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도무지 피가 말라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도록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숨도 자지 못한 그가 혜원의 교수님을 찾았다.
“교수님.”
“웬일이야 임 이사. 스페인어 강사 아주 똑 부러지지?”
“예.”
“어제 혜원이 왔다 갔는데, 그 애도 임 이사 얘기를 하더라고. 걔 눈에도 임 이사가 멋져 보였나 봐.”
“예.”
“그래서 내가 딱 말해줬어. 남의 떡이니까 넘보지 말라고. 아무리 멋있어도 유부남이라고. 임 이사도 자기가 유부남인 건 확실히 알고 다녀야 해. 임 이사 너무 멋진 거 알지? 여자들 설레게 말이야.”
갑자기 연락도 없이 찾아온 임정환 이사를 보며 혜원의 교수님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임 이사, 뭐 때문에 찾아왔어?”
“아 그냥 요즘 스페인 정서가 어떤지에 대해서 조금 들어보려고요.”
“이런, 그런 거라면 나보다 임 이사가 더 빠른 거 아니야? 어찌 됐든 차 한 잔해.”
어떻게 차를 마셨는지 어떻게 그 교수실을 나왔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 체 정환은 미친 듯이 홍대 앞 그녀의 자취방으로 갔다. 잠겨 있는 문을 아무리 두들겨도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주인집이 나왔다.
“아 여기 있던 아가씨 고향에 간다고 고향 내려갔는데.”
“네?”
“짐 싸서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언제 온다고…….”
“그야 모르지, 우리는 그냥 아예 방을 뺐다니까.”
놀란 임정환이 죽을 듯이 찾아서 그녀의 고향으로 내려갔다. 문을 두드렸을 때 나온 그녀의 얼굴은 초췌하고 바람에도 날릴 것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동그란 눈이 그를 보고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어머니가 편찮으세요. 성진 그룹 스페인어 강사는 교수님께 말씀드렸어요. 아마 오늘 저녁은 교수님이 하시고 강사님이 정해질 때까지는 교수님이 몇 번 해주실 거예요. 그래도 강의는 빠지지 않을…….”
말을 하는 그녀를 그가 세게 껴안았다.
“지금, 스페인어 수업이 중요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에게 화도 나고 배신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이렇게 찾아와 나를 안아주는 그 남자가 얼마나 고마운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 미친년 같아서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미안해 혜원아. 이혼하려고 했어. 그래서 준비 중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나 버리면 안 돼 혜원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마저 위중한 상황이라 머릿속이 붕붕 뭔가 날아다니는 것 같다. 멍든 마음과 고단한 몸, 그리고 엄마가 저렇게 편찮으신 게 꼭 자신이 잘못해서 벌 받는 거 같아 두렵기도 했다.
말 한마디 없는 그녀를 안고 정환이 애원했다.
“제발, 혜원아 진심이었어. 너 속인 거 미안해, 말하고 싶지 않았어. 내가 유부남인 걸 나도 부인하고 싶었다고. 미안해. 혜원아. 정말이야. 이혼하고 올게. 아니 이혼할게. 제발 날 버리지 마.”
그때 매몰차게 거절했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혜원이 청주에서 있는 동안 그도 서울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는 청주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서 그녀와 동거에 들어갔다.
정환이 청주에 내려왔을 때 이미 위독하셨던 혜원의 어머니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상복을 입고 혼자 멍하니 앉아있는 혜원을 그대로 두고 서울로 올라올 수가 없었다. 아니 그건 어쩌면 핑계였을 지도 몰랐다.
그녀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 이혼을 안 해주는 이재은이 차라리 이렇게 이곳에서 살림이라도 차리면 마음을 단념하고 이혼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 그와 달리 혜원은 다른 이유에서 그와 함께 있었다. 물론 그가 좋기도 했지만,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혜원은 그를 밀어낼 힘이 없었다. 그의 품에라도 안겨서 이 슬픔을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심장이 안 좋은 건 집안의 내력이었는지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심장이 좋지 않아서 일찍 돌아가셨는데 혜원의 어머니도 심근경색으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엄마가 없는 세상은 이렇게도 허전한 거였다.
세상 누구도 이제 진정한 내 편이 없다. 바람만 불어도 마음이 시렸다. 성인이 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자신이 고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환의 앞에서조차 더욱 초라해져 버린 것 같은 마음.
멍하니 있는 그녀를 품에 안고 보듬어 주고 다시 살 수 있도록 기운을 차리게 해준 건 정환이었다. 이미 유부남이라는 걸 알고, 그를 피해 청주까지 온 것도 사실이지만 청주까지 찾아와서 이렇게 나를 안아주는 그를 밀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청주의 아파트에서 둘의 꿈같은 생활이 시작됐다.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사는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인 줄 정환은 그때 처음 알았다. 밤이면 매일 사랑을 나누고 아침에는 함께 눈을 뜬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숨결은 달콤하고 따뜻하고 그녀의 눈빛은 날 녹이듯이 황홀하다.
햇볕이 왜 이렇게 따뜻한지 세상이 왜 이렇게 단지. 꽃들은 또 왜 이렇게 예쁜지. 온통 황홀하기만 한 지금의 세상은 그가 살던 세상과 달랐다.
여자를 품에서 놓고 싶지 않다는 게 이런 말이었구나!
정말이지 잠시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걸을 때 통통거리며 흔들리는 엉덩이며 가는 허리며 고른 치열을 내보이며 함박웃음을 지을 때면 네가 있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말이 절절히 와 닿았다.
사과를 한 입을 먹다가도 키스하게 된다. 입안의 사과즙이 달콤하게 오가면 가슴이 떨리고 다시 그녀를 안게 된다. 일도 하지 않고 밤낮으로 사랑하며 정환은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가지 않았다.
웬만한 지시는 다 전화로 하고 꼭 필요한 결제가 있으면 한 번에 몰아서 서울로 올라가는 날 했다.
이런 생활이 삼 개월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정환의 아버지까지 이 일을 알게 되고 집안 전체가 시끄러워졌다.
이재은의 친정에서도 사람이 왔다. 두 회사 간의 합병이 금이 가게 생겼다. 이재은은 더는 이대로 참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정환이 서울로 일을 보러 간 그날 혼자 있는 혜원의 집에 재은이 직접 아파트를 찾아왔다.
“정혜원 씨. 맞지요?”
가슴이 툭 떨어졌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여자가 임정환 이사의 부인이라는 걸.
“네.”
“집으로 들어가서 소란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 앞에 커피숍 있는데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 곧 내려가겠습니다.”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 하는 걸까. 긴 롱 카디건을 걸치고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이 말할 수 없이 죄를 지은 것 같은 이 느낌. 초췌해 보이는 얼굴. 아침까지 그와 사랑을 나누고 윤기가 나던 얼굴이 순식간에 푸석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심호흡을 하고 이재은이 기다리는 커피숍으로 갔다. 커피숍 창으로 보이는 이재은의 모습이 왜 이렇게 크게만 느껴지는 건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 앞에 단정히 앉자 이재은이 입을 열었다.
“정혜원 씨.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요. 뭐, 머리부터 잡고 소리치는 건 제 성질하고 맞지도 않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혼은 안 됩니다. 이혼해달라고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혼을 할 생각이 없어요. 만나고 싶으면 그냥 만나세요. 뭐라고 안 합니다. 살림도 차리고 싶으면 차려요. 그건 뭐라고 안 해요. 하지만 이혼은 안 돼요.
임정환이라는 남자. 그냥 일게 평범한 남자가 아니잖아요? 성진 그룹의 회장이 될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건 두 집안의 합병 문제고요. 이혼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에요. 저는 제가 하는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이 성진 그룹의 안사람 자리를 지켜낼 생각이에요. 이건 사랑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런 희망은 버려요. 그의 숨겨진 여자로, 첩으로 그렇게 사세요. 그런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을게요. 혹시 임신하셨나요?”
그 말에 혜원이 놀란 얼굴을 들고 고개를 저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제 기능을 다 못할 것만 같이 위태롭게 뛰고 있었다. 두 달째 생리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다른 반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임신하지는 않았을까 무서웠지만 이렇게 직접 묻자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재은은 아주 담담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내 입장에서는 정혜원 씨가 아이는 되도록 안 가졌으면 하지만, 사실 지금 우리 집안에 아이가 없어요. 제가 아이를 못 낳았거든요.
그러니 아이가 생기면 낳으세요. 제가 키울게요. 그러나 아이 엄마로도 살 생각은 하지 마세요. 아이 낳으면 제가 데리고 가서 제 호적에 올리고 제가 키울 거예요. 그게 아이에게도 좋겠죠? 정혜원 씨는 그냥 그의 여자만 되세요. 밤마다 그를 즐겁게 해주면 돼요. 그것만이 허용됩니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손끝이 떨리고 무릎이 흔들렸다.
“우리 혜원이 이제 교수도 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 되는 걸 엄마가 보지도 못하고 가게 생겼네. 혜원아, 우리 딸, 엄마가 죽어도 슬퍼하지 마라. 나는 우리 공주님 키우느라 매일 행복했다.”
마지막 엄마가 했던 말이 가슴을 콱 치받으며 목이 멨다.
혜원에게는 더할 수 없는 잔인한 말을 하면서도 이재은 그녀는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 꼬박꼬박 존대하고 표정도 담담했다. 혜원은 가슴을 콕콕 찌르는 아픔에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듣고만 있는 혜원에게 이재은이 다시 말을 했다.
“이 얘기 하려고 왔어요, 특별히 뭐 할 말도 없으니까. 그 사람 내가 못 해주는 부분 당신이 행복하게 해준다면 고맙게 생각할게요. 하지만 이혼은 아니에요.
더는 그 사람이 이혼 이야기 꺼내게 되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 생각보다 힘없어요. 아버님이 모두 막아버리면 돈도 없을 거고요. 그냥 숨겨진 여자로 그렇게 조용히 사세요.
그러면 대학도 알아봐 드릴게요. 웬만한 전문대 교수 자리 정도는 알아봐 드릴 수 있어요.”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여기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떤 것도…….
그렇게 아등바등 공부해서 전임자리라도 얻으려고 했던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말할 수 없는 현기증을 느끼며 구토가 시작되었다. 설마 걱정하던 임신이 된 걸까? 아니면 이재은의 말에 자신이 토악질이 날 정도로 못 견디게 경멸스러워서였을까? 계속 토하고 저녁이 돼서 늘어져 있다시피 있는데 임정환이 들어왔다.
“왜 이래. 뭐 잘 못 먹었어?”
“아니에요.”
“죽 사다 줄까?”
걱정스럽게 말하는 임정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든 먹고 힘을 내야한다. 그러나 정환이 죽을 사 와서 그녀의 앞에 한 숟갈을 먹여주었으나 그마저도 다 토하고 혜원은 그로부터 끙끙 앓기 시작했다. 그녀의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정환이 그녀를 안고 말을 했다.
“병원 가자.”
“됐어요. 이제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지금 이렇게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고집부리는 그녀에게 화가 났다. 이렇게 아프면서도 누워있는 게 못마땅했다. 당장 안고 병원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녀가 말한다.
“오늘 회사 가야 되는 날 아니에요?”
”가는 날이야.“
“그럼 다녀와요. 나 병원도 다녀오고. 맛있는 거 해 놓고 당신 기다릴게요.”
그녀의 말에 그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핼쑥한 안색이 당장 어떻게 될 것처럼 안 좋다. 대체 왜 이렇게 토하는지 모르겠고. 하지만 병원에 가겠다고 웃는 얼굴을 보니 그나마 낫다.
“많이 가라앉고 있어요. 그러니까 어서 서울 다녀와요. 오늘 중요한 일 있다고 들었는데.”
“오늘 계약 건이 몇 개 있어.”
“그러니까 다녀와요.”
“알았어. 그럼 그것만 딱 마치고 다녀올게.”
함께 산 지 3개월. 곳곳에 그의 향기가 있다. 사랑하지 않은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주방에서도 식탁에서도, 침실에서도 사랑했다. 욕실에 들어가서 한 번 더 한참을 구역질하고 먹은 것을 토해내고 다시 양치한다.
욕실 구석구석에서도 그와의 사랑이 묻어있다. 함께 샤워하고 입을 맞추고. 그러나 그것도 다 지나간 일들이다. 혜원은 구역질을 억지로 참아가며 양치를 하고 나와 그가 좋아하는 반찬과 찌개를 끓이고 한 상을 차리고 덮어놓았다. 그리고 그곳에 메모를 남겼다.
- 사랑하는 정환 씨. 이게 내가 당신한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식사네요. 당신을 만나서 정말 행복했어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안녕.
그게 마지막이었다. 서울을 샅샅이 찾고 그녀가 연관이 있는 곳이라면 있는 대로 찾아 헤매고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스페인으로 떠나지는 않았을까 싶어서 입출국 기록을 살폈으나 없었다.
"아픈 몸으로 어딜 간 거야?"
그녀는 그대로 증발을 했다.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에게 꿈같은 기억만을 남기고. 그리고 그의 삶도 망가졌다. 임정환은 죽을 것 같은 시간을 버티며 그녀를 찾아 헤매었다.
회사는 물론 나가지 못하고, 폐인이 되다시피 해서 임씨 집안 모두가 우환에 휩싸였다. 이재은도 그런 남편을 보고 다시 정혜원을 찾게 된다면 자신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력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걸 절감하며 괴로워했다.
그렇게 시간은 모질게도 흘러갔고 죽지 않은 이상 사람은 살게 마련이었다. 임정환은 시간은 걸렸지만, 다시 일을 시작했다. 수도승처럼 규칙적인 시간만큼 일하고 정해진 시간 책을 보며 그렇게 늙어갔다.
임정환 회장 재임 동안 성진은 차곡차곡 방어적인 성장을 했다. 무리한 모험도 없었고 공격적인 경영도 없었다. 그래서 더 안정적인 성장을 했는지도 몰랐다.
서재에서 창밖을 보던 임정환 회장의 눈에 눈물이 연신 흐르고 있었다. 흐른 눈물이 그가 들고 있던 혜원의 사진 위에 뚝 떨어졌다.
“그렇게 찾았는데 찾지 못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딱 너를 닮은 딸 하나를 보냈구나!”
* * *
“당신도 먹어봐요.”
커다란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고 내가 라울에게 프렌치프라이를 건넸다. 그는 그저 내 손을 보며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이런 데서는 안 먹어봤나요?”
“음. 미국에서 공부할 때 먹어본 적이 있지. 나도 좋아해. 단지 좀 더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는…….”
하고 입을 벌렸을 때 나는 프렌치프라이를 세 개정도 집어서 입에다 넣었다.
“말 그만하고 먹어요. 나는 너무너무 배가 고프다고요.”
그가 입안에 든 프렌치프라이를 꼭꼭 씹어 먹더니 입맛을 다신다.
“맛있네.”
안 먹겠다더니 한 번 먹고는 하나하나 내 프렌치프라이를 다 집어먹는다.
“뭐에요? 다 먹고. 몸에 나빠서 안 먹는다고 하더니”
“많이 먹으면 살찌니까 그렇지.”
“한꺼번에 그렇게 다 먹는 경우가 어딨어요. 어서 가서 다시 사와요. 프렌치프라이만.”
“그것만 따로도 파나?”
“빨리요.”
그가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있는 모습을 흘깃 보자 웃음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이 저런데 줄 서 있는 건 처음 본다.
“이걸 다 먹으라고요?”
프렌치프라이를 라지 사이즈로 다섯 개나 사갖고 온 남자를 보고 난 할 말이 없었다.
“맛있으니까 많이 먹으라고.”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많이…….”
한 쟁반 가득히 프렌치프라이가 수북하다.
“나도 같이 먹어줄게.”
“몇 개 집어먹고 싶어서 하나 더 사오라고 한 건데.”
그런데 이 남자는 정말 그 많은 프렌치프라이를 다 먹는다.
“그걸 다 먹어요?”
“맛있네! 뭐.”
세상에, 할 말이 없다. 햄버거 집에서 나오자 그가 바로 내 앞을 막으며 묻는다.
“어디로 갈 거지?”
“당연히 내 숙소로 가야죠. 늦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퇴근 시간이 늦어지면 초과수당 줘야 되는 거 알아요?”
“줄게.”
“됐어요. 당신한텐 안 받아요.”
“왜?”
“나는 정확하게 말하면 MK상사 소속이 아니거든요. MK푸드 소속이기 때문에 거기서 받아야 돼요.”
“초과수당 주려고 해도 절차가 복잡하겠군.”
“그러니까 됐다고요. 비켜요. 집으로 갈 거예요.”
그러나 그가 앞을 막는다.
“안 돼, 디아나.”
“음? 그러면 어쩌려고요. 이 서울 시내에서 그렇지 않아도 스캔들 난 MK 사장하고 호텔이라도 가요? 아니면 버젓이 당신 집으로라도 가자고요?”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못 말린다.
“됐어요. 나는 그냥 내 숙소로 갈 거예요.”
“데려다 줄게.”
그가 삐진 듯이 말했다.
“그래요. 너무 힘들어서 버스 타고 전철 타고 가기도 싫어요. 하지만 당신 차는 정말 부담스럽네요. 아직까지 기사도 있었으니 말이에요. 아무리 피곤해도 택시를 타는 게 낫겠어요.”
“디아나.”
“라울, 제발. 기다린다고 했죠? 그리고 지금은 어수선하잖아요. 나 오늘 온종일 일해서 피곤해요. 먼저 갈게요.
안녕, 라울. 둘이 있을 땐 이렇게 불러줄게요. 언제든지 사장님이라고 듣고 싶으면 말해요.”
“그럴 리가 있나.”
그가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막 스킨로션을 발랐을 때 벨이 울렸다. 정말 올 사람이 없는데. 이사한지도 며칠 되지 않은 숙소였는데.
“누구세요?”
말이 없다. 인터폰으로 보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야구잠바를 입은 남자가 서 있다. 맙소사, 라울!
저걸 변장이라고 하고 이 사원 아파트에 온 거야?
누구라도 지나다가 쳐다볼 만큼 큰 키에 모자를 눌러쓰고 야구점퍼를 입고 있는 라울을 인터폰 화면으로 보니 기가 차다. 누가 볼까 무서워 얼른 문을 열었다.
“뭐에요? 안 가고, 그리고 이건 다 뭐에요?”
문을 열기가 무섭게 몸을 밀고 들어오더니 바로 내 허리를 감싸 안는다. 그의 품에 안기자 그의 향기가 가득 숨으로 들어온다.
“요 앞에서 샀지. 위장이 필요할 거 같아서.”
말과 키스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말과 함께 그가 나를 안으며 입술을 겹쳐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 사무실에서 못다 한 키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 남자를 도대체 어떻게 떼어놔야 하는 건지. 하지만 떼어놓고 싶지 않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방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러고 보면 우리 세비야의 성에서 함께 밤을 보내고 벌써 꽤 시간이 흘렀다. 나도 그의 품이 그리웠다.
라울이 나를 번쩍 들어 안고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 내 무릎 아래 무릎을 꿇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하루 종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오늘 하루 종일 우리 같은 사무실에 있었는데요?”
“그렇지. 남들이 볼 땐 그렇지만 아침에 잠깐 인사하고 소회의실 들어가서 그 뒤로 우리 못 봤잖아.”
“내가 하는 일 결과물은 그냥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굉장히 바빠요. 예산을 짜고 그거에 맞게 장을 보고 또 그거에 맞게 원단 같은 건 사람들한테 그 자리에서 해달라고 맡겨야 되고.
앞으론 더 바빠질걸요? 당신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컨셉을 바꾸라고 했으니까 그거 바꾸려면 매일같이 계획 짜고 미리미리 날짜별로 어떤 컨셉으로 할 건지 적어도 일주일 분량은 미리 해놔야 될 거 아니에요. 결제 맡고 장보고 저녁이면 디스플레이하고.”
“이런. 내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나? 그럼 일주일에 세 번 하지 말고 두 번. 아니지 일주일에 한 번만 해.”
“그만해요. 라울. 회사 얘기는 집에서는 하지 말아요.”
“맞아. 나도 하고 싶지 않아.”
그가 내 귓불을 물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귓가에 사르륵거리는 소리에 어깨를 움츠리자 그가 다시 내 입술에 키스하며 셔츠 단추를 풀었다. 박스형 커다란 셔츠 원피스를 입고 있었기에 단추 몇 개를 풀자 어깨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의 혀가 내 입술을 가르고 들어왔다. 혀가 얽혀들며 그의 손이 내 등을 쓰다듬으며 엉덩이를 세게 쥐었다. 나는 다급하게 입술을 떼고 말했다.
“지금 내 방에서 자고 가겠다는 말이에요?”
“세일즈하러 온 거야.”
“네?”
“한 번만 더 나를 사줘. 이만 원! 20유로면 이만 육천 원이 넘는데 육천 원 깎아줄게. 응?”
그가 보랏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진지하게 바라본다.
이만 원에 저를 사라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이렇게 깊은 눈으로 진지하게 볼 수가 있는 거야?
“아, 라울. 지금 장난해요? 여기가 어딘데? 당신 회사 사원 아파트라고. 당신이 만들어서 회사에 기증한 거잖아. 그런데 여기 와서 빌붙어 자겠다고?”
“아니라니까, 이만 원에 나를 사라니까!”
진짜 대책도 서지 않고 말도 안 나온다. 스페인에서 20유로에 살 때보다 왜 더 헐값인 거 같은지.
내가 산다고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모자를 벗더니 야구점퍼를 벗어 던지고 빠르게 옷을 벗는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서는 혼자 내 침대에 가서 드러눕는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기는, 그의 솟아오른 중심부가 눈에 들어온다.
벌떡 하늘로 치솟은 것은 검붉은 위용을 자랑하며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가 다리 한쪽을 구부리며 옆으로 돌아눕고 나를 본다.
“어때? 나 탐나지 않아? 여기서 다시 옷 입고 가라고 하면 후회할 텐데.”
어찌나 크게 솟았는지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좀 가리기라도 하지!
나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 뒤로 돌았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나를 당기면서 나는 그의 앞에 넘어지듯 고개를 숙였다. 눈을 드니 그의 아랫배와 검은 수풀이 보인다. 물론 끄덕거리는 그것도 눈앞에서 나를 찌를 듯 솟아있다.
“사랑해줘. 너만 향하고 있잖아.”
그가 내손을 가져다 부푼 그것을 쥐여준다. 손안에 느껴지는 뜨뜻한 열기와 펄떡거리는 힘에 저절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살살 잡고 흔드니 위아래로 흔들린다.
“좋아요?”
좋으냐고? 손이 닿기만 해도 좋다. 당장 디아나를 눕히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 죽도록 몸을 쳐대고 싶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예쁘잖아. 이렇게 바라보며 조 작은 입술로 좋으냐고 묻잖아.
내 페니스를 잡고 올려다보는 그녀의 입술을 단번에 물어버렸다. 촉촉한 사탕 같이 느껴지는 입술을 한입에 물고는 혀로 핥고 빨다보니 내 페니스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보드라운 손바닥이 느껴지면서 쥐고 있는 두 손안으로 허리를 밀었다.
그녀의 손 안에서 그냥 갈 거 같다. 어디라도 그녀의 살이 닿기만 해도 못 견디겠다.
“디아나…….”
걸리적거리는 옷을 단번에 벗기고 뽀얀 알몸을 안고 내 배 위에 엎드리게 했다. 아기 엉덩이처럼 보들 거리는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쓸며 가슴 위로 올려 그녀의 가슴을 입에 물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질리기는커녕 더 빨고 싶다.
“응응…….”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비튼다.
빠져나가겠다고? 어림없지.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고는 입에서 가슴을 놓지 않고 빨아 당겼다. 그녀의 음모가 내 아랫배에서 비벼지며 가슬가슬한 촉감을 남긴다. 엉덩이를 쥐고 있던 손을 내려 갈라진 틈으로 파고들었다.
미끌미끌 젖어있는 속살이 느껴지자 심장이 두 배로 펄떡거린다. 손가락을 밀어 넣자 그녀가 작게 신음하며 말했다.
“아직 산다고 말 안 했는데요?”
이런 앙큼한 여자를 봤나. 누구 죽일 일 있어? 이런 상태에서 관두라는 거야?
“말했어. 지금도 말하고 있어.”
“언제요? 아니 뭐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말하며 나를 보는 눈길이 예쁘다. 나는 엉덩이를 꽉 쥐고 더 깊이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크게 물결치며 흔들린다. 그녀의 매끈한 살결이 내 몸 위에서 황홀하게 비벼지고 있다.
“지금 이렇게 아랫입술로 말하고 있잖아. 날 원한다고.”
그녀의 음모 아래로 손바닥을 밀어 넣고 크게 비비자 그녀의 입술이 벌어지며 신음을 낸다.
“음……. 으응…….”
“봐. 이게 아주 정확하게 대답하네. 응이라고…….”
말과 함께 그녀를 아래 깔고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서도 열기가 느껴진다. 이제는 뭐라고 해도 그녀 역시 날 원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다 벗겨놓고 볼 수 있어서 좋다. 회사에서 얼마나 이렇게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된 게 그녀가 사장실에 온 뒤로 회사 테이블이 다 이상하게 생각된다. 디아나를 벗겨서 저 위에 눕히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 알몸의 그녀를 책상 위에 앉혀두고 일을 한다면 정말 능률이 잘 오를 거 같다. 아닌가?
입술을 물고 뺨을 핥고 귓불에 숨을 불어넣었다. 정신없이 진저리를 치는 게 귀여워서 다시 한 번 입술에 길게 키스하면서 봉긋한 가슴을 두 손 가득 쥐었다. 목선을 따라 입술을 내리다 다시 예쁜 가슴을 크게 한입에 물자 단물이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양손에 쥐고 한참을 빨다가 얼굴을 내렸다. 매끈한 배에 뺨을 대로 얼굴을 비비다가 혀로 핥아 올리자 숨을 참으며 아랫배가 꿈틀한다. 편편하고 매끈한 배가 이렇게 예쁘다니. 허벅지 안쪽을 혀로 핥고 빨다가 속살을 벌리고 클리토리스를 세게 빨았다.
“아앗……. 라울…….”
“사무실에서 종일 침 흘리며 바라봤거든. 그러니까…….”
나는 말을 하다말고 그녀의 여린 속살을 물고 핥기를 반복했다.
“아아……. 흑……. 응……. 라울……. 라울…….”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이 너무 달다. 움찔거리며 떨리는 속살이 미치도록 좋아서 그녀의 허리가 크게 뒤틀리기를 반복해도 놓지 않고 물고 핥고 빨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아래로 피가 몰리며 통증마저 느껴질 때쯤 단번에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뜨거운 회오리가 몰아치는 거 같다. 단단하게 나를 물고 조이며 달라붙은 속살의 부드러움에 넋이 나갈 것만 같다. 깊게 허리를 밀자 그녀의 끝에 닿는 딱딱한 느낌에 온몸이 전율한다.
“하아……. 디아나, 넌 정말……. 너를 어떻게 할까?”
“하아……. 항……. 응……. 음……. 라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