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 스캔들 4
14. 사장실에서
몇 마디 말을 하지 못하고 내 혀가 그의 혀에 얽혀들었다. 가혹하리만치 세게 혀를 빨아 당기며 그가 하체를 밀착시켰다. 아스라하게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디아나!”
몸을 뒤로 물리려고 엉덩이를 뒤로 빼려고 해도 워낙 단단하게 골반을 잡고 하체를 밀착시켜서 꼼짝도 할 수가 없다. 밀착된 하체에 느껴지는 단단하게 발기한 그의 페니스가 아랫배를 찌르자 속에서부터 열기가 확 뻗쳐올라온다. 입안을 헤집는 그의 혀가 집요하게 내 혀를 건드리며 찌르고 핥아 올려서 숨을 헐떡이게 된다.
이 남자는 어째서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매력적인 건지. 그의 가슴을 밀어내려고 대고 있던 팔에 힘이 풀리며 그의 목에 감기게 된다. 계속되는 거친 키스에 점점 길들어서 그의 키스에 반응하기 시작할 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잠깐 만져만 볼게. 그러고 싶어. 그래야 여길 나갈 수 있을 거 같아.”
“…….”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그가 블라우스 속으로 손을 넣었다. 요즘 유행하는 짧은 박스형 블라우스는 그가 손을 넣기도 너무 좋았다.
손을 뒤로 돌려 브래지어 후크를 풀고는 둥근 가슴을 두 손으로 앞으로 모아 쥐고 얼굴을 내려 핥기 시작했다.
“흑……. 아으…….”
혹시라도 누가 들어올까, 혹시라도 누가 보지는 않을까 목소리를 낮게 깔고 신음을 하자니 가슴이 답답하다. 서 있기가 힘들게 몸이 흔들리자 라울이 나를 반짝 안아서 테이블 위에 앉힌다.
“너무 예뻐. 정말 맨 날 생각나. 빨고 싶고 만지고 싶어.”
색스러운 말을 하며 그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양쪽 가슴이 더 가운데로 몰린다. 하도 빨려서 빨간 젖꼭지가 타액이 묻어 반들거린다. 그가 그런 가슴을 가까이서 바라보다가 다시 덥석 물었다.
“앗. 앗……. 응.”
저절로 허리가 뒤틀리고 엉덩이가 테이블 위에서 움찔거린다. 아래는 이미 젖어들기 시작했지만 반응하지 않으려다 보니 발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요동치는 발가락 힘에 신고 잇던 하이힐 한쪽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아……. 디아나. 한 번만 만져보자. 응?”
라울이 스타킹을 신은 내 종아리에 손을 대고는 허벅지를 따라 쭉 위로 손을 올렸다. 그러더니 바로 다리 사이로 손을 넣었다.
“진짜 안 돼.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안된다고 하는 내 목소리가 지독하게 허스키하게 나오고 있었다. 이건 말린다고 하면서 자꾸 그의 머리카락을 팔로 안게 된다. 사실 이런 짜릿하고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 줄 정말 몰랐다.
그가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넣고는 스타킹을 찢었다. 스커트 안에서 작은 소리를 내고 찢기는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대체 여기서 어디까지 가려는 거지?
입술을 물고 있어서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박스형 블라우스 속에서 허전한 가슴이 흔들리고 있고 스타킹은 치마 속에서 찢어져 그 틈으로 그의 손이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외형은 그다지 추하지 않다.
비록 테이블 위에 앉아 그의 키스를 받고 있지만 말이다. 그가 손가락을 팬티 속으로 넣었다. 음모를 긁는 그의 손가락에 내가 몸을 움츠리자 그가 귀엽다는 듯이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진짜 여기서는 안 할 거야. 그냥 만져만 볼게. 그러니까 다리 벌려.”
밖에 비서실이 있으니 소리를 낼 수도 반항을 할 수도 없다. 나는 가만히 다리를 벌렸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그의 손이 들어오더니 깊게 살 속으로 밀어 넣는다. 아까 가슴을 애무할 때부터 젖어들기 시작한 아래가 이제는 흥건하게 느껴진다.
그의 손은 이미 촉촉하게 젖은 살을 가르고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위아래로 비비는 손가락에 몸이 흔들린다.
“앙앙……. 으음…….”
작게 나오는 신음이 그의 입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가 다시 나를 번쩍 안더니 커다란 회전의자에 앉히고는 창가로 끌고 간다. 블라인드가 쳐진 창 쪽으로 보게 의자를 돌리자 문 쪽에서는 내가 전혀 보이지도 않게 의자 안에 완전히 파묻히게 된다.
“안 되겠다. 한 번만 보고. 응?”
“뭘, 뭘 본다는 거예요?”
내가 당황할 틈도 없이 그가 내 다리를 활짝 벌려 구부렸다. 크게 M자로 구부려진 두 다리가 그의 손에 꽉 잡혀서 꼼짝도 할 수가 없다. 그가 팬티를 찢어버렸다. 얇은 레이스 팬티의 작은 솔기가 힘도 없이 찢어지자 그가 그럴 걷어내고는 유심히 바라본다.
기가 막히면서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눈길이 이렇게 진한 애무를 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점점 야해지는 그의 행동에 나도 길드는 걸까?
가슴이 두근두근, 혹시라도 누가 문을 열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래도 시각적으로 가려져 있으니 은밀함을 느낀다. 의자 하나로 이렇게 은밀한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공기 중에 노출된 그곳이 움찔거리며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빤히 바라보는 라울의 눈은 아주 진한 보라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가 입술을 내리더니 혀를 길게 빼서 핥아 올렸다. 외설적인 빨간 혀가 너무 야하다. 그러면서도 그가 클리토리스를 건드렸을 때는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졌다.
“흣……. 응…….”
“조금만. 조금만…….”
그가 본격적으로 클리토리스를 빨기 시작하자 견딜 수가 없었다. 양다리를 잡고 있던 손은 어느 틈에 가슴으로 파고들어 젖꼭지를 짓이기며 자극을 주고 있었다. 잠깐이라는 게 내가 오르가슴을 느낄 때 까지라는 걸까?
나는 빠르게 전율하고 흔들렸고 그는 손가락을 밀어 넣고는 앞뒤로 흔들었다. 파닥파닥 눈앞에서 닿을 듯한 불꽃이 느껴진다. 그가 혀로 클리토리스를 누르고 빨며 손가락으로 내벽을 긁기를 반복하자 더는 견딜 수 없어 몸이 휘고 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가 애널을 살살 자극하는 순간 나는 바로 하얀 빛이 눈앞에서 부서지는 걸 경험했다. 끝없는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그러는 순간에도 그의 입술은 멈추지 않고 세게 클리토리스를 빨아당겼다.
“아아……. 하아…….”
온몸이 뒤틀리며 신음을 내다가 몸이 경직되자 그가 내 입술을 물었다. 나 이상으로 그가 흥분한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자 그가 내 양 볼에 키스하며 말했다.
“너무 예뻐. 이 팬티는 내가 가지고 갈게 스타킹도. 치마 내리면 아무렇지도 않지?”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가만히 있자 그가 찢어진 팬티와 스타킹을 걷어내서 제 주머니에 넣는다.
일으켜 세워서 브래지어 후크를 채워주고 치마를 정리해주자 정말이지 감쪽같다. 그가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며칠 못 봤잖아.”
“겨우 이틀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이틀씩이나 못 봤잖아.”
그가 나를 꼭 안고 정수리에 입 맞추며 말했다. 움직이려고 하니 또 못 움직이게 한다. 정말 이러다가는 끝이 없을 거 같다.
“제발 나 좀 봐줘요. 나, 일하고 싶다고요. 일하려고 왔단 말이에요. 혹시 나 MK상사에 데려다 놓고 일 하나도 주지 않고 그냥 팽팽 놀거나 당신하고 차나 마시고 이런 게 내 업무가 되는 건 아닐까요?”
저 여자 내 마음속을 어쩌면 그렇게 잘 알았는지. 어떻게 내가 너한테 일을 시킬 수가 있겠어. 네 업무는 내가 틈날 때마다 같이 차 마시고 얘기하고 눈 맞추고 노는 거. 그게 나의 로망이거든.
그러나 그녀의 답답해하는 얼굴을 보자니 내 로망만 찾을 일도 아닌 것 같기는 하다. 뭐 일이야 천천히 주면 되는 거지.
“알았어. 내려가서 제대로 설명 듣고 짐 챙겨. 그럼 내가 좀 이따가 호출할게.”
“혹시 같이 가자고 덜렁덜렁 사무실로 막 들어오고 그러면 가만 안 둬요. 그럼 회사 확 그만둬버릴 거예요.”
“그건 안 되지.”
그건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다. 혹시라도 회사 그만두고 임규빈이 있는 성진 그룹으로 간다고 그럴까 봐. 호시탐탐 임규빈이 얼마나 디아나에게 눈독을 들이는지 아는데 아마 우리 회사를 그만두고 성진으로 간다고 그러면 임규빈은 좋다고 디아나를 채갈 거다. 그러니까 그런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
“알았어. 그런 식으로 사람 협박하지 말라고.”
내 참, 언제부터 신입사원이 사장이 잘못하면 회사 때려치운다고 그러는 게 협박이 됐나. 나만 이상한 세상에서 살고 있네. 요즘 같이 취업난에 누구라도 사장하고 한 번이라도 더 눈이라도 마주치고 취업을 하기 위해서 난리인 땅에서 까딱하면 때려치우겠다고 협박당하는 거 아니야, 나?
그래도 일단 MK상사로 데려가는 데에는 성공했다. 야호.
* * *
조용한 레스토랑의 특실에서 혜정이 이진산과 마주하고 앉아있다. 간단한 차와 케이크를 앞에 놓고 있는 둘은 서로 탐색하느라 바쁘다. 이진산의 눈이 혜정의 가슴과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허벅지를 훑는 동안 혜정은 이진산의 양복과 시계 구두에 눈길을 주었다.
“스페인에 있다 왔었다고요?”
“네.”
이미 집안끼리는 이야기가 다 끝났고 둘이 자리를 마주한 것이다. 혜정의 눈에 이진산은 멀쑥해 보이고 놀기 좋아해 보이는 게 딱 혜정의 타입이었다. 이진산의 눈에 혜정은 뭐 웬만한 싸구려로 보였다.
이미 임정환 회장의 숨겨둔 딸이라는 걸 알고 나온 터였다. 성진 그룹과 한주 산업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런 성진 그룹에서 볼 때 우스운 한주 산업에 선뜻 딸을 내놓겠다니 뭘까?
집안 차이가 나니까 사생아에게라도 감지덕지하라는 뜻이겠지. 한주 산업과 성진 그룹은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러다 보니 임 회장이 자기 사생아를 던져 놓기에 딱 좋은 만만한 기업을 골랐겠지.
얼마 전 성진 그룹의 공사하나를 뒤통수 먹여 따내서 화가 났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딸을 주겠다는 걸 보면 달래서 성진의 사업영역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성진 건설 사장이 다 된 계약을 한주 산업에 빼앗겨 사표 쓰고 나간 일도 있어서 임정환 회장이 화가 많이 났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달래려는 게 아니면 벌을 주려는 걸까? 하지만 뭐라도 괜찮다. 벌을 주려고 보냈어도 그냥 성진 그룹의 딸이기만 하면 된다. 그냥 그것만으로 가치는 얼마든지 있다.
이진산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혜정에게 나름 정중하게 말을 했다.
“스페인에서 부르던 이름은 뭡니까?”
꼭 이 말이 나올 때마다 혜정은 기분이 상했다. 디아나의 이름을 써야 하니까 말이다.
“스페인에서의 이름은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디아나라고 불렀지만 저는 마르티나라는 이름을 더 좋아했거든요.”
“아, 그런가요? 디아나도 이름 괜찮긴 하지만 저한테는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이름입니다.”
디아나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이진산은 기분이 상했다. 며칠 전 그 디아나라는 년이 MK그룹의 진시환가 인터넷 기사에 오른 게 생각난다.
분명 세비야의 그 호텔에서 물 먹이고 도망간 년이 맞다. 그리고 그놈도 그때 그 호텔에서 그년을 데리고 간 놈이다. 빌어먹을 어쩌다가 진시환이 거기서 그년을 데리고 갔는지.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지금이라도 그년을 데려다 밑에 깔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때 디아나를 놓치고 스페인 경찰에서 조사까지 받고 완전 스타일 구겼던 생각을 하면 디아나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상한다.
“네?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이름이라고요? 저랑 같네요. 저도 디아나라는 이름 아주 싫어요. 그래서 입에도 올리지 않으려고 해요.”
혜정의 말에 이진산이 픽하고 웃는다. 자기 이름이 짜증난다는 이 여자도 또라이야?
“풋……. 그래서 자기 이름을 버렸다고?”
“웃지 말아요. 그러는 이진산 씨는 그 디아나라는 이름하고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뭐. 스페인에서 좀 놀았었는데 그때 놀겠다고 와놓고 사람 망신주고 도망간 여자가 있어서요.”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혜정의 반응은 의외였다.
“어머, 뭐 그런 여자가 다 있어요? 놀기로 했으면 놀아야죠? 난 남자든 여자든 기껏 자리 마련했는데 빼는 것들이 제일 싫더라.”
자기 마음대로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 한마디에 이진산은 혜정이 꽤나 놀아본 여자라는 것도 바로 눈치 챘다. 하긴, 풍기는 인상도 딱 싸구려다.
“그렇죠? 놀기로 작정했으면 놀아야죠. 첫 만남이긴 한데 우리 서로 뜻도 통하는 거 같은데 오늘 좀 놀아보면 어떨까요?”
그러자 혜정이 흘깃 이진산을 보았다. 외모는 멀쑥하다. 키도 크고 몸도 헬스장에서 꽤나 단련시킨 것 같고. 돈이야 많은 거 알고 나왔다.
“그럴까요?”
그리고 둘이 향한 곳은 칵테일 바였다. 칵테일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진산은 늘 하던 버릇대로 혜정이 마시는 술에 최음제 반 알을 탔다. 제 버릇 개 못준다는 말이 딱 맞는다.
그래도 나름 성진 그룹의 딸이라고 해서 반 알만 탔다. 얼마나 놀아본 여자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심하게 해놨다가는 큰일 나기 때문이다. 성진 그룹에서 마음만 먹으면 한주 산업은 완전 뭉개질 수도 있다.
기분 좋게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혜정이 흐릿한 눈으로 이진산의 넥타이를 잡고 말했다.
“생각보다 술이 빨리 올라오네. 내가 원래 이렇게 술이 약한 여자는 아니거든요. 아, 더워!”
“그렇습니까? 덥다. 참 좋은 말이지. 안 그래? 열이 난다는 거잖아.”
이진산의 말에 혜정이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덥다며 벌써 단추를 풀어서 브래지어 위로 솟은 육감적인 가슴이 다 드러난다.
“우리 첫날인데 그냥 말 놓자. 집안에서 벌써 말 다 했다며.”
이진산이 말하자 혜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뭐라고 해도 다 좋다. 술도 좋고 이런 열기도 좋고. 지금 눈앞에 있는 돈 많은 남자도 좋다.
“좋아. 말 놔. 나보다 나이 많으니까 오빠라고 해줄까? 오빠. 이진산 오빠.”
“그래. 오빠 좋네. 어차피 뭐 특별한 이유 없으면 우리 결혼하는 거잖아.”
“맞지. 그런 거지.”
이미 혀가 풀린 혜정이 몽롱한 눈으로 이진산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차림새도 흐트러졌다. 혜정의 블라우스 단추는 풀려서 가슴골이 다 보이고 있었고 앉는 자세도 삐딱하고 몸가짐이 원래부터 그렇게 단정치는 않았는지 짧은 치마 아래로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나는데 다리로 적당히 벌리고 앉아있다.
“먹여줄까?”
이진산이 체리 하나를 들고 말하자 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산이 체리를 입에 물고 혜정의 입에 넣으며 키스했다. 거부하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혜정과 진한 키스를 나누고 이진산이 말했다.
“룸으로 갈래?”
“어차피 우리 둘 다 마음도 통하고 좋아. 가자.”
그리고는 둘이 바로 룸으로 향했다. 거리낄 것도 없고 둘 다 놀대로 놀아본 사람들이다 보니 서로를 알아본다고 할까. 사생아긴 하지만 성진 그룹의 딸인 혜정이 이진산의 마음에 특별히 걸릴 건 없었다. 외모도 그럴싸하고 너무 잘난 척, 고고한 척하며 몸을 빼지도 않고 적당히 넘어가 주는 것까지 싹 마음에 들었다. 둘은 바로 호텔에 들어가 엉겨 붙었다.
“어디 너는 어떤지 한번 볼까?”
이진산은 호텔 룸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바로 혜정의 팬티 안으로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다짜고짜 파고든 손가락에 찔끔하면서도 혜정이 그대로 달라붙는다. 이진산은 그대로 혜정을 침대에 밀었다.
“앗……. 하하하……. 뭐야?”
출렁 하고 침대에 떨어지면서도 혜정은 웃어대며 좋다고 한다. 이진산이 바로 재킷을 벗어던지고 버클을 풀었다. 팬티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옆으로 밀고는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아앗……. 진짜. 좀 천천히 하지. 하긴 거친 것도 괜찮아.”
뻑뻑한 속으로 파고드는 이진산이 무조건 허리를 흔들었다. 그 밑에서 혜정이 신음하다 깔깔거린다. 빠르게 한번 사정을 하고 내려다보자 혜정은 여전히 다리를 벌린 채 침대 위에서 자기 몸을 더듬으며 히죽거린다.
이진산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야, 심심하지 않게 됐다. 빨리 와.”
잠시 후에 이진산과 혜정이 있는 호텔 룸으로 남자 하나가 더 들어갔다. 이진산의 음란한 취향이었다. 막놀아도 될 거 같은 성진 그룹의 사생아, 임혜정을 진짜 막 대하기 시작한 이진산 이었다.
* * *
짐이랄 것도 없이 정리를 하고 나오자 라울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타자 기사가 바로 출발을 한다. 아래가 허전해서 자꾸 꿈틀거리게 된다. 속옷을 입지 않아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나쁜 놈.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고 지금 새로 발령받은 회사를 데리고 가는 거야?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 째려보자 눈이 마주친다. 라울의 보랏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가 웃고 있다. 지금 웃음이 나와?
“디아나? 잠깐 어디 들러야겠지?”
“…….”
차가 바로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라울이 가자는 대로 가니 여성 속옷 매장이다. 화려한 속옷들이 전시된 곳에서 라울이 바로 손가락을 가리킨다.
“이거, 이거, 이거, 여기 이분 사이즈에 맞춰서 주세요.”
“네.”
직원이 바로 디자인만 다른 흰색 실크레이스 속옷을 담는다.
이게 대체 뭔지. 그저 서있는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갑자기 속옷 매장으로 온 건 아마 입고 있던 속옷을 찢어버려서 사주려는 거 같은데 기왕이면 좀 골라보라고 하지. 그럴 틈도 없이 딱 자기가 고른다.
“뭐예요?”
“뭐긴, 필요할 거 같아서. 취향은 우리가 같은 거 같고.”
“…….”
“사실 내 취향은 안 입는 건데, 네 취향대로 고른 거야. 나는 네 거면 다 좋아.”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나는 눈만 끔뻑이다가 그가 주는 쇼핑백을 받아들고 화장실로 갔다. 정말 내 취향이 맞다. 팬티를 입고 나는 헛웃음을 쳤다. 생각 외로 자상한 데가 있는 라울이었다.
라울의 차를 타고 MK상사로 들어갔을 때 나는 정말 당황했다. 주르르 사람들이 나와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그런 라울의 바로 옆에 서서 도저히 갈 수가 없어 차에서 내리질 않자 라울이 직접 차 문을 열고 서 있다.
“뭐야? 안 내리고.”
“저기 먼저 들어가시면 안 될까요? 나는 좀 이따 천천히.”
“됐어. 당당히 옆에 서라고. 너는 우리 사원이잖아?”
언제부터 사원이 사장 옆에서 중직들의 인사를 같이 받으면서 걸었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어정쩡하게 떨어져서 깍듯이 머리를 숙이며 사옥으로 들어섰다. 이건 정말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나는 저 밑에 말단직원들과 있고 싶다고!
그러나 그의 고집대로 나는 그와 엘리베이터도 같이 탔다. 수행 비서들이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어서 여자는 오직 나 하나였다. 이 엘리베이터 안에선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그건 약과였다. 사장실 앞에 도착하자 비서가 깍듯이 인사를 한다.
“저기, 제 책상은 어디 있나요?”
라울에게 작게 묻자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임시 책상은 사장실 안에다 두기로 했어.”
맙소사!
“뭐요? 사장실 안에다가? 말단 직원 책상을 사장실 안에다가 테이블을 뒀다고요?”
조용히 책을 보는 임정환 회장의 서재 문이 열렸다. 찻잔과 과일이 든 쟁반을 들고 들어온 사람은 부인 이재은이었다. 성진갤러리 대표로 있는 이재은은 언제나 그랬듯이 담담한 얼굴로 차와 과일을 책상 위에 놓았다.
그러나 바로 나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 찻잔을 들던 임정환이 무슨 일이냐는 듯 서 있는 부인을 보자 이재은이 입을 열었다.
“저 애 언제까지 저렇게 호적에 올리지 않고 둘 건가요? 조금 지나면 한주 산업하고 결혼도 할 텐데. 그래도 호적엔 올려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성진 그룹의 회장 부인으로서는 부족함이 없지만, 그의 아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깍듯한 이재은의 말에 임 회장이 천천히 차를 마셨다. 아이 하나 없이 그저 남편과 부인으로 모양 좋게 각자 일하며 살아온 시간이란 이런 거였다.
익숙하면서도 늘 조심스러운 관계. 그러나 임정한 회장은 대답을 기다리듯 서 있는 이재은에게 시간이 지나도 묵묵부답 책을 펼치고 있었다. 이재은은 그 앞에 찻잔을 놓으면서 다시 말했다.
“난 당신이 나한테만 무뚝뚝한 줄 알았어요. 나한테만 정이 없는 사람이려니 그렇게 생각했죠. 그래서 사실 정혜원 그 여자 무척이나 시기했어요. 이렇게 정 없는 남자의 마음을 가져간 여자는 대체 어떤 여잘까 하고 말이지요.”
그녀의 말에 임 회장이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평소에 말이 없기는 이재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재은이 이렇게 여러 말을 하는 거 봐서는 뭔가 쌓인 게 있다는 거다. 그의 예상대로 이재은은 지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기억나요. 그 여자 얼굴. 단정하고 단아하고 참 풋풋하고 신선했죠. 나이 차이도 당신하고 많이 났으니까. 그래서 사실 그때 내 마음 접었어요.
나보다 훨씬 젊은 여자고 저 정도 예쁘고 풋풋하면 그래, 남자 마음 가져갈 수도 있겠다. 마음이나 가져가라. 실속은 내가 챙긴다 하는 마음으로 당신 옆에 있었죠.
하지만 그 여자 당신 마음은 가져갔지만, 당신에게 제대로 마음은 안 줬는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그렇게 아이 가졌다는 말도 안 하고 사라졌겠죠. 그런데 아이는 엄마 같지 않네요. 그래도 그 여잔 기품이 있었는데……. 아빠 없이 막 자라서 그런가.”
“그만해.”
듣기 거북한지 임 회장이 말했다. 그의 단 한마디에 이재은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어찌 됐든 그래도 자식이라고 받아들였으면 호적에는 올려줘야 될 거 아니에요. 그래야 한주 산업에서도 그 아이 제대로 편한 마음으로 데려가죠. 나중에 유산 문제도 있고.”
“턱도 없는 얘기!”
그의 말에 이재은이 인상을 썼다. 딸이라고 해놓고 유산은 턱도 없다는 건가?
“나야 늘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고 살았지만, 이번 일처럼 이해가 안 되기는 처음이네요. 한주 산업이라면 당신이 밟으려고 치를 떨던 기업이잖아요. 더구나 이진산은 지난번 공개적으로 우리 성진 그룹과 거의 원수지간이 됐고요. 그런 데 딸을 보내요? 아무리 정 없고 있는지도 몰랐던 딸이라도 말이지요.”
“내가 알아서 해. 그러니까 당신은 상관하지 말고 그냥 있어. 그만 나가 봐.”
“…….”
대답 없이 이재은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 임 회장이 다시 밖을 내다보았다.
“이사님, 이사님은 언어실력이 정말 탁월해요. 이렇게 빨리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활짝 웃으며 저를 보던 정혜원의 얼굴이 떠오르자 한숨이 나온다. 봄꽃처럼 화사하면서 청초하고 맑고 예뻤던 정혜원.
그런 혜원의 딸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혜정을 보기 전에 유전자 검사를 먼저하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혜원을 닮은 혜원과 나의 딸!
그러나 막상 그 아이를 보고는 허탈했다. 혜원을 전혀 닮지 않았다. 실망스러울 정도로.
그래서 더 호적에 올리기가 꺼려졌는지도 모른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정이 가지도 않고 혜원의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보내온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 친자라고 판명됐다.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는 건 분명히 혜원이 아이를 낳긴 낳았다는 거다. 그런데 어째서 나도 닮지 않고 혜원이를 닮지도 않은 이상한 아이가 아빠라고 하면서 나를 찾아온 건지. 뭔가 마음에 걸렸다.
친자라는 그런 유전자 검사가 나올 수 있다는 건 적어도 이 세상에 분명히 나와 혜원의 아이가 존재한다는 건데. 그리고 분명히 혜원이 그렇게 전해왔다고 하는데. 직접 통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물어볼 수도 없고 보고를 받았을 때는 이미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유전자 검사에는 저 아이가 분명 내 아인데 이렇게 정이 가지 않는 건지. 뭔가 자세히 좀 더 샅샅이 알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임 회장은 혜정에게 건강검진을 시키면서 혜정이 몰래 다시 유전자 검사를 했다.
어이없게도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임 회장 자신도 몰랐던 딸의 행세를 하며 나타났다는 건 바로 이 가짜 주변에 진짜 딸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괘씸한 생각에는 바로 요절을 내고 싶었지만, 일부러 시간을 주며 기다렸다. 그러니 당연히 서울에 온 지 한참 되었는데도 그저 집을 얻어주고 다달이 생활비를 보내면서도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던 거다.
* * *
“앞으로 모든 결제, 옆에 있는 소회의실에서 받도록 해. 사장실로 사람 들여보내지 마.”
“네. 알겠습니다.”
라울의 지시에 비서실 직원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옆에 있는 나는 정말 서 있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자 그럼 우리 정이랑 씨는 옆에 있는 소회의실 테이블 세팅을 좀 부탁할까?”
사장 책상 맞은편 한쪽에 놓아 둔 화려한 내 책상 앞에 앉아 나는 검은 동자가 돌아가서 보이지 않을 만큼 라울을 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반응 같은 건 예상했다는 듯이 라울은 여유 있게 싱긋 웃으며 말한다.
“딱 원하는 대로 마음껏 기획하고 꾸미고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사다 써. 알았지?”
쳇, 이 남자는 정신연령이 몇일까? 아니면 나를 사랑하느니, 기다려주느니 말만 그렇게 해놓고 내 속을 다 뒤집어 놓으려고 작정이라도 한 걸까?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말했다.
“정말 왜 이러는 거예요? 말단 직원을 이렇게 사장실에 앉혀놓고. 그렇지 않아도 스캔들 기사가 넘쳐나는데 거기에 더 보태고 싶어서 그래요? 아주 스캔들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지르지요?”
“빙고. 원래 맞불작전이라는 게 있는 거지.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내 길을 간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이사회 열릴 판이에요. 사장이 사장일 못한다고.”
나는 정말 그게 걱정되었다. 사장이 이렇게 제멋대로면 이사회에서 회의해서 잘라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니지. 내가 사장 일을 못하는 게 어딨어? 설마 내가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직원 하나를 사장실에 데려다 놨다고 해서 이사회가 열릴 정도로 힘없는 사장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정이랑 씨, 여기는 회삽니다. 깍듯하게 사장님이라고 부르고 옆에 있는 소회의실 테이블 세팅하세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여기가 내 직장인 것도 맞고 저 사람이 사장인 것도 맞다. MK푸드에서 MK상사로 차출되어 온 거니까 말이다. 그래도 갑자기 근엄한 사장 코스프레를 하면서 목소리를 까는 라울이 얄밉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어떤 컨셉으로 할까요?”
“소회의실입니다. 사람들 결제받기 좋고 또 편안한 마음에서 회의도 많이 하니까 매일매일 디스플레이를 다르게 해주세요.”
“매일이요?”
진짜, 개념이 없다. 어떻게 디스플레이를 매일 다르게 하나?
“왜? 그게 어려운가? 일도 없을 텐데.”
“그건 곤란합니다. 적어도 이틀이나 사흘의 말미는 주셔야죠. 컨셉을 하나 바꿀 때마다 식탁보, 꽃 모두 다 그 분위기에 맞게 골라야 하고 장도 봐야 하는데 매일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 일주일에 세 번 어때?”
“알겠습니다. 그럼 일정에 맞게 필요한 계획, 재정, 그리고 어느 날짜에 어떻게 바꾸게 되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까지 모두 서류로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제는 직접 MK상사에게 받아야 하는 건데.”
“그럼 그렇게 해.”
“대체 누구에게 결제를 받아야 하는지…….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집행할 수가 없어서요.”
진짜 궁금했다. 내 상관이 누군지. 내가 있는 특별 연회팀이라는 거에 팀장은 누군지.
“누군 누구야? 나한테 결제 받아. 내가 네 직속상관이야”
“네?”
어이가 없으면 말이 안 나온다. MK상사의 사장이 내 직속상관이라고?
“저기 특별 연회팀 팀장님은 그럼 누군지…….”
“나야! 내가 팀장이라고. 독립적인 부서니까 내가 정이랑 씨 직속상관이고 팀장이고 사장이야.”
“…….”
말을 해서 뭐해? 응,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거면 버텨야지.
“네. 알겠습니다. 일단 그럼 저는 소회의실로 가보겠습니다.”
사장실에서 바로 연결된 소회의실로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자 속에서부터 웃음이 터져 나온다. 으하하. 정말, 정말 내가 드디어 디아나를 내방에 데려다 놓는 데 성공했어. 역시 이럴 때 쓰라고 권력이 있는 거겠지.
기분 좋게 앉아서 그녀가 빨리 나오기를 기다렸다.
점심은 뭐로 먹을까. 같이 먹어야지. 그런데 점심시간이 다 돼가도록 이 여자 소회의실에서 나오질 않는다. 도대체 그 쪼그만 회의실에서 할 일이 뭐가 있지? 안을 살짝 들여다보자 곰곰이 생각하면서 줄자로 꼼꼼히 재고 여기저기 나름 바쁘게 움직인다.
밥도 안 먹나?
“사장님 식사시간입니다. 점심 약속이 되어있는데요.”
인터폰을 통해 비서가 전해오는 말에 일어섰다. 같이 밥 먹으려고 했는데 미리 약속되어 있었지, 맞아. 그리고 나가서 한참 GE 산업과 이야기를 하고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안을 보니 이제 없다. 나는 바로 비서실로 나갔다.
“여기 정이랑 씨 어디 갔나?”
“예. 소회의실 테이블 세팅하기 위해서 장 보러 나간다고 했습니다.”
“뭐? 장을 보러 가?”
“예. 늦게 돌아올 수 있다고 그러던데요.”
“알았어.”
그런데 이건 얼굴을 볼 틈이 없잖아. 장을 보러 가다니 쫓아가고 싶은데.
“사장님. 경기도에 있는 본사 방문하실 시간입니다.”
“알았어.”
도무지 얼굴 볼 틈이 없군.”
하루 종일 경기도에서 일을 보고 늦은 시각이 되었다.
“곧바로 퇴근하시는 거 맞죠, 사장님?”
“아니. 아니야. 회사로 가지.”
늦었지만 회사로 가고 싶었다. 디아나가 소회의실을 꾸미겠다고 장 봐다 놓은 게 와있을 테니 어떤 게 있나, 뭘 하고 있나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모두가 퇴근하고 없는 사무실 한쪽 소회의실만 불이 켜져 있다.
살그머니 가서 그 안을 보자 혼자서 낑낑거리며 테이블보를 깔고 한쪽 벽에 작은 액자를 갖다 걸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게다가 무슨 박스들은 저렇게 많은지. 저렇게 말라서 저 박스들을 혼자 들고 내리는 걸 봐줄 수가 없어 들어가 박스를 들었다.
“사장님.”
“이런. 둘이 있을 때는 그렇게 부르지 말지. 라울이라고 불러.”
흥, 누구 맘대로. 이렇게 일을 잔뜩 시키고 있으면서 라울?
그는 내게 시킨 일이 얼마나 일거리가 많은 건지 전혀 모르고 있다. 주 3회 분위기를 다르게 꾸민다는 건 진짜 바쁜 일이다.
“회사에선 사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왜 퇴근 안 하고 이리 오셨어요?”
“뭐 특별히 디아나가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니야. 그냥 서류를 가져갈 게 있어서.”
“당연히 그러시겠죠. 사장님께서 말단 직원이 보고 싶어서 여기를 들릴 리는 없으시니까요.”
이런, 한마디도 지지 않는 이 여자의 이 입. 하지만 일하느라 집중하는 모습은 더 귀엽다. 도와주려고 상자를 들고 물었다.
“이건 어디에다 둘까?”
“저쪽 끝에요. 한꺼번에 모아두면 내일 청소하시는 분이 새벽같이 와서 가져가신다고 했어요.”
한쪽에다 차곡차곡 박스를 정리하다 보니 소회의실이 완전히 달라졌다. 브라운계열로 꾸민 안정감 있는 분위기였다. 테이블보도 어디서 가져왔는지 그 사이에 아주 고급스럽게 깔렸고 작은 액자는 앙증맞다. 차분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에서 가벼운 회의를 할 수 있게 최적화된 장소다.
“재주가 좋군.”
“당연하죠. 재주 없는 사람을 뽑지는 않잖아요?”
“맞군.”
기분이 점점 좋아지기도 하면서 안쓰럽다.
“저녁은 먹었나?”
“아니요. 아직이요. 배고파 죽겠어요. 이제 퇴근하면서 먹으려고요.”
“가자. 맛있는 거 사줄게.”
“나 맛있는 거 필요 없어요. 빨리 나오는 게 제일 좋아요. 햄버거랑 프렌치프라이 먹어요.”
눈이 살짝 찌푸려 든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지, 특히 패스트 푸드는 절대 먹지 않는다. 하도 교육을 그렇게 받아서 몸에 해로운 음식은 절대로 안 먹는다. 남의 눈에는 좀 까다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 것도 먹나?”
“그런 것도 안 먹어요? 빨리 나오고 맛있고 얼마나 좋은데요.”
“뚱뚱해질 텐데?”
“한번 먹는다고 뚱뚱해지지 않아요. 내가 지금 뚱뚱한가요?”
일어서서 허리에 손을 올리며 묻는다. 아! 저 한 줌도 안 되는 허리를 보자 몸이 요동을 친다. 바로 허리를 당겨 안았다.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몸과 아마릴리스 향기. 딱 그 향기다.
“배가 고픈 사람한테 이러면 안 되겠지만.”
안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먹고 싶다. 자동으로 입술을 겹쳤다. 뜨겁게 입술을 겹치며 몸을 밀착시키며 목덜미로 얼굴을 내렸다.
“라울, 여기서 이러면.”
“여기서 지금 당장 안고 싶어.”
디아나는 목을 움츠리며 어깨를 떨었다. 가늘고 긴 목선이 입술에 닿자 미칠 것만 같다.
“당신이 아직 제대로 스캔들 맛을 못 봤군요.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고요. 게다가 나는 너무 배가 고파요.”
“나도 배가 고파. 말할 수 없이.”
그가 다시 입술을 겹치며 나를 안았다. 이럴 때 라울은 참 떼쟁이 아이 같은데 그런데도 나는 이 사람이 너무나 좋다. 밀어낼 수가 없을 만큼.
* * *
“회장님 여기 말씀하신 디아나 정에 대한 모든 것입니다. 한국이름 정이랑으로 MK푸드에 입사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 기사도 떴습니다. 여기…….”
두꺼운 파일을 펼치며 보고하는 비서가 이랑과 라울의 스캔들 기사를 펼쳤다. 임정환 회장은 기사를 보다가 이랑의 사진 위에 눈길이 멈췄다. 사진이 작게 흔들리게 나온 데다 얼굴을 자꾸 가리는 사람이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익숙한 얼굴이다.
“다른 사진은 없나?”
“여기 학교 졸업 사진과 대학에 보관되어있는 학생 사진입니다. 그리고 이건 이번 성진 푸드에 지원했던 사진입니다.”
“성진 푸드?”
“네, 성진 푸드에 지원해서 합격까지 했는데 MK푸드로 입사했습니다.”
“…….”
잠시 임 회장은 비서가 내미는 그녀의 커다란 얼굴 사진을 보느라 말을 하지 못했다.
맞다!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다. 정혜원을 똑 닮은 갸름한 얼굴과 긴 목선. 그리고 나를 닮은 쌍꺼풀진 큰 눈과 도톰한 입술. 한눈에도 혜원의 딸인지……. 내 딸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됐으니 일단 나가 봐.”
“네.”
격한 마음을 보이기 싫어서 비서를 내보내고 서랍 속에서 작은 사진을 꺼낸다. 손바닥만 한 수첩을 열자 그 안에 활짝 웃는 정혜원이 보인다. 한눈에 봐도 지금의 이랑과 닮았다. 그리고 보니 기억이 난다.
“이사님 성이 임이니까 만일 딸이 생기면 이랑이라고 지으면 예쁘겠어요. 임이랑. 임과 같이 늘 함께. 내 님과 함께 라는 뜻이잖아요. 임이랑. 어때요? 이사님?”
귓가에 사락사락 봄바람 스치듯 들렸던 그 목소리가 바로 들리는 듯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혜원아!”
네가 이렇게까지 나를 흔들 줄 몰랐다. 이십 년이 넘도록 너를 찾았는데 이렇게 널 닮은 딸 하나만 남기고 어떻게 먼저 갈 수가 있니?
용서를 빌지도 못했는데. 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나 보고 어떻게 하라고. 어떻게 살라고.
임 회장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때 그렇게 욕심을 내서는 안 되는 여자였다. 그냥 예쁜 그대로 보고 말았어야 했다.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숨었을까? 사라지고 난 뒤에 얼마나 찾았는데…….
* * *
“안녕하세요? 저는 정혜원이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이 스페인어 강좌를 담당하게 됐습니다. 여기 특별히 높으신 분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아무리 높으신 분들이라도 과제는 꼭 하셔야 해요.”
성진 그룹에서 새로 진출하는 시장인 스페인. 중역 중에 부족한 언어를 채워주려고 일부러 강사를 초빙해서 사옥에서 수업을 했다.
스페인에서 유학하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정혜원은 교수님 소개로 성진 그룹의 스페인어 강사로 가게 되었다.
혜원이 활짝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는 그 순간에 임정환 이사는 그녀에게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앞가르마를 탄 생머리를 긴 단발로 잘랐는데 세련되면서도 화사한 미모와 환한 웃음이 그 밤에 잠을 못 들 정도로 그를 흔들었다.
임정환은 이미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다. 이번 사내 스페인어 강좌를 제의하고 강사를 데려오도록 지시한 것도 임정환이었다. 그는 서른여섯의 젊은 이사로 패기 있게 유럽에 진출하는 선두에서 서서 성진 상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올라, 부이네스 노체스. 안녕하세요? 좋은 저녁입니다. 앞으로 저녁 인사는 이렇게 합니다. ‘올라’는 기본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간단한 인사고 저녁인사는 그냥 ‘부이네스 노체스’ 이렇게 합니다. 함께 해볼까요?”
다들 불어나 독어 정도는 접해봤지만 스페인어는 생소하다. 임정환은 굳이 참석할 필요가 없는데도 꼬박꼬박 스페인어 강좌를 들었다. 유쾌한 그녀의 스페인어 강좌를 들으면 하루 피로가 풀렸다.
월화목금, 수요일만 빼고 주 4회로 강행군을 하는 스페인어 수업에 모든 중역들이 다 몸살을 앓는데도 오직 임정환만 눈이 초롱초롱하게 정혜원을 바라본다. 과제 점검을 하다 유독 답을 잘하는 임정환에게 혜원이 눈을 반달로 접으며 말했다.
“무이비엔(정말 잘하셨어요).”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
처음으로 임정환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눈길이 마주치자 알 수 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잠시 눈길을 잡던 임정환을 보고 혜원이 말했다.
“오 아블레르 에스파뇰(스페인어 할 줄 아세요)?
“노 포르 포리메라 베스/No, por primera vez(아니요. 처음입니다).”
“처음이신데 정말 잘하시네요. 음. 임정환 이사님? 정말 잘하셨어요. 약속대로 상으로 오늘 맥주 삽니다.”
“와~아…!”
다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인데도 모두 좋아한다. 하긴 이렇게 젊고 예쁜 스페인어 강사가 맥주를 산다는데 누가 싫어할까? 원래 숙제는 모든 문장을 외어서 혜원이 묻는 말에 누가 되었든 막히지 않고 대답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맥주를 사겠다는 거였다.
다들 기를 쓰고 했지만, 숙제 분량이 많아서 애를 먹고 있었다. 사람들이 대답을 못 할 때면 바로 임정환이 나서서 답을 하는 통에 혜원이 맥주를 사게 된 거였다.
간단한 감자튀김 안주와 생맥주를 앞에 놓고 웃으며 혜원이 말했다.
“안주는 이거 이상은 안 돼요. 강사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감자만 드세요. 돈 많다고 막 안주 쏘는 분 있으면……. 환영합니다.”
싱긋 웃으며 말하는 귀여운 미소에 중역들이 다 넋이 나갈 판이었다. 그중에 성진 상사 전무이사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내가 안주 쏩니다. 우리 선생님 무슨 안주를 드시고 싶으신가?”
“아! 훈제 족발이요.”
스스럼없이 답하는 혜원의 앞으로 커다란 훈제 족발 접시가 놓이고 유쾌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동안 임정환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보았다. 그 눈길이 의식 되서 혜원도 한 번씩 눈길을 주면서도 바로 눈길을 피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직 생맥주 한 잔도 안 마셨는데 얼굴이 달아오른다. 간단하게 딱 맥주 한 잔씩만 하고 헤어지려고 밖으로 나왔다. 2월의 매서운 바람이 불자 혜원의 머리가 날리며 앞을 가린다.
순간 휘청하는데 누군가 팔을 잡는다. 고개를 돌리니 임정환이다. 너무 가까이 얼굴이 있는 탓에 감전이라도 된 듯 놀라서 한발을 떨어져 눈을 마주쳤다.
“감사해요.”
“집이 어딥니까?”
“홍대 입구에요.”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괜찮은데…….”
“어차피 제가 운전하는 것도 아니니 타시지요.”
뒷좌석에 나란히 타고 집으로 향하는 내내 둘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평소에 유쾌하게 웃으며 말도 잘하던 혜원은 그의 옆에서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불규칙하게 뛴다.
“원래 술이 들어가면 말이 없어지나요?”
정환의 말에 혜원은 창밖을 보던 시선을 그에게로 옮겼다.
“아니요. 오히려 말이 많아져요.”
말과 함께 웃는 그녀의 희고 고른 치열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웃음이 박꽃처럼 환하게 느껴졌던 건 바로 이 희고 고른 치열 때문이었나 보다. 손을 들어 저 볼을 쓰다듬고 싶다는 충동에 정환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결혼한 지 9년째 아이도 없이 일에 파묻혀 살고 있었다. 스물여덟에 정략결혼을 할 때도 하나도 불편한 게 없었다. 남들은 정략결혼이라고 하지만 말이 통하는 아가씨였고 결혼 후에 일하는 것을 내조하는 것도 잘했다.
물론 가슴이 뛰어본 적은 없었다. 일이 바빠서 함께 있지 못한 날도 많았기에 그냥 가족같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가슴이 뛰는 이 순간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홍대 입구에 차가 멈춰서 혜원이 내릴 때 그도 따라 내렸다.
“집까지 데려다 줄게요.”
“그러세요.”
뚜벅뚜벅 늦은 골목길을 걷는 두 사람의 발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왜 그렇게 날 쳐다봤어요?”
두 달 간의 수업시간 내내 느꼈던 뜨거운 눈길에 대해 묻고 싶었다. 중역들 중에 유독 젊은 그가 궁금하기도 했고 혹시 나에게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 그녀도 밤잠 못 자고 생각했기에 슬쩍 물어보려고 했다. 별거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키스하고 싶어서.”
걷던 걸음이 멈춰졌다. 놀라서 옆을 돌아보는 혜원을 정환이 바로 당겨 안으며 입술을 겹쳤다.
“흡…….”
갑작스러운 키스였지만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수업시간마다 혜원의 눈길을 잡는 그의 뜨거운 눈길이 의식돼서 수업이 끝나면 이상하게 몸에 열이 날 정도였다. 스물일곱의 혜원이 키스를 상상했던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아무리 상상해봤다고 해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키스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입술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혀에 가슴이 더 세게 뛰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몸을 꼭 쥐고 정환은 거침없이 그녀의 입술을 빨았다.
휘청하는 혜원의 허리를 단단히 잡고 길고도 집요한 키스가 이어졌다. 그리고 한참 뒤에 정환은 반쯤 넋이 나간 혜원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계속 하고 싶어.”
말과 동시에 다시 입술이 맞닿았다. 뜨거운 입술의 감촉과 커다란 그의 품이 주는 안정감이 한꺼번에 휘몰아 쳤다.
그 뒤로 둘은 틈만 나면 키스를 했다. 그가 임정환 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지만, 당연히 이렇게 다가오는 사람은 미혼일 거라고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이사직에 앉아있는 능력 있고 잘생긴 임정환에게 혜원은 완전히 빠져들고 있었다.
“오늘이 발렌타인데이지요. 제 마음을 담아서 초콜릿을 드립니다.”
수업시간에 한 바구니 초콜릿을 책상 앞에 두고 웃는 혜원에게 중역들이 좋아하며 초콜릿을 하나씩 가져가 입에 넣는다. 정환은 초콜릿을 하나 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모두에게 주는 것이지만 혜원이 특별히 자기에게 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수업이 끝나고 기다렸다가 사옥을 나오는 혜원의 앞에 차 한대가 멈춰 섰다.
“이사님?”
직접 운전을 하고 타라고 하는 그의 차에 타자 차가 홍대 쪽이 아니라 미사리 쪽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정환이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불이 밝혀진 아름다운 별장이었다. 어두워서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등이 밝혀진 잘 다듬어진 정원에 2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랑해! 함께 있고 싶어.”
화려한 별장의 모든 것들도 달콤한 와인의 향기도 그의 한마디에 다 날아가고 오직 그의 간절한 눈빛과 뜨거운 고백만이 그녀를 흔들고 있었다.
부드러운 키스가 이어지며 그가 그녀의 셔츠 단추를 풀었을 때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이래도 되는 건지. 원하면서도 망설여지는 건 아직 경험이 없어서일까?
“제발, 혜원아.”
그의 낮은 목소리에 그녀가 손을 내렸다. 그의 눈은 애원하고 있었고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의 조명과 그의 눈동자가 함께 빛나며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녀도 그를 사랑한다. 보면 두근거리고 키스하면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그의 손이 다급하게 셔츠를 열고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하나둘 옷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는 바로 그녀를 안고 침실로 갔다.
키스에 묻어나는 와인의 향기보다 더 진한 서로의 체취에 취하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봉긋한 가슴을 물고 빨기 시작하자 혜원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그의 손은 다급하게 그녀의 매끈한 배와 엉덩이를 더듬었고 아름다움 그 이상의 차지고 부드러운 살결에 그의 입에서는 탄성이 쏟아졌다.
정환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렇게 가슴이 떨리게 하는 여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여자를 모르지 않았지만, 처음처럼 떨리고 심장이 아렸다. 혜원의 신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피가 역류하는 것만 같다.
“혜원아. 혜원아.”
연신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검은 수풀 아래로 얼굴을 내렸다. 꽉 다 물린 그곳은 더할 수 없이 신성하게 느껴진다. 살짝 혀를 대자 온몸을 떨며 허벅지를 오므린다.
내 사랑.
그가 그녀의 처녀지에 키스했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