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43)

11. 이것만 입어!

테이블의 위치를 정하고 주빈석과 일반석을 나눠서 테이블 세팅하는 것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테이블 위에는 정갈하고 깨끗한 종이에 타임테이블을 적어 좌석마다 올려놓고 귀빈석에는 일일이 이름표를 달아놓는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연회 준비에 모두가 녹초가 됐다. 열한 시가 넘어가고 열두 시가 지나자 이제 이랑은 계속 하품만 하고 있다. 한시가 거의 돼서야 일이 끝나고 인사를 하고 룸으로 올라가는데 아까 끝나고 전화하라고 했던 라울의 말이 생각이 난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많은 라울이다. 얼마나 피곤하면 보자마자 키스하다 말고 잠이 들었을까? 시차 적응도 안돼서 고단할 텐데 새벽 한 시에 전화할 수는 없다. 그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몸도 너무 무겁고 내일도 일이 있으니 그냥 들어가려고 룸 앞에 가서 카드 키를 대고 문을 열 때였다.

“끝나면 연락하라고 했는데 비겁하게 혼자 들어가는 거야?”

돌아보니 라울이다. 아까와 다르게 셔츠에 카디건을 걸친 모습이 여유 있어 보인다. 쉬어서 그런지 눈도 더 빛나고 있다. 예리하게 빛나는 보랏빛 도는 검은 눈동자가 어쩐지 위험스러울 정도로 집요하게 느껴진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요?”

“계속 기다릴 수는 없어서 사람을 시켰지. 끝나는 시간이 되면 연락하라고.”

어련하시겠어? 역시 그다운 행동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조금 덜하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연락 못 한 거예요.”

“알아. 그래도 내가 연락하라고 했으면 아무리 늦어도 해야지.”

딱딱 잘라 말하는 게 이건 바늘 코도 안 들어가게 생겼다. 하긴 라울이 저런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뭐. 방으로 들어가자 덩치가 큰 라울이 뒤를 쫓아 나를 밀며 함께 들어온다.

“너무 늦었어요.”

늦은 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방으로 들어오는 그나 같이 서 있는 나나 이런 상황이 어색하게 느껴져서 내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한다.

“늦어도 상관없어. 줄 게 있다고 했잖아.”

라울이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그녀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세상에.”

핑크 골드에 다이아몬드와 작은 루비가 박혀있는 너무나 예쁜 목걸이였다.

“이걸 날 주려고 산 거예요?”

“그럼 내가 하려고 샀겠어? 한 번 해봐.”

목걸이를 건네주자 혼자 해보려고 목에 둘렀다. 손을 뒤로 돌려 작은 고리를 끼우려니 잘 되질 않는다.

“내가 해줘?”

라울의 눈이 그녀의 목 뒤로 향했다.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고 싶었다.

처음부터 해준다고 하지 못한 건 나름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여자에게 이런 걸 걸어줘 본 일이 없다.

다가와서 목걸이를 해주려고 보니 하얗고 가느다란 목의 솜털이 눈에 들어온다.

“뭐가 이렇게 고리가 작아?”

“원래 그래요. 잘 안되면 내가 할게요.”

“아니야. 가만있어. 됐다, 됐어. 다 됐네.”

목걸이를 하고 돌려 보이자 가늘고 긴 목선이 그대로 드러나며 여린 쇄골 위로 목걸이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매장에서 빛을 내고 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게 보이는 목걸이를 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고마워요.”

“고마우면 제대로 보여줘.”

“네? 보세요.”

내가 셔츠를 넓게 벌리며 목걸이를 보여주자 그가 내 셔츠의 단추를 끄른다. 하나둘 단추가 풀어지며 부푼 가슴과 브래지어가 그대로 드러났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내가 셔츠를 잡자 그가 나를 진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대로 보고 싶어. 목걸이 한 거. 목걸이만 한 거.”

“네?”

그다음 그가 내 셔츠를 벗겼다. 고단한 날이었고 내일 아침부터 일어나서 해야 할 일도 많았지만 여기까지 찾아온 그에 대해 반가움, 그리고 그에 대한 그리움이 그를 말리지 않고 있었다.

그가 내 셔츠를 벗겨 내고 무릎까지 오는 타이트한 스커트도 벗겨 냈다. 결국, 나는 달랑 목걸이 하나만 하고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

그의 눈은 목걸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내 몸을 보며 한 말이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콕콕 다가와 박히는 듯 따갑게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그가 천천히 다가와서 내 목걸이 위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누르며 쓸었다. 그의 그런 행동 다음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고 있다. 기대와 우려가 섞인 마음을 쓸어내리며 내가 그의 손등에 손을 얹었다.

말리는 것도 아니고 애무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손놀림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길이 내 손 위로 쏟아지자 나도 모르게 손을 내렸다. 그의 눈길 때문에 온몸의 신경이 솜털처럼 곤두서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그러면서도 엉뚱한 말을 하게 된다.

“난 내일 중요한 일이 있어요.”

그가 내 손을 잡아 깍지를 끼고 다른 한손으로 내 쇄골과 가슴을 향해 손을 내렸다. 손길을 따라 살결이 단단하게 굳어지고 아래가 저절로 움찔거린다. 발가락 끝까지 긴장해서 오그라들고 있었다.

“나도 알아. 그래도 잠은 자야 하잖아?”

“여기서 자고 갈 생각이에요?”

그가 손으로 가슴을 살짝 감싸 쥐었다. 그 손길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달싹거리며 발을 그 자리에서 떼었다가 다시 놓는다. 이런 상황은 정말 적응이 안 된다. 말끔하게 옷을 입은 남자 앞에서 전라로 목걸이 하나 하고 서 있다니!

그런데도 견딜 만하다고 느껴지는 건 또 왜일까?

그의 손은 여전히 내 가슴을 쥐고 살살 애무하고 있었다. 그가 진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여기서 자고 가고 싶으면 또 몸을 팔아야 되는 건가?”

그의 말에 나는 빙긋 웃었다. 생각보다 고지식한 데가 있는 남자다. 벌써 두 번이나 나한테 몸을 팔아놓고 아직도 저런 말을 하는 거 보면 말이다.

“오늘은 사고 싶지 않아요.”

내 말에 그가 인상을 썼다. 한쪽 눈썹이 올라가면서 마음에 안 드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가 잠시 있다가 되물었다.

“그럼?”

나는 일부러 굳은 표정으로 있다가 두 팔을 벌리고 활짝 미소 지었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렇게 극과 극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다급한 키스였지만 거칠지는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냥 느껴진다.

마구 달려들어 핥아대는 게 꼭 뭔가를 연상하게 한다. 그가 잠시도 입술을 떼지 않고 내 입술을 핥고 빤다.

혀가 얽히며 그의 숨결이 밀려들어 오자 나는 조금 더 꼭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의 단단한 두 팔이 내 좁은 허벅지와 등을 단단히 받치더니 나는 그의 팔에 반짝 들려 침대로 향했다.

“펜트하우스는 어떤가요?”

그가 한 발짝 옮겼을 때 내가 물었다. 그 넓은 방을 두고 여기서 자고 가겠다고, 여차하면 몸도 팔겠다고 하는 그가 좋았다. 그는 내 말에 참 그답게 대답한다.

“좋지. 이런 작은 방과는 비교할 수 없게 시설이 잘 돼 있지. 너라면 절대 묵지 않을 만큼 비싼 방이지.”

흥, 이런 상황에서도 잘난 척은…….

“그런데 이렇게 누추한 곳으로 왔네요.”

“맞아. 이 방은 너무 작아. 하지만 전망은 나쁘지 않군.”

말과 함께 그가 나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목에 걸린 목걸이가 침대가 출렁하면서 몸과 함께 흔들렸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불빛에 현란하게 빛을 낸다. 그가 내 목에 걸린 목걸이에 키스했다. 그다음 내 젖가슴에 그리고 내 납작한 배에 길게 입을 맞추느라 얼굴을 내리고 몸을 숙였다.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그가 고개를 들자 눈을 맞추며 아주 뻔한 걸 물었다. 확인하고 싶어서였을까?

“왜 이 작은 방에서 자고 가려는 거죠?”

그러자 내 뻔한 질문에 그가 뻔한 대답을 한다.

“내가 말했잖아. 전망이 나쁘지 않다고.”

그가 말과 함께 입술을 겹쳐왔다. 난 온종일 모든 일이 그의 키스와 함께 날아가는 걸 느꼈다. 마치 올리브 나무숲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며 그에게 안겨들었다.

입술이 겹치고 또 겹쳐진다. 윗입술을 핥고 아랫입술을 빨아들이고 혀를 얽으며 깊이 들어와 마치 제 것처럼 움직이고 건드리고 빨아 당긴다.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자극적인 입맞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카디건을 걸치고 셔츠를 입은 채로 알몸인 나를 만지고 핥으며 달아오르게 하고 있었다. 내가 손을 뻗어 그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집중할 수가 없다. 절대 놓아주지 않는 집요한 입술에 손끝까지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내가 그의 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그의 작은 젖꼭지를 손끝으로 비틀었다.

“큭! 하…….”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기라도 한 듯 그가 신음했다. 그러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내 앞에서 바로 옷을 벗는다. 부분조명이 켜진 호텔 룸 안의 낮은 조도에서 그의 떡 벌어진 어깨 근육이 꿈틀거린다.

버클을 풀고 팬티와 바지를 동시에 내리자 벌떡 솟아오른 그의 것이 튕기듯 흔들리며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눈앞의 적나라한 몸을 보면서도 눈길을 돌릴 수가 없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눈앞에 펼쳐진 듯하다.

남자의 몸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이 사람을 보며 느낀다. 그가 다가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몸을 겹쳐온다.

나는 그의 목선과 가슴 굴곡을 따라 손가락을 내렸다. 손끝에 느껴지는 단단함과 부드러움. 조화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두 성질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가슴에서 배로 그리고 그의 끄덕거리는 그것을 손으로 쥐었다. 두 손 가득 들어오는 뜨거운 기둥을 잡고 입술 끝으로 물었다.

“하아…….”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을까? 하지만 나도 한번은 이렇게 해주고 싶었다. 그의 것에 키스하고 부드럽게 핥았다. 그런데…….

“누구 죽일 작정이야?”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그대로 내 젖어든 아래로 얼굴을 내리더니 음모 아래 도드라진 돌기를 세게 빨았다.

“아악……. 하……. 응…….”

왜 뭐가 잘못된 거지? 잘하려고 한 건데 왜 화가 난거지?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죽을 듯한 전율을 감당하기도 힘이 들었다. 왈칵왈칵 쏟아지는 애액을 느끼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그가 다급하게 몸을 밀어 넣는다.

“흑……. 아……. 으……. 흑……. 으응…….”

빠르게 몸을 밀어 넣고 허리를 쳐올리는 그의 행동에는 분명 조바심이 가득하다. 그가 참을 수 없이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를 비비기 시작했다.

“으응……. 앙……. 아…….”

몸 안의 열점을 공략하면서 동시에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를 비벼대자 순식간에 절정이 눈앞에서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다른 때보다 훨씬 빠르게 그가 몸을 움직이더니 가장 깊숙한 안쪽의 어느 지점을 쿡 찔렀다.

“아아아…….”

강렬한 불꽃이 흔들리며 터지고 있었다. 그가 몸을 굳히더니 빠르게 몸을 빼서 내 허벅지에 뜨거운 액체를 내뿜었다.

라울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 여자는 정말 대책이 없다. 하루 종일 부풀어서 꺼지지 않는 이 녀석을 간신히 눌러 참으며 기다려서 디아나를 보기만 해도 사정할 거 같았는데, 저 작은 입술로 그렇게 물면 어떻게 견딜 수가 있겠나?

빠르게 일단 몸을 풀었다. 황홀한 그녀의 몸은 어느 한 곳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저 입술로 이걸 물었다는 생각만 해도 다시 부풀어 오른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내가 그녀의 얼굴 앞으로 페니스를 가져다 대었다.

“자, 이제 다시 해봐.”

“뭘요?”

그녀가 빤히 보면서 작은 숨을 헐떡인다. 이제 겨우 절정에서 풀려나 정신이 몽롱한 얼굴이 너무 섹시하다. 이렇게 흐트러진 얼굴을 보니 더 귀엽다.

“아까 하던 거 지금 하라고.”

내가 끄덕거리는 페니스를 얼굴 앞으로 가져가자 디아나가 고개를 돌린다.

“싫어요. 아까 하니까 화냈잖아요. 다시는 안 해요.”

“뭐?”

아니 그게 왜 화를 낸 거야? 너무 좋아서 당황해서 그렇지. 바로 그냥 나올 거 같은데 처음인 네 입에다 그럴 수는 없잖아.

하지만 이렇게 말 할 수도 없다.

“그러게 좀 잘하지. 그렇게 아무렇게나 하니까 그렇지. 잘하는 법 알려줘?”

뭐라고? 이 남자가!

뭐? 잘 빠는 법을 알려준다고? 내가 지금 그거 잘 빠는 법 배우고 싶대?

“됐어요. 어서 가요.”

“뭘? 어딜 가?”

“이제 했으니까 어서 가라고요. 못 빤다고 막 화내고…….”

아니 그게 아닌데……. 이 여자는 왜 이렇게 사람 마음을 몰라?

나는 말 대신 그녀의 입술을 쪽 빨아들였다. 입을 열고 들어가 철없는 그녀의 혀를 잡아채서 빨고 또 빨았다.

그녀의 안에서 열기가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뜨거운 숨을 내쉬기 시작한 그녀의 가슴을 양손으로 잡아서 꽉 쥐고 비틀고 주무르자 허리가 휘면서 몸을 움찔거린다.

“디아나! 나 여기 있을 거야.”

“음……. 응……. 응…….”

그녀가 작은 짐승처럼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매끄러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자연스럽게 깊은 굴곡 안으로 손을 넣었다. 조금 전의 정사로 젖어든 속살이 말할 수 없이 부드럽게 부풀어 있다.

깊이 손가락을 넣어 열점을 누르고 비비고 자극하자 그녀의 다리가 벌어진다.

이제 됐다! 이제 실수하지 않고 사랑해야지. 그때부터 뜨거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젖어든 입구를 길게 핥아 올리고 빨자 그녀의 입에서 연신 신음이 터진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물이 뚝뚝 흐르는 단내 나는 살을 음미하며 다시 그녀의 입술에 입 맞추고 그녀의 온몸을 사랑한다. 몇 번의 절정을 느끼고도 안아주면 또 안기는 사랑스러운 그녀!

황홀한 휴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 * *

똑똑. 똑똑.

“디아나. 디아나.”

노크 소리에 눈을 떴을 때 나는 라울의 품에 꼭 안겨있었고 라울도 나를 두 팔로 감싸 안고 잠에 빠져있었다. 계속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똑똑. 똑똑.

“디아나. 디아나.”

일 년 선배인 율리의 목소리였다.

“어머, 지금 도대체 몇 시야?”

시간을 보자 아홉 시가 넘었다. 열 시까지 모이라고 되어있었으니까 늦은 건 아니지만 율리는 아마 아침 식사를 같이 하자고 문을 두드리는 걸지도 몰랐다.

“율리, 무슨 일이에요? 나 이제 막 일어났는데.”

“내려가서 식사하자고. 간단한 뷔페식당인데 여기 음식 맛있는 걸로 유명하거든.”

“율리 먼저 내려가 있을래요? 나 지금 막 샤워하고 나서 곧 내려갈게요.”

“알았어. 어서 와.”

율리의 목소리가 멀어져갔다. 만일 라울이 여기서 잔 걸 알면 사람들은 다 난리가 날것이다. 내가 율리와 말을 하는 동안에도 눈 한번 뜨지 않은 라울을 가만히 내려다보는데 라울이 두 팔을 뻗어서 나를 휙 당겨 안았다.

“앗! 뭐에요? 깨 있었어요?”

“그럼, 그렇게 소리를 치는데 어떻게 자나?”

“나 이제 내려가 봐야 돼요.”

“알고 있어.”

그가 부드러운 손길로 내 허리와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당신은 더 자도 돼요. 연회는 저녁때나 돼야 있으니까. 여기서 더 잘 건가요?”

“조금 더 자다가 올라가야 하겠지? 호텔로 오기로 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요, 그럼. 난 먼저 내려가 볼게요.”

내가 일어나려고 했으나 그가 여전히 두 팔로 나를 감은 채 놓아주질 않는다.

“어떡하라고요.”

“내가 씻겨주고 싶어서.”

“계속 잘 거라면서요.”

“씻고 자지 뭐.”

“됐네요. 조금 더 자요. 고단해 보여요.”

“맞아. 고단해. 디아나하고 삼 일을 보내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강행군했거든. 약속을 당겨서 미팅하고 겨우 시간을 냈어.”

“삼 일을 같이 보낸다고요? 누가요?”

“누구라니. 디아나가 이 라울하고 삼 일을 같이 보낸다는 거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내가 삼 일 같이 보내자고 일을 몰아서 하라고 말 한 것도 아니다.

일단 휴가를 어떻게 쓰는가는 전적으로 내 자유다. 그런데 지금 이 남자는 내 사흘을 휴가를 몽땅 가져갈 계획을 말하고 있는 거였다.

“정말이요? 난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요.”

당황하며 말을 하자 라울이 빙긋 웃으며 나를 더 꼭 안는다.

“내가 다 알아봤어. 오늘 연회 끝나고 나면 주말까지 끼어서 삼일 연속으로 쉰다는 거. 맞지?”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거 알아낸 게 그렇게 대단해?

“맞아요.”

“그 사흘을 내가 함께 있으려고 얼마나 별의별 짓을 다 해서 시간을 빼놓은 줄 알아?”

“왜 그랬어요? 더구나 나한테는 묻지도 않고요? 내가 다른 약속이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러자 그의 얼굴이 있는 대로 구겨진다. 절대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말이다.

그가 갑자기 나를 휙 돌려 아래 깔고 내려다본다. 둘 다 아직 옷도 입지 않아서 허벅지가 맞닿으며 아침이라 솟아오른 그의 페니스까지 그대로 느껴진다.

지금 바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런 자세라니. 이거 진짜 곤란하다. 그가 다짜고짜 내 가슴을 물고 빨기 시작했다. 어찌나 세게 빨았는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바로 신음이 터졌다. 눈이 저절로 감긴다.

“약속하고 가.”

그가 입술을 떼며 말했다. 흥분한 가슴이 부풀고 조금 전 빨린 가슴이 아릿하면서 서늘한 공기 중에 꼿꼿하게 선다. 나는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뭘요? 뭘 약속해요?”

“삼 일 몽땅 나한테 준다고.”

맙소사! 결국 이거였다.

“이건 너무 일방적인 통보예요. 어떻게 이렇게 정신없을 때 일방적으로 말할 수가 있어요?”

“당연하지. 넌 선택권이 없으니까. 난 꼭 너하고 사흘을 같이 보낼 거야. 후회하지 않게 해줄 자신 있어. 같이 보내자. 디아나.”

기가 막힌다. 이 남자는 늘 이렇게 기막히게 하면서도 자신은 참 진지하고 열심이다.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내려가서 오늘 일을 해내지.

“생각해보고요.”

적당히 대답하고 나가려고 몸을 움직이자 내 몸을 꼭 누른다. 그의 페니스가 이제 내 중심부를 찌르기 시작한다.

아, 놔! 진짜 지금 이러면 어쩌라고!

“그럼 넌 오늘 내려갈 수 없어. 지금 내 상태 알지?”

그래 안다. 이 발정 난 짐승아! 밤새 그렇게 하고도 아침에 이런 상태가 될 수 있다니! 대체 이 남자의 정욕은 어디가 끝이야?

그의 눈동자가 아주 검게 변하고 있었다. 이 말은 점점 화가 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잘못 건드리면 진짜 오늘 일 못한다.

“약속해. 그렇지 않으면 못 내려가게 할 거야.”

“협박인가요?”

“애원이라고 해두지.”

무슨 애원을 이렇게 무지막지한 힘을 쓰면서 하는지……. 일단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나는 무모한 투쟁은 하지 않는다.

“좋아요. 그 대신 후회하지 않도록 정말 그렇게 해줘야 돼요.”

“걱정하지 마.”

그가 내 양 볼에 차례로 쪽쪽 입을 맞추고 몸을 놔주었다. 조금 전 내 아래를 찔러댔던 그의 페니스를 생각한다면 저런 상태로 나를 놔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덫에서 풀려난 것처럼 빠르게 욕실로 갔다. 또 잘못해서 잡히면 진짜 오늘 일 못한다.

간단히 샤워하고 뷔페식당으로 내려가니 율리는 이미 앉아서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나도 간단한 시리얼과 과일을 담아 가지고 가자 율리가 조용한 목소리로 나한테 말했다.

“디아나, 그 말 들었어?”

“무슨 말이요?”

“여기에 MK 상사의 사장이 와있대.”

가슴이 뜨끔했다.

“네. 어떻게 알았어요?”

“왜 몰라. 나 아는 사람이 여기 프런트 데스크에 있거든. 펜트하우스에 묵고 있대. 진짜 멋있대. 그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 잘생기기까지 하고 게다가 싱글이잖아. 아마 그 사람이 걸어만 다녀도 모든 여자들의 눈길이 거기로 쏠리고 말 거야. 아, 한번 만나라도 봤으면.”

“만나면 뭐하게요?”

“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이거지. 그런 사람하고 한 번이라도 엮여봤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다. 율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성실한 직원인데 그런 율리조차 라울과 한번 엮여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다니.

“뭐,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겠죠.”

“아니지. 그 사람은 다르지. 스페인 왕족이기도 하잖아. 우리 스페인에서 라울의 인기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한국 기업의 이미지도 라울 때문에 훨씬 좋아진 거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 샐러드를 포크로 천천히 찍어 먹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MK 상사 사장이 웬일로 여기 MK 푸드의 시연회까지 왔을까? 물론 그 사람이 MK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긴 하지만 덕분에 여기 MK 푸드의 사장단, 이사진 전부 줄줄이 온 거 알아? 덕분에 우리만 더 긴장하게 됐지만 말이야. 어서 먹고 올라가자.”

율리가 접시를 들고 일어나며 말했다.

“알았어요.”

나는 아직 음식이 남아있지만, 접시를 들고 일어났다. 으드득. 허리에서 소리가 나는 거 같다. 밤새 너무 무리한 게 틀림없어. 하긴 그렇게 온갖 자세를 하며 그를 받아들였는데 정상일 리가 없다.

그런데 떠올리기만 해도 볼이 달아오른다. 아래도 너무 무리해서 아직도 그의 것이 내 안에 있는 것처럼 걷는 것도 어색하다. 그러다 고개를 내려 보니 어제 그가 걸어준 목걸이가 반짝이고 있다. 신비스러운 붉은빛이 도는 목걸이였다.

* * *

연회가 시작되고 게스트들이 속속 등장하며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중에는 MK 상사의 사장인 라울도 있었다. 라울이 등장하자 유독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휘파람을 불었다. 라울은 별 표정의 변화 없이 정중하게 인사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새로 시판되는 음식은 동양의 나물들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잘 무친 나물들을 가공해서 일회용 용기에 담아서 유통기간을 늘린 거로 밥과 함께 얼마든지 한 상을 차려서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비빔밥도 가능하고 고기와 함께 곁들여서 먹을 수도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 외에 전골을 상품화해서 나온 것과 불고기를 냉동되지 않은 국물 있는 불고기 형태로 포장된 것들까지 총 여섯 가지의 음식들이 나왔다.

유통되기 전에 시식을 하고 또한 퍼포먼스와 함께 직접 요리연구가들이 나와서 요리를 하고 그 음식들을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된 연회였다. 생각보다 음식들은 놀라울 정도로 맛이 있었고 스페인 사람들도 모두 좋아했다.

음식이 어느 정도의 양으로 어느 정도의 유통기한을 가지고 판매가 되느냐는 앞으로 좀 더 진행돼야 할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오늘 참석한 사람들은 유난히 고위층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기자들도 더러 왔다.

시연회가 다 끝나고 난 뒤에 스텝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그날 저녁에 인터넷에 MK 푸드의 시연회에 관한 기사와 함께 사진이 함께 올랐다. 나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자마자 MK 푸드의 시연회의 스텝으로 사진에 나올 수 있었다.

연회에서 몇 번 눈을 마주치기는 했지만 라울과는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다. 당연한 거였고 말을 붙일만한 여가도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나가는 접시들을 체크하고 제대로 테이블세팅이 되었는지 중간 중간 돌아다녔다.

꽃꽂이 한 수반이나 화병들을 체크하고 전체적인 연회가 잘 돌아가는지 선배들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일하기에 바빴으니까.

연회는 생각했던 것보다 훌륭하게 마무리 되었고 우리는 함께 모여 하루를 정리하고 축하하는 박수를 치고 헤어졌다.

이제부터 주말까지 삼 일 동안 휴가다. 라울은 내가 휴가인 걸 얼마나 치밀하게 알아보고 계획을 세웠을지 모르겠지만, 그와 함께 꿈같은 삼 일을 보낸다는 건 사실 기쁜 일이었다.

난 그에게 달리 원하는 게 없었고 이제는 직장도 가진 어엿한 사회인이다. 그와의 관계가 어떻게 더 발전할지 알 수 없지만, 삼 일을 그와 보내지 못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는 여전히 세비야 성의 성주이고 MK사의 사장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배경으로 있다 하더라도 지금 그는 나에게 삼 일을 같이 있자고 의견을 물어보고 부탁한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애원이지만 말이다. 룸으로 올라가자 바로 전화가 왔다.

“짐 싸서 옥상으로 올라와.”

“알았어요.”

짐이라고 해 봐야 별로 있지도 않다. 간단한 가방을 가지고 청바지에 얇은 윈드자켓을 입고 올라가자 그 역시 가벼운 차림으로 나를 맞아준다.

“뭐예요. 헬기라도 띄워요? 왜 옥상으로 오라고 하는 거예요?”

“이 도시에서 사람들 다 알아보는데 휴가를 보낼 수는 없잖아.”

이미 헬기가 준비돼있었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면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고 덕분에 그의 머리도 옷도 계속 돌아가는 바람이 펄럭이고 있었다. 나를 향해 손을 내미는 그의 모습이 너무 멋져서 가슴이 쿵쿵 뛴다.

저렇게 멋진 모습으로 자꾸 다가오면 어떻게 하나? 마음을 주게 되면 결국 나만 상처받을 거다. 우리는 너무 다른 세계에서 산다.

지금도 이렇게 헬기를 타고 있잖아. 이건 완전 상상 속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뻥인데 말이야.

결국 이 사람하고 계속 함께하다가는 뻥에 치여서 지내다가 뻥 차일 거 같아 무섭다.

바르셀로나 시내를 저 아래로 헬기가 비행을 시작했다. 점점 높아지는 헬기 아래로 건물도 상자처럼 작아진다. 조금만 위에서 봐도 별거 아닌데 땅에서는 그렇게 대단해 보였는지 허탈할 뿐이다.

엥, 그런데 왜 헬기가 뜨다 말지?

정말 헬기는 한 십 분이나 떴나? 그리고 바로 착륙했다. 겨우 요거 타자고 헬기 탄 거야?

어리둥절해서 쳐다보니 라울이 또 손을 내민다. 세상에! 헬기는 시작이었다. 우리가 내린 곳은 사설 비행장이었다. 거기에서 전용 비행기로 갈아타고 다시 이륙한다.

“대체 어디를 가는 거예요? 네?”

“가고 싶은 데 있으면 어디든 말만해!”

얄밉다. 이 잘난 척에 찬물을 좀 끼얹을 수는 없나? 이 비행기로 절대 못갈 만한 곳이 어딜까?

“남극이요.”

“…….”

그의 눈초리가 날카롭다. 우리 둘 다 얇은 여름옷차림인데 이 상태로 남극은 좀 그렇겠지? 더구나 사흘 만에 다녀오기는? 그러게 왜 잘난 척을 하나?

그의 눈길을 피해 눈을 돌리며 씩 웃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내 턱을 자기 앞으로 돌리고는 시선을 맞춘다.

보랏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가 웃고 있다.

지금 이 남자는 좋은 거다. 이렇게 함께 단둘이 전용기를 타고 있는 게 좋은 거야. 나처럼!

“우리 지금 모나코로 가고 있어.”

“모나코요? 프랑스 남부에 있는 왕국?”

“잘 아는군. 가본 적 있어?”

민박집하고 가이드하고 사느라 모나코 왕국 같은 데는 꿈만 꿨다. 정말 꼭 가보고 싶은 나라였는데 어떻게 알고.

“아니요. 정말 모나코 가는 거예요? 그레이스 켈리 왕비님이 살던 나라요?”

“물론이지. 원한다면 그레이스 켈리 보다 더 멋지게 꾸며줄 수도 있어. 드레스 입을 거야?”

맙소사! 그럴 리가. 물론 사양이다. 그렇게 드레스를 뻗쳐 입으려면 여러 가지가 받쳐 줘야 하는 거다. 덜렁 드레스만 입고 뭐하게?

“싫어요. 그런 거 입고 갈 데도 없고, 그런 거 입고 어울릴 사람들도 없고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어때? 오늘 하루 공주가 되고 싶어?”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사양할 것도 없다. 사실 나도 지금은 들떠있다. 첫 업무를 마치고 얻은 첫 휴가를 이렇게 라울과 함께 전용기에 몸을 싣고 모나코를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케 세라 세라!

“좋아요. 그럼 아예 호박마차에 왕자님까지 마련해 주지 그래요?”

“빙고. 역시 나하고 마음이 통했어!”

하긴 라울 까스탈로 진이 할 수 없는 게 뭐 있겠어? 정말 기대가 된다. 비행기가 몇 시간 되지 않아서 바로 모나코에 착륙했다.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발을 내리는 곳이 모나코라는 게!

비행기에서 내려 최고급 리무진을 타고 도착한 곳은 몬테카를로 카지노 거리였다.

눈이 부시게 화려한 거리였다. 번쩍이는 카지노뿐 아니라 세계의 명품이란 명품은 다 모아다 놓은 거리는 럭셔리의 결정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리 와봐! 공주님 만들어줄 테니까!”

그의 손에 이끌려 걸으며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귀여운 여인의 줄리아 로버츠처럼 빨간 드레스에 보석으로 휘감고 오페라라도 보러가나? 아니면 카즈노에서 한판 땡겨서 떼돈이라도 벌게 해주려나?

그런 나의 기대처럼 그는 호화로운 호텔과 연결된 카지노가 있는 몰로 데리고 갔다.

화려한 그곳에 커다란 호박 마차와 신데렐라와 왕자의 사진이 사람 크기로 서 있고 얼굴만 내밀고 사진을 찍는 곳이 있다. 물론 유료로.

세상에 있는 놈들이 더 짜다고 뭐야? 공주니 뭐니 해놓고 겨우 얼굴만 내놓고 찍는 사진이야?

그러나 사진은 정말 잘 나왔다. 수학여행 간 관광지에서나 찍을 법한 사진을 라울과 함께 찍었다는 게 신기하다. 정말 그와 나는 왕자와 공주가 되어 사진을 찍었다. 손에 든 사진을 한참 보고 있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공주가 그렇게 좋나? 그럼 진짜 공주 한번 되 볼까?”

그가 나를 최고급 숍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진짜 반짝이는 타이트한 검은 실크 드레스를 사서 입었다.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드레스는 그곳에서 산 검은 실크 하이힐과 세트를 이루어서 무척이나 고혹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와 카지노로 들어섰다. 난생처음 보는 룰렛을 돌리고 그가 이길 때마다 키스해주었다. 내가 정말 행운의 여신이 된 거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게다가 샴페인은 정말 최고급이었다. 그가 주는 대로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른다.

그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칩을 땄다. 모두 현금으로 바꾸니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함께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모나코 해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펜트하우스의 전경은 바르셀로나하고는 또 달랐다.

샴페인에 취해서 그리고 모나코의 화려함에 취해서 나는 마냥 들떴으나 그는 의외로 아주 침착하고 조용했다.

호텔 룸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하이힐을 벗고 맨발로 푹신한 카펫을 밟았다. 나 혼자 흥이 난 것 같아 그를 보며 물었다.

“뭐예요? 오자고 해놓고 모나코가 신이 나지 않아요? 왜 이렇게 조용해요?”

그러자 그가 말없이 뚫어지라 쳐다보며 다가온다. 다가오는 그의 향기가 느껴지자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했다.

그의 무게감이 갑자기 확 느껴지며 저절로 한발을 뒤로 물렸다. 그러나 그가 바로 허리를 팔로 휘감으며 잡아당긴다.

“신나 하는 너를 보는 중이야. 나는 네가 들떠있는 걸 보는 지금이 가장 신나.”

한쪽 어깨만 있는 블랙 드레스는 한 겹 얇은 실크로 만들어진 입은 듯 안 입은 듯한 옷이었다. 게다가 가슴 바로 아래서부터 타이트하게 몸을 곡선을 드러내고 있어서 그의 팔에 감긴 허리에는 그의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샴페인의 열기와 그의 체온이 주는 열감으로 몸이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그를 바라보는 내 눈길도 열기를 띠기 시작했고 내 입술 사이로는 작은 한숨이 쏟아져 나온다.

“디아나!”

이 여자는 자기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모른다. 움직일 때마다 시선을 자극하는 블랙 드레스를 입고 맨발로 카펫을 밟고 있는 이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모나코의 화려함도 반짝임도 지금 내 눈에는 모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디아나만이 반짝거리고 있다.

허리를 감아 몸을 당기자 작게 한숨을 쉰다. 그 예쁜 입술을 그렇게 살짝 벌리면 난 절제가 되지 않는다.

이거였다. 이 여자가 앞에 있기만 해도 아래로 피가 몰리는 이유! 이 입술만으로도 나는 늘 흥분한다. 그렇게 활짝 웃고 들떠 있더니 내가 안기만 해도 긴장하는 게 더 나를 미치게 한다.

나는 여러 말 없이 그녀를 안고 키스했다. 살갗만 닿아도 찌릿찌릿한 감각에 당장 죽을 거 같지만 그러기에는 밤은 길다. 키스를 하며 등의 지퍼를 내리자 달랑 팬티 한 장. 그것도 뒤에는 줄만 있는 팬티다.

“하응……. 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또 라니. 오늘 종일 보면서 얼마나 몸이 들끓었는지 안다면 이렇게 말하지는 못할 거다.

이제 모나코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밤이 시작된다. 이미 지금도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디아나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전혀 다른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 있다.

“하아……. 라울!”

귓가에 스치는 목소리. 그녀가 불러주는 내 이름을 들으면 세상이 다 녹아내릴 거 같다. 지금 만일 디아나가 이 호텔을 사달라고 해도 나는 사줄 거다. 이 여자는 내가 얼마나 본인에게 빠져있는지 모른다.

내가 그녀의 젖꼭지를 물자 그녀의 입에서는 연신 내 이름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입술을 물고 손을 아래로 내려 별로 가리고 있지도 않은 팬티를 옆으로 젖히고 그녀의 젖어든 음부를 손에 쥐었다.

따뜻하게 젖어든 그곳은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힘 있게 내 손가락을 조인다.

“아하……. 디아나!”

이 마녀. 이 악녀. 애간장을 있는 대로 녹여버리고 결국 내 영혼도 다 먹어치울 것만 같다. 그러나 네가 아무리 날 다 녹여버린다고 해도 나는 불나방처럼 너에게 날아갈 거다. 타 죽을 때 까지 네 곁에서 떠나지 않을 거다.

그녀가 내 키스에 몽롱하게 취한 눈을 들어 나를 보며 내 셔츠 단추를 풀었다.

나는 그녀가 내 옷을 벗기기 좋게 몸을 움직여주었고 그녀는 벗은 내 가슴에 손을 대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젖꼭지를 스치자 내 몸은 스위치가 눌린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타오르고 또 타오른다. 몸 안 깊숙이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만들어지는 곳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로가 그 근원인지도. 함께하면 끊임없이 반응하며 더 서로를 갈구하게 된다.

최고층에 마련된 펜트하우스, 커튼을 열어둔 창으로 화려한 몬테카를로의 불빛이 어른거린다. 다른 생각은 하나도 없다. 이 남자가 이끄는 대로 적어도 삼 일은 이 남자의 여자로 지내고 싶었다. 완벽한 연인으로 말이다.

라울의 품에 안겨 죽을 듯이 사랑을 하고 수없이 절정을 오가며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그의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없이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그의 품이 주는 아늑함 때문일까? 눈을 뜨자 또 새로운 힘이 솟는다.

그는 두껍고 단단한 팔로 내 어깨를 감싸고 자고 있었다. 오뚝한 콧날이나 반듯한 입술은 어젯밤의 그 뜨거운 정사가 모두 꿈이었던 것처럼 말끔하다. 먼저 일어나려고 몸을 꿈틀하자 그가 바로 팔을 당기며 나를 안는다.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소중한 것을 품에 안고 잠이 든 아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일어나지 않고 그의 품에서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은 안 자더라도 그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잘 잤어?”

그가 눈도 뜨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목소리에 내가 미소 짓는다. 행복감이 밀려오고 있었다. 조용한 아침에 느끼는 둘만의 공간과 그의 낮은 목소리. 나른하고도 따뜻한 아침이다.

“잠이나 재우고 잘 잤느냐고 물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잠잘 틈도 없이 못살게 굴었으면서 잘 잤느냐고 물어요?”

그러자 그가 씩 웃는다. 말도 없이 눈도 뜨지 않고 웃어도 왜 이렇게 잘생겼니?

“코 골며 자놓고 못 잔 척 하기는…….”

뭐? 코를 골아?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하긴 그러고 보니 누구랑 같이 잔적이 없다. 진짜 코를 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당황스러웠다.

“진짜 코 골았어요?”

“응. 완전 코뿔소처럼 소리를 내더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먼저 잠든 것도 나였고 지쳐서 잠들었으니 전혀 기억도 없고.

그러자 그제야 그가 눈을 뜨며 나를 보고 소리를 내서 웃는다.

“그렇게 당황할 거 없어. 아기 코뿔소 소리라 들을 만하고 귀여웠어. 그래서 안고 잤지. 품 안에서 아기코뿔소가 소리를 내서 즐거웠어. 덕분에 잘 잤지.”

뭐야? 지금 사람 놀려? 병 주고 약 줘? 그래도 그냥 코뿔소라고 할 때보다 마음이 낫기는 하다. 아기코뿔소라도 아기는 귀엽지 않을까?

“오늘은 뭐할 거예요?”

“음, 오늘은 코타쥐르 해변을 걷고 라콘다민느를 걷고 또…….”

“종일 걸어요? 운동화 신어야겠네요.”

“아니, 걷는 시늉만 하자. 왕궁도 가보고 다시 전용기 타고 가는 거야. 세비야로.”

그가 신이 나서 말한다.

세비야. 사고였기는 했지만, 우리 둘이 만난 곳이다. 그의 성이 있는 곳이고 함께 밤을 보낸 떡갈나무가 창을 두드리던 방도 있다.

“좋아요.”

내가 다시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 행복하다.

* * *

모나코 해변은 최고였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그리고 하얀 요트가 한눈에 들어오는 한없이 시원한 전경에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좋아하는 나를 보며 그도 웃었다.

서로의 웃음이 주는 행복감이 교차하며 우리는 웃고 또 웃었다.

라콘다민느의 골목길은 아기자기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을 느낄 수 있었다. 부유한 나라답게 건축에도 예술적 감각이 가득해서 조각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는 내가 꿈꾸던 완벽한 여행을 선사했고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라울의 웃는 모습을 이렇게 종일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남자. 이렇게 잘 웃는 남자였나?

늘 무게 잡고, 눈에 힘주고 살더니 이렇게 웃으니 차가웠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우리는 오후까지 관광을 마치고 다시 전용기에 올랐다. 그의 전용기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세련되고 편안하다.

승객이 단둘인 비행기라니!

그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마법이다. 마법의 빗자루. 아니 마법의 전용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다시 비행을 시작했다.

세비야의 성, 그곳이 라울에게는 가장 안전한 휴식처일 거다. 그의 영지이니 함부로 들어올 사람도 없고, 밖으로 말이 새어나갈 일도 없다. 처음 갔던 모나코도 좋았지만, 그것보단 둘 다의 추억이 있는 세비야가 나도 더 기대된다.

“세비야 성으로 가는 거야. 마음에 들어?”

“너무 좋아요. 이번에 가면 그때하곤 또 느낌이 다르겠죠?”

“그럼. 구석구석 성을 구경시켜줄 테니 말이야.”

그가 그리 말하며 내 어깨를 당겨서 정수리에 키스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입술을 겹치기 시작했다. 비행기 안이었지만, 그는 전혀 그런 것을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밤하늘을 가르고 전용기가 세비야를 향하기 시작했다.

총총히 놓인 불빛들이 점점 작게 멀어져가면서 몬테카를로가 멀어져 가고 있다. 모나코의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 저장되어 언제나 마음속에 남을 거다. 라울과의 시간으로…….

세비야의 성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밤이었다. 성에 들어갔을 때는 우리를 맞이한 것은 세베로였다.

“어서 오십시오. 세뇨리따.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그 사이에 살이 조금 빠진 것 같군요.”

“나도 반가워요. 세베로. 맞아요. 그동안 일이 많고 힘들어서 몸이 좀 축이 났어요. 바로 알아보는 건 세베로밖에 없네요.”

그러자 옆에서 라울이 헛기침을 큼큼했다.

“너무 과하게 반기는 거 아닌가? 세베로.”

“천만에요. 미리 식사를 준비해놨습니다. 식사는 하셨나요?”

초저녁에 먹기는 했지만 둘 다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니. 모래도 씹어 먹을 수 있겠어.”

라울이 말하면서 내 손을 잡고 세베로가 준비해 놓은 식탁 앞으로 갔다.

“우와.”

세베로는 내가 그때 겨우 이틀 있으면서 무얼 좋아하는지 다 기억하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잔뜩 차려놨다. 말린 자두와 싱싱한 올리브, 말린 토마토와 하몽 그리고 단단한 빵까지. 게다가 구운 고기와 감자는 환상적이었다. 둘 다 배가 부르도록 늦은 저녁을 먹고 일어나자 세베로가 말했다.

“세뇨리따, 방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라울이 그 말을 막으며 말했다.

“됐어. 세베로. 여기까지면 돼. 디아나의 방은 내가 안내 할 거야.”

“하지만…….”

다음 말을 하려다 세베로는 라울의 눈을 봤다. 싱긋 웃으며 빛나는 그의 눈동자를 본 세베로의 얼굴이 살짝 미소가 짓는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좋은 밤 되십시오.”

그리고 세베로가 정중히 인사를 하고 다이닝 룸을 나갔다.

“그럼 이제부터 안내해 봐요.”

그러자 그가 내 옆에 와서 팔짱을 끼려는 듯 팔을 내밀었다.

“이제부터 내가 직접 안내하는 것들은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거야.”

“예를 들면 어떤 거요?”

“예를 들면 성주의 침실을 구경시켜 준다든가?”

그가 나를 보고 웃는다. 장난기가 깔린 눈웃음이 좋아 나도 그를 보며 웃었다. 그의 팔을 잡고 붉은 카펫이 깔린 대리석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갔다.

금장 장식이 된 손잡이가 붙어있는 방문을 열자 어마어마한 규모의 방이 드러났다.

웬만한 호텔의 스위트룸이라고 할 수 있는 방이었다. 호화로운 가구가 가득 차 있는 거실과 그 옆의 침실로 구분되어 있다.

침실은 킹사이즈의 마호가니 침대가 놓여있었고 새하얀 시트는 면인데도 광택이 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야드로의 도자기 인형이 이곳에는 훨씬 더 크고 화려하게 장식돼있었다.

“이건, 야드로의 도자기 인형이네요? 그런데 이런 건 카탈로그에서도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그건 직접 주문한 거야. 이사벨이 이곳에 어울리게 도자기로 만들어 달라고 했지.”

굉장히 화려하고 커다란 규모의 도자기였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말과 마차, 그 뒤에 타고 있는 아가씨와 그 마차 바로 옆에 서 있는 정장을 한 신사, 그리고 그 앞쪽에 있는 울타리와 작은 동물들까지 하나하나 살아서 숨 쉬는 듯하다.

“너무 아름다워요.”

“네가 더 아름다워.”

그에게서 들었던 어떤 말보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뒤를 돌자 그가 나를 번쩍 들어 안으며 창가에 가서 앉혔다.

커다란 창은 난간이 넓게 되어있어서 충분히 앉을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바로 밑에 떡갈나무가 보이지?”

떡갈나무가 덩치부터 큰 가지를 뻗어 가며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럼 이 방은?”

“그래. 바로 이 위층이 3층에 있는 녹색 방이야.”

“그럼 그때 나에게 온 건 우연히 아니군요?”

“그럼.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이 나뭇가지를 타고 녹색의 방으로 들어갔지. 이 바로 밑에는 부모님의 방이었고.”

“그럼 그 방은 라울의 방이었나요?”

“맞아. 어릴 때 쓰던 방이지.”

“그랬군요.”

“네가 거기에 묵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는 거야.”

“그리고 당신이 그 밤에 창문으로 숨어든 것도 우연은 아니군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겠지?”

그가 내 턱을 들어 올렸다. 그 전에 세비야에 왔을 때처럼 달빛이 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달빛을 받아 더욱 또렷한 조각처럼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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