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럭키 펀치 2권-럭키 펀치 (5/17)

시커멓게 가라앉은 천마의 얼굴이 마치 악귀 같았다. 당장 손에 잡히는 그 누구든지 팔다리를 꺾어 분지르고 가죽을 벗겨 놓을 기세였다.

그늘진 벽에 기대어 선 천마에게로 그 누구도 함부로 다가서지 못했다. 극우성 알파의 포악한 향이 사방에 선 모든 이들의 숨통을 죄이고 있었다. 가까이서 그를 따르던 부하들조차 멀찍이, 저 먼 복도 구석에 물러난 채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다. 그러고도 몇몇 사내들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알파도 오메가도 아닌 베타 간호사들만이 조심스럽게 오가며, 늦은 오후의 병원에서 풍기는 소독약 냄새만을 맡을 뿐이었다.

오늘날 사고가 터질 줄을 그 아무도 몰랐다. ‘곽중이’, 일명 곽 사장은 SS 그룹과 오래도록 함께해 온 하청 업체의 우두머리였다. 한천마가 대표 이사로 선임될 적에 누구보다 기뻐한, 신산시 일부를 관리하는 조직의 숨은 얼굴이자 뒷구멍으론 마약을 팔아먹는 범죄자이기도 했다.

그러니 곽 사장이 한천마를 배신할 것이라곤 누구도 의심하지 못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안부 전화를 주고받던 곽 사장과의 거래 현장에서 급습이 일어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경호원이랍시고 한천마를 따라다니는 부하들 가운데 그 누구도 이상기류를 알아채지 못했다.

서류를 가지러 나갔다 돌아온 남자는 전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곽 사장의 비서와 신장도 비슷했고 머리 가르마까지 거의 똑같이 꾸민 상태였다. 명경조차도 곧바로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닮은 남자였다. 그 차이를 다른 누구도 아닌 기설이 눈치챘다. 그 대가는 보상이 아닌 상처로 돌아갔다.

‘수술 중’ 등이 꺼질 줄 모르고서 붉은빛을 뿜고 있었다. 이제 천마는 빨간 것이라면 치가 떨렸다. 기설의 배에서 뿜어져 나오다시피 하던 핏줄기가 뇌리에서 잊히질 않았다. 기설의 피는 그가 해쳐 놓은 여느 깡패들의 피와 다른 온도였다. 부하들이 그를 위해 흘린 피와도 다른 색이었다. 심지어는 그 자신이 이따금 흘리던 피와도, 사뭇 다른 액체 같았다.

기설의 우측 하단 갈비뼈가 골절됐고 복부 장기의 일곱 군데에 크고 작은 손상을 입었다. 쇼크를 받아 의식을 잃은 이유가 과다 출혈 때문인지 장폐색 때문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응급실 침대 위에 그를 내려놓을 적에 천마는 단 한 가지를 염려했었다. 벌어진 상처 안에 거즈를 쑤셔 넣는 간호사를 바라보면서 그는 몹시 불안했다. 기설이 당장이라도 깨어날까 봐, 아직 싸울 수 있다며 비틀거리며 일어설까 봐, 그 바람에 장기의 여린 살이 벌어지는 고통을 느낄까 봐 그는 두려웠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공포였다.

“명경아.”

긴긴 침묵 끝에 천마가 입을 열자,

“예, 대표님.”

강 실장이 즉시 대답했다. 뒷짐을 지고 고개를 깊이 숙인 채, 그는 분주한 걸음으로 천마의 옆자리에 다가와 섰다.

“기설이 뒷조사, 따로 했지?”

“…예.”

천마의 질문에 명경이 한 박자 늦게 답했다. 한천마는 제 부하들을 수족처럼 잘 다뤘다. 또 그만큼 잘 알았다. 그가 ‘이제 됐다’고 말해도 강명경 실장은 기설의 인생사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하고 문제가 있다면 차단해 낼 남자였다.

꼼꼼한 수족을 향해 천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질문했다.

“그래. 따로 더러운 구석은 없었고?”

그렇게 물을 적에 천마는 그 자신이 긍정의 답을 바라는지 부정의 답을 바라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차라리 기설의 배후에 제삼자가 있어서 일부러 제 주변에 기설을 심은 거라면, 저를 대신해서 칼에 찔리는 작금의 상황이 사고가 아닌 연출이라면, 천마는 좋을 것 같기도 했고 싫을 것 같기도 했다.

“예. …없었습니다.”

명경의 대답에 천마는 코웃음을 쳤다. 뻔한 대답인 만큼이나, 뻔한 질문을 건넨 스스로가 우스워서였다. 한천마를 꼬드길 계략이었더라면 우성 오메가를 붙였을 터였다. 못생긴 귓바퀴를 가진 어리바리한 베타가 아니라….

문득 천마는 토기를 느꼈다. 대뜸 구역질이 치밀며 침에서 쓴맛이 났다. 기설은 칼을 한 대도 아니고 다섯 대를, 스치는 것도 아니고 후벼 파이도록 맞았다. 장기가 찢어졌고 배에는 구멍이 생겼다. 빗맞은 자상조차 깊은 상처 두 줄을 남겼다. 응급실로 데려오기까지 5분만 더 늦었더라도 과다 출혈로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는 기설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가짜는 아닐까 생각했고 의아했다. 멍청해 보일 정도로 순종적으로 제 몸을 고기 방패 삼은 기설을, 그는 순전히 믿지 못했다.

‘왜?’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욱 그랬다.

‘왜 기설이가 그렇게까지, 왜 나한테?’

기설이 바보라는 것쯤이야 진작 알던 사실이었다. 제 입으로는 모자라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이따금 보내오는 문자들은 죄 맞춤법이 틀려 있었다. 뒷구멍에 좆이 쑤셔 박히고 볼기짝을 수어 대씩 맞아도,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며 착하다는 칭찬 몇 마디에 헤실헤실 웃기 일쑤였다.

다루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한 장난감, 키우는 맛이 있는 애완동물, 목줄을 제 손에 내맡긴 기한제 노예. 천마에게 있어 기설은 그런 존재였고, 그런 존재에서 그쳤어야 했다.

그런 기설은 한천마를 위해 제 몸을 던지지 않아야 했다. 저와 상관도 없는 상대를 제압하겠다고 덤벼들어 칼을 맞지 말았어야 했다. 잘빠진 얼굴이 못나 보이게 일그러질 정도로 아파하는 주제에 한천마를 훑어보는 건 기설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혹시 한천마가 다치지는 않았는지, 무사한지 살펴보는 건 주제넘은 짓이었다.

한천마는 그런 것을 싫어했다. 그는 돈을 빌려주고 사람을 빌려주고 삶을 빌려주는 남자였다. 누구에게 그 무엇을 구걸하거나 동냥 받거나 신세를 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그는 진 빚은 반드시 갚는 남자였다. 제 목숨을 구해 준 기설에게 그는 빚을 졌고, 그 빚을 반드시 갚아야만 했다.

동시에, 그는 꿔 준 빚을 받아 내는 남자이기도 했다. 저와의 약속을 어긴 사내 때문에 그는 기설을 잃을 위기에 처했고, 그 빚을 받아 내기를 조금도 미루어 둘 수 없었다.

우두커니 선 채로 그는 한 칸 한 칸 원흉을 쫓았다. 작금의 사태와 그 뒤에 숨은 공작을 읽어 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계산을 마치기까지는 단 5분, 기설의 배를 열어 놓은 수술실 앞 복도에서 발을 떼어 내기까지 두어 시간이 걸릴 따름이었다.

그래서 천마는 약속 시간에 늦었다. 한천마로부터 선의가 가득 담긴 연락을 받고 서울에서 신산까지 들개처럼 찾아온 손님께서는 진작 컨트리클럽 게스트 룸에 도착했건만, 천마는 그를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명경을 비롯한 부하들이 그를 기절시키고, 의자에 앉히고, 두 손과 두 발을 의자 허리와 다리에 꽁꽁 묶어 고정하는 과정을 구경하지 못했다.

“늦어서 미안. 차가 많이 막히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한천마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 시계가 제 것이 아닌 피에 물들어 고장 난 것을 알아챘다. 시곗바늘이 정확히, 발악하듯 싸우다 쓰러진 기설을 끌어안던 시간에 멈춰 있었다.

한천마가 입을 다물자 게스트 룸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 외에는 누구도 함부로 소리 내지 않았고 말을 하지 않았다. 신호를 받지 못한 빔 프로젝터가 뿜어낸 빛이 파란 사다리꼴 모양으로 번진 채, 벽면에 걸린 스크린 위에서 간헐적으로 자리바꿈할 따름이었다.

고장 난 시계에 머무르던 천마의 시선이 천천히 굵은 팔뚝 위, 걷어붙인 셔츠 소매로 옮겨 갔다. 본래 하얀색이던 옷이 죄 갈색으로 말라붙은 피로 인해 누덕누덕해진 채였다.

그대로 천마가 좌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강 실장이 준비된 골프채 그립을 재깍 건넸다. 조금도 골프를 치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복장과 표정을 한 채, 천마는 제 키와 폼에 맞추어 피팅된 고가의 물건을 방망이 다루듯 휘휘 흔들었다.

지난날 건설사 계약을 핑계 삼아 한천마의 대표실에 방문할 적에, 한성 그룹의 강일해 상무 이사가 선물해 온 골프채였다. 천마는 받은 선물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강일해가 구질구질한 열등감을 품고 저에게 청했던 일이, 다른 누구도 아닌 강일해 본인의 실수로 그르치게 되었으니 말이었다.

천마의 손에 잡혀 홱, 정면으로 뻗은 채의 클럽이 곧장 강일해의 턱에 닿았다. 금속이 주는 차가운 느낌에도 강일해는 불에 덴 사람처럼 땀을 흘렸다. 의자에 묶인 강일해의 얼굴에는 이미 상처가 가득했다. 부러진 코 위에는 두툼한 거즈가 붙어 있었고, 끌려오며 터지도록 얻어맞은 눈가에선 진물과 함께 피가 흘렀다.

역시나 강일해의 피도 기설의 피와는 같지 않았다.

“내기 골프 한번 치자더니, 아쉽게 됐어. 강 이사.”

천마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짐짓 다정하게 들렸으나 눈빛은 싸우길 좋아하는 귀신처럼 번뜩였다. 이내 그는 빈손을 뻗어, 강일해의 코 위에 붙은 거즈를 잡고는 ‘찍’ 소리가 나도록 뜯어냈다.

“…윽, 끅.”

질겁한 강일해는 엄살이 심했다. 안절부절못하고 우는 소리 내기가, 피딱지를 단 거즈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보다 빨랐다.

한천마가 스윙 자세를 취해 보이자, 골프라는 것이 익스트림 스포츠로 변모했다. 근육 잡힌 기다란 팔을 곧게 뻗고 굵은 허리를 움직이는 그의 두 손에 가볍게 잡힌 채의 끝이, 정확히 강일해의 콧대를 칠 것처럼 앞으로 다가갔다가, 뒤로 빠지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그때마다 강일해의 눈이 움찔움찔 감겼다. 나눌 이야기도 많겠다, 밤을 새우고 새벽 골프를 치면 어떻겠냐는 말에 후다닥 달려온 꼴이 참 우습게 됐다.

“…….”

그래도 강일해는 일언반구 어떤 말도 함부로 뱉지 못했다. 제 잘못이야 진작 알았고, 그 잘못을 한천마에게 들켰다는 것 또한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에게 더 큰 잘못이 하나 있다면, 오늘 사고가 터지기 전에 먼저 일이 잘못되었음을 고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너절한 몰골을 한 강일해에게 천마는 많은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가 강 이사를 통해 이루고자 한 목적은 딱 하나였다.

‘황소의 쇠뿔을 부러뜨리는 것.’

돈, 땅, 금을 준대도 받지 않고 협박도 통하지 않아서, ‘유도리가 좆도 없는 쇠뿔 황소’라 불리는 국회 의원들이 있었다. 그들과 같은 운동권 출신으로서 친분 깊은 동부지검 검사장도 하나 있었다. 한천마에겐 그 집단의 모두가 눈엣가시였다.

쇠뿔 의원들이 신산시의 경찰 유착 관계를 개혁하겠다고 나서는 통에 꽤나 짜증스럽던 차였다. 주기적으로 경찰 팀을 출동시키는 등 카지노 랜드를 들쑤시니, 바지 사장인 문진주가 한천마를 찾아온 게 얼마 전의 일이었다. 거기에 검사장의 입김이 스몄는지 최근에는 SS 그룹 편에 선 검사들을 솎아 내길 시작했다.

쇠뿔 의원이고 검사장이고, 한데 묶어다 목을 꺾어 버림으로써 이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릴 필요가 있었다. 로비도 통하지 않고 협박도 통하지 않는다면, 협박을 실천으로 옮기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한천마는 속된 말로 ‘공사를 다 쳐 놓았다’. 어린 날, 그는 사람을 물리적으로 죽이고 땅속 깊이 묻어 버리고는 했었다. 요즈음은 명성을 죽여 버리는 방식으로 인간성을 매장하기를 더욱 잘했다.

천마에 비해 강일해가 맡은 일은 단순하고 건전했다. 그가 저주해 마지않는 잘난 화가 동생이 마침 검사장 집안의 알파 아들과 결혼하지 않았던가. 강일해는 한천마가 설계한 지도를 따라 움직이는 졸개가 되어, 국회 갤러리에 전시회를 열게끔 영향력을 행사하고 쇠뿔 의원들을 초대하면 그만이었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검사장 집안의 새 식구가 된 화가의 작품을 구입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해사한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는 금전 세탁용 빨래판으로 변모할 것이고, 무고한 의원들은 물론이며 검사장까지 비리 혐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천마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그런데 껍데기를 까고 보니, 강일해는 한천마가 괄시한 것 이상으로 재밌는 남자였다. 한천마의 설계를 받고도 일을 똑바로 해내지 못하는 남자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 때문에 한천마에게까지 불똥이 튀게 만든 존재 또한, 그가 처음이었다.

어떤 경로로든 강일해가 말을 흘리고 실수를 저지른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검사장 측에서 먼저 상황을 알아차리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한천마를 지목하여 조사할 이유가 없었다. 준비 중인 가짜 비리 사건을 발각당한 것은 물론이고, 물밑 수사망에 곽 사장의 덜미가 잡혔다.

모든 범죄자를 통틀어 약쟁이의 입이 가장 가벼운 법이었다. 그들에겐 보복을 당하거나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보다도, 감방에 들어가 마약을 못 하게 되는 일이 몇백 배는 더 두렵기 때문이었다.

여러모로 곽 사장은 한천마를 끌어들이기 가장 좋은 미끼였다. 마침 그와 한천마 사이에 새로운 거래가 예정되어 있었고, 거래일이 바로 오늘이었다. 검찰이 할 일은 숨통이 꽉 죄인 곽 사장에게 보석금이니 감형이니 하는 조건을 속삭이고, 그의 몸에 소형 카메라며 녹음기를 숨겨다가 거래 현장에 앉혀 놓는 게 전부였다.

문제는 곽 사장이 만일에 대비하여 끄나풀을 심어 두었단 점이었다. 대비책이랍시고 그는 은밀히 사람을 고용했다. 칼을 숨긴 암살자를 거래 현장에 숨겨 두고, 거래가 불발될 경우에는 한천마를 협박해서라도 일을 성사시키고 감형을 받고자 했다.

여기까지가, 새끼손가락부터 시작해 신체의 불거진 부분을 모두 절단당한 곽 사장이 제발 마약을 놓아 달라고 울고불고하며 실토한 내용이었다.

“흐음, 흐으음….”

툭, 툭, 골프채 퍼디로 바닥을 찧으며 천마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즐거운 듯 보이는 그의 태도에 강일해는 한 조각 희망이라도 얻은 양 고개를 들고 마른침을 삼켰지만, 명경을 비롯한 수하들은 두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들이 모시는 한천마라는 남자는 심기가 상한 만큼 잘 웃었다. 그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날이면 처리하기 힘든 일이 생기곤 했다. 보이는 만큼 실제 컨디션이 좋은 경우는 요즈음, 그마저도 기설과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거나 섹스를 할 때뿐이었다.

그런 기설이 지금은 수술대 위에 누운 채였다. 의사가 4시간 이상의 긴 수술을 예고했었으니, 기설의 갈비뼈는 아직도 부러진 상태일 것이었다. 그러니 한천마가 콧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기분이 좋아서는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강일해의 멍청한 실수가 빚어낸 촌극이 기가 막혀서였다.

흥얼거리던 노랫소리는 금세 멈추었다. 천마의 시선이 문득 창가에 닿은 순간이었다. 한 방울, 두 방울, 툭툭 소리가 나도록 굵은 빗방울이 닫힌 창문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어슴푸레한 저녁 공기를 뚫고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천마의 얼굴에 잠시간 미소가 머무르다가, 이내 떠났다.

‘우산은 챙기셨어요?’

한천마는 저 스스로 우산을 챙기지 않은 지 아주 오래됐다. 어둑어둑한 먹구름을 쳐다보며 병원을 나설 적에도 그가 챙긴 것은 우산이 아니라, 부하들이 건네 온 전언이었다.

‘곽 사장 녹음기, 카메라 모두 확인했는데, 그쪽에서 먼저 신호를 끊고 도망쳤습니다. 곽 사장은 마지막까지 대표님을 만나게 해 달라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자기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요.’

‘잘못된 선택’이라는 표현에 한천마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조심스럽게 말을 꾸리는 부하들의 면면을 훑어보며 한천마는 이렇게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 곽중이가 뭐라고 내 욕을 하던?’

그러자 머쓱한 듯, 부하들은 뒷짐 진 자세를 고쳐 보였다. 잠시간 머뭇거리다가, 그들 중 하나가 용기 내어 말했다.

‘한 대표님 불러오라고, 대화 좀 하자고…. ‘운 좋아서 산 줄 알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발작이 나서 죽었습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한천마는 참 운 좋은 남자였다. 만일 오늘 계약을 마쳤더라면 한천마는 지금쯤 심문실에 앉아 있었을 터였다. 다른 방식으로 속임수를 알아차렸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칼에 찔려 다친 것이 한천마 자신이었더라면, 그로 말미암아 카메라와 녹음기가 숨겨진 현장에서 곽 사장을 ‘처리’했더라면, 검찰에게 제 목줄을 쥐여 주는 꼴이 됐을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일이 천만다행으로 잘 풀렸다. 한천마가 나설 필요조차 없게끔 기설이 기꺼이 제 몸을 내던져서, 뱃가죽에 구멍이 뚫리고도 미친개처럼 칼 든 놈에게 달려들어서, 그가 피해자가 되어서 참 잘됐다.

‘그래, 참 잘됐지….’

한천마가 웃었다. 그러고는 강일해를 묶어 놓은 의자 다리를 발로 거칠게 걷어찼다. ‘쿵’ 소리를 내며 한성 그룹의 무능한 상무 이사가 의자와 함께 좌로 넘어갔다.

천마는 끙끙 신음하는 사내의 입 안에 골프공을 쑤셔 넣었다.

“컥, 으읍….”

“강 상무. 잔칫상에서 제 밥그릇도 못 챙길 것 같으면, 남의 수저를 얹게 하진 말았어야지.”

뒤이어 한천마는 두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섰다. 골프채를 고쳐 쥐며 자세를 잡고는 어깨를 좌로, 우로 가볍게 털어 냈다.

“이 꽉 악물어. 잘못 맞으면 아가리 찢어진다.”

이내 골프채가 뒤로 힘차게 스윙했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벌의 날갯짓 소리처럼 붕 울렸다. 반동을 받아 재차 앞으로 달려든 아이언의 솔은 그러나 강일해의 아가리를 찢어 놓지 않았다. 다만 그의 머리 바로 위를 비스듬하게 스쳐 지나갔다.

겁에 질린 이의 입에서 사람 소리 같지 않은 신음이 새어 나갔다.

“끄, 흐…, 끄윽….”

강일해의 대문니는 여전히 멀쩡했다. 하관도 박살 나지 않았다. 더러워진 골프공만이 눈물과 침에 젖은 채 덜그럭덜그럭, 그의 이에 부딪치며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때?”

한천마가 물었고,

“여전히 폼이 좋으십니다.”

강명경이 곧장 답했다.

“아부하기는.”

이내 천마의 손이 더듬더듬 제 가슴께를 만졌다. 그러고는 ‘아아’ 하고 의미 없는 탄성을 뱉었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았으나 그의 담배는 재킷 안주머니에 있었고, 재킷은 기설이 흘린 피로 인해 더러워져 병원 휴지통에 처박은 상태였다.

그를 대신해 명경이 얼른 담배를 꺼냈다. 다가가 불까지 붙여 대 주자, 천마는 담배 한 개비를 입술로 문 채 깊게 호흡했다. 허연 연기가 그의 코 밖으로 부드럽게 뿜어져 나왔다.

“내가 골프채로 사람이나 패는, 그런 식상한 조폭은 아니잖아.”

피로감이 묻은 눈가를 엄지 끝으로 긁적이며, 천마가 말했다. 명경을 향한 것도 강일해를 향한 것도 아닌, 그저 그런 혼잣말이었다.

“이게 말이지, 보기보다 그렇게 아프지가 않아요. 이 비싼 게 사람 팰 때는 값을 못 한단 말이야….”

끄으윽, 끄으윽… 우는 소리를 들으며 한천마는 제 발치에 널브러진 사내를 심드렁하게 내려다보았다. 벌어진 잇새로 침과 피가 섞인 분홍색 체액을 흘리며 그는 울고 있었다. 한천마는 그의 얼굴 위에 반쯤 태운 담배를 툭 던졌다.

작은 불똥이 눈가에 튀는 것만으로도 강일해는 죽는 신음을 흘렸다. 가지고 놀던 골프채를 벽면에 내팽개친 뒤, 천마는 정장 바지 무릎을 가볍게 추켜올려 접었다. 그러고는 강일해와 마주 보며 쪼그리고 앉았다. 그가 손을 뒤로 뻗자, 명경이 즉시 물건을 건네 왔다. 이번에, 천마의 손에 들린 것은 조그마한 플라스틱 케이스였다. 속에는 작은 주사기 여섯 개와 라벨이 채 붙지 않은 유리 약병이 들어 있었다.

입술 새를 혀로 적시며, 천마는 주삿바늘 끝으로 약병의 은색 마개 위를 찔렀다. 그대로 피스톤을 움직여 공기를 빼낸 다음, 약물을 주입할 준비를 마쳤다.

‘뽁’, 제법 앙증맞은 소리를 내며 빠져나온 주사 안에는 극소량의 약물이 담겼다. 그마저도, 천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아주 조금 더 덜어 냈다.

“어허. 가만히 있어.”

천마의 시커먼 구둣발이 꿈틀거리는 강일해의 머리를 짓밟았다. 그 뒤로는 모든 게 속전속결이었다. 아무런 주저 없이 그는 힘이 바짝 들어간 타인의 목에 주삿바늘을 박았다. 비스듬히 박힌 바늘을 통해, 정체 모를 약이 강일해의 몸 안으로 퍼져 나갔다.

“헉, 헉….”

겁에 질린 숨소리를 내며 강일해가 전신을 꿈틀거렸다. 한천마는 주삿바늘을 뽑아 주는 대신 주사기를 비틀어 꺾었다. 그러자 가느다란 바늘이 뚝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주삿바늘은 강일해의 목에 박힌 채 이물질로 남았고, 그 위치를 작게 맺힌 핏방울만이 알릴 뿐이었다.

겁에 질려 덜덜 떨기도 잠시, 강일해의 동공이 넓게 확장되고 입가에는 침 거품이 맺혔다. 이내 그에게서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바지 중심부를 시작으로 바닥으로 타원을 그리며 퍼지는 누런 액체를 보며 천마는 순전히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곽중이 그 새끼가 약 하나는 참 잘 만들었는데.”

천마가 말했다. 그런 파트너를 잃게 됐으니 아쉽다는 투였다.

수다는 거기까지였다. 천마는 의식 잃은 강일해의 목 안에 주삿바늘 다섯 개를 더 심었다. 피부밑에 박힌 바늘을 빼내자면 사회적인 곤욕이 제법 따를 것이었다. 전형적인 약쟁이 환자를 앞에 두고도 피 검사를 생략하는 병원이 있다면 또 모를까….

자리에서 일어나, 천마는 명경에게서 담배 한 갑을 통째로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남은 담배를 전부 뻑뻑 태웠다. 창밖의 비는 기다린다고 그칠 양이 아님에도, 그는 날씨가 개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시간을 끌었다.

“연락은?”

한참의 침묵 끝에 한천마가 묻자, 명경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왔습니다. 아직 수술이 끝나진 않았지만, 지금으로선 고비는 넘긴 것 같답니다.”

“…그래.”

필터가 검어질 때까지 마지막 담배 한 개비를 태운 다음에야 천마는 바닥에 널브러진 강일해며 제 눈치를 살피는 부하들을 훑어보았다. 이내 그는 팔을 뻗어 명경의 볼을 툭 건드렸다. 그러곤 귀가 있던 자리에 붙은 거즈를 더듬거리며 매만졌다.

“명경아. 얼음이 없냐, 자동차가 없냐, 아니면 의사가 없냐.”

천마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화두가 제 일에 접어들자, 명경은 천마가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눈치채질 못하고 다소 헤맸다. 입을 다문 채 검고 작은 눈동자를 굴리며 침묵하는 식이었다.

“그것 좀 주워 가서 도로 붙인다고 내가 화를 내겠니.”

쯧, 혀를 차며 천마가 꾸중했다. 그제야 명경이 고개를 내저었다. 곰처럼 굵은 목을 굽신굽신 숙이며 그는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없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없는 게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머리 감을 때 걸리적거리지도 않고.”

“미련하기는.”

입술에 묻은 담배 향을 핥아 없애며, 천마가 쩝 입을 다셨다.

“병원으로 가자.”

“예. 강 이사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서울로 돌려보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편에 붙어 선 채 눈치만 살피던 수하들이 강일해에게 다가갔다. 목구멍 안으로 넘어가기 직전인 골프공을 뱉게 하고, 의자에 묶인 팔다리를 풀어낸 뒤에도 강일해는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축 늘어진 마네킹 같은 몸을 경멸하듯 내려다보며 천마가 중얼거렸다.

“이제 우린 손 놓고 있자고.”

창을 때리는 빗방울이 여전히 굵고 거칠었다.

***

심각한 갈증이 기설을 깨웠다. 목구멍 안의 여린 살갗이 다 벗겨지고 입 안에는 혀 대신 모래 덩어리가 든 듯한 불쾌감은, 기상과 함께하기에 최악의 옵션이었다. 코 안에서 풍기는 시큼한 냄새를 맡으며 기설은 눈을 떴다.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이가 제 피부가 아닌 고깃덩어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게슴츠레 눈을 반쯤 뜬 채 기설은 뻑뻑한 눈알을 느릿느릿 움직였다. 가장 먼저 바라본 사각 천장에는 낯선 조명등이 달려 있었다. 제 팔뚝으로 연결된 줄과 링거액 주머니가 이곳이 병실 안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우두커니 선 시커먼 남자가 보였다. 강명경이었다.

차근차근 기설은 제가 처한 상황을 깨우쳤다. 천마 형님을 지키려 나섰다가 칼에 맞은 게 기억났다. 머리꼭지가 도는 느낌과 싸움을 향한 본능이 앞서 주먹을 갈겼고, 제가 날린 펀치의 수만큼 배를 쑤셔 오던 자상의 고통이 생각났다. 저를 ‘새끼야’라고 부르며 매섭게 화를 내다가도, ‘아가’하고 애지중지 다루며 걱정하던 천마의 얼굴도 머릿속에 선명했다.

그러나 그를 지켜 주고 아껴 주고 걱정하던 한천마의 모습은 병실 안에 보이지 않았다. 깨어난 기설을 내려다보는 사내는 그와 가장 어색한 관계이고, 또 그를 가장 싫어하는 게 분명한 강명경뿐이었다.

“…….”

“…….”

시선이 마주친 순간 두 남자는 침묵했다. 저도 모르게 긴장한 채 기설은 그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팔과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고 깁스를 채운 복부는 남의 몸을 가져다 붙인 것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자리에서 일어날 힘조차 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거즈를 떼어 낸 명경의 얼굴이 낯설었다. 귀의 상처가 도대체 어느새 아문 건지, 귀를 잘린 자리가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었다. 오른쪽 귀만 달고 있으니 눈썹마저 비대칭으로 보였고, 얼굴 윤곽 전체가 덜 그린 그림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긴장한 채 기설은 손가락을 움직이려 노력했다. 시트를 딛고 일어나 똑바로 서고 싶었다. 그러나 기설의 힘없는 손은 푹신한 매트리스를 꾹, 꾹 아래로 누를 뿐 제대로 그의 상체를 받쳐 주지 못했다.

눈치를 살피며 움직거리는 기설에게로 명경이 뚜벅뚜벅 다가왔다. 한 발, 두 발 가까워 올수록 선명해 보이는 거친 얼굴에는 약간의 피로감과 무거운 감정이 실려 있었다.

‘좆 됐다.’

기설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저를 혐오하는 강 실장이라면, 지금의 기회를 틈타 제 목을 조를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됐다. 배때기에 구멍이 숭숭 뚫려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니, 남몰래 죽이기에 딱 좋은 때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기설이 눈을 흘기며 살필 때에, 명경은 그에게 욕을 하거나 협박을 뱉거나 목을 조르는 등의 포악한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기설을 향해 깊이 머리를 숙였다. 90도로 허리를 굽히는, 정수리가 보이도록 각진 인사였다.

“너한테는 내가… 대표님 목숨을 빚졌다.”

명경이 말했다. 축축하다고 느껴질 만큼 깊은 감정이 실린 음성이었다.

“정말 고맙다.”

기설은 멍하니 눈을 끔벅거렸다. 감사의 인사를 들어 본 적이 없으니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기설은 침묵했고, 명경은 그 침묵을 유난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사를 마친 것으로 목적을 달성한 그는 다시금 허리를 곧게 세우더니, 성큼성큼 걸어 병실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몇 분이나 흘렀을까, 문을 열고 나간 이는 명경인데 돌아온 남자는 한천마였다.

“아가. 일어났어?”

두 손 가득 과일 바구니와 종이 가방을 든 채,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웃고 있었다.

천마의 표정은 ‘환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좋아 보였다. 상체를 감싼 남색 스웨터는 그의 피부를 더욱 짙어 보이게 했다.

‘다행이다. 형님은 괜찮으셔서….’

그렇게 안심하며, 기설은 천마를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

“너 보여 줄 선물 있다.”

가져온 것들을 턱턱 내려놓고 선글라스도 벗어 던지며, 천마가 말했다. 반가운 소리에 기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선물이요?’ 그렇게 묻고자 입을 열자마자, 그는 쩍쩍 갈라지는 쇳소리를 조금 흘리고는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양, 천마가 협탁 위의 텀블러를 집어 들었다. 스틸 빨대를 입 앞에 대 주는 친절을 기설은 사양하지 않았다. 얼른 입술을 오므리고는, 평생 마셔 본 것 중 가장 달콤하게 느껴지는 생수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하아… 무슨 선물이요?”

목을 축이자마자 기설이 물었다. 그 태도의 어디가 웃긴지 천마가 피식 실소했다.

뒤이어 천마의 손이 덥석, 기설의 환자복 하의를 끌어 내렸다. 당황한 기설이 발가락을 구부려도 아랑곳 않고, 그는 단숨에 기설의 사타구니를 휑하니 드러나게 했다.

‘선물이 있다더니 섹스를 하잔 뜻이었나…?’

기설이 엉거주춤 고개를 숙여 살피려 하자, 한천마는 그의 이마에 손바닥을 대고는 가볍게 뒤로 눌렀다. 풀썩, 베개 위에 뒤통수를 파묻으며 기설은 두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선물이 왜 제 가랑이에 있는데요?”

어리둥절하니 묻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마는 제 휴대폰을 들어 카메라를 켰다. 그러고는 기설의 사타구니가 훤히 잘 보이도록 사진을 두어 장 찍었다. 셔터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기설은 성기를 내놓고 누워 있기만 했다. 그다지 반항할 힘이 나질 않았고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형님께서 제게 뭘 보여 주려고 하시는 건지 의아했다.

“자.”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움직이지 못하는 기설을 위해, 천마는 그의 얼굴 앞에 직접 휴대폰 화면을 가져다가 보여 주었다. 액정 위에 떠오른 고화질 사진을 쳐다보며 기설은 탄성을 내뱉었다.

“와….”

삐뚤빼뚤하던 기설의 문신이 그 흔적을 탈바꿈했다. 호프 가게 옆의 불법 시술소에서 술에 취한 채 장난처럼 받아 보았던 지난날의 문신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선은 너무 굵었고 잉크는 투박하게 번져서, 그림이라기보다 얼룩에 가까웠었다. 그 문신이 있어야 할 자리 위에,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진하고 못난 선을 꼬리로 덧그림으로써 교묘하게 가려 낸 문신은, 얇고 섬세한 선으로 한 줄 한 줄 새겨 넣은 회색 고양이였다.

“이거 우리 경이에요? …제 문신 맞아요? 제 몸에 지금 있어요?”

고개를 들 수도 허리를 굽힐 수도 없어, 기설은 더듬거리는 손길로 제 골반 위를 만졌다. 선명한 타투 위를 이리저리 더듬거리는 손을 보며 천마가 웃었다.

“우리 기설이, 칼은 갈비에 맞았는데 왜 눈깔이 상했지? 이젠 제 좆도 못 알아보네.”

“아. 그러네요.”

그 말에 기설이 크게 웃었다. 한참을 하하 소리 내어 웃다가, 복부의 상처가 당기는 바람에 끙 소리 내어 앓기도 연이어 했다.

기설은 천마의 휴대폰에 담긴 제 문신 사진을 확대했다가, 축소했다가 하며 웃었다. 숱이 많진 않아도 나름 남자답게 수풀을 만들었던 성기 근처의 털이 싹 사라진 건 조금 이상한 일이었지만, 문신을 하려고 밀어 줬나 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좋냐?”

실없이 헤실헤실하는 기설의 뺨을 두드리며 천마가 물었고,

“네.”

기설은 가슴팍의 깁스가 흔들리도록 크게 웃었다.

“저 완전 꽁으로 문신했네요. 아프지도 않게요. 좋아요, 선물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칼은 다섯 대나 맞아 놓고, 넌 그것보다 문신이 더 무서워?”

“아….”

힐난하듯 건넨 질문에 기설이 눈동자를 느리게 굴렸다. 타투 기계의 윙윙거리는 소음과 잉크가 든 바늘, 그리고 피할 새도 없이 닥쳐오는 칼날, 개중 뭐가 더 무서운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천마의 큰 손이 그런 기설의 반들반들해진 사타구니를 가볍게 찰싹 쳤다.

“대답하지 마.”

“아, 아파요….”

“엄살 부리기는.”

웃음소리, 도란도란한 말소리, 무어라 농담하는 큰 목소리를 들으며 명경은 1인 병실 밖 복도에 등을 붙이고 섰다.

닷새하고도 반나절 동안 의식 불명에, 수술 말미에는 출혈이 멎질 않는 데다 수혈할 혈액까지 모자라서 O형 부하 여럿이 피를 뽑아 가며 겨우 살려 낸 기설이었다. 그가 깨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천마는 웃지 않았고 농담하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혹여 기설이 향기 없는 오메가여서 한천마라는 알파가 그에게 각인한 건 아닌가, 그래서 본능적인 불안 증세라도 닥친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수술 후 의사가 내놓은 검사 결과는 분명히 베타였다. 만에 하나 기설이 오메가라 할지라도, 극우성 알파인 한천마를 일방적으로 각인시킬 오메가는 세상에 없는 법이었다.

한천마의 불안은 의사가 곧 의식을 차릴 것이란 확진을 내리고, 간호사가 링거의 수를 넷에서 둘로 줄일 즈음에야 가라앉았다. 불안감이 가시고 기분이 한결 나아진 천마는 대뜸 실력 있는 타투이스트를 찾아오게 했다.

두둑한 출장 비용을 입금받아, 타투이스트는 반나절 만에 서울에서 신산시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무거운 장비와 잉크, 태블릿 PC를 들고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타투 시술은 손님 의식이 있으실 때 해야 하는데요…. 바늘이 너무 깊게 들어갈 수도 있고… 많이 아프진 않으신지 알아야 해서.’

‘그러니까 지금 하라는 거 아냐.’

간병인용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 천마는 그를 위협하다시피 목소리를 냈다.

‘아픈 거 싫어하는 애니까, 아무것도 모를 때 하라고.’

그러면서 천마는 갤러리가 열린 휴대폰과 거의 벽돌 같은 모양을 한 봉투를 건네주었다. 봉투 안에는 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고, 휴대폰은 잠든 기설의 것이었다. 그가 선물하고 기설이 애지중지 사용해 온 휴대폰에는 자잘한 기스 하나 없었다. 연락처에는 여전히 ‘천마 형님’ 한 사람만이 저장되어 있고, 갤러리 안에는 고양이 경의 사진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것들을 자료 삼아, 타투이스트는 기설의 골반 위에 남은 너저분한 잉크 자국을 덮어 가며 새로운 타투를 남겼다. 한참 공을 들인 끝에 사랑스러운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칼을 맞고 혼절한 남자의 몸에 새겨졌다.

“후우….”

긴 한숨을 내쉬며 명경은 굳어 있던 어깨를 끌어 내렸다.

도란도란 들려오는 ‘형님’ 하는 기설의 목소리는 오래간만에 듣자니 반가울 지경으로 좋았고, 그런 기설을 놀리는 천마의 음성은 다정하고 또 자상했다. 그의 음성에는 지난날의 불안한 기색일랑 조금도 없었다.

기설이 깰 때까지 반나절에 한 번씩 사람을 부르게 해, 기설의 몸에 자란 털을 제모하게 만들고 흐트러진 앞머리를 다듬게 하는 등 불필요한 시중을 들게 한 천마였다. 심지어는 직접 기설의 손을 잡고는 닷새 사이 하얀 면이 미세하게 길어진 손톱을 깎아 주기까지 했다. 어찌나 예민하고 산만했던지, 어제의 ‘대표님’과 오늘 호탕하게 웃음 짓는 ‘천마 형님’이 동일 인물이라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무슨 꿈을 꾸느라 그렇게 많이 잤어?”

천마가 물었고,

“어, 그냥… 어릴 때 꿈 꿨어요.”

기설이 웃으며 늘어놓는 옛 시절 꿈 이야기가 도란도란, 병실 문밖으로 흘러나왔다.

“은하 고아원이라고 있는데, 제가 거기 시설에서 컸거든요. 그때 꿈꿨어요. 별로 재밌는 내용은 아니었는데….”

머뭇거리며 기설은 말꼬리를 늘렸다.

“…꿈에 형님이 나온 거 같아요.”

그러고는 기설은 꿈 이야기로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당시 은하 고아원의 아이들은 대체로 배운 것 없고 먹을 것도 없이 깡과 악의로 똘똘 뭉쳐 있었다고도 했고, 덜 자라고 못 배운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다 보니 사고를 치는 일도 빈번했다고도 했다. 이따금 동네 주민이 튀어나와 ‘시끄럽다’며 기설의 머리를 쥐어박을 때도 있었다.

‘어린 것이 독해서는. 얘, 너는 울지도 않아?’

그런 핀잔을 들을 때마다 기설은 흥 콧방귀를 뀌고 메롱 혀를 내밀곤 했다. 저를 꾸중하는 어른들을 피해 구질구질한 고아원으로 돌아간 저녁에는, 어째선지 저릿한 가슴을 주먹으로 문지르곤 했었다.

그러다 날이 많이 추워져 더는 또래 아이들이 시설 밖으로 나돌지 않게 된 날에, 기설은 낯선 아저씨로부터 돈을 받았다. 기설의 손에 오천 원 한 장을 쥐여 주던 그 아저씨는 술 냄새를 풍기면서, 고아원의 맞은편에 정차되어 있는 차를 부숴 달라고 주문했다.

기설은 꼬깃꼬깃한 오천 원 지폐를 바지 뒷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버려진 골목의 각목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반지르르한 백색 차량의 범퍼 앞으로 다가가, 헤드라이트를 두들겨 깨 버리고 사이드 미러도 다섯 대쯤 때렸다.

카지노 근처 골목길에는 술과 약과 도박에 취한 어른들이 많았다. 기설을 비롯해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얼마의 돈을 쥐여 주고 심부름을 시키는 이들도 즐비했다. 기설은 하얀 가루가 든 비닐 주머니를 운반해 준 적도 있었고, 보이스 피싱의 미끼 역이 되어 ‘엄마’ 하고 우는 척 전화를 받아 준 적도 있었고, 누군가를 쫓는 경찰차 앞에 일부러 뛰어들어 본 적도 있었다. 정차된 차량의 사이드 미러를 부수고 도망치기야 별것 아닌 일이었다.

시설 운동장에서 막 걸어 나온, 아주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에게 목덜미를 붙잡히기 전까진 그랬다.

‘이 조그만 쥐새끼가!’

목을 콱 붙들린 순간 어린 기설의 몸이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지며 그의 팔 안으로 끌려갔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가 기설은 다리 힘이 쭉 풀려 버렸다. 소년의 멱살을 움켜쥔 남자는 무섭도록 거대해서 마치 흑곰 같았다. 입술은 물론이며 턱선을 다 가리도록 무성하게 자란 수염과 퀭하니 질린 눈 밑의 보랏빛, 아주 분노하고 슬픈 사람처럼 일그러진 눈썹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심상찮게 위협적이었다.

기설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아차렸다. 단순히 싫은 어른에게 복수하는 심부름인 줄만 알았는데, 다시 보니 아주아주 무서운 사람의 차를 잘못 건드린 것 같았다.

캑캑 목 졸린 소리를 내며 기설은 허둥지둥 변명했다. 그냥 시켜서 그런 것뿐이라고, 잘 모르고 그런 것이라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기설을 거대한 남자는 홱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러더니 주먹을 들어 보였다.

기설은 맞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특히나 어른에게 맞는 건 끔찍하게 싫었다. 눈을 콱 감고 움찔거리는 순간,

‘어지간히 하고 놔줘.’

낮은 목소리가 그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짙은 남색 바탕에 흰 꽃무늬가 그려진 셔츠를 걸친 키 큰 남자가, 조금 전까지 기설이 열심히 부숴 놓던 차의 뒷좌석에서 걸어 나왔다. 기설은 머리털이 쭈뼛쭈뼛 곤두설 지경으로 놀랐다. 기설이 차를 망치는 동안 그는 그 모습을, 차 안에서 뻔히 구경한 것이었다.

도망칠 길이 없다는 걸 깨닫고, 기설은 사죄하기 시작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같은 말을 반복하며 파리처럼 두 손바닥을 싹싹 문질렀다.

‘아저씨들 차인 줄 모르고 그런 거예요. 어떤 아줌마가 돈 주고 시켜서 그런 거예요.’

허둥지둥 변명하면서 기설은 ‘으아앙’ 하고 우는 척이라도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험상궂은 아저씨의 상사로 추정되는 키 큰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아줌마가?’

‘네….’

‘내가 봤을 땐 아줌마가 아니라 아저씨였던 거 같은데.’

피식 웃으며 건넨 말에 기설은 그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렇게나 무서운 아저씨들에게 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리게 얻어맞을 게 분명했다. 혼자 덮어쓰자니 기설도 겁이 많이 났지만, 그렇다고 용돈을 준 아저씨를 팔아넘길 순 없었다.

‘의리 있는 꼬맹이네.’

기설의 뻔한 거짓말에 기분이 좋아진 듯 그가 웃었다. 그러곤 기설의 머리를 탈탈 털듯 쓰다듬어 주었다.

‘너는 앞으로 인생이, 고달프겠다.’

꿈속에서, 기설은 그 젊은 남자가 왜 저를 그냥 놓아주는지 연유를 몰랐었다. 용서하는 것도 아니고 젠체하며 봐주는 것도 아니고, 칭찬하듯 머리를 만져 주고는 돌려보내 준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었다.

“…이상한 꿈이죠? 근데 꿈에서 그 사람이… 꼭 형님 같더라고요.”

꿈 이야기를 대단한 무용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전하면서, 기설은 졸린 눈을 연신 끔벅거렸다.

수술 이후 의식 불명으로 보낸 시간이 닷새나 되는 기설이었다. 지켜보는 이의 애간장을 다 녹여 놓고는, 깨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두 눈꺼풀에 매달린 졸음이 묵직했다. 봄날 닭처럼 조는 얼굴이 귀엽기도 하고 가엾기도 해, 천마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그는 들은 이야기를 느리게 곱씹었다. 기억과 상상이 혼동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형님이 얼마나 보고팠으면 꿈을 다 꾸었느냐고 농담하고 싶었지만, 입술이 쉬이 열리지 않았다. 자유로워 보였다던 젊은 남자에 대한 묘사며 그의 말과 행동거지가 과거의 한천마 그 자신이 분명했다.

“…기설아.”

긴긴 생각을 마치며 천마는 거짓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설마 그 사람이 진짜 나였겠니. 아무리 네가 바보라도 그렇지, 어떻게 이 얼굴을 잊어버렸을 수가 있겠어?”

그러자 기설이 옅게 웃어 보였다. 마침 기설도 그 생각을 떠올리고는 ‘아니겠지’ 생각하던 차였다. 닷새 내내 꿈에서 마주할 정도로 뇌리에 선명하게 남은 옛 기억인데, 그를 다시 만나고도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아채질 못했다는 건 설명하기 힘든 일이었다.

“네, 형님이었을 리가 없죠. 다시 생각해 보니까… 많이 다른 사람 같긴 해요.”

기설이 기어들어 가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잠기운을 못 이겨 무겁게 내려앉은 목소리에 시무룩한 기색이 섞였다. 형님 옆에서 너무 주절거리지 말자고 다짐한 게 바로 닷새 전 일인데, 긴 잠을 자고 일어났답시고 들떠서는 다시금 수다스러워진 저 자신이 부끄러워서였다.

‘게다가 헛소리를 늘어놓다니….’

혼자만의 수치심에 잠겨 뺨을 붉히는 기설에게로, 천마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래? 어디가 어떻게 다른데.”

입술 앞에 귀를 가져다 대며 묻자, 머뭇거리는 기설의 입술이 달싹이는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그냥, 꿈속에서… 그 남자는 행복한 사람 같아 보였어서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기설은 가물거리는 눈을 감았다.

천마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바로 앉았다. 기절한 건지 잠든 건지 알 수 없는 모양새로, 새액새액 숨을 뱉는 기설의 머리칼을 그는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럼 지금은?”

뒤늦은 질문은 혼잣말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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