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경의 아침을 차려 주는 시간이었다. 기설은 밥그릇에 사료를 붓고, 닭고기가 섞인 습식 캔 하나를 열었다. 구린 냄새가 풍기는 고양이 전용 습식을 적당량 사료 위에 붓고, 핑크색 플라스틱 스푼으로 퍽퍽 쪼개며 비볐다. 습식으로 축축해진 사료 위에 오메가3 오일을 딱 세 방울 떨어뜨리면 준비는 모두 끝났다.
조그마한 방의 러그 위에 기설이 밥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경이 꼬리를 높이 세운 채 다가왔다. 그러고는 밥이 아닌, 기설의 발목을 먼저 찾았다. 든든한 종아리에 꼬리를 휘감고, 발등 위에 제 머리를 문지르는 경에게서 골골 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그래, 그래. 오빠도 잘 잤어, 경아. 밥부터 먹자.”
기설이 바닥에 완전히 몸을 앉혔다. 그러자 경이 기설의 무릎 위로 올라왔다. 삐죽삐죽한 털을 만져 주는 손길을 한참 즐긴 뒤에야, 경은 느릿하게 밥그릇으로 향했다. 기설이 지켜보는 앞에서만 밥을 먹는 건 경의 오랜 습관이었다.
기설과 경의 인연은 2년 전에 시작됐다. 무덥던 여름밤에, 기설은 밤새도록 울어 대는 길고양이 소리 때문에 이틀 내내 잠을 이루질 못했었다. 당시 기설은 곽창에게 기습을 당한 뒤 수술비로 가진 돈을 거의 탕진한 상태인 데다, 분통하고 억울해서 불면증에 시달리던 우울한 스무 살 청년이었다.
그러던 중 애응애응 울음소리까지 듣고 있자니 이게 도대체 고양이 소리인가 사람 아기 울음소리인가 헷갈리기도 하고, 근원지를 찾아내어 확인하지 않으면 호기심 때문에라도 잠을 설치겠다 싶어서 플래시 전등을 들고 나섰었다. 그렇게 만난 게 경이었다.
당시 경의 상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빴다. 젖이 퉁퉁 불어 있고 배는 푹 꺼진 게, 나이도 적지 않은 고양이가 길바닥에서 무슨 일을 겪은 건지,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근처에 새끼 고양이는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질 않고, 꼬질꼬질하니 말라빠진 경만 거리를 살피며 돌아다녔다. 애응, 애옥, 소리 내어 울며 빌라 뒷골목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꼭 제 새끼를 찾는 것만 같았다.
새끼 고양이들이 도대체 어딜 갔는지, 누가 주워 간 건지 사고로 죽은 건지 아니면 어쩌다 잃어버렸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기설은 밤새도록 경이 가는 길 앞에 플래시를 비춰 주며 경을 따라다녔다. 그러곤 동틀 무렵에 경을 잡아 들고 제집으로 데려왔다.
기설은 경을 키울 생각이 없었다. 너도 잠이나 좀 자라면서, 별생각 없이 제집에 들여놓은 게 전부였다. 새벽에 제집에 데리고 들어와서는 물이나 한 그릇 떠다 주고 쿨쿨 잠을 재우고는, 이튿날엔 다시금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마음대로 다니게끔 내버려 두었다.
경은 그 뒤로도 몇 주 동안 골목길을 헤매어 다니며 애응 애옥 울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산책을 그만두었다. 새끼를 찾는 일을 포기한 것 같았다. 기운 없는 모습으로 제 빌라 집 문 앞에 추욱 쳐져 있는 것을, 기설이 안아 들었다.
기설은 가진 돈을 쥐어짜 내어 고양이 사료 한 포대를 샀다. 그런데 기껏 차려 주어도 경은 사료를 먹어 주질 않았다. 제가 맡기엔 역겹기만 한데, 고양이들은 아주 좋아한다는 고기 냄새가 나는 습식 캔도 하나 샀다. 그 조그만 습식 캔은 기설의 저녁 컵라면보다 비쌌다. 그런데도 경은 고기 조각을 단 한 입도 먹질 않았다. 경은 어째선지 살고 싶어 하질 않는 듯했다.
‘먹어. 먹으라니까?’
축 늘어진 채 의욕 없이 널브러진 경을 앞에 두고 기설은 습식 캔을 내밀었다. 입에 묻혀 주기도 하고 냄새를 맡게 해 주어도 보았다. 그래도 경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참다못한 기설은 제 손가락 두 개를 습식 캔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한 입 떠다가 제 입 안에 넣었다. 고양이 전용 습식 캔에서는 메스꺼운 맛이 났다.
‘야, 진짜 맛있다!’
기설은 그렇게 소리쳤다. 손가락을 넣어 습식 캔을 박박 긁는 시늉을 하고, 제 입 안에 공장에서 다져진 맛없는 고기를 집어넣었다. 쩝쩝거리며 고개를 처박고 먹어 대자, 경이 당황한 듯 ‘앵’ 소리를 냈다.
‘왜. 좀 맛있어 보여? 진짜 맛있다. 쩝쩝. 응? 맛있겠지? 너도 먹고 싶지?’
기설이 캔을 내려 주자 그제야, 경이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러고는 마른 혓바닥을 내밀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경은 기설이 보는 앞에서만 식사했다. 2년 내내 아침은 9시에 먹었고, 저녁은 기설이 돌아오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먹었다. 경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기설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경아, 오래 살아야 해. 오빠랑 평생 살자.”
아침 식사를 훌륭하게 마친 경의 턱을 긁어 주며, 기설이 웃었다. 어찌어찌 굴러먹으며 살다 보니 이렇게, 제힘으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지만 경에게 작은 방까지 구해 주게 되었다. 벽면에는 네모난 상자가 달린 원목 캣 타워가 세워져 있었고, 구석 자리에는 얇은 커튼으로 냄새를 차단한 전용 모래 화장실도 놓였다.
“천마 형님한테 잘해, 경아. 애교도 조금 부리고 그래. 이거 다 형님이 해 주신 거야.”
경의 정수리를 살살 긁으며 기설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마따나, 경의 방을 이룬 모든 물건이 천마가 내린 선물이었다.
지난주, 경을 데려온 이후 천마는 기설에게 새로운 규칙을 알려 주었다. 미리 허락을 받는 조건으로, 일주일에 한 번 외출을 허락해 주겠다는 관대한 규칙이었다. 고양이를 담보로 삼은 줄도 모른 채 기설은 그가 저를 신뢰한다는 생각에 조금 들떴었다. 마침 건물 근처 풍경이 궁금하고 좀도 쑤시던 차였다.
기설은 곧장 허락을 받아 외출했다. 그저 바람을 좀 쐬고 싶단 이유에서였다. 나온 김에 천마에게 담배 한 갑이라도 사다 줄 겸 그는 편의점이 나올 때까지 걸었다. 돌아올 적에 기설의 품 안에는 담배 대신, 골목길 어귀에 누군가 버려 놓은 캣 타워가 들려 있었다. 플라스틱 재질에 받침대 군데군데에 얼룩이 묻었고, 기둥에 둘둘 말아 놓은 마 끈은 꽤 닳은 데다 꼭대기 층 판자가 떨어져 나가 45도로 기울어진 모양새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쓸 만해 보이는 캣 타워였다.
‘거의 새것 같은데….’
기설은 그렇게 생각했고, 고민 끝에 그 커다란 것을 한 팔로 들어 제 옆구리에 끼고 돌아왔다. 기설이 떡하니 제집 안에 가져다 놓은 캣 타워를 본 천마는 세 번 연속 실소했다. 고양이 원혼이 씐 폐허 같은 물건을 ‘아직 쓸 만하다’며 자랑스럽게 세워 둔 죄로, 기설은 엉덩이를 두 대 맞았다. 이튿날에는 오늘날 경이 가장 사랑하는 숨숨집이 달린 값비싼 원목 캣 타워를 선물받았다.
새로운 캣 타워와 함께, 천마의 명령으로 강 실장이 구해다 준 물건들이 많았다. 캣닢이 뿌려진 스크래처부터 유리창에 부착하는 해먹에 이르기까지, 깨끗한 용품들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개중에서도 경은 해먹을 잘 썼다. 푹신한 자리에 올라가 6층 아래 길거리 풍경을 내려다보길 좋아했다. 반면에 전자동 화장실의 경우 절대로 사용하질 않아서 기설을 걱정시켰다.
그래서 기설은 첫 번째 외출로부터 나흘도 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외출 허락을 받고자 했다.
‘경이가 이틀째 새 화장실을 안 써서요…. 저러다 병 걸릴까 봐 걱정됩니다. 원래 쓰던 화장실을 다시 사다 줘야 되겠습니다.’
그 말에 천마는 하하 웃고는, 함께 다녀오라며 강 실장을 붙여 놓았다. 그와 단둘이 천원 숍에 들러 오천 원짜리 플라스틱 박스를 구매하는 일은 기설의 일생에서 가장 어색한 시간이었다. 아마, 강명경의 입장도 그와 크게 다르진 않을 거였다.
그래도 덕분에 경이 화장실을 잘 쓰게 되어 다행이었다. 경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기설은 못 할 일이 없었다. 여태껏 못 해 줬던 좋은 물건, 좋은 사료, 좋은 영양제를 천마가 베풀어 주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기쁠 지경이었다.
털썩 러그 위에 몸을 눕힌 채 기설은 경의 삐죽삐죽 뻗은 수염을 올려다봤다.
“경아. 너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우리 경이 오래 살아야 되는데….”
마음 같아선 제 고양이, 경에게 자신의 수명을 반 나누어 떼 주고, 평생 함께 살다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이 죽고플 정도였다.
생각에 잠겨 기설은 경의 앞발바닥 냄새를 킁킁 맡았다. 경은 잠시간 기설의 스킨십을 참아 주는가 싶더니, 이내 ‘애옥’ 소리를 내며 캣 타워 위로 달아났다. 기설은 푹신한 러그에 볼을 붙인 채 그 모습을 구경했다.
한 주 만에 경의 모습이 꽤 좋아졌다. 기설이 아껴 주고 빗겨 주고 닦아 주어 본래도 정수리가 반질반질하긴 했지만, 좋은 집에서 좋은 것을 먹으며 호의호식하다 보니 털의 결 자체가 달라진 것 같았다. 다시 보니 살도 조금 찐 듯했다. 이제는 식빵을 구울 때면 옆구리 모양이 볼록하니 펑퍼짐해지는 경이었다.
고양이를 올려다보며 기설은 홀로 작게 웃었다. 캣 타워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던 경이 폴짝 다가와, 기설의 이마에 제 이마를 살짝 받았다.
콩, 제 이마에 머리를 대는 애교에 기설이 흐흐 웃었다.
***
경과 함께하는 아침은 기설에게 있어 순전히 편안하기로 유일한 시간대였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외의 시간들은 날 선 긴장감과 함께했다. 원인은 한천마에게 있었다. 그는 기설에게 모든 욕망을 해소했고, 대체로 그 욕망이란 성욕을 뜻했다.
기설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알파의 성욕은 시간을 가리지 않는 만큼 장소 또한 가리지 않았다. 특히나 리무진의 뒷좌석은 불처럼 화르륵 타오른 성욕을 단시간 내에 해소하기 제법 좋은 장소였다. 적어도, 천마에겐 그랬다.
“…저, 형님….”
반면 기설은 제 셔츠 깃에 와 닿은 큼직한 알파의 손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응. 기설아?”
다정한 목소리로 반문하면서도 천마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기설의 목울대를 따라 목선을 그리는 듯 쓰다듬다가, 탄탄한 흉부의 윤곽을 가늠하듯 셔츠 위를 더듬고, 그저 반응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철썩 소리가 나도록 기설의 왼 가슴을 때렸다.
“아, 어….”
그때마다 기설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매일같이 비슷한 나날이 반복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천마의 아름다운 얼굴이며 그의 부귀가 주는 안락함, 편안한 경의 방이며 맛있는 식사에 익숙해진 뒤에도 도저히 성적 수치심에는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대체로, 천마의 손이 도착하는 곳은 기설의 팬티 속이었다.
“…저, 왜 지금. 지금은….”
기설이 무어라 목소리를 내건 말건, 천마는 기설의 바지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웃는 낯으로 기설의 엉덩이를 두어 번 주무르다가, 뒷구멍을 손가락으로 스치듯 건드렸다.
“…아, 맞다.”
그러고는 혼잣말했다.
“베타는 안 젖지.”
기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엉덩이가 건조한 것이야, 베타인 기설에게는 그만큼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설은 침묵하며 눈치를 살폈고, 천마는 그런 표정을 보길 즐겼다. 어리둥절한 채, 들은 말을 이해해 보고자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베타의 잘생긴 얼굴이 그에겐 꽤나 재밌었다.
오메가처럼 알아서 뒷구멍을 축축하게 적시거나 달콤한 체향을 뿌리지는 못해도, 기설에게는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극우성 알파가 뿌려 놓은 페로몬에 푹 절여져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마의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도, 기설은 제 상태가 어떤지 조금도 몰랐다. 그의 무지는 순진과 비슷했다.
무뚝뚝한 얼굴을 지닌 기설은 과일이었다. 셔츠 가슴께를 움켜쥐고 좌우로 당기면 하얀 과육을 드러내는, 수치심을 느끼면 분홍빛으로 익는 과일.
“셔츠 벗어.”
천마가 말했다. 기설은 눈동자를 잘게 흔들며 운전석을 살폈다.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에는 격벽이 세워져 있었고, 블라인드 창문 역시 닫힌 상태였다. 운전수에게는 뒷자리의 대화 소리가 들릴지언정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을 터였다.
기설이 느릿느릿 제 셔츠의 단추를 하나둘 풀어 내리자 얼룩덜룩한 피부가 드러났다. 간밤 알파에게 물리고, 빨리고, 꼬집힌 가슴에는 붉은 키스 마크와 잇자국, 색이 짙은 멍울이 남아 있었다.
천마가 고개를 가까이 대자 기설이 주춤거리며 상체를 뒤로 내뺐다. 리무진의 뒷좌석이 넓다고는 하나 2미터에 육박하는 알파로부터 도망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설의 등은 금세 시트 구석에 부딪혔고, 천마는 입을 크게 벌리고선 제가 남겨 놓은 잇자국 위에 다시금 이를 박았다.
베타의 탄탄한 가슴을 깨물고, 젖꼭지를 꼬집어 당기며 괴롭히는 것이 천마의 새로운 취미였다.
“악….”
기설이 새된 신음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제가 신음을 참으려 노력하는 만큼 천마의 손길이 거칠어지는 줄을 아직도 모르는 채였다. 천마가 비틀어 쥔 유두를 세게 잡아당기자, 기설의 목덜미에 아플 만큼 팽팽한 핏줄이 돋았다. 벌건 통증과 치미는 열 기운, 그리고 오묘한 성감에 기설의 눈앞이 허옇게 번졌다.
“흐으, 허억….”
리무진 시트를 콱 움켜쥐고서 기설은 감각이 주는 혼란에 잠겨 신음했다. 흉곽 안에서 내달리는 심장 박동이 퉁, 퉁… 천마의 입술에 닿을 만큼 거셌다. 처음 젖꼭지를 꼬집힐 적엔 기절초풍을 하며 펄쩍 뛰던 걸 생각해 보면, 며칠 새 발전한 모습이었다.
베타가 맛보는 혼란일랑 저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는 양, 미소를 걸친 채 천마는 그의 가슴 근육을 깨물고 빨았다. 그에 기설의 숨결이 헐떡헐떡 거칠어졌다. 삽시간에 흘러나온 땀이 등허리를 적셔 놓았다. 꾸역꾸역 참아 내던 신음성도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혀, 형님, 아! …으, 흡….”
시선을 내려, 천마는 기설의 사타구니를 구경했다. 잔뜩 발기한 탓에 부풀어 오른 바지 중앙의 모양새가 꼭 텐트 같았다.
“기설아.”
“…예.”
“요즘 베타들은 젖 빨리면서 좆도 세우나 봐.”
“…….”
대답하는 대신, 기설은 두 다리를 뒤척거렸다. 무릎을 세워 발기한 성기의 윤곽을 가려 보려 노력했지만 큰 효과는 보질 못했다. 도리어 그 태도가 수줍어하는 듯 보여 천마의 성욕에 불을 지폈다.
“싸게 해 줄까?”
그렇게 말하면서, 천마는 자신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응? 기설아.”
몇 초간 그 동작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기설은 무얼 깨달은 사람처럼 ‘아’ 하고 음성을 냈다. 그러고는 앉은 자리에서 뒷좌석 바닥으로 몸을 옮겼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 그는 천마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대로 바지 지퍼를 끌어 내리고, 속옷을 살짝 아래로 젖히자 흉포하다 느껴질 만큼 팽팽하게 발기한 알파의 성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기설은 검붉은 귀두 위에 제 입술을 가져다 붙였다.
“아, 해.”
천마가 말했다. 맛있는 것 먹인다는 양 지시하는 소리에 기설이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 이내 커다란 양물이 기설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빨갛게 달아오른 입 안의 열기와 축축한 침, 부드러운 혓바닥이 한천마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으음….”
그의 귀두를 온통 침으로 적셔 가며, 기설은 혓바닥을 내밀어 어색하게나마 그의 것을 핥고, 빨고, 맛보았다. 두 눈을 위로 치켜뜨며 반응을 살피기도 잊지 않았다. 천마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다행이다. 기분 좋으신가 봐….’
주어진 상황은 짐짓 폭력적인데, 이상하게도 그의 휘어진 눈매며 다정한 눈동자에 기설은 안심했다. 제 펠라티오가 그를 즐겁게 한다는 게 조금은 기쁘기까지 했다.
기이한 감정에 심취한 기설의 머리칼에 천마의 손바닥이 닿았다. 그가 짧은 머리칼을 거칠게 움켜쥐자, 기설의 얼굴에 작은 고통과 긴장감이 떠올랐다. 그대로 기설의 고개가 천마의 사타구니에 처박듯이 내리눌렸다.
“큽, 우… 읍.”
입을 크게 벌리며 기설은 천마의 것을 머금었다. 춥…, 춥… 천박한 소리를 내며 최선을 다해 빨다가도, 성기 끝이 목구멍에 닿을라치면 반사적으로 기침이 났다. 저도 모르게 뒤로 도망치려는 기설의 뒤통수를, 천마의 손이 거세게 타격했다.
“…윽!”
‘탁’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맞고 알파의 사타구니에 고개를 처박은 순간 기설의 눈앞에 하얀빛이 번졌다.
“기설아. 입으로 빨기 싫어? 그럼, 뒤로 할까?”
속삭이는 말이 아주 가깝게 들려왔다. 묵직한 경고에 기설은 두 눈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볼이 패도록 힘내어 입 안의 성기를 빨았다.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동 중인 차에서 뒤로 알파를 받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다고 피력한 셈이었다.
입을 벌린 채 침방울을 줄줄 흘리는, 기설의 뒤통수를 큰 손으로 콱 짓눌러 고정시킨 채 천마는 허리를 두어 번 세게 쳐올렸다. 굵은 성기가 목구멍을 찌르다 못해 깊숙이 채우며 박혀 들어오자, 기설이 턱 밑으론 침을 흘리며 컥컥 기침했다.
“입술 오므려.”
천마가 지시했다. 기설은 ‘우윽’, 대답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입술을 애써 오므리며 좆 기둥을 감쌌다. 좁디좁은 목구멍 안이 양물로 쑤셔진 탓에 그는 제대로 호흡하지도 못했다. 생리적인 눈물과 침, 콧물까지 질질 흘리며 허리를 비틀어 댔고, 꿇린 무릎은 차량 바닥 위에서 연거푸 미끄러졌다.
“컥, …큽, 읍…, 콜록!”
마침내 천마가 뒷머리를 놓아주자, 기설은 튕겨 나가다시피 몸을 뒤로 내뺐다. 차량 바닥에 나자빠진 채 그는 컥컥거리며 기침했고, 침과 프리컴으로 축축해진 입술을 닦았다.
“컥, 허억, 헉…, 죄, 죄송…해요, …컥….”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기설이 사과했다. 천마는 축축하게 젖은 기설의 바지 중심부를 말없이 내려다봤다. 아픈 신음과 기침을 토해 내면서도 기설은 발기한 채였다.
수치심으로 벌게진 베타가 엉금엉금, 천마의 다리 사이로 다시금 기어 다가왔다.
“허억…, 헉….”
숨조차 정돈하지 못한 상태로 그는 천마의 오른쪽 무릎 위에 얼굴을 문질렀다. 한 번만 봐 달라는 양, 용서해 달라는 양 애걸복걸 비는 태도였다.
“형님, …죄송해요. 다음엔…, 더, 더 잘할게요. 숨이 너무… 너무 막혀서.”
기설이 눈을 바삐 굴리며 변명했다.
“하하!”
그에 천마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사실 천마는 애초에 화나 있질 않았다. 그로서는 화를 낼 이유가 없었다. 그는 서투른 기설을 놀리는 일 자체를 즐기고 있었으므로. 그러니 ‘쉬이’, ‘쉿’ 소리 내며 어린 베타를 달래 주기도 어렵지 않았다. 헝클어진 기설의 머리칼을 정리해 주고, 좌로, 우로 느릿느릿 쓰다듬었다.
“괜찮아, 기설아. 착하기도 하지.”
“…….”
기설은 홀린 듯 멍한 얼굴로 천마의 손길을 만끽했다. 쉽게 건네 온 칭찬이 기설에게는 대단한 것처럼 느껴졌다. 속절없이 기설은 함락당했다. 애정 결핍인지 분리 불안인지 모를 병을 앓는 똥개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바로 조금 전의 숨 막히는 고통을 잊어버리고, 다시금 천마의 성기 위에 제 입술을 가져다 붙일 정도였다.
천마는 기설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움켜쥐고 고개를 모로 돌리게 했다. 다소 어리둥절한 채 기설은 두꺼운 기둥의 옆면에 입술을 붙였다. 그대로, 천마의 큰 손이 기설의 뒤통수와 자신의 성기 한쪽 면을 바짝 맞붙였다. 그러고는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마의 성기 기둥이 기설의 젖은 입술 위에 문질러졌다.
“하아….”
더운 콧김을 내쉬면서 기설은 두 눈을 꽉 감았다. 살갗이 비벼지고 스치는 소리, 낮은 음성이 ‘으음’ 하고 무얼 음미하는 양 신음하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빌어먹을 상상을 하고야 말았다. 이대로 한천마가 저를 엎어 놓고, 제 뒤에 양물을 쑤셔 박는 모습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러면서 기설은 흥분했다. 프리컴으로 드로어즈가 다 젖고, 바지 위까지 얼룩을 남기도록 발기한 성기가 안달 난 듯 움직거릴 지경이었다.
“흐, 으… 읍.”
기설은 잠시간 머뭇거리다 제 바지 안으로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뜨겁게 발기한 것을 꺼내지 않으면, 맑은 액이 아니라 허여멀건 정액으로 정장을 더럽히고야 말 것 같아서였다. 그러자 천마가 자위하는 것도 펠라티오를 받는 것도 아닌 모호한 행위를 멈췄다.
“기설아.”
그의 발끝이 툭, 새빨갛게 달아오른 기설의 성기 끝을 쳤다.
“아! 으, 윽…, 네. 네….”
“…엎드려.”
닥쳐온 명령에 기설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기가 죽도록 싫다거나 수치스럽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이 그 말을 내심 기다리고 있지 않았나 하는, 인정하기 힘든 의문에 휩싸인 탓이었다.
재차 천마의 발끝이 툭, 기설의 발기한 성기를 건드렸다. 작은 자극에도 기설은 허리를 비틀며 괴로워했다. 헉헉거리며 그는 얼른 몸을 돌렸다. 천마에게 제 등이 보이게끔 엎드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엉덩이를 들어 보였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허벅다리가 덜덜 떨렸다.
망설임이 긴 기설에 비해 천마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타오르는 욕망을 참을 것 없이 그는 기설의 허벅지에 팽팽하게 걸린 바지 벨트를 뒤로 잡아당겼다. 발정 난 짐승처럼 엎드리고 엉덩이만 추켜든 채, 기설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서 운전석을 가려 놓은 격벽을 연신 힐끔거렸다.
그리고 기설의 머릿속은 텅 비었다.
“아!”
툭, 뜨겁고 단단한 살덩이가 제 뒤에 닿는가 싶더니 이내 꾸역꾸역, 뒷구멍을 쑤시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설은 밭은 신음을 흘리며 전신을 덜덜 떨었다.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아, 아…아.”
“봐…. 이제 잘 들어가지.”
천마가 속삭였다. 기설의 허리를 쥐고서 천마는 서너 번, 그의 몸을 인형 다루듯이 흔들었다. 추켜들린 엉덩이가 양쪽으로 벌어지고 주먹인지 좆인지 분간되지 않는 이물감이 턱턱 차오를 때마다 기설의 이마는 차량 바닥에 쿵, 쿵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천마는 기설의 엉덩이를 움켜쥐고는 좌우로 벌리다가, 이내 짝 소리가 나도록 세게 내리쳤다. 기설은 흥분과 고통에 젖은 신음을 뱉었다.
“아윽, 으, 흑….”
“하아….”
천마는 이를 악물고는 기설의 젖은 셔츠를 붙들어 당겼다. 홱, 거칠게 당기자 벌을 서듯 엎드려 있던 기설의 상체가 뒤로 젖혀짐과 동시에 알파의 성기 기둥이 그의 속에 꼬챙이처럼 깊이 박혔다.
“아…!”
끝까지 밀어 넣었을 뿐인데 기설은 맥없이 사정했다. 또렷하던 눈동자가 탁하게 흐려지고 감전된 사람처럼 부르르 몸을 떨며, 그는 울컥울컥 흰 정액을 흘렸다.
“아, 아….”
한 번 사정한 뒤 기설은 배로 예민해졌다. 천마가 허리를 반복해 쳐올릴 때마다 기설의 성기가 꺼덕꺼덕 흔들리며 묽은 액을 뱉어 냈다. 거세게 닥쳐오는 성감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운전석을 의식하던 것도 잊어버린 채 기설은 신음을 마구잡이로 내질렀다. ‘형님’하고 헐떡거리다가도 ‘제발’하고 애원했다.
“제발, 윽! 제…발, 악, 그만, 그, 윽! 읏! 그만…!”
“아, 씨발….”
“빨리 싸 주세요, 그만….”
이내 천마가 크게 신음했다. 두 팔에 핏줄이 솟고 얼굴로 열이 몰린 채, 그는 기설의 허리를 와락 껴안았다. 전직 복서의 탄탄한 허리조차 천마의 두 팔에 감기자 여리고 가늘어 보였다.
“아…!”
기설은 자신이 한천마를 만족시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천마의 근육이 파르르 떨리고, 제 속으로 더운 열기가 퍼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너나 할 것 없이 두 남자는 작게 경련하며 더운 체온으로 서로를 끈적하게 뭉갰다.
두 눈이 멍하니 풀린 채, 기설은 천천히 뒤로 늘어졌다. 제 품 안으로 등을 기대며 무릎 위에 완전히 앉아 버린 기설을 보며 천마는 작게 웃었다. 자진해서 애교를 부리는 일은 거의 없던 기설이, 어쩐 일로 제 무릎에 앉는 건가 싶었다.
“…기설아?”
그러나 즐거움은 길지 않았다. 기설이 까무룩 기절했단 것을 알자마자, 천마는 허탈함에 실소했다.
“자니?”
앞으로 푹 수그러진 기설의 목뒤에 혹처럼 돋은 둥그런 뼈를 구경하면서, 천마는 두어 번 더 기절한 베타의 몸을 흔들흔들 움직였다.
“으음….”
그러면서 그는 신음했다.
베타의 육신을 딸감 삼아, 알파는 자위인지 섹스인지 모를 행위를 이어 나갔다.
***
천마의 뒤를 쫓아다니며 기설은 그의 세계 아주 일면을 관람할 수 있었다. 신산의 주인이라 불리는 이 남자에게는 부탁을 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누구에게 협박을 받고 있다며 도움을 구하는 이들도 있었고, 사람을 찾고 있다고 수소문을 바라는 이들도 있었으며, 때로는 단순히 돈을, 때로는 사업적인 협력을 구했고, 이따금은 본인의 복수를 해 달라고 기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기설은 천마라는 남자가 단순한 사업가가 아님을 느꼈다. 그렇다고 마피아 따위의 조직범죄자냐 하면 또, 그렇지만은 않았다. 소망을 전부 들어주는 신적인 남자라고 표현하자면 그것 역시 아니었다.
한천마는 그저 한천마였다. 그와 같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따금, 한천마는 장난을 좋아하는 어린아이였다. 아둔한 기설을 놀리는 건 아주 가벼운 수준이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생기면 그의 인생을 망치로 부순 호두알처럼 완전히 으깨 버릴 줄을 알았다.
이창건이라는 남자도 그렇게 망가진, 한천마가 미워하는 장난감 중 하나였다.
믿을 만한 건 잘생긴 얼굴뿐인 이창건은 40대 남성으로, 한천마가 SS 그룹 대표 이사로 올라서기 이전에 손에 쥐고 굴리던 카지노 공기 알 중 하나였다. 카지노에서 일을 하며 버는 돈을 족족 카지노에서 써 버리던 이창건은 내일 없이 오늘만을 사는 남자였다.
한천마가 이창건을 놀려 주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벌써 2년 전인가, 작은 심부름을 맡게 되어 한천마의 집에 찾아온 날에, 당시 일하던 가정부 아주머니 황 씨를 꼬셔서는 몇 달 연애질을 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여자와 함께 신산을 떠나 버린 전적이 있어서였다.
한천마가 그 가정부를 유별나게 좋아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녀 외에도 일 잘하는 헬퍼는 숱했으므로. 한천마가 이창건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지, 제 슬하에서 일하는 사람을 함부로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달에 사백 벌던 여자를 제집으로 데려가선 공짜로 일하게 만들다니 호로새끼지. 지 자식새끼나 봐 주는 유모로 만들었어.’
순전히 그게 꼴 받았다. 그래서 조금 골려 주었다.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도박 랜드와 카지노, 클럽 지하에는 액상 담배를 비롯해 약을 제작하는 꾼이 숱했는데, 부산으로 오가는 물류 유통 팀에 이창건을 집어넣은 것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한두 번 약에 손을 대는가 싶더니, 1년 사이에 완전한 중독자가 되어서는 물건을 빼돌리다가 적발당했다. 천마는 일부러 부하를 두엇만 풀어 그를 쫓게 만들었다. 느릿느릿한 사냥 끝에, 이창건은 급히 제집으로 도망치는가 싶더니 현금 다발을 가져왔다.
그게, 발치에 후드득 떨어진 지폐 뭉치를 기설이 줍게 된 연유였다. 머리칼이 하얗게 세고 안면 가득 식은땀을 흘리는 이창건은 겁에 질려 한천마에게 돈을 직접 건네줄 정신도 없어 보여서였다.
기설이 주섬주섬 지폐 다발을 정리해 내밀어 보이자, 천마는 그 돈을 받지는 않고 몇 초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소파 팔걸이에 둔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툭, 툭… 가죽 시트 두들기는 소리를 냈다.
“나는 내 손을 거친 돈은 귀신같이 알아봐.”
한천마가 말했다.
“이 돈, 내가 황 씨한테 준 퇴직금이란 말이지….”
두어 장, 꼬질꼬질한 오만 원권이 섞여 있긴 하지만 지폐 뭉치를 이룬 돈의 대다수는 빳빳한 새 돈이었다. 오만 원권 스무 장을 묶을 적에, 한천마는 열아홉 장은 나란히 펴고 남은 한 장은 가로로 둘러 신사임당의 얼굴을 가려 놓곤 했다. 이창건이 떨어뜨리고 기설이 주워다 건넨 돈뭉치들도 같은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도합 네 묶음, 사백만 원이었다.
천마는 창건에게로 느릿하게 시선을 돌렸다.
“황 씨는 어디 가고… 황 씨 돈만 가져왔지?”
“헤어진 지가, 꽤 됐…, 됐습니다.”
“오…. 헤어지면서 황 씨가 너한테 돈까지 줬어? 그것도 내가 저한테 준 돈을.”
“그게….”
창건의 얼굴이 더는 질릴 수 없을 만치 창백해졌다.
“…몰랐습니다. 대표님 돈인 줄… 알았더라면, 저도 절대로…. 대표님,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한 번만 눈감아 주시면 두 번 다시는….”
천마는 더는 그를 놀리는 일이 재밌지 않았다. 일이라는 것이 엉키려고 하면 무한정 엉킬 때가 있다. 그렇게 재수 없는 굴레에서 무한정 구르는 인간들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한천마 밑에서 일하던 사람을 빼 간 것으로도 모자라, 한천마가 호의로 베푼 돈을 빼앗아다가, 다시금 한천마의 면전에 내미는 이창건이 딱 그랬다.
강 실장을 시켜 치워 버리고자 손을 들었다가, 천마는 잠시 동작을 멈췄다. 그러고는 제 옆에 선 기설을 살폈다. 낯빛이 평소보다 가라앉은 기설은 사백만 원 뭉치를 두 손에 쥔 채 울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폐기물 같은 중년 남자를, 어째선지 걱정하는 것도 같았다. 그게 천마를 황당하게 했다.
제 앞으로 빚만 2억인 주제에, 고작 사백의 손실을 메꾸러 온 남자를 걱정해 주다니. 절름발이 쥐가 늑대를 걱정하는 꼴이었다.
“왜.”
한천마가 물었다.
“불쌍하니?”
“아…. 아닙니다.”
기설이 쭈뼛거리며 일단 부정했다. 그런 기설 앞에, 천마는 가까이 다가오라는 듯 손짓했다. 두 걸음 그에게로 다가서며 기설은 손안에 쥔 돈뭉치를 내밀었다. 그 손을 받는 대신, 천마는 기설의 손등 위를 검지 끝으로 부드럽게 긁어내렸다. 간질간질한 작은 동작에 기설이 볼을 붉혔다. 안 그렇게 생겨서는, 기설에겐 순박한 데가 있었다.
그래서 천마는 작은 내기를 걸어 보기로 했다.
“그래…. 용서 한 번쯤 못 해 줄 것도 없지.”
선처를 베풀듯 꺼낸 말에 창건의 낯이 환해졌다. 기설의 울적하던 눈동자에도 빛이 드는 듯했다.
“이 자리에서 기설이랑 싸워서 이기기만 해. 그럼 눈 한 번 딱 감아 줄게.”
조건을 덧붙이며 천마는 앉은 자리에서 기설을 올려다봤다. 당황한 듯 기설의 눈동자가 분주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속눈썹이 빠르게 깜빡깜빡 움직였다. 천마의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농담인지, 분간해 내려 애쓰는 눈치였다.
순진한 기설에 비해 창건은 대책 없는 남자였다. 헛숨 들이켜는 소리를 내며, 창건은 무턱대고 기설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팔 뻗어 주먹을 휘두른 순간 기설은 가볍게 고개를 뒤로 피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 것이었다.
창건은 흥분한 숨을 식식거리며 다시금 기설에게 달려들었다. 기설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옆으로 밀치며 게걸음으로 정면 싸움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눈짓으로는 연거푸 한천마를 쫓았다.
‘그만하라고 해 주세요.’
다갈색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장난이라고, 그만하라고 말해 주세요.’
창건이 내지른 주먹이 기설의 얼굴을 비켜 지나갔다. 목숨 줄이 천마의 손에 잡힌 남자의 기세는 투견 같았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기설의 눈에 너무 느렸다. 약에 중독된 지 오래인 몸은 회피하기만 하는 기설을 쫓아 뛰는 것조차 벅찬 상태였다. 눈물 젖은 눈동자만이 천마의 용서를 구하고자, 간절하게 번들거릴 뿐이었다.
이마를 찡그리며 기설은 다시 한번 천마를 바라봤다. 그의 형님께서는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술에 물고 있을 뿐, 너절한 싸움의 현장을 구경조차 하지 않았다. 창건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그의 발악을 말릴 마음이 없는 듯했다.
기설은 이를 꽉 다물었다.
“히익, 히익….”
거친 숨을 시근덕거리며, 창건이 재차 기설에게 달려들었다. 기설은 멈추어 선 채 뻗쳐 온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고개를 돌려, 볼을 칠 주먹을 콧등으로 맞아 주기까지 했다. ‘퍽’, 그럴싸한 타격음과 함께 코와 인중에 열이 확 올랐다.
“…….”
천마는 성냥개비를 손에 쥔 채 멈췄다. 그와 눈을 마주치며, 기설은 엄지 끝마디로 왼쪽 콧구멍을 막고는 흥 콧김을 내쉬었다. 코피가 후두둑, 오른쪽 코 밖으로 떨어져 나왔다. 터진 입술 위에도 핏방울이 고였다.
“허억….”
피 흘리는 이는 기설인데, 맞은 그보다도 때린 창건이 더 놀란 눈치였다.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중년을 무표정한 눈동자에 담으며, 기설은 그의 얼굴에 가볍게 잽을 날렸다.
연거푸 달려들기만 하던 불나방 같던 남자가 바닥에 대자로 쓰러졌다. 그러더니 다시는 일어서질 못했다. 한 방에 나가떨어져 기절해 버렸다.
“죄송합니다, 형님….”
쓰러진 창건의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며, 기설이 말했다.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 천마가 그런 기설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제가 졌어요.”
기설이 그 앞에 깊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마는 기설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그러고는 기설의 코를 콱 움켜쥐고 고개를 위로 들게 했다. 코피가 울컥 터져 나와 입술을 적셔도, 기설은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
방 안의 침묵이 길어지자 바깥에서 대기하던 부하 두엇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묵묵히 천마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쓰러진 창건의 팔과 다리를 잡고 짐짝 옮기듯 끌고 나갔다. 기절한 중년 남자와 사내들이 빠져나간 문간에 남은 이는 강명경뿐이었다.
“강 실장.”
천마가 말했다. 두 눈은 기설을 향한 채였다.
“저 도둑놈 새끼를 살려 쓸 구실이 있을까?”
“음….”
명경이 침음하며 입을 연 순간, 쿵 소리가 났다.
무어라 답을 꾸리려던 명경의 눈이 커졌다. 한천마의 손아귀가 기설의 목덜미를 쥐고는, 기설의 상체를 책상 자리 위에 엎어 놓은 것이었다. 널브러진 서류 위에 코피를 묻히며 기설은 헛숨을 아주 짧게 삼켰다. 그와 동시에 그의 바지가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벨트를 단단히 죈 탓에, 확 쥐고 끌어 내린 바지는 골반에 걸려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성기가 꽉 조이는 느낌에 기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천마는 조급함이 묻은 손으로 기설의 벨트를 달그락거리며 풀었다. 그러고는 기설의 아랫배 아래를 가로지르게끔 둘러, 끈을 뒤로 확 당겼다.
기설의 몸이 벨트에 걸린 채 들썩 움직였다. 부드럽게 끌려 내려간 바지와 속옷이 작은 소음을 내며 발목 밑으로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릿속이 새하얘진 채, 기설은 흥분한 알파의 숨소리와 지익 지퍼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이내, 진작에 프리컴으로 축축하게 젖은 채 팽팽하게 발기한 성기가 기설의 엉덩이 골 사이를 쑤시고 들어왔다.
“헉…, 윽!”
서류 더미에 고개를 처박으며 기설은 신음을 참았다. 주먹으로 꽉 말린 두 손이 어찌할 바를 몰라 책상 위를 두 번 쿵, 쿵 두들겼다.
뻑뻑하게 죄이는 더운 구멍 안에 제 것을 깊이 쑤셔 박으며, 천마는 크게 헐떡였다. 무방비한 상태로 뒤가 뚫린 베타가 고통스럽게 꿈틀거리는 것조차 한천마에겐 환희에 가까운 자극을 안겨 주었다. 양 손바닥에 휘감아 쥔 가죽 벨트를 바짝 당길 때마다, 기설의 허리가 고삐 당긴 말의 목처럼 뒤로 들썩였다. 벨트에 콱 죄인 잘록한 허리를 내려다보며 천마는 연거푸 허리를 앞으로 밀어붙였다. 기설의 볼기가 천마의 사타구니와 들러붙으며 철썩철썩 외설적인 소리를 자아냈다.
“허으…, 으, 윽…!”
신음을 애써 삼키는 기설의 머리채를 잡고, 천마는 그의 얼굴을 들게 했다. 기설의 흐트러진 시야에 문간에 선 검은 인영이 보였다. 강명경은 제자리에 선 채 조용히 두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흑, 읏….”
이를 악물고 기설은 끅끅거리며 서러운 신음성을 삼켰다. 아무렇잖게 무표정을 가장하며, 명경이 목소리를 냈다.
“…카지노에 슬슬 새 얼굴이 필요하긴 하답니다. 판 짜는 조연이나 시키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나 천마는 부하의 말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하아, 뒷구멍에 껌딱지가 들었나…. 아주 쩍쩍 들러붙어.”
덜컹, 덜컹 소리를 내며 책상이 크게 흔들거렸다. 벨트에 아랫배가 걸린 채 기설은 더는 신음성을 참아 내지 못했다. 배가 콱 조이는 느낌에 내장을 토할 것만 같았다.
“허윽, 응! 읏….”
“으음.”
천마는 이내 가죽 벨트를 떨어뜨렸다. 커다란 손이 기설의 뒤통수를 덮는가 싶더니, 부드럽고 새카만 머리칼을 헤집으며 책상 위로 내리눌렀다.
“아, 기설아.”
“흐, 읍, 흐읏….”
덜컹, 덜컹, 덜컹… 책상이 연거푸 흔들거렸다. 천마는 제 성기로 꽉 막힌 기설의 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비좁은 틈새로 삐져나온 프리컴이 꼭, 기설의 몸에서 좋다고 흘려보낸 물처럼 느껴졌다.
“대표님.”
명경이 헛기침을 했고,
“아, 그래.”
천마가 기설의 뒷구멍에 몸을 세게 몰아붙였다. 기설의 몸이 크게 흔들리더니 두 발이 허공에 떴다. 잇새로, 미처 삼켜 내지 못한 신음성이 크게 터졌다. ‘아응’인지 ‘아윽’인지 모를 소리를 터뜨리며 기설은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았다.
“힉, …힉.”
시뻘겋게 달아오른 목덜미에서 수치심이 땀이 되어 흘렀다. 맥박이 퉁퉁거리며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렇게 해.”
흘러내린 제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기며, 천마가 강 실장을 향해 답했다. 마침내 원하던 답을 들은 명경은 입을 꽉 다문 채 얼른 대표실을 떠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기설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천마의 두 손이 기설의 옆구리에 닿았다. 오돌토돌하니 근육이 들러붙은 갈비뼈를 도륵도륵 긁어내리며, 그는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괴팍한 심술을 부린 사람치고 장난스럽고 다정한 손길이었다.
“아가, 미련하기는. 응? 그 주먹에 맞아 주다니….”
힉, 힉… 밭은 숨을 몰아쉬며 기설은 멍하니 천마를 돌아봤다. 이마에 핏대가 서도록 흥분한 채 웃는 그의 얼굴이, 성난 짐승인가 싶다가도 그저 신난 사람 같았다. 어쩌면 화가 나서 벌을 주는 게 아닌 것 같다고, 기설은 생각했다.
“…….”
오히려… 마음에 들어서 칭찬을 해 준 것 같았다.
“얼굴 상하면 어쩌려고 그래. 으응?”
허리를 깊이 숙이며 천마는 기설의 귓바퀴를 만지작거렸다. 그가 제 안에 성기를 집어넣은 채 조금 더 즐기도록, 멋대로 제 귀와 가슴과 허리를 주물럭거리며 천진하게 웃게끔, 기설은 얌전히 숨결만 색색거렸다.
저도 모르는 새 흘린 정액으로, 책상다리가 너저분했다.
***
기설은 추잡하고 가난하고 음란한 것들에 익숙한 편이었다. 밤길을 걷다 보면 길바닥에서 취한 알파에게 딸을 쳐 주는 오메가를 볼 때도 있었고, 돈이 궁하다 보니 집 안으로 손님을 끌어들여 몸을 팔던 이웃이 있었으며, 구멍 방이라는 이름으로 동그랗게 뚫린 구멍에 2만 원 지폐와 좆을 덜렁 집어넣으면 빨아 준다는 가게도 본 적 있었다.
시트지로 컴컴하게 발라 놓은 외벽 창문에 ‘성인용품’ 네 글자가 박힌 간판을 단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기설은 그런 것들은 저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이들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잘생겼고, 젊었으며, 실력 있는 복싱 선수였으므로.
어릴 적부터 기설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숫기 없고 무뚝뚝한 성격이라 연애를 오래 하는 편은 못 되었지만, 섹스를 하기 위해 돈을 쓰는 남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랐다. 알파나 오메가들처럼 정신 나간 발정기를 겪을 일도 없었고, 희롱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또래 소년들의 우상으로 살아왔다.
얄궂은 삶은 언제고 기설을 예상치 못한 자리에 데려다 놓고는 했다.
“성인용 장난감이랑 왜 말을 섞어, 새끼야.”
오늘, 기설은 난생처음 ‘성인용 장난감’이라 불렸다.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얼이 빠져 버렸다. 한 손에는 경에게 가져다줄 간식 봉지를 쥔 채였다.
카지노 경호 팀에서 일을 하다 옮겨 왔다던 직원의 인사를 받은 게 화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하고 허리를 숙이기에 저도 ‘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 주었을 뿐인데, 평소 기설을 아니꼽게 바라보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그를 기설에게서 멀리 떼어 놓은 것이었다.
검은 정장 재킷들이 죄 구겨지고 넥타이는 느슨한 것을 보면, 각자 힘든 하루를 버티고 돌아온 기색이었다. 한천마가 골라다 입혀 놓은 모습 그대로,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한량처럼 집 안에 머무른 기설이 싫을 만도 했다.
“…….”
기설은 입을 다물었다. 가만히 침묵하며 지켜보면 용무를 마치고 사라져 주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기설의 생각이 틀렸다.
“한 대표님께서 빠구리 뜨고 쿠폰에 도장 찍어 주는 새끼야. 소문 들어서 알지? 왜 일전에, 베팅 경기 망쳐 놓은 또라이 새끼.”
“예? 진짭니까? 그게 이놈이라고?”
외설적인 농담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기설의 머릿속이 일순 텅 비었다. 빠구리, 쿠폰, 도장… 난생처음 들어 보는 말들에 어떤 반응을 보여 주어야 할지 모르게 됐다. 차라리 거지, 등신, 멍청한 새끼라는 말을 들었더라면 그에 맞는 대거리를 해 줬을 터였다. 여태 기설에게 익숙한 욕설은 그런 것들이었으므로.
“어이. 얼굴 좀 들어 봐.”
도대체 어디가 어떻길래 베타가 남창 일을 다 하냐고, 낄낄거리는 목소리에 기설의 귓불이 달아올랐다.
“도장 몇 개 남았냐?”
머리 위로 떨어진 질문에 기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를 멸시하는 눈동자가, 관자놀이에 겨누어진 총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다섯 번… 남았습니다.”
최대한 덤덤하게 소리 내어 대답했다. 그러자 킬킬거리는 비웃음이 더욱 커졌다. 무얼 생각하고 웃는 건지 이유야 뻔했다. 저들이 모시는 대표님에게 엉덩이를 벌려 주는 베타 창놈의 모습을 상상하고, 외설적인 상상 그 자체를 비웃는 것이었다.
“사람 몸의 구멍은 다 똑같아. 자주 쑤시고 늘이다 보면 나중에는 헐어 버린다고. 열 탕 뛰고 너덜너덜해지면, 그땐 대표님이 너를 어디로 보낼 거 같냐? 창놈 새끼 갈 데가 또 어디 있겠어?”
기설은 이제 그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제 대답을 듣고자 건넨 질문이 아니라는 걸, 늦게 알아챈 탓이었다. ‘베타를 무슨 맛으로 먹냐’고 혀를 내두르며, 그들은 계단 위로 우르르 사라졌다.
기설은 텅 빈 눈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좇았다. 그러곤 검은 인영을 발견했다. 위층 난간을 움켜쥔 채, 그를 내려다보는 강명경이 있었다. 오가는 험담을 모두 들은 듯했으나, 물끄러미 지켜만 볼 뿐 그들 중 누구를 만류하진 않았다.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강 실장이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쯤이야 기설도 진작 알던 사실이었다.
“…….”
기설은 그를 향해 가볍게 묵례했다. 꾸벅, 턱짓하는 인사에 아무런 응답도 보여 주질 않고 강 실장은 자리를 떴다.
너른 거실 한복판에 기설은 혼자 남았다. 그와 함께하는 것이라고는 진하게 남은 불쾌감과 가슴께에 남은 아릿한 스크래치, 그리고 손안에 쥔 고양이 간식뿐이었다.
‘개좆 밥 새끼들, 링 위에서 만났더라면 아주 아구창을 갈겨 줬을 텐데….’
단지 그게 아쉬웠다.
그러고는 내심, 들은 말을 정정했다.
‘열 번 아니고, 열한 번이거든.’
기설은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을 쫙 폈다.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인 손가락이 오늘따라 모자라게 느껴졌다. 다섯 개가 아니라 오십 개였으면 싶었다. 다섯 번이 아니라 오백 번이었으면 싶었다.
주먹을 콱 말아 쥐자 손가락이 쑥 모습을 감췄다. 기설은 한숨 쉬며 무거운 팔을 내렸다.
요즘과 같은 무리 활동은 아무래도 기설과는 맞질 않았다. 아둔한 기설에게 다수와의 눈치 싸움은 너무 어려웠다. 그는 대충 적당하게 살고 싶었다. 저도 남을 욕하지 않을 테니까, 남도 저를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기설은 두려웠다. 섹스 열한 번을 채우고 한천마가 자신을 버리고 나면 남은 인생이 어떻게 굴러갈지… 나중 일이 두려웠다.
‘아…, 씨.’
기설은 왼발을 들어 발끝으로 오른 발목 안쪽을 긁었다. 자다 모기에라도 물렸나, 심란한 순간에 피부 위가 간지러웠다. 그게 기설의 현주소였다. 빨간 부끄러움도 퍼렇게 질리는 수치심도 그에게는 오래 남지 않았다.
‘후…. 배고프다.’
일부러라도 그는 열심히 허튼 생각을 늘렸다.
‘우동 먹고 싶다. 뜨끈한 우동에 소주 한 병만….’
그러다 보면 생각이 사라졌다. 생각이 비면 멍청해졌다. 멍청해지면 살기가 좀, 편해졌다.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도 괜찮다. 심각해지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우동 국물 한 숟갈, 소주 한 잔 번갈아 먹으면 따끈따끈하니… 밤에 보일러 땔 필요가 없는데….’
그래서 기설은 열심히 멍청했다. 생각을 비우고, 지우고, 뇌리를 닦아 내고, 또 닦아 냈다.
그래도 한 가지, 기설을 떠나질 않는 짙은 생각이 하나 있었다. 교과서 위에 유성 매직으로 갈겨 적은 이름처럼,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그 문장은 ‘한천마의 곁에 남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설은 노력했다. 집중력을 끌어다 쓰며, 그의 옆자리에서 버틸 방법을 찾아내려 애썼다. 천마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 외출하는 날마다 그가 만나는 이들의 면면을 관찰했고,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어떤 미팅 현장에는 몇 명이 참여하는지 기억했고, 어떤 사장에게선 어떤 향수 냄새가 나는지 유의 깊게 향기를 맡았다.
특히나, 기설은 저처럼 제 상사를 따라붙은 비서들의 행동거지를 유의 깊게 바라봤다. 그들이 사장, 이사, 혹은 보스를 어떻게 보필하는지 지켜보고, 그것들을 최대한 제 것으로 익혀 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유달리 나아지는 점 따위는 없었다. 집중력을 써 댄 탓에 눈알이 저릿하고 밤이 되면 머리가 어지러울 뿐, 기설은 천마가 하는 일에 대해 여전히 조금도 이해하질 못했다. 전문적인 용어, 혹은 은어로 뒤범벅이 된 대화는 단 한마디조차 알아듣기 어려웠다.
한천마는 아주 바쁜 남자였다. 그는 약을 팔았고, 카지노를 운영했으며, 경찰과 거래하고 도시 구역을 관리하고 공장을 돌렸다. 그는 그만큼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제야 기설은 지나간 여름밤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자신이 누구인 것 같냐던 천마의 질문에, ‘보스’라는 호칭을 가져다 댄 자신이 바보 같았다. 단순히 깡패 조직의 보스라기에, 한천마는 너무나 다양한 직함을 가진 남자였다.
결국,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하고 기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섹스뿐이었다. 늦은 밤, 지친 기색으로 돌아온 한천마의 발밑으로 기설은 자진해서 다가갔다. 무릎으로 기어가 조심스럽게, 그의 허벅지 위에 턱을 올린 날이 있었다.
“…….”
피로감이 묻은 얼굴로 한천마가 아주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기설의 머리칼을 강아지 어르듯이 쓰다듬었다. 기설의 얼굴이 느릿하게 붉어졌다. 수치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설은 천천히 천마의 무릎에 입을 맞추었다. 정강이에 이마를 기대고, 그의 종아리를 두 손으로 주물렀다.
천마의 기다란 손가락이 기설의 검은 머리칼 사이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좀 다듬어야겠다.”
“네.”
“너무 짧게는 치지 말고.”
“네.”
눈을 감고, 기설은 그의 손길을 고분고분 받았다. 그러고는 마른 입술을 연신 핥으며, 천마의 바지 버클을 두 손으로 풀었다.
“…이자, 갚을게요.”
노력해 내뱉은 말 한마디를 끝으로, 침실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기설은 부드럽고 온화하던 공기가 칼바람에 살 에이듯 차가워진 것을 느꼈다. 당황한 얼굴로 올려다보기가 무섭게, 천마의 발이 기설의 어깨를 퍽 쳐 냈다.
기설은 그의 발치를 기던 자세 그대로 뒤로 나동그라졌다.
“오늘은 그다지 꼴리지가 않네.”
천마가 읊조렸다.
“…네?”
기설은 그 말에 몹시 당황했다. 동시에 그는 스스로의 변화를 강하게 느꼈다. 어느새 그는 저를 보고 내뱉는 ‘안 꼴린다’는 말에 충격을 받게 됐다.
“빚더미 빨리 갚고 끝내고픈가 본데, 아가야. 하나도 안 꼴린다고.”
매정한 목소리로 말을 마친 뒤, 한천마는 저리 꺼지라는 양 뒤로, 뒤로 손짓했다. 눈 주변에는 짙은 피로감이, 입가에는 짜증스러운 기운이 서린 채였다. 한 번 더 이자를 갚겠다느니 지껄이며 다가갔다간, 그때는 어깨가 아니라 얼굴을 걷어차일 것 같았다.
이제 기설은 우동 국물이나 소주 한 잔 따위의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야말로 수치심에 빨갛게 달아올라서,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을 떠났다.
한천마를 똑바로 볼 용기도 나지 않게 되어, 기설은 고양이 경의 방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기설은 어리둥절했다. 놀란 심장이 쿵, 쿵, 쿵, 쿵… 내달리는 속도가 도무지 느려지지 않았다. 잠투정을 부리는 경의 털을 빗겨 주고 부드러운 고양이를 품에 안아도, 푹신한 러그 위에 몸을 눕히고 높다란 천장을 올려다봐도, 도무지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세상이 망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는 울적했고 어째선지 외로웠으며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오늘은 이자를 갚지 않아도 된다니 잘된 일이었다. 해가 뜰 때까지 저를 침실로 불러들이지 않을 테니까 속 편하게 경과 함께 푹 잠들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런데 쿵쾅거리는 심장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두 눈을 감고서 기설은 거친 숨을 색색거렸다.
멍청해지기가, 둔해지기가, 바보처럼 전부 잊어버리기가 어려운 밤이었다.
***
‘문진주’는 신산시 카지노와 도박 랜드를 관리하는 바지 사장의 이름으로, 올해 들어 두 번째 개명해 아직은 당사자조차 친해지지 못한 이름이었다. 어차피 그를 ‘진주야’라고 다정다감하게 불러 줄 사람은 없고, 대다수 ‘문 사장’으로 통일된 호칭을 쓰기에 크게 상관은 없었다.
자신을 ‘진주야’ 하고 예쁜 이름으로 불러 주고 보석처럼 다뤄 줄 알파만 찾아 온 그의 나이도 벌써 서른다섯이었다. 오메가의 나이가 서른다섯이 된다는 건, 실수인 척 페로몬을 뿌리는 유혹도 더는 해 먹을 수 없고 히트 사이클을 기회 삼아 낯선 알파와의 섹스를 즐기는 찬스도 없게 되었단 의미였다.
그러잖아도 카지노 사장이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다가오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도박꾼, 깡패, 혹은 날건달이었다. 마지막으로 문진주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남자는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러 온 경찰이었다.
그래서 오늘, 문진주는 몹시도 오랜만에 한천마를 찾아왔다. 신산시 경찰들의 움직임이 근래 들어 심상치가 않았다. 난데없는 압수 수색으로 경찰들이 건져 낸 정보 따위는 없었고 문진주도 이틀간의 무의미한 심문 끝에 가뿐하게 풀려났지만, 그들만의 세상이던 카지노 안에 경찰이 드나들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위협이었다.
그래서 근황을 보고하고, 조언도 구하고자 찾아간 한 대표의 사무실이었다. 늘 그렇듯 넓은 창이 크리스털처럼 반짝이는 백색 빌딩 안으로 문진주는 빨려 들어가듯 움직였다. 그리고 5층으로 향하는 승강기 앞에서, 운명의 짝을 마주했다.
사실 ‘운명의 짝’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다소 무리한 면이 있었다. 그 운명을 느낀 이가 오로지 문진주뿐이고, 무심한 얼굴에 넓은 어깨, 예술가가 고심하여 깎아 내고는 부드러운 사포로 갈아 다듬은 듯 매력적인 콧부리를 지닌 남자는 그를 대신해서 5층 버튼을 눌러 준 게 전부였다.
“…아, 새로 온 경호 요원인가 보지?”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것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문진주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짙은 속눈썹이 매력적인 남자가 ‘으음’ 하고는 낮게 침음하는 소리를 냈다.
‘알파.’
문진주는 그렇게 확신했다.
‘…이 남자, 알파야.’
알파가 틀림없었다. 별다른 페로몬 향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색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게 베타 같지 않았다. 예민하게 숨을 들이쉬어 보니 우성 알파들이 체향을 숨기기 위해 자주 쓴다던 짙은 우디 향의 향수 냄새가 났다.
용기 내어, 문진주는 자신의 페로몬을 슬금슬금 풀었다.
“난 문 사장. 한 대표님 밑에서 일하는 거면, 자주 보게 되겠네요.”
“…아, 그러십니까?”
“으응.”
언뜻 보니 얼굴이 매우 어려 보이는 게, 오메가 경험이 적은 어린 알파이지 싶었다. 그렇다면 문진주에게도 승산이 있었다. 어린 알파들은 위험한 우성 오메가에게 매력을 느끼게 마련이었다. 취향이 덜 여문 탓에 남자고 여자고 성별을 따지지도 않았다.
“카드 게임 좋아해? 언제 한번 놀러 와요. 어디든지… 구경시켜 줄 수 있는데.”
제 체향을 충분히 풀어 냈다 싶은 순간, 문진주는 낯선 남자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오메가가 먼저 저에게 들이댈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키 큰 알파가 뻣뻣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봤다.
문진주의 손이 부드럽게 그의 손등을 어루만지다, 왼쪽 허벅다리를 향해 내려갔다.
‘…크다.’
허벅지를 어루만지며 유혹하는 말을 뱉으려 했을 뿐인데, 그의 물건에 직접 손이 닿고야 말았다. 내심 당황하며 문진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절망했다. 관심 있는 듯 얌전히 그의 말을 듣던 알파가, 대놓고 인상을 찌푸린 것이었다. 저는 페로몬을 충분히 풀었는데, 알파 쪽에서는 한 톨의 체향조차 뿜어내지 않았다. 다만 무심한 두 눈동자로 문진주를 깔보듯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 시선이 언뜻 저를 혐오하는 것처럼 느껴져, 문 사장의 볼은 붉게 달아올랐다.
천천히, 문진주는 맞붙였던 몸을 떼어 냈다.
“미안해요. 내가 뭘 착각했나 보네.”
각인 상대가 있거나, 일찍 결혼을 했거나…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문진주는 상대가 알파가 아니라는 가정은 해내지를 못했다. 그가 한천마 대표가 물고 빨며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는 것도, 오메가의 페로몬이 사타구니에 묻은 줄도 모른 채 천마를 만나러 성큼성큼 들어갈 베타라는 것도, 그 바람에 한천마가 드물게 분노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도.
“하하….”
사무실에 나란히 들어선 기설과 문진주를 바라보며, 한천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문진주는 눈치를 살피며 그를 따라 웃었지만, 기설은 원인을 모른 채로도 천마가 화난 상태임을 알아차렸다.
“문 사장, 발정기야?”
화살이 문진주에게로 날아가 꽂혔다.
“왜. 베타 좆 맛까지 보고 싶어서 그래?”
그렇게 질문하는 천마의 얼굴 위로 시커먼 그늘이 진 듯했다. 턱을 당겨 고개 숙인 채 오메가를 노려보는 두 눈동자에서 범상찮은 이채가 튀었다. 문진주는 영문 모를 분노를 피부로 느끼며 움찔 몸을 떨었다. 극우성 알파의 성난 페로몬이 발치부터 스멀스멀, 뱀처럼 기어올라 그를 옥죄는 듯했다.
“그래서 내 새끼 건드렸냐고 묻고 있잖아.”
내 새끼. 세 글자를 들은 순간에야 문진주는 자신이 무얼 착각했음을 빠르게 깨달았다. 기설의 몸에서 풍기던 알파를 닮은 색기, 우성 알파들이나 사용하던 짙은 우디 향의 향수 냄새, 제 손길이 닿자마자 놀란 듯 얼어붙던 몸짓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게 한천마가 새겨 놓은 흔적이었다.
“아, 아닙니다. 저는…, 제가 착각을 하고….”
안절부절못하며 문진주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허리 숙여 사과하는 문진주를 향해, 천마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명령했다.
“그래, 어디 해 봐.”
“예?”
문진주의 얼굴이 퍼뜩 위로 추켜 올라갔다. 제가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어리둥절한 채 천마를 바라보는 이는 그 혼자만은 아니었다.
“어디 좆 빠지게 빨아 보라고. 우리 기설이, 기분 좋게 해 줘 봐.”
바위처럼 떨어진 명령에 당황한 건 기설도 매한가지였다. 기설은 승강기에서부터 대뜸 제 성기를 문지르던 남자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좆이 빠지든 이가 빠지든 그에게 제 성기를 빨리고 싶지 않았다.
“저…, 형님.”
기설이 천마를 향해 애원하듯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전에 이창건이 그랬듯이, 한천마를 ‘형님’이 아닌 ‘대표님’으로 모시는 문진주는 얼른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고는 그의 분노가 더 커지기 전에 기설의 발 앞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
당황한 기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낯선 오메가를 내려다보았다. 문진주가 제아무리 이쁘장한 우성 오메가라고 해도, 기설에게는 처음 만난 남자일 뿐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가 제 바지 버클을 풀어 내리자, 기설은 거부 반응에 그의 손을 한 번 쳐 냈다.
“…아.”
이윽고 천마의 표정을 살폈다. 정장 셔츠 위로 울퉁불퉁한 팔뚝 근육이 두드러질 정도로 화가 난 채 천마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간 움찔거리다가, 기설은 천천히 두 손을 등 뒤로 감췄다. 그러자 문진주의 손이 기설의 흰색 드로어즈 안으로 들어왔다.
기설은 이를 꽉 악물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제 성기를 이리저리 어루만지는 감각에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마음 같아선 그를 밀쳐 내고만 싶었다. 힘이 세게 들어간 탓에 무릎이 저릿해졌다.
당황스러운 상태에서 기설의 성기가 쉽게 설 리 없었다. 큼직하게 잘빠진 성기가 드로어즈 안에서 그저 물렁물렁한 상태로만 머무르자, 문진주는 안달이 났다. 한 대표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내야 하는 것이 이 도시의 율법이었다. 제 입술을 내리 씹으며 갈등하다가, 문진주는 기설의 남성을 드로어즈 밖으로 빼냈다. 발기하지 않은 상태로도 기설의 성기는 제법 컸다.
‘이걸 누가 베타라고 생각을 해?’
억울한 마음을 꾹 삼키며 문진주는 기설의 것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쓸기 시작했다. 기설은 이제 달아나고 싶어졌다. 새빨개진 얼굴이 아래로 푹 수그러졌다. 억지로 발기시키자니 성기가 반쯤 서기는 했지만, 축축해지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쓸어 대는 손길 때문에 쓰라리기만 했다.
눈썹이 축 처진 채 기설은 애원하듯 천마를 한 번 살폈다. 그 순간 한천마의 입술 새로 붉은 혀끝이 빠져나왔다가, 마른 아랫입술을 훑으며 숨어 들어갔다. 기설의 물건으로 피가 확 쏠렸다.
“…윽, 헉….”
재차 고개를 푹 숙이며 기설은 귀를 붉혔다. 쓱, 쓱… 성기 기둥을 어루만지는 소리가 연거푸 이어졌다. 그러나 사정까지 도달하기엔 지나치게 삭막한 분위기였다. 이 어색하고 부끄러운 순간을 빨리 넘기고 싶어서라도 대충 싸고 끝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도무지 사정까지 도달할 수가 없었다.
기설이 절망스러운 만큼이나 문진주도 당황했다. 그는 열심히 기설의 귀두 끝에 손바닥을 대고 굴리듯 문질거렸다. 어지간한 알파들도 성기 끝, 요도를 중심으로 쓸어 주면 정액을 줄줄 싸기 마련인데, 베타라는 이 남자는 정력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딱딱하고 큰 성기를 곧추세운 채 꿈쩍조차 하질 않았다.
이내, 문진주는 천마의 명령을 떠올리며 기설의 것을 한 손으로 잡고 아래로 내렸다. 제 입을 크게 벌리고는 그의 것을 빨아 주고자 했다. 사내의 입에 제 것이 들어가는 꼴을 미처 눈 뜨고 볼 수 없어, 기설은 치욕스러운 감정을 못 이겨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퍽 소리가 났다. 놀란 눈을 번쩍 뜨자, 나무에서 떨어진 감처럼 구석에 나동그라진 문진주가 보였다. 세게 차인 충격으로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다리는 화난 알파를 향해 벌어진 채였다.
한천마의 발이 다시금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감히 어디에 입을 대려고….”
분노로 말끝을 흐리며 한천마가 긴 다리를 거세게 움직였다. 가차 없는 발길질에 문진주의 상체가 일시 허공에 떴다. 고통스러운 기침을 컥컥 뱉으며, 그는 연신 바닥을 기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어 성난 천마의 손아귀가 기설의 멱살을 잡아챘다. 반쯤 선 성기를 덜렁 내보인 채 기설은 그의 팔에 잡혀 질질 끌려갔다. 이내 그의 몸은 소파 팔걸이 위로 풀썩 넘어졌다. 두 발은 엉거주춤 바닥을 딛고, 상체는 소파 시트에 처박힌 모양새였다.
“우리 기설이는 씨발, 뒷구멍에 박아 주지 않으면 싸지도 못하거든. 그렇지?”
뒤이어 거센 통증과 이물감이 기설을 점령했다. 기설의 목에서 끅끅거리는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덩그러니 드러난 엉덩이 골 사이, 좁디좁은 구멍 안으로 한천마가 제 성난 물건을 쑤셔 박은 것이었다.
“허억, 억…!”
울룩불룩한 귀두를 지나 굵은 기둥까지 대번에 밀려들자, 기설이 오만상을 구겼다. 얼굴은 사과처럼 달아올랐고 전신이 삽시간에 땀에 젖었다.
“아! 하윽, 윽, 형님, 형님…!”
“이, 씨…발, 구멍이 아니면….”
찢어질 듯 뻑뻑하던 구멍 밖으로 체액이 주룩 흘러나왔다. 한천마의 성기에서 뿜어져 나온 프리컴이었다. 물처럼 허벅다리를 타고 흐르는 맑은 액은 이내 찌걱거리는 소음을 자아냈다.
“대답해.”
천마가 낮게 명령했다. 그가 앞으로, 앞으로 거듭 성기를 밀어 박자 기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아윽! 네, …네! 마, 맞아요, 맞아요…. 윽, 으읏….”
“하아, 으음.”
고통스러운 듯 씩씩거리던 기설의 숨결이 삽시간에 질척해졌다. 성감으로 끓어오르는 더운 숨을 헐떡헐떡 뱉으며, 기설은 열 손가락으로 소파 쿠션을 움켜쥐고 끌어안았다.
“아, …흑, 아, 아아!”
필사적으로 성감을 견뎌 내는 기설의 몸을, 한천마는 쉽게 다뤘다. 굵다란 성기를 완전히 빼냈다가, 빠끔거리며 벌어진 뒷구멍이 완전히 다물리기도 전에 도로 박아 넣었다.
“아응!”
대번에 밀려든 성기에 속이 콱콱 짓눌렸다. 기설의 몸이 파르르 경련했다. 전신을 달달 떨며 옹송그렸다. 두 발이 허공에 뜨고 발가락이 꽉 말리듯 안으로 굽었다.
한천마가 가차 없이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기설의 벌어진 볼기에 그의 앞섶이 거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접합부에서 삐져나온 물이 철벅철벅 사방으로 튀다 못해, 한천마의 상의 셔츠마저 더럽힐 정도였다.
“하아, 하… 아, 아, 앗…!”
기설은 소파 시트 위에 뺨이 쓸리도록 거칠게 미끄러졌다. 엉덩이만 위로 들린 채 처박힌 꼴이었다. 그의 등허리 위를, 한천마의 손톱이 길게 긁어내렸다.
“신음, 이, 아가…, 빠구리를 칠 때마다 달달해지는데.”
“으, 으응, 으응…!”
“이거 봐, 이게 남자구실 하는 새끼 몸이야?”
연이은 자극을 이겨 내지 못하고 기설이 부르르 경련했다. 체액으로 질척해진 성기 끝에서, 진한 정액이 울컥 튀어나왔다. 붉은빛으로 달아오른 물건이 거듭 꺼덕거리며 허연 액체를 뱉어 냈다.
“흐으…, 으….”
기설은 최선을 다해 도리질을 쳤다. 배가 부를 지경으로 밀려드는 한천마의 성기는 위협적이었고, 거센 성감은 좋은 단계를 넘어서서 두렵기까지 했다.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남자구실도 모, 못 해요….”
천마의 화를 식혀 보려 기설은 허둥지둥 그의 말에 순응했다. 사실상 맞는 말이었다. 오메가가 수십 번을 문질러도 서질 않던 물건이, 뒤로 알파를 받아 내는 순간 정액을 홍수처럼 흘리고 있었다.
“그래. 그리고?”
질문을 툭 뱉듯이 던지며 천마가 재차 성기를 깊이 쑤셔 박았다. 작고 탄탄한 엉덩이 살이 그의 앞섶에 기분 좋게 뭉개졌다.
‘끅….’ 목 끓는 소리를 내며 기설은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그의 뒷구멍이 절로 수축하며 천마의 성기를 꽉 앙다물었다. 내벽이 우물우물 성기를 죄는 감각에 천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그리고….”
하얗게 비어 버린 머리로 기설은 대답을 꾸려 내려 애썼다. 조금 전 천마가 저를 무어라 불렀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능욕했는지 기억해 내고 그 말을 따라 뱉고 싶었다. 그러나 온 신경이 배 속을 콱콱 들쑤시는 감각에 집중되어, 도통 들은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흐, 흐으….”
부르르 경련하며 성감에 몸서리치는 기설을 내려다보며, 천마는 질척해진 자신의 셔츠 단추를 뜯어내듯 풀어냈다. 땀에 젖어 피부 위에 들러붙은 셔츠가 진공 포장지처럼 떨어져 나간 살갗 위로, 근육과 핏줄이 꿈틀꿈틀 움직거렸다. 열 오른 등을 찬 공기가 식히고, 성기를 박아 넣은 구멍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는 온도가 미칠 듯이 좋았다.
천마가 말했다.
“기설아. 네 입으로 말해 봐, 네 꼴이 지금 어떤지.”
그럴 적에 한천마는 대단한 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제 페로몬에 절어 있어야 할 베타가 오메가의 흔적을 몸에 달고 들어올 적엔, 이 아둔한 남자에게는 아무런 의도가 없다는 걸 진작 알았다. 관계를 마친 다음 날에는 제 몸에서 극우성 알파의 향이 진동한다는 것도 새하얗게 모르는 기설이었다. 가랑이에 오메가 냄새가 묻은 줄 알았더라면 몹시 당황하며 팬티를 벗어 던지고도 남을 놈이었다.
그러니 오늘 천마의 분노는 기설을 향한 투정이었고 문진주를 향한 경고였다. 너는 내 사람이니 아무 손길이나 허락하지 말아 달라는 투정, 이 베타는 내 것이니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라는 경고.
“…차, 창놈 새끼요.”
그런데 기설의 입에서 영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뭐?”
드물게도 천마는 그의 말에 두 눈을 끔벅거렸다. 얼빠진 사람처럼 멍해져서는, 기설의 엉덩이를 움켜쥔 채 동작을 멈췄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침묵에 당황한 건 기설도 매한가지였다. 이전에 들었던 말이 불현듯 떠올라 그대로 전해 줬을 뿐인데, 천마가 ‘그래’ 하고 넘어가 주지 않으니 곤혹스러웠다.
‘이게 아닌가…?’
머뭇거리며 기설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천천히 고개를 틀자, 굳은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는 한천마가 보였다. 성욕으로 펄펄 끓던 눈동자에 이상한 빛이 서려 있었다. 기설은 조금 더 구체적인 답을 내놓았다.
“저는…, 빠구리 쿠폰에 도장 찍는… 창놈 새끼예요.”
“허!”
황당하다는 양 천마가 큰 숨을 뱉었다. 그러고는 기설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홱 밀었다. 벌겋게 맞은 자국을 단 엉덩이가 풀썩 소파 위로 미끄러지며 구멍에 박혔던 성기가 쑥 빠졌다. 부어오른 뒤에서 질척한 체액이 삐져나와 허벅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너… 뭘 그렇게 심한 말을 하고 그래.”
속삭이는 천마의 목소리가 서운한 듯, 놀란 듯했다. 기설은 어리둥절한 채 ‘아’ 하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탄성을 뱉었다.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얼얼한 뒷구멍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소파 위에 가로로 엎어진 채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기설은 천마의 상태를 염려했다. 바지를 벗겨 박아 놓고는 싸지도 않고 그만두는 건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뭐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상체를 일으켜 기설은 천마의 앞으로 기듯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성기를 두 손으로 쥐고 쓸어 주기 시작했다.
“…후우.”
딸을 쳐 주겠다고 꾸물꾸물 다가오는 손길을 받으며, 천마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기설은 멍청하고도 귀여웠다. 조막만 한 머리통은 잘생긴 눈, 코, 입으로 채워져 과포화 상태였다. 껍데기만 번지르르하지 알맹이엔 든 게 없다는 소리였다. ‘창놈’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설이 그 주제에 혼자 쿠폰이니 도장이니 하는 말을 떠올렸을 리 없었다.
계약서에 지장 찍고 한집에 살게 된 지가 언젠데, 한천마를 둘러싼 부하 중 그 누구도 천마를 ‘형님’이라 부르지 않는 줄도 모르는 기설이었다. 형님, 형님 부르면서 저 혼자 깍두기 놀이 중이란 걸 언제쯤 알아챌까 궁금할 정도였다.
“기설아….”
불그스름한 귀두 끝을 기설의 입술 앞에 가져다 대며, 천마가 말했다.
“누가 너한테 그런 못된 소리를 했니.”
“…….”
“응? 누가 그랬어, 아가?”
기설은 말이 없었다. 머뭇거리다 입을 열고, 천마의 귀두 끝을 제 입술에 담을 뿐이었다. 제 뒷구멍을 드나들어 뜨거워진 좆 기둥을 애써 할짝대는 꼴이 보기엔 좋고 속으론 답답했다. 한천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니까 괜찮습니다.”
기설은 굵직하니 성난 성기의 기둥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더니 부드럽게 쓸었다. 고양이를 달래는 듯 부드럽고 다정한 손길이었다.
“그게 아니면… 제가 뭡니까?”
그러고는 두 눈을 내리깔았다. 촘촘하게 박힌 검은 속눈썹이 아래로 축 처졌다.
“…형님한테 제가 뭐예요?”
그대로, 한천마가 기설에게서 떨어졌다. 그는 바지만 대충 추려 입고 상체는 벌거벗은 채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기설은 몹시 당황했다.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멀어져 가는 천마를, 기설은 저도 모르게 뒤쫓았다.
허둥지둥 바지를 추켜 입으며 뛰어나갔다가, 기설은 복도 중앙에 선 천마의 뒷모습을 올려다봤다. 두 갈래로 쩍 벌어진 등줄기 근육이 오늘따라 성나 보였다. 흉통이 크게 부풀었다가 꺼질 때마다 숨이 아닌 불이 뱉어져 나오는 듯했다.
복도에는 늘 그렇듯 강명경과 그의 부하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무얼 찾으시냐고 말하고자, 강명경이 입을 열었다. 그가 한 발짝 다가온 순간 천마의 손이 그의 왼쪽 귀를 빠르게 낚아챘다. 거대한 남자의 몸이 놀라울 정도로 손쉽게 한천마의 손아귀 힘에 비틀거리며 끌려왔다.
한천마의 손은 순식간에 움직였다. 그는 강명경의 재킷 안에 왼손을 집어넣더니, 늘상 같은 자리에 품고 다니는 잭나이프를 꺼내어 펼쳤다. 그러고는 명경의 귓불 아래로 칼날을 쑤셔 넣어 위로 빼냈다. 말릴 새도 없이 수 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명경의 몸이 한천마의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는 두어 걸음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자신의 귀를 감싸 쥔 채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얼굴은 취한 사람처럼 붉어졌고 귀를 막은 손 틈새로 그보다 더 선명한 빨간 액체가 쏟아지듯 흘러나왔다.
천마가 툭, 그의 다리 앞에 집게 손에 쥔 것을 던졌다. 반달 모양 살덩어리가 돌멩이 구르듯이 바닥에 떨어졌다. 핏기가 빠져나간 귀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하얘졌다.
“…….”
목과 셔츠 깃이 시뻘겋게 물든 채 명경은 신음을 참았다. 턱에 예리한 각이 지고 입술 새로 신음성 대신 침이 흘렀다. 이내 그는 피 흐르는 귓구멍에서 손을 떼어 냈다.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을 제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리고는, 공손히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모두 다… 제 불찰입니다. 화 푸십시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기설은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한천마의 뒷모습은 흉포하면서 우아했다. 이제 기설은 천마라는 남자를 무어라 설명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귀를 잘린 건 강명경인데, 볼살이 흔들리도록 바르르 몸을 떠는 건 기설이었다. 천마가 휙 등을 돌려 기설을 돌아보았다. 손안에 쥔 잭나이프가 반 바퀴를 돌았다. 칼날은 바닥을 향했고 손잡이는 기설을 향했다.
기설은 떨리는 입술을 꾹 다물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 뒷짐을 지며 감추려던 기설의 손을, 천마가 낚아채듯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빳빳하게 굳은 손가락에 잭나이프의 손잡이를 쥐여 주었다.
“질문에 답이 됐어?”
한천마가 물었다. 기설은 입술을 다문 채 머뭇거렸다. 그러자 정수리 위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속아, 기설이 얼른 시선을 올렸다. 그러나 천마는 웃고 있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시커먼 두 눈동자로 기설을 옭아매고 있을 따름이었다.
기설이 도로 고개를 숙이려 할 때, 한천마의 빈손이 기설의 턱을 움켜쥐었다. 큼직한 손바닥에 턱이 잡히고 기다란 손가락에 양 볼이 콱 눌렸다. 떨리는 입술이 절로 벌어진 채 기설은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혀를 내밀어, 천마는 기설의 아랫입술부터 윗입술까지 직선을 그리듯 한 번에 핥아 올렸다. 그리고 깊이 입을 맞췄다.
그 순간 기설은 자신의 손가락이 아주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다섯 번이 아니라, 더 많이, 어쩌면 셈하는 데에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이… 제 기대보다 훨씬 많은 횟수 내내, 한천마가 저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란 걸.
그 사실이 못내 기뻤다.
한천마와 처음으로 입을 맞췄다는 사실을 깨달은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