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저택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며 잠을 자고, 뜨는 해를 보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서로에게서 같은 향이 배어 나왔고, 잠이 들기 전 승원이 그의 허리를 껴안을 때면 그에게서만 나던 체취가 저의 냄새와 함께 섞여 아른거렸다.
느지막이 잠에서 깬 승원이 기지개를 폈다. 리모컨을 누르자 암막 커튼이 무대처럼 차르륵 벌어졌다. 새하얀 빛이 한 움큼 침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온기가 남아 있지 않은 옆자리에 코를 파묻고 있다가 하품을 마치고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양치를 마친 승원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그의 서재였다. 계단을 내려와 물을 한 잔 마신 승원이 바로 보이는 그의 서재로 달려갔다. 문을 가볍게 두드리자 ‘들어와요.’라며 부드러운 음성이 새어 나왔다.
“일어났습니까.”
“오늘도 바쁘세요?”
“몇 가지만 확인하면 끝납니다.”
요 며칠 간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일정이 많이 바빴다. 대표나 되는 자리에 앉아서도 저렇게 의자에 붙어 업무를 확인해야 한다니. 높은 자리일수록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구나 싶었다. 그가 일하는 동안 승원은 혼자 피아노를 쳐 보기도 하고, 바깥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러다 더 심심한 때가 오면 그의 서재 근처를 기웃거렸다가 방해가 될까 다시 나와 게임기를 만졌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밖으로 나가도 자신은 지금 당장 할 일이 없었으며 그런 시간을 가졌던 승원은 항상 무료하게 집 안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에. 좁은 집 안에 홀로 남겨져 있는 것보다 이런 탁 트인 공간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백배는 더 나았다.
“대표님.”
“응.”
그가 서류 같은 것을 확인하며 대충 대답했다.
“그럼 일 다 끝나면 몇 시쯤이세요?”
서류에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문고리를 잡고 있는 승원에게로 올라왔다. 문틈 사이로 빼꼼 튀어나온 얼굴이 조막만 했다. 그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심심한가 보지?”
“……조금.”
“다 했습니다. 10분 안으로 끝낼 테니까 옷 입고 기다려요.”
“어디 가게요?”
“그냥 이 주변 같이 걷지.”
“……아.”
승원이 돌아다닌 주변은 기껏해야 집을 둘러싼 연못이나 그네 정도였다. 그 이상은 자신이 가도 될지 확실치 않았고 그 없이 혼자 가고 싶지도 않았기에 항상 미뤄 왔었던 곳이었다. 훅 부푼 마음에 승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계단 위로 올라갔다. 계단 소리가 탁탁탁, 나는 것을 들으며 권 대표는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슬리퍼 신고 가도 될까요?”
“저 멀리까지 걸어 볼 생각인데. 상관은 없지만 운동화가 나을 겁니다.”
얇은 남색 니트 차림에 베이지색 바지를 걸쳐 입은 권 대표의 머리가 수수하게 내려와 있었다. 물기 없는 얼굴이 하얗고 매끄러웠다. 승원이 신발을 신는 모습을 등을 기댄 채 구경하고 있던 그가 먼저 문을 열었다. 미리 확인했던 날씨보다도 더 맑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자.”
뒤늦게 오는 승원에게 그가 손을 내밀었다. 승원이 손을 잡자 그가 남은 손으로 승원의 옷깃을 정리했다. 뒤쪽도 꼼꼼히 살피다 승원의 헝클어진 머리를 가볍게 쓸어 냈다.
“칠칠맞지 못하기는.”
“……대표님이 너무 꼼꼼하신 거일 수도 있어요.”
웃음을 지은 권 대표가 승원의 손을 잡은 채 걷기 시작했다. 길게 깔린 인도 주변에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그 위의 그네와 연못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에는 찍소리도 못하더니.”
“…….”
“내가 많이 편해지긴 했나 봅니다.”
“……그런 건-.”
“더 해 봐요. 기어오르기. 재밌네.”
다그치기보다는 정말로 재밌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승원은 뒤늦게 그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연못으로 눈을 돌렸다.
“대표님, 저기 원래 물고기 살았었죠.”
“그렇지.”
“지금은 없더라고요.”
“데려올까?”
“금붕어 같은 아이들 풀어놓으면 잘 살 거 같아요.”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조금 걸어 분수대 주위를 둘러 지난 둘이 다시 잔디밭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끝없는 푸른 자연의 향연이었다.
“물고기 좋아합니까?”
“……먹는 거요?”
권 대표가 눈을 약간 흘기며 승원을 힐끗 보았다.
“지금까지 나한테 말장난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습니까.”
승원은 희미하게 웃다 입을 열었다.
“좋아해요.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들. 저는 수영을 잘 못 해서, 물고기 보면 가끔 부러워요.”
“그래서 물고기가 되고 싶습니까?”
장난스러운 그의 물음에 승원이 몸을 뒤로 슬쩍 뺐다.
“……그건 아니고.”
“다음에 수족관 갈까?”
“수족관 저 가 본 적 없어요.”
“일정만 말해요. 미리 빌려 둘 테니까.”
그가 하는 말에 그냥은 없었다. 승원은 조만간 일정을 정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드라마 같은 곳에서 푸르른 수족관을 배경으로 낭만적인 데이트를 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남색 수조 안에 들어가 그와 입을 맞추는 상상을 했다. 주먹이 꼭 쥐어질 만큼 두근거렸다.
조금 더 걷던 권 대표가 갑작스레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승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봤다. 새하얀 햇살에 비친 그의 얼굴 반쪽이 환했다.
“왜요?”
“옛날 생각이 나서.”
“……뭔지 여쭤봐도 돼요?”
“아주 어렸을 때, 물에서 움직이는 물고기가 너무 신기해서 한참 동안 그걸 보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만 보라고 말릴 때까지 봤으니까 말 다했지.”
“…….”
“그렇게 고집을 피우면서 계속 거기 쪼그려 앉아서 물고기를 봤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압니까?”
“……뭔데요?”
알 거 같기도 했지만 승원은 그의 말을 대신 듣기로 했다.
“어린 눈에 그 금빛 물고기랑 살랑이는 지느러미가 너무 예뻐 보였습니다. 그걸 갖고 싶어서 손을 뻗어 잡고 싶은데, 손을 넣으려 하면 물고기가 도망가고, 또 잡으려 하면 도망을 가 버려서.”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먹이를 뿌리고 그걸 먹는 틈에 손을 뻗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미끄러운 몸을 제대로 잡아 보지도 못하고 연못에 빠져 버렸고.”
“…….”
“결국 온몸은 다 젖고, 그 안에 들어가 울고 있는데, 그제야 물고기들이 내 손과 옆구리를 콕콕대며 찔렀습니다. 기분은 잡칠 때로 잡쳤으니 그것들을 만지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손에 닿는 그 감촉이 너무 이상해서 한동안 물에 사는 지느러미가 있는 것들을 무서워했습니다.”
숨을 느긋하게 쉬며 이야기하는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승원은 그의 손등을 조물조물 만지며 그를 바라봤다.
“내 지랄맞은 성격은 그 어리던 나이에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
“원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든 가져야 했고, 겁이 나는 것들을 마주치면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가 차올라서 주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주변에는 푸르른 잔디밭만이 남아 있었다. 드넓은 골프장을 연상시키는 빡빡하게 솟은 잔디가 신발을 바닥을 톡톡 찌르는 듯했다. 나무도 없어 햇살만이 내리쬐는 공간을 둘이 함께 걸었다. 그야말로 목적 없는 산책이었다.
“윤승원 씨가 갖고 싶었고, 그래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누군가를 원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병신같이 그걸 외면해 왔고.”
“…….”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지나 다다른 곳은 깊은 웅덩이 같은 호수였다. 물이 많이 차 있는 거 같진 않았지만 웅덩이의 크기만큼은 작은 배 한 척을 띄워도 될 정도로 커다랬다. 그곳을 앞서서 지나치려는 권 대표의 손을 승원이 당겼다. 그가 승원을 향해 뒤돌아봤다.
“달라요.”
“…….”
“대표님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가 승원에게 완전히 돌아서 비스듬히 웃었다.
“위로 같은 걸 바라고 한 말은 아닌데.”
“대표님 성격이 어릴 적 그때와 같았으면, 저 대표님 옆에 안 있었을 거예요.”
“…….”
“지금처럼만 있어 줘요. 다 좋으니까.”
뭔가에 이끌리듯 승원은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가득 끌어안았다. 더운 공기에도 그의 몸은 자신보다 차가웠다. 뒤늦게 승원의 등 위로 손이 올라왔다. 정수리 위로 턱이 얹어졌다.
“이대로 저기 확 빠져 버리고 싶네.”
낮은 음성이 승원의 머리를 타고 귓가에 닿았다. 승원은 바로 옆에 있는 호수로 눈을 살짝 돌렸다. 지느러미가 가득한 것들이 살아 움직일 거 같은 웅덩이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하얀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것임을 아는데도, 그 영롱함에 이끌려 그와 함께 저 위로 풍덩 뛰어들고 싶었다.
“지금의 내가 좋습니까.”
속삭임이 닿았다. 승원은 똑같이 속삭였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순간 볼이 잡혔다. 밝은 햇살에 반사된 그의 얼굴이 잠깐 보이는가 싶더니 가까이 들어왔다. 입술이 쪽, 닿았다.
“계속 좋아하세요.”
“…….”
“닳아 없어질 때까지.”
* * *
나중에 들은 사실이었는데, 끝도 없어 보이는 이곳의 널찍한 잔디밭은 원래 권 대표의 아버지가 골프를 하기 위해 쓰시던 공간이라고 했다. 승원은 그제야 까칠하고 짧아 보이는 잔디의 길이가 이해됐다. 그의 아버지가 이곳을 즐겨 쓰시던 곳이라면, 아마 지금쯤 잡초처럼 자라 있어야 정상일 텐데, 한번 정리를 한 모양인지 모두 반듯하게 깎여 있었다.
권 대표는 호수처럼 보이는 물웅덩이 주위로 가 납작한 돌을 몇 개 골랐다. 많지 않게 다섯 개 정도만 쥐고 돌아온 그가 승원을 보며 입꼬리에 호선을 그렸다. 그가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 돌을 던지자 퐁, 퐁, 퐁, 얇은 포물선을 그리며 돌이 물을 걸어 날아갔다. 승원은 그를 따라 남은 돌을 똑같은 방식으로 던졌다. 그가 던졌을 땐 최소 여섯 번은 튕겼는데, 승원의 손에서 날아간 돌은 세 번을 다 넘기지 못하고 물속으로 풍덩 빠져 버렸다. 마지막에 아무렇게나 주워 짜증 내듯 집어 던진 돌이 얼떨결에 다섯이나 날았을 때, 권 대표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느지막하게 나와 천천히 산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가벼운 놀이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뜨거운 햇살이 물러서고 미지근한 어둠이 내려왔다. 다시 돌아가는 길에도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드넓은 저택이 무서울 법도 한데, 권 대표의 손을 꽉 쥐고 있는 이상 승원은 그저 즐겁기만 했다.
“저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뭔데.”
손을 흔들거리며 말하는 승원의 말에 권 대표가 차분히 물었다.
“대표님 밥 먹이고 싶어요.”
“나를?”
“맨날 저 챙겨 주시니까. 저도 대표님 챙겨 주고 싶어요.”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어련히 잘 챙겨 먹는 사람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제가 그러고 싶어요.”
작은 고집을 부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승원은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에 걸음이 빨라졌다. 어느새 권 대표의 손을 놓고 자신이 먼저 신발을 벗고 들어섰다. 그가 뒤따라오며 중얼거렸다.
“냉장고 그렇게 채워 달라던 이유가 있었네.”
먹고 싶은 걸 말하라는 그의 말에 승원은 꼼꼼히 메모를 해서 그에게 제출했다. 전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끼니를 챙겨 먹는 편이 아닌 승원이 이렇게 많은 음식들을, 그것도 음식을 만들 준비 재료들을 적어 놓은 것을 보고 권 대표는 의아한 눈빛을 했었다. 그렇다고 잘 챙겨 먹는 것이 못마땅할 일은 아니었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그였다.
“산책도 했으니까 대표님은 좀 쉬고 계세요.”
“뭐 하려고.”
그가 부엌으로 가려는 승원의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저녁 먹어야 되니까.”
“음식 할 줄은 압니까.”
“요즘은 인터넷에 치면 다 나와요.”
“레시피를 아는 거랑 요리에 솜씨가 있는 건 다른 문제일 텐데.”
잠시 말이 없던 승원이 제 배에 붙어 있는 권 대표의 팔을 슬쩍 떼어 냈다. 그를 밀어낸 승원이 다이닝 룸으로 발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손재주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결국 권 대표가 먼저 웃음을 흘렸다. 승원에게 금방 다가가 머리 위를 쓸어 만지며 지나갔다.
“그럼 올라가 있을 테니까, 뭐라도 해 봐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기대까지 하는 건 부담이 조금 컸다. 그래도 승원은 가만히 그의 손길을 받다가 2층 계단으로 올라서는 긴 다리를 바라봤다. 그가 걸어 올라가는 소리를 듣고, 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듣고 나서야 팔을 걷어붙이고 앞치마를 찾았다. 일단 냉장고를 열어 뭐가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조개를 손질해 넣은 파스타를 만들 생각이었다. 등 뒤로 앞치마 끈을 대충 묶은 승원이 손부터 깨끗하게 씻었다. 재료들을 펼쳐 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핸드폰을 뒤적이며 미리 저장해 뒀던 이런저런 레시피들을 확인해 보다가 재료가 알맞게 있는지 다시 확인도 했다. 혹시 시간이 남게 되면 필리프도 함께 만들어야겠다고 계획했다.
생각보다 순탄히 단계를 밟아 갔다. 준비하라는 대로 재료를 챙기고, 인터넷에 써 있는 그대로 양을 계량해 칼질을 하고 불에 볶았다. 물이 끓자 면을 삶았다. 그러는 동안 미리 익혀 놓고 있던 야채들이 팬에서 노릇노릇 익어 갔다. 혼자 있을 땐 뭘 해 먹는 일이 거의 없어서 몰랐는데, 그를 앉혀 놓고 그의 입에 들어갈 음식들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이 순간마저도 즐거웠다.
“좋은 냄새가 나는데.”
한창 음식 하는 데에 빠져 있던 승원은 그가 안으로 들어온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귀 뒤에서 나는 목소리에 어깨를 한 번 움츠렸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코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권 대표가 승원의 볼에 입을 가볍게 맞췄다. 그는 고개를 슥 내밀어 승원이 하고 있는 음식을 바라봤다. 커다란 주걱을 들고 있던 승원이 그의 배를 밀어냈다.
“가세요.”
“왜.”
“보면 재미없잖아요.”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기도 했고, 그가 보고 있으면 어쩐지 제대로 된 솜씨를 발휘하기 힘들 거 같기도 했다. 승원이 그를 밀어냈음에도 권 대표는 뒤로 물러나는 척하면서 꿋꿋이 다시 승원에게로 붙어 왔다. 어찌할 방법을 몰라 가만히 서 있던 승원이 목을 바짝 세웠다. 귓불이 따끔했다.
“……아-.”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겁니까.”
승원의 귓불을 콱 깨물며 그가 중얼거렸다. 부드러운 살결이 이에 짓눌려 간지러웠다. 배로 손이 다가왔다. 앞치마를 들춘 커다란 손바닥이 티 안쪽까지 범접해 살갗을 쓰다듬었다.
“파스타인가.”
“흐, 맞아요.”
“먹음직스럽네.”
“아직 아무것도…… 읏.”
“난 이쪽이 더 먹고 싶은데.”
“……대표님, 잠깐-!”
엉덩이의 곡진한 선을 타고 바지가 휙 내려갔다. 엉덩이 밑까지 승원의 바지를 내려 버린 권 대표가 속옷을 벗기고 곧장 엉덩이 살을 쓰다듬었다. 주걱을 들고 있던 승원의 손이 순간 떨렸다. 한 손으로 콱 쥐고 흔들던 그가 열이 날 때까지 그곳을 쓸어 만졌다.
“왜, 하으…… 갑자기 여기서.”
“싫습니까.”
“저녁은 먹, 고…….”
“너잖아. 내 저녁.”
“……자꾸 방해하고 그러시면.”
“윤승원 씨야말로 그런 꼴로 무방비하게 있으면 어떡합니까.”
말이 통하지 않았다. 커다란 몸을 승원에게 기대어 굳힌 그는 더 물러나지 않았다. 승원이 주걱을 내려놓고 선반을 붙잡았다. 엄지를 위로 들어 잡은 후 빠듯하게 기대어 있는 사이, 권 대표는 잠시 승원에 골에 있던 손을 빼서 손바닥을 뒤집었다. 침을 툭 뱉어 눅진해진 손을 골 사이로 다시 쑤셔 넣었다.
“아, 하으…….”
“여기도 부드럽네.”
승원의 구멍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가운뎃손가락으로 승원의 주름을 간지럽게 매만지던 그가 내벽으로 손가락을 쑥 넣었다. 승원은 끙끙 앓았다. 길고 얇은 손가락의 이물감이 엉덩이 안쪽에서부터 시작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자꾸만 엉덩이가 뒤로 빠지며 몸 구석구석에 소름이 돋았다.
“흐, 으…… 대표님…….”
“어디를 만져 줄까.”
“하아…….”
“여기?”
그가 내벽 한 부분을 지그시 눌렀다. 승원의 입에서 반사적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읏, 흐응.”
“여기도 괜찮던데.”
“하, 으읏…… 대표님…….”
“너 지금 엄청 야해.”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 들어왔다. 달팽이관을 지나 그의 음색이 승원의 몸 안 이곳저곳에 퍼져 나갔다. 둥글게 돌리며 내벽을 눌렀다가 입구 끝까지 빼고는 다시 푹 찔러 넣기도 했다. 간지럼을 태우듯 주변을 살살 건들자 승원의 허리가 비틀대며 휘었다. 선반을 잡은 손이 파들거렸다.
승원의 턱을 잡아 반대쪽으로 돌려 자신을 보게 한 권 대표가 입을 쪽 맞췄다. 짧고 간단한 입맞춤이었다. 살이 오른 엉덩이를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그가 승원의 입술을 감쌌다. 눈을 감는 권 대표를 따라 승원 역시 눈을 감았다.
“하읍, 으응…….”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혀가 승원의 입술 근처에서 서로 얽히고설켰다. 뒤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자세가 불편하긴 했지만 맞닿아 있는 입술의 감촉, 타액이 뒤섞여 축축해진 입 안과 그의 달콤한 숨결까지 더해지며 그마저도 잊고 말았다. 그의 힘에 승원이 앞으로 바짝 붙어 섰다. 선반을 손으로 누르며 지탱하고 있는 손가락이 점차 힘을 잃고 떨고 있었다. 긴 시간 이어지던 키스를 멈춘 권 대표가 승원을 번쩍 안아 들었다.
“위험하니 식탁으로 갑시다.”
넓은 아일랜드 식탁 위에 승원을 앉힌 그가 승원의 두 무릎을 잡아 벌렸다. 정신이 번쩍 든 승원이 급하게 소리쳤다.
“……뭐, 뭐 하시게요!”
“빨고 싶어서.”
“저 씻지도 않았고, 지금 당장 하면…….”
“말이 많네.”
두 다리가 엠 자 모양으로 쩍 벌어졌다. 위로 꼿꼿이 선 성기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권 대표가 발목에 걸려 있던 옷들을 전부 끌어 내려 벗겼다. 하체를 조금 자신에게로 당기자 승원의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손으로 바닥을 지탱한 승원의 다리 사이가 아까보다 더 자세히 보였다. 상체와 함께 뒤로 넘어간 성기 밑으로 주름진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방금 쑤셔 놔서 불편하진 않을 겁니다.”
“……흐.”
승원이 손을 들어 제 입을 막았다. 이마 끝까지 발그레해진 얼굴이 눈을 질끈 감았다. 승원의 허벅지 안쪽을 움켜잡은 권 대표가 혀를 내밀어 뒤에 가져다 댔다.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살랑거리는 축축한 움직임에 몸이 제멋대로 튕겼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가 승원의 성기 밑동을 그러쥐었다. 얄팍한 시야로 확인한 권 대표의 눈에 색기가 피어올랐다. 고환을 잡았다가 그것을 혀로 굴리듯 핥았다. 성기 기둥을 길게 쓸어 올린 그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두 손으로 주름진 입구를 벌린 후 새까맣게 뚫린 안쪽을 그가 혀로 쑤셨다. 피스톤질을 하듯 긴 혀를 넣었다 뺐다 하며 움직였다. 승원의 발끝이 잔뜩 오므라졌다.
“흣! 으응, 으으.”
뜨겁게 달궈진 안을 맛보면서 권 대표는 표정 한 번 바꾸지 않았다. 승원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름에 몸을 들썩이고 다리에 힘껏 힘을 주었다. 그 안을 관찰하려는 듯 입구를 파헤치다 다시 혀를 넣었고, 그러다 손가락을 들어 내벽을 쑤셨다. 미끈미끈한 것이 안을 돌며 축축하게 젖어 갔다.
“좋아, 싫어.”
강압적인 목소리가 긍정을 원하고 있었다. 손등으로 입을 막은 승원이 끙끙대는 신음과 함께 대답했다.
“흐, 좋아…… 좋아요…… 흣.”
배 밑부분이 스프링처럼 튀었다. 식탁 위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움직이는 행위에 권 대표가 욕을 작게 읊조렸다. 머리를 헝클인 그가 손을 들어 옷을 벗었다. 속옷과 함께 잡은 바지를 한 번에 내리자 거대하게 부풀어 힘줄이 울긋불긋한 성기가 나타났다.
“좋긴 뭐가 좋습니까.”
“…….”
“손가락 가지고는 만족 못 하잖아, 이제.”
승원은 머리를 위로 젖혀둔 채 밭은 호흡만 끊임없이 내뱉었다.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핑거링 정도는 권 대표처럼 자신의 몸에 감이 있는 사람이기에 좋았던 거고, 자신이 혼자 뒤를 쑤실 땐 찝찝한 아쉬움뿐이었다. 그를 만나고 욕심이 커졌다. 승원은 당장 그의 것을 제 몸 안에 넣고 싶었다.
“그럼…… 빨리 쑤셔 주세요.”
“뭐?”
그가 코웃음을 치며 승원을 바라보았다. 어이가 없는 듯 보이는 그의 얼굴에 미지근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식탁까지 올라와서 이 지경으로 있느니 그냥 전부 다 해 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승원이었다. 승원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직각으로 솟아오른 성기가 위협적이었다.
“지금 쑤셔 달라고 했습니까.”
“……빨리…….”
“내려와.”
승원은 흠칫 눈을 들었다. 평소 쓰지 않는 말을 써서, 거기다 조금 상스러운 단어 선택 때문에 그가 이렇게 나오는 것 같았다. 그의 눈을 다시 보았지만, 형형한 눈동자가 승원을 노려보고 있기만 할 뿐,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
그의 손가락이 빠져나갔던 뒤쪽이 뻐끔거리며 아릿했다. 승원은 벌려 놓았던 다리를 오므리고 주먹을 꼭 쥐었다 폈다. 그의 말대로 고분고분하게 자리에 내려와 섰다. 권 대표 때문에 벗겨진 바지와 속옷은 저 어딘가에 널브러져 있었고 승원은 아까 입었던 하얀 셔츠와 그 위에 두른 앞치마만 입고 있었다.
승원이 땅에 발을 디디기 무섭게 그가 명령처럼 말했다.
“뒤로 돌아서 거기 잡아.”
식탁 모서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침을 삼킨 승원이 느릿하게 발을 돌렸다. 그의 얼굴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모서리를 두 손으로 붙잡은 승원은 어쩐지 자연스레 그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엉덩이 더 빼고.”
“……이렇게요?”
“빨고 싶게 생겼네.”
승원의 볼이 화르르 붉어졌다. 엉덩이를 더 빼면서 그에게 보일 자신의 모습을 그려 봤다. 하얀 셔츠와 앞치마 밑으로 살갗을 드러낸 뒤가 그의 눈에 완전히 보일 터였다. 조그만 몸을 뒤로 뺐다간 그의 발기한 성기가 스치듯 닿을 정도로 가까워질 것 같았다.
“때리고 싶게도 생겼고.”
“……대표님…….”
웃음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농담입니다. 그런 취향이 있진 않은데, 지금은 예외인 것 같아 해 본 소리입니다.”
승원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다시 숨을 토해 낼 때, 미끈거리고 뜨거운 무언가 뒤에 닿았다.
“하…….”
“엉덩이 더 빼 봐요.”
“이렇…… 으, 흣!”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엉덩이를 뒤쪽으로 더욱 당겼고, 당기기 무섭게 그의 물건이 사이를 파헤치고 들어왔다. 그의 것이 들어올 것이라 알고 있었음에도 승원은 숨을 가득 참아야 했다. 땅에 닿은 발가락이, 식탁을 붙잡은 두 손이 간질거리듯 후들거렸다.
주름을 꾹꾹 짓누르자 그의 귀두에 묻어 있던 쿠퍼 액이 치덕거리며 발라졌다. 위아래로 문지르며 승원의 등을 쓸어 만지는 손이 조금 급해 보였다. 엉덩이 한 부분을 잡아 크게 벌린 그가 다시 한번 좆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주름이 벌어지며 그의 것을 흡입하듯 먹었다.
“……으읏!”
“아파요?”
“으…… 흐으…… 그건 아닌데……”
“내가 채찍질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는 참아 봐요.”
매일 하는 섹스가 여전히 떨리고 두려웠다. 자신이 몰랐던 또 다른 경험을 맛보게 될까 겁이 났다. 승원은 끝나지 않고 들어오는 그의 기둥을 느끼며 주먹을 꾹 쥐었다. 뭉툭한 손톱도 잔뜩 힘을 준 주먹 안에서는 거친 자국을 남겼다.
권 대표는 승원의 셔츠가 거슬렸는지 등 위로 밀어 버렸다. 뽀얀 살을 만지다가 완전히 삽입을 마친 그가 셔츠를 걷어 보인 등허리에 입을 맞췄다.
“난 후배위가 그렇게 좋던데.”
“……하, 읏!”
“윤, 승원 씨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모, 으으…… 하아…… 모르겠, 어요…… 흣.”
승원의 기둥을 꽉 움켜쥔 권 대표가 거친 허리 짓을 시작했다. 등이 둥글게 휘는 동시에 승원의 몸이 그가 주는 반동에 따라 앞뒤로 움직였다. 천천히 시작하는 듯 보였던 움직임이 점차 세기를 더해 가며 빠르게 진전됐다. 속도가 빨라졌다.
“아, 아- 읏.”
“그런 차림으로 하니까, 역할극이라도 하는 것 같, 고-. 좋네.”
앞치마 끈이 어깨 밑으로 흘러내렸다. 침대가 아닌 부엌에서, 그것도 식탁 위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과 그가 짐승처럼 느껴졌다. 계속되는 삽입에 승원은 점차 이성을 잃어 갔다. 승원의 옆구리를 잡아 뚫을 듯이 박아 대면, 마른 배에 무언가 힘껏 드러났다 사라졌다. 등 뒤에서 권 대표의 낮은 신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승원 역시 반사적인 목소리를 참지 않았다.
“하응- 으 하, 으……!”
권 대표는 승원의 엉덩이를 꽉 붙들어 잡았다. 포근한 살이 손바닥에 착 감겼다. 그 사이를 벌려 확인해 보면, 제 물건이 주름진 구멍 안쪽으로 쉴 새 없이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씨발.”
그때였다. 이번엔 그가 손을 힘껏 들어 움직였다. 찹,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무의식적인 움직임이었다. 권 대표는 입술을 다셨다. 승원이 놀라 반응했다.
“읏……!”
승원의 엉덩이를 때린 그가 탐스럽게 솟은 살을 움켜잡았다. 등 가까이로 권 대표의 음성이 들렸다. 거친 숨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때려 봐도 됩니까.”
“…….”
“너무 아프게는 안 할 테니까.”
승원은 정신이 없었다. 고개를 대충 끄덕이기 무섭게 다시 엉덩이가 따끔했다. 승원의 볼록한 엉덩이에 그의 손자국이 남았다. 그 부분을 다시 어루만지는 것처럼 그가 살살 문질렀다. 주사를 맞는 따끔함과 비슷하면서도 묘한 흥분이 감돌았다. 결합되어 있는 부분이 더 깊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싫다는 것도 없고.”
그가 반대쪽을 착 때리고 움켜잡았다. 움켜쥔 그대로 사이를 벌려 깊숙이 밀착시켰다.
“하읏…….”
“씨발. 예뻐 죽겠네.”
작게 읊은 욕과 동시에 그가 속도를 더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두 끝이 입구 밖으로 나오려 하면 그 순간 다시 쑤시듯 처박았고, 계속 힘을 주는 승원 때문에 적당히 조여 오는 감각도 나쁘지 않았다. 승원은 이제 완전히 기역 자를 한 모양으로 그를 받아 냈다. 앞으로 쏠리던 몸이 기둥이 빠질 때 함께 뒤로 물러났고, 다시 그가 쑤셔 올 때면 앞으로 당겨졌다.
성에 차지 않았는지 권 대표는 승원의 허리를 잡아끌어 자신에게로 당겼다. 식탁을 잡고 있던 팔을 놓으려 하자마자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놓지 마.”
승원이 얼른 식탁을 붙잡았다. 몸이 뒤로 물러날 대로 물러난 탓에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것만 같았다. 자세를 취하자 권 대표가 잘했다는 듯이 목덜미에 쪽, 입을 맞추고 손을 내려 승원의 기둥을 만져 줬다. 빳빳해진 성기 끝에서 질질 새어 나오는 액을 엄지로 부드럽게 돌려 문질렀다. 승원이 몸을 파닥거렸다.
“거기, 흣- 그렇게 잡, 지 마세요…….”
“좋아서 질질 싸는 거 아니었습니까.”
“다, 나올 거…… 같아서…….”
“진짜 다 나오게 해 줄까.”
웃음기 섞인 낮은 음성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권 대표는 승원의 엉덩이를 힘껏 벌려 물렁해진 사이에 제 좆을 재차 쑤셔 넣었다. 안이 잔뜩 풀려 어려움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자신의 치골과 승원의 엉덩이를 한 번에 붙인 그가 내벽 안에서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하! 으, 으으! 흣!”
바깥으로 나갔다 들어오는 것과, 온전히 제 몸속에 들어와 움직이는 것은 느낌도, 감각도, 흥분감도 달랐다. 찔꺽대는 소리와 함께 승원의 내벽 안에서 권 대표의 물건이 물에 젖듯 감겼다. 이번엔 숨을 쉴 틈조차 아예 주어지지 않았다. 승원은 툭툭 꼬리가 끊어진 신음을 내뱉으며 불안정하게 몸을 떨었다.
막무가내로 들이박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승원이 식탁 위에 길게 엎어졌다. 이런 난폭한 섹스를 즐기고 있는 자신에게서 배덕감이 느껴졌다.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속에 있는 것들이 전부 그의 성기로 가득 차는 것만 같았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힘겹게 그를 받아 내고 있는 사이, 승원의 기울어진 성기에서 투둑, 하고 하얀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정신 놓지 말고. 싸 줄 테니까 좀 참아 봐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다시 식탁 모서리를 붙잡았다. 엉덩이를 힘껏 뒤로 빼고 그가 안쪽에 싸 주기를 기다렸다. 간헐적인 신음이 등 뒤에서 터져 나올 때마다 승원은 이미 싸고 남은 늘어진 성기를 움찔거려야만 했다. 야릇하게 느껴지는 음성에 자꾸만 뒤에 힘이 들어갔다.
입구 부분에 따뜻한 것이 잔뜩 쏟아져 나왔다. 주름진 구멍 주위를 적시고 엉덩이를 벌린 그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골 사이에 문질렀다. 엉덩이에서부터 안쪽 너머 어깨와 목까지 타고 들어간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뒤로 빠지려 하자 승원이 얼른 그의 손을 붙잡았다.
몸을 돌리고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힘껏 안고 다 못 쉰 숨을 마저 쉬었다. 정신없이 제 뒤에 처박던 권 대표의 얼굴이 궁금했다. 그러나 얼굴을 보려고 뒤를 돌아본 승원은 넓은 어깨에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자성에 이끌리듯 몸이 그에게 붙었다. 정수리 위에서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난잡하네.”
숨을 뱉는 승원이 그의 어깨에 제 뺨을 문질렀다. 가시지 않은 여운이 찔끔찔끔 몸속을 기어다녔다. 권 대표가 후우, 숨을 쉬었다.
“다음엔 어디서 할까.”
“…….”
“침실과 욕실에선 이미 많이 해 봤고. 여기서도 해 봤으니.”
따뜻한 손바닥이 머리를 감싸고 쓸어내렸다. 승원의 볼을 매만지며 그가 지그시 물었다.
“오늘 다녀온 잔디밭은 어떻습니까.”
“……그건…….”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데.”
“…….”
“윤승원 씨랑 할 수 있는 온갖 야한 짓은 다 하고 싶습니다.”
승원의 숨이 점차 가라앉았다.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쓰다듬어 주는 그의 손길을 얌전히 받던 승원은 문득 아까 음식을 하다 만 냄비가 떠올라 눈을 옮겨 확인했다. 제 허리에 놓인 그의 손을 잡아 풀어내고 얼른 가스 불 앞으로 가 보았다.
불은 꺼 두었기에 상관없었지만 익히려고 넣은 파스타 면이 전부 라면처럼 퉁퉁 불어 있었다. 섹스는 좋았지만, 그에게 선보일 음식을 망친 일은 많이 아쉬웠다.
“대표님. 이거 못 먹을 거 같은데…….”
“버려야지, 그럼.”
승원의 입이 자연스레 불퉁하게 나왔다. 섭섭함이 묻어 있는 얼굴로 냄비 한 번, 그의 얼굴 한 번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 볶다 만 채소 역시 차갑게 식어 본래의 먹음직스러움을 잃은 채였다.
“오늘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전 오늘 꼭 해 드리고 싶었는데.”
“……오늘은 내가 음식 하겠습니다. 윤승원 씨는 소파든 침실이든, 아니면 샤워를 하든. 좀 쉬다 와요.”
“그럼 대표님 드릴 제 요리는…….”
말을 멈춘 승원에게 권 대표가 다가왔다. 형편없는 냄비와 프라이팬 상태를 보고 그가 작게 미소 지었다. 승원의 입에 얕은 입맞춤이 닿았다.
“윤승원 씨가 날 위해 요리할 수 있는 날은 앞으로도 널리고 널렸습니다.”
“…….”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으니까, 일단 오늘은 가서 쉬세요.”
승원을 가득 끌어안으며 그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 목소리 하나만으로 모든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당장 배고픕니까.”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그럼 같이 한숨 자고 일어날까?”
엉망이 된 부엌은 잠시 뒤로 제쳐 놓고 둘은 함께 침실로 올라갔다. 전에 보던 권 대표는 항상 각 잡혀 있는 인생을 사는 줄만 알았는데. 침대에 누워 편안히 눈을 감고 숨을 쉬는 것을 보고 있으면, 또 다른 새로움에 승원은 심장이 두근거리곤 했다.
가벼운 샤워를 마친 승원이 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자고 있는 줄 알았던 권 대표는 편안한 복장과 함께 누워서 승원을 바라보았다. 반듯하게 누운 자세가 아니었다. 가로로 누운 덕에 긴 다리가 바깥으로 뻗어 나갔고 목을 뒤로 젖혀 승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생긴 이마가 거꾸로 쏠린 머리카락 덕에 시원스레 드러났다.
“왔네.”
“뭐 하고 계셨어요?”
“언제 나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권 대표가 거꾸로 바라보고 있는 맞은편 자리에 승원이 들어갔던 욕실이 있었다. 승원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권 대표의 눈엔 승원이 거꾸로 보일 터였다.
“해 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뭔데요?”
“가까이 와서 키스해 봐요.”
“……키스를 어떻게.”
“입술을 붙여야지.”
그의 말을 들어 승원이 입술을 살포시 댔다. 거꾸로 손을 든 권 대표가 승원의 뺨 한쪽을 그러쥐었다. 서로 입술을 주무르는 듯이 부드러운 키스를 이어 나갔다. 승원이 혀를 내밀어 그의 입 안에 넣을 때면 고른 치열과 입천장이 느껴졌다. 승원 역시 그의 뺨을 다 잡았다. 고개를 꺾어 더 깊이 파고들었다.
입술이 거꾸로 붙어 진득하게 서로를 빨았다. 승원이 뒤로 물러서려 하면 그는 팔을 더 길게 뻗어 승원을 가까이 붙이고 옭아매려는 듯 완전히 포위했다. 승원의 두 뺨이 옅게 달아올랐다. 부드러운 살결을 매만지며 권 대표는 혀로 승원의 치열을 갈랐다. 더운 숨이 나오도록 짙었던 키스 후 그가 입술을 떼어 냈다.
“거꾸로 하는 건 기분이 어떻습니까.”
“입천장이 거꾸로 닿아서…… 새로운 거 같기도 하고.”
“올라오세요.”
거꾸로 보이는 그의 얼굴이 가볍게 턱짓을 했다. 승원은 얼른 침대 위로 올라갔다. 자연스레 그의 배 위로 올라탔다. 권 대표의 입술 역시 만만치 않게 붉어져 있었다. 승원이 숨을 내뱉는 사이 권 대표가 꽉 묶인 가운 끈을 톡톡 건드렸다.
“벗어야지.”
승원이 입술을 말아 문 채 가운의 리본을 풀었다. 어깨 밑으로 하얀 가운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곡선의 어깨를 타고 내려와 팔을 지나고, 완전히 벌어진 가슴과 속살이 드러났다. 적당히 마른 뽀얀 피부가 욕실의 물 냄새와 바디 워시 냄새를 풍겨 왔다.
팔을 들어 승원의 가슴 두 쪽을 문지르던 그가 등을 잡아 확 끌어당겼다. 서 있던 상체가 앞으로 휙 쏠리며 그의 얼굴에 부딪힐 만큼 가까워졌다. 입술을 맞대고 서로의 살을 어루만졌다. 저녁 식사를 거른 것도 잊은 채, 둘은 밤이 찾아올 때까지 끊이지 않고 서로를 안고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