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1화 (16/20)

1.

검은 적막 속에서 열띤 음성이 파르르 떨린다. 어둠이 가득 내려앉은 공간 안엔 창 너머로 떨어진 달빛과 도시 불빛이 전부였다. 침대 모서리를 안간힘으로 붙든 승원의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가듯이 반복적으로 출렁거렸다.

“하, 읏. 윽…… 응.”

후들거리는 두 다리 아래 무릎이 자꾸만 굽혀졌다. 엉덩이를 뒤로 쭉 내뺀 승원이 이를 씹었다. 곧이어 넓게 벌린 볼기짝 사이에서 권 대표가 손가락을 꺼냈다. 젤을 듬뿍 발라 놓았던 손가락이 손가락 사이의 우물 아래로 가득 흘러내렸다. 분명 투명한 색이었는데, 안쪽에 넣고 열심히 쑤셔 놔서인지 거품을 문 것처럼 하얗게 변색된 채였다.

“좀 낫습니까.”

“제가 안 풀어도 된다고 말했는데…….”

“손가락 몇 개도 빠듯이 받으면서, 내 걸 어떻게 받을 생각인데.”

승원이 입을 꾹 다물었다. 벌겋게 홍조가 오른 눈 밑을 닦아 내자 맺혀 있던 땀이 축축하게 피부에 달라붙었다. 권 대표는 승원의 두 손을 잡아 침대 모서리에 손을 고쳐 얹어 주었다.

“엉덩이 뒤로 더 빼 보세요.”

“……이렇게요?”

“조금 더.”

“…….”

고분고분 제 말을 듣는 승원을 보며 퍽 흡족한 미소를 지은 권 대표가 뒤로 잠시 물러났다. 엉덩이 끝이 볼록 솟아 있고, 그 아래 마른 다리로 제가 쑤시며 적셨던 젤 자국이 느릿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권 대표가 잠시 목을 꿀렁거렸다. 승원은 빨리 이 부끄러운 관전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꾹 감고만 있었다. 그때였다.

“아흣! 자, 잠깐만요…… 대표님……!”

어느샌가 승원의 뒤에 자리를 잡고 바닥에 앉은 권 대표가 엉덩이 사이를 벌려 그 안에 입술을 맞댔다. 축축하게 젖은 안쪽으로 혀를 비집어 넣자 자지러지듯 승원의 상체가 침대 위로 떨어졌다.

혀끝을 바짝 세워서 주름진 구멍을 열심히 핥다가 곧 내벽에 꾹 붙인 채 혀를 밀어 넣었다. 흐물거리며 풀어진 안쪽이 매끄럽게 권 대표의 혀를 옭아맸다. 승원의 엉덩이 골 사이에 아예 콧대를 파묻은 권 대표가 놀고 있던 두 손으로 엉덩이를 매끄럽게 쓸어 만졌다.

“하, 으…… 으응…….”

“엉덩이도 따로 관리를 하는 겁니까.”

구멍 안쪽 깊은 곳까지 입김 섞인 열이 파고들었다. 옅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흣.”

“무슨 두부 같네.”

그가 바짝 댄 손바닥을 살살 쓸 때마다 살 스치는 소리가 은근하게 귀를 자극했다. 간지럽게 애를 태우면서도 권 대표는 승원의 엉덩이 사이로 박아 넣은 얼굴을 떼지 않았다. 역으로 그 안으로 곧 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한참을 승원의 구멍 안으로 혀를 넣어 빨고 흡입했다. 권 대표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승원의 주름은 빠르게 숨을 쉬듯 벌름거렸다.

“앞에 만져도 되겠어요?”

“대표님이 알아서…… 근데 너무 아프게 하시면…… 윽!”

불쑥, 다리 사이를 통과해 넘어온 손이 승원의 고환을 꼭 쥐어 당겼다. 순간 아득해진 눈앞에 승원은 이불 위로 제 눈을 파묻었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놀랍고 아팠다. 가는 신음 소리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권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 이어서 올라온 손이 부드럽게 고환 두 쪽을 매만지고 기둥을 잡았다.

“뒤에만 빨아 줬는데 벌써 이렇게나 섰네.”

“하아…….”

승원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저 제 기둥을 잡은 권 대표의 손등을 맞잡았다. 강한 악력으로 조이며 귀두를 벌려 주니 그 위로 끈적한 액체가 질질 흘러나왔다. 권 대표가 손가락으로 장난치듯 건들자 쫀쫀한 점액이 엄지와 중지 사이로 거미줄처럼 늘어졌다.

“윤승원 씨, 뒤로 돌아 보세요.”

드디어 엉덩이에서 얼굴을 떼어 낸 권 대표가 승원을 나지막이 불렀다. 엎어져 있던 승원이 후들거리며 몸을 일으켜 뒤로 돌았다. 바닥에 앉아 있는 권 대표의 드로어즈가 흉측하게 솟아 있었다. 그 역시 승원에게 벌써 섰냐며 나무랄 처지는 아니었다. 온 안의 피가 성기 끝으로 몰린 것처럼 핏줄까지 도드라진 상태였다. 승원은 앉은 채로도 군살 하나 보이지 않는 탄탄한 그의 허리와 가슴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뭐 하시려고요.”

“내가 뭘 할 것 같은데.”

“…….”

“뻔히 알면서 왜 물어.”

승원이 허벅지를 꼭 붙였다. 그의 시야 앞에 도드라진 제 발기한 성기가 부끄러워서 손으로 가리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고 버텼다. 가운데를 가렸다가는 권 대표가 사나운 눈빛으로 제 눈을 짓이길 것을 알기에 승원은 이도 저도 못한 채 허벅지 근처에 양손을 배회했다. 수치를 견디지 못하는 몸은 열이 올라 붉게 물들었고, 허벅지가 꽈배기처럼 뒤틀렸다.

“다리 벌려요. 손 치우고.”

“…….”

“앉으려면 똑바로 앉고.”

권 대표가 승원의 몸을 밑으로 꾹 눌렀다. 불편하게 걸터앉아 있던 엉덩이가 침대 시트에 완전히 닿았다. 그의 손가락과 혀끝으로 쑤셔지는 통에 붉은 기운으로 열이 올라 있던 살결이 차가운 시트에 닿으며 닭살도 함께 올라왔다. 승원은 뻣뻣하게 고개를 세운 제 성기가 수치스러워 고개를 돌렸다.

가슴이 앞뒤로 크게 부풀었다 줄어들었다. 권 대표에게 이미 한차례 짓눌려져 다 불어 있는 입술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커다란 눈망울이 살살 떨리며 동시에 입술을 짓씹었다. 권 대표의 목소리가 아슬아슬하게 위험 지대에 걸려 있었다. 아직 이렇다 할 아픔이 느껴진 것은 아니지만, 다른 때보다 조금 더 거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고개 내려요.”

승원은 고분고분한 태도로 고개를 살며시 내렸다. 빳빳하게 선 제 성기 앞에 그보다 키가 조금 더 큰 권 대표의 얼굴이 보였다. 날렵하게 빠진 눈썹 끝이 비틀려 올라갔다.

“지금 내 얼굴 보니 무슨 생각 듭니까.”

“……대표님, 제가.”

“진짜 못 본 거 맞아요? 다시 생각해 보세요.”

“…….”

“못 본 겁니까, 아니면 못 본 척한 겁니까.”

승원은 주먹을 말아 쥔 채 조막만 한 입술만 꾹 깨물었다. 긴 인내 끝에 승원이 천천히 입을 뗐다. 살며시 내려간 입꼬리가 가여웠다.

“죄송해요. ……괜히 신경이 쓰여서.”

낮 동안의 일이었다. 여자 배우와 함께 있던 승원의 촬영 현장에 권 대표가 자연스레 찾아왔다. 머리 손질을 받으며 상대 배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던 승원은 갑작스레 제 시야에 잡힌 권 대표의 얼굴에 머리가 멍해졌다. 언질 하나도 없었기에, 혹시 자신이 환영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승원에게는 권 대표의 등장이 당혹스러웠다.

아는 척을 하고 싶었음에도 주위에 둘러싼 사람들의 눈이 너무 많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 아무도 자신과 권 대표의 관계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등 뒤로 땀이 찼다. 혹여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라도 할까 긴장했다.

권 대표와 시선이 맞닿았던 순간, 승원은 고개를 슬며시 내리고 뒤를 돌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기침을 몇 번 내뱉고 딴청을 부렸다. 자신에게 말을 안 한 것을 보면 그가 여기에 찾아온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를 터였다. 그래서 승원은 그에게 아는 척하지 않은 것이다. 어느 각도로 상황을 재 보아도 모른 척하는 것만큼 안전한 방법은 없었다고 판단한 승원의 최선이었다.

비교적 길게 이어지던 촬영 중간에 승원의 쪽으로 전달하라며 커다란 커피 차가 세워진 것을 보고 승원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트럭 상단과 양옆 현수막에는 깔끔한 자태의 간단한 문구와 승원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뒤늦게 권 대표를 찾아 보았지만 그는 이미 자리를 뜨고 없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기에 승원은 찜찜한 마음으로 촬영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오르기 전, 자신을 보지 못했냐는 권 대표의 간단한 질문에 승원은 버벅거리며 대충 얼버무렸다. 못 본 거 같은데……. 말꼬리를 길게 늘이면서 승원은 자신의 이 어설픈 거짓말이 금방 들통날 것이라는 걸 직감해 버렸다.

“살갑게 와서 인사는 못 해 줄망정, 그냥 눈짓이라도 줬으면 좋았잖아.”

“…그건 맞는데… 제가 죄송해요.”

“죄송하다고 하지 말고 그냥 지금 값이나 치릅시다.”

권 대표도 승원의 곤란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보는 눈이 많았고, 그곳은 승원의 일터였고, 자신은 승원에게 언질 한 번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간 것이었기 때문에 승원의 성격상 오히려 입을 나불거렸다면 그게 더 부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걸 알았고, 이미 승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음에도 그는 승원을 봐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것은 어떤 괘씸함이나 지나친 심술 같은 건 아니었다. 그저 지금 제 눈앞에 나체로 늘어져 있는 야해 빠진 어린 애인을 조금 더 음란하게 놀리고 싶은 제 안의 음심으로 발동된 순발력이라고 하면 맞을까.

자신이 조금 무심한 톤으로 말하자 승원의 얼굴이 금방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저 커다란 눈망울이 깜빡거리다가 묽게 물들었다. 천적과의 최후를 기다리듯 입술을 꾹 문 승원이 머뭇거리던 손 하나를 들어 조심스레 권 대표의 묵직한 팔뚝을 잡았다.

“지금부터 윤승원 씨가 지릴 때까지 여기를 빨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말문이 막힌다는 게 이런 걸까. 승원은 잠시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멍하니 눈을 떴다. 그리고 잠시 뒤 어깨를 바르작, 떨며 움찔거렸다. 발가락을 오므라뜨린 승원이 허벅지를 착실히 붙이고 위로 솟은 제 성기를 두 손으로 가렸다.

“안 돼요.”

목소리에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값비싼 예물이라도 숨기려는 마냥 제 성기 기둥을 꾹 눌러 잡아 제 배꼽 쪽으로 바짝 끌어당긴 승원이 목을 뒤로 뺐다. 고개를 돌리진 않았지만 이미 충분히 거절의 의미가 전달되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안 되긴.”

“…….”

“잘못을 했는데, 윤승원 씨 엄살까지 내가 지금 들어줘야 됩니까.”

“안 돼요. 대표님. 저 진짜…….”

“손 치우세요.”

삼백안의 눈이 흰자 세 영역을 남기고 위로 사납게 뜨였다. 승원을 올려다보는 눈이 건조했다. 입술 사이로 나온 엄한 명령이 승원의 손을 움츠러뜨렸다.

그가 이렇게까지 화가 나 있을 것이라고는, 물론 아예 예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승원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뻔뻔히 가서 악수라도 청할걸. 아니면 아닌 척 눈짓이라도 주면서 문자라도 남길걸.

승원은 항상 이런 쪽에 약했다. 말 그대로 연애의 요령이 없었다. 일찍이 잠시 만났던 여자와 금방 쫑이 날 수밖에 없던 이유도 그런 요령 없는 태도가 분명 한몫 거들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연애는 권 대표 역시 처음이라던데. 그런데도 승원은 자신이 한참 모자란다는 것을 매번 느꼈다. 권 대표는 자신의 생각보다 더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었고, 그런 그를 보면서 때아닌 설렘을 느끼면서도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 자신도 요령 있고 그럴듯한 연애를 하고 싶은데, 제가 하는 건 그저 한낱 소꿉놀이 같았다. 만나면 괜스레 떨려서 삐거덕거리기나 하고, 이렇게 그가 눈을 거칠게 뜨며 목소리를 깔 때면 혼이라도 나는 것처럼 기가 팍 죽어 버렸다. 말 그대로 우유부단 그 자체였다.

갑자기 온몸을 스친 잡생각에 잠시 성기가 말랑하게 가라앉을 때 즈음이었다.

“으읏, 응…….”

“다리 더 벌려 보세요. 그래야 내가 들어갈 자리가 생기지.”

언제 승원의 손을 치운 건지 권 대표가 승원의 기둥을 거칠게 물어 잡았다. 그냥 쥐고 있는 것임에도 기본적인 악력에 눌리는 압박이 상당했다. 귀두 끝을 자근자근 건들자 온몸에 소름이 오르며 목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권 대표가 승원의 허벅지를 양옆으로 밀었다. 저항 없이 벌어지는 움직임이 야했다. 허벅지 안쪽의 뽀얀 살 위로 권 대표가 입을 맞췄다. 쪽 소리가 나도록 입술을 대고 혀를 날름거리자 침대를 지탱하고 있던 승원의 팔이 순간 후들거렸다.

“흐아…….”

“간지럼을 많이 타서 그런가. 예민하지 않은 데가 없네요.”

“거기는 간지럼을 안 타도…… 이상할 부위란 말이에요.”

“근데 윤승원 씨 간지럼에도 약하지 않습니까.”

“그건 맞는데…….”

그가 허벅지 안쪽에 대고 말을 할 때마다 뜨거운 입김이 은근하게 살결을 건들고 지나갔다. 곧이어 다시 입술을 붙인 그가 혀로 미리 적신 입술을 비비고 눌렀다. 간지럽게 닿다가도 뜨거운 열기가 피부 안쪽까지 짓누르는 듯했다. 반쯤 물렁거리던 성기가 다시 빳빳하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권 대표는 애무를 하면서도 승원의 귀두 끝을 잡은 손가락 역시 열심히 움직였다. 살짝 벌어진 틈 사이를 미끈거리도록 반복해서 돌리자 안쪽에서 묽은 쿠퍼 액이 질금질금 실금하듯 꿀처럼 분출되었다.

“하아…… 으으, 대표님…….”

신음을 쏟아 내는 가운데도 권 대표는 굴하지 않고 승원의 성기를 장난감 다루듯 어루만졌다. 단단하게 굳은 살결을 매끈하게 쓰다듬는 그의 다리 사이의 굵다란 성기 역시 빳빳하게 서서 배꼽 끝까지 곧추선 상태였다.

“흐윽, 자, 잠깐…….”

승원이 급하게 권 대표의 이마를 밀어냈다. 그래 봤자 넘어갈 리 없었지만 당장이라도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승원으로서는 아무 몸부림이라도 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입 안쪽 깊숙이 승원의 성기를 입에 문 권 대표가 목젖 끝까지 그것을 밀어 넣었다. 귀두 끝이 목젖으로 느껴지는 말랑한 무언가에 닿는 것을 느끼자마자 승원은 발작이라도 일으키듯 몸을 화들짝 떨었다. 한 손으로 잡아 구겨 버린 이불이 쭈그러졌다. 울기라도 할 것처럼 눈 주위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윤승원 씨 자지가 전보다 좀, 커진 것 같은데.”

“으, 흐…….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삼백안의 눈동자가 위로 흠칫 솟아올랐다. 승원의 마른 몸을 훑어 올라가던 시선이 발그레한 얼굴에 닿았다. 한쪽 손으로 얼굴 반을 가리고 있는 승원을 권 대표가 유심히 바라보자 승원은 슬금슬금 제 뺨에 올라가 있던 손을 내렸다. 섹스를 할 때면 권 대표는 얼굴을 가린 승원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승원의 고환을 천천히 더듬고 동시에 안쪽 볼을 찌르는 성기를 빨아 대며 그가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아직 성장기 아닙니까.”

“흐, 으응…… 하아…….”

“전보다 좀 더 굵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말 좀…… 제발…….”

그는 승원의 수치를 즐겼다. 어떻게 해야 승원이 부끄러움을 느끼는지 알았고, 뺨이 붉게 물들고 온몸을 배배 꼬며 안달을 내는 승원을 보면 그는 가만히 있다가도 아랫배가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입술을 질끈 문 승원을 보며 권 대표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입에 문 물건이 다디달았다.

권 대표가 안쪽까지 물고 있던 성기를 흡입하듯 빨아들였다. 잔뜩 곱아들던 승원의 발끝이 쫙 펴지고, 입 밖으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근육이 솟을 정도로 종아리를 꼿꼿하게 편 승원이 두 다리로 권 대표의 넓은 등을 끌어안았다. 덕분에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든 권 대표가 입 안에서 혀를 굴리며 좆 기둥을 날름대며 핥았다. 길게 핥을 때마다 바르르 떨리는 허벅지가 귀여웠다.

“으으, 그, 으으응…….”

“그렇게 좋아?”

“하아…… 거기…… 흐으…….”

물고 있던 성기를 입 밖으로 꺼내자 제 타액이 승원의 기둥 주위로 주르륵 늘어졌다. 아예 기둥 끝을 손으로 잡은 권 대표가 승원을 향해 눈을 곧게 뜬 채 혀끝을 내밀어 밑동을 핥기 시작했다. 질끈 감은 눈으로 도리질을 치면서도 승원은 권 대표의 등을 안은 다리에 힘을 놓지 않고 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눌러 잡았다. 권 대표의 좆에서도 묽은 물이 나오긴 마찬가지였다.

“하아. 씨발.”

묵직한 고양감을 느낀 권 대표가 나지막이 지껄였다. 곧 뒤로 넘어가려는 듯이 들뜬 승원을 보다가 승원의 성기에서 입술을 떼어 낸 권 대표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사정감에 취해 있던 승원은 갑자기 멈춰 버린 애무에 당황한 듯이 눈을 껌벅였다. 아쉬움이 가득 남은 듯이 찡그린 얼굴로 뺨이 불긋 솟아올랐다.

“왜…….”

아예 자리에서 일어난 권 대표에 시선을 위로 올린 승원이 반사적으로 제 허벅지를 비볐다. 곧 쌀 것 같던 기분이 가시자 이상한 불쾌감에 사로잡혀 배 속이 쓰리게 끓었다. 자신이 뭔가 잘못한 건가 싶어 입을 떼려던 참이었다.

“누워 보세요. 옆으로.”

권 대표가 침대를 향해 턱짓했다. 승원이 모로 눕는 자세를 취해 보이며 고분고분히 말을 들었다.

“이렇게요?”

“아니지. 헤드 쪽으로 다리 놓고 옆에 보고 누워요.”

승원이 그의 말대로 침대 헤드가 있는 방향으로 다리를 놓은 채 옆을 보고 누웠다. 침대 시트에 발딱 선 성기가 살살 비벼지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티 나지 않게 그 위로 살살 문지르며 권 대표의 동선을 살피던 승원의 얼굴이 점점 질려 갔다.

“뭐, 뭐 하시려고…….”

“윤승원 씨가 내 좆 빨고. 나는 윤승원 씨 구멍을 빨고.”

정확히 승원과 거꾸로 자리를 잡은 권 대표가 낮게 읊조렸다. 저 적나라한 단어가 어째서 그의 입 밖으로 나오면 지독히 평범하게 갈음되는 것일까. 저의 성기 앞에 그의 목소리와 입김이 함께 닿자 승원은 허벅지 근육이 빳빳하게 서는 것을 느꼈다. 승원이 급하게 고개를 숙여 권 대표를 바라보았다. 거꾸로 보이는 얼굴의 턱선이 날렵했다.

“갑자기 왜요……?”

“싫습니까. 이거?”

“아니요, 그건 아닌데…….”

“솔직하게 말할까.”

승원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엉덩이 사이로 길쭉한 손가락이 들어섰다. 골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뭉툭한 손톱 끝이 구멍을 꾹 눌렀다.

“하읏…….”

“앞보다는 뒤로 가는 게 더 내 취향입니다.”

“그래서 거기를…….”

“쌀 때까지 빨아 줄 테니까, 윤승원 씨도 내가 쌀 때까지 내 좆 열심히 빨아 봐요.”

“어, 읏……!”

다른 말을 덧붙일 새도 없었다. 틈을 벌리고는 순식간에 치민 혀끝이 물컹하게 구멍을 핥았다. 엉덩이에 힘이 빳빳하게 들어가 승원이 잔뜩 굳어 있자, 권 대표가 승원의 엉덩이 한쪽을 짝 내려쳤다. 차진 소리와 함께 어깨를 파드득 떤 승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제 뜻이 다 소용없는 침대 위에선 서러운 마음도 어쩔 수 없었다. 승원은 목울대를 크게 꿀렁이고는 제 눈앞에 보이는 위협적인 좆을 그러쥐었다.

“하아…….”

한 가지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앞뒤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으니 정신이 없었다. 핏줄이 파드득 솟은 성기를 꾹 잡은 채로 승원은 두 눈을 감았다. 아니, 감기보다는 감아진 것에 가까웠다. 경련하며 떨린 속눈썹과 함께 얇은 눈꺼풀이 출렁였다.

구멍 주름을 샅샅이 핥던 그가 안쪽으로 긴 혀를 집어넣었다. 입구 가까이서부터 축축하게 젖은 듯이 그의 타액으로 범벅이 된 승원의 구멍은 이미 늘어질 대로 늘어져 흐물거리는 상태였다. 붉게 물든 안쪽을 죽 핥아 내자 마른 등줄기가 소름을 일으켰다. 엉덩이를 뾰족하게 세우자 볼기 두 쪽이 봉긋 솟아올랐다. 빨갛게 일 때까지 승원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바짝 움켜잡은 권 대표가 안쪽 더 깊숙한 곳을 탐하기 시작했다.

“으응, 흐, 아…….”

“우는소리 그만하고. 빨리 내 거 빨아요.”

“잠깐…… 거기 그만 좀…….”

“그만하라고 할 때마다 여기를 꼬집든가 때리든가 해야지.”

사과처럼 새빨개진 양 볼기를 살살 문질렀다. 옅은 살 스치는 소리와 질척이는 침 소리가 연신 함께였다. 승원은 입을 꼭 다물다 다시 입술을 최대한 벌려 손에 든 물건을 머금었다.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입에 물고 있기만 한데도 벌써 안쪽 가득 침이 고이는 듯했다. 곧 흐를 듯 고이는 맑은 침이 금세 승원의 입술을 적시고 턱을 타고 내려왔다.

“하아…….”

“흐, 으읍, 응. 하아.”

“더 빨아.”

구멍 앞에 가득 모인 숨결이 내벽을 타고 들어왔다. 낮은 목소리의 명령에 승원은 성기를 꼭 쥔 채 입술을 뻐끔거렸다. 본래 좆을 빠는 일에 있어서는 성심성의를 보이던 승원이었지만, 뒤를 빨리는 동시에 최선을 다하려니 이것도 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다리를 가득 움츠리며 승원은 목젖 깊숙이 부풀어 오른 좆을 삼켰다.

“크, 억, 흐으, 읏…… 응.”

짠 것 같기도 하고 신 것 같기도 한 것이 타액과 가득 섞여 입 안에서 한참 맴돌았다. 미끈거리는 귀두 끝에서 무언가 쉴 새 없이 분출되었다. 비릿하진 않으면서도 씁쓸한 듯하다가 다시 단 것 같기도 했다. 승원은 눈을 감고 입에 든 물건을 열심히 빨았다.

침대 위로 자리 잡은 두 사람은 한 몸 같았다. 승원의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끼워 넣은 채 구멍을 빨아 대는 권 대표의 턱 밑으로 곧게 솟은 예쁜 모양의 좆이 바들거렸다. 톡톡 칠 때마다 간지러워하는 듯한 느낌에 권 대표는 그 귀여운 물건을 가끔씩 만져 주기도 했다.

발끝을 오므라뜨리며 입 안의 피스톤질을 멈추지 않던 승원은 가슴을 털며 사정을 할 때가 되어서야 턱이 빠진 사람처럼 입을 벌렸다. 아래로는 움찔거리면서도 힘이 다 빠진 체력으로 권 대표의 좆을 힘겹게 흔들었다. 밀리고 빠지는 성기의 껍질이 부드럽게 오고 갔다.

“입 안에 쌀게.”

승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입 안 가득 들어오는 사정액을 피하거나 막지도 않았다. 다리 아래에서 지끈한 권 대표의 신음이 들려왔다. 야하고 낮은 음성이 귓속을 만져 댔다. 승원은 입에 담긴 정액을 모조리 삼켜 냈다. 이젠 굳이 허락받지도, 되묻지도 않았다. 권 대표의 정액은 승원의 몫이었다. 꿀떡, 목울대를 움직이자 허옇게 분출되었던 끈적한 액이 승원의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윤승원 씨.”

“……흐으…….”

“나 봐 봐요. 벌써 지치면 안 되지. 언제 시작했는데.”

“대표님 저 이제 그만…….”

“안 됩니다.”

나는 이제 시작인데. 그가 짧게 덧붙였다. 승원은 어느새 가까워진 음성에 눈을 깜빡였다. 거꾸로 누워 제 뒤를 핥던 권 대표가 눈앞에 바르게 있었다. 옆으로 누워 승원의 뺨을 쓸어내리던 그가 짧게 입을 맞췄다. 서로의 것이 뒤엉켜 시큼한 맛이 났다. 손을 내려 승원의 엉덩이를 확 끌어당긴 권 대표가 다시 키스를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키스를 받을수록 승원은 더욱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뒤로 가득 몰렸던 혀끝이 이번엔 저의 입 안에서 한참 맴돌았다. 물기 젖은 점막을 찌르고 핥으며 그는 능숙하게 혀를 섞었다. 어느새 동화된 승원 역시 주먹을 꼭 쥔 채 입술을 받았다.

“이제 됐습니까.”

“…….”

“아니면, 더 해 줄까.”

바르작거리며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살포시 눈을 접은 권 대표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무 말 못 하는 승원에게 짧게 입을 맞추고 그는 자리에 앉아 가느다란 손목을 잡아당겼다.

“……흣.”

몸이 번쩍 일으켜졌다. 멍하니 악력에 이끌려 몸을 움직이고 있으니 어느새 승원은 권 대표의 다리 위에 자리를 잡은 채였다. 마주 본 얼굴 아래, 가슴과 배꼽을 지나 다리 사이에 늘어진 성기는 서로 부딪치며 다시 바짝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냥 봐도 굵직한 그의 것 맞은편에 닿아 있는 가는 제 성기를 보고 있자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승원은 얼른 고개를 들어 버렸다. 승원은 갑작스레 권 대표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충동적인 움직임이었다.

“왜 이래, 갑자기.”

“대표님…….”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고만 있고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엉덩이 골 위를 검지로 스윽 밀어 올리자 소름이 돋아 있는 하얀 몸이 파르르 떨렸다.

“왜 말을 안 합니까.”

“갑자기 이런 자세는 뭐예요.”

“별로예요?”

“너무 다 보이니까…… 좀 적나라해서.”

“후배위로 해 줄 테니 거울 앞으로 갈래요, 그럼?”

승원이 어깨에 안겨 있던 얼굴을 들었다. 태평한 낯으로 승원의 얼굴을 마주 본 권 대표가 버석한 미소를 지었다. 더 토를 달 수도 없어 입을 뻐끔거리고만 말 뿐, 승원은 달리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엉덩이 들어 보세요.”

귓가에 작은 속삭임이 울렸다. 술에 취한 듯 볼이 잔뜩 달아오른 승원은 그의 말 그대로 엉덩이에 힘을 주어 허공 위로 들었다. 골에 미끈거리는 무언가 딱딱하게 비벼졌다. 골 사이만 파고들던 것이 곧 구멍 주름을 둥글게 건들다가 안으로 살살 파고들었다. 승원의 목이 뒤로 넘어간 것도 그와 동시였다.

“하아아으…… 응…….”

“다 들어갔어.”

아무래도 거짓말이었다. 이전 경험을 생각해 보면 아직 한참은 더 들어오고도 남을 거대한 물건이었다. 승원은 이를 질끈 문 채 권 대표의 어깨를 빨개지도록 잡았다. 무릎을 살살 굽히며 자리에 천천히 주저앉자 내벽 가득 묵직한 이물감이 성적 쾌감이 고조에 이르며 자리 잡기 시작했다.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것이 다급한 물음에서 드러났다. 승원이 고인 침을 삼키는 동안, 권 대표는 땀에 젖은 승원의 머리칼을 귀 뒤로 꽂아 넘겨 주었다. 어깨를 잡고 있는 다섯 손가락에 힘을 꽉 주었다. 돌출된 승원의 유두를 손바닥으로 살살 매만지며 살피던 권 대표가 어린 애인의 낯을 읽다가 말했다.

“움직여요.”

그 말에 승원이 천천히 엉덩이를 위로 들었다. 내벽 깊게 꽂힌 살덩이가 내벽을 밀며 주르륵 흐르듯이 떨어졌다. 승원은 이상한 신음을 흘리며 뒤를 힘껏 들쳐 올렸다. 구멍 바깥 근처까지 귀두가 보일 때 즈음, 권 대표는 다시 승원의 어깨를 짓눌렀다. 안으로 들어가며 다시금 커다란 이물감이 배 속을 꽉 채웠다.

“잘하네.”

“하, 아아…….”

“계속 더 해 봐요.”

“대표님…… 이거 너무…….”

말만 질질 늘릴 뿐, 그 이상 잇지 못한 승원이 아주 느린 왕복운동을 시작했다. 승원의 아래에 콱 박힌 성기가 밖으로 밀고 나오다가 다시금 안으로 들어갔다. 질끈 감은 승원의 두 눈과 달리, 엉덩이 골은 그 사이를 마구 열며 실핏줄이 돋보이는 살덩이를 야금야금 먹었다.

“예쁘네.”

승원의 좆을 톡 건들며 권 대표가 중얼거렸다. 천천히 이어지던 움직임은 어느덧 승원의 성적 고조와 함께 점차 그 속도에 박차를 더해 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까보다 빨라진 속도에 그 쾌감도 엄청났다. 권 대표 역시 지나치게 벅찬 호흡을 내뱉었다. 둘의 몸이 땀으로 가득 젖어 갔다.

“하읏, 응, 으, 아……!”

“이럴 거면, 내숭을 떨지를 말던가.”

“읏, 흐으! 아, 응!”

“그렇게 좋아? 어?”

승원은 권 대표의 가슴을 가득 끌어안은 채 빠르게 엉덩이를 움직였다. 다리가 저린 와중에도 배 안을 찌르는 흥분감을 멈출 수도 없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다정했다. 커다란 손바닥으로 승원의 검은 머리칼을 쓸어내린 그가 이어서 부드러운 목선을, 땀에 젖은 등을 다시 매만졌다.

다리에 쥐가 나도록 하체를 바쁘게 움직이던 때였다.

“흐읏. 읏.”

권 대표의 탄탄한 복근 위로 하얀 점액이 툭툭 튀었다. 늘어지려 하는 승원의 몸을 꽉 끌어안고 권 대표는 제 하체를 위로 처박기 시작했다. 그에게 몸을 맡겨 가슴 위로 완전히 늘어진 승원의 몸이 창백했다.

“하, 하아…… 허, 윽. 하.”

승원의 배꼽이 요란하게 솟았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그가 움직임을 멈췄을 때, 승원의 배 안은 미지근한 정액으로 가득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권 대표의 어깨에 얼굴을 걸쳐 놓은 승원이 옅게 숨을 내뱉었다. 여린 숨이 따스하게 살갗을 덮었다. 권 대표는 승원을 안고 있는 그대로 등을 기대 누웠다.

몸이 아스러질 만큼 힘겨웠다. 그런데도 맞닿은 가슴이 너무도 뜨거워서 승원은 이 사이에 접착제라도 발라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짧지 않은 섹스에 온몸이 고단한 와중에도 승원은 흐릿한 눈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커다랗게 울리는 숨통이 널따랬다. 곧이어 반듯한 손가락이 승원의 머릿결을 훑었다. 시선을 살짝 들자, 사납던 얼굴이 반쯤 누그러져 승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힘들어?”

승원이 고개를 젓자 그가 입꼬리 한쪽을 느긋이 올렸다.

“왜 거짓말합니까.”

“거짓말…… 아닙니다.”

“정말로?”

“……네.”

“안 힘들면 나가서 나 물 한 잔만 갖다 줘 봐요.”

눈을 찬찬히 깜빡이며 승원을 가만히 보던 그가 그렇게 말했다. 승원은 잠시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어 닫힌 침실 문을 바라보았다. 매일 드나드는 공간인데, 지친 시선으로 보니 그 거리가 몇백 광년은 떨어진 머나먼 우주 같았다. 그래도 승원은 숨을 한 번 뱉고 그의 가슴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기 위해 옆으로 내려가려던 그때였다.

“어딜 가.”

손이 덥석 잡혔다. 다시 당겨진 몸이 털썩 가슴에 힘없이 떨어졌다. 권 대표가 피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재밌다기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듯 당혹스러운 웃음이었다.

“왜요?”

멍하니 묻자 이번에는 웃음도 안 나오는지 그가 코웃음을 쳤다. 눈썹 한쪽이 삐딱하게 올라가 있었다.

“가란다고 갑니까?”

“물 마시고 싶으시다면서요.”

“안 힘들다고 거짓말하니까 그냥 해 본 말이지.”

“……거짓말 아니라니까요.”

“이 꼴을 하고?”

입을 꼭 다물자 그가 아무 말 않고 승원의 등을 쓰다듬었다. 쓰다듬던 손이 점차 아래로 내려와 볼록 솟은 엉덩이를 매만졌다. 부드러운 살결이 아이의 것 같았다. 말랑한 살결을 장난치듯 만지다가 콱 쥐었다.

“아-.”

“윤승원 씨 너무한 거 아닙니까?”

“…….”

“내가 윤승원 씨 물심부름이나 시키는 그런 자격 없는 애인 같습니까. 언제 그런 걸 시켰다고 토도 안 달고.”

그의 말이 맞았다. 권 대표는 승원에게 그런 걸 시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걸 아는데도, 거기에 의아함을 갖기보다는 그냥 물을 먹고 싶다는 그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승원은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움직이려 했던 것이었다. 다른 뜻은 없었다.

“대표님.”

한참 있던 때, 승원이 문득 입을 열었다.

“왜요.”

“그냥 제가 갖다 드리고 싶었어요.”

“뭐를.”

“물이요. 대표님이 먹고 싶다고 하시니까.”

이윽고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물 갖다 드릴까요?”

“됐습니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승원의 턱을 가볍게 그러쥔 권 대표가 그의 얼굴을 들었다. 서로 가슴을 맞댄 채로 마주 보고는 한참 동안 서로를 그리듯 바라보았다. 가느다란 속눈썹이 승원의 얼굴을 훑고 시선이 입술에 닿았다.

“난 이거면 충분하지.”

입술이 맞물렸다. 질척이기보다는 담백하게 혀를 섞는 안쪽에 마른침이 고였다. 승원은 눈을 감고 부드러운 키스를 받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혀와 입술이 그의 타액에 녹아 다 없어질 때까지 키스만 하고 싶었다.

“대표님.”

깨끗이 씻고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승원은 문득 생각난 용건에 가슴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잠시 핸드폰을 보느라 하얗게 빛이 비치는 얼굴이 승원을 내려다봤다. 그도 약간 졸음이 오는 것인지 조금 나른한 낯이었다.

“저 포상 휴가 이번 달 말이에요.”

“아. 그거.”

졸음기가 뭉쳐 있던 눈이 번뜩 뜨였다. 눈썹을 찡그리다가 핸드폰을 내려놓은 그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 보였다.

지금 들어간 승원의 드라마 촬영이 어느덧 막바지였다. 촬영과 함께 동시 방영되고 있는 참에 인기도 인기대로 얻은 터라 대중의 관심은 드라마 종방 이후에도 한동안 남아 있을 듯 보였다. 흥행 덕분에 포상 휴가도 얻게 된 승원은 한동안 그 일정을 권 대표에게 어찌 이야기해야 하나 많이도 고민했다.

혹여 안된다고 할까 망설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 다녀오라고 말하는 권 대표도 딱히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놀부 심보가 따로 없었다. 어떤 대답을 들어도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안 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지친 촬영에 빛처럼 얻은 휴가였고, 승원이 빠지면 그거대로 기사며 뉴스며 괜한 소리나 떠들어 댈 게 뻔했다.

미루고 미루다 저번 주에 처음 이야기를 꺼냈고, 그는 딱히 내키지는 않는 얼굴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하고 묻듯이 대답했다. 승원을 보내고 싶지는 않지만 굳이 안 보내기엔 승원의 안위에도 좋을 게 없을 것을 고려하고 건넨 대답이었다. 승원은 그의 대답에 안도했다. 무조건적인 반대도, 흔쾌한 승낙도 아니었으니.

권 대표는 날짜부터 알려 달라고 했다. 그때 당시엔 정확한 날짜가 예정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번에 정확한 날짜가 고지되었다. 집으로 오자마자 말을 한다는 게 여태껏 침대에서 뒹구느라 완전히 잊고 있었다.

“26일부터 30일까지요.”

“좀 기네.”

“저는 좀 일찍 올까 싶기도 한데.”

“왜?”

반문하는 얼굴을 보며 승원은 잠시 당황했다. 뭐라 대답할지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저는 집에서 쉬는 게 더 좋아서요.”

“일찍 와도 상관없는 겁니까?”

“어차피 다들 스케줄이 달라서 가는 날짜만 지키고 오는 건 상관없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던 권 대표가 다시 물었다.

“너는 언제 올 건데.”

“……저는 한 3일만 있다가.”

“난 또 하루만 있다 온다는 줄 알았네.”

느릿한 승원의 대답에 권 대표가 피식 웃으며 혼잣말했다. 승원은 얼른 덧붙였다.

“하루만 지내다 와도 상관없어요.”

“됐습니다. 3일 꽉 채워서 쉬다 오세요.”

“……아니면 그냥 이틀만.”

“3일 놀다가 세 번째 날 저녁에 돌아오세요.”

“…….”

“괜히 나 신경 쓰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대표님.”

권 대표가 왜, 하고 대답도 하기 전에 승원은 그의 품 안에 쏙 들어가 가슴을 힘껏 끌어안았다. 침대 시트의 섬유 유연제와 그에게서 나는 체취가 함께 섞여 아늑했다. 승원은 그 안에 얼굴을 비볐다. 곧 제 등을 쓸어 만지는 손길에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쉬었다.

“그럼 저 3일 놀다가 올게요.”

“그래.”

깊이 파묻고 말해서인지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나긋한 대답과 제 몸을 쓸어 만지는 다정한 손길을 느끼며 승원은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평화롭고 안온했다. 온화한 공기가 둘 사이를 가득 메꾸고 덮었다. 이불 안보다 따스한 서로의 품 안에서 둘은 얼마 남지 않은 밤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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