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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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외전

검은 밴의 등장과 동시에 가게 앞을 일렬로 꽉 채운 사람들이 꺄악, 소리를 질렀다. 저마다 핸드폰을 치켜들고는 웅성거리며 검게 선팅이 된 차창을 주목했다. 이미 몇몇 배우들이 쓸고 지나간 종방연 현장은 초반보다 사람이 몇 배는 더 불어 있었다. 누군가는 이미 밴의 주인공을 눈치챈 건지 발을 구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드르륵 열린 문에서 가지런한 발이 뻗어 나왔다. 승원이 빠져나오기 무섭게 모든 플래시가 승원을 향해 달려들 듯이 번쩍거렸다. 여기저기서 환호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하늘이었지만, 하얀 플래시 세례에 현장은 대낮을 방불케 했다.

“미친, 존나 잘생겼어!”

“승원아! 여기 한 번만 봐 줘!”

“으아아, 씨발 코트 봐. 개귀여워…….”

승원이 인사를 하며 눈을 마주치는 곳마다 사람들이 흐느끼며 욕설인지 탄성인지 모를 것들을 내뱉었다. 음식점 입구까지는 레드 카펫 비슷한 게 깔려 있었다. 카펫을 중심으로 빙 둘러싼 사람들을 경호원들이 철저하게 막아섰다.

“하아, 윤승원! 윤승….”

“으아악! 승원아! 승원아악!!”

“어머, 저게 뭐야.”

승원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무난한 환호와 함께하던 인파 사이로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울음소리에 승원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선이 순식간에 어수선하게 떠올랐다. 미리 차에서 내려 승원을 지켜보고 있던 배 실장이 소란의 주인공을 찾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을 흔들며 눈인사를 주고받던 승원 역시 그 괴기한 음성에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기웃거렸다. 동그랗게 커진 눈동자가 잠시 방황하다가 이내 당황과 함께 깜박였다.

“뭐야, 아씨.”

“승원아! 허억. 승원아, 나 왔다! 형아 왔다, 형!”

“뭐라는 거야…….”

“아, 왜 저래.”

빼곡한 콩나물처럼 머리가 가득 들어차 있던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가 꽃다발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머리 위 허공에서 흔들리는 커다란 꽃다발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꽃잎이 산만하게 떨어지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요만큼도 신경 쓰지 않은 남자 하나가 꾸역꾸역 인파를 헤치고 나왔다. 조급한 움직임에 목에 추처럼 매달려 있던 카메라가 덜렁거렸다.

“안 됩니다.”

“아, 이것만 줄게요. 이것만! 아이, 형님들 이것만 주면 돼!”

“저기요, 이러시면-.”

“승원아, 이거 가져가, 가져가! 가져가악!!”

“다가가시면 안 됩니다. 뒤로 물러나세요.”

난사하던 플래시 소리도 남자의 돌발 행동에 전부 잦아들었다. 난동까지는 아니어도 충분히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행동이었다. 승원도 머쓱하게 웃기만 했으나, 남자는 굴하지도 않고 자신을 막는 경호원의 틈 사이로 얼굴을 비집으며 승원에게 자신을 어필했다.

“이것만 가져가, 승원아! 제발, 제발…….”

남자는 꽃다발이 들린 것도 잊고 냅다 손을 비비기 시작했다. 당장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너무 간절해 보여서 승원도 고민이 되었다. 저 고집을 꺾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냥 놔뒀다가는 경호원들이 한 대 치기라도 할 기세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승원이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카메라 렌즈가 일동 승원의 움직임을 따랐다.

“헉… 헉, 승원…….”

가까워지는 승원에 남자의 눈이 금방이라도 회까닥 뒤집어질 듯했다. 둥근 광대를 만든 승원이 조심스레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자신의 손을 한 번 잡아 보려고 허우적대는 손은 애써 모른 척했다.

“감사합니다, 잘 받을게요. …저기, 너무 그렇게 잡지 마세요.”

경호원들에게 부드럽게 이야기한 승원이 꽃다발을 끌어안고 그대로 물러났다. 임무를 다한 남자가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와, 씨발……. 비방은 아니고 감격에 젖은 나머지 저지른 몹쓸 입버릇 같았다. 승원은 듣고도 모른 척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마저 인사해 주었다. 아무래도 얼른 들어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윤승원! 승원아, 형이 사랑하는 거 알지? 알지! 사랑해!”

“아, 존나 짜증 나네. 진짜.”

“민폐 오진다…….”

주변 사람들이 다 들리라는 식으로 수군거렸다. 한두 명만 그런 게 아니라 승원의 귀에까지 투덜대는 음성이 다 흘러들어 왔다. 안 받으면 끝도 안 날 것 같아서 일단 받긴 받았는데. 괜히 받았나. 승원은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얼른 레드 카펫을 밟아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남자 팬은 그리 흔한 편이 아니라, 한 번만 봐도 기억하기가 쉬웠다. 두어 번 오프라인에 참여하는 남팬을 심심찮게 본 적은 있는데, 오늘 본 사람은 승원도 초면이었다.

남자 팬들은 행동 양상이 거의 대부분 비슷했다. 주로 여자들로 이루어진 무리 안에서 특별한 자신의 성별을 어필하기 위해 거북하게 느껴질 정도의 과한 이상 행동을 보인다. 당연하지만 이미 팬덤 내에선 단단히 찍혀 있음에도 그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철면피 또한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승원이 가게 입구로 발을 들일 때까지도 시끄러운 플래시 소리가 이어졌다. 그래도 꽃향기는 좋았다. 하얀색과 분홍색으로 패턴처럼 수놓아진 꽃들을 만지작거리던 승원이 뒷덜미를 긁적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 역시 바깥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것인지 모두 승원을 보자마자 하나둘 웃음을 터뜨렸다.

“승원 씨!”

뒤늦게 가게 안으로 들어온 배 실장이 승원의 어깨를 콱 붙잡았다. 아니꼬운 눈빛으로 승원의 품에 안긴 꽃다발을 내려다보던 배 실장이 반쯤 질린 표정으로 승원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이 순진무구한 청년을 어찌하면 좋을까. 승원을 어떻게 하지는 못하고, 이를 악문 채 그녀가 지껄였다.

“그걸 받으면 어떡해요.”

“…그래도 주신 건데.”

“여기 선물 가져온 팬이 저놈 하나뿐이겠어?”

분명 속삭이는 건데도 귓가에 가까이 대고 있어서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가 달팽이관을 강타했다.

“저거 다 받아 주면 버릇만 나빠져.”

“저도 그건 아는데…… 안 그러면 가만히 안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다가 승원 씨 확 껴안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쩔 뻔했어. 덩치 산만 한 거 봤잖아. 남자라 힘도 무식해 보이던데.”

그것도 그랬다. 승원이 꽃다발을 가져가려는 순간에 민첩하게 피해서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확 덤벼 오는 손을 피하지 못할 뻔했다. 우당탕 쓰러져서 뒹구는 모습을 상상하니 조금 끔찍하긴 했다.

“다음부터는 조심해요.”

“…네. 이거 어떡할까요?”

“나 줘요. 영찬 씨한테 차에 실어 놓으라고 할게요.”

“네. 그럼 부탁드려요.”

승원의 꽃다발을 수거한 배 실장이 가게 뒤쪽으로 나가는 걸 확인하고 승원은 덥게 느껴지는 실내 공기에 얼른 겉옷을 벗었다. 깔끔한 아이보리색 폴라 티를 손으로 매만지던 승원이 자신을 부르는 동료들 무리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오자마자 혼났어?”

“……아니요. 혼난 건 아니고.”

“윤승원이 어떤 윤승원인데. 과보호할 만하지, 하하!”

이미 손에 음료수 잔을 들고 있던 고참 선배들이 승원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기다란 잔에 뽀글뽀글 탄산이 가득한 걸 보니 그냥 사이다가 확실하긴 한데, 어쩐지 다들 술 한 잔씩들 걸친 얼굴이었다. 벌써 반이 넘게 채워진 가게 안이 북적거렸다. 여기저기 드라마 축하 플래카드가 천장과 벽을 메운 채였다.

“얼른 가서 인사나 하고 와. 코트 여기다 놓고.”

“네네.”

서로 뒤엉킨 사람들의 목소리와 테이블 벨 소리, 종업원들이 정신없이 밀고 다니는 카트 소리가 한데 뒤섞였다.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마시고 자리를 뜨려던 승원을 또 누군가가 붙잡았다. 셀카를 찍자고 핸드폰을 들이미는 스태프에 승원은 얼른 비즈니스 미소를 띠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다가오는 이들과 악수를 하고 간단한 스몰토크를 했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마음을 비우고 보내는 게 나을 듯싶었다.

“자자, 우리 배우분들 너무 고생 많았구요. 저번 주에 우리가 또 기가 막힌 성적을 내지 않았습니까? 첫 방송 기준 케이블 드라마 역대 시청률 기록!”

박수와 함성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거대한 슈거 케이크에 데코되어 있는 차서희와 승원의 미니어처 캐릭터가 아기자기했다. 뒷짐을 진 채 김 감독의 연설을 듣는 승원의 뺨이 적당한 취기에 발그레했다. 그거보다 몇십 배는 더 새빨간 얼굴의 김 감독이 머리를 넘기며 다시 마이크를 두드렸다.

“아아, 이제 시작이긴 하지만, 그래도 첫출발이 산뜻하니 감독으로서는 한시름 덜 수 있을 거 같고… 우리 승원 씨, 서희 씨를 비롯해서 여러분들이 너무 잘 따라와 줬잖아요. 우리 윤채은 작가도 그렇고, 다 같이 힘써 주신 여러분들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하고!”

김 감독이 간만에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다들 경청하는 것 같으면서도, 테이블 하나하나를 둘러보면 저들끼리 재밌는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옆을 힐끗 보자, 차서희도 저 멀리 있는 동료 배우들을 향해 장난을 치느라 바빴다.

“이런 걸 또 나만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 승원 씨랑 서희 씨도 한마디씩 할까요?”

훈화와도 같은 긴 감상들을 펼쳐 놓던 김 감독이 드디어 주연 배우 둘에게 시선을 돌렸다. 입가에 손을 얹어 환호하는 사람들을 어색하게 바라보고 있던 승원에게로 마이크가 넘어왔다. 얼떨결에 받아 든 승원이 차서희를 한 번 바라보았다.

“저부터…….”

“응, 승원이 먼저 해.”

몸을 뒤로 뺀 차서희가 승원에게 턱짓하며 제 차례를 미뤘다. 편안한 자리라고 생각해 거창한 소감 같은 걸 따로 준비해 오진 않았던 터라, 승원은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는 걸 느꼈다. 모두의 시선이 마이크를 잡은 승원에게로 향했다. 으음, 목을 울리자 마이크를 통해 온 공간에 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승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 안녕하세요, 유정원 인사드립니다.”

“와! 정원이 멋있다!”

승원의 인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유정원은 승원의 극 중 이름이었다.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꼭 붙잡은 승원이 90도로 인사를 하고 말을 이었다.

“일단 감사하다는 말씀을 가장 앞서서 드리고 싶고요. 감독님하고 작가님, 저랑 계속 좋은 호흡 맞춰 준 서희 누나…… 이분들을 비롯해 함께 애써 주신 우리 동료분들 모두, 여기까지 함께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 때문에 촬영도 미뤄졌었고, 그랬기에 더 완벽하고 탈 없이 끝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딜레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탈하게 마무리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술을 마셨음에도 뭐 하나 씹지 않은 정갈한 발음과 성실하기 그지없는 소감까지. 허리를 숙여 다시 인사를 하는 예쁜 주연 배우에게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어……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감사 인사를 남기니까 딱히 할 말이 없어지는데……. 그럼 저는 이만 말을 줄이도록 하고, 서희 누나한테 마이크 넘기겠습니다. 술을 좀 마셔서 제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여튼, 너무 감사드리고 저는 이만 남은 자리 즐기면서 분위기 만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빨개진 귀를 긁적거리다가 마지막에는 나름 목청 큰 인사를 남기며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승원은 얼른 차서희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발언권을 건네받자마자 능청스럽게 분위기를 잡는 차서희를 보며 승원이 얌전히 웃었다. 저 멀리 배 실장이 승원을 바라보며 엄지를 척 날렸다. 쑥스러운 기분에 괜히 뒷덜미를 긁적였다.

9시에 가까워지자 슬슬 분위기가 눅눅하게 무르익었다. 쉴 새 없이 요청되는 사인과 셀카도 모두 끝마친 승원은 구석에 앉아 사이다를 나눠 마시며 숨을 골랐다.

아직도 지치지 않는지 건배사를 외치며 술잔을 부딪치는 사람들을 멀찍이 지켜보던 승원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을 보자마자 승원은 얼른 핸드폰을 숨겼다.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가게 화장실로 향했다.

전화가 끊어질까 봐 몸이 다급했다. 좁은 화장실의 문을 잠그고 칸 안으로 들어간 승원이 칸까지 문을 잠갔다. 혹시 창이 열려 있지는 않나 꼼꼼하게 확인을 하고 난 후에야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 잘 즐기고 있습니까.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정신없는 곳에서 몇 시간을 내리 지내다가 그의 음성을 듣고 있으니, 모든 게 씻겨 내려가듯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긴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승원은 권 대표의 목소리 하나로 어깨가 축 풀어졌다.

“저는 이제 나가려고요.”

- 술은.

“……조금 마셨어요. 많이는 아니고.”

달달거리는 환풍기 소리가 거슬려 승원은 볼륨을 최대치로 키웠다. 권 대표의 쪽에서 희미한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이윽고 담배를 빠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그가 후우, 연기를 내뱉었다.

- 매니저한테 말하고 외곽으로 나와서 내 차로 옮겨 타세요.

승원이 설마 싶어 물었다.

“…대표님, 지금 저 기다리고 계세요?”

- 오래는 아니고. 한 시간 정도 된 거 같은데.

승원이 칸막이벽을 무딘 손톱으로 긁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언질조차 없었기에 그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조금 기대해 봤자, 오늘은 그에게 연락해 그의 집에서 잠을 자야겠다고 마음먹은 정도가 다였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왜 기다리셨어요.”

- 그래서 전화한 거 아닙니까. 언제 끝나냐고 독촉하려고.

“저 얼른 나갈게요.”

승원의 말에 그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서두르다가 괜한 의심 받지나 말고, 천천히 나오세요.

“……네.”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그러고도 전화가 바로 끊어지지 않아 승원의 쪽에서 먼저 끊기 버튼을 눌렀다. 잠시 멍한 얼굴로 변기에 앉아 있던 승원은 정신 줄을 바로잡고 벌떡 일어났다. 문을 박차고 나와 세면대 물부터 틀었다. 콸콸 쏟아지는 물에 손을 벅벅 닦으며 옷에 밴 냄새를 확인했다.

퀴퀴한 고기 냄새에 승원은 급한 대로 손에 비누칠을 했다. 거울에 비치는 토마토 같은 얼굴에 찬물을 적셨다. 그대로 손을 들어 기름 내음이 남아 있을 머리를 다듬었다. 그러나 지금 꼬락서니로 봐서는 호박에 줄 긋는 거밖에 더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칫솔부터 챙겨 와야겠다. 승원은 오늘 있던 스케줄 중 그 어느 때보다 성급하고 들뜬 마음으로 화장실을 박차고 나갔다. 얼른 그가 보고 싶었다.

***

외진 도로에 라이트를 반짝이며 밴이 정차했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은색 외제 차가 서 있었다. 차 밖으로 나온 승원은 밴을 보내고 나서야 걸음을 서둘러 자신을 기다리는 차로 향했다. 주변을 휙 둘러보고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뭡니까. 그 선글라스는.”

운전대를 잡고 있던 권 대표가 벨트를 끌어오는 승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황당하단 표정을 짓던 그가 픽, 웃음을 흘렸다. 그가 손을 내밀어 승원의 턱을 붙잡아 돌렸다.

“…잠깐만요.”

“왜요.”

“냄새날 것 같은데…….”

“…그 검은 알부터 좀 벗고 말하지.”

그가 기다란 검지로 테를 살짝 내렸다. 눈 밑으로 선글라스가 툭 떨어지자 동그랗고 큰 눈망울이 드러났다. 가지런한 속눈썹에 얇은 쌍꺼풀은 오늘따라 더욱 짙어 보였다. 술을 정말 마시긴 한 모양인지 눈가가 옅은 분홍색이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승원이 몸을 슬쩍 뒤로 물렸다.

“연예인 티 내고 싶어서 그런 겁니까? 야밤에 선글라스를 다 끼고.”

“…음식점 빠져나오고… 매니저 형이 차 옮겨 탈 거면 혹시 모르니까 그냥 쓰고 있으라고…….”

“나 연예인이라고 광고하는 꼴 같습니다.”

권 대표가 승원의 손을 다시 끌어당겼다. 힐끔힐끔 그를 바라보다가도 승원은 자꾸만 눈을 깔았다.

“대표님… 저 냄새 나지 않아요?”

“무슨 냄새.”

“…저 고깃집에 있다가 왔잖아요. 고기 냄새고 기름 냄새고…… 장난 아닐 것 같은데.”

다행히 밴에 여분의 옷이 있어서 급한 대로 그걸로 갈아입고 탈취제도 뿌렸다. 그래도 몸에 밴 냄새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기에, 승원은 여전히 제 몸에 남아 있을 거북한 음식 냄새가 신경 쓰였다.

다시 나가서 찬바람에 몸이라도 털고 들어온다고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참에 권 대표가 승원의 팔을 휙 끌어당겼다. 순간 앞으로 쏠린 몸에 승원이 콘솔 박스를 간신히 짚었다. 그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자꾸 무슨 냄새가 난다는 겁니까.”

“…….”

“차에 타서 여태 내 눈도 똑바로 안 보고.”

눈동자를 지그시 훑으며 목을 울리는 권 대표의 시선이 끈덕지게 승원의 얼굴을 훑더니 이내 입술에 도달했다.

“혀도 못 섞을 정도입니까?”

이미 눈빛으로는 승원의 입술을 반쯤 집어삼킨 듯한 그가 물었다.

“…양치하고 왔어요. 구석구석…….”

“왜. 나랑 키스하려고?”

승원의 뺨 한쪽을 감싸 쥔 권 대표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통통하게 튀어나온 아랫입술을 그가 엄지 끝으로 누르며 매만졌다. 심장이 쿵쿵 뛰는 통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냄새가 날까 경계를 하고 있던 것도 다 잊어버리고는 가지런히 모은 손으로 주먹을 만든 채 승원이 입술을 벌렸다.

“…네. 해 주세요.”

찰칵, 승원의 벨트가 풀려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쑥 델 듯 뜨거운 입술이 맞붙어 왔다. 흠칫 떨린 승원의 손끝이 서로를 꾹 잡았다.

이미 벌어져 있던 입술을 머금으며 혀를 넣은 그가 부드럽게 안쪽을 헤집었다. 뒤섞이는 혀가 달콤하게 서로의 타액을 나누었다. 승원의 뒷목을 당긴 권 대표가 몸을 바짝 붙여 왔다. 승원의 몸이 속절없이 그에게 이끌렸다.

“하, 으응, 읍…….”

입 안에만 겉도는 혀는 꼭 배 속까지 가득 들어와 속을 뒤집는 것 같았다. 뿌옇게 변한 머릿속이 본능만을 따르려는 듯이 모든 사념을 지웠다. 알싸한 권 대표의 혀끝을 맛보며 승원은 먹혀드는 숨을 빼앗기지 않으려 끙끙댔다. 그런 승원의 템포에 맞춰 주려는 듯이 권 대표는 중간중간 혀를 거두고 숨 쉴 틈을 내주었다.

침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붙인 채로 권 대표가 거칠게 지껄였다.

“…무슨 냄새가 난다고.”

“…….”

“단내만 진동을 하네.”

그리고는 다시 승원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오래도록 굶주린 사람처럼 그는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입 안에서 제멋대로 뒤섞인 타액이 목젖에 길게 걸려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바르작거리는 숨을 나누어 쉬며 승원은 권 대표의 옷깃을 힘겹게 붙잡았다.

“……흣, 으으, 응…….”

“이 얼굴을 하고 저녁 내내 사람들을 만난 겁니까.”

“아아…… 대표님-, 읏.”

승원의 붉은 눈가를 강하게 짓누른 그가 혀를 세워 입술을 길게 핥았다.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감각에 승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끝날 듯 끝날 것 같지 않은 농밀한 입맞춤은 계속 이어졌고, 가뜩이나 술기운에 달아 있던 승원의 몸은 예민하게 움찔대기 바빴다. 그의 손끝이 닿는 곳마다 자두 빛의 자국이 불그스름하게 떠올랐다.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보내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마지막으로 승원의 둥근 이마를 드러낸 그가 쪽, 입을 맞췄다. 그리고 차례로 눈, 코, 입 순으로 진득한 키스가 이어졌다. 입술에는 도장을 찍듯이 쪽쪽 버드키스를 남겼다. 입 안이 그가 헤집고 지나간 강한 열기에 녹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승원은 온몸이 다 풀리는 듯한 감각에 상체를 그에게 길게 늘어뜨렸다.

“대표님 보고 싶었어요. 엄청 많이…….”

승원의 등을 몇 번 쓸어 만지던 그가 제자리로 승원을 부드럽게 밀어 주었다.

“진심입니까, 아니면.”

“…….”

“애교 비슷한 겁니까?”

자신을 웃으며 바라보는 권 대표와 빤히 눈을 마주치던 승원이 우물쭈물하며 벨트를 끌어왔다.

“…두 개 다요.”

“나쁘지 않네.”

짧게 덧붙인 권 대표가 기어를 바꾸고 핸들을 돌렸다. 도착한 지 20분이 지나서야 드디어 차가 도로 위를 굴러 나갔다. 번화가가 아니어서인지 자정이 넘은 도로 위가 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종방연은 안 가는 게 나았습니다.”

“…왜요?”

입술에 남은 온기의 여운을 손끝으로 문지르던 승원이 운전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차창으로 들어온 느긋한 빛이 권 대표의 얼굴 위로 가득 떨어졌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대체 그 꽃다발은 무슨 생각으로 받은 겁니까?”

“…아. 소식이 벌써 거기까지.”

“이미 기사까지 다 떴습니다. 내가 그딴 새끼 보겠다고 종방연 영상을 확인한 게 아닌데.”

고저 없는 목소리였지만, 어투가 거칠었다. 터널 안으로 잠시 진입한 차가 부웅, 소리를 내며 달렸다. 계기판을 확인하자 작은 바늘이 급격하게 위로 치솟고 있는 게 보였다. 터널 안 주황 불빛을 받은 권 대표의 얼굴이 순간 사나워 보였다.

“원래 알던 놈입니까?”

그가 심문하듯 물었다.

“…아니요, 그 남자 팬은 오늘 처음 보고.”

“그럼, 그런 놈들이 더 있다는 겁니까? 전부 남자?”

애초에 그렇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백 퍼센트에 가까운 확률로 남자일 때가 많았다. 승원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앞을 바라봤다. 대답하는 건 괜히 권 대표의 짜증만 더 돋우는 일 같았다.

“꽃다발 그거 갖다 버리세요.”

“…네?”

“그 새끼가 거기에 뭘 숨겨 놨을 줄 알고.”

“…그래도 좋은 뜻으로 줬을 텐데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뉴스 같은 거 못 봤습니까. 지금이야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옛날에 보면 과자에다가 이상한 약을 타지를 않나, 선물에다가 칼심을 심어 놓지를 않나. 별의별 정신병자들 많았습니다. 아무리 팬이라고 해도 무슨 음흉한 마음을 품었을 줄 알고. 거기다 여자도 아니고 그런 덩치 산만 한 남자를.”

“…….”

잔소리 비슷한 것이 따발총처럼 이어졌다. 승원은 멍하니 앞유리만 바라보며 입술을 꾹꾹 눌렀다. 권 대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지금 필요 이상으로 열을 내고 있었다.

“경호원이라는 작자들은 폼으로 있는 겁니까. 남자 하나 막지도 못할 거면 거긴 왜 지키고 있었답니까?”

빨간불을 맞닥뜨린 차가 급하게 멈춰 섰다. 그 어떤 차보다 월등한 승차감을 가졌던 권 대표의 차가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차가 진동한 걸 자신도 느꼈는지, 권 대표가 얼른 승원의 쪽으로 손을 가져다 막았다. 핸들에 불량스레 손을 얹은 채 승원은 곁눈질로 힐끔 바라보던 그가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예쁜 건 알아 가지고.”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오른 귀 끝을 승원이 긁적이며 매만졌다. 얼른 다른 화제로 돌려야겠다 싶어서 제 팔을 한참 주무르다 말고 승원이 입을 열었다.

“…저 어땠어요?”

권 대표의 시선이 돌아왔다.

“영상 보셨다고 하길래…. 혹시 어색하게 굴거나 이상하진 않았는지.”

“빨리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게 눈에 훤하던데.”

“…네?”

“동료들이랑 마무리는 잘했습니까.”

당황해하는 승원의 얼굴을 보며 살짝 웃은 권 대표가 팔을 뻗었다. 승원의 머리칼을 곡진하게 쓸어 만지며 그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네. 재밌었어요. 불편한 일도 없었고, 인사도 잘 나누고…….”

“눈에 안 띄게 도망은 잘 나왔고?”

머뭇거리던 승원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에 이마 선을 타고 떨어진 그의 손등이 승원의 둥그런 볼을 매끄럽게 쓸었다. 파란불로 바뀌는 신호에 그가 손을 떨어뜨리고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더 만져 줬으면 좋겠는데, 운전 중인 사람에게 어리광을 피울 수도 없었다. 승원은 아쉬운 마음에 입맛만 다셨다.

“윤승원 씨.”

무심한 시선은 여전히 앞만 향하고 있었다. 어느새 빌딩이 가득한 도심으로 들어온 차가 색색의 가로등 조명을 받으며 빠르게 달렸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승원도 권 대표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 어딜 가는지 궁금하진 않습니까?”

“…어디 가는 건데요?”

권 대표의 말에 승원이 그대로 질문하자,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내가 어딜 데려갈 줄 알고 그렇게 고분고분 있는 겁니까.”

“…저는 당연히 집으로 가는 건 줄 알고.”

“난 지금 호텔로 가려고 하는데.”

전방만 향하던 시선이 옆으로 넘어왔다.

“가자는 의도야 훤히 보일 테고.”

“…….”

“지금이라도 어렵겠으면 말하세요. 차 돌릴 테니까.”

말을 마친 권 대표가 다시 액셀을 주욱 밟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차는 그의 말과는 다르게 직진밖에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승원은 허벅지 위에 있는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갑자기 배 속이 들끓듯이 뜨거웠다. 열이 온몸으로 번지는 것 같아 승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 하루 빡센 일정에 피곤하기도 했고, 술까지 먹은 몸이라 오늘은 마음 편히 침대에 누워 쉬는 게 제일이었지만, 정말로 집에만 간다면 그건 또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근래 너무 바빠서, 이 늦은 밤에 함께 나온 것도 간만이었다.

“피곤하진 않습니까.”

“…조금 피곤하긴 한데.”

“그냥 집으로 갈까.”

“아니요. …괜찮아요, 저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돌리면서도 권 대표는 남은 손을 뻗어 승원의 뺨을 문질렀다. 주인을 반기듯 승원이 그의 손바닥에 제 얼굴을 가득 붙였다.

“내가 가서 뭘 할지 뻔히 알 텐데.”

“…….”

“그래도 가고 싶습니까?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무리하는 것 같으면 솔직하게 말하세요.”

“진짜 괜찮아요. 그리고 어차피 집에 가더라도 잠만 잘지는 모르는 건데…….”

승원 뺨을 쓰다듬던 그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승원에게 시선을 던졌다. 빤히 들여다보던 검은 눈동자가 어느덧 눈매와 함께 반달로 휘어졌다. 그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바람 같은 웃음을 보였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집으로 간다고 하면 난 윤승원 씨 털끝 하나 안 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

“나랑 하고 싶어 죽겠다는 말로밖에 안 들리는데.”

희미하게 남아 있는 웃음기는 떠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호텔 빌딩이 커다랗게 보이는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면서도 권 대표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린 채 핸들을 움직였다. 승원은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와 창틀에 손을 얹고 가로수 사이의 조명만 빤히 바라보았다.

당연히 주차장으로 향할 줄 알았는데, 권 대표는 차를 건물 입구 앞에 정차했다. 깜빡이만 켠 채 승원의 벨트를 끌러 준 그가 문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승원의 손에 자주색 카드 키가 들렸다.

“올라가세요.”

“…대표님은요?”

잠시 조수석 쪽으로 고개를 낮춘 채 건물 안쪽의 분위기를 살피던 권 대표가 말했다.

“같이 들어가면 불안할 거 같아서.”

“…….”

“먼저 들어가 있으면, 몇 바퀴 돌다가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그가 대신 손을 뻗어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승원이 선뜻 밖으로 나가지 못하자, 승원의 팔을 끌어당긴 그가 짧게 입을 맞췄다. 따뜻한 온기가 입술을 순식간에 덮고 지나갔다.

“바로 갈 테니까, 씻고 있어요.”

승원은 결국 떠밀리듯 바깥으로 나와야 했다. 안온하게만 느껴지던 차 내부와는 달리, 바깥은 적당한 밤공기로 으스스했다. 자신을 내려 준 은색 차가 저 언덕 밑으로 멀어질 때까지 승원은 가만히 서서 그가 떠난 자리를 응시했다.

이럴 때면 승원은 자신의 직업이 유독 원망스러웠다. 제 직업이 배우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남들 눈치를 볼 일이 덜했을 텐데.

느긋하게 돌아가는 회전문을 통과하자 샛노란 조명이 널찍하게 로비 중앙을 밝히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방문객 몇 명이 안락한 소파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침을 조금만 해도 뻥 뚫린 공간에 모든 소리가 커다랗게 울릴 것 같았다. 승원은 외투를 잔뜩 여민 채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통유리 바깥으로 도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림 같은 야경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던 승원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가 오기 전에 몸에서 나는 냄새부터 빼고 싶었다. 정작 권 대표는 무슨 냄새가 나냐며 구시렁거렸지만, 그것도 다 빈말일 게 뻔했다. 고깃집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온 사람한테서 단내가 난다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성급하게 씻고 나왔는데도 권 대표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 승원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도중에도 조금의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얼른 전원을 끄고 귀를 기울였다. 몸에서 나는 향기로운 바디 워시 맡으며 냄새를 다시 점검한 승원은 여전히 허전한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털썩 앉았다.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그가 남겨 놓은 연락은 없었다.

머리까지 전부 말리고 자리에 앉기까지 20분은 더 소모한 것 같은데. 아늑해 보이던 호텔 방 안에 혼자 남겨진 기분은 그리 달갑지 못했다. 전화를 할까 핸드폰을 들었던 승원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는 마음으로 도로 내려놓았다.

혼자 넓은 방을 구석구석 구경했다. 이렇게 생긴 방은 또 처음이었다. 아마 승원이 지금까지 들렀던 곳 중 가장 비싼 방일 것 같았다. 성인 남자 둘이 누워도 충분히 남을 듯한 거대한 침대를 쿵쿵 두드리다가 승원은 가벽 너머로 몸을 이끌었다.

안락의자 같은 것이 통유리 옆에 놓여 있고, 둥그런 테이블에 거꾸로 뒤집어져 있는 술잔이 보였다.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잠시 앉아 다리를 뻗고 있던 승원은 지루함에 시트 가죽을 긁적이다가 저 옆에 보이는 미니바로 향했다.

노란 불빛 아래로 만만치 않은 도수의 양주들이 칸칸이 진열되어 있었다. 값비싼 술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세세히 들여다보는 건 처음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술 하나를 꺼내 병에 적힌 문구를 읽어 보았지만, 빼곡하게 적혀 있는 영어는 해석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술을 거꾸로 뒤집자 작은 물방울이 도르륵, 위로 올라갔다.

승원은 내친김에 비치되어 있던 양주잔을 들었다. 집게로 얼음 몇 개를 꺼내 잔에 넣고는 술과 함께 테이블로 가져왔다. 곧장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면 별처럼 수놓아진 아름다운 야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삼 분의 일 정도를 따르고 잔을 들자 호박색의 액체가 찰랑거렸다. 얼음과 함께 뒤섞여 달그락거리는 잔을 들여다보던 승원이 조심스레 그것을 입에 댔다. 입술을 살짝 적셨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쓰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조금 더 용기를 내 승원이 술잔을 휙 들었다. 그리고는 안에 담긴 액체를 목 뒤로 넘겼다.

“…켁…….”

급하게 잔을 내려놓은 승원이 뜨겁게 타오르는 목을 매만졌다. 가운 아래의 맨다리가 절로 오므라들었다. 얼음까지 넣어서 좀 희석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여기가 호텔이 아니라 병원 진료실처럼 느껴졌다. 식도를 완전히 적신 알코올이 맵고 뜨거웠다.

예전에 권 대표의 집에 갔을 때, 그도 이런 비슷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가 술에 잔뜩 취해 승원을 찾아왔을 때도 그에게선 지금 승원의 손에 들린 술과 비슷한 향이 났었다. 그때 그의 냄새를 다시 떠올리며 승원은 얼음이 녹도록 정성스레 잔을 돌렸다.

한창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벨 소리가 들렸다. 번쩍 고개를 든 승원의 두 뺨은 블러셔라도 덧바른 것처럼 진한 핑크빛이었다. 테이블을 짚고 일어난 승원이 샤워 가운의 끈을 단단히 조이고 객실 문으로 급히 다가갔다. 문틈에 입술을 가져다 댄 승원이 목을 가다듬었다.

“누구세요.”

- 잠깐 문 좀 열어 보세요.

반가움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애써 침착함을 다진 승원이 문고리를 꾹 잡은 채로 주절댔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 …그래서 안 열어 줄 겁니까.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이번엔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늦게 온 게 괘씸하기도 해서 능청 한번 떨어 본 건데. 그에게서 대답이 없으니 괜스레 불안해져 잠금장치를 풀려던 때였다.

- 너 먹으러 왔지.

문고리를 잡고 있던 승원의 손이 스르륵 풀렸다. 이마 끝까지 새빨개진 얼굴이 얼얼할 정도로 뜨거웠다. 문 너머에서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충분히 씻고 기다리라고 늦게 온 건데.

“…….”

- 다 씻었습니까.

“…네…….”

불투명한 목소리를 들으며 승원이 기어들어 가는 듯이 대답했다.

- 빨리 열어, 그럼.

잠금을 풀고 승원이 문고리를 당겼다. 서서히 벌어지는 틈 사이로 승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느긋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권 대표가 있었다.

승원의 샤워 가운을 무감한 눈빛으로 훑은 그가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철컥 닫힌 문에 등을 기댄 채 권 대표가 승원의 턱을 가볍게 쥐었다. 승원의 얼굴 앞에 코를 바짝 들이대고는 그가 이리저리 고개를 기웃거렸다. 당장이라도 입술이 닿을 것 같아 승원은 뻣뻣하게 경직됐다.

순간 날카로운 눈빛이 승원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뭐 마셨습니까?”

“……아니요.”

거짓말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갑작스레 압박을 받으니 왠지 마셨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두 눈동자를 가득 모은 승원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안 나던 술 냄새가 나는데.”

“…….”

“혼자 뭐 하고 있었습니까.”

안으로 말아 문 승원의 입술을 쭉 밀어 꺼낸 그가 연한 살을 지그시 눌렀다. 침이 발린 입술을 미끄럽게 쓸어 만지던 권 대표는 갑자기 승원을 한 손으로 번쩍 안았다.

“……흣, 대표, 님……!”

침대까지 거리가 한참이었다. 그가 승원을 안아 들며 가운도 함께 밀어 올린 탓에 뽀얀 엉덩이가 그의 손바닥에 가득 닿았다. 차가운 손끝이 탱탱한 볼기를 짓궂게 건들며 문질렀다. 손가락이 닿는 곳마다 진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윤승원 씨.”

제 이름을 부르는 권 대표를 바라보기 무섭게 입술이 거칠게 붙어 왔다. 승원을 한 팔로 가볍게 안았는데도 힘든 기색 한 번 보이지 않던 권 대표는 키스도 무자비하게 퍼부어 댔다. 틈을 비집고 들어온 혀가 앞뒤 보지 않고 무작정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권 대표의 목을 힘겹게 끌어안은 승원이 밭은 숨을 뱉었다. 건조한 살을 그가 손끝으로 건들며 희롱했다. 골 사이로 손가락이 들어오자 승원은 혀를 섞으면서도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소파 중앙 테이블에 무언가를 올려놓은 권 대표가 승원을 다시 안아 들었다. 순간 높은 허공으로 휙 들린 승원이 화들짝 놀라며 그의 어깨를 꾹 눌러 잡았다. 그사이에 갈무리하지 못한 타액이 입술 밑으로 길게 흘렀다. 통유리 옆 테이블 위로 빈 술잔과 뚜껑이 열려 있는 양주가 보였다. 권 대표가 미소 지었다.

“아까보다 얼굴이 배로 붉은데.”

“…….”

“이 꼴을 하고 안 마셨다고 하면 내가 속아 줄 줄 알았습니까?”

승원의 맨 엉덩이를 두 팔로 단단하게 붙들어 들고 그가 다시 승원에게 입을 맞췄다. 농밀한 키스가 이어졌다. 권 대표에게서도 알싸한 허브 향이 났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승원은 버겁게 그의 혀를 받았다. 키스가 다른 때보다도 한참 짙고 길었다. 봐주지 않는 움직임에 그의 은근한 손짓까지 더해져서인지, 골 안쪽이 간질거렸다.

드디어 침대에 다다랐다. 승원을 침대로 내던진 그가 당장 재킷을 벗어 바닥에 던졌다. 넥타이를 풀어 당기는 손에 핏줄이 울긋불긋 도드라졌다. 가운 아래의 성기가 시각적인 자극에 이기지 못하고 작게 꺼떡거렸다. 승원은 가운 끈을 꾹 붙잡고 셔츠 단추를 푸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바로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

“일단 한 발만 빼고.”

철컥이는 벨트 소리가 야했다. 승원은 극도로 몸이 달아 있었다. 상당한 도수의 알코올이 몸 안에서 더운 기운을 내뿜으며 넘실댔다. 배 아래가 묵직하게 달궈졌다. 윤곽이 그대로 드러난 그의 허벅지 한쪽이 답답해 보였다. 그가 바지를 내리자, 거대하게 발기한 성기가 퉁 튀어 올랐다.

“가운 벗어.”

승원이 숨을 고르다가 끈을 잡고 있던 손을 떼어 냈다. 그리고 발그레한 얼굴로 말했다.

“……대표님이 벗겨 주세요.”

그가 곧장 끈을 당겼다. 손쉽게 풀어진 끈을 풀어 헤치고 가운을 열자 숨어 있던 뽀얀 나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운을 옆으로 완전히 펼쳐 놓자 서늘한 공기가 가슴과 배, 하체에 내려앉았다. 팔로 입술을 묻고 승원이 고개를 틀었다.

침대 한쪽이 기울어졌다. 그가 무릎 하나를 침대에 올리고 위로 올라왔다. 덮쳐 오는 권 대표의 몸에 시야가 그늘졌다. 그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승원의 팔을 잡고는 위로 번쩍 올렸다. 그의 손아귀에 속박된 팔뚝이 시트에 붙어 단단히 고정됐다. 가운에서 팔을 꺼내자 겨드랑이 사이로 바람 같은 게 들어오는 것 같았다. 겨드랑이 위쪽에 입술을 묻은 그가 혀를 내밀어 쭉 핥아 올렸다.

“아, 흐읏…….”

승원이 반사적으로 신음했다. 몸을 오므리고 싶었지만, 꽁꽁 묶인 팔이 꼿꼿하게 굳어 있었다. 살갗에 뜨거운 혀가 뭉근하게 와 닿았다. 팔뚝의 여린 살을 잇새로 살살 물던 그가 승원의 허리를 가지런히 건드리며 쓸어내렸다. 몸 안의 모든 말초 신경이 눈을 번쩍 떴다.

따뜻한 손바닥이 서늘한 공기를 맞닥뜨린 피부를 진정시키려는 것처럼 온 힘으로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한참 배회하던 손끝이 승원의 도드라진 젖꼭지를 튕기듯 건드렸다. 허리를 추켜세운 승원이 눈을 찡그렸다.

“……읏.”

“좋아?”

“으, 으응…….”

살도 없는 판판한 가슴을 마사지하듯 그가 둥글게 잡아 비볐다. 곧이어 뾰족하게 세운 혀로 돌기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배꼽 가까이에 닿은 기둥이 파들파들 떨렸다. 희미하게 핏줄을 세운 성기의 귀두 끝이 붉었다. 투명한 점액을 길게 늘어뜨렸다.

곧 뭐가 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가슴 주위가 이상했다. 승원은 그의 뒤통수를 힘껏 끌어안았다. 유륜을 손끝으로 둥글게 문지르던 그가 돌기를 입에 가득 머금고 빨았다. 동시에 발끝이 곱아들었다. 달아오른 술기운에 승원은 어느 때보다도 몸이 예민했다.

“으, 아흐읏…… 대표님…….”

“여기 빨아 주면 환장하잖아.”

“흐으…….”

그가 코를 묻는 곳마다 달콤한 바디 워시 향이 났다. 사탕을 입에 넣고 굴리듯이 그가 승원의 유두를 입에 머금고 지칠 때까지 놀렸다. 시시각각 변하는 발그레한 얼굴이 야했다. 허벅지를 잔뜩 맞붙인 자태가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가뜩이나 터질 것 같은 좆이 승원을 보자 불끈거리며 크기를 키워 나갔다.

잇자국이 그대로 난 젖꼭지를 놓아준 권 대표가 위로 얼굴을 들었다. 승원의 턱에 입을 맞췄다. 승원은 벌써부터 가는 숨을 헐떡대고 있었다. 입술 사이로 입김이 피어오르듯 뜨거운 열기가 떠올랐다.

침대가 다시 한 번 출렁였다. 다시 뒤로 몸을 물린 그가 승원의 허벅지를 잡아 옆으로 벌렸다. 허벅지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골 사이로 들어올 줄 알았던 손은 위를 타고 넘어와 승원의 발기한 성기를 잡았다.

“남의 자지 빨아 보는 건 처음인데.”

“네? …하으읏……!”

승원이 이불을 필사적으로 움켜잡았다. 귀두 입구로 무언가 뜨거운 막이 씌워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권 대표가 자신의 성기를 입에 물고 있었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제 좆을 입에 문 남자가 훤히 보였다. 승원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그가 지그시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승원은 믿을 수 없어 다리를 오므렸다. 당연하지만, 그의 악력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제지되었다.

“으, 하지, 마세요……. 이상…… 이상해…….”

“이 좋은 걸, 혼자 하고 있었습니까.”

경악하는 승원에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 지은 그가 자그마한 성기를 입에 물고는 느릿하게 문질렀다. 그의 입 안 점막에 제 귀두가 비벼졌다. 야릇한 감각에 배가 부글부글 끓었다. 기둥 밑동을 정성스레 간질이는 손길에 승원이 힘겹게 소리 냈다.

“…읏…… 으응, 아으그, 하…….”

“전부터 궁금했는데.”

그가 성기를 입에 문 채로 말했다. 그가 소리 낼 때마다 입 안이 가득 울려 간지러웠다. 침대 끝자락에 간신히 걸쳐 놓던 발가락을 오므렸다.

“윤승원 씨는 좆에도 털 하나가 없네.”

“흐, 으응…… 하아…….”

“크기도 귀엽고.”

그가 고환 두 쪽을 손톱 끝으로 쓸었다. 사정감이 입구 끝까지 밀려왔다. 승원이 배꼽 아래를 부르르 떨었다.

“내 자지 빨겠다고 환장하던 윤승원 씨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느릿하던 움직임이 승원의 반응을 확인하더니 조금 빨라졌다. 침이 뒤섞이는 소리와 살이 밀리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깔짝거리며 쭉쭉 빨아 대는 통에 안에 있는 모든 물기를 금방이라도 다 토할 것만 같았다. 어깨를 힘껏 올린 승원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가 혀로 기둥을 빙 둘러 핥았다. 홈이 보이는 귀두를 힘껏 눌러 자극했다.

“흣…… 으읏…… 흐으읍…… 응…….”

승원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입 안에 가득 쌌다. 말릴 틈도 없었다. 쾌락에 깊이 젖은 몸은 곧 사정하려던 성기의 반응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옆으로 늘어진 상체가 무겁게 까라졌다. 조금 길게 이어지는 승원의 사정이 완전히 잦아들 때까지 권 대표는 입을 빼지 않았다. 그의 입 안에 승원이 싸지른 정액이 우물처럼 고여 갔다.

몸을 일으킨 권 대표의 목젖이 크게 꿀렁였다. 제 것을 삼킨 줄도 모르고 승원은 여운을 털어 내려 가슴을 들썩였다. 혀끝으로 입술을 닦은 권 대표가 승원의 성기를 다시 쥐었다. 역시나 잔열감이 남은 몸이 펄럭 튀어 올랐다.

“흐으읏……!”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쓰린 두통이 오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승원이 손을 뻗어 제 성기를 가렸다. 조금만 손이 닿아도 감전되는 듯이 아팠다. 승원의 발목에 입을 맞춘 권 대표가 잠시 가벽 너머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그의 손엔 승원이 먹고 비운 잔과 양주가 들려 있었다.

“이 술 도수가 몇인 줄은 알고 마신 겁니까?”

“…….”

“소주도 입에 못 대면서 이건 왜.”

짧게 비소한 권 대표가 호박색의 술을 담아 그대로 들이켰다. 승원의 정액이 가득 들어왔던 입을 헹구듯이 깔끔하게 삼킨 그는 표정 한 번 바꾸지 않았다. 몽롱하게 그를 올려다보던 승원이 말했다.

“…대표님은 엄청 잘 드시잖아요…….”

“네가 나랑 같나.”

그가 웃었다.

“그래서 저도 제대로 마셔 보고 싶어서….”

“또 마시고 싶습니까.”

“……네.”

무겁게 늘어지는 몸이 나쁘지 않았다. 과분할 정도로 밀려오는 흥분의 주체가 저 알코올이었다.

그가 양주를 병째로 입에 물고 고개를 젖혔다. 입에 머금은 그대로 그가 승원의 몸에 올라탔다. 무겁게 짓누르는 몸을 맞이하며 승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승원의 입술을 엄지로 잡아 내리자 틈이 벌어졌다. 그대로 입술을 묻고 술을 흘려 넘겼다.

맞물린 안쪽으로 혀가 요동쳤다. 쓰린 술을 받아 내는 승원은 어김없이 힘겨운 표정이었다. 권 대표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이 다시 그에게 붙잡혔다. 손가락을 끼워 넣은 손이 단단히 깍지를 껴 포박했다. 승원의 울대가 간헐적으로 꿀렁였다. 그의 입 안에서 넘어온 술이 뜨거웠다.

“더 줄까.”

그가 낮게 속삭였다. 잔뜩 부어오른 듯한 승원의 입술이 뻐끔댔다. 이내 승원이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울이라도 가져와서 비춰 주고 싶네.”

“…….”

“너 지금 씨발 존나 야한데.”

곧바로 추돌 같은 키스가 이어졌다.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승원이 침범하는 혀를 정성스레 붙잡았다. 곧 한 몸이 될 것처럼 두 혀가 난잡하게 뒤엉켰다. 권 대표의 입 안에서 술의 달고 알싸한 내음과 알 수 없이 비릿한 맛이 동시에 났다. 식도 안쪽까지 다 녹일 것처럼 그가 혀로 입 안을 헤집었다.

그는 작정한 듯이 승원에게 덤볐다. 완전히 술에 취한 몸이 붉은 열꽃을 띠었다. 승원의 무릎과 팔꿈치 군데군데가 빨갛게 익어 갔다. 당연하지만 술 한 잔에 끄떡없는 권 대표의 몸은 여전히 이상할 만큼 창백했다. 차가운 피부 톤과는 다르게 스치는 곳곳에 더운 온기가 닿았다.

승원의 몸이 뒤집혔다. 침대 위로 완전히 올라온 그가 다리를 벌려 승원의 엉덩이를 가뒀다. 이불에 얼굴을 묻은 승원은 오로지 감각에만 의존한 채 허억허억 숨을 골랐다.

골이 벌어진 틈으로 따뜻하고 늘어진 무언가 쏟아졌다. 승원은 그것이 곧 그가 길게 흘려 뱉은 그의 타액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승원의 허벅지를 들처 번쩍 들어 올리자 엉덩이가 그대로 솟아 올라갔다. 이불을 한가득 말아 쥐었다. 벌어진 구멍 사이를 그가 손가락 두 개를 모아 비집었다.

“……하으읏.”

천천히 삽입되는 손가락이 안을 벌렸다. 숨을 쉬듯 벌어졌다 조여지는 내벽이 그의 손가락을 꽉 물었다. 승원은 천천히 가슴을 움직이며 몸을 진정시켰다. 두 개로 붙인 손가락은 금세 밑동까지 들어온 건지, 볼기에 그의 엄지가 짓눌러졌다.

“잘 먹네.”

“아, 으으…….”

“내가 이대로 흔들면, 버티기 힘들 것 같습니까?”

승원은 순간 뒷목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보이는 베개를 움켜잡고 최대한 고개를 뻗어 올린 승원이 뒤쪽으로 얼굴을 틀었다. 새빨간 광대를 하고는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안 돼, 안 돼요…….”

“왜 안 되는데.”

“저, 저 죽어요… 그거 말고…….”

그가 장난을 치듯 내벽의 주름을 짓눌러 긁었다. 등을 바싹 휜 승원이 속절없이 입술을 벌렸다.

“흐으아아…….”

“오늘따라 더 민감하게 구네요.”

“소, 손가락 빼고…….”

버티다 못한 승원이 다시 베개로 얼굴을 파묻었다. 울 것 같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거 싫어……. 싫어요…….”

“그럼 어떻게 해 줘.”

“대표님 걸로…….”

반쯤 빠져나간 손가락을 그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시켰다. 승원은 거의 우는 듯이 신음을 내질렀다. 이미 새하얗게 질린 머리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똑바로 말해야지.”

완전히 빠져나간 그의 손가락이 축축했다. 뻐끔거리는 구멍 입구를 문지르자 까맣게 벌어져 있던 안쪽이 수축하며 문을 닫았다. 주위로 번진 주름을 그가 간질이듯 건들며 종용했다. 승원은 심장을 토할 것만 같아 입술을 벌린 채 숨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작게 속삭였다.

“대표님 걸로 박아 주세요…….”

잠시 말이 없던 권 대표가 커다랗게 가슴을 움직였다. 곧 무너질 것 같은 엉덩이를 가까스로 치켜세우고 버텼다. 그리고 승원은 곧 입을 헙, 다물었다. 단단하다 못해 딱딱하게 굳은 듯한 살덩이가 엉덩이에 부딪혔다. 승원의 허리를 잡고 그가 말했다.

“그럼 잡아서 벌려.”

거의 얼차려에 가까운 수준의 자세였다. 무릎으로 힘겹게 버티는 몸뚱어리에 힘을 가득 주고, 승원은 파들거리는 손을 뒤로 둘렀다. 양 볼기를 잡아 양쪽으로 벌렸다. 서늘함이 내려앉았다. 승원의 등줄기를 손끝으로 쓸어 만진 그가 얼굴을 가져다 댔다. 승원의 골 안쪽에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숨이 막히도록 야한 감각이었다.

“멀쩡하게 종방연 끝내고 나랑 이러고 있을 줄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

“진짜 상상이라도 한다면, 세상에 그런 변태도 없을 텐데.”

승원이 벌리고 있는 덕에 그의 성기가 안쪽으로 수월하게 진입했다. 귀두와 구멍이 곧장 맞물렸다. 위아래로 가볍게 비비자 주인을 알아본 구멍이 벌름거렸다.

“하아…… 씨발.”

더운 호흡이 터져 나왔다. 눈을 꾹 감은 채 승원이 그를 기다렸다. 미친 듯한 긴장감이 몰려왔다.

“숨 쉬어요.”

“……허, 윽, 흐윽…….”

지긋하게 삽입이 시작되었다. 입구에 걸리던 어마어마한 물건이 구멍의 크기를 늘리며 안을 파고들었다. 눈을 번쩍 뜨고 숨을 덜컥 삼킨 승원의 손 한쪽이 기어이 옆으로 떨어져 나갔다. 남은 손으로라도 바들대며 엉덩이를 벌렸지만 역부족이었다. 허전한 엉덩이에 손자국이 가득 남았다. 뻑뻑한 피부가 안을 찢을 듯이 밀고 들어왔다. 승원은 결국 고인 울음을 참으며 그가 얼른 들어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와의 섹스는 언제든 처음처럼 버거웠다.

“아, 으윽…… 아아, 아파…….”

“조금, 만…… 하아, 참아 봐.”

승원의 등허리를 느긋하게 만지며 그가 몸을 달랬다. 반 정도 들어온 듯한 성기가 이미 내벽 안을 꽉 채웠다. 더 뚫고 들어오다간 장기 안쪽까지 침범할 것만 같았다. 눈 앞쪽에 맺혀 있던 눈물이 밑으로 툭 떨어졌다. 허전해야 할 배 속이 비이상적으로 불러 왔다. 승원이 애원했다.

“빠, 빨리…… 으흐, 으으…….”

“오늘 유독 예민해서, 그런 거 같은데.”

“대표, 니임… 얼른…… 으그…….”

“……다 들어왔습니다.”

이불을 잡고 두드리는 걸로 모자라 고개를 마구 휘젓기까지 했다. 무언가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던 움직임이 어느샌가 멈춰 있었다. 늘어져 있던 몸이 위로 휙 들렸다. 승원의 가슴을 끌어안아 저에게 바짝 붙인 권 대표가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그 상태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속삭였다.

“오늘 엄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하아…….”

“맨날 하던 건데. …애교 비슷한 어리광입니까?”

귓전이 간지러웠다. 잘게 선 솜털이 그의 숨에 살랑거렸다.

아무래도 몸이 잔뜩 취해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확실히 다른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호텔이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도 있었고, 조명과 공기, 강도를 높이며 붙어 오던 몸과 여전히 배 속을 휘젓고 다니는 술기운에 승원은 당장 미칠 것 같았다. 간만에 느껴 보는 상당한 쾌락이었다.

고개가 틀어지고 입술이 닿았다. 짧게 이어지던 키스가 끝나고 그가 승원의 가슴을 다시 끌어안았다. 꽉 닿아 있던 안쪽이 갑작스레 허전해졌다. 뒤로 물러나는 기둥이 짙은 존재감을 남기고 바깥으로 반쯤 빠져나갔다. 그리고 순간,

“아흣!”

쿵, 찧듯이 기둥머리가 전립선을 찾아 찔렀다. 정확하게 스팟을 누른 권 대표가 밭은 호흡을 내뱉었다. 그의 치골에 부딪힌 엉덩이가 얼얼했다. 상체를 바짝 일으키고 있어서인지 배 앞쪽이 뚫릴 것 같았다. 허벅지 안쪽을 떨며 승원이 목을 세웠다. 여운도 잠시 그가 다시 물러났다. 찔꺽이는 소리와 함께 스르륵 물러나는 성기의 감각이 선득했다.

“으윽……. 빼, 빼지 마요…… 지금, 안…… 흐윽!”

그가 자비 없이 찔렀다. 가득 밀고 들어온 기둥이 안쪽을 움켜쥐듯 쓸었다. 허리를 휘감은 그가 승원의 성기를 잡았다. 언제 사정을 했냐는 듯 꼿꼿하게 앞을 보고 선 귀두가 부풀어 있었다. 앞부분을 엄지로 문지르며 그가 승원의 어깨를 물었다.

“흐, 그으, 으으응…….”

몸이 으슬거리며 진동했다. 권 대표의 허벅지를 붙잡은 승원의 손이 힘을 쓰지 못하고 아래로 미끄러졌다. 밖으로 나가려던 기둥은 역시나 안쪽을 푹 찔러 넣었다. 뜨거운 게 하릴없이 배를 데우고 범했다.

“하, 하아…… 으아…….”

이번엔 느릿하게 안을 채운 기둥이 주름을 하나하나 세는 것처럼 천천히 파고들었다. 그사이에 더욱 부푼 성기의 모양을 따라 내벽이 꾸물꾸물 자리를 내주었다. 언제 겪어도 생경한 감각에 승원이 눈꺼풀을 떨었다. 입술 새로 어김없이 침이 흘러나왔다. 그와 섹스를 할 때면 갑자기 짐승 새끼라도 된 것처럼 타액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

권 대표가 승원의 손을 낚아채 부푼 배 위에 올려 두었다. 말도 안 되게도 배에 무언가 만져졌다. 툭 불거진 윤곽이 선연했다. 놀랄 새도 없이 승원은 버거운 숨만 아득하게 쉬어 댔다.

“지금 여기가 다 내 겁니다.”

“……흐, 으으…….”

“지금 나랑 완전히 한 몸인데.”

배를 쓸어 만지던 손이 위로 올라왔다. 가슴을 둥글게 쓸며 그가 말했다.

“꼴리지 않습니까.”

“대, 표님…… 저, 흐으응…… 너무 힘들…… 힘들어서…….”

헐떡이는 승원과 다르게 권 대표는 여유 그 자체였다. 느긋한 눈빛을 띤 채 승원을 살피던 그가 무언가 따뜻하게 손에 닿는 느낌에 눈을 내렸다. 제 손에 쥐고 있던 승원의 기둥에서 무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실금이라도 하듯이 묽은 액체가 찔끔거리며 새어 나왔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은 권 대표가 승원의 귀두를 꾹 밀었다. 승원이 몸을 자지러뜨렸다.

“흐하아……!”

“엎드리세요.”

그대로 앞으로 밀어 버리자 승원이 앞으로 휙 고꾸라졌다. 이미 한 번 사정을 한 이후라 승원은 벌써 지친 상태였다. 그와 접합되어 있는 엉덩이 뒤쪽이 이상했다. 몸이 앞으로 쏠렸는데도 그는 여전히 승원의 안에 있었다. 접착제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단단히 물려 있었다.

“일어나.”

“으으…….”

“침대 헤드 잡아.”

승원의 가슴을 잡아 일으킨 그가 승원을 끌고 무릎걸음으로 앞으로 이동했다. 그 와중에도 승원의 안에 찔러 넣은 기둥은 빼지 않은 채였다. 둘은 한 몸으로 침대 앞까지 움직였다. 그의 도움을 받아 승원이 어렵게 침대 헤드를 붙잡았다. 무릎을 꿇은 채 엉덩이를 최대한 뒤로 빼고 다리를 벌렸다. 이동하던 내내 안에 있던 그의 성기가 스르륵 몸을 물리며 빠져나갔다. 승원이 부르르 떨었다.

“내가 쌀 때까지만 참아요.”

“……빨리…….”

“재촉하지는 말고.”

탱탱하게 솟은 승원의 엉덩이를 쥐고 그가 다시 기둥을 잡아 조준했다. 안을 비집어 구멍을 찾자 어느새 넓게 늘어진 입구가 순순히 입을 벌렸다. 뻐끔대며 그의 딴딴한 살덩이를 집어삼켰다. 승원이 가슴을 들썩이며 고개를 숙였다. 꺼떡대는 제 좆에서 정액도, 쿠퍼액도 아닌 이상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처음 보는 현상에 덜컥 겁이 들려던 것도 잠시, 안을 꽉 채운 그의 좆을 느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으, 으윽, 흐으…… 아.”

적당한 세기의 움직임이었다. 반쯤 빼내다가 다시 처박았다. 아까처럼 내려치듯 꽂아 넣는 삽입은 아니었지만, 허리 짓의 주기가 빨랐다. 승원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그가 허리를 움직였다. 머릿속이 뜨거웠다. 생각이라는 걸 할 겨를이 없었다. 사이의 공백을 이성 잃은 쾌감이 틈 없이 메꿨다. 헤드를 잡은 몸이 앞뒤로 딸려 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읏, 으읏- 흐응…… 아…… 읏.”

정신없이 머리를 뒤흔들면서도 승원은 그의 몸을 정면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젖은 신음이 섹시했다. 갈라진 근육이 도드라진 두꺼운 허벅지와 허리 짓이, 더운 숨을 토해 내는 그의 얼굴이 엄청 야할 것 같았다.

“흐그, 윽, 흣, 대표, 님- 읏.”

“……씨발-.”

고지 끝에서 한참 머무르던 오르가슴이 어느덧 꼭지에 닿을 것처럼 이상한 실감을 일으켰다. 멀리서 돌고 공명하는 그의 욕설이 뒤늦게 귀에 닿았다. 승원은 자신이 우는 것도 모르고 눈물방울을 잔뜩 매단 채 그의 움직임에 따라 몸을 들썩였다. 온몸이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절정 같은 게 오고 있는 것 같은데, 사정감이 없었다. 갑자기 암전될 것처럼 눈앞이 명멸했다.

“아, 으, 흣, 응. 으…….”

거친 추삽질에 밑으로 떨어진 머리칼을 권 대표가 쓸어 넘겼다. 숨을 토해 내며 그는 곧 쌀 것처럼 움직임을 급하게 이어 나갔다. 지탱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직각으로 선 승원의 좆을 다시 잡고 흔들었다. 헤드를 잡고 있던 손 하나가 빠르게 내려와 권 대표의 손을 치우듯이 밀어 냈다.

“아, 안 돼…… 으으, 치워요, 흑, 읏.”

그는 그럴수록 승원의 성기를 더욱 세게 고쳐 잡았다. 제지를 실패한 승원의 손끝이 경련했다. 남은 손으로 승원의 배를 꽉 끌어안은 그가 교합되어 있는 안쪽에서 열심히 피스톤질 했다. 툭툭 끊기는 승원의 신음과 궤궤하고 거친 숨소리가 번갈아 가며 울렸다. 승원의 안쪽에 박아 넣는 움직임은 거의 동물의 흘레를 엿보듯 원초적이었다.

“하아…… 씹…….”

“으응, 하, 읏. 아…….”

“……윤승원 씨.”

안쪽에 박아 넣은 그대로 사정을 하던 권 대표의 흐릿한 눈동자가 순간 짙게 물들었다. 승원의 고개가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제 손에 쥐고 있던 곧은 기둥에서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잘만 서 있던 뽀얀 허벅지가 간헐적으로 부르르르, 경련을 보였다. 아차, 싶던 찰나.

“아아…….”

“…….”

자두 빛으로 물들어 있던 승원의 귀두 끝에서 묽은 액체가 발사됐다. 권 대표가 잡고 있던 성기에서 물줄기가 솟았다. 끊겼다 나왔다, 포물선을 그리며 뿜어져 나오는 모양새가 꼭 소변과 비슷했다. 승원은 그걸 정신없이 싸면서 온몸을 바르작거리며 떨었다. 의지의 행위가 아니었다.

“…씨발…….”

욕을 씹으며 권 대표가 물이 나오는 승원의 기둥을 밀 듯이 문질렀다. 승원이 허리를 비틀었다. 점차 멎으려던 물줄기가 다시 터져 나왔다. 승원의 귀두에서 나온 가느다란 물이 헤드 앞면을 가득 적셨다. 허벅지 안쪽이 다시 후들거렸다.

승원은 수치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깊은 황홀감에 잠겨 있었다. 절정에 내리꽂히고도 여전히 밑으로 내려오지 못한 몸이 덮쳐 온 오르가슴에 허우적거렸다. 눈앞에 무지개 비슷한 게 지나간 거 같기도 했다. 곧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이 흐려졌다. 그대로 무너지려던 승원의 몸을 권 대표가 잡아챘다.

“……윤승원 씨.”

모로 눕힌 승원의 좆에서는 여전히 물이 흘러나왔다. 당장 입에 넣고 빨고 싶다는 충동을 뒤로한 채, 권 대표가 승원의 좆기둥을 다시 잡았다. 손바닥을 들어 귀두를 밀대처럼 쭉 밀었다.

“아, 아윽!”

승원이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여운에 젖은 귀두가 꿀쩍거리며 남은 물을 뿜어냈다. 그가 승원의 몸에서 나온 물기로 잔뜩 젖은 제 손바닥을 들어 코에 가져다 댔다. 무색무취 그 자체였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씨발. 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윤승원.”

늘어진 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허벅지와 눈꺼풀을 떠는 걸 보면, 기절한 건 아니었다. 눈가에 입을 맞춘 그가 승원의 얼굴 가까이에 대고 속삭였다.

“승원.”

“…….”

“승원아.”

부드럽게 이름을 부르고 뺨을 쓸었다. 감흥 없던 속눈썹이 움직이고 승원이 힘겹게 눈을 떴다. 곧 제 눈앞에 드리운 남자의 얼굴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대롱대롱 달린 눈물방울이 관자놀이를 지나, 광대와 뺨을 타고 줄줄 흘렀다.

“왜 울어.”

“대표, 님…… 흐아…….”

참지 못하고 승원은 두 눈으로 터진 눈물을 닦아 냈다. 서러움이 끝도 없었다.

이 정도의 절정은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느껴 본 극한의 감각은 겁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어디까지 치솟을지 모르는 몸 안의 열기가 승원은 너무 무서웠다. 듬성듬성 기억이 나는 걸 보니 중간에 잠시 기절한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너무 좋았고, 그래서 너무 두려웠다. 여전히 가시지 못한 충격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좋아서 우는 겁니까?”

“……흐, 윽…… 무서워서…….”

“왜 무서워.”

“너무 좋아서…… 무서워서…….”

아무렇게나 내뱉는데도 권 대표는 가만히 승원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잠시 기다려 주던 그가 승원의 앞머리를 위로 넘겨 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둥그런 이마에 입을 맞추고 그대로 내려와 승원의 입술을 머금었다. 푹신하게 닿아 전해진 부드러운 키스였다.

“…아까 뭘 엄청 싸던데. 침대랑 내 손까지 다 적시고 남을 정도로.”

“…….”

“알고는 있습니까.”

승원의 늘어진 성기로 손을 내리려던 권 대표의 팔목을 승원이 다급하게 붙잡았다. 입술을 깨문 승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입꼬리 한쪽을 불량스레 끌어 올린 권 대표가 손을 거뒀다. 승원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중력에 이끌리듯 그의 몸이 승원에게로 떨어졌다.

“냄새도 안 나고, 색도 없는 걸 보니 소변은 아닌 거 같고.”

“……대표님-.”

“보통 속된 말로 분수라고 부르지 않나.”

“하지 마세요…….”

짓궂게 말을 잇는 권 대표의 목을 승원이 바짝 조였다. 권 대표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귓가에 닿는 그의 웃음소리가 간질거렸다. 아까는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기에, 사실 자신이 정확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다. 더 파고들어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좋았습니까.”

“…….”

“정신 놓고 쌀 만큼.”

“……대표님, 제발……….”

승원이 뺨을 붉힌 채 입을 우물거렸다. 또 울 것 같은 얼굴이기에 그는 이만 말을 거두고 몸을 일으켰다. 승원의 손을 붙잡아 당겼다. 그러나 축 처진 승원의 몸은 필사적으로 침대에 붙어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술기운이 많이 가라앉았음에도 방금 울고 난 눈이 벌겠다. 권 대표가 달래듯이 말했다.

“씻겨 줄 테니까, 일어나요.”

“너무 힘든데…….”

“…내가 이럴까 봐 들어오자마자 섹스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가 반성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잠시 침대 밖으로 벗어났다. 잘빠진 몸이 탄탄했다. 빚어 놓은 듯이 조각 같은 제 남자의 몸을 입 벌리고 바라보던 승원은 욕실로 사라진 권 대표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쏴아아 쏟아지는 물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들으며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고 있는데, 가운을 차려입은 그가 다시 나왔다. 권 대표가 침대에 걸터앉자 물결치듯 시트가 출렁였다.

“뭐 하고 오셨어요?”

승원이 입술만 벌려 물었다. 승원의 머리를 쓸어 넘겨 주며 그가 대답했다.

“물 받고 있습니다.”

“…….”

“씻겨 준다고 했잖아.”

그리고는 그가 승원의 엉덩이로 손을 가져다 댔다. 검지와 중지로 골 사이를 벌리고 안쪽을 확인했다. 당장 손을 치워 버리고 싶었는데, 늘어진 몸이 좀체 말을 듣지 않았다.

“여기도 긁어내야 하고.”

“……대표님.”

“왜요.”

“대표님은… 왜 저랑 할 때…… 콘돔 한 번도 안 쓰셨어요.”

한만하게 승원을 들여다보던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불만인 겁니까.”

“…그냥 궁금해서…….”

“평소에 콘돔 같은 걸 구비해 두고 다닐 일이 없었으니.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

“윤승원 씨랑 하는 섹스는 항상 돌발적이기도 했고.”

승원의 눈가를 매만진 그가 다정히 말했다.

“앞으로 꾸준히 쓰고 싶으면 말하세요. 준비하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

“전 지금도 나쁘지는 않은데…….”

투명한 막을 씌우고 안으로 들어오는 건 이만한 기분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건조한 살덩이가 그대로 부딪히며 젖어 가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도 그가 제 안을 채우는 느낌을 잊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변태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걸 인정해서라도 승원은 그 야릇한 감각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나도 좋습니다.”

“…….”

“생살 그대로 부딪히는 것도 좋고, 윤승원 씨 안에 싸는 것도 좋고.”

그는 승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지껄였다.

“안에 쌀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

“…그럴 때마다 윤승원 씨가 전부 내 거 같아서 좋습니다.”

항상 날것 그대로를 내뱉는 그가 처음엔 무섭기만 하고 적응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단점처럼 느껴지던 그의 말버릇이 마냥 좋았다. 남에게 차갑기보다는 그저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노골적으로 험한 말을 내놓던 그는 사랑 표현마저도 과속 질주 그 자체였다.

“일어나세요, 이제.”

다시 몸을 일으킨 그가 승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엔 더 기다려 주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가 재촉했다. 뻗은 손을 잡으려던 승원은 아예 두 팔을 허공으로 뻗었다. 이젠 진짜 어리광을 부렸다.

“…안아 주세요. 못 걷겠어요.”

“애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권 대표는 곧장 승원의 다리와 등 아래 손을 넣어 들었다. 가볍게 안아 든 승원을 그가 욕실로 옮겼다. 물이 반쯤 차오른 커다란 욕조 안에 승원을 앉혔다. 따뜻한 물이 배 위까지 잠겼다.

“여기 잠깐 있으세요.”

승원은 자신을 내버려 두고 욕실 밖을 나가는 권 대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욕조 가장자리에 팔과 턱을 기대고 그를 기다렸다.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몇 번 반복되고, 다시 돌아온 권 대표는 손잡이가 달린 상자 하나를 쥐고 있었다.

몸을 나른하게 기대고 있던 승원이 코앞까지 다가온 권 대표의 그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무표정한 낯으로 손에 들린 검은 케이크 상자를 흔들었다. 욕조 맡에 걸터앉아 상자 안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새하얗게 뒤덮여 딸기가 빼곡하게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에서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드라마 끝난 거 수고했다고.”

“…….”

“원래 축하부터 해 줄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순서가 뒤집혔네.”

이것도 나쁘지 않지 않습니까. 그가 승원을 보지 않고 중얼거리며 초를 하나 꺼냈다. 케이크 중앙에 초를 꽂고 그 위에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승원에게 가까이 밀어 준 그가 팔짱을 낀 채로 턱짓했다.

“생일도 아닌데 노래 부르는 건 좀 그렇고.”

“…….”

“기분이라도 내겠다고 꽂은 거니 얼른 부세요.”

작은 촛불 위, 뾰족하게 솟은 불길이 노랗게 반짝였다. 그와 입술을 붙이느라 정신이 다 팔려, 자신을 위해 케이크를 준비해왔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이렇게 제대로 된 축하를 받을 기대 역시 하고 있지 않았다. 승원은 타오르는 불빛을 얌전히 내려다봤다. 몸 안에 헬륨이라도 들어간 듯 붕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뭘 보고만 있어.”

“…….”

“촛농 떨어집니다.”

“……네.”

승원이 후, 바람을 불자 옆으로 고개를 꺾던 불씨가 푹 꺼졌다. 꺼진 촛대 끝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승원이 시선을 들자 흡족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권 대표의 얼굴이 있었다.

“케이크 먹겠습니까.”

“네.”

초를 정리하고 봉투 안에서 포크 하나를 꺼내는 권 대표에게 승원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먹여 줄게.”

“…….”

“입이나 얌전히 벌리고 있으세요.”

승원이 약간씩 움직일 때마다 물이 찰랑거렸다. 욕조 가장자리를 붙잡고 권 대표가 먹여 주기를 기다리던 승원의 입 앞에 새빨갛게 익은 딸기가 도착했다. 손가락으로 통통한 입술을 톡톡 건든 그가 입을 벌리는 시늉을 했다.

“아.”

“아…….”

입에 들어온 딸기를 씹자 상큼한 과즙이 터져 나왔다. 먹음직스러운 자태 그대로 설탕이라도 뿌린 듯한 달콤함이 입 안에 넘실댔다. 승원이 광대를 씰룩이며 턱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사이, 이번엔 생크림을 한가득 묻힌 딸기가 바로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승원은 얼른 먹던 걸 삼키고 다시 입을 벌렸다.

“맛있습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권 대표가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이어서 입에 들어온 딸기와 생크림은 함께 혀끝에 어우러지다가 솜사탕처럼 녹아 없어졌다. 일반 빵집에서 파는 생크림과는 차원이 다른 부드러움이었다.

“생크림이 엄청 부드러워요.”

“그거 더 줄까?”

“네.”

일회용 포크로 빵을 나누고 있던 그가 승원의 대답에 제 옆자리에 케이크를 내려 두었다. 그는 쓰던 포크까지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크림을 푹 찍었다. 굳이 손으로 줄 필요가 있나 싶으면서도 입을 벌리라고 할 것 같아 아, 하고 입술을 벌린 채 기다리는데, 그가 말했다.

“입술 오므려 봐요.”

“…….”

의아해하면서도 고분고분 말을 듣는 승원의 입술에 그가 손가락에 한가득 묻힌 생크림을 덧발랐다. 다문 입술에 듬뿍 바른 크림이 답답했다. 승원이 혀끝을 살짝 내밀어 맛을 보았다. 손가락에 남은 생크림을 쪽 빨아 먹은 그가 손을 위로 까딱였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승원이 언짢은 표정을 하고 그에게로 시선을 올렸다.

가느다란 눈으로 유심히 들여다보던 권 대표는 승원의 입술을 엄지로 꾹 짓눌렀다. 도포되어 있던 하얀 크림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 밑으로 묵직하게 흘러내렸다.

“상당히 선정적인데.”

승원이 눈썹 한쪽을 찌푸렸다.

“……장난치지 마세요.”

승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체를 확 낮춘 권 대표가 승원의 턱뼈를 가볍게 쥐었다.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승원은 다시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의 삼백안이 승원의 얼굴을 곡진히 쓸더니 이내 입술에 닿았다.

“요즘 내 머릿속에서 윤승원 씨는 항상 이런 모습입니다.”

“…대표님…….”

“왜 그런 눈으로 봅니까.”

웃음기가 옅게 섞인 목소리였다. 혀로 입술을 살짝 축인 승원이 생크림을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변태잖아요.”

그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타격 따위 눈곱만큼도 입은 것 같지 않은 남자는 다시 승원의 입술로 시선을 진득이 내리며 말했다.

“그런 말 들어도 할 말이 없네.”

“…….”

“윤승원 씨 내 머릿속 들여다보면 놀라 도망갈지도 모릅니다.”

시선이 가까이 얽혔다. 서로의 속눈썹이 곧 닿아 엉킬 것 같았다. 불그스름하게 열이 오른 얼굴을 한 채, 승원이 팔을 뻗어 권 대표의 목을 끌어당겼다. 비스듬히 꺾은 고개와 함께 입술이 내려앉았다.

말 그대로 달콤한 키스였다. 승원의 입술에 가득 묻어 있던 생크림을 그가 혀로 핥고 뭉갰다. 벌린 입 안으로 승원의 입술을 흠뻑 적시고 머금었다. 몸속이 다디단 설탕물로 차오르는 것 같았다.

“흐, 으읍…… 하아…….”

승원의 입술에 묻어 있던 생크림을 모조리 혀로 쓸어 간 그는 그것들을 바로 삼키지 않고 벌어진 승원의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안쪽에 담아 둔 생크림을 다시 혀끝으로 적시고 핥았다. 타액으로 묽게 번진 생크림이 물처럼 목구멍 뒤로 넘어갔다. 입 안이 너무 달아 얼얼할 정도였다. 그의 혀가 닿는 곳곳에 충치가 생길 것 같았다.

“달아 죽겠네.”

잠시 몸을 물린 그가 케이크를 푹 찍어 손가락에 생크림을 묻혔다. 길게 내민 승원의 혀에 가득 담았다. 승원의 두 뺨을 그러잡고 다시 입을 맞췄다. 권 대표가 걸치고 있던 가운이 커다란 움직임에 어깨 밑으로 흘러내렸다. 갈무리할 정신도 없이 그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승원을 밀어붙였다. 찰박이는 물소리와 함께 고요했던 물결이 요동쳤다.

떨어져 나가는 입술 사이로 엿가락 같은 실이 늘어졌다. 쪽쪽 빨린 입술이 짙게 물들어 있었다. 흐리멍덩하게 풀린 눈가로 승원이 제 앞의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도 가슴을 크게 들썩이고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그의 단 숨결이 입가에 가득 고였다 사라졌다.

“한 서른 번쯤 더 하면 질릴 것 같은데.”

목젖 끝에 고여 있던 묽은 크림을 승원이 목젖을 꿀렁여 삼켰다. 물 밑에서 바르작대던 허벅지 사이로 단단해진 성기가 고개를 쳐들었다. 투명하게 비치는 물속을 바라본 권 대표가 승원의 가슴을 쓸어 만졌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승원의 얼굴과 목에 하얀 크림을 다시 묻혔다.

“케이크 다 먹으면.”

“……으, 읏.”

“제대로 씻겨 줄게요.”

높이 쌓인 눈처럼 생크림이 쌓여 있었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먹는다고 한들, 케이크의 시트가 보이기까지도 한참일 듯했다. 서른 번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 목에 입술을 묻은 그가 달콤한 크림을 빨았다. 권 대표의 머리를 꽉 끌어안은 승원이 발끝을 오므렸다. 당장 물에 미끄러질 것 같은 몸이 그의 단단한 팔에 기대어 지탱됐다. 목에 있던 입술이 다시 승원의 턱을 핥더니 뺨을 지나 도로 입 안에 들어섰다.

어쩌면, 서른 번이 다 지나도 부족할 것 같았다.

***

승원은 잠을 자는 내내 무서운 꿈을 꿨다.

꿈의 정확한 그림이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속이 갑갑하고 머리가 무겁게 짓눌렸다. 깊은 해저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듯 꿈자리를 헤매던 승원은 눈을 떴다.

“…….”

낯선 천장이 보였다. 숨을 색색거리던 승원은 뒤늦게 이곳이 권 대표와 함께 잠든 호텔 침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같았으면 이불을 걷어 내고 일어났어야 하는 몸이 왜인지 움직여지질 않았다. 사지가 묶인 듯이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이불을 내리려고 손을 올렸는데,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힘겨웠다. 그때, 매트리스가 옆으로 기울었다.

승원이 누운 자리 옆에 걸터앉은 권 대표가 가슴팍을 드러낸 채 고개를 기울였다. 승원은 천천히 눈을 끔벅거리며 그를 올려다봤다. 건조하게 달라붙은 입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으음.”

그가 승원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불을 어깨 끝까지 올려 주고는 나직하게 제 이름을 불렀다.

“윤승원 씨.”

현실인데도 꿈처럼 모호했다. 승원은 힘겹게 첫마디를 내뱉었다. ‘대표님…….’ 흐리멍덩하게 튀어나온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람처럼 흩어졌다. 그가 승원의 뺨에 손을 얹고 잠시 숨을 쉬었다. 뺨에 있던 손이 곧 이마로 올라가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그가 혼잣말했다.

“……열나는데.”

승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흐리게 뜬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권 대표의 말을 들으니 정말 몸이 무겁고 목도 아픈 것 같았다. 갑자기 한기가 들이닥친 것처럼 으슬으슬 추운가 싶기도 했다.

권 대표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승원이 힘들게 고개와 몸을 움직여 그의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눈을 옮겼다. 저 멀리 근육이 사납게 도드라진 등이 보였다. 드로어즈 하나만 달랑 걸치고 있는 몸이 지나치게 섹시했다.

내내 등만 보여 주던 그를 지켜보는데, 무언가 콸콸거리며 들끓는 소리가 났다. 조금 더 지켜보던 승원은 그게 커피포트라는 것을 깨달았다.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와 달그락거리며 무언가 준비하던 그가 물이 담긴 잔을 가지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승원이 따로 대답하지 않자 그는 승원의 등을 잡아 일으켰다. 상체 반만 간신히 헤드에 기댄 채 그가 건넨 물잔을 받아 들었다. 온기가 적당했다.

“일단 물이라도 마셔 보고.”

컵을 기울여 승원이 입술 안으로 물을 찬찬히 나눠 넘겼다. 꿀꺽꿀꺽 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권 대표는 승원을 들여다보던 집요한 시선을 떼어 냈다.

“…어제 너무 무리를 했나.”

“…….”

“윤승원 씨, 지금 몸이 뜨겁습니다.”

승원은 대답 대신 어렵게 손을 들어 제 이마에 가져다 댔다. 손도 뜨겁고, 이마도 뜨거워서인지 자신의 열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어려웠다. 승원의 팔을 대신 내려 준 권 대표가 승원을 다시 자리에 눕히고는 이불을 턱 끝까지 덮어 줬다.

“얼굴도 그렇고, 힘들어 보이는데.”

“…그렇게 힘든 건… 아니에요.”

입술을 최소한으로 움직여 말하는 승원을 보며 그가 뺨을 매만졌다.

“몸이 이렇게 뜨거운데. 병원부터 갑시다.”

“…대표님…….”

핸드폰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의 손을 승원이 꽉 붙잡았다. 뜨겁게 전해지는 체온에 권 대표가 얼른 고개를 내렸다.

“…그 정도 아니에요. 그냥…… 약 먹고 좀 쉬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정말이었다. 한창 바쁘게 소화해 내던 일정과 더불어, 어제 있던 종방연도 그렇고, 이후로도 쉬지 않고 그와 달렸던 걸 생각하면 몸이 이렇게 버거워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몸살 기운이 있는 건 맞았지만, 감기가 들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해열제나 먹고 쉬면 금방 나아질 것 같았다.

“……진짜 안 가도 되겠습니까?”

승원의 건조한 손을 만지작거리며 그가 물었다. 승원이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권 대표는 당장 몸을 일으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를 대충 손가락으로 쓸어 뒤로 넘기고 옷걸이에 있던 옷을 꺼내 입었다. 바지까지 입고 셔츠 단추까지 잠그는 데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외출복 그대로 침대로 돌아온 그의 팔에 승원의 옷이 걸려 있었다.

“저 병원 안 갈 거예요…….”

승원을 일으키던 권 대표가 그 말을 듣더니 미묘한 웃음을 보였다. 맨몸 위로 대뜸 웃옷 목이 끼워졌다. 답답한 숨을 허, 토해 내며 머리를 꺼냈다. 승원의 팔에 옷을 일일이 끼워 주며 그가 낮게 말했다.

“애도 아니고. 병원 가는 게 무섭기라도 한 겁니까.”

“…그게 아니라. 정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걱정 내려놓으세요. 나도 병원 데려갈 생각 아닙니다.”

“…근데 왜….”

“그럼 계속 호텔에 있을 겁니까. 집에 가야 할 거 아니야.”

아……. 승원이 뒤늦게 입술을 벌렸다. 목 부분을 세심하게 정리해 준 그는 승원에게 바지까지 직접 입혀 주었다.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그의 손을 빌리려니 민망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까라지는 몸으로 바지에 발을 넣겠다고 고군분투한다면 그건 더 우스울 것 같았다.

“어제 섹스하면서 몇 번 정신 놓을 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승원은 순식간에 눈자위가 달아오르는 경험을 했다. 옷 입혀 주기를 마치고 승원의 머릿결을 가지런히 정리해 주는 손가락이 투박하게 피부를 쓸고 지나갔다.

“술까지 먹고, 그렇게 밤새 뒹굴었으니 몸이 축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네.”

“…….”

“그래서 내가 제때제때 밥 챙겨 먹으라고 하는 겁니다. 맨날 즉석식품이니, 풀떼기니 그런 것만 먹고 지내니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일로 골골거리는 거 아닙니까.”

돌고 돌아 결국 끼니 얘기였다. 솔직히 어제 그와 했던 섹스가 별것도 아닌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텐데. 잊을 만하면 나오는 그의 밥 타령에 승원은 아픈 것도 잊고 푸스스 웃어 버렸다. 제 부모님도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잔소리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웃음을 보이는 승원을 도리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던 그가 승원의 콧잔등을 콕 찔렀다.

“뭐가 좋다고 웃어.”

그러면서도 권 대표 역시 결국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집으로 오면서도 그는 승원에게 온 정성을 쏟아부었다.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차에 데려다 앉히고 그의 집으로 올라가던 순간까지도 거의 반쯤 안는 듯한 자세로 승원을 보호하고 부축했다. 집 앞 주차장에서 업혀서 가겠냐고 묻던 그의 말에 승원은 기함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도 했다.

현관에서 꾸물꾸물 신발을 벗는 모습을 보다 못한 권 대표가 승원을 번쩍 안아 들었다.

“여긴 집이니까 괜찮잖아.”

반박할 수 없어 승원은 그의 어깨를 꽉 쥔 채 입을 다물었다. 집이 넓어서 그런지, 침실까지 들어가는 길이 생각보다 길어서 그의 품에 안겨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승원은 뒤늦게 생각했다.

이불을 걷은 그가 승원을 조심스레 침대 위로 내려놓았다. 베개에 뒤통수가 닿자, 긴장이 풀리며 머리가 뒤로 넘어가는 것만 같았다. 손에 잠시 입김을 불어 적당히 녹인 권 대표가 승원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가 입김까지 불었던 손인데,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약 먹어야 하니까 잠깐 기다려요.”

팔만 대충 걷어붙이고 그가 방 밖으로 나갔다. 승원은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들리는 침실 안에서 얌전히 눈만 깜박였다. 호텔보다 훨씬 아늑하고 따뜻했다. 감히 비교 따위 할 수 없는 안온감이 물처럼 밀려왔다. 이불에 코를 묻고 그의 향을 만끽했다.

몇 분 있다가 권 대표는 죽이 담긴 쟁반을 챙겨 들어왔다. 승원의 몸을 일으키고 자신은 그 옆에 엉덩이만 붙이고 앉았다. 그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전복죽을 숟가락으로 몇 번 저어 식혔다.

“…언제 만드셨어요?”

“만들긴. 급한 대로 집으로 시킨 겁니다.”

그가 죽을 호호 불어 승원의 입 앞에 가지런히 대 주었다. 입술에 살짝 닿은 죽이 적당히 미지근했다. 안심하고 입을 크게 벌려 받아먹었다. 너무 싱겁지도 않고, 야채와 전복도 적당히 씹히면서 맛있었다. 죽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속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기분이었다.

“왜. 내가 만들어 준 죽이 먹고 싶어서?”

승원이 입에 있는 걸 삼키는 동안 다시 죽을 퍼서 식히던 그가 무심하게 물었다. 어느새 다시 입술 앞까지 숟가락이 도착했다. 이제까지 승원의 손발로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대표님 요리 잘하세요?”

“잘하는 것 보다, 혼자 살면 그 정도야 기본 아닙니까.”

승원의 텅 빈 냉장고와 불성실한 식사 습관을 뻔히 알면서 그는 일부러 비꼬듯이 그렇게 말했다. 한 입 받아먹은 승원이 소심하게 반박했다.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힘이 없는 목소리가 먼지가 낀 것처럼 까칠했다. 승원을 힐끔 바라본 그가 죽 그릇으로 눈을 내렸다. 그의 눈꼬리가 희미하게나마 휘어져 있었다.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발끈합니까.”

“……발끈 안 했어요.”

“목소리에 날이 섰는데.”

“그거는…… 아파서 목소리가 잘 안 나와서…….”

억울해서 꿍얼거리는 승원을 그가 빤히 바라보았다. 승원이 뒤늦게 고개를 들자 그와 완전히 시선이 부딪혔다. 승원은 순간 붉어지는 뺨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자신을 사랑스러워 미치겠다는 듯이 보는 남자의 올곧은 눈빛 안으로 자신의 온 얼굴이 가득 담겼다.

“나랑 같이 살면 끼니 거를 일은 없을 텐데.”

간지러운 예감을 확인시켜 주기라도 하듯 미치도록 다정한 음성이 닿았다.

그는 승원을 천천히 기다려 주며 남은 죽들도 손수 식혀 입에 넣어 주었다. 승원이 한 건 이불 안에 손을 파묻고 기계처럼 입을 벌리며 죽을 소화시킨 일밖에 없었다. 권 대표가 함께 챙겨 온 해열제도 챙겨 먹은 승원은 다시 가슴을 밀어 눕히는 손길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누웠다.

분명 여전히 몸은 뜨겁고, 머리는 무게 중심을 잃은 것처럼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몸이 힘든 건 처음 눈을 떴을 때와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보살핌을 받고 있으니 벌써 다 나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당장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밖을 나가 거실을 뛰어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머리로 오백 번 상상할 뿐, 실현되지는 못했다.

권 대표가 불을 끄고 침실 밖을 나가 있는 동안 승원은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의 침실은 유독 잠이 잘 왔다.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면 꼭 그에게 안겨 있는 기분이었다.

잠에 빠져들기 직전, 누군가와 침대를 공유하는 건 딱 질색이라고 승원에게 냉담하게 일축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문득 귓가를 스쳤다. 참 묘한 일이었다. 아직도 그때 일이 아까의 잔상처럼 이토록 생생한데, 승원은 어느덧 그가 허락한 그의 침대를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어마어마함을 다시금 실감했다. 평생을 지켜 온 신뢰와 고집을 무너뜨릴 만큼, 입에 담기도 간지러운 이름의 감정이 가진 무게와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어쩌면, 그를 변화시킬 수 있던 평생의 유일한 수단이었을지도 몰랐다. 그 연결 고리를 쥐고 있던 반대편의 상대가 바로 저여서 다행이었다. 뉘엿뉘엿 감기는 눈꺼풀을 끔뻑이며, 승원은 마지막까지도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여전히 어두웠다. 시야 너머로 스탠드 조명에서 번진 듯한 아늑한 빛이 보였다. 코앞에서 느껴지는 지긋한 체향에 승원은 한결 가벼운 머리를 움직였다. 약을 먹고 자고 일어난 게 다인데 말도 안 되게 개운했다.

“윤승원 씨.”

제 이름을 부르는 낮은 음성에 승원이 고개를 들었다. 헤드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로 있던 권 대표가 승원의 이마를 짚었다.

“아직도 아픕니까.”

“아니요. 완전 멀쩡해요.”

승원에게로 몸을 가까이 기울인 그가 승원의 뺨을 매만졌다. 닿아 있는 피부에서 비슷한 온기가 느껴졌다.

“계속 여기 계셨어요?”

“한 시간 정도.”

“…괜히 저 때문에 지루하게 자리 지키신 거 아니에요?”

“이제 목소리도 멀쩡하네.”

멀쩡한 목소리가 오히려 민망해 승원이 뒤늦게 목을 큼큼 가다듬었다. 까슬하게 잠겨 있던 아까보다 확실히 안정적이었다.

“안 지루합니다.”

“…….”

“나는 윤승원 씨가 내 눈앞에 안 보일 때 느끼는 불안이 더 싫어서.”

승원의 볼 한쪽을 그러잡은 그가 뽀얀 피부를 살살 어루만지다가 입을 맞췄다. 쪽, 건조한 살결 위로 가벼운 키스 소리가 울렸다. 승원은 붉어진 귀 끝을 숨기고 권 대표의 품 안을 파고들었다. 다리를 진득이 얽고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올리자 턱 끝이 보이는 그의 얼굴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승원의 검은 머리칼을 쓸어 만져 주는 손길이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윤승원 씨.”

승원의 코를 툭 건드린 그가 물었다.

“내가 다달이 입금해 줄 테니 월급쟁이 백수로 사는 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

“그 지긋지긋한 배우 관두고.”

미약한 웃음기가 번져 있는 얼굴이었지만, 그렇다고 순전히 농담처럼 내뱉은 말 같지도 않았다.

“대표님은 제가 배우인 게 마음에 안 드시는 거죠.”

“…뭐, 부정은 못 하겠네.”

뒤쪽에서 그를 비춘 스탠드 조명이 따스한 그림자를 만들며 승원에게로 떨어졌다.

“만인의 남자인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내가 속이 좁아서 그런가.”

“…….”

“내 건데, 너는.”

그를 올려다본 채 침묵만 유지하던 승원이 홀린 듯 입을 열었다.

“…제가 배우 아니었으면, 우리는 못 만났을지도 모르는데요.”

승원은 권 대표와의 당혹스러웠던 첫 만남을 다시 기억해 냈다. 스산한 기운을 잔뜩 풍긴 채 온기 하나 없어 보이던 남자의 얼굴은 지금 생각해도 털이 솟을 정도로 낯설고 무서웠다. 그때 그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승원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어쩐지 상상하고 싶지 않아서 승원은 고개를 털어 냈다.

“우리 만남이 극적이긴 했지만, 그때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만날 일이 많았을 겁니다.”

그는 꽤나 확신에 찬 말투였다.

“어쩌다 마주쳤더라도 나는 윤승원 씨가 오래도록 밟혀서 결국 내 발로 찾아왔을 테니까.”

“…….”

“다만, 내가 윤승원 씨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직접 일러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또 멍청하게 내 갈 길이나 찾겠다고 헛짓거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

“윤승원 씨를 사랑하게 돼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커다란 손바닥이 승원의 등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어차피 윤승원 씨가 아니면 다 소용없었겠지만.”

“저도…….”

숨 막히는 그의 품 안에서 승원이 입술을 바르작거리며 웅얼댔다. 강하게 묶었던 팔을 살짝 풀어낸 권 대표에 승원이 고개를 빼꼼 들었다.

“저도 대표님 아니면 안 돼요.”

승원을 들여다보던 눈이 얇게 휘었다. 입을 맞추려 다가오는 얼굴에 승원이 먼저 꾹 도장을 찍듯 입술을 묻었다.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그와 이어 나가는 키스가 자연스러웠다. 가볍게 혀를 섞다 고개를 내뺀 승원에게 그가 물었다.

“이제 촬영도 끝났는데, 좀 쉬는 겁니까?”

“아니요, 이제 시작이에요. …화보 촬영도 있고, 잡지 인터뷰도 쭉 있을 거고. 아직 스케줄이 확정된 건 아닌데, 4월부터 엄청 바쁠 거라고… 실장님이 그러셨어요.”

듣고 있던 권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난항이네.”

손으로 자신의 눈덩이를 한참 짚고 있던 그가 주절거렸다.

“윤승원 씨, 내가 한 말 잘 생각하세요.”

“…….”

“그냥 하는 말 아닙니다. 돈 많은 백수보다 좋은 직업이 있나.”

승원은 대답 대신 권 대표의 손을 치우고 그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목을 끌어안고 열렬히 키스했다. 이불 안쪽에서 뒤엉키는 몸이 뜨거운 열을 띠었다. 등과 허리를 부드럽게 쓸어안는 그에게 완전히 몸을 기댄 채 입맞춤을 나눴다.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지겨워지고 싫증 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가 돼서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먼 훗날이라 예상되지만, 저를 사랑하는 남자는 그때가 되어도 변치 않을 것 같으니까.

러브 인 도어 외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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