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 감정의 사각지대 (10/20)

10. 감정의 사각지대

“자아. 다 챙겼죠?”

“네. 어차피 챙길 것도 없는데요.”

“그래도 잘 확인해요. 윤승원 여기 병실 다녀갔다고 소문 다 난다, 이제.”

“에이, 뭘.”

승원이 실없이 웃으며 모자를 눌러썼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곽영찬의 말대로 병실 안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나흘 만의 퇴원이었다.

“발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아직 절뚝거리잖아요.”

“아파서 그러는 건 아니고 의사 선생님이 무리하지 마시라고 해서.”

승원의 팔을 억세게 잡은 곽영찬이 아예 승원의 손에 들려 있던 종이 가방까지 뺏어 갔다. 승원이 괜찮다며 달라고 했지만, 아픈 걸 내내 보고 있으려니 그것도 영 불편하다며 곽영찬이 맞받아쳤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도중 마주친 간호사 한 명의 사인 요청을 시작으로 승원은 스테이션에 서서 열 명분의 사인을 기계처럼 휘날렸다. 승원의 주위를 둘러싼 이들이 탄성 같은 한마디를 저마다 내뱉었다. 승원은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고작 나흘 있던 게 다였지만, 그래도 퇴원은 퇴원인지 홀가분했다.

“승원 씨, 나 음료 하나만 마셔도 돼요?”

“아, 네.”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복도 자판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곽영찬이 멈춰 섰다. 지갑을 뒤져 동전을 짤그락거리고 있는 곽영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승원이 얼른 자신의 지갑을 꺼냈다. 절뚝거리는 발로 자판기 앞에 서서 투입구에 카드를 꽂았다.

“요즘 카드도 되는데. 모르셨구나.”

“어? 진짜? 와…… 세상 좋아졌네.”

“뭐 드실 건데요?”

“에이, 됐어요. 내 카드 넣을게.”

“이런 걸로 사양하시면 섭섭해요.”

“그럼… 나 캔 커피 하나만 부탁해요.”

캔 커피……. 승원이 슥 훑던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렀다. 곽영찬의 음료를 뽑은 김에 아쉬워서 자신도 이온 음료를 뽑았다. 추운 날씨임에도 자판기에서 튀어나온 캔 음료는 물기가 묻어 나올 정도로 차가웠다.

“집으로 갈 거죠?”

“네.”

“더 불편한 건 없고요?”

“네, 진짜 없어요.”

“고생했네요.”

빈말이어도 자신을 챙겨 주는 것 같아 듣기 좋았다. 발목에 차고 있는 보호대 때문에 슬리퍼를 질질 끄는 승원을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곽영찬이 커피를 들이켰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24시간 돌아가는 종합 병원이라고 해도 이렇게 이른 시간의 주차장은 사람이 거의 없어 한가했다.

차가 어디 있더라……. 다 마신 캔 커피를 손으로 찌그러뜨린 곽영찬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 기사는 안전하게 나간 것 같더라고요.”

“…다행이에요.”

“진짜 다행이죠. 기자 새끼들 뭐 하나 물면 아주 지랄하고 발악을……. 몹쓸 인간들이야, 하여튼.”

승원도 병실에 있는 동안 간간이 기사들을 확인했었다. 처음엔 보는 것도 무서워서 피하고만 있다가 한 번 용기를 내서 기사 내용을 싹 훑었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자극적인 기사도 없었고, 대부분 승원의 부상에만 집중하며 쾌차를 비는 내용이 전부였다. 누군가의 입김이 들어간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승원은 자연스레 결론 짓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집 안 공기가 오래간만이었다. 안정감 있게 꺼지는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승원은 바지를 위로 올려 보호대를 차고 있던 발목을 확인했다. 발을 살살 돌리자 욱신거리는 아픔이 찾아왔다. 아킬레스건을 어루만지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원래도 휑한 냉장고는 거듭된 촬영으로 집을 비워서인지 정말 텅텅 빈 수준이었다. 승원은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소파로 돌아왔다. 원샷을 하듯이 쭉쭉 빨아 마시니 둥그런 항아리에 가득 차 있던 액체가 금방 줄어들었다. 끽끽거리는 빨대 소리가 날 때 즈음에서야 빈 우유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소파 팔걸이 귀퉁이를 손끝으로 어루만지던 승원은 문득 허벅지 밑으로 전해지는 진동에 고개를 돌렸다. 화면에 발신자를 띄운 채 덜덜 떠는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권 대표에게서 온 전화였다.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세요.”

- 어딥니까?

그는 항상 용건을 툭 뱉는 습관이 있었다. 통화할 때도 그 버릇이 도망가는 건 아니었다. 들려오는 묵직한 음성이 마냥 좋아서 승원은 입술을 달싹이다 대답했다.

“집이에요.”

- 그러면…….

괜히 옷자락을 죽죽 내리며 핸드폰을 귀에 붙이고 있는데, ‘그러면’이라는 목소리를 끝으로 권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을 깜박이며 기다리다가 전화가 끊긴 건가 싶어서 승원은 핸드폰 화면까지 다시 확인했다.

그때 딩동- 하는 벨 소리가 전화 안쪽에서 불투명하게 들렸다. 기계 같은 것이 돌아가는 소리가 점차 멀어지더니, 그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공명하듯 크게 울렸다.

- 문 좀 열어요.

무슨 말이냐며 물으려던 찰나, 저 멀리 복도 현관문이 누군가의 노크 소리로 쿵쿵, 과격하게 울렸다. 눈을 커다랗게 키운 승원이 놀란 아이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핸드폰을 든 그대로 현관으로 뛰어나가 문을 열었다.

틈새로 찬찬히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찬바람을 가득 싣고 승원을 맞이했다. 당황스러운 권 대표의 등장에 승원이 입을 뻐끔거리는데, 뒷짐을 지고 있던 그가 앞으로 손을 꺼냈다.

“꽃.”

권 대표의 손에 들려 있는 건 그와는 요만큼도 어울리지 않는 꽃다발이었다. 다발을 화려하게 채운 꽃들은 방금 물을 머금은 듯이 방울방울 수분이 가득했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 눈앞의 상황에 승원은 멍청한 얼굴로 꽃과 권 대표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그러한 승원 대신 문고리를 잡고 휙 젖혀 버린 권 대표가 승원을 지나쳐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제집처럼 들어가는 남자에 승원이 더듬거리는 발끝으로 얼른 그를 따라가 붙잡았다. 시선을 슬쩍 내린 권 대표가 승원의 발목을 확인했다.

“그 지경으로 걸으면서 퇴원을 했습니까?”

신경이 곤두선 건지 까칠한 말투였다.

“…말도 없이 오실 줄 몰랐는데.”

“이럴 거면 내가 문 따고 들어왔지.”

서로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승원의 말에도 보호대에 묶인 발목만 빤히 내려다보고 있던 권 대표가 대뜸 승원의 다리를 꽉 묶어 번쩍 안아 들었다.

“읏! 대표님……!”

“얌전히 있어요.”

악 소리를 지른 승원의 엉덩이를 그가 툭 때렸다. 발버둥을 치려 해도 단단하게 감싸진 팔에 꼼짝도 못 하는 신세였다. 내려 달라는 승원의 부탁을 깡그리 무시한 권 대표가 승원을 안아 거실까지 이동했다. 그의 품에 안겨 옮겨지는 와중에도 손에 들고 있는 꽃다발을 놓칠까 봐 승원은 손에 힘을 꾹 쥐었다. 꽃잎에서 툭툭 떨어진 물방울들이 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혼자 있을 땐 기어 다닙니까?”

“…저 걸을 수 있습니다.”

퉁명스레 대답한 승원의 발목을 그가 살짝 쥐었다. 순간적인 압박에 승원이 작은 아픔을 호소하자, 그가 혀를 쯧 찼다.

“의사가 왜 있는지 모르겠네.”

“병원에서는 퇴원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승원을 소파 위로 고이 던져 놓은 그가 숨을 짧게 뱉었다.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눈썹 한쪽을 찌푸린 채였다.

“이게 퇴원한 사람 몸인가 싶은데.”

“…….”

“다 낫고 나오는 걸 퇴원이라고 하는 겁니다.”

팔짱을 낀 권 대표가 그대로 서서 승원을 내려다보았다. 내키지 않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얼굴이 사나웠다. 얌전히 두 다리를 끌어 올린 승원은 꽃다발 속 꽃잎을 만져 보았다. 활짝 핀 꽃잎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생기를 가득 머금은 완연한 생화였다.

“…어차피 병원에 있으나 여기 있으나 똑같아서 나왔습니다.”

“그거 치우고, 얼굴 좀 봅시다.”

다발이 워낙 풍성해서 승원의 가슴과 얼굴을 다 가리고 있었다. 꽃을 밑으로 내려 둔 승원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승원의 손목을 단단히 묶은 상체가 그대로 얼굴 앞으로 떨어졌다. 날렵하게 선 권 대표의 콧대가 승원의 콧대와 곧 닿을 것처럼 가까웠다.

“…….”

“…….”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아직 다 털어 내지 못한 겨울의 끝물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잔잔하게 떠올랐다. 동시에 맞닿은 얼굴에서는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금세 불타 버린 귀 끝을 숨기지도 못한 채 승원이 눈을 내리깔았다. 진득하게 승원의 얼굴을 살핀 권 대표가 중얼거렸다.

“멍도 아직이고.”

“…….”

“병원에 있던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퇴원했어요. 병원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엉터리네요.”

눈을 흘겨 뜨던 권 대표가 승원의 앞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기고는 옆자리에 앉았다. 승원이 다 먹고 내려놓은 항아리 우유가 발에 걸리는지 ‘뭐야.’라고 중얼거린 그가 발끝으로 쓰레기를 밀어 두었다.

승원은 갑작스레 당도한 남자가 당황스러우면서도 반가웠다. 낯 뜨거워지는 기분에 시선을 주는 권 대표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승원은 그가 선물한 꽃다발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만 했다. 이름 모를 꽃들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화려해서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시야가 꽉 찼다. 승원이 꽃다발에 코를 묻고 있다가 홀린 듯이 물었다.

“이 꽃은 뭐예요?”

“퇴원해서 주는 겁니다.”

“…대표님이 저한테…….”

머뭇거리며 묻는 목소리가 조금 떨린 것도 같았다. 쿵쿵 뜀박질하는 가슴으로 승원이 고개를 들자 권 대표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승원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시선을 옆으로 틀었다. 그가 무신경하게 중얼거렸다.

“나 말고, 김 실장이.”

“……아.”

맥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김 실장이 준 꽃이라도 감사하고 기분 좋은 마음엔 변함이 없긴 하지만. 괜한 기대와 오해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실망스럽진 않았을 텐데. 결국, 제 설레발이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다 후끈거려 승원은 더 떨어지지 않는 입을 다물었다.

꽃 내음을 즐기던 승원이 손끝으로 부드러운 꽃잎을 매만졌다. 꽃은 정말 예뻤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돈을 들여 가며 꽃다발에 신경 쓰고 선물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이리도 혹한 겨울 날씨에도 승원의 품 안에 든 다발은 향긋한 봄이었다.

광대를 꿈실거리는 승원을 곁눈질로 지켜보던 권 대표가 넌지시 물었다.

“꽃 좋아합니까?”

“아…… 네. 좋아해요. 그래도 고작 나흘 있었는데 김 실장님은 무슨 퇴원 선물을…….”

막상 말로 꺼내려니 민망해져서 승원이 말끝을 흐리며 입술을 물었다.

“왜. 싫습니까?”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팬도 아닌 사적인 지인에게 이런 챙김을 받는 것도 처음이라 그런지 기분이 얼떨떨하고 낯간지러웠다. 바스락거리는 다발을 꽉 끌어안다가 킁킁, 몇 번 더 코를 묻고 꽃향기를 만끽했다. 신선함이 느껴지는 온화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예쁩니다.”

승원의 짧은 감상을 이후로 상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멋쩍어진 승원이 고개를 들자 권 대표가 자신을 아예 뚫을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꽃을 보고 있었다고 해도 저렇게 노골적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던 건가 싶을 정도로 그는 승원을 지그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

나란히 앉아 있던 터라 두 사람의 어깨가 딱 붙어 있었다. 승원은 괜히 입술에 침을 발랐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권 대표는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겉옷을 벗으며 중얼거렸다.

“아픈 사람한테 손님 대접해 달라고는 못 하겠고.”

권 대표가 익숙한 소파를 유심히 관찰하며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외투 탈의를 마치고 털썩, 그가 도로 주저앉자 잠시 기울었던 소파가 적당한 높이로 돌아왔다. 등받이에 몸을 길게 누운 그는 승원의 쪽으로 가볍게 시선만 돌렸다.

“소파는 잘 쓰고 있습니까.”

“……네. 대표님 덕분에.”

승원은 어느샌가 소파 위로 올린 두 다리를 끌어안은 채로 있었다. 병실에서 그를 꽉 끌어안고 있던 용기는 다 어디로 도망가고 저의 집에 나란히 앉아 있는 권 대표의 존재가 너무 생경해서 입술을 꾹꾹 말아 물 뿐이었다.

“촬영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이번에도 권 대표가 먼저 물었다.

“이번 주까지 미루고…… 다음 주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사전 제작이라.”

“다행이네. 집에는 어떻게 왔습니까?”

“…매니저 형이 태워다 줬습니다.”

“여기까지?”

“집 안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는데…… 제가 괜찮다고 하고 혼자 올라왔습니다.”

승원의 가슴이 크게 벌렁거렸다. 애써 침착하게 침을 삼키고 다시 그의 물음을 기다렸다.

“밥은.”

“…안 먹었는데, 별로 배가 고프지도 않아서.”

“윤승원 씨.”

권 대표의 목소리에 서서히 떨어지던 고개를 승원이 다시 들었다. 권 대표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 안에 어색하게 고개를 조아리는 제 모습이 일렁거렸다.

“나랑 있어서 불편합니까?”

“……네? 아니…….”

놀란 승원이 상체를 다시 일으키고 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비스듬히 내려온 앞머리를 성의 없이 위로 쓸어 넘긴 권 대표가 다리 한쪽을 꼬았다. 그가 살짝씩 움직일 때마다 은은한 향수 냄새가 승원의 콧속을 파고들었다.

“나한테 무슨 보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건 뭐 대화가 아니라 심문을 하는 기분이네.”

“…….”

보기 드물게 투덜거리는 어투였다. 제 손목에 달린 시계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권 대표의 옆선을 승원이 묵묵히 바라보았다. 도드라진 눈썹뼈 위로 이마가 잘게 주름져 있었다. 갑자기 매사 귀찮다는 듯한 태도로 목선이나 쓸어 만지는 권 대표를 보던 승원이 조심스레 입술을 뗐다.

“대표님이 갑자기 들이닥치시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랬어요.”

무성의하던 시선이 승원의 쪽으로 넘어왔다. 권 대표를 힐끔힐끔 바라보던 승원이 그의 가슴팍 언저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연락이라도 주고 오셨으면 미리 준비라도-.”

“나는 전화하고 왔는데.”

“…….”

현관문 앞까지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라고 통보하는 전화는 연락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토를 달 수도 없었기에 승원은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집에 먹을 것도 없고…… 지금 딱히 대접할 것도 없어서.”

“처음도 아니고. 익숙합니다.”

귓바퀴가 뜨거워진 승원은 신경도 쓰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던 권 대표는 대뜸 승원의 팔목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긴 팔의 소매를 위로 걷고, 바지까지 위로 걷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황도 잠시, 승원은 권 대표에게 두 팔과 다리를 완전히 내놓은 자세로 엉거주춤하게 있어야 했다. 그가 짧게 실소했다.

“계단에서 곡예라도 부린 겁니까? 성한 데가 없네.”

“그래도 상처 몇 개랑 멍밖에 없습니다.”

“상처 몇 개랑 멍밖에 없는 게 문제인 걸 모르나.”

“…연고 바르면 다 나을 거라서…….”

“연고 어딨습니까.”

“…네?”

자리에서 일어난 권 대표가 연고의 행방을 묻는 듯 승원을 내려다보았다. 눈썹을 짤막하게 들어 올리는 남자를 망연히 바라보던 승원은 얼떨결에 식탁에 있는 종이 가방을 가리켰다. 종이 가방을 뒤져 약 봉투를 가져온 권 대표가 승원의 쪽을 향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다리.”

“……그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마음 바뀌기 전에 내놔요.”

그 말에 하는 수 없이 다리 한쪽을 내놓았다. 권 대표의 허벅지에 어정쩡하게 발을 올려 두던 승원은 그가 무거워하진 않을까 정강이에 바짝 힘을 주었다.

“힘 빼세요.”

금세 알아차린 권 대표가 승원의 발목을 더욱 가까이 끌어당겼다. 바지 밑단이 말려 올라가며 드러나는 살갗에 별것도 아닌데 귓전이 달아오르는 듯했다. 승원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민망해져 소파 등받이만 내다보았다.

“아프면 말하세요.”

짧게 연고를 짜낸 손가락으로 승원의 상처 곳곳을 그가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보라색, 붉은색, 노란색…… 상처마다 색도 가지가지였다. 그냥 느끼기에도 단단한 손끝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승원의 피부를 어루만졌다. 지나가는 손길이 너무 진득해서인지 승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쪽.”

다리 한쪽을 금방 끝낸 권 대표가 나머지 한쪽도 연고를 새로 짜서 발라 주었다. 살갗 위에 닿는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나쁘지 않았다. 목덜미로 사르르 올라오는 간지러움에 승원이 고개를 숙였다.

“허벅지에도 있습니까?”

“……아, 네.”

“벗으세요, 그럼.”

“아니……! 그건 제가…….”

성급하게 바지춤을 붙잡는 승원을 슥 바라보더니 권 대표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에 이제 와서 내외합니까.”

“…….”

“그럼 거긴 알아서 바르던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연고를 새로 짜내는 얼굴엔 여전히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승원은 다음으로 내놓으라는 팔도 그에게 넘겨주었다. 더욱 바짝 밀착된 몸이 아까부터 신경 쓰였다. 넓은 집 소파 위에 그와 단둘이었다. 승원은 갑자기 턱 막히는 숨을 힘겹게 참고 입술을 짓씹었다. 가슴 안쪽을 푹 치고 들어온 충동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얼굴.”

어느새 팔을 다 끝낸 건지 권 대표가 승원과 눈높이를 맞추며 연고를 바른 손을 들이밀었다. 그는 승원과의 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승원의 다리를 다시 확 끌어당겼다. 엉덩이가 완전히 그에게로 쏠렸고, 권 대표는 승원의 두 다리를 양반다리를 한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 두었다. 졸지에 그의 허리에 다리를 완전히 감은 모습이 되었다.

“윤승원 씨 얼굴에 이 짓만 몇 번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흐읏.”

차가운 연고가 뺨에 닿자 승원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고개를 틀어 승원을 확인한 그가 입술을 열었다.

“아픕니까.”

“……아니요. 조금 간지러워요.”

얼굴 곳곳에 그의 열띤 손가락이 타고 지나갔다. 안 그래도 상처 때문에 열이 오르는 곳을 권 대표가 꾹 누르고 지나가면, 그 주변까지 전부 열에 덴 듯이 화끈거리는 것만 같았다. 팔과 다리를 맡겼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떨림이었다. 손끝이 떨리는 걸 들킬까 싶어 승원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살성이 약하니 매번 이렇게 멍이 들지.”

목소리가 너무 가까웠다. 그가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뱉으면, 공기 주변을 돌지 않고 곧장 승원의 얼굴로 다가왔다. 팔다리에 바를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피부가, 유독 얼굴만 붉게 열을 뿜어 댔다.

권 대표가 뭐라고 말을 하든 승원은 그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귀에 막을 한 겹 덧씌운 것처럼 모든 소리가 뿌옇게 지워졌다. 눈을 들면 좋아하는 얼굴이 맞닿아 있었고, 다시 눈을 내리면 그의 널따란 가슴이 보였다. 무거운 자신의 두 다리는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가 단단한 허리를 감싼 채였다.

“턱도 발라야 할 것 같은데. 고개 좀 더 들-.”

더는 불가항력이었다.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승원이 마주한 입술에 입을 맞췄다. 반사적으로 던진 도박과도 같은 키스는 그 이상 욕심을 내지 못하고 그의 입술 주변을 배회했다.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입술 위에 도장을 누르던 승원은 곧이어 당겨지는 뒷덜미에 빨려 들어가듯이 권 대표에게 이끌렸다.

“……흐읍-.”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혀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파고들었다. 고삐 풀린 혀가 승원의 입 안을 뚫을 듯이 헤집었다. 목덜미를 어루만지던 손길이 등으로 내려와 승원의 티셔츠를 들쳤다. 연고가 치덕치덕 발려 있던 손가락이 허리뼈를 가지런하게 쓸어올렸다. 그의 입 안에 가느다란 신음을 뱉어 낸 승원이 등허리를 휘었다.

“내가 진짜…….”

“하, 읏…… 으읍.”

곤두선 혀끝이 말랑한 승원의 혀를 뭉개고 핥았다. 완전히 먹혀들어 가는 것처럼 승원은 권 대표에게 모조리 씹어 삼켜졌다. 끌어당긴 탓에 붙어 있던 가슴에 뜨거운 열기가 불어나고 흥분감으로 가득 찬 머릿속이 붉게 점멸했다. 그는 승원의 뺨 안쪽을 찌르고 목구멍과 이 안쪽까지 끈질기게 탐닉했다. 서로의 타액이 축축하게 입 안에 고여 갔다.

길게 이어진 키스의 끝에 승원이 눈을 떴다. 맞물려 있던 권 대표의 속눈썹과 교차해 눈덩이가 간질거렸다. 권 대표는 승원의 눈을 보자마자 그의 콧방울에 다시 입을 맞췄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

“이러면 섹스하고 싶잖아.”

승원이 침을 꿀떡 넘겼다. 목구멍 뒤로 넘긴 타액의 절반은 그의 것일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또 삽시간에 뺨이 달아올랐다. 승원은 연고로 반질거리는 제 얼굴은 생각도 못 하고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어깨에 뺨을 기대고 고목에 붙은 매미처럼 몸을 붙였다. 귓전에서 얕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건드릴 생각 없습니다.”

“…….”

“지금 여기서 시작하면…….”

한참 동안 붙어 있던 몸이 더웠다. 승원은 그래도 권 대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있자 쿵쿵대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연이어 들린 숨소리가 승원의 뒷덜미를 뜨겁게 데웠다. 낮은 음성이 떨어졌다.

“윤승원 씨 진짜 못 걸을 수도 있습니다.”

“…….”

“그건 싫잖아.”

“…흣.”

“뭐, 계속 환자로 지내는 것도 내 쪽에선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속삭인 목소리가 순간 섬찟해서 승원이 목을 부르르 떨었다. 관자놀이에 다시 짧은 입맞춤이 떨어졌다. 배 속을 휘젓는 소름에 목에 돋아난 맥박이 빠르게 진동했다. 승원은 뒤늦게 얼얼함이 느껴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권 대표의 혀와 입술이 드나들던 입 안을 혀로 축축이 적셨다.

“…상처만 건들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뭐?”

멍하니 주절거린 승원의 말에 권 대표가 눈 한쪽을 찡그렸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품에 안긴 승원을 내려다보았다.

“저… 걷는 것만 조금 불편하고 나머지는 다 괜찮아요.”

“…그럼 연고는 왜 발랐습니까. 거긴 아픈 게 아니고?”

“대표님이 발라주셨으니까…….”

권 대표가 짧게 코웃음을 쳤다. 마른 입을 적시며 그가 다시 승원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그의 가슴에 턱을 기댄 채 승원은 지지 않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살짝 벌어진 권 대표의 입 안쪽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혀가 망설임을 보였다. 잠시 말이 없던 그가 낮게 말했다.

“옷부터 벗어 봐요, 그럼.”

“…….”

“뭘 하고 싶은 건데. 애무? 아니면, 삽입?”

꼼지락거리며 뒤로 물러나려던 승원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노골적인 질문에 잠시 파리한 얼굴로 권 대표를 바라보던 승원이 천천히 웃옷을 벗었다. 소파 밑으로 옷을 던지기 무섭게 그가 승원의 유두 끝을 손가락으로 통 튀겼다. 곧바로 입술이 닿았다.

“으, 으읍…….”

“연고 발라 주겠다고 벗으라고 할 땐 내빼더니.”

“하, 으.”

짓이겨 넣던 혀를 빼더니 입술을 쪽 빨고 지나간 권 대표가 승원의 바지를 훅 당겨 벗겨 버렸다. 반동으로 뒤로 밀린 승원이 소파에 뒤통수가 닿도록 넘어졌다. 다리 밑으로 바지까지 벗겨지자 완전한 나체 상태였다. 곧이어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럴 땐 망설임이 없네요.”

약간의 비소가 덧대어진 말투였다. 갑자기 와 닿는 공기의 흐름이 너무 어색하고 민망해서 승원은 손을 내려 중심부를 살짝 가렸다. 남은 손으로 얼굴까지 가리자 그가 재빨리 승원의 손을 치웠다. 반쯤 발기한 성기를 그가 살짝 쥐었다.

“흐, 읏…….”

“뭐 했다고 벌써 섰습니까.”

귀두 끝으로 흘러나오는 프리컴을 검지 안쪽으로 살살 비비자 승원이 몸을 비틀었다. 마른 배에 바짝 힘이 들어가고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귀두를 한참 동안 둥글게 매만지던 권 대표가 축축하게 적셔진 손을 승원의 가슴으로 올렸다. 그가 젖꼭지를 잡아 꼬집듯이 당기고 유륜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하, 아…… 으읏……!”

“가슴까지 이렇게 예민해서야.”

“으읏, 대표님… 흐…….”

창피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렇게 민망하고 부끄러운데도, 고조되는 흥분에 멈춰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조여드는 갈증에 애가 탔다. 양손으로 제 성기와 가슴을 찬찬히 만져 주는 남자의 손길을 느끼던 승원은 소파 등받이에 얼굴을 묻은 그대로 제 손을 뻗어 허공을 더듬었다. 아래쪽으로 쭉 내리다 찾은 권 대표의 손은 자신의 기둥을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승원이 그의 손을 잡아 위로 끌어 올렸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여기… 더 만져주세요…….”

발기한 기둥은 이미 배꼽 가까이에 꼭 닿아 꺼떡대고 있었다. 승원이 애타는 건 그쪽이 아니었다. 가슴은 두 쪽인데, 한쪽만 손길을 받고 있으니 남은 부위가 너무 헛헛했다.

두 쪽을 다 만져 줄 줄 알았는데, 가슴 양쪽에 손을 얹어 둔 권 대표는 원래 만지고 있던 손 한쪽도 움직임을 멈췄다. 색색 숨을 내쉬고 있던 승원이 의아함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늘진 낯을 띤 권 대표가 반쯤 인상을 쓰고 있었다.

“…가슴 만져주니까 좋습니까?”

“…….”

“씨발, 진짜…….”

그가 아예 고개를 틀어 웃기 시작했다. 승원의 젖꼭지를 만지고 있던 손을 들어 제 눈가를 짚었다. 한동안 건조하게 웃던 그가 무언가를 챙겨 들었다.

“가슴에 이렇게 환장할 줄은 몰랐는데.”

“…….”

“대표님, 그거…….”

“만지는 내 쪽도 좋아야 할 거 아닙니까.”

돌돌 열리는 뚜껑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까 바른 연고였다. 손에 불투명한 크림을 쭉 짠 그가 승원의 다리를 앞으로 더 당겼다. 엉덩이에 닿은 권 대표의 앞섶이 곧 바지를 뚫고 나올 듯이 거대하게 솟아 있었다. 승원의 배꼽 위로 점성이 강한 프리컴이 거미줄처럼 길게 흘러 내려왔다.

“흐으…….”

꽤 많은 양의 연고가 젖꼭지 위에 덧발라졌다. 차가운 감각에 승원이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화끈거리는 기운에 가슴 주변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양쪽에 연고를 바른 그가 엄지로 유두를 꾹 누르더니 살살 돌리기 시작했다. 목에 힘을 바짝 준 승원이 두 팔을 부르르 떨었다.

“하, 으읏…….”

“……씹.”

그가 승원의 가슴을 문지르며 마른 웃음을 내뱉었다. 욕을 뒤로 삼키고는 위로 툭 튀어나온 돌기를 검지 끝으로 살짝 튕겼다. 자지러지는 승원의 몸을 있는 그대로 내려다보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유륜 주변이 매끈한 연고로 코팅되었다. 돌기 위를 검지로 꾹 누를 때마다 승원이 이상한 신음을 내뱉었다.

“으응, 하…… 흐으으…….”

“남의 가슴 만지면서, 씨발 이렇게 발기한 적이 없는데.”

“…으응….”

“변태새끼가 따로 없네.”

저 자신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권 대표의 손이 닿는 족족 승원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권 대표는 계속 통제하기 힘든 사람처럼 욕을 짓씹었고, 승원은 그의 손이 미끄럽게 닿을 때마다 두 어깨를 떨고 가슴을 위로 쳐들었다. 젖꼭지는 물론이고 가슴 언저리를 마사지하듯 내내 주물럭거리는 통에 평평하다고만 느꼈던 가슴이 위로 봉긋하게 솟아오르는 기분까지 들었다.

이제는 이런 곳까지 전부 예민했다. 승원은 그저 권 대표의 손이 닿는 곳이면 전부 무른 두부처럼 속절없이 당했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뺨으로 고개를 살짝 내려 보면 하얗고 잘빠진 그의 손가락이 제 가슴을 누르며 당기고 있었다. 미끈미끈한 감촉과 더불어 흥분감에 평소보다 튀어나온 돌기 위로 그의 뭉툭한 손톱만 닿아도 발기한 성기가 움찔거리기 일쑤였다.

“……좋아 죽겠나 보네.”

“좋, 흐으…… 으으……, 응…….”

말을 하고 싶은데 잔뜩 달아오른 부위를 조금이라도 건들기만 하면 덧없이 신음이 새어 나왔다. 다리 사이가 간지러워 승원은 문득 두 허벅지를 비비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리고 그때, 높이 떠 있기만 하던 권 대표의 얼굴이 순식간에 앞으로 드리워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파악을 하기도 전에, 제 젖꼭지를 강하게 깨무는 잇새에 승원이 학,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아……! 대표님……!”

승원의 가슴 한쪽을 입 안에 가득 머금은 그가 이 사이로 툭 튀어 오른 돌기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아예 입술을 파묻고 위로 쪽 빨아 올린 그가 뾰족하게 세운 혀끝으로 유륜을 빙글빙글 돌려 빨기 시작했다.

“비린 약 맛이…… 나는데.”

“으, 그, 으응…….”

“남의 가슴 빨아 보는 건 나도 처음이라.”

“흐으으…… 으, 이상…… 해요…….”

발끝이 잔뜩 오므라들었다. 더 말려들어 갈 데가 없을 정도로 승원은 발가락을 안쪽으로 콱 움켜쥐었다. 축축하고 말랑거리는 것이 젖꼭지를 강하게 휘돌고 삼켰다. 적당한 미끈거림이 느껴지던 연고의 감촉과는 차원이 다른 자극이었다.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승원이 다리를 힘겹게 떨었다. 눈을 위로 치켜뜬 채 승원의 반응을 요요히 지켜보던 권 대표는 반대쪽 역시 입에 물었다. 아예 혀끝을 뾰족하게 들어 젖꼭지를 길게 핥은 그가 남은 손으로 이미 젖어 있는 젖꼭지를 살살 돌렸다. 프리컴을 하도 쏟은 탓에 배꼽에 눅진한 우물이 고였다.

“좋아서 말도 못 하고.”

“하, 하으으…….”

“그렇게 좋습니까, 눈까지 뒤집어 깔 기세인데.”

공격적으로 뱉으면서도 그는 부드러운 혀 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쪽쪽 빨다가 다시 잘근잘근 깨물던 권 대표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제 웃옷을 아예 벗어 버리고 반나체가 된 몸으로 다시 승원에게 바짝 붙었다. 집요하게 붙은 그가 삼백안의 눈으로 승원을 올려다보았다. 입에 문 젖꼭지는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으윽…… 흣……!”

얼마나 더 물고 빨았을까. 승원은 깨닫지도 못한 순간 엄청난 탈력감을 느꼈다. 승원의 가슴을 쭉쭉 빨던 그가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배에 잔뜩 싸 버린 정액을 보고는 물고 있던 입술을 벌렸다. 이미 타액과 연고로 다 젖은 입술을 승원의 유두 위로 문질러 비볐다.

“하다 하다 가슴 만져 줬다고 싸는 겁니까.”

“……하, 하아…….”

“이렇게 예민해서야 밖에서 활동은 하겠나 싶을 정도인데.”

몸에 수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승원이 가슴을 크게 일렁이며 숨을 뱉었다. 그가 뭐라고 하든 지금 당장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승원의 목선에 손을 얹어 몸 선을 어루만지듯 밑으로 쭉 내린 그가 축 처진 기둥을 톡톡 건드렸다. 허벅지 안쪽을 부르르 떠는 승원을 바라보고는 그가 바지를 벗었다.

권 대표의 성기 역시 이미 커질 대로 커져 딴딴하게 모양을 잡은 상태였다. 도드라진 핏줄을 그대로 드러낸 선단이 곧 부풀 것 같은 자두 빛이었다. 여운을 느끼면서도 승원은 저 앞에 보이는 압도적인 크기의 물건에 침을 꿀떡 삼켰다. 전에는 흉흉하게만 느껴졌던 물건이 이젠 보고만 있어도 당장 안에 넣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삽입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

“먼저 간 게 괘씸해서.”

그가 승원의 엉덩이 밑부분을 잡고 위로 휙 들어 올렸다. 허리 아래부터 허공으로 떠 버린 몸에 승원이 다리를 짧게 발버둥 쳤다. 곧 권 대표의 허벅지가 단단하게 승원의 하체를 받쳤다. 위로 들린 몸에 골 사이가 완전히 벌어져 그에게 노출되었다. 아까 싸지른 정액이 판판한 배를 타고 가슴께까지 줄줄 흘렀다.

권 대표가 연고를 다시 들었다. 연고를 손가락에 묻힌 그가 뻐끔거리는 승원의 구멍 위쪽에 펴 발랐다. 골을 더욱 벌리고 안쪽의 검은 공간을 살짝 벌리자 붉은 주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끄덩한 손가락으로 바깥의 주름을 하나씩 잡으며 만지던 그가 손가락을 안으로 불쑥 넣었다.

“으읏……!”

눈을 바싹 감은 승원이 잡을 것도 없는 소파 시트를 꾹 움켜쥐었다. 권 대표는 당장 안쪽으로 얼굴이라도 처넣을 기세로 승원의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안의 주름을 샅샅이 파악하려는 듯이 손가락을 넣어 움직이던 그가 두 개를 더 추가했다. 새끼와 엄지를 제외하고 모든 손가락이 안을 밀고 들어왔다.

“아픕니까?”

“흐으…… 아니, 으응…….”

권 대표는 손가락이 남들보다도 월등히 길었다. 그냥 넣어서 조금 헤집기만 해도 금방 전립선 근처를 배회하고 닿았다. 승원은 힘겹게 숨을 토해 내다가도 그가 손가락을 조금만 안으로 넣는가 싶으면 팔딱 튀어 오르며 야한 소리를 내질렀다. 권 대표는 굴하지 않고 손끝으로 직접 느끼려는 듯이 안쪽의 주름을 하나하나 매만졌다.

아직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제 몸의 공간을 눈앞의 남자가 탐험하듯이 들여다보며 어루만지고 있었다. 승원도 알지 못하는 승원의 안쪽을 이젠 그가 훨씬 더 많이 알았다. 이마 끝까지 붉어진 얼굴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승원은 눈시울이 벌게진 채 힘겹게 숨을 쉬었다. 언제까지 감질나게 손가락으로만 만지고 있는 건지 의아할 때 즈음, 그가 손을 쭉 빼냈다. 윤활제 역할을 하던 연고 덕분에 입구가 넓게 벌어져 암흑을 만들었다.

“하으으…….”

“……미치겠네.”

그가 꺼낸 손가락을 진득하게 비비며 중얼거렸다. 한동안 벌름거리는 구멍을 손끝으로 더듬던 권 대표가 잠시 제 성기를 맞잡아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기둥 밑으로 흘러내리는 프리컴을 덕지덕지 발라 매끈하게 매만졌다. 적당한 각도로 세워진 물건을 잡은 그가 다시 다물어지려던 승원의 구멍으로 맞대었다.

“힘 빼세요. …넣겠습니다.”

더 빠질 힘도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 바깥에서 배회하던 선단이 안쪽으로 움푹 파고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이완을 해 주었건만, 상당한 크기의 좆이 안으로 밀려 들어오자 승원의 안쪽도 바짝 긴장하고 주름을 팽팽하게 세웠다.

“으응…… 대표…… 읏…….”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승원이 흡, 숨을 참았다.

“왜 불러.”

느린 호흡을 내뱉으며 그가 승원에게 대꾸해 주었다. 신음과 부름이 뒤섞인 음성을 내지르며 승원은 오물오물 그의 것을 머금는 자신의 구멍에 잔뜩 힘을 주었다. 위쪽에서 권 대표가 후우, 길게 숨을 쉬었다. 승원의 배를 매만지던 그가 낮게 말했다.

“다 들어가려면 한참 남았습니다.”

“……빠, 빨리……”

“빨리 넣으면 싫다고 내뺄 거잖아.”

두 다리가 권 대표의 어깨 위에 올라갔다. 그가 승원의 손을 들어 배 위에 올려 주었다. 자신의 안쪽을 거의 꽉 채우고 들어온 권 대표가 배 밑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도드라진 윤곽이 이미 배를 적신 정액과 함께 야릇한 감각으로 온몸을 지배했다.

“…아픕니까?”

“으으응…….”

재빨리 도리질을 쳤다. 버거운 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미 권 대표의 물건으로 잔뜩 길들여진 탓에 이제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승원의 허벅지를 휘감아 잡고 그가 후, 짤막한 숨을 뱉었다.

“다 들어갔으니까… 적당히 조이세요. 이러면 꺼내지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잠시 안쪽에 뜨겁게 머무는가 싶던 기둥이 뒤로 스르륵 물러가기 시작했다. 주름의 결을 전부 느낄 것처럼 뒤로 묵직하게 나가는 그의 좆에 따라 배 위쪽의 윤곽도 천천히 희미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엄청난 자극이 배 안쪽을 치고 들어왔다. 3분의 1 정도만 남기고 모조리 나갔던 그의 살덩이가 다시 모든 주름을 움켜잡으며 전립선을 훅 찔렀다. 모든 신경이 뚝 끊어진 것처럼 정신이 아득했다. 승원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아악, 하악!”

“아, 직입니다.”

긴장감에 바짝 세운 목 위의 여린 살이 바들바들 떨렸다. 다시 뒤로 물러나는가 싶던 그가 허리를 앞으로 확 처넣었다. 새빨개졌을 안쪽의 부푼 살을 배려 없이 강타한 그가 밭은 숨을 내뱉었다. 몇 번을 더 천천히 밀려 나갔다가 힘을 넣어 밀어붙이기를 반복했다.

“윽, ……으으! 흐으윽!”

어떠한 리듬감을 형성하며 그가 움직일 때마다 시트에 닿은 승원의 머리가 위로 붕 떴다가 다시 내려왔다. 머리카락이 적당히 땀에 젖은 얼굴에 엉겨 붙어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런 승원의 얼굴을 손끝으로 가지런히 정리해 준 권 대표가 종아리에 짧게 입을 맞췄다.

“빠르게 움직일 거니까, 힘주지 마세요. 다칩니다.”

“자, 잠깐…… 대표님, 흐으, 으, 으응!”

구멍 안이 부풀어 올라 경련하는 느낌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이미 허리 짓을 시작한 권 대표에 승원의 목소리가 힘 한번 내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신음으로 덧대어진 목소리가 울대를 가냘프게 떨며 새어 나왔다.

“응, 흑, 으읏! 읏, 으으……!”

“찌르는, 족족 반응, 하고-.”

“아읏! 하으으, 윽, 흐…….”

“입이고, 좆이고, 좋다고 침을, 질질 흘리는데-. …하아, 씨발…….”

오늘따라 권 대표는 입이 거칠었다. 승원은 반쯤 허공으로 쳐든 채 바닥으로 밀리는 몸에 반동을 무겁게 느끼며 꽉 닿는 쾌감을 채웠다. 권 대표는 한 번을 지체하지 않고 쉴 새 없이 안에 꽂듯이 좆을 박아 넣었다.

곱아든 발가락에 쥐가 나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움직일 때와는 또 완전히 다른 감각이었다. 재빠른 속도로 안쪽에서 피스톤질을 반복할 때마다 승원은 권 대표의 말대로 입술과 귀두 끝으로 묽은 액체를 늘어지게 쏟아 냈다.

삽입 전부터 커질 대로 커져 있던 그의 성기는 승원의 안쪽에서 움직임을 지속할수록 점점 더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면적을 넓혀가며 쫀쫀한 안을 늘려 가던 그의 성기가 아까보다 움직임을 더욱 빨리했다. 숨을 가쁘게 쉬어 가며 권 대표가 거칠게 허리 짓 했다. 묵직한 살결이 구멍을 비집고 들어올 때마다 입구 주변 주름이 붉게 헐어 가는 것을 느꼈다.

“아윽, 하아! 아아…….”

승원이 먼저 묽은 정액을 사정했다. 아까보다 색이 연하고 물기가 있는 액체가 배에 가득 쏟아졌다. 곧바로 승원의 몸에서 쑥 몸을 빼자 안에서 원활하게 움직이던 권 대표의 성기가 퉁 튀어 오르며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숨 가쁜 목소리로 승원에게 짧게 말했다.

“…지금 윤승원 씨 얼굴에 싸고 싶은데.”

매번 안쪽에 싸던 그가 사정감에 들뜬 좆을 꺼낸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염두에 두고 있던 상황도 아니었지만, 당장 승원은 상황을 정리하고 생각할 겨를도 체력도 없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권 대표의 커다란 그림자를 그대로 느끼며 승원은 스르륵 눈을 감았다.

“하, 윽, 하아…….”

얼굴에 닿고도 인지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눈을 감고 있던 얼굴 위로 뜨겁고 끈적이는 것들이 물총처럼 떨어졌다. 그의 정액은 물처럼 흐르지도 않고 얼굴에 닿는 족족 점성을 드러내며 느리게 흩어졌다. 승원이 파르르 속눈썹을 떨며 눈을 떴다. 시야 바로 위에 자신을 내려다보는 만족스러운 눈이 있었다.

“…미친.”

권 대표가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짧은 한마디엔 더운 숨결이 함께 섞여 있었다. 손을 내려 승원의 눈가를 짓누른 그가 자신의 정액이 잔뜩 묻은 승원의 볼을 둥글게 매만졌다. 잔여감이 남은 귀두 끝을 밑으로 내려 승원의 입술에 문질렀다. 하얀 액체와 섞여 묵직한 기둥이 얼굴을 치댔다. 그의 것으로 가득 젖은 그대로 승원이 입을 살짝 벌렸다.

“이런 건 타고난 겁니까?”

“……으음, 흡…….”

비릿하고 매끈거리는 귀두를 혀끝으로 핥으며 승원이 눈을 깜박였다. 둥근 입구를 입에 반쯤 머금고 아이스바를 빨 듯이 뻐끔, 움직였다. 적당히 남은 정액을 혀로 삭삭 핥으며 승원이 권 대표를 그대로 올려다봤다. 입술을 살짝 벌린 권 대표가 승원의 볼 한쪽을 매만졌다.

“잘 먹네.”

마냥 달았다. 식지 않은 열기가 입안을 범람했다. 만족스러운 눈으로 승원을 내려다보며 그가 머리칼을 쓸어 만지고 뺨을 매만졌다. 승원은 한참 동안 감상하던 그가 뒷정리를 하려고 일어나서도 승원은 여전히 힘에 겨운 눈과 입을 뻐끔대며 숨을 골랐다.

“일어나세요.”

얼굴과 몸을 모조리 닦아낸 그가 승원의 팔을 잡아당겼다. 무겁게 몸을 일으키자 소파 위쪽에 있던 담요를 펼쳐 그가 승원의 몸에 둘렀다. 망토처럼 싸인 담요가 금방 몸을 따뜻하게 데웠다. 승원은 누군가에게 등을 밀리듯이 권 대표의 가슴 위로 몸을 떨어뜨렸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탈력감이 가득한 몸뚱어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퇴원하자마자 원한 게 이런 겁니까.”

“대표님이 집에 찾아오지만 않으셨어도…….”

정말로 그가 집에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달은 몸이라는 걸 깨닫지도 못했을 텐데. 괜히 승원을 생각해 집에 꽃을 들고 찾아오는 일만 없었어도. 오늘도 무난히 그를 생각하며 지나갔을 하루였을 텐데. 권 대표의 가슴에 뺨을 얹은 승원이 안쪽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맥박 소리에 눈을 끔뻑거렸다.

“이젠 내 탓을 하네.”

그가 짧게 중얼거렸다.

“……대표님.”

“왜요.”

권 대표가 목을 울리니 가슴이 더욱 크게 움직였다. 승원이 침을 삼키고 숨을 두어 번 더 쉬다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은 이제 저랑…….”

“…….”

“저랑 이런 짓을 해도 후회되지 않으세요?”

승원이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올곧게 내려다보는 까만 눈동자가 있었다.

“그런 건 왜 물어봅니까.”

“…….”

“또 두고 나갈까 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기실 물음 뒤로 드러난 은연중에 품어 뒀던 불안이었다. 언제까지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정정당당히 맞서 그에게 묻는 건 더 어려운 일이었다. 유리 조각보다 다루기 힘든 남자에게 잘못 접근했다가는 그 작은 조각마저 깨져 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승원을 망설이게 했다.

말이 없는 승원의 어깨 위로 묵직한 얼굴이 내려앉았다. 뜨거운 체온이 어깨뼈를 타고 몸 안쪽으로 퍼져 나갔다.

“배고프지 않습니까.”

“…….”

“뭐라도 시켜 먹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는 딴소리를 했다. 권 대표가 말을 할 때마다 귓가에 솜털이 그의 숨결로 간지럽게 춤을 췄다. 승원은 울룩불룩한 뼈가 느껴지는 그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입술을 꾹 다물고 그의 가슴에 입을 맞추듯 비볐다.

“저는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대표님이랑 먹는 거면 다 좋아서…….”

“윤승원 씨도 가만 보면 참 적당히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권 대표는 승원의 뒤통수를 가볍게 쓸어 만졌다. 천천히 내려오던 손길은 어느덧 뜨거운 목덜미에 닿았다. 연한 살을 기다란 손끝이 한없이 간지럽혔다.

승원은 오래도록 그의 몸을 더듬고 향기를 간직했다. 놓치기 싫어 손에 꾹 쥐고 놓지 않았다. 과거의 궤적이 모든 흔적과 자취를 남기듯,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이젠 전부 알 것 같았다. 그러니 그에게 관계의 정의를 묻는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서로의 숨을 나누고, 온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적당한 햇살이 따사롭게 거실 안쪽을 비췄다. 아직 몸에 남은 잔여물도 잊은 채 승원은 그에게로 더욱 파고들었다. 꽃다발보다 천만 배 좋은 그를 껴안고 숨을 쉬었다.

[다음 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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