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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1/41)

Prologue

여자가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눈앞에 빛이 번쩍였다. 시야가 어지럽다.

칼리오페는 죽음을 예감했다.

번쩍번쩍하던 빛이 이리저리 휘더니 눈앞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 일은 끝난 일이오! 루스티첼 백작은 본인의 실수로 인한 사고로 죽었소! 자꾸 들쑤시면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소!]

졸속으로 진행된 사건 조사는 의문점만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루스티첼 일가가 보상금을 노리고 백작의 죽음을 조작하려 한다더군.]

[깨끗한 척은 다 하더니 본색을 드러내네요.]

제대로 된 조사와 진상규명을 요구할수록 경멸받았다. 상황을 알리려 했으나 여론은 악화되기만 했다.

아버지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는데 모두 가만히 있으라고만 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밝혀낼게. 너는 밥 먹고 자도록 해. 매일매일 해 질 무렵이면 침대에 눕고 새가 울면 일어나. 일어나면 밥을 먹고. 하루 세 번 먹어야 해. 너는 그것만 해줘. 부탁한다.]

생활을 영위하라고, 죽지 못해 살지 말고 삶을 이어가라고. 그것만이 유일한 부탁이라며 말했던 첫째 오라버니.

그는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못했다.

[리페, 넌 살아남아야 해. 그것만 생각해. 가족들의 죽음은…… 잊어버려.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네가 살 생각만 해.]

항상 장난스럽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서 진지하게 당부하던 둘째 오라버니.

다음날 집을 나가서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다시 돌아왔을 땐…….

[아아, 로베르트! 로벨! 아아아아아악—!]

아버지의 죽음에도, 첫째 오라버니의 실종에도 의연하던 어머니가 가슴을 쥐어뜯었다. 비명 소리가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섬뜩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비명을 우뚝 멈춘 어머니가 필사적으로 시신을 가렸다.

[보, 보지 말거라, 리페.]

[……!]

둘째 오라버니는 대체 어떤 일을 겪었는지 피부가 온통 시커멨다. 뼈가 뒤틀려 형체조차 온전하지 못했다.

그 후 어머니는 앓기 시작했다.

자신 앞에서는 강인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뒤에선 속에 든 것을 모조리 토했다. 먹은 것이 없어도. 위액조차 다 쏟아내자 피가 어머니의 옷을 적셨다.

전쟁으로 포탄 소리와 비명이 귀를 먹먹하게 울렸지만 칼리오페는 묵묵히 어머니의 곁을 지켰다.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리페, 내 아가……. 행복해야 한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는데, 행복해질 수도 없는데 행복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래서 부모 잃은 아이를 보고 지나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마저도 구하지 못했다.

시체 없는 무덤을 만들고 신앙 없는 진혼곡을 불렀다. 빗소리에 세상이 무덤처럼 침묵했다. 그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는 흐릿하게 어그러져 세상과 함께 침묵했다.

아무도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무덤의 영혼조차도.

[멋진 노래네.]

여자가 빗소리를 뚫고 말을 걸기 전까진.

되새기기도 고통스러운 순간들이었다.

빛 때문에 가물거리는 시야 사이로 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에게로 손을 뻗고 있다. 하지만 닿지 않는다.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후회하고 있을까?

[안됩니다, 아가씨!]

자신을 가로막던 기사의 말을 들었다면 이런 결말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죽음은 그전부터 각오했었다.

[다치는 것보다, 죽는 것보다 더 안 되는 게 있어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루스티첼의, 가족의 의지였으니까.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것.]

죽어가는 이 순간에도 바뀌지 않는 진심.

[저는 평생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라 가르침 받고 살아왔어요. 그러니 지금 죽더라도 저 아이를 돕겠어요.]

후회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돕는 게 아가씨의 고집이라면, 아가씨를 지키는 건 제 고집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를 따라나선 그는, 과연 후회하지 않을까?

여자가 미소 지었다. 바닥에 펼쳐진 문양을 따라 흐르던 빛이 더 강렬해졌다.

그 빛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파편화된 시야에 회한 비슷한 것이 떠오른다.

밑바닥을 드러내고 배신한 사람들도 있지만, 끝까지 신의를 지키다 죽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 모두 다 죽고 하나 남았다. 그라도 살렸어야 했는데 내가 말려들게 했다.

만약, 만약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선물을 줄 테니 조금 더 그 목소리를 들려주렴.”

여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둥둥 울렸다. 엉키고 뭉그러지던 울림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 누구도 죽게 하지 않을 거야.

“네가 바꿔봐.”

그게 마지막이었다. 빛이 꺼지고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 * *

눈앞이 까맣다. 희미한 빛조차 파고들지 못한 완벽한 어둠이었다. 하지만 무척 따뜻하고 안온해서 벗어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칼리오페는 몸을 웅크렸다. 몇 년 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다. 마치 엄마의 품같이.

이대로 영원히 있고 싶다. 더 이상 엄마가 없으니까. 계속 여기에 있을래. 칼리오페는 답지 않게 애처럼 투정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극심한 압박감이 그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도 속수무책이었다.

싫어! 더 이상은 싫어!

“응애!”

응……애?! 응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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