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놀이공원으로 가던 길은 퇴근 시간과 맞물려 답답하리만큼 막히더니, 나와서 집으로 향하는 길은 같은 길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막힘이 없었다.
빠르게 주차를 마친 강현우는 희주가 채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보닛을 빙 돌아 희주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손을 단단히 붙들었다. 놀이공원에서부터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도 내내 서로의 손을 꼭 쥐고 있던 두 사람이었다.
지하 주차장에서부터 강현우의 집이 있는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중간에 멈춤이 없었다. 이번에 강현우의 집에서 꽤 길게 지내는 동안 새로 알게 된 건데, 아파트 최상층은 따로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했다. 처음 하루 이틀은 버벅거리기 일쑤였으나, 일주일쯤 되어가니 버튼을 누르고 타고 내리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이제 제집인 양 자연스럽게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희주를 가만히 지켜보던 강현우는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쭉 같이 살면 좋을 텐데. 이건 나중에 슬그머니 말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 강현우는 희주가 붙잡아 주는 현관문 안쪽으로 성큼 발을 디뎠다.
“저… 현우 씨.”
당연하겠지만 집 안은 조용했다. 띠리릭, 하고 등 뒤로 도어 록이 잠기는 소리가 들려온 후로도 그러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강현우가 바로 덤벼들 줄 알고 내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희주는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 너무도 민망해졌다.
저라도 무슨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아, 앞서서 복도를 가로지르던 희주가 적막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제 부름에 강현우의 시선이 제게 닿는 것을 느끼며 괜히 열없이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저는 여기 바깥 욕실에서 씻을게요.”
희주는 안방과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커다란 욕조와 샤워 부스가 한데 있는 안방 욕실과는 달리 간단하게 샤워 부스만 있는 서브 욕실 쪽이었다. 외출을 했으니 집에 와서 샤워를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고, 욕실이 많으면 각자 어디서 씻을지 정할 수도 있는 건데 말을 꺼내는 게 왜 이렇게 어색한 건지 모르겠다. 이상하게 귓가가 뜨거웠다.
“왜요? 같이 씻지.”
“어차피 욕실도 많고…….”
“프러포즈까지 해 놓고 내외하는 거예요?”
이제 와서? 강현우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어정쩡하게 서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희주의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방금 제가 한 말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강현우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한쪽 팔에 걸치고, 갑갑하게 목을 옥죈 넥타이에 손가락을 걸었다. 넥타이가 풀어지는 속도와 엇비슷하게 강현우는 제법 빠른 속도로 희주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현관과 복도를 가로질러 은은한 매립 등만 켜져 있는 탓에, 짙은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희주는 강현우의 그림자가 닿아 오는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압도되는 듯한 기분에 침을 꼴깍 삼켰다. 저도 모르게 주춤 뒷걸음질까지 쳤으나 허리를 휘감아 당기는 강현우의 팔이 훨씬 더 빨랐다.
“난 희주 씨가 씻고 나올 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는데.”
까딱. 강현우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매끈하게 드러난 이마가 툭 마주쳤다. 서로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질 거리라 희주는 입술을 앙다물고 그저 눈만 깜빡거렸다. 이렇게 될 거라고 짐작을 아예 안 하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옷을 벗기도 전부터 제 알파의 유혹 아닌 유혹을 받으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씻어요.”
페로몬은 풀지도 않았는데, 마치 페로몬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희주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희주는 강현우가 미는 대로 뒤로 물러났다. 어둡기만 한 곳으로 강현우에게만 의지한 채 걸음을 옮겨야 했지만 겁을 낸다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몸이 바짝 붙으면서 자연스럽게 강현우의 어깨를 그러쥐었다. 희주는 조금씩 뒷걸음질할 때마다 서로의 허벅지끼리 마찰하며 나는 소리에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흔한 입맞춤도 없이, 그저 몸만 가까이 밀착된 채였지만 공기가 팽팽하게 죄어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짐작되지 않는 짙은 시선이 온 얼굴에 닿아 부서졌다. 희주는 어찌할 줄 몰라, 긴장해 버석해진 입술을 연신 달싹였다.
발에 무언가가 걸리거나 몸이 어딘가에 부딪히는 일 없이 안방에 있는 욕실까지 단숨에 다다랐다. 손을 희주의 뒤쪽으로 뻗은 강현우가 꺼져 있는 욕실 등을 켰다. 달칵, 하고 불이 켜지고 환한 빛이 두 사람을 덮쳤다.
“……아.”
욕실 안쪽으로 한 발자국 들어서자마자 강현우는 희주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손을 댔다. 밑단을 들추면서 자연히 허리춤에 손가락이 닿았다. 뜨거운 체온에 놀란 희주가 당황해 흠칫거리자 덩달아 손을 멈춘 강현우가 아래쪽을 보고 있던 시선을 들어 희주를 바라보았다.
“씻으려면 벗어야 되는데.”
난감하다는 듯 작게 웃은 강현우가 그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욕실이라 소리가 크게 울렸다. 강현우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마냥 씻기 위해서 옷을 벗으라는 뜻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티셔츠를 벗겨 낼 것만 같은 손을 슬쩍 잡아 떼어 낸 희주는 차마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잘게 저었다.
“제가, 제가 할게요…….”
어느새 얼굴이 빨개진 희주가 어물어물 말끝을 흐렸다. 얼굴뿐만 아니라 목덜미까지 빨간 물감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강현우는 알겠다는 듯 순순히 물러나 그런 희주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
“…….”
그리고 희주는 빠르게 후회했다.
차라리 벗겨 달라고 할걸. 상대가 보는 앞에서 스스로 옷을 벗는 것이 이렇게도 부끄러울 줄이야. 실내가 그리 서늘한 것도 아닌데, 고작 티셔츠 한 장을 벗은 것만으로도 몸이 파르르 떨렸다. 소심하게 움츠린 희주는 벗은 티셔츠를 꽉 움켜쥔 채로 바지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푹 숙인 정수리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희주는 입술을 꼭꼭 깨물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힐끔 강현우의 눈치를 보았다. 제가 무엇을 하는지 보고 있을 강현우가 몹시도 신경 쓰였다.
“……!”
태산처럼 우뚝 서 있는 남자에게 시선이 닿은 순간, 희주의 눈과 입이 동시에 크게 벌어졌다. 관찰이라도 하는 것처럼 미동도 없이 서 있기만 하던 강현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마치 희주가 저를 바라봐 주기만을 바란 것처럼 느슨하게 걸려 있는 넥타이를 풀어 재킷과 함께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는 입고 있는 와이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찬찬히 풀어 내렸다. 손짓 몇 번으로 빳빳함을 잃은 와이셔츠가 바닥을 굴렀다.
눈앞으로 탄탄한 맨살이 드러났다. 멍하니 눈을 깜빡인 희주는 강현우의 손이 벨트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황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당황한 시선 끝이 흰 양말로 감싸인 발끝으로 뚝 떨어졌다. 철컥이며 풀리는 벨트와 버클, 이어서 지익 내려가는 지퍼 소리에 귓가가 간지러웠다. 발가락이 절로 곱아들어 바닥 타일을 긁어 내렸다.
“그러고 씻을 건 아니죠?”
나신인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강현우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벗다가 만 희주를 의아하게 보는 것 같은 물음을 던졌다. 바닥만 노려보던 희주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또 한 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 저… 그냥 저 혼자 따로 씻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시선을 어느 쪽에 둬도 강현우가 들어오지 않는 시야가 없었다. 특히 속옷을 벗자마자 퉁 하고 튀어나온 성기 때문에 아래쪽으로는 아예 눈을 둘 데가 없었다. 옷을 마저 벗을 생각이 들기는커녕 얼른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어 희주는 벗어 둔 티셔츠를 주섬주섬 고쳐 들고 무작정 몸을 틀었다.
“같이 씻기로 했으면 여기서 같이 씻어야지. 나 두고 어딜 가려고요.”
문고리를 잡기도 전에 강현우가 몸으로 그 앞을 가로막았다. 바위처럼 단단한 몸에 고스란히 얼굴을 박고 만 희주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찡한 코끝을 부여잡고 울먹거렸다. 원망의 눈빛을 고스란히 받아 낸 강현우는,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제 오메가에게 다가가 얼굴을 반이나 가리고 있는 손을 조심조심 떼어 냈다.
당장이라도 도망갈 것같이 굴어 놓고는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희주가 기꺼워 강현우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무엇을 원하는지 표정으로 다 티가 났는데 이제 와 부끄럽다고 내빼려고 하다니. 제법 세게 박았는지 금방 불긋해진 코끝을 가볍게 튕기듯 문질러 주었다. 귀엽게 일그러지는 콧잔등에 더는 참지 못하고 픽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웃어 버리고 서서히 얼굴을 내리면서 부드럽게 볼을 감쌌다.
“같이 씻어요.”
“…….”
“응?”
시선을 피하기 바쁜 희주를 쫓아 억지로 눈을 마주한 강현우가 싱긋 예쁘게 웃었다. 강현우는 희주와 눈을 마주한 채로 손만 움직여 희주의 바지춤을 붙잡았다. 약하게 손만 얹은 수준이었지만 사타구니에 닿는 손길에 희주는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굽혔다.
방어하는 듯한 움직임이었지만 강현우의 팔이 희주를 감싸 안는 것이 훨씬 빨랐다. 강현우는 가뿐하게 희주를 안아 들고, 다른 손으로 버클을 풀어 내렸다. 얇은 면바지가 속옷과 함께 벗겨져 한쪽 구석으로 대충 밀려났다.
처음 강현우의 손길을 거부한 것이 무색하게도, 결국 희주는 강현우에 의해 나신이 되었다. 차라리 침대 위라면 덜 부끄러웠을 텐데. 욕실에서 발가벗은 채 서로를 마주 보고 있자니 정말 부끄러워서 죽어 버릴 것 같았다. 희주는 몸을 가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손만 꿈지럭거렸다.
“처음 벗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부끄러워해요.”
“다, 당연히…….”
“아. 안 부끄러워하는 내가 이상한 거다?”
끝까지 이어지지 않은 말을 제멋대로 해석한 강현우가 즐거운 듯 웃었다. 설마 안 부끄러울까. 저도 사람인데 수치심이 결여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희주가 제 몫까지 더하여 펄쩍 뛰어 대며 부끄러워하니, 오히려 제 쪽이 더 무덤덤해진 것뿐이었다.
자신이 대수롭잖게 굴수록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부끄러워하는 희주를 보는 게 즐거운 것도 사실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렇게 놀리는 것도 이쯤만 해야 할 듯 싶었다.
“나도 부끄러워요.”
“거짓말…….”
“진짠데.”
강현우는 희주를 샤워 부스 안으로 이끌었다. 결혼하자고 말하던 용기는 어디로 갔는지, 그새 뻣뻣해져서 벌이라도 받는 것처럼 벽만 노려보고 서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배꼽 아래에 모은 손을 계속해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걸 보니 어디를 가리고 싶어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보고도 모르는 척한 강현우는 샤워기 레버를 돌렸다. 이내 따끈한 온도의 물이 쏟아졌다.
놀이공원에서 보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넓은 부지를 바삐 돌아다닌 탓에 피로가 쌓인 몸이 뜨끈한 물로 금세 노곤하게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내 벽을 보고 서 있던 희주가 물이 정통으로 떨어지는 부스 안쪽으로 슬그머니 몸을 틀었다. 기분 좋은 숨이 가늘게 흘러나왔다.
동그란 샤워 볼에 달큼한 꽃향기가 나는 보디 워시를 쭉 짠 강현우가 거품을 내어 희주의 어깨를 문질렀다.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거품이 살결에 맺히는가 싶더니 물을 타고 조금씩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게 간지러운지 거품이 묻어 있는 쪽 어깨가 통통 튀었다. 바르작거리는 움직임에 강현우는 작게 침음했다.
“읏, 제, 제가 할게요.”
온몸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물과 배회하는 부드러운 손길이 어우러져 슬슬 몽롱해지려는 찰나였다. 뒷덜미와 어깨를 문지르던 샤워 볼이 차차 등허리를 타고 내려가자 희주가 파드득 몸을 튀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강현우의 손에 들려 있는 샤워 볼에 손을 뻗으며 나머지는 자신이 하겠다고 했으나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희주 씨는 가만히 있어요. 내가 씻겨 줄게요.”
괜찮은데……. 희주의 말은 강현우가 불쑥 다가옴에 따라 그대로 입 안으로 먹혀 들어갔다.
희주와 마주 보고 선 강현우가 손을 뻗어 레버를 아래로 내렸다. 머리카락을 흠뻑 적신 뒤 종아리를 타고 흐르던 물줄기가 빠르게 힘을 잃었다. 샤워 부스의 벽과 바닥, 그리고 발가벗은 두 나신을 때리던 시끄러운 물소리가 잦아들고, 이제 남은 건 축축하게 젖은 공기뿐이었다.
하얀 거품이 피어난 샤워 볼이 쇄골과 가슴팍을 느릿하게 가로질렀다. 저는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현우는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고, 여차하면 눈이 마주칠 수도 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져 희주는 숨을 가느다란 숨을 새액새액 내쉬며 애써 다른 곳을 보려고 부러 눈을 굴렸다.
몸 곳곳에 샤워 볼이 닿는 것이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맨손이 닿는 것보다 더 야릇하게 느껴졌다. 희주는 괜히 발끝을 꼼질거렸다. 그렇게 희주가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이, 옅은 분홍빛의 유두에 걸려 넘어지듯 아슬아슬하게 비껴 흐르는 거품을 보는 강현우의 눈동자는 점점 탁하고 음슴해져 갔다.
“아…….”
샤워 볼이 납작한 배를 지나 툭 튀어나온 장골쯤 다다랐을 때, 희주는 움찔 떨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상체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배꼽 아래는 조금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었다.
설마 하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강현우의 손은 거침없이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뒤늦게 다리 사이를 좁혀 봤지만, 강현우는 아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희주의 허벅지와 종아리를 비벼 대고 있었다.
희주는 저도 모르게 강현우이 어깨를 두 손으로 짚었다. 어깨에서부터 팔을 타고 흘러내린 거품 탓에 미끄덩한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강현우가 무릎을 꿇고 앉은 탓에 힘이 들어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태인 성기를 강현우의 눈앞에 드러낸 형상이었다. 희주는 최대한 허리를 뒤로 물리려 애쓰며 이를 악물고 고개를 내저었다.
샤워 헤드에 고인 물방울이 똑, 똑 소리를 내며 타일로 떨어졌다. 샤워 볼이 맨살을 쓸어내리면서 나는 약간은 거친 소리가 일정하게 공간을 울렸다. 희주는 어지럼증과 함께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게 방금 전까지 쏟아지던 뜨거운 물 때문인지, 아니면 나긋하기 짝이 없는 강현우의 손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버틴 덕인지 강현우는 정말 담백하게 손을 놀렸다. 음모가 거의 나지 않아 밋밋한 사타구니를 가볍게 스치고, 손을 뒤로 돌려 통통한 엉덩이도 미끄러뜨리듯 문질렀다.
강현우는 마지막으로 주인을 닮아 곧고 예쁜 색을 띤 성기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거품이 묻어 있든 말든 입 안에 넣고 빨고 싶었지만 그대로 빨면 희주가 기겁할 것을 알기에 잠시 뒤로 미뤄 두기로 했다.
꿇고 앉아 있던 몸을 일으킨 강현우가 꼼질거리는 희주의 손에 샤워 볼을 들려 주었다. 이제 반대로 제 몸을 맡기겠다는 암묵적인 행동에, 희주는 손 안에 들어온 샤워 볼을 쥐고 조심스럽게 강현우의 가슴 위를 문질렀다.
마찬가지로 흠뻑 젖어 있는 살을 샤워 볼로 문지르자 하얀 거품이 덩어리져 맺혔다. 지금까지 강현우와 연애하면서 벗은 몸이야 수도 없이 봐 왔지만, 볼 때마다 시선을 오래 둘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다. 하여 희주는 문지르고 있는 부위에서 약간 비껴 난 곳을 응시하며 손을 미끄러뜨렸다.
“……어?”
탄탄하게 근육이 잡힌 복근을 문지를 때쯤이었다. 인위적인 바디 워시 향만 줄곧 맡던 차에 갑작스럽게 익숙한 페로몬이 밀려들었다. 강현우의 팔뚝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던 희주가 의아한 소리를 내면서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왜요?”
물기를 머금어 아래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막 쓸어 넘기려던 강현우와 딱, 시선이 부딪혔다. 이마에 한 손을 짚은 강현우가 왜 그러냐는 눈으로 희주를 바라보았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닌가? 분명히 페로몬이었는데. 다시 한번 확인하듯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았지만 맡아지는 건 보디 워시에서 나는 장미 향뿐이었다.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 찬 곳에 오래 있었더니 머릿속이 멍해지기라도 한 모양이다. 아니면 많이 피곤한가? 희주는 얼른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거품 칠을 대충 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희주는 어색하지만 나름 꼼꼼하게 강현우의 몸에 거품을 묻혔다. 얼른 씻고 나가 버려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속도도 높혀 봤지만, 도저히 배꼽 아래로는 손을 내릴 수가 없어 미적거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희주 씨.”
보다 못한 강현우가 나지막이 희주를 불렀다. 아까 전부터 은근슬쩍 흘린 페로몬에 슬슬 취해 가고 있는지 흐려졌던 눈동자가 느릿하게 저를 향했다. 다정한 미소를 지은 강현우가 슬쩍 눈짓으로 하체를 가리켰다.
“아래도 해 줘야죠.”
“아…….”
입이 말라, 희주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어 아랫입술을 핥았다. 망설임 끝에 배 위에 한참 머물러 있던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일부러 사타구니 쪽은 피해서 두꺼운 허벅지 쪽으로 손을 내렸던 희주는 서 있는 채로는 한계가 있는 탓에 강현우가 그랬던 것처럼 슬슬 무릎을 굽혔다.
자칫 손을 잘못 놀리면 닿기라도 할까 희주는 재빠르게 샤워 볼을 가져다 댔다가 도망치듯 손을 물렸다. 시선은 여전히 다른 곳을 향한 채였다. 무릎 위로 튀어나온 허벅지 근육을 눈에 담으며 커다란 하체 골격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욕실에서 얌전히 샤워만 하고 나간다고 쳐도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밤이 아니었다. 히트 사이클로 정신없이 섹스를 한 이후, 요양 명목으로 열흘 가까이 몸을 겹친 적이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오늘은 미래를 약속한 날이었다. 제 알파를 온전히 손에 쥐고 싶은 욕구는 여느 오메가든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슬쩍슬쩍 시선이 갔다. 희주는 바로 눈앞에까지 다가와 있는 성기를 훔쳐보면서 얼굴을 붉혔다. 뜨겁게 달아오른 성기가 제게 어떤 쾌감을 주는지 알고 있는 탓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간지러운 숨이 흘러나오고, 아랫배가 근질거렸다.
아랫배를 간질이던 감각은 서서히 아래를 타고 내려가 허벅지 사이를 꽉 조여들게 했다. 어느새 입 안에 잔뜩 고인 침을 꿀꺽 삼킨 희주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무릎을 바짝 붙였다.
“…….”
이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강현우가 조용히 읊조렸다.
“섰네.”
머리 위에서 울리는 직설적인 말에 놀란 희주가 강현우의 무릎께를 문지르던 손을 떼어 제 사타구니 가까이로 가져왔다. 그의 말대로 처음에는 축 늘어져 있던 성기가 반쯤 서 있었다. 거품 때문에 부푼 샤워 볼로 최대한 성기가 가려지게끔 누르는 희주의 눈동자가 당황한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손 떼 봐요.”
“……아.”
“내가 만져 줄 땐 가만히 있더니, 왜 지금 와서 세웠어요?”
이걸 서운하다고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제가 만질 때는 반응이 없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제 몸을 만지다가 흥분했으니 딱히 서운하다고 할 것도 아니었다.
강현우는 교묘하게 성기를 가리고 있는 희주를 아쉽다는 눈으로 살살 벗겨 먹었다. 거품 낀 손을 내려 희주의 턱을 어르듯 간질이며 잡아 올리자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한다. 이 와중에 턱 아래에 조그만 거품을 묻힌 얼굴이 귀여워 소리 없이 웃음 지었다.
“만져 볼래요?”
밝은 조명 탓에 희주가 눈을 찌푸릴 찰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위로 쏟아지기라도 할 것처럼 저를 내려다보는 강현우 때문이었다. 빛을 등졌음에도 눈동자에 이채가 도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희주 씨가 직접 만져 줬으면 좋겠는데.”
강현우는 턱을 매만지던 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내어 보였다. 머뭇거리던 희주가 그 위에 제 손을 얹자 그대로 휘어잡아 제 성기 위로 가져갔다. 기어코 성기를 쥐게 만든 강현우는, 희주의 손가락이 안으로 오므려지는 것을 본 뒤에야 손등을 덮고 있던 손을 거두었다.
아직 완전히 발기하지 않았음에도 손바닥에 닿는 성기가 몹시도 단단하고 뜨거웠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보기는 또 처음이라, 희주는 발개진 얼굴로 보다 더 새빨간 입술을 자근거렸다.
만져 보라는 말이 그저 가만히 손을 대고만 있으라는 뜻은 아니리라. 희주는 기억을 더듬어 강현우가 제게 어떻게 했는지를 떠올려 가며 조금씩 손을 움직였다. 가만히 손을 대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새 심지가 단단해진 기둥을 부여잡고, 조금씩 악력을 주어 뿌리서부터 귀두 아래까지 주무르듯 쭉쭉 잡아당겨 보았다.
“하…….”
저를 내려다보던 강현우의 눈이 지그시 감기고, 벌어진 입술 새로 긴 숨이 흘러나왔다. 희주는 용기를 얻어 성기를 움켜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줘 보았다.
강현우가 해 주던 것처럼 귀두 밑에 움푹 들어간 소대 부분에 손가락을 지그시 대고 비비적거려 보기도 하고, 거품 탓에 미끈해진 귀두를 손바닥으로 뭉근하게 문질러 보기도 했다. 강현우의 반응을 살피느라 중간중간 위를 올려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음…….”
강현우는 희주의 어설픈 손놀림에도 한숨 같은 신음을 흘렸다. 실로 따지고 보자면 그리 강한 자극도 아니건만, 제가 해 줬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자극이었다. 앞으로 희주와 섹스를 할 때마다 저와 똑같은 습관이 배어 있는 희주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묘한 쾌감에 뒷덜미가 저렸다.
자욱하게 찬 수증기 탓인지 눈앞이 흐렸다. 몇 번 눈을 감았다 뜬 강현우는 제 앞에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제 말을 거역하지 않고 얌전히 이행하는 희주를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손으로 만지는 것보다 더한 것을 시켜 보고 싶다는 못된 욕구가 머릿속에 자리를 더해 갔다.
“…….”
강현우의 성기는 금방 배꼽에 닿을 듯 서서 투명한 선액을 흘리기 시작했다. 바닥 타일에 대고 꿇고 있던 무릎이 슬슬 아파 오기도 하고, 무엇보다 높이가 맞지 않아 손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었기에 희주는 무릎에 힘을 주어 엉덩이를 위로 띄웠다. 그 움직임에 성기를 가리고 있던 샤워 볼이 타일 위로 굴러떨어졌다.
문득 언젠가 강현우가 제게 해 준 것처럼 입으로 빨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커서 입 안에 다 들어갈까 싶었지만, 최대한 벌릴 수 있을 만큼 벌리면 반 정도는 들어가지 않을까 싶었다. 한창 집중하느라 멍해진 눈을 한 희주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벙긋거렸다.
얼마쯤 벌려야 무리 없이 물 수 있을까, 그 정도를 가늠하는 걸 알아챈 강현우가 근육이 불거지도록 턱을 강하게 물고는 희주를 제지했다.
“하아……. 희주 씨, 그만.”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집어넣은 강현우는 너무나도 손쉽게 희주를 일으켜 세웠다. 반항하려 힘을 쓸 겨를도 없이 덜렁 들어 올려진 희주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눈을 했다가 언뜻 불만이 비친 눈으로 강현우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담긴 불만 역시 대번에 알아챈 강현우가 짐짓 엄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왜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바로 따라붙은 의문에 강현우는 조금 난처한 낯을 해 보였다.
“희주 씨 입 작아서 못 넣어요. 요령도 없이 넣었다가 목 다쳐.”
“안 작은데…….”
“작아요. 키스할 때 혀 넣는 것만으로도 숨 막힌다고 하잖아요.”
“아니, 그건…….”
그건 입 안을 채우는 혀 때문이 아니었다. 강현우가 이끄는 대로 혀를 섞다 보면 숨 쉬는 것조차 깜빡 잊을 때가 종종 있을 뿐이었다. 무슨 말로 반박하든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게 뻔한 단호한 태도에, 희주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아래에도 들어가는데 입이라고 안 들어가나…….”
“……씨발, 진짜…….”
저 들으라는 식으로 한 중얼거림에, 강현우가 작게 욕설을 뇌까렸다. 욕실에서는 살짝 놀리는 정도로만, 간단한 손장난만 하다가 침대로 가려고 했던 생각이 뿌리째로 뽑히고 말았다.
강현우는 몸에 묻어 있는 거품은 안중에도 없이 희주를 품으로 끌어안았다. 마치 윤활제라도 뿌린 것처럼 서로 맞닿은 부위가 미끌미끌했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부드럽게 비벼지는 살갗에 당황한 희주가 두 손으로 강현우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입술이 맞물렸다.
축축한 입술을 가볍게 훑은 혀가 입 안을 빠르게 침범했다. 강현우는 희주의 목덜미와 턱을 한 번에 쥔 채 고개를 더 꺾어 입 안의 깊은 곳까지 혀를 쑤셔 넣었다. 어쩔 줄 몰라 굳어 있는 혀를 문지르고, 혀 밑 여린 점막에 고여 있는 타액을 훔쳐서 달게 삼켰다.
뒤늦게 움찔거리는 혀를 잡아채 끌어당기자, 숨이 막히는지 맞닿은 가슴 사이에 껴 있던 희주의 손이 어깨를 쥘 듯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강현우는 말랑한 귓불을 엄지로 쓸어내리며 다른 한 손으로는 희주의 볼깃살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이 자연스럽게 갈라진 틈을 파고들었다. 거침없이 주름진 입구를 문지르는 손가락에 놀란 희주가 파르르 떨며 품 안으로 안겨 들었다.
“읏……!”
히트 사이클 이후 열린 적 없는 입구는 침입을 거부하는 상태였다. 강현우는 틈 없이 빡빡한 곳을 미끈한 손가락으로 힘을 주어 후벼파듯 문질렀다. 오래지 않아 꽉 다물려 있던 입구가 열리고, 뜨겁고 좁은 점막이 손가락을 확 조여 왔다. 좁은 입구와는 달리 손가락 끝이 닿은 안쪽은 말랑말랑했다.
“흡… 흣…….”
언제 고였는지 모를 애액이 흘러나와 슬쩍 거품에 섞여 들었다. 벌써 손가락을 두 개째 받아 들인 희주는 찌르르 퍼지는 얕은 쾌감을 피하려는 양 발끝을 들어 강현우의 목에 두 팔을 휘감아 매달리듯 안겼다.
앞은 탄탄한 몸통에 가로막혀 공간이 없고, 뒤쪽으로는 감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가락을 피한답시고 엉덩이를 뒤로 뺐다가는 더 깊숙하게 박히는 꼴밖에 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진작 계산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앞쪽 사정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말랑한 유두는 강현우의 살갗에 닿아 뭉개지면서 조금씩 단단해져 갔고, 완전히 발기해 올라붙은 성기가 꺼떡이면서 강현우의 것에 닿아 문질러졌다. 애탄 신음이 들끓었다.
“하……. 고작 키스 조금 했다고 이렇게 헐떡이는데, 뭘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흐으…….”
진득하게 얽은 혀를 풀고 입술을 떼어 내자 얼굴이 새빨개진 희주가 숨을 할딱거렸다. 벌어진 입술 안쪽으로 보이는 혀끝이, 제 성기에 닿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희주를 샅샅이 녹여 삼키는 편이 상대적으로 더욱 큰 쾌락을 가져왔기 때문에, 강현우는 굳이 희주에게 그런 짓을 시킬 생각은 없었다.
힘겹게 숨을 들이마시면서도 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기라도 생긴 것인지 붙은 몸을 떼어 내려고 되지도 않는 힘을 쓰기도 했다.
“나중에.”
기약 없는 약속을 성의 없이 중얼거린 강현우는, 떨어진 입술과는 달리 아직까지 구멍 안에 박혀 있는 손가락들을 움직였다.
고개를 기울여 희주의 등 아래쪽을 내려다본 강현우는 미치겠다는 듯 긴 숨을 내쉬었다. 굴곡진 엉덩이 사이를 헤집고 있는 손과 등허리 할 것 없이 하얀 거품으로 어룽진 살결을 보고 있자니 이미 처박기라도 한 것 같아서, 심지어 몇 번씩이나 박다가 그 위에 사정을 한 것 같아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
강현우가 페로몬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자 목을 강하게 끌어안은 희주가 목덜미에 코를 대고 가슴을 부풀렸다.
“현우 씨, 빨리…….”
손가락을 끊어 먹기라도 할 것처럼 강하게 조여 오던 내벽도 페로몬에 흐무러지듯 서서히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성급하게 손가락을 빼내자 안을 채우고 있던 것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소름 끼치는지 희주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런 희주를 강하게 감싸 안은 강현우는 손을 뻗어 샤워기 레버를 돌렸다. 달아오른 체온만큼이나 따끈한 물이 두 사람에게 끼얹어졌다. 점성이 생겨 찐득해지기 직전인 거품이 씻겨 내려가면서, 애매하게 가려져 있던 몸이 완연히 드러났다.
달큼한 페로몬이 흘러나오는 목덜미 쪽에 잇자국을 새기거나, 조그만 유두를 물고 퉁퉁 붓도록 빨아서 성기의 자극도 없이 가 버리는 희주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희주의 입을 통해 미래가 그려졌던 순간부터 강현우에게는 있는 힘껏 희주를 가질 생각밖에 없었다.
다급하게 물을 잠근 강현우는 희주를 뒤돌게 한 다음 두 손을 붙잡아 올려 벽을 짚게 했다. 물방울이 고여 흐르는 등을 지그시 눌러 방금까지 손가락으로 들쑤시던 엉덩이를 뒤로 당기고, 조금 거칠다 싶을 만큼 무릎을 끼워 넣어 희주의 다리를 벌렸다.
“아… 흣, 으응……!”
촉촉하게 젖어 벌름거리는 구멍을 집요하게 쳐다보며, 강현우는 곧추 선 제 성기를 손으로 가볍게 쓸어올려 귀두 끝을 입구에 맞췄다.
“하아… 읏, 왜요……?”
숨을 가다듬으며 이어질 삽입을 기다리는데, 들어와야 할 것이 애매하게 입구를 툭툭 치기만 했다. 묘한 머뭇거림이 느껴져 희주가 의아하게 고개를 돌렸다.
“…….”
“…….”
번들거리고도 남아야 할 눈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조금 당황한 희주가 벽을 짚은 손을 슬그머니 떼어 내며 강현우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눈빛에서 망설임을 읽고,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렸다.
지금 이 상황에 콘돔이 말이야? 매너 좋은 거, 그래 다 좋은데 상황을 가릴 줄을 알아야지! 안달난 몸이 들썩거렸다. 이미 극에 치다른 욕정에 서러워졌는지 숨소리가 격해졌다. 희주는 답답하다는 듯 짜증 섞인 목소리로 채근했다.
“괜찮다고요! 급하니까, 빨리 좀… 아!”
마찬가지로 흠뻑 젖어 있는 탓에, 어렵지 않게 안을 파고든 강현우는 흐느끼는 희주의 등 뒤로 제 몸을 포개었다.
껴안듯 손을 앞으로 돌린 강현우가 희주의 턱을 잡아 돌렸다. 저도 모르게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흐릿한 시야로 강현우가 쏟아져 들어왔다. 입술을 벌리자 빈 공간으로 뜨거운 살덩이와 숨결이 느껴졌다.
입술을 동글게 말아 쪽쪽 소리를 내며 빨던 희주는, 엉겨 붙어 있는 혀 못지않게 아래를 들쑤시는 성기에 놀라 타일에 이마를 대고 크게 신음했다.
“응, 흐읏, 아! 천, 천히, 으읏… 아……!”
자세 때문인지 성기가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뭉툭한 귀두가 내벽 어딘가를 찌를 때마다 눈앞이 흐려지다 못해 새하얗게 점멸했다. 두 발로 디디고 선 바닥이 아래로 푹푹 꺼지는 것만 같은 아찔함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아……. 희주 씨. 하아…….”
벽을 까드득 긁을 것만 같은 두 손을 제대로 붙잡아 고정한 채 강현우는 희주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제 페로몬과 성적 자극으로 인해 슬슬 비집고 나오기 시작한 옅은 페로몬이 감질나게 코끝을 간질였다.
강현우는 이를 세워 여린 살결을 자근거리다가 희주에게서 우는 신음이 나올 때면 혀를 내어 싹싹 핥아 주었다. 말캉한 혀가 주는 자극은 내심 마음에 드는지 듣기만 해도 귓가가 간지러운 신음이 툭툭 튀어나왔다.
“흐윽, 아, 안 돼, 아으으……. 하으! 만지, 지… 으응…….”
젖은 살갗이 부딪히면서 철썩철썩하고 외설적인 소리가 욕실을 울렸다. 간신히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서서 저릿한 쾌감을 견디고 있던 희주는 유두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놀라 신음을 내질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슴 위에 얹어진 손이 유두를 붙잡고 자극을 가하고 있었다.
빳빳하게 선 유두가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채 살살 굴려졌다. 찌릿한 감각에 다리 사이가 좁아 드는 것만 같았다. 희주는 그만하라며 고개를 저었으나, 야속하게도 다른 쪽 유두까지 자극이 쭉 이어졌다.
강현우는 흔들리는 몸을 꽉 껴안았다. 손끝에 걸리는 유두를 마음껏 만지다가, 성기를 콱콱 박아 넣을 때마다 들썩이는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도 보았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는 희주의 아랫배를, 지금은 그 위를 감싼 제 손등을 때리는 성기를 뒤덮듯 붙잡았다. 어느 한쪽으로 휜 곳 없는 예쁜 기둥은 물론이고, 흥분해 잔뜩 올라붙은 음낭 밑 회음부까지 강현우의 손이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아, 아! 그, 흐윽! 아으… 음, 읏……!”
통통한 귀두를 가볍게 스친 손이 다시 기둥을 단단하게 붙잡는 순간, 희주는 감당할 수 없는 쾌락에 발끝을 바짝 세우고 사정했다. 샤워 부스 벽 가까이에 무너지듯 기댄 탓에 성기 끝에서 튀어나온 정액이 타일 벽에 점점이 흩뿌려졌다.
사정을 하는 동안에도, 또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쏟아 낸 후로도 강현우는 붙잡은 성기를 놔주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사정과 동시에 확 좁아진 내벽을 비집고 안쪽을 제대로 짓누르자, 연이은 자극에 희주는 아무것도 내보내는 것 없이 또 한 번 가버렸다.
“후으…….”
제멋대로 성기를 주무르는 탓에 사정감이 끝까지 차오른 강현우는 몇 번 더 허리 짓을 하다가 그대로 성기를 빼냈다. 빨개진 엉덩이 위로 희끗한 정액이 쏘아졌다. 기진한 몸이 움찔 떨릴 정도로 뜨거운 액체가 엉덩이며 등허리 할 것 없이 길게 흩뿌려졌다.
“하아……. 후.”
강현우는 사정을 마친 성기를 움켜쥔 손으로 뿌리서부터 귀두 끝까지 쭉 쓸어올렸다. 희주의 것인지, 제 것인지 모를 액체가 진득하게 손바닥에 묻어 나왔다. 강현우는 짙게 가라앉은 눈으로 손을 쥐었다 펴 보다가, 제 정액으로 뒤덮인 희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움푹 파인 아폴론 보조개에 맺힐 듯 말 듯 고여 흘러내리는 정액을 엄지로 가만히 문지르다가, 레버를 돌려 우악스럽게 물을 뿌렸다. 물에 섞여 색을 잃은 정액이 금세 휩쓸려 내려갔다. 강현우는 다시 한번 말끔하게 씻긴 희주를 번쩍 들어 올려 침실로 향했다.
“흐……. 추워요.”
물기를 닦지 않은 채 침대 위로 눕혀진 희주는 오소소 소름이 돋는 몸을 잔뜩 움츠렸다. 비록 침대가 아닌 곳에서 일을 치르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만족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대로 물기를 잘 말리고 폭신한 이불에 감싸인 채 푹 자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하지만 강현우는 수건으로 몸을 닦아 준다거나, 젖은 머리카락을 말려 주지 않았다. 평소와 다르게 곧장 침대 위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희주는 설마 이불을 수건 삼아서 대충 닦고 이대로 바로 같이 자자는 뜻인가 하고 어리둥절해했다.
“아……!”
옆자리가 아닌, 벌어진 제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은 강현우가 저를 쭉 잡아 내렸다. 주르륵 미끄러져 깔린 희주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틈도 없이 위로 고개를 숙인 강현우가 가슴을 크게 베어 물었다.
“아으… 응…….”
오늘은 손으로만 애무당했던 유두가 습한 입 안에서 축축하게 적셔졌다. 강현우는 힘을 줘 세운 혀끝으로 유두를 짓무르듯 꾹꾹 누르기도 하고, 유륜을 따라서 간지럽게 핥기도 했다.
위로 튀어 오르는 몸을 가볍게 내리누른 강현우는 도드라진 갈비뼈에도 이를 세우고, 얇은 살가죽에 입술을 대고 흡입했다. 평소 그 어떤 자국을 잘 남기지 않던 강현우가 오늘만큼은 온몸에 제 흔적을 새기기라도 할 기세로 덤벼들었다.
“읏! 아… 왜, 왜 또…….”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과는 별개로 사정 후 힘을 잃고 늘어졌던 성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발기하기 시작했다. 시트를 있는 대로 쥔 채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애무를 받아 내던 희주가 고개를 저었다. 말이 뜨문뜨문 끊겼지만, 이미 욕실에서 한 번 했는데 왜 또 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아까, 차 안에서도 몇 번씩이나 이러고 싶었어요.”
강현우는 눈도 마주하지 않은 채 붉게 남은 자국 위를 혀로 덧그리며 말했다.
“이제 내 오메가니까.”
“흐으…….”
“사랑해요. 희주 씨.”
쪽. 다정한 사랑 고백에 이어 강현우는 조금씩 꺼떡이는 성기에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입을 맞추었다.
“흣, 나, 나아… 힘든, 힘든데…….”
“힘들까 봐 침대로 왔잖아요.”
“아니…….”
“가만히 있어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그냥 편하게 누워만 있으라며 제멋대로 희주를 어르고 달랜 그가 하체를 끌어당겼다. 어떻게 편할 수가 있느냐는 반박은 강현우의 성기가 재차 안으로 깊숙하게 파고듦에 따라 신음으로 바뀌어 나왔다.
“아으으……!”
사정 없이 가 버린 한 번을 포함해 총 두 번이나 절정에 올라 한껏 물러진 내벽으로 뜨거운 기둥이 불쑥불쑥 치달았다. 속절없이 꿰뚫린 희주는 어쩔 줄을 모르고 시트 위를 휘저었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몸은 전보다 감도가 훨씬 높아서 사정감이 빠르게 치솟았다.
씻은 것이 무색하게도 온갖 체액이 튀었다. 물기를 닦지 않고 침대로 오른 건,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랬던 걸까. 쾌감 때문에 멍해진 머릿속에 의문 하나가 작게 떠올랐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눈치 빠르게 알아챈 강현우가 무자비하게 허리를 움직이는 바람에 희주는 다시 흔들리면서 신음만 토해 내야 했다.
불 꺼진 침실에서 두 인영이 계속해서 몸을 겹칠수록 두 개의 페로몬이 하나로 뒤섞였다. 이제는 공기마저 온통 강현우라, 희주는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쾌감이 불쑥불쑥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으읏, 아, 아아, 아흐으……!”
강현우의 아랫배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이전의 것보다 말간 정액을 싸 대는 성기를 움켜쥐자, 내내 울먹거리던 희주의 눈에서 눈물이 퐁퐁 새어 나왔다. 자극이 너무 큰지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가학심을 자극할 만큼 예뻐서 강현우는 멈추지 않고 허리를 쳐올렸다.
내벽이 옴쭉옴쭉 죄어들었다. 희주의 위로 무너지듯 상체를 내린 강현우는 울음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입술을 머금고 빨아당겼다. 그대로 밀어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희주는 허겁지겁 강현우에게 매달려 먼저 혀를 내밀고 키스를 바라기도 했다.
고개가 자꾸만 뒤로 젖혀졌다. 이미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쾌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나오는 것이 없는 절정에 또 한 번 오른 희주는 거의 처음부터 제 성기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강현우의 손을 떼어 내기 위해 아랫배를 더듬었다.
강현우는 그런 희주의 손을 잡아채고 스스로 성기를 잡게 했다. 희주가 도리질을 쳐 댔지만, 겹쳐 잡은 손이 아직까지 서 있는 성기를 잡아 흔들고 귀두를 대신 비비기까지 해 어쩔 수 없이 버거운 쾌락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흐윽, 그만, 아……! 하읏, 아아…….”
결국 성기 끝에서 정액이 아닌 투명하고 맑은 물이 터져 나왔다. 픽픽 쏟아지는 물줄기를 본 강현우가 이를 악물고 욕설을 짓씹었다. 동시에 안으로 박혀 든 성기가 크게 요동쳤다.
엄청난 오르가슴에 온몸에 힘을 바짝 주고 덜덜 떨던 희주가 열띤 숨을 할딱이며 늘어졌다. 강현우에게 감겨 있던 팔도 힘없이 시트 위로 툭 떨어졌다. 숨을 새액새액 내쉴 때마다 흐트러진 흐느낌이 섞여 나왔다.
쾌감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지 희주는 가물가물한 눈을 해서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정신없이 늘어진 모습마저 예뻐 강현우는 눈물과 타액으로 엉망이 된 얼굴에 잘게 입을 맞춰 주었다.
“희주 씨. 사랑해요.”
“흐으… 그만…….”
반쯤 잠든 희주가 아예 다른 대답을 해도, 강현우는 좋다고 입을 맞추었다. 절정의 순간마다 폭발적으로 터지던 페로몬을 쫓아 목덜미며 손목이며, 높은 콧대가 뭉개질 만큼 코를 박았다. 귀찮은지 잠결에 손가락을 움찔거리던 희주는 어느 순간 강현우가 입을 맞추든 말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깊게 잠이 들었다.
강현우는 이후로도 희주를 껴안고 놔주지 않았다. 커튼 틈으로 여명이 새어 들어올 때쯤이 되어서야 체액으로 범벅이 된 희주를 말끔하게 닦아 내고, 마찬가지로 푹 젖어 버린 시트를 걷어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런 다음 따끈하고 말랑한 연인을 품에 끌어안고, 그의 포근한 페로몬을 맡으며 함께 잠이 들었다.
* * *
강현우에게 온갖 기를 다 빨려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몇 번이나 성기를 쥐어짜인 희주는 정오가 한참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꼼꼼하게 쳐 둔 암막 커튼 덕에 방 안은 어둑어둑했으나, 탁상 위에 놓인 스탠드 불빛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눈을 뜨면 보여야 하는 강현우의 얼굴도 보이지 않고, 솟아 있는 이불 모양이 이상해 가만히 둘러보니 강현우가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은 채 무언가를 집중하여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예요……?”
“아. 깼어요?”
비몽사몽 한 목소리로 겨우 묻자, 강현우가 보던 것을 허벅지 위에 잠시 내려 두고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강현우는 잘 말라 보송보송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 매끈한 이마에 잘게 입을 맞춰 주었다. 희주에게서는 제 페로몬이 물씬 느껴졌다.
희주는 물을 마시겠냐는 물음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대를 벗어나 물 한 잔을 가득 떠 온 강현우에게, 희주는 자신 좀 일으켜 달라고 이불 속에 파묻힌 팔을 꺼내어 어린아이처럼 쭉 뻗었다. 강현우는 기꺼이 희주를 일으켜 앉힌 다음, 얼른 등 뒤로 도톰한 베개를 끼워 주었다.
“이것도 일이에요……?”
밤새 쪽쪽 빨린 탓인지 물이 꿀떡꿀떡 많이도 넘어갔다. 조금 과장하여 희주의 얼굴만 한 머그 컵을 가득 채웠던 물이 반 이상이 사라졌다. 급하게 몇 모금 마시고 나서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한 희주는 그가 보던 태블릿에 관심을 보였다.
“일은 아니고. 음……. 희주 씨도 관련되어 있는 거니까 한번 볼래요?”
의아한 말에 희주가 떨떠름하게 그러겠노라 답했다. 얼마 남지 않은 머그 컵을 강현우에게 들려 주고, 자연스럽게 태블릿을 받아 든 희주는 웬 브로슈어를 통째로 넣어 둔 것 같은 화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집… 인 것 같은데.”
화면에 떠 있는 것은 아파트 평면도를 포함한 홍보용 카탈로그였다. 대충 평면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강현우의 집만큼이나 넓고 쾌적해 보였다. 이어서 화면을 넘겨 보니 각기 다른 지역에 위치해 있는 아파트를 홍보하는 카탈로그들이 서너 개 정도 더 있었다. 이게 뭐냐는 눈짓으로 강현우를 바라보자,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낯의 강현우가 여상히 말했다.
“우리 신혼집이 될 만한 곳들을 좀 보고 있었어요.”
“……네?”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는 숱하게 들어온 단어가, 강현우의 목소리를 타고 제게 전해지니 약간 현실성이 떨어졌다. 신혼집… 이라고 하면, 뜻 그대로 신혼부부가 사는 집을 의미했다. 신혼부부? 이어지는 생각에 희주가 또 한 번 물음표를 띄운 채 멍하니 있자, 어쩐지 즐거운 듯 보이는 강현우가 설명을 이었다.
“어차피 결혼할 건데, 지금부터 같이 살면 어떨까 해서요.”
“아…….”
“음……. 혹시 불편해요?”
희주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멀쩡한 집을 두 채나 남겨 두고 왜 굳이 다른 곳을 물색하고 있는지가 마음에 걸렸다. 잠시 주저하던 희주가 어물어물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사는 집은요?”
“여기요? 여기가 좋아요?”
싫을 이유가 있을까?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싶어 희주는 조금 넋이 나가 버렸다.
“희주 씨가 원한다면 저는 이 집도 좋은데, 여기서 살게 되면 희주 씨 직장이 멀어지니까요. 제가 일 때문에 데려다주지 못하는 날이 생기면 그땐 희주 씨가 혼자 출근해야 하는데……. 출퇴근길이 많이 막히는 편이라 자차로도 불편할 거예요. 아니면 따로 기사님을 붙여 줄 수도 있는데…….”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에 희주가 하얗게 실색했다. 출근하는데 개인 기사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출근하는 교사라니. 상상도 하기가 싫었다. 무엇보다 강현우의 말이 마치 제가 원한다면 차도 사 주고, 기사까지 고용하겠다고 뜻으로 들려 희주는 저도 모르게 경악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면 희주 씨 집으로 내가 들어갈까요?”
“제… 집에요?”
언제는 제 직장이 멀어질까 봐 이곳은 안 되겠다면서, 반대로 생각하면 강현우의 직장이 멀어지는 건데 이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제 오피스텔을 거론하는 게 조금 어이가 없었다. 이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현우는 그저 좋다는 듯 웃었다.
“저는 희주 씨가 좋다고 하는 곳이라면 다 좋아요.”
모르는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든 희주는 강현우에게서 시선을 떼고 태블릿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어디가 좋다고 할 줄 알고 저렇게 마구잡이로 말한담…….
“이 중에서 천천히… 골라 볼게요.”
“그럴래요? 최대한 희주 씨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추려 봤어요. 일단 여기는…….”
강현우는 한 팔로 희주의 어깨를 감싸 안고 태블릿을 받아 든 다음 신난 듯 설명을 자처했다.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한 걸까. 결혼 날짜를 정하기도 전에 대뜸 신혼집부터 알아보자고 하는 설레발이 내심 귀엽게 느껴졌다.
결혼…….
가만히 경청하던 희주는 어느새 설렘으로 발긋해진 콧잔등을 손끝으로 살살 긁어 내렸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겠지만, 지금 옆에 있는 이와 함께라면 뭐든 다 괜찮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가족. 완벽하기 그지없는 그 이름이 서로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테니 말이다.
<러브 매칭>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