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이드 미러에 비치는 강지우는 점점 작아지고 멀어져만 갔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말릴 틈도 없었다.
그냥 작게 티격태격하는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닫는다고? 사이좋은 남매인 줄 알았더니 마냥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황당하다는 눈으로 사이드 미러를 들여다보던 희주는, 빠르게 도로를 질주하는 강현우를 휙 돌아보며 머뭇머뭇 뒤쪽을 가리켰다.
“동생 분 저렇게 그냥 두고 가도 되는 거예요?”
“네.”
“그래도 이왕 차에 탄 거, 가는 곳까지는 태워다 줘야 될 것 같은데…….”
시간도 많이 늦었잖아요. 희주는 마치 강지우가 제 동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연신 뒤쪽을 두리번거렸다.
이제 고작 8시를 조금 넘긴 시간을 보고 늦었다 표현하는 희주를 흘끔 쳐다본 강현우가 픽 웃었다. 소리를 듣고 홱 돌아보는 희주의 얼굴에는 ‘지금 웃음이 나와요?’ 하고 질타하는 듯한 표정이 담겨 있었다.
“강지우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알아서 하겠죠.”
“그래도 동생이잖아요.”
“우리보다 어린 것뿐이지, 스물일곱이면 어엿한 어른입니다.”
희주는 어쩜 오빠가 되어서 그렇게 무심하냐며 한두 마디씩 툭툭 타박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렇게 매정하게 길바닥에 버리고 가는 게 어디 있어요?”
“……음.”
“아까 같이 있던 분, 그분도 그래요. 이렇게 우연히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차 타고 가면 좋잖아요. 지우 씨 남자 친구인 거죠? 연락해서 다시 만났겠죠?”
“글쎄요.”
성의 없는 대꾸를 하면서 강현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남자 친구는 무슨. 여자 친구에게 그렇게 깍듯하게 구는 남자 친구도 있나. 강현우는 저를 보자마자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남자를 떠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아까 그 남자는 강지우의 남자 친구가 아니라, 돈을 받고 고용된 운전기사였다. 그 남자가 강지우의 쇼핑에 동행한 건 아마 강지우가 억지를 부렸기 때문일 테고.
허락도 없이 막무가내로 몸뚱이부터 들이민 강지우가 기사에게 특별히 다른 지시를 내렸을 리는 없겠지만, 그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을 그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 뒤를 졸졸 따라왔던 거겠지. 솔직히 기사가 따라왔든 안 왔든 그건 제 알 바가 아니었다.
강지우도 이런 전개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을 거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마음대로 짐작하지 말라며 크게 혼날지도 몰랐다. 매일같이 어린 학생들을 상대하느라 생긴 직업병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착한 건지 모르겠다. 오목조목 따져 가며 화내는 모습이 꼭 아버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해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전화해서 한번 물어보면 안 돼요? 연락처는 알고 있을 거 아니에요.”
“뭐 하러 그런 짓을 해요.”
“허……. 현우 씨. 혹시 전화번호 모르는 건 아니죠?”
어이없는 헛숨을 흘린 희주는 골치 아프다는 듯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어린애들이 그러면 이해라도 하지, 그의 말마따나 그 역시 어엿한 어른이지 않은가. 유치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비식비식 웃음이 나다가도, 아이들끼리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날 때마다 나서서 중재하는 버릇이 툭 튀어나와 미간 사이가 확 좁아 들었다.
“아무리 동생이 장난을 쳤다고 해도…….”
“장난?”
일순 강현우가 말을 뚝 잘랐다. 몸이 움찔 튀어 오를 만큼 쌀쌀맞은 말투에, 희주는 조잘거리던 입을 꾹 다문 채로 강현우를 쳐다보았다. 시선이 느껴질 법도 한데, 그는 오로지 정면만을 바라본 채로 눈가며 입매며 웃음기를 거두고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그게 장난입니까?”
잔뜩 신이 난 강지우가 희주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쓸데없는 말이라도 늘어놓을까 봐 내쫓은 것도 있었지만, 그전에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면서 쏟아 낸 말이 강현우의 심기를 거스른 탓이 컸다.
“내가 그따위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맞아요?”
동그랗게 벌어진 눈이 강현우의 눈치를 살피느라 데굴데굴 굴러갔다. 이내 신호를 받아 속도를 줄인 강현우는 핸들 위에 엎드리다시피 팔을 얹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목소리를 높이고 나니, 곧바로 이성적이지 못했다는 자각과 함께 후회가 밀려왔다. 화가 난 줄 알고 주눅 든 희주의 모습도 신경 쓰였다. 참 속이 좁다 못해 없기까지 했다.
강현우도 알고는 있었다. 강지우가 정말 그런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것과 강지우는 알파이기 이전에 저와 피가 섞인 가족이라는 것을. 그러니 웃기지도 않은 말 말라며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담과 진담을 구분 못 할 만큼 화가 났다. 제 오메가를 향한 소유욕으로 눈이 멀어 도리어 희주에게 언성을 높이는 자신이 무척이나 비이성적으로 느껴졌다.
잠시간의 정적 후에, 강현우는 빠르게 이실직고했다.
“나 질투하는 거예요.”
허심탄회하게 뱉어진 말에 놀란 희주가 두 눈을 끔뻑끔뻑 감았다가 떴다.
“남도 아니고 가족한테 그런 농담 좀 들었다고 이럴 것까지 있냐고 생각할 것 같은데…….”
“아니, 그건…….”
마침 토씨도 틀리지 않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희주는 민망함에 말을 얼버무렸다.
“피 섞인 가족이기 전에 알파라고 생각하는 게, 알파거든요.”
“진짜 저한테 관심 있어서 그런 건 아니잖아요…….”
“혹시 모르죠.”
무언가 생각을 하는가 싶던 강현우가 고개를 돌려 희주와 눈을 맞추었다. 올망졸망한 생김새가 한눈에 들어왔다. 곧 이어질 제 대답을 기다리며 삼박삼박 눈을 깜빡이는 그를 눈에 담다가, 강현우는 도로 앞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투로 툭 내뱉었다.
“강지우 취향이 미인이거든요.”
강현우는 지금껏 희주를 위해 억누르고 있던 페로몬을 느슨히 풀어내며 액셀을 밟았다. 강지우의 장난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희주에게 화풀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페로몬은 세밀하게 조절된 상태였다.
“지금 전화해서 희주 씨가 걱정한다고 하면 퍽이나 좋아할 겁니다.”
은은하게 얼굴이 붉어진 희주는 큼,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 갑자기 덥다고 느껴지는 건 제 착각일까? 화끈거리는 목덜미를 스윽 훔친 희주는 괜히 바깥을 구경하는 척 딴청을 피웠다.
“그래도 저는 지우 씨 만나서 좋았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운전에 집중하던 강현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혹여 그의 오해라도 살까, 희주는 황급하게 말을 이었다.
“갑작스럽게 만난 거라 지금도 조금 얼떨떨하긴 한데요. 그래도 현우 씨 가족을 만나는 건 처음이었잖아요. 저는 위아래로 형제 없이 커서… 지우 씨가 스스럼없이 대해 주신 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좋았어요.”
부끄러움과 어색함이 섞인 웃음이 헤실헤실 새어 나왔다. 희주는 마주 얽은 제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정식으로 만나서 밥이라도 한 끼 먹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때는 음, 미리 약속 잡고요. 오늘 꼴이 꾀죄죄해서 얼마나 민망했는지 아세요?”
“꾀죄죄하다고 누가 그래요.”
“퇴근하고 바로 오기도 했고… 또 옷 갈아입느라 머리도 다 망가졌잖아요. 옷도 좀 깔끔하게 입고 인사드려야죠.”
“여기서 더 예쁘게 해서 간다고요? 강지우 취향 미인이라니까요.”
“저 미인 아니에요…….”
그만하라며 희주가 입술을 비죽거렸다. 저를 달래기라도 하는 것 같은 희주의 나긋한 말씨와 페로몬 덕분에 강현우는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희주가 궁금해했던 강지우의 상황을 넌지시 알려 주었다.
“지금쯤 차 타고 알아서 들어가고 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지금 강지우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희주 씨.”
예상대로의 반응에 강현우가 까딱 고개를 기울였다. 넓지 않은 밀폐된 공간에 스멀스멀 눅진하고 묵직한 알파 페로몬이 가득 퍼졌다. 놀란 희주가 저도 모르게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우리 어디 가기로 한 건지 잊었어요?”
“아…….”
흐릿하게 터져 나온 탄식과 함께 오메가 페로몬이 이끌려 나왔다. 순식간에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허벅지 안쪽이 움칠 떨려 와 바짝 힘을 준 희주가 꼿꼿하게 허리를 세웠다. 평소 타인의 페로몬에 무던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우성 알파인 데다 애인이기까지 한 남자의 페로몬에는 온몸이 속절없이 반응해 버린다.
“지금 나는 시간 아까워 죽겠는데… 내 속도 모르고 자꾸 강지우만 걱정할 거냐고요.”
응? 나른하게 붙여진 물음에 희주의 목덜미가 빨갛게 물들었다. 위고 아래고 할 것 없이 피가 빠르게 돌았다.
꽉 막힌 도로는 퇴근 행렬이 잦아드는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빈틈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강현우는 아슬아슬하게 주변 차량들을 피해 거칠게 차를 몰았다.
분명 평상시에는 특별한 감상 없이 오가던 거리였건만, 오늘따라 속에서 욕지거리가 치밀 만큼 답답함이 앞섰다. 희주는 그런 강현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성급함과 난폭함의 경계를 오가는 운전과는 달리 강현우의 표정은 차가우리만큼 침착했다.
이내 고개를 돌린 희주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둔 채 입술을 꾹 깨물었다. 미래를 직감해서일까. 쿵쿵 날뛰기 시작하는 심장 때문에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이는 강현우가 제집에 왔을 때와는 감히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묘한 긴장이 서린 침묵은 곧 강현우의 집에 도착해서도 이어졌다. 강현우를 따라서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린 희주는 처음 와 보는 공간을 둘러볼 틈도 없이 강현우에게 손이 붙잡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뒤늦게 차에 두고 나온 짐들을 떠올리고는 희주가 입술을 달싹였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현관 안쪽으로 희주를 먼저 밀어 넣은 강현우가 현관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그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움직임을 감지한 현관 센서 등이 반짝 시야를 밝혔다. 조금은 긴장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감에 휩싸여 현관 안쪽으로 발을 디뎠던 희주는 무언가를 눈에 담기도 전에, 다가오는 연인의 얼굴에 두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으응…….”
입술이 부딪힘과 동시에 축축한 살덩이가 입 안을 파고들었다. 질척하게 혀가 엉기는 소리 사이로 도어 록 잠기는 소리가 얼핏 들린 것도 같았다.
등에서부터 느껴지는 딱딱한 벽의 냉기와 사뭇 대조되는 뜨거운 몸이 한 치의 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꼭 겹쳐졌다. 단단한 허벅지가 다리 사이를 벌렸고, 뜨겁게 열이 오른 손바닥이 입고 있던 상의를 들추고 그 안을 파고들었다. 맨살을 스치는 손길에서 여유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희주는 늘어진 손을 들어 강현우의 팔뚝에 얹었다. 별거 아닌 접촉에도 강현우는 코끝으로 한숨과도 같은 숨을 짙게 흩뿌렸다. 틀어진 각도를 따라 뺨에 부딪혀 부서지는 숨이 마냥 뜨거웠다.
혀뿌리가 아릿하다고 느껴질 때쯤 감은 눈꺼풀 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저 센서 등이 꺼진 것뿐이지만 흠칫 놀란 희주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어둠에 채 익숙해지지 않은 시야가 조금씩 밝아지는가 싶더니, 오래지 않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저를 응시하는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당장이라도 잡아먹힐 듯한 감각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안으로 들어가요.”
조그만 혀끝을 쪼옥 빨아 머금은 강현우가 입술을 떼어 냈다. 은밀하게 속삭여지는 말에 희주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물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로 입술이 맞물린 탓도 있었다.
허둥지둥 신발을 벗은 희주는 강현우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해 주춤주춤 걸음을 옮겼다. 온통 불이 꺼져 있는 데다 구조도 모르고, 오로지 강현우가 이끄는 대로 뒷걸음을 쳐야 했기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앞섰다. 상대의 목을 끌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더더욱 절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
강현우는 희주를 침실로 이끌었다. 당연한 수순대로 얼마쯤 걸음을 옮기던 희주는 어느 순간 침대 위로 휙 무너졌다.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비명은 강현우가 기꺼이 삼켰다. 맞닿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는 것이 느껴졌다.
여전히 입술을 겹친 채로 입 안을 헤집으며 강현우는 별 힘을 들이지 않고 희주를 완전하게 침대 위로 올렸다. 움직일 때마다 아래에 깔린 이불이 흐트러지며 사부작사부작 메마른 소리를 냈다. 아무것도 아닌 소리는 도리어 오감을 자극시키기 충분했다.
강현우는 곧장 희주의 허벅지 사이를 벌려 자리를 잡았다. 거부감 없이 벌어진 다리 사이로 하체를 내렸다. 잔뜩 힘이 들어가 바지가 팽팽하게 당겨진 와중에, 유독 두툼한 양감을 자랑하는 왼 허벅지가 희주의 다리 사이에 노골적으로 문질러졌다.
“으, 흣…….”
입술이 떨어지고, 누구의 것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만큼 엉겨 있던 혀가 풀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입술이 아닌 목덜미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말랑한 입술이 도장을 찍듯 길쭉한 목 여기저기에 닿았다 떨어졌다. 여린 살갗이 한 움큼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신음 섞인 숨이 함부로 툭툭 흘러나왔다.
톡 튀어나와 있는 목울대를 입술과 혀를 써서 오물거리기까지 한 강현우는 쇄골 아래로 입술을 내리려다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직 옷을 벗기지 않은 터라 제대로 무언가를 할 수가 없었다. 후우. 마찬가지로 흥분을 머금은 숨을 내쉰 강현우는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침대에 누워 그런 강현우를 올려다본 희주는 왜인지 모를 갈증에 혀를 내어 입술을 핥았다. 전과 다를 바 없이 부끄러움은 여전했으나, 열망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더욱 컸다.
“또 그렇게 보네.”
시선을 느낀 강현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집요한 입맞춤의 여파로 가쁜 숨을 할딱이던 희주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입고 있던 옷들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마지막 남은 속옷마저 침대 아래로 툭 떨어졌다. 강현우는 손바닥으로 동그란 무릎을 감싸듯 매만지다가 허벅지와 골반, 허리를 역으로 쓰다듬으며 쇄골을 쭉쭉 빨아 당겼다. 키스만으로 힘이 쭉 빠져 있던 희주가 일순 흠칫거리며 신음했다.
특히 허벅지와 골반을 어루만질때에는 마른 배에 바짝 힘이 들어가 움츠러들었다. 희주는 혹시라도 제 성기를 붙잡아올까 싶어 슬쩍 허리를 비틀기도 했다. 물론 그럴수록 강현우는 더욱 집요하게 살결을 더듬었고, 이따금 의도하지 않은 척 손등으로 성기를 툭 건드렸다.
“아, 현우, 현우 씨…….”
“응.”
벌어진 다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음과 동시에 강현우는 동글동글하게 뭉친 유두를 입술로 머금었다.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 소리에도 대충 목을 울려 대답하자, 희주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강현우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짧게 느껴진 진동에 가슴 끝에서부터 찌르르한 쾌감이 느껴졌다.
강현우는 멈추지 않고 희주를 물고 빨았다. 색이 옅은 유두 끝에 피가 몰려 붉어질 때까지 강하게 입 안으로 빨아들이고, 이를 세워 잘근거리는가 하면 퉁퉁 부어오른 알갱이를 혀로 뭉개기도 했다. 흥분감에 은은하게 붉어지기 시작하는 가슴팍은 물론이고, 마른 뱃가죽에까지 입술을 내려 애무를 이어 갔다.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으니 뭘 하든 제약이 없어 수월했다.
“읏……. 으응, 현우 씨, 아, 아…….”
숨이 할딱할딱 넘어갔다. 눈앞이 조금씩 흐려지는 것 같아 깊게 눈을 감았다 뜬 희주는 어느덧 배꼽 근처에 혀끝을 세워 꾹꾹 누르는 감각을 느끼며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한 하체를 바르작거렸다.
이미 옷이 벗겨지기 전부터 힘이 들어가 있던 성기는 자극이 이어질수록 힘을 더해 이제는 바짝 선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랫배 위로 바짝 올라붙은 성기는 제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꾸만 꺼떡거리며 강현우의 턱밑을 툭툭 건드렸다. 어쩐지 수치심이 일어 그의 어깨를 밀어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슬슬 흘러나온 애액 탓에 엉덩이 밑이 축축하고 미끄덩거렸다. 더 새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움찔거리며 엉덩이에 힘을 주면, 성기가 꺼떡거리면서 또 한 번 강현우의 턱을 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함에 울상이 된 희주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강현우의 어깨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으, 으응……. 음…….”
보들보들한 솜털뿐인 곳에 입술을 누르며 조금씩 얼굴을 아래로 내리던 강현우가 힐끗 시선을 들어 올렸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녹진한 신음을 흘리는 희주가 가물가물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곳도 아닌 제 공간에서, 제 손길과 입맞춤으로 흐트러진 연인을 보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짜릿했다. 이대로 주말까지 함께할 수 있음에 풋풋하게 설레면서도, 어쩐지 더한 욕심이 일었다.
이렇게 된 건 강지우와 마주친 탓이 컸다. 피가 섞인 혈육이라고 할지언정,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배제하고 제 오메가를 지키려 드는 것이 알파였으므로.
애써 평정심을 지킨 강현우는 희주의 말랑한 살에 코를 문지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한데 섞인 살냄새와 페로몬이 밀려 들어왔다. 신축성 없는 원단에 짓눌린 성기가 슬슬 아릴 지경이었다. 이론적으로 따져 보자면 우성인 저보다 열성인 희주가 안달이 나야 맞는 건데, 안달이 나다 못해 발정이 나 있는 건 도리어 저 같았다.
어둠 속에서 강현우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강현우는 아까부터 턱 밑을 툭툭 건드는 것에 찬찬히 시선을 내렸다. 휜 곳 없이 곧고 예쁜 모양을 하고 있는 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꺼떡거리는 모양새가 강현우에게 마치 빨아 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일전에 한번 치솟은 바 있던 욕구가 다시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강현우는 제 어깨 위를 배회하는 손을 끌어 내려 그러쥐었다. 별 의심 없이 내어 주는 희주가 기꺼워 손가락 끝에 입을 맞춘 그는, 그러쥔 손목을 이불 위로 지그시 내리누르고는 그대로 입을 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을 바라보며 몽롱한 쾌감에 젖어 있던 희주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아, 자, 잠깐… 현우 씨, 안 돼, 아!”
희주는 다급하게 침대를 집고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어디서 나온 힘인지 손을 쓰지 않고도 실제로 반 정도 몸을 일으켰던 희주는, 단단한 힘에 제압되어 도로 천장을 본 자세로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흣……. 아, 응, 으응…….”
희주는 겨우 목에 힘을 주어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려 애썼다. 차마 맨정신으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감각이었다. 절로 허리가 휘고, 벌어진 입술에서 새된 신음이 줄줄 새어 나왔다. 뜨겁고 축축한 감촉이 주는 쾌감도 쾌감이지만, 그 감촉이 다른 것이 아닌 강현우의 입 속 공간이라는 사실이 주는 정신적 충격은 곧 쾌감으로 직결되었다.
당장 그를 밀어내야지, 하면서도 강현우가 고개를 숙여 더 깊게 머금을 때면 저도 모르게 허리를 탁탁 위로 쳐올렸다. 이따금 단단한 입천장과 말캉한 혀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했다. 참지 못하고 눈을 감으면 야하기 짝이 없는 습한 소리가 더욱 증폭되어 괴롭기만 했다.
“흣, 으으응……. 그, 그만…….”
쾌감 탓에 고인 눈물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발가락이 움츠러들고, 이불을 쥔 손이 하얗게 질렸다. 참을 수 없는 사정 욕구가 치밀면서도, 참아야 한다는 강박이 마지막 남은 이성 한 줄기를 단단히 붙들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음에도 엉덩이가 자꾸만 뒤로, 아래로 꿈틀거렸다.
“그, 만……. 아, 흐으, 현우 씨…….”
이제 정말 한계였다.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채 움찔거리기만 하던 희주가 격하게 몸을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쌀 것 같다고, 제발 그만하라며 고개를 도리질 치고 벌어진 허벅지를 오므려 강현우를 밀어내려 했다. 어떤 미동도 없이 희주의 성기를 게걸스럽게 빨아 대던 강현우가 번쩍 시선을 든 건, 희주의 입에서 제 이름이 터져 나왔을 때였다.
단번에 마주친 시선은 감히 피할 수가 없었다. 강현우는 흔들리는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고개를 깊게 숙였다가, 뱉어 낸 성기에 대놓고 혀를 덧그렸다. 노골적인 광경에 허벅지 안쪽이 덜덜 떨렸다. 안간힘을 쓰고 사정을 참던 희주는, 이어 강현우가 귀두를 물고 강한 힘으로 빨아들였을 때 고개를 휙 뒤로 꺾었다.
“흐으, 아, 아아…….”
마치 그것을 바라기라도 한 것처럼 귀두만 문 채 입으로 정액을 받아 낸 강현우는 사출이 어느 정도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 입 안에 든 것을 흔적도 없이 목뒤로 삼켰다. 뒤늦게 몽글몽글 맺히는 흰 액체도 혀를 내어 싹싹 핥아 먹은 강현우는 더는 나오는 것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그러쥔 손을 풀어 주었다.
하지만 희주는 이미 힘이 쭉 빠져 사정의 여운에 젖어 숨을 할딱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쾌감으로 머릿속이 멍했다.
“희주 씨.”
의식을 일깨워 준 건 어김없이 강현우였다. 한 차례 절정에 오른 희주를 내려다보며 셔츠며 바지를 벗어 던진 강현우는, 힘을 잃고 늘어진 희주의 성기 위로 제 것을 짓눌렀다. 눈물이 훑고 지나간 뺨과 관자놀이에 입술을 대고, 슬슬 허리 짓을 했다. 금방 사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흐느끼는 신음이 희주의 입술 밖으로 흘러나왔다.
“으음……. 으, 응…….”
“후…….”
도통 허벅지에 힘을 주지 못해 희주가 할 수 있는 건 성기끼리 맞대고 문지르는 것이 전부였다. 허리를 움직이는 대로 부딪히는 성기를 어두운 눈으로 내려다보던 강현우는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대고 앉았다. 그러고는 희주의 무릎 뒤에 손을 넣어 다리를 허공으로 밀어 올렸다. 유연한 몸이 둥글게 휘어졌다.
손에 집히는 대로 베개를 가져다가 허리 밑에 끼워 넣어 준 후, 뻐끔거리며 투명한 액을 쏟아 내는 입구를 눈으로 짙게 더듬었다. 마음 같아서는 성기 못지않게 저곳도 입술로 덮고 혀를 내어 예뻐해 주고 싶었지만, 고작 성기 한번 빨린 것 가지고 훌쩍거리는 연인에게 재차 충격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천천히, 익숙해지게 만든 다음에 마음껏 예뻐해 주리라 다짐한 강현우는 허공에 들린 다리를 제 어깨 위에 올렸다.
조금씩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지만 손바닥에 감기는 피부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강현우는 어깨에 걸쳐진 다리를 느릿하게 쓰다듬고는 반쯤 들린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쥐어 벌렸다.
“전보다 더 많이 젖은 것 같은데요.”
놀리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그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인 희주는 얼굴이 빨개진 채 도리질을 쳤다. 애액이 새어 나온 탓에 벌어진 골 사이로 스며드는 공기가 차가워, 저도 모르게 엉덩이에 힘을 주자 강현우가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살갗을 두드리듯 손가락을 움직이던 강현우가 힘이 잔뜩 들어간 입구를 손가락 끝으로 슬며시 문질렀다. 손끝만으로도 느껴지는 꽉 다물린 입구는 제 것을 넣기에는 한참 모자람이 있었다.
강현우는 미끈한 애액을 펴 바르듯 입구를 문지르다가 힘이 풀리는 틈을 타 손가락 두 개를 단숨에 밀어 넣었다. 손가락이 파고듦에 있어서는 무리는 없었으나, 빠듯하게 조여 오는 내벽은 성기를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강현우는 희주와 키스를 할 때처럼 손가락으로 내벽을 천천히 휘저었다. 이미 젖을 대로 젖은 내벽은 휘저어질 때마다 축축하고 끈적한 소리를 내뱉었다.
“현우 씨……. 흐응, 아, 흣…….”
“아파요?”
“그, 게 아니라… 아……. 저, 페로몬…….”
은은하게 홍조를 머금은 얼굴이며, 손가락을 쑤셔 넣을 때마다 울컥 쏟아지는 애액은 현재 희주가 아파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 주는 반응들이었다. 이를 알고도 아프냐고 다정하게 묻자, 조금 난처하게 입술을 달싹이던 희주는 저가 바라는 것을 조심스레 입에 올렸다.
상대의 페로몬은 성교 과정에서의 심한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있었지만, 다른 효과로는 서로 감정을 교류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희주는 강현우의 애정을 원했다. 페로몬을 풀어 달라는 건 그런 의미였다.
강현우는 능숙하게 페로몬 양을 늘렸다. 상대를 향한 강한 소유욕이 녹아들어 평상시보다 더욱 진득해진 페로몬이 희주를 덮쳤다. 구멍이 녹진하게 풀어짐과 동시에 손가락을 빼낸 강현우는 벌름거리는 입구에 귀두 끝을 대고 힘 있게 내벽을 파고들었다.
“흐으윽…….”
제아무리 말랑하게 풀어 뒀어도 알파의 성기가 단번에 파고드는 감각은 섬찟했다. 허리 아래서부터 찌르르하게 올라오는 감각에 몸서리치듯 신음한 희주는 더듬더듬 손을 들어 올려 강현우의 품에 파고들어 등을 끌어안았다. 연결된 부위에서 거센 맥박이 느껴지는 듯했다.
강현우는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빠듯하게 성기를 감싸는 속살을 휘저었다. 거친 음모가 닿아 문질러진 여린 살결은 금세 생채기라도 생길 것처럼 빨갛게 물들었지만, 서서히 지펴지는 쾌감에 희주는 그 통증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반사적으로 곤두섰던 긴장이 사르르 가시고, 이내 희주가 지난번 자극받았던 부위의 감각을 떠올리며 허리를 움칠거렸다. 이를 기민하게 알아챈 강현우가 귀두 아래까지 성기를 빼냈다가 단숨에 박아 넣었다.
“하으! 으, 읏…….”
다소 투박하게 박힌 성기 끝은 정확히 전립선을 짓눌렀다. 다시 빳빳하게 발기해 아랫배를 두드리던 성기 끝에서 말간 액체가 고였다가 후드득 떨어졌다. 이를 본 강현우는 금세 젖은 희주의 배를 손바닥으로 덮고 문질렀다. 피부 위에 고인 액체를 쓸었을 뿐인데 성기를 깊게 찔러 넣을 때마다 뱃가죽이 제 성기 모양대로 움직이는 게 느껴지는 듯했다.
“흐응, 아, 아! 현우 씨, 흑, 하지… 으응!”
“하아……. 희주 씨.”
착각이 아니었다. 다리가 강현우의 어깨 위에 걸쳐진 데다, 무릎 뒤를 온 체중으로 눌러 쏟아지듯 저를 덮쳐 오는 탓에 그저 입을 벌리고 신음하기 바빴던 희주는 아랫배에 가해지는 은근한 압박감에 자지러지듯 고개를 내저었다. 압박감을 느낀다면 오히려 강현우가 느껴야 함이 마땅하건만 이상하게도 제가 압도당하는 느낌이 선연했다.
희주는 제 아랫배에 닿은 강현우의 손을 떼어 내려 그의 손등 위를 박박 긁었다. 과한 쾌감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구멍은 자꾸만 옴쭉옴쭉 성기를 빨아들였고, 강현우가 허리를 치댈 때마다 이리저리 몸이 비틀렸다.
“여기… 내 거 느껴져요.”
짧게 정돈된 손톱이 손등 위에 빨간 실선을 만들었지만 강현우는 개의치 않고 잠시간 손을 떼지 않고 있다가, 희주의 손을 붙잡아 배 위를 더듬게 했다. 정말 그런 건지 아니면 그의 말을 들어서 그런 건지, 손바닥 아래로 두툼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제 몸이 이상해진 것 같다는 공포감에 희주의 속눈썹이 눈물로 재차 젖어 들었다. 울음 섞인 신음이 드문드문 끊겨 방 안을 울렸다. 강현우는 제 어깨 위에 힘없이 걸쳐진 다리를 끌어 내려 제 허리를 감싸도록 하고, 눈물진 얼굴 위로 입술을 내렸다.
눈알이라도 핥을 기세로 짭조름한 눈물을 모조리 빨아 먹은 강현우는 마치 귀소 본능이라도 느낀 양 희주의 입술에 제 혀를 밀어 넣었다. 희주는 숨이 모자라 할딱이면서도 밀어내지 않고 입술을 벌리며 혀를 내밀어 왔다. 깊게 침음한 강현우는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혀를 얽었다. 강현우가 빠르게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찌걱찌걱 젖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읏, 아! 흐윽, 응, 응! 아… 하으읏!”
속도감이 붙자 힘에 밀려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몸을 강현우는 바투 아래로 끌어 내렸다. 희주의 몸이 아래로 끌어 내려짐과 동시에 성기가 강한 힘으로 구멍을 파고들었다.
더욱 깊은 곳을 자극받은 희주는 바들바들 떨면서 또 한 번 정액을 쏟아 냈다. 둥근 귀두 끝에서 뿜어져 나온 정액은 일부 옴폭 파인 배꼽에 고였고, 또 다른 일부는 한참 물고 빠느라 부어오른 유두에까지 점점이 뿌려졌다.
“아, 희주 씨……. 내 오메가. 하…….”
성기를 꽉 조여 오는 내벽에 강현우는 미간을 구겼다. 사정을 참아낸 그가 고개를 숙여 불투명한 정액으로 반들거리는 유두를 혀로 휘감듯 빨아 당겼다. 그러고는 세게 허리를 움직여 보다 깊은 안쪽을 꿰뚫었다. 얼핏 제 귀에도 까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으, 흐윽! 그만, 아… 아아, 아!”
사정을 하는 중에도 전립선이 콱콱 짓눌린 탓에 끝도 없이 쾌감이 퍼졌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고장 난 형광등을 앞에 둔 것처럼 시야가 쉼 없이 점멸했다. 결국 강현우가 깊은 곳에 성기를 처박고 사정을 하는 동안, 예민함의 극치에 다다른 몸은 계속된 자극을 견디다 못해 정액이 아닌 묽은 액체를 쏟아 냈다.
“하아……. 흣.”
점성이 없다시피 한 사정액은 맞닿은 두 사람의 배를 흠뻑 적시고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되어 시트 위로 줄줄 흘러내렸다. 데일 것 같은 뜨거움에 희주는 한껏 예민해진 허리를 움찔거리며,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 댔다.
무서우리만큼 강한 쾌감이 온몸을 강타한 뒤에도 흥분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사정의 순간 쫙 펴졌던 손발이 잔쾌감을 이기지 못해 꾸역꾸역 움츠러들었다.
“후우…….”
반 정도 빼낸 성기를 퍽 소리가 나도록 강하게 안으로 치댄 강현우는 사정이 끝나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은 몸짓으로 내벽을 짓이겼다. 방 안이 한여름이라도 된 듯 후끈거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강현우는 맞닿은 배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격하게 들썩이는 희주의 배를 주욱 훑었다. 이미 그 사이에서 잔뜩 뭉개진 정액 덩어리에, 물과도 같은 투명한 액체가 뒤섞여 그의 손이 젖어 드는 건 삽시간이었다. 정체가 불분명한 액체는 그의 손을 적시다 못해 손목 아래로 흘러내리기까지 했다.
말없이 희주를 내려다본 강현우는 희주의 머리 옆에 지탱하던 팔뚝을 거두고 그대로 상체를 일으켰다. 방금 막 사정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단단한 상태인 성기가 휘어진 그 모양대로 흐물흐물해진 내벽을 짓눌렀다.
“으으응…….”
물기를 머금은 신음이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늘어지듯 투정을 부렸다. 강현우는 쾌감에 젖어 일그러진 희주를 눈으로 핥으며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귀두까지 느릿하게 빼낸 성기가 애액과 방금 싸지른 정액으로 번들거렸다.
구멍이 자꾸만 움칫거렸다. 강현우는 볼록 솟은 희주의 배에서 제 성기의 모양을 가늠하듯 손을 움직이다가, 밀려 나온 정액으로 흠뻑 젖은 접합부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붓기가 더해져 통통해진 입구가 지분거리는 손끝에 걸렸다.
희주는 발끝으로 시트를 죽죽 밀었다. 열기를 품은 통증이 꼬리뼈를 타고 올랐다. 가뜩이나 한껏 벌어진 곳에 손목만 한 것이 빠지지 않고 여태 박혀 있으니, 느껴지는 감각이 쾌감이 맞기는 한 건지 헷갈렸다. 탈력감에 젖어 있을 새도 없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하는 몸에, 지펴진 흥분이 하얀 포말이 되어 눈앞에서 팡팡 터지는 환각마저 아른거렸다.
결국 희주는 훌쩍훌쩍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어떻게든 눈물을 닦아 보겠다고 얼굴을 문지르고, 제 골반을 잡은 채 뺄 듯 말 듯 허리 짓을 하는 강현우를 밀어내려 아래로 손을 휘저었다.
그런 의도가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강현우는 희주의 손을 붙잡아 제 얼굴로 가까이 가져갔다. 분홍빛이 도는 손톱에 이를 세웠다가 손가락 마디마디를 혀로 뭉갰다. 벌어진 손가락 틈 사이로 보이는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오히려 제가 그럴 때마다 성기를 머금은 구멍에 바짝 힘이 들어갔기 때문에, 강현우는 멈출 생각은 하지 않았다.
“흑, 조, 조금만 쉬고……!”
“쉬게 내버려 두면, 잘 거잖아요.”
“아니이……. 아흑, 응! 아, 안, 으응! 힘들, 읏!”
천천히 움직이기라도 했으면 좋겠건만 강현우의 허리 짓에는 자비가 없었다. 몇 번 허리를 움직인 것만으로도 다시 단단하게 피가 몰린 강현우의 성기는 젖은 내벽을 가르고 퍽퍽 박혀 들어갔다. 말은 힘들다면서 제 것을 문 구멍 입구는 빡빡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자꾸만 위로 밀리는 몸을 아래로 끌어 내리며 박았다. 하얀 허벅지에 불그죽죽한 손자국이 새겨졌다. 그러던 도중, 강현우는 축 늘어져 있던 희주의 성기에 힘이 들어간 것을 발견했다.
“또 섰네…….”
“우응, 흣, 아니야……. 앗, 아!”
“아니기는.”
이게 선 게 아니면 뭔데요. 낮게 중얼거리는 강현우는 이불을 쥐어뜯는 희주의 손을 떼어 내 스스로 성기를 쥐게 만들었다. 울긋불긋하게 열이 오른 손이 어영부영 성기를 감싸 쥐었다. 성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뭔지도 모르고 붙잡은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희주는 그것만으로도 쉽게 자지러졌다.
서로 꼭 껴안고 할 때보다 얼굴이 너무나도 잘 보이는 자세였다. 그래서인지 희주는 잠시간 눈을 질끈 감았다가 도리질을 치며 뜨기를 반복했다. 저를 잡아먹을 듯한 시선이 버거워 눈을 감은 건데, 예민해져서인지 강현우의 숨결이나 신음 따위가 더 크게 들리고 눈을 뜨고 있을 때와 비교가 되지 않는 쾌감이 마구잡이로 밀려왔다.
또한 눈을 감을 때마다 성기가 콱콱 박혀 들기도 했다. 울음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흔들리던 희주는 결국 눈물 고인 눈으로 강현우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지를 잃은 몸뚱이가 집요한 허리 짓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어쩌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정을 거듭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희주의 몸에는 쾌감이 한계치까지 쌓였다가 어느 순간에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천, 천히… 읏, 흐……. 아, 아, 앗!”
마냥 다정하지는 않은, 오히려 더럽고 난잡한 섹스가 주는 쾌감으로 아랫배가 저릿했다. 철퍽철퍽, 고환이 엉덩이를 내리칠 때마다 삐져나온 애액이 시트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몸이 이상했다. 희주는 손에 쥔 성기를 저도 모르게 위아래로 슬슬 훑어 내렸다. 간간이 무어라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강현우가 비식비식 웃음을 흘렸다. 그가 왜 웃음을 짓는지도 잘 모르면서, 희주는 그의 미소를 따라 입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앗, 응, 읏……. 하아, 아!”
머리끝까지 치솟는 사정감을 참지 못한 희주는 들썩이던 허리를 비틀며 울었다. 고개를 홱 젖힌 채 손에 잡혀 있는 성기를 꾹꾹 짓눌렀다. 파들거리는 성기 끝에서 한바탕 쏟아 냈던 투명한 물만큼은 아니지만, 묽어진 정액이 힘없이 줄줄 흘렀다.
동시에 강현우도 내벽을 힘껏 짓이기며 사정했다. 깊은 안쪽에 제 흔적을 남기며, 페로몬을 풀어 희주를 흠뻑 적셨다. 욕심껏 씌운 페로몬 위에 한 겹, 또 한 겹, 계속해서 씌워 대도 남는 건 모자람뿐이었다.
“아… 힛, 흐, 흐으…….”
“……희주 씨.”
힘없이 늘어져 떨고만 있는 희주를 온몸으로 덮치듯 품으로 당긴 강현우가 숨을 고르며 척척한 얼굴에 제 코끝과 입술을 비비적거렸다. 깜빡임 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맺혀 있었다. 젖은 채 듬성듬성 뭉쳐 있는 새까만 속눈썹에 조심스레 입술을 내리자, 반사적으로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남은 눈물이 새어 나와 강현우의 입술을 적셨다.
강현우는 희주의 뒷머리를 감쌌다. 마찬가지로 땀을 머금어 눅눅해진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사이에 미끄러지듯 감겼다. 찝찝함 따위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개가 기울어지고 이내 입술이 맞물렸다.
숨을 쉬기가 버거워 얕은 숨을 할딱이면서도, 입술이 맞닿자 혀가 마중 나오는 것이 사랑스러웠다. 강현우는 슬며시 기대 오는 혀에 제 혀를 살살 문질렀다. 간지러운지 희주가 목을 울리며 쿡쿡 웃었다. 덩달아 입꼬리가 스르륵 위로 호선을 그렸다. 서로 이렇다 한 말은 없어도 충분히 애정이 묻어나는 행위였다.
사정을 마치고도 크기에 큰 변함이 없는 성기가 아직까지 속을 꽉 메우고 있었기에 이물감은 여전했지만, 강현우의 입맞춤이 마치 진정제라도 되는 양 내내 거칠게 내달리던 심장이 조금씩 평온을 찾아갔다. 가빴던 호흡도 서서히 정상 궤도로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희주는 움츠린 손을 펴 강현우의 등을 가만가만 끌어안았다. 아직 가시지 않은 절정의 여운으로 손끝이 미세하게 덜덜 떨렸다.
격한 움직임의 반복으로 크게 부푼 몸은 희주가 아무리 양팔을 뻗어도 한 품에 안기가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땀이 맺혀 미끄러운 피부는 붙잡을 것 하나 없어 동글동글한 손끝이 자꾸만 아래로 미끄러졌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희주는 선명하게 푹 파인 척추를 따라 손끝에 힘을 주었다.
“하아…….”
그러자 제 위에 쏟아진 강현우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가 숨을 마시고 내쉴 때마다 손바닥 밑에 감기는 근육들이 성난 듯 씨근거렸다.
“간지러우세요……?”
“음, 조금.”
조심스러운 물음에 강현우가 상냥히 답하며 말랑한 귓불에 입을 맞추었다. 어깨를 움츠리며 킥킥 웃음을 터트리자, 하지 말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는지 다정한 입맞춤이 곧 턱선을 따라 뺨 위로 내려앉았다. 따끈한 체온과 적당한 무게감에 기분이 좋아져 미소가 새어 나왔다.
“음, 희주 씨.”
저절로 피어나는 웃음을 입술로 쪼아 가며 후희를 만끽하던 그때였다. 맞물린 아래를 어떻게 할 생각도 없이 희주를 보듬고 있던 강현우가 대번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크지 않은 움직임에도 축축하게 젖은 접합부에서 쯔걱, 하고 젖은 소리가 울렸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강현우를 쳐다보던 희주는 곧 흠칫, 몸을 굳혔다. 안을 채우고 있던 성기가 빠져나가고 난 후, 오밀조밀 좁아 든 내벽이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질퍽한 액체를 구멍 밖으로 질질 내보낸 탓이었다.
정액의 양은 꽤 상당해서 시트 위로 떨어지면서 투둑, 하고 소리가 날 정도였다. 제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 당황한 희주가 벌어진 입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는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정액이 안에 가둬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밖으로 밀려 나와 시트에 짙은 얼룩만 늘어 갔다.
희주는 당황해 벌어진 다리를 움츠렸다. 재차 몸에 힘이 들어가니 꿀렁꿀렁 구멍 밖으로 흘러나오는 감각이 더욱 선명히 느껴졌다. 젖은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소름 돋는 감각에, 섹스의 여파로 찌르르 울리는 통증을 뒤로하고 뒷걸음치듯 상체를 일으켰다. 누워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일순 희주의 눈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이게……. 이게 다…….”
이게 다 뭐예요? 이어지지 않은 물음이 입술 안을 배회했다. 대단히 충격적이었는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 아래를 바라보는 모습에, 강현우는 마른세수를 거듭하며 낮게 침음했다.
“미안해요, 희주 씨.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흔히 ‘발정기’라고 일컬어지는 알파의 러트와 오메가의 히트 주기만 아니면 모두가 우려하는 상황이 도래될 가능성은 극히 드물었다. 다만, 그럼에도 심리적인 문제는 존재했다.
놀라 하얗게 질린 얼굴에서 얼핏 불안감이 스친 것도 같다. 물론 제 러트 주기까지 넉넉한 시간이 남아 있는 데다 희주 역시 히트 사이클이 아니었으니 임신을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배제하더라도 강현우는 자책감을 쉬이 지울 수 없었다.
우성 알파 주제에 얼마나 쓰레기면 제 페로몬에 이성을 잃은 열성 오메가 안에 정액을 쏟아붓는단 말인가.
아무리 질투심에 눈이 멀었어도 지킬 건 지켰어야 했다. 저는 둘째 치고, 일단 희주를 아끼는 마음으로 말이다. 덩어리진 정액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에 질끈 눈을 감았다 뜬 강현우는 심각하고도 결연한 얼굴로 희주를 바라보았다.
“일단… 건강 검진받으면서 따로 비뇨기과 검진도 받아 왔습니다. 또 저는 러트 주기가 규칙적이기도 하고……. 아니, 만일 일이 그렇게 되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 무책임한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겁니다. 희주 씨가 결정을 내리는 대로 저는…….”
“……네?”
“정 불안하면 날이 밝는 대로 검사부터 받아 볼 수 있게 할게요.”
“아니, 내일은 주말인데요…….”
희주는 벙찐 채 눈을 끔뻑거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억지로 귀에 담던 중, 병원을 가겠다는 말에 무심코 요일을 들먹였더니 강현우는 미처 몰랐다는 얼굴로 방안을 입에 올렸다.
“아. 그럼 친분 있는 의사에게 부탁해서…….”
여기서 친분 있는 의사란 백영 그룹 일가의 전담 주치의를 말하는 거였다. 그를 불러다가 성병이나 산과 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강 회장의 귀에 들어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희주 씨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씻을래요? 여기서 자고 가기 불쾌하면 씻고 나서 데려다줄게요.”
이제는 아예 저를 집으로 보내겠다는 결론까지 치닫자 희주가 입을 떡 벌렸다. 듣자 하니 콘돔을 쓰지 않은 것에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단단히 오해를 한 그의 모습에 도리어 다른 것에 놀라 벌렁거렸던 가슴이 멋쩍게 가라앉아 버렸다.
“오해가…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하필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라 존재감 강한 신체 부위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희주는 발가벗은 제 몸을 가리기 위해 주섬주섬 끌어온 이불로 강현우의 하체를 슬쩍 가려 주었다. 보기 껄끄러워서가 아니라 흥분감이 가신 뒤 맨정신으로 보기에는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제가 놀란 건 이런… 문제가 아니라요. 그…….”
말할 듯 말 듯 입술을 달싹이자 강현우가 말해 보라며 더 심각한 얼굴을 해 왔다. 주저하던 희주는 마지못해 우물쭈물 말했다.
“다른… 다른 게 나왔잖아요.”
“다른 거요?”
“네……. 저한테서요.”
기실 어느 정도 젖어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금방 샤워를 하고 나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흥건히 젖은 꼴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배와 가슴을 뒤덮은 건 땀은 아니고, 눈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처음 한 번은 강현우의 입에 고스란히 싸 버렸으니 삽입 도중 나온 두 번의 것이 유력한데, 저와 피차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강현우를 보고는 일반적인 사정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느꼈던 쾌감은 사정을 했을 때의 일반적인 쾌감과는 사뭇 다른 것이기는 했다.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졌던 감각은 차마 컨트롤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 끝을 보았다 생각했는데 한계의 한계까지 치달아 공포심마저 고개를 들 만큼 강한 쾌락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잔쾌감을 선사해 댔다.
그래서 나오는 것도 다른 것이 나왔던 걸까? 강현우에게 안긴 채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정액 같지 않게 끝도 없이 뿜어져 나와 배를 때리던 감각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제 몸을 타고 흘러내리던 느낌 역시 끈적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 이상한 게 나와서… 저는 그것 때문에…….”
“……아.”
희주는 입술을 감쳐문 채 시선을 피했다. 정액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숨을 새액새액 내쉬며 냄새를 맡아 봐도 둘의 페로몬과 정액 냄새뿐, 다른 냄새는 맡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답은 딱 하나 남은 선택지로 귀결되려 했다.
검사는 강현우가 아니라 제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섹스 도중에 소변을 지리다니.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개화하듯 붉어지는 얼굴을 바라보던 강현우는 이불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몸으로 스르륵 시선을 떨어뜨렸다. 간혹 과하게 흥분하면 정액이 아닌 다른 것을 싸기도 한다고는 하는데, 질 낮은 농담인 줄만 알았지 실제로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거 때문에요?”
강현우는 몸을 가린 이불을 빼앗듯 잡아당겼다. 어느 정도 메말라 물기는 사라진 뒤였지만, 버석버석하게 남은 흔적을 손으로 가리키듯 덮자 마른 배가 확 움츠러들었다.
“이건 희주 씨가 너무 느껴서 나온 거예요.”
“……이게요?”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럴 수는 있다고 들었어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의심의 눈초리가 저를 훑었지만 오히려 안도감에 픽 웃음이 샜다.
“희주 씨 정액처럼 그것도 먹을 수 있어요.”
그 말이 마치 ‘다음번에는 그걸 먹겠다’라는 말로 들려 희주는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웃으며 이불을 마저 잡아 뺀 강현우는 침대 위에 널브러진 희주를 가뿐히 안고 일어났다. 이상한 것을 쌌다고 울먹거리는 희주가 보기 좋고 한편으로는 다행이었지만, 그렇다고 제 실수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씻어요. 씻겨 줄게요.”
혼자 씻을 수 있다고 도리질을 치려고 했지만, 맨바닥에 발을 디딜 자신이 없었다. 아기를 안듯 강현우가 조심조심 안기는 했지만,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전해지는 반동만으로도 허리가 찌르르 울릴 정도니 말 다 했다. 강현우의 품 안에서 얌전히 힘을 푼 희주는 그대로 욕실까지 옮겨졌다.
“와…….”
불을 켤 정신마저 없어 어둠 속에서 한바탕 일을 치른 터라 욕실 조명이 그리 밝지 않음에도 눈이 시렸다. 눈가를 확 찡그리며 강현우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던 희주는 차츰차츰 눈에 들어오는 욕실의 광경에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욕실이 무슨 방만 했다. 무슨 소재인지는 모르겠지만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타일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고, 물 자국 하나 없는 커다란 거울 앞에는 호텔이라도 온 듯 각종 세면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욕실 안쪽에 놓인 욕조였다. 성인 두 명이 나란히 들어가도 공간이 남을 만큼 큼지막한 욕조는 언제 채웠는지 모를 물이 넘칠 듯 말 듯 차 있었다.
욕실이 이렇게 좋아도 되나? 욕실만으로 이렇게 크면, 그럼 도대체 집은 얼마나 넓다는 걸까?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던 희주는 문득 벌거벗었음에도 찬기가 느껴지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 보니 따뜻한 물 같았다. 분명 집에 들어와서 한 거라고는 섹스밖에 없는데, 욕실에는 따뜻한 물에서 올라온 수증기로 가득했다.
“야외에서도 미리 컨트롤할 수 있거든요.”
표정에서 의아함을 읽은 강현우가 객쩍게 덧붙였다.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가정하고, 아니, 백 퍼센트 확신하고 미리 준비했다는 뜻으로 읽혔다.
희주를 품에 안고도 힘든 기색 없이 허리를 숙인 강현우는 욕조 안에 손을 넣어 다시 한번 온도를 확인했다. 너무 뜨겁지 않은 물이 따스하게 손끝에 감겼다.
“뜨겁지는 않아요?”
“으……. 딱 좋아요…….”
그대로 욕조 안에 성큼 들어간 강현우가 조심스레 몸을 숙였다. 무의식적으로 강현우의 목을 덥석 끌어안은 희주는 발끝에서부터 잠기는 따스한 물의 온도에, 온몸에 바짝 들어갔던 힘을 풀었다. 종일 일하며 쌓였던 피로는 물론이고, 격했던 섹스의 여운마저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완전히 앉은 강현우는 제 가슴팍에 기댄 희주의 등에 물을 끼얹었다. 찰박찰박, 물기 어린 소리가 욕실을 울렸다. 묘하게 나른한 분위기에 졸음이 밀려오는 듯도 했다.
“저, 있잖아요…….”
노곤함에 젖어 있던 희주가 입을 열었다. 강현우는 젖은 손으로 그의 등과 어깨를 문지르며 다음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아까 다른 걸로 놀라서 못 물어봤는데…….”
“네. 그랬는데?”
“콘돔 말이에요…….”
희주가 말끝을 흐리며 강현우의 어깨에 얼굴을 폭 파묻었다. 땀처럼 고인 물이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입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분명 아무 맛도 나지 않아야 정상인데, 페로몬 샤워의 영향인지 물에서 미묘한 맛이 느껴졌다.
“현우 씨가 걱정한 건 뭐였어요?”
“……응?”
“보통 콘돔 안 썼다고 그렇게 죽을죄 진 것처럼 행동하는 알파는 없잖아요.”
높낮이 없이 조곤조곤 이어진 말투는 가만 들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저는 딱히 걱정되는 건 없었다. 히트 사이클이 온 것도 아니고, 만약 히트 사이클이었다 하더라도 자신은 열성이라 임신 가능성도 현저히 낮았으니까.
하지만 어쨌거나 베타가 아닌 형질자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강현우가 걱정하는 것이 혹 제가 원치 않는 일을 맞닥뜨릴까 봐, 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희주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병원을 가든, 아는 의사를 만나든 검사를 받는 주체는 자신이 아닌 강현우 그였다. 게다가 그가 가리키는 검사는 문맥상 임신이 아닌 성병 검사를 의미하고 있었다.
“그게 궁금했어요?”
“네에…….”
“그야… 희주 씨가 걱정되니까요.”
그러니까 무슨 걱정? 분명하지 않은 대답에 희주는 의아함을 느꼈다.
강현우는 보이는 뺨에 촉, 촉 입을 맞추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몸이 식지 않도록 쉼 없이 물을 퍼 올려 끼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아요? 분명 섹스는 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오메가가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게.”
강현우의 손가락이 희주의 곧은 등을 쓰다듬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툭 불거진 목뒤의 뼈를 살살 문지르기도 했다. 손길이 간지러웠는지 희주가 움칠거리며 품을 벗어나려고 했다. 강현우는 애써 붙잡지 않고 그러도록 뒀다. 어느새 평소의 말간 얼굴로 되돌아온 희주가 시선을 마주해 왔다.
“피임 목적도 있지만, 섹스는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예요.”
“…….”
“나 때문에 흥분하는 모습? 당연히 좋죠. 매번 콘돔 쓰는 것도 어쩌면 귀찮아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언젠가 오늘 내 실수 때문에 희주 씨 몸에 이상이 생긴다면… 스스로를 용납 못 할 것 같아서요.”
임신이 아니더라도요. 강현우가 붉은 자국이 잔뜩 남은 가슴에 대고 속삭였다.
“저는 앞으로도 그렇고, 희주 씨와 결혼을 해 부부가 된 뒤에도 콘돔은 꼭 사용하려고 합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준 강현우가 희주를 보며 짙게 웃음 지었다. 이어 그 웃음은 가벼운 입맞춤이 되어 희주의 입술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입술만 부딪치는 간지러운 입맞춤이었다.
결혼…….
철저히 자신을 중심으로 한 배려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눈을 내리깔고 입맞춤에 응해 주던 희주는 온몸으로 저를 안아 주는 강현우에게, 저 역시 온몸으로 기댔다.
“졸리면 자요.”
“안 졸려요…….”
그 후로 강현우는 몇 번씩이고 자라고 등을 토닥였지만, 그럴 때마다 희주는 무거운 눈꺼풀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안락함에 젖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강현우가 잠든 희주를 붙들고 정액을 빼내는 등 뒤처리를 하는 동안에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깊은 잠이었다.